[매묵]2022년 12월 26일 월요일[(홍)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2년 12월 26일 월요일[(홍)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본기도
첫 순교자인 복된 스테파노의 천상 탄일에 거행하는 신비를
저희가 삶으로 드러내게 하시고
숨을 거두면서도 박해자들을 위하여 기도한 성 스테파노를 본받아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6,8-10; 7,54-59
그 무렵 8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
9 그때에 이른바 해방민들과 키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에 속한 사람 몇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다.
10 그러나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7,54 그들은 스테파노의 말을 듣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그에게 이를 갈았다.
55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원할 성채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성채이시니, 당신 이름 위하여 저를 이끌어 주소서. ◎
○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오니, 주님, 진실하신 하느님, 저를 구원하소서. 당신 자애로 저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당신은 가련한 저를 굽어보셨나이다. ◎
○ 원수와 박해자들 손에서 구원하소서.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주님은 하느님, 우리를 비추시네.
◎ 알렐루야.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복된 스테파노의 영광스러운 축일에 저희가 봉헌하는 예물을 받으시고
그가 순교로 증언한 믿음이 저희 안에서 굳건히 자라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의 신비로
저희 마음의 눈을 새롭게 밝혀 주시어
하느님을 눈으로 뵙고 알아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저희 마음을 이끌어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스테파노는 돌을 맞으며 부르짖었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소서.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성자의 탄생으로 저희를 구원하시고
오늘 복된 스테파노의 축일로 저희를 더욱 기쁘게 하시니
저희가 언제나 주님의 풍성한 자비에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한국에서 오는 월간지가 있습니다. ‘가톨릭 다이제스트,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글들이 듬뿍 들어있습니다. 최근에 ‘꿈(CUM)'이라는 월간지를 받았습니다. 한국어로 꿈은 희망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라틴어 ’CUM'은 ‘함께’라는 뜻입니다. 미사 때 사제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Dominus vobiscum)'라고 하면 교우들은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Et cum spiritu tuo)'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꿈은 혼자서는 이루기 어렵습니다. 꿈은 주님과 함께하면, 이웃과 함께하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라는 꿈을 선포하셨고, 그것을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복음 선포의 꿈을 7명의 부제와 함께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7명의 부제 중에 한명이었던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의 축일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탄생 다음 날에 ‘첫 순교자 스테파노’를 기억합니다.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두고 시메온은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이웃과 함께하는 사람은 비록 고난과 역경이 있을지라도 그래서 죽음의 골짜기를 건널지라도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임마누엘 주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월간지 ‘꿈(Cum)'에서 이창영 신부님은 4가지 유형의 사람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첫 번째 유형은 ‘세상이 나에게 빚지고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당연히 나를 사랑해야 하고, 부모님은 당연히 나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교만하기 마련이고, 감사할 줄 모릅니다. 회당에서 대접받기를 원했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와 같습니다. 두 번째 유형은 ‘나는 나이고, 너는 너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합니다. 칼로 찔러도 피한방울 안 나온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강도당한 사람을 외면한 레위인과 사제와 같습니다. 세 번째 유형은 ‘받은 것은 되갚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빚지고는 못 산다는 사람입니다. 남에게 받은 만큼만 베푸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는 이렇게만 살아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되갚지 못할 사람에게도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하늘에서 보상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네 번째 유형은 ‘사람들로부터 빚지고 살아가고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주변의 많은 이웃들에게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자캐오가 그렇게 살았습니다.
주님의 성탄을 지내면서 나는 어떤 유형의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에 ‘허영엽 신부가 만나는 사람들’이라는 지면이 있습니다. 지난 12월 4일 신문에 ‘치과의사 강대건(라우렌시오)’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수도자, 신학생, 사제들은 무료로 치료해 주셨습니다. 저도 신학생 때 선생님께서 ‘사랑니’를 뽑아 주셨습니다. 주일에는 전국 각지로 다니면서 ‘한센인’들의 치아건강을 돌보아 주셨습니다. 그렇게 도와준 한센인들이 만 오천 명 가량 된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분들의 진료기록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치과의사로 살면서도 그다지 부유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네 번째 유형의 삶을 사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 또한 네 번째 유형의 삶을 살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2.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사랑의 첫 순교자 성 스테파노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봅시다”-
“제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기오니,
진실하신 하느님 주님이시여
당신은 저를 구원해 주시리이다.”(시편31,6)
오늘은 어제의 주님 성탄에 이어 첫순교자 성 스테파노 천상탄일입니다. 저는 마구간의 말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님을 보면서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의 주님을 연상했습니다. 성탄이 값싼 은총이나 낭만이 아닌 십자가의 현실임을 오늘 새로이 깨닫습니다. 결코 값싼 은총은 없습니다.
34년 동안, 요셉 수도원에 정주한 이후 요즘처럼 계속되는 강추위는 처음입니다. 예전 어렸을 때 눈도 많고 몹시도 추웠던 50년대 겨울이 생각납니다. 강추위 중에도 아름다운 빨간 불꽃같은 사랑의 선물, ‘포인세티아’도 받았습니다. 자꾸 잊어버려 다시 확인한 이름입니다. 꽃말은 “뜨거운 마음으로 축하합니다. 축복합니다. 축복, 행복, 제 마음은 불타오르고 있어요.”란 뜻이라 합니다.
더불어 떠오르는 24년전 1998.12.25. 성 샤르트르 바오로회 김카타리나 수녀님에게 받은 빨간 칸나꽃 선물에 즉시 썼던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라는 시입니다.
“당신이
꽃을 좋아하면
당신의 꽃이
당신이
별을 좋아하면
당신의 별이
당신이
하늘을 좋아하면
당신의 하늘이
되고 싶다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1998.12.25.
아마도 오늘 축일을 지내는 사랑의 첫 순교자 성 스테파노의 주님 사랑도 이러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22년전 2000년 봄에 쓴 “성 요셉”이란 시도 생각납니다. 주차장 앞 성요셉상 배경에 빨갛게 불타오르고 있던 연산홍을 보며 쓴 시입니다.
“말없이
고요해도
가슴은
타오르는 불이다
요셉상 옆
빨갛게 불타오르는
사랑의 연산홍!”-2000.5.10.
성 요셉의 가슴에 빨갛게 불타올랐던 주님 사랑이요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사랑의 순교자 성 요셉이란 생각도 듭니다. 바로 이런 사랑의 요셉, 첫 순교자 성 스테파노를 닮은 오늘 축일을 지내는 76세 고령에 부원장직과 주방장직을 맡고 있는 ‘영원한 현역’의 주님 사랑의 전사, 스테파노 수사님입니다.
매해 친필 성탄카드를 보내 주는 이기헌 ‘사랑의 주교님’도 떠올랐고, 민주화운동의 대부이자 애국자인 영원한 청년 ‘사랑의 사제’ 83세 고령의 함세웅 신부(1942- )가 보내준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기도’ 서예집도 어제 오후 감명깊게 독파讀破했습니다. 친필 인사 글씨에서도 요셉수도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느꼈습니다.
“찬미 예수님, 성 요셉수도원 수사님들께. 함께 기도합니다. 2022.12 성탄 함세웅”
진짜에는 반드시 사랑이 앞에 붙습니다. 사랑의 성사, 사랑의 기적, 사랑의 시인, 사랑의 관상가, 사랑의 신비가, 사랑의 수행자, 사랑의 순교자등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의 첫 순교자 성 스테파노”라 정했고 부제는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님의 2022년 성탄 메시지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봅시다”를 택했습니다. 성탄 메시지중 일부 인용합니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진 아기 예수님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얼기설기 엮어진 마구간 지붕 사이로 밤하늘의 별들이 들어옵니다. 아기 예수님의 그 맑은 눈동자가 하늘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발밑만 보지 말고, 가끔은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우리네 삶이 고달프고 팍팍하여 그저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 우리에게,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멀리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눈을 들어 저 높은 하늘을 바라봅시다. 눈앞의 가치, 피상적인 가치를 넘어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가 있음을 기억합시다. 우리에게 오신 아기 예수님은 눈을 들어 더 높은 가치를 바라보라고 우리를 깨우치십니다.”
바로 이의 전형적 모범이 사랑의 첫 순교자 성 스테파노입니다. 지상에 살면서도 하늘에 계신 주님께 온통 신뢰와 희망과 사랑을 뒀기에 아무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주님 사랑의 전사로 항구할 수 있었고 마침내 주님의 전사戰士로써 사랑의 순교로 전사戰死할 수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싸우다 죽어야, 전사전사戰死해야 전사戰士라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객사나 사고사가 아닌 사랑의 전사戰死입니다.
하늘 은총 가득했기에 은총과 능력이 충만하여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고, 그 누구도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대로 주 예수님을 닮은 행적이었습니다. 복음 말씀대로 아버지의 영이 늘 함께 했기에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아무런 걱정도 안했습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대로 오늘 축일을 지내는 순교자 스테파노를, 또 정주의 살아 있는 순교적 삶을 살고 있는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을 두고 하는 말씀같습니다. 참으로 끝까지 견뎌내고 버텨낼 수 있는 인내력은 하늘에 계신 주님께 오로지 신뢰와 희망, 사랑을 둘 때 비로소 가능함을 깨닫습니다. 바로 성 스테파노의 다음 장면이 이를 입증합니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지상에 살면서도 늘 하늘에 계신 주님께 마음을, 눈길을 두고 살았던 성 스테파노였습니다. 성인의 전 삶이 그의 임종어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그대로 예수님을 닮은 영원한 감동을 선사하는 임종어입니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과연 우리의 임종어는 무슨 말마디가 될까요? 참으로 중요한 과제입니다. ‘순교는 성체와의 결합이다’라는 말이, ‘순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대적하여 이길 수 없습니다. 바로 스테파노가 순교한 순간 하느님은 비장祕藏의 무기를, 바로 바오로 사도가 될 순교의 증인 사울을 예비합니다. 다음 묘사안에 빛나는 하느님의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지혜가 빛납니다. 성문 밖에서 스테파노의 죽음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흡사합니다.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오늘의 첫 순교자 축일이 참 많은 가르침과 깨우침을 줍니다. 참으로 하늘에 계시면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신 초월超越과 내재內在의 주님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두고 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주님은 하느님, 우리를 비추시네.”(시편118,26.27). 아멘.
3. 2022년 12월 26일 월요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마태오 복음 10장은 예수님의 파견 설교를 다루고 있습니다.
5-7장이 첫 번째 담화인 ‘산상 설교’를 전하였다면, 파견 설교는 두 번째 담화에 해당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담화의 일차 청중이었던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하도록 명령하십니다.
이제 제자들은 청중의 위치에서 머무르지 않고 복음을 선포하는 주체가 되도록 요청받습니다.
오늘 복음은 열두 제자의 선발(10,1-4), 파견과 그들을 위한 가르침(10,5-15)에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파견 사명을 수행하면서 마주할 수 있는 박해와 고난을 예고하십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러한 구성으로 제자들의 선교에 종말론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또한 이러한 종말론적 경고가 제자 공동체의 변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두 가지 상황을 예고하십니다.
하나는 제자들이 외부, 곧 유다인들과 이방인 권력자들에게 박해받는 상황이고,
다른 하나는 집안의 가족들이 분열되는 상황입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예수님께서 다가올 고난 또는 분열만 예고하시는 것이 아니라 위로의 약속도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의 영, 곧 성령과 사람의 아들은 고난과 박해의 상황에 놓인 제자들을 위로할 것입니다(10,19-20.23 참조).
오늘은 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 스테파노의 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스테파노가 놓인 박해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박해하는 적대자들에 대한 스테파노의 반응(제1독서 참조)은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스테파노는 박해와 고난 속에서 예수님의 운명을 함께 나눈 순교자였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신앙의 본보기입니다.
4. 이영근 신부님 복음 묵상
21225. 주님 성탄 대축일.
(성탄대축일 낮 미사)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축하합니다. 우리 주님의 탄생을!
오늘 <입당송>에서는 대체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왜 기쁜지를 <이사야 예언서>의 9장 5절을 통해 이렇게 들려줍니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네.”(이사 9,5)
그런데, “한 아기”, “한 아들”이 태어난 일, 그것은 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제1독서>와 <화담송>에서는 그 “한 아기”가 ‘구원자’임을, <제2독서>에서는 그 “한 아들”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그 “한 아기”, “한 아들”이 그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신 말씀’임을 밝혀줍니다.
오늘은 이 “한 아기”, “한 아들”의 탄생일 입니다. 곧 예수님의 출산일 입니다. 그러니 오늘의 주인공은 당연히 ‘아기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또 한 분의 주인공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아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아기 예수님의 출산 속에 숨겨진 마리아의 신비’ 두 가지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먼저 질문해 봅니다. “마리아는 ‘출산의 진통’을 겪었을까요? 겪지 안했을까요?”
이에 대해, 구약성경은 모순적인 두 가지 예언을 전해줍니다. 곧 ‘고통 없는 메시아 출산’(이사 66,7-8)과 ‘메시아 해산의 고통’(미카 5,1-2)을 동시에 전해줍니다. 곧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의 어머니가 해산의 고통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예언합니다.
“진통을 겪기 전에 해산하고 산고가 오기 전에 사내아이를 출산한다. 누가 이런 것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누가 이런 일을 본 적이 있느냐?”(이사 66,7)
그런데, <미카 예언자>는 메시아의 어머니가 ‘해산의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이렇게 예언합니다.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 해산할 여인이 아기를 낳을 때까지 주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리라.”(미카 5,1-2)
여기서, <이사야 예언서>는 ‘메시아 탄생에 대한 예언’으로, 새로운 창조의 때가 오면 여인이 아이를 낳을 것인데, 새 창조에 속하는 ‘해산의 고통 없이’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미카 예언서>는 ‘메시아의 어머니에 관해 예언’하면서 ‘해산의 고통’을 겪으리라고 전하는데, 이는 구원의 시기가 도래하기 전에 겪어야 하는 ‘고통의 시간’을 가리키는 ‘메시아 해산의 진통’에 대한 예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전자는 ‘예수님 탄생의 신비’를, 후자는 ‘예수님 죽음의 신비’를 가리킵니다.
결국, 마리아는 베들레헴에서 ‘출산의 고통’을 겪지 않았으며, 대신 갈바리아에서 그 고통을 겪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적적인 ‘출생’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실, 구약성경의 눈으로 보면, ‘해산의 진통’은 원죄의 결과입니다(창세 3,16). 그러니, ‘원죄 없으신 마리아’께서 ‘해산의 진통이 없는 출산’을 하시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동정 잉태하신 마리아’께서 그리스도를 ‘동정인 채 출산’하시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 것입니다. 곧 출산하셨지만 여전히 동정이신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신비입니다.
이에 대해, 2세기의 리옹의 이레네우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의 출생과 관련하여, 같은 예언자(이사야)는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진통이 오기 전에, 산고가 오기 전에, 그녀가 사내아이를 낳았다.’(이사 66,7).
이렇게 예언자는 동정녀로부터 예상치 못한 기적적인 출생을 예고했다.”([사도적 가르침의 논증] 54)
또 8세기의 다마스커스의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 잉태되신 분께서 잉태한 분을 동정으로 머물도록 지켜주셨듯이, 태어나신 분께서 단지 지나가셨을 뿐 닫아두어 그녀의 동정이 손상되지 않게 하셨다.”([정통신앙] 4.14)
그러니, 예수님의 ‘잉태’와 ‘출산’은 둘 다 기적이었습니다. 곧 ‘원죄 없으신 잉태’와 ‘동정 잉태’와 ‘진통 없는 출산’과 ‘동정을 잃지 않는 출산’이라는 기적입니다. 이는 단지 기적일 뿐만 아니라, 예언의 성취이며, 둘 다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 그 자체가 ‘새로운 창조’의 시작입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오로가 말했듯이 예수님은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로마 8,29)가 되십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맏이’라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일 뿐 아니라 예수님의 동생인 우리들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하니, 이 얼마나 복된 날인지요!!
오, 멋진 형인 나의 아기 예수님!
오늘 인간이 되어 오셨으니, 당신 사랑으로 온 세상을 가득 채우소서!
이 세상에 평화와 구원을 이루어 기쁨이 차오르게 하시고 당신 영광의 광채를 뒤덮으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주님!
오늘 제가 빛을 입었으니 일어나 빛을 비추게 하소서.
자비를 입었으니 자비를 베풀게 하소서.
생명을 얻었으니 생명을 꽃피게 하소서.
당신께서 내려오시니 저도 따라 내려가게 하소서.
당신께서 비우시니 저도 비우게 하소서.
당신께서 가난해지셨으니, 저도 가난해지게 하소서.
참 생명을 받았으니 새 인간이 되게 하소서. 아멘.
[12/26(월)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조재형 신부)
2. 성 스테파노의 다음 장면이 이를 입증합니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지상에 살면서도 늘 하늘에 계신 주님께 마음을, 눈길을 두고 살았던 성 스테파노였습니다. 성인의 전 삶이 그의 임종어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그대로 예수님을 닮은 영원한 감동을 선사하는 임종어입니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이수철 신부)
3. 박해하는 적대자들에 대한 스테파노의 반응(제1독서 참조)은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스테파노는 박해와 고난 속에서 예수님의 운명을 함께 나눈 순교자였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신앙의 본보기입니다.(정진만 신부)
4.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주님!
오늘 제가 빛을 입었으니 일어나 빛을 비추게 하소서.
자비를 입었으니 자비를 베풀게 하소서.
생명을 얻었으니 생명을 꽃피게 하소서.
당신께서 내려오시니 저도 따라 내려가게 하소서.
당신께서 비우시니 저도 비우게 하소서.
당신께서 가난해지셨으니, 저도 가난해지게 하소서.
참 생명을 받았으니 새 인간이 되게 하소서. 아멘. (이영근 신부)
[12/26(월),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제2일차 기도]
하느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참 생명을 받았으니 새 인간이 되게 하소서. 아멘.
- 2022년 12월26일(월) 6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