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8월 12일 월요일[(녹) 연중 제19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4. 8. 12. 04:48

[매묵]2024년 8월 12일 월요일[(녹) 연중 제19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백]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 수도자

입당송

시편 74(73),20.19.22.23 참조
주님, 당신의 계약을 돌아보소서! 가련한 이들의 생명을 저버리지 마소서. 일어나소서, 주님, 당신의 소송을 친히 이끄소서. 당신을 찾는 이들이 외치는 소리를 잊지 마소서.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르오니
저희 마음에 자녀다운 효성을 심어 주시어
약속하신 유산을 이어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그것은 주님 영광의 형상처럼 보였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1,2-5.24-28ㄷ
제삼십년 넷째 달 2 초닷샛날, 곧 여호야킨 임금의 유배 제오년에,
3 주님의 말씀이 칼데아인들의 땅 크바르 강 가에 있는,
부즈의 아들 에제키엘 사제에게 내리고,
주님의 손이 그곳에서 그에게 내리셨다.
4 그때 내가 바라보니, 북쪽에서 폭풍이 불어오면서,
광채로 둘러싸인 큰 구름과 번쩍거리는 불이 밀려드는데,
그 광채 한가운데에는 불 속에서 빛나는 금붙이 같은 것이 보였다.
5 또 그 한가운데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습은 이러하였다.
그들은 사람의 형상과 같았다.
24 그들이 나아갈 때에는 날갯소리가 들리는데,
마치 큰 물이 밀려오는 소리 같고
전능하신 분의 천둥소리 같았으며,
군중의 고함 소리, 진영의 고함 소리 같았다.
그러다가 멈출 때에는 날개를 접었다.
25 그들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서도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가 멈출 때에는 날개를 접었다.
26 그들의 머리 위 궁창 위에는 청옥처럼 보이는 어좌 형상이 있고,
그 어좌 형상 위에는 사람처럼 보이는 형상이 앉아 있었다.
27 내가 또 바라보니,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의 위쪽은
빛나는 금붙이와 같고, 사방이 불로 둘러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의 아래쪽은 불처럼 보였는데,
사방이 광채로 둘러싸여 있었다.
28 사방으로 뻗은 광채의 모습은,
비 오는 날 구름에 나타나는 무지개처럼 보였다.
그것은 주님 영광의 형상처럼 보였다.
그것을 보고 나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48,1ㄴㄷ-2.11-13ㄱㄴ.13ㄷ-14ㄱㄴㄷ
◎ 주님의 영광 하늘과 땅에 가득하네.
○ 하늘 위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높은 데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천사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군대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
○ 세상 임금들과 모든 민족들, 고관들과 세상의 모든 판관들아, 총각들과 처녀들도, 노인들과 아이들도, 주님 이름을 찬양하여라. 그 이름 홀로 높으시다. ◎
○ 주님의 위엄 하늘과 땅에 가득하시다. 그분이 당신 백성 위하여 뿔을 높이셨네.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 그분께 가까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은 찬양하여라. ◎

복음 환호송

2테살 2,14 참조
◎ 알렐루야.
○ 하느님이 복음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차지하게 하셨네.
◎ 알렐루야.

복음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22-27
제자들이 22 갈릴래아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24 그들이 카파르나움으로 갔을 때,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25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는 집에 들어갔더니
예수님께서 먼저,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하고 물으셨다.
26 베드로가 “남들에게서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자비로 이 예물을 바치오니
주님의 교회가 드리는 이 예물을 받아들이시어
저희에게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47(146─147),12.14 참조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은 기름진 밀로 너를 배불리신다.
<또는>
요한 6,51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받아 모신 이 성체로 저희를 구원하시고
진리의 빛으로 저희를 굳세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우리가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믿고 따라서 구원받기 위해서입니다. 루가복음 19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자캐오는 구원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구원받았음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캐오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자캐오는 행위로써 구원받았습니다. 구원은 믿음과 그 믿음을 드러내는 행위로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죽음 이후 심판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이 땅에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늘어나고, 신자가 늘어나지만,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대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없는 구원을 바라는 건 아닐까요? 우리는 재물과 명예 그리고 권력을 구원의 선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우리는 세상에서 성공하고, 건강하게 지내고, 원하는 게 채워지는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믿음으로 하느님께서 변하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요?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구원은 명예, 재물, 권력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채우면 채울수록 더 갈증이 나기 마련입니다. 그것들을 채우기 위해서는 양심을 버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것들을 채우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뜻을 버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던 아합왕이 그랬습니다. 충실한 부하 우리아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다윗이 그랬습니다. 동생 아벨을 죽였던 카인이 그랬습니다. 선악과를 먹고 낙원에서 쫓겨났던 아담이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보다, 나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게 쉽다.”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은 세상의 방법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제자들은 몹시 슬퍼하였습니다. 왜일까요? 제자들은 죽음을 통한 구원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표징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명예와 재물 그리고 권력을 줄 거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했던 제자들은 변하였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죽어 많은 열매를 맺는 밀알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와 죽음이 없는 구원은 허상입니다. 믿음을 사랑으로 드러내지 않는 구원은 풀잎 끝에 맺힌 이슬과 같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께 우리도 십자가와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를 청하며 예전에 읽었던 글을 나누고 싶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을 사랑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었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기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놓아/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행복한 한 주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복음: 마태 17,22-27

 

성전 세를 받으셔야 할 주님께서 성전 세를 바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 세와 관련해서 베드로 사도에게 아주 특별하고 기이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오늘 보여주시는 기적은 대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독특한 이적 사화는 아마도 후대에 가필(加筆)된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제정해놓은 편협하고 제한된 제도나 관습으로부터 철저하게

자유로운 분이심을 강조하는 기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다 지도층 인사들은 목숨을 걸고 성전 세를 징수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성전 세가

어떤 사람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의 구린 관례나 시궁창 냄새 나는 악습을 완전 개무시하는 한 표현이 지니고 있는 돈주머니에서

성전 제를 내지 말고 물고기 속의 돈으로 성전 세를 바치라는 말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는 세금 징수에 목숨거는 유다인들에게 큰 엿을 하나 먹이신 것입니다.

 

카파르나움 세금 징수원은 예수님께 성전세를 요구했는데, 사실 이것처럼 천부당만부당한 일이

다시 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은 이스라엘의 주님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외아드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리도 애지중지하는 성전의 주인이십니다.

 

그렇다면 백성들이 바치는 성전세를 수령하실 분은 사제나 랍비들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성전세 징수원은 기가 막히게도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성전세를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했겠는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서글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셨던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명하신 것이 갈릴래아 호수에 가서

낚시를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세를 바치셔야 할 분이 아니라 성전세를 받으셔야 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굳이 까칠한 유다인들의 비유를 건드릴 필요가 없으니

베드로 사도에게 꽤 웃기는 방법으로 돈을 마련해 성전세를 바치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다시 한번 예수님의 지극한 겸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왕 중에도 한참 아래쪽의 왕인 세상의 왕에게 겸손하게 세금을 바칩니다.

큰 나라 전체를 다스리는 황제가 한 고을을 다스리는 영주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부여해주신 권한을 단 한 번도 남용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겸손하게 하느님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바로 그것만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라가십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오늘 복음의 전반부는 예수님의 두 번째 수난 예고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인간들이 예수님을 죽일 것이지만, 결국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일으키실 것이라는 사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곧 하느님의 계획, 하느님의 승리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선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미리 알려주심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이 그저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계획하신 섭리임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당신께서 하느님의 그 계획에 기꺼이 동의하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제자들에게 수난에 대한 준비와 부활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시는 제자 교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는 예수님께서 ‘성전 세’를 내시는 장면입니다.

‘성전 세’는 모세가 “누구나 자기 영혼의 속죄를 위하여 주님께 반 세겔을 내야 한다.”(탈출 30,13)고 말한 대로, 영혼과 육신의 속죄를 위해 내는 세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금은 자신이 다스림을 받는 왕에게 내는 것임을 일깨워주면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니 ‘성전 세’를 면제받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곧 ‘어떻게 아들이 자기 아버지의 집을 위한 세금을 낼 수 있겠느냐?’는 반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먼저 당신께서 성전의 주인이심을, 그리고 당신의 자녀들도 ‘성전 세’로부터 자유로움을 밝히십니다.

그렇게 하시면서도 ‘성전 세’를 내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를 밝히십니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입니다.

자신이 옳긴 하지만 무모한 분쟁을 가질 필요가 없기에, 지혜로운 방법으로 세금을 내기로 하십니다.

곧 세금 낼 돈을 호수로 가서 낚시를 해서, 먼저 잡힌 물고기의 입을 벌려 거기에 들어있는 은전으로 세금을 내라고 하십니다.

 

이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당신의 놀라운 권능을 드러내십니다.

당신께서는 땅에서도 동전을 취하실 수도 있었지만, 호수에서 그 기적을 이루십니다.

‘물고기’는 교회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한 마리의 ‘물고기’입니다. 

 

당신 생명의 호수를 헤엄쳐 다니는 한 마리의 물고기입니다. 

당신 사랑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물고기입니다. 

당신 그물에 걸려든 한 마리의 물고기입니다. 

 

그리고 제 입에는 당신 형상이 새겨진 고귀한 동전이 물려 있습니다. 

당신 말씀이 물려 있습니다.

 

제가 당신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 생명의 말씀이 저를 먹여 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제 영혼을 당신께 바칩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마태 17,27)

 

주님!

저는 당신 생명의 호수를 헤엄쳐 다니는 한 마리의 물고기이오니,

당신 형상이 새겨진 고귀한 동전을 입에 물고,

당신 파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8.11.연중 제19주일                                               

                                                                                         1열왕19,4-8 에페4,30-5,2 요한6,41-51

 

                                  아버지의 집을 향한 ‘귀가(歸家)의 여정’

                        “참 좋은 삶, 영원한 도반 주님, 이정표이자 쉼터인 미사”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시편34;2,6)

 

오늘 역시 자유로운 이런저런 묵상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어제 교황청 홈페이에서 이색적인 인터뷰 기사를 읽었습니다.

‘교황님 스위스 경비병에서 사제가 된(From Swiss Guard to priest)’ 34세 ‘그란디에안(Grandjean)’의

‘겸손한 섬김(Servive with humility)’에 대한 내용의 기사였습니다. 

 

멋진 근위병 제목에서 로만 칼라를 한 제복의 대조가 참 신기했습니다.

그의 인터뷰 기사는 더욱 영적 길로 매진하기 위해 교황과 교회를 섬기기 위해 전환한 영적 전투중에

훈련된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역시 사람마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삶의 여정은 참 다양함을 느낍니다.

직업은 바뀌었지만 ‘겸손한 섬김’이라는 믿는 이들 직업의 본질은 그대로임을 깨닫습니다.

 

또 하나의 놀라운 소식은 제 어릴적 추억이 가득 담긴 시골 고향집이 '구암리 카페'로 바뀌었다는

소식과 더불어 고향을 방문한 자매가 동영상을 보내줬습니다.

허전하고 쓸쓸하면서도 상전벽해로 변한 환경이 많은 묵상을 하게 했습니다.

곧 시간을 내어 고향집 카페를 방문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충남 예산 봉산에 소재한 '구암리카페' 검색하면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바로 제 고향집 자리입니다.

 

제가 태어나 서울교대에 입학하기전, 고등학교 시절까지 무려 20년 동안 저를 키워낸 보금자리 고향집이

구암리 카페가 된 것입니다.

제 고향집 구암리 카페 사방 30분 거리에는 해미성지, 솔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생가의 성지, 신리 성지,

의사 윤봉길 생가, 추사 김정희 생가, 그리고 불교 조계종 4대 총림중의 하나인, 유명한 덕숭산을 배경한 

경허와 만공 대선사를 배출한 수덕사 절이 있습니다.

 

고향집이 카페로 변한 상황이 가톨릭교회를 몰랐던 시골 출신인 제가 수도사제로 변한

혁명적 상황과 흡사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변화된 환경에 일희일비함이 없이 아버지의 집을 향한 귀가 여정에 더욱 충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오늘 옛 어른의 말씀 역시 ‘귀가의 여정’중에 있는 우리들에게 귀한 깨우침이 됩니다. 

 

“인간의 격(格)은 축적이 아닌 드러난 태도로 증명된다.”<다산>

“미인을 좋아하듯 현인을 존경하고, 힘을 다해 부모를, 신명을 다해 임금(주님)을 섬기며,

벗을 사귈 때 말에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를 배운 사람이라고 인정할 것이다.”<논어>

 

‘임금’은 ‘주님’으로 바꿔 읽어도 잘 어울립니다.

참으로 사람답게, 하느님의 자녀답게 존엄한 품위를 지닌 격조있는 삶이 얼마나 본질적인지 깨닫습니다.

인생 광야 ‘귀가의 여정’, 괴물(怪物)이나 폐인(廢人)으로 변질됨이 없이 성인(聖人)답게 살도록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함을 배웁니다.

 

바로 그 참 좋은 삶의 모습을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잘 보여줍니다.

아름다운 전문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광야 인생 귀가의 여정중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적절한 가르침입니다.

 

“형제 여러분,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사랑 안에서 하느님을 본받아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삶, 얼마나 품격있는 삶인지요!

말그대로 영적 명품(名品) 인생입니다.

우리의 귀가 여정중 평생과제입니다.

바로 우리의 노력과 더불어 평생 스승이자 주님이요 인도자이자 도반이신, 주님 은총의 도움으로 가능합니다. 

 

오늘 제1독서 열왕기 상권은 그대로 아버지의 집을 향한 귀가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카르멜 산에서 바알 예언자들과의 싸움에서 주님의 힘으로 대승을 거둔 엘리야가 아합의 아내,

희대의 악녀 이제벨의 보복을 피해 도주하는 장면입니다.

 

“내가 내일 이맘때까지 그대의 목숨과 그들의 목숨을 한가지로 만들지 못한다면,

신들이 네게 벌을 내리고 또 내릴 것이오.”

 

보복의 결의를 다짐하는 이제벨입니다.

바로 엘리야가 이제벨의 마수를 벗어나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기까지가 상징하는 바 광야여정입니다.

엘리야가 주님을 만나는 극적인 장면이 참 반갑고 놀랍습니다.

주님은 당신 수호천사를 통해 일하십니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제 조상들보다 더 나을 것이 없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절망중에 죽여달라 기도하다 싸리나무 아래에 누워 잠이 든 엘리야를 흔들어 깨우는

천사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수호천사를 통해 엘리야와 늘 동행한 평생 도반임을 깨닫습니다.

엘리야가 혼자가 아니었듯이 여러분도 혼자가 아닙니다.

수호천사를 통해 늘 동행하시는 평생 도반 주님을 잊어선 안됩니다.

 

“일어나 먹어라.”

 

엘리야가 깨어보니, 뜨겁게 달군 돌에다 구운 빵과 물 한 병이 머리맡에 놓여 있었고,

그는 먹고 마신 뒤에 다시 누워 잠이 듭니다.

바로 광야여정중의 이정표와 쉼터를 상징하는 싸리나무밑 미사잔치입니다.

그대로 광야여정중 쉼터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을 모시는, 성체성사 미사 은총을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성체와 같은 구운 빵에, 성혈과 같은 물 한병에 다시 원기를 회복해 다시 일어 난 엘리야입니다.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오늘 미사를 봉헌하거나 이 강론을 읽는 모든 분들을 향한 복음 말씀입니다.

20년전 수녀원 피정지도시 식당 벽에 붙어 있던 이 말씀에 얼마나 신선한 충격에 위로를 받았던지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좌절하거나 의기소침해 있을 때 식사 시 반드시 이 말씀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여정은, 평생 영적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에 영원한 현역임을 한시도 잊어선 안됩니다.

영적 전의를 부단히 새롭게 해야 합니다.

 

아무리 영적 무기 좋아도 영적전의와 열정을 상실하면 영적전쟁은 끝입니다.

심기일전, 초발심의 자세로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꼭꼭 씹어 먹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로 엘리야가 그 좋은 모범입니다.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 음식으로 힘을 얻은 그는 밤낮으로  사십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

 

그대로 광야여정중의 성체성사를 상징하는, 한폭의 살아 있는 그림처럼 참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주님이 주신 음식으로 힘을 얻어 목적지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른 엘리야처럼, 하루하루 인생 광야에서

성체성사의 은총으로 살아가는, 귀가 여정중인 우리들입니다.

 

인생 광야에서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 여정중 성체성사 미사가 없다면 이 험난하고 거친 광야 여정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런지요!

이런 영적감각을 잃게 하는 ‘영적 세속성(spiritual worldliness)’의 위험을 참 많이도 강조하는 교황입니다.

아주 예전 은퇴후 양노원에 지도신부로 계시고 지금도 계신 87세 고령의 아빠스님 말씀도 생생합니다.

 

“나 휴가 못간다. 낙(樂)이라곤 미사 하나뿐인데 이 노인들 놔두고 어떻게 휴가갈 수 있나?”

 

바로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성체성사, 생명의 빵에 대한 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예수님 고향 사람들은 무지에 눈멀어 생명의 빵,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 보지 못했지만,

하느님께 은총으로 불림 받은 우리는 생명의 빵이 얼마나 소중한지 압니다.

온힘을 다해 사랑하고 모시는 생명의 빵, 예수님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빵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죽었다.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I AM the bread of life), 참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나다(I AM)’는 모세에게 계시된 하느님 이름입니다.

바로 생명의 빵이신 하느님을, 예수님을 모시고, 하느님의 힘으로 영원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새삼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 이 거룩한 성체성사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의 결정체가 바로 생명의 빵, 예수님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아버지의 집을 향한 귀가 여정에

한결같이 충실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시편34;9). 아멘.


8/12(월) [(녹)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되새김 구절

 

1.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보다, 나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게 쉽다.”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은 세상의 방법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했던 제자들은 변하였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죽어 많은 열매를 맺는 밀알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와 죽음이 없는 구원은 허상입니다. 믿음을 사랑으로 드러내지 않는 구원은 풀잎 끝에 맺힌 이슬과 같습니다. 

(조재형 신부)

 

2. 예수님께서는 성전 세와 관련해서 베드로 사도에게 아주 특별하고 기이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오늘 보여주시는 기적은 대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독특한 이적 사화는 아마도 후대에 가필(加筆)된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제정해놓은 편협하고 제한된 제도나 관습으로부터 철저하게

자유로운 분이심을 강조하는 기적이 아닐까 싶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마태 17,27)

 

주님!

저는 당신 생명의 호수를 헤엄쳐 다니는 한 마리의 물고기이오니,

당신 형상이 새겨진 고귀한 동전을 입에 물고,

당신 파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극한 상황에서 절망중에 죽여달라 기도하다 싸리나무 아래에 누워 잠이 든 엘리야를 흔들어 깨우는

천사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수호천사를 통해 엘리야와 늘 동행한 평생 도반임을 깨닫습니다.

엘리야가 혼자가 아니었듯이 여러분도 혼자가 아닙니다.

수호천사를 통해 늘 동행하시는 평생 도반 주님을 잊어선 안됩니다.(이수철 신부)

 

8/12(월) [(녹)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제52일차 기도

 

복음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오늘의 말·샘 기도>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마태 17,27)

 

주님!

저는 당신 생명의 호수를 헤엄쳐 다니는 한 마리의 물고기이오니,

당신 형상이 새겨진 고귀한 동전을 입에 물고,

당신 파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8월12일(월) 4시4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