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5년 6월 12일 목요일[(녹) 연중 제10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6월 12일 목요일[(녹) 연중 제10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나의 적 나의 원수, 그들은 비틀거리리라.
본기도
하느님은 모든 선의 근원이시니
성령께서 이끄시어 저희가 바르게 생각하고
옳은 일을 실천하도록 도와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3,15─4,1.3-6
형제 여러분, 오늘날까지도 모세의 율법을 읽을 때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15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습니다.
16 그러나 주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그 너울은 치워집니다.
17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18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4,1 이렇게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입어 이 직분을 맡고 있으므로
낙심하지 않습니다.
3 우리의 복음이 가려져 있다 하여도
멸망할 자들에게만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4 그들의 경우, 이 세상의 신이 불신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느님의 모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5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위한 여러분의 종으로 선포합니다.
6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 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영광 우리 땅에 머물리라.
○ 하느님 말씀을 나는 듣고자 하노라. 당신 백성,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주님은 진정 평화를 말씀하신다.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구원이 가까우니, 영광은 우리 땅에 머물리라. ◎
○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 ◎
○ 주님이 복을 베푸시어, 우리 땅이 열매를 내리라. 정의가 그분 앞을 걸어가고, 그분은 그 길로 나아가시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20ㄴ-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이 제사를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바치는 예물을 기꺼이 받으시고
저희가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 저의 하느님, 이 몸 숨는 저의 바위시옵니다.
<또는>
1요한 4,16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신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저희 병을 고쳐 주시는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저희를 온갖 죄악에서 자비로이 지켜 주시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북미주 사제 회의를 잘 마쳤습니다. 사제들의 모임은 ‘보고’와 ‘계획’, 그리고 ‘선출’로 구성되었습니다. 누군가는 말했습니다. “자동차가 아무리 좋아도 기름이 없으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북미주 한인 공동체를 위한 사제 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사람과 돈, 그리고 방향성이 함께해야 합니다. 회의에서 저는 ‘너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의 율법을 읽을 때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그 너울은 치워집니다.” 여기서 말하는 ‘너울’은 단지 베일이 아니라, 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두려움과 고정관념을 뜻합니다. 우리 각자도 인생에서 다양한 ‘너울’을 쓰고 살아갑니다. 그 너울은 때로는 이민자로서의 불안함, 사목자로서의 책임감, 또는 내면의 자격지심일 수도 있습니다.
루쉰은 “가장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기 위해선 먼저 눈을 감아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말합니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순간은, 하느님께 나 자신을 열 때입니다. 주님의 영이 나를 비출 때, 나는 나 자신이 걸고 있던 너울을 벗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의로움은 주님의 영한테서 나오는 자유에서 시작됩니다. 율법을 넘는 사랑, 규범을 넘는 자비, 겉모습을 넘어선 진실한 관계가 그 열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인은 무엇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신앙인은 외모, 능력, 재산, 명예, 권력으로 평가를 받지는 않습니다. 신앙인은 남을 비난하고, 욕하고, 원망하고,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인은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희생했는지, 얼마나 봉사했는지, 얼마나 겸손했는지를 가지고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율법과 규율이 우리를 해방하는 것이 아닙니다. 편리한 문명의 이기들이 우리를 편안하게는 하지만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해방해 주고, 자유롭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마음을, 하느님의 뜻을 내 안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150여 개가 넘은 북미주 한인 공동체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온 사제와 1.5세 현지 교구 사제들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사제 회의를 통해 저는 1세대 사제와 1.5세, 2세 사제들이 함께 손잡고 너울을 벗고자 하는 노력을 보았습니다. 교회가 단지 과거의 전통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세대와의 소통으로 나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음의 너울을 벗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주님의 빛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것입니다. 사람을 가르는 경계가 아니라, 함께 손을 맞잡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곳에 주님의 영이 계시며, 거기에는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 5,20-26
오늘 우리는 지금 어디에 미쳐 있습니까?
교회 역사 안에서 물건이나 외모, 옷차림에 신경 쓰지 않기로 가장 유명한 분이 아르스의 비안네 신부님입니다.
그분의 사제관은 아무것도 없이 너무 황량해서 마치 유령의 집과도 같았답니다.
신부님은 단 한 벌 밖에 없는 수단을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습니다.
워낙 전반적으로 너덜거렸기에 수선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구두는 한 번도 약칠을 하거나 솔을 댄 적이 없이 그냥 되는 대로 신었습니다.
보기 흉한 모자, 시골스런 외모...누가 보아도 노숙인으로 밖에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비안네 신부님을 두고 동료 사제들이 화가 나서 이렇게 수군거렸습니다.
“도대체 비안네 신부는 우리 사제단 모두를 욕 먹일 작정인가? 검소한 것도 정도가 있지.
남부끄러워 같이 있을 수가 없구먼!”
이런 면에서 돈보스코도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남겨진 돈보스코의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살펴보면 외모에 신경을 쓴 흔적이 조금도 없습니다.
헤어스타일도 자연 그대로입니다. 얼굴은 상습 과로로 항상 퀭했습니다.
인화된 돈보스코의 사진들 가운데 어떤 사진들은 너무 없어보인 나머지 비서단에서 공개하지 않기고 결정했습니다.
이분들이 왜 그렇게 사셨을까 묵상해봅니다.
이분들은 하루 많은 시간을 고해소 안에서 보냈습니다.
사제로서 고해소에만 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남은 시간을 쪼개 미사도 봉헌해야 했습니다.
강론준비도 해야 했습니다.
잠도 자야했습니다.
이분들은 외모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쓰지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목에 전념하느라, 영혼 구원에 전념하느라, 자신의 외모에 신경 쓸 시간이 도무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보다 상위에 가치를 선택하고 집중하느라 다른 부차적인 가치들을 뒤로 미룬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예수님의 말씀도 일맥상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 여행을 떠나는 제자들에게 선택과 집중을 하라고 권고하십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그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 10, 9-10)
이것 저것 물건들에 신경쓰지 말고 보다 본질적이고 우선적인 가치, 곧 복음 선포에 우선권을 두고 집중하고
헌신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돈보스코 생애 내내 부르짖었던 삶의 모토가 있습니다. 라틴어로 이렇습니다.
“Da mihi animas, cetera tolle”
우리 말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나에게 영혼을 주십시오. 나머지는 다 가져가십시오.”
돈보스코가 영혼 구원에 얼마나 우선권을 두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돈보스코의 애제자로 스승과 같이 성인 반열에 오른 도미니코 사비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영혼 구원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모릅니다.
초창기 돈보스코 오라토리오 안에 살았던 청소년들 사이에 전해오던 전통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버지 돈보스코의 영명 축일 날 청소년들이 작은 쪽지에다가 자신이 원하는 선물 내역을 적어내면
그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전통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가 쪽지에 적은 내용은 이랬습니다.
“제 영혼을 구해주십시오. 그리고 저를 성인(聖人)이 되게 해주십시오.”
성인들의 영성생활 안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선택과 집중, 그리고 본질에 대한 충실성입니다.
그들은 사목자로서 비본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가지치기를 단행했습니다.
그리고는 오직 영적인 것, 하느님, 신자들의 영성 생활에만 초점을 맞추었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습니다.
오늘 과연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있습니까?
어디에 우리 삶의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지금 어디에 미쳐 있습니까?
오늘 우리 내면에도 복음 선포와 이웃의 영혼 구원을 위한 간한 열정, 그런 헌신이 다시금 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출처 - 살레시오회 내리피정 센터이야기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 5,20-26
<예물을 바치는 사람의 '의로움'>
오늘 복음은 ‘산상 설교’에서 예수님께서는 옛 율법을 완성하는 ‘새로운 의로움’을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태 5,20)
‘의로움’, 곧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이룸은 산상 설교의 핵심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 설교의 중심인 6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마태 6,33)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능가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곧 그들의 의로움에 한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도 말합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합니다.”
(갈라 3,11)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로마 3,20)
그렇다면 대체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의로움은 무엇일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여섯 가지 대당 명제를 통해 제시하시는데, 오늘 복음은 그 ‘첫 번째 의로움’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는 옛 율법의 ‘살인’을 구체적 ‘행동의 결과로 드러난 살인’만이 아니라, ‘원리상 살인’으로 적용할 수 있는 내면적이고 근본적인 동기까지도 포함시키십니다.
곧 자기 형제에게 ‘성’내고, ‘바보’ ‘멍청이’라고 부르는 것까지도 ‘살인하지 말라’는 내용에 포함시키십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모두 살인자입니다.”
(1요한 3,15)
물론 모든 ‘성’(화)냄이 살인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랑의 ‘화’냄도 있고, 교정을 위한 ‘성’냄도 있고, 단순한 습관이나 짜증의 ‘성’냄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의도되지 않더라도 '혀'로 인하여 죽는 이들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해야 할 일입니다.
<집회서>에서는 말합니다.
“많은 이들이 칼날에 쓰러졌지만, 혀 때문에 쓰러진 이들보다는 적다.”
(집회 28,18)
예수님께서는 단지 ‘살인하지 말라’고만 하지 않으시고, 이 율법의 근본 정신이 '화해와 사랑'에 있음을 밝히십니다.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마태 5,23-24)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제단의 예물이 아니라 예물을 바치는 사람의 '의로움'입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 예물이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가 당신 앞에 나서기에 합당한 자 되기를 바라십니다.
동시에 형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임을 깨우쳐줍니다.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마태 5,23)이라는 말은 자신만이 아니라 형제를 위하여 화해와 사랑이 필요함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카인에게 ‘너의 예물이 무엇이냐?’ 묻지 않으시고,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창세 4,9) 하고 물으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이 성찬례를 거행하기 전에, 혹 불목한 형제가 있는지 살펴보고 ‘얼른’ 화해하고 용서해야 할 일입니다.
하오니, 주님!
얼른 화해하게 하소서!
제 자신이 당신께 드리는 참된 예물이 되게 하소서!
시시비비를 따짐이 아니라 화해를 이룸이 의로움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마태 5,24)
주님!
먼저 화해하게 하소서.
지체치 말고 기회가 있을 때 먼저 화해하게 하소서!
원망을 품은 이의 아픈 마음을 보게 하시고, 제 불찰을 먼저 살피게 하소서.
시비를 따지기보다, 이기려 하기보다, 화해한 제 자신이 당신께 드리는 참된 예물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6.11.수요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사도11,21ㄴ-26;13,1-3 마태10,7-13
하늘 나라의 꿈을 삽시다
“꿈의 현실화”
"의인에게는 빛이 솟아오르고,
마음 바른 이에게는 기쁨이 솟나이다."(시편97,11)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중의 하나로 꼽히는 명연설중 하나는 1963년 8월28일 미국의 수도 워싱텅 DC
링컨 기념관 발코니에서, 20만-30만 청중을 대상으로 한 마틴 루터킹 목사가 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연설일 것입니다.
감동적인 대목 셋만 인용합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옛 노예의 후손들과 옛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불의의 열기에,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는 저 미시시피주 마저도,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로
변할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꿈이, 희망이 있어 나이에 관계 없이 영원한 청춘입니다.
젊음은 나이에 있는게 아니라 그가 지닌 하늘 나라의 꿈에 있습니다.
꿈이 있어야 타락하지도, 변질되지도, 유혹에 빠지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내적으로 날로 새로워지고 깨끗해지고 거룩해집니다.
꿈중의 꿈, 진짜 꿈이 하늘 나라의 꿈입니다.
마틴 루터킹 목사 역시 믿음의 선배들을 닮아 하늘 나라의 꿈을 실현시키려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저 역시 오래 전 하늘 나라를 꿈꾸며 써놓은 “꿈 있어야 산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밖에서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른다
잎들 다진 겨울나무가 그렇다
그러나 보라!
살아 있지 않은가
봄되니 피어나는 꽃들, 짙어져 가는 신록들
아! 꿈 있어야 산다
꿈있어 겨울 추위 견뎠다
꿈 없으면 죽는다
꿈은 생명이요 사랑이다
가슴에 담았던 하늘 나라의 꿈
활짝 피어내니
파스카의 꽃들이요 신록의 기쁨이다
아름다운 생명이다”<2001.5.6.>
지금도 이런 하늘 나라를 꿈꾸고 실현하며 살기에 마음은 늘 청춘입니다.
어제는 천장암(天藏庵)이자 지족암(知足庵)이라 자칭하는 집무실 출입구에 방충망을 새로 했습니다.
달인의 경지에 이른 일꾼들의 솜씨에 감동, 감사했습니다.
이제부터 출입구만 열면 불암산 능선이 한 눈이 들어오니 저절로 하늘 나라를 꿈꾸며 좋아하는 시를 외우게 됩니다.
“산앞에 서면
당신앞에 서듯
행복하다
꽃같은 하루 꽃같이 살자”
작년부터 무척이나 좋아했던 자자 애송시입니다. 이어 자주 외는 행복기도 한 대목입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꽃자리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 평범한 일상에서 하늘 나라 꿈을 살아야 합니다.
‘비범한 진리는 찰나의 깨달음이 아닌 평범한 일상에서 축적됩니다.’<다산>.
하늘 나라 꿈의 현실화가 바로 믿는 이들에게 주어진 평생과제입니다.
하늘 나라 꿈의 원조가 예수님이요 그의 제자들인 우리들 역시 하늘 나라의 꿈을 전수받고 있습니다.
바로 이의 빛나는 모범이 열두 사도에 이어 바오로 사도와 명콤비를 이루었던 바르나바 사도입니다.
회심후 바오로를 선교사로 이끄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바오로에게 은인과도 같은 사도입니다.
하늘 나라의 꿈에 사로 잡혀 하늘 나라를 살았던 바르나바의 아름답고 향기로운 사심없는 인품이
다음 대목에서 잘 드러납니다.
‘안티오키아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위에 모여들었다.”
그대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하늘 나라의 사도 바르나바요,
이름뜻 그대로 ‘위로의 아들 또는 격려의 아들’답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을까요?
바로 오늘 복음이 답을 줍니다.
하늘 나라 꿈의 원조인 예수님 자체가 바로 하늘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사도들을 향한 장엄한 명령은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환자들을 깨끗하게 해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어라.”
역설적으로 문명의 야만시대요 여전히 반복되는 인간의 불행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활짝 열린 빈 통로가 되어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면서’ 하늘 나라이신 예수님을 그대로 전하여
만나게 할 때 놀라운 치유의 기적입니다.
죄도 많고 병도 많은 세상입니다.
살아 있으나 실상 죽어 있는 사람들이요 온갖 질병에 다양한 마귀들린 사람들입니다.
바로 하늘 나라이신 주님을 만날 때 온전한 삶의 치유이자 회복이니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이어 주님은 무소유의 믿음을 통해 자유로운 주님의 통로가 될 것을 명령하십니다.
“전대에 금이나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소유냐 존재의 갈림길에서, 전적으로 하느님께 의탁하고 소유의 쾌락과 부자유가 아닌 존재의 기쁨과
자유를 선택해 살라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의식주로 감사하고 만족하면서 착한 신자들의 환대에 기뻐하면서 온전히 주님의 도구와 통로가 되어
이웃에게 주님의 평화를 선사하며 하늘 나라를 살라는 것입니다.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리라.”
에수님을 닮아 그 삶자체가 하늘 나라요 주님의 평화라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선물같은 삶이겠는지요.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늘 나라의 일꾼이자
주님 평화의 도구로 살게 하십니다.
일일시호일, 하루하루가 좋은 날이요 하늘 나라 꿈의 실현입니다.
다음 주님의 말씀이 참 좋은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6,33-34).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출처 - 요셉수도원
6/12(목) [(녹)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진정한 의로움은 주님의 영한테서 나오는 자유에서 시작됩니다. 율법을 넘는 사랑, 규범을 넘는 자비, 겉모습을 넘어선 진실한 관계가 그 열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인은 무엇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신앙인은 외모, 능력, 재산, 명예, 권력으로 평가를 받지는 않습니다. 신앙인은 남을 비난하고, 욕하고, 원망하고,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인은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희생했는지, 얼마나 봉사했는지, 얼마나 겸손했는지를 가지고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도 마음의 너울을 벗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주님의 빛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것입니다. 사람을 가르는 경계가 아니라, 함께 손을 맞잡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곳에 주님의 영이 계시며, 거기에는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조재형 신부)
2. “제 영혼을 구해주십시오. 그리고 저를 성인(聖人)이 되게 해주십시오.”
성인들의 영성생활 안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선택과 집중, 그리고 본질에 대한 충실성입니다.
그들은 사목자로서 비본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가지치기를 단행했습니다.
그리고는 오직 영적인 것, 하느님, 신자들의 영성 생활에만 초점을 맞추었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습니다.
(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마태 5,24)
주님!
먼저 화해하게 하소서.
지체치 말고 기회가 있을 때 먼저 화해하게 하소서!
원망을 품은 이의 아픈 마음을 보게 하시고, 제 불찰을 먼저 살피게 하소서.
시비를 따지기보다, 이기려 하기보다, 화해한 제 자신이 당신께 드리는 참된 예물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리라.”
예수님을 닮아 그 삶자체가 하늘 나라요 주님의 평화라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선물같은 삶이겠는지요.
(이수철 신부)
6/12(목) [(녹)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마태 5,24)
주님!
먼저 화해하게 하소서.
지체치 말고 기회가 있을 때 먼저 화해하게 하소서!
원망을 품은 이의 아픈 마음을 보게 하시고, 제 불찰을 먼저 살피게 하소서.
시비를 따지기보다, 이기려 하기보다,
화해한 제 자신이 당신께 드리는 참된 예물이 되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6월12일(목) 7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