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2019년 6월 23일.
루가 9, 11-17. 1고린 11, 23-26.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기 전날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제2독서로 들은「고린토전서」는 그 만찬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식후에도 잔을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것이 오늘 우리의 성찬, 곧 미사전례의 기원(起源)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이 부활하여 하느님 안에 살아 계시다는 믿음이 제자들 안에 발생하면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예수님을 그렇게 비참하게 죽도록 버려두신 이유를 모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귀머거리들을 듣게 하고, 벙어리들을 말하게 하면서 “모든 일을 좋게 하신 분이었다.”(마르 7, 37)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다만 예수님은 하느님에 대한 유대교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셨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들이 만든 율법과 제도를 절대화하면서 율법을 철저히 지켜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지 않도록 하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엄하신 하느님을 배경으로 그들 자신도 사람들 위에 무섭게 군림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고, 하느님이 사랑이시라고 가르치는 예수님을 미워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면서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조롱하였습니다. 하느님이 자기들 편에 계신다고 선포하는 조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에 대해 유대교지도자들과는 달리 생각하셨습니다. 법(法)과 제도(制度)는 사람들이 만든 것입니다. 그것을 절대화하여 하느님이 주셨다고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또 자기 스스로는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자비를 실천하는 마음 안에 하느님이 살아계십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믿고 계신 하느님의 진실(眞實)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믿음대로 실천하셨습니다. 유대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그런 믿음과 실천이 그들의 권위(權威)를 손상(損傷)시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결국 그분을 제거(除去)합니다. 그 사회를 지배하는 강자(强者)를 두려워하지 않고, 소신껏 말하고 소신대로 일하는 사람을 이 세상의 강자들은 오래 살려 두지 않습니다. 그런 사실을 깨달은 제자들은 그분이 평소에 하신 말씀들을 기억하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마르 8,34).
제자들은 모여서 예수님이 최후만찬에서 당신을 기억하여 행하라고 말씀하신 성찬(聖餐)을 거행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님이 빵을 들고 또 포도주 잔을 들고 하신 말씀의 뜻을 차차 알아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으로 당신 생애(生涯)를 요약하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가르쳤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우리의 삶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위해 당신 목숨을 바쳤습니다. 빵을 들고, ‘내어주는 당신의 몸’이라고, 포도주 잔을 들고, ‘쏟는 당신의 피’라고 말씀하면서, 예수님은 당신의 생애가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는 삶이었다는 사실을 말씀으로 남기셨습니다. 신앙인들이 성찬에서 그 빵을 먹고, 그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예수님 안에 있었던 생명, 곧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는’ 하느님 나라의 생명이 그들 안에도 살아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예수님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셨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실제 일어난 사실을 그대로 보도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옛날 사람들은 오늘과 같이 객관적 사실 보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꾸며서 그 안에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아 전하는 이야기 문화의 시대였습니다. 그리스의 신화(神話)들, 로마의 신화 등이 모두 이야기 문화의 소산(所産)입니다. 오늘 복음 이야기는 예수님이 성찬으로 많은 사람을 먹이신다고 말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그 많은 사람을 먹이셨듯이, 그분은 오늘도 성찬에서 많은 사람들을 먹이신다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기록한 사람들의 그런 의도가 오늘의 복음 에도 보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 표현은 초기 신앙공동체가 거행하던 성찬전례에서 반복 사용되던 양식(樣式)입니다. 그 시대 성찬에 참여하던 사람들은 모두 기억하던 양식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신앙공동체는 성찬을 중심으로 발족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유언으로 남긴 성찬입니다. 제자들은 모여 성찬을 거행하면서 예수님이 그렇게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신 이유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의 뇌리(腦裏)를 떠나지 않는 것은 ‘내어준다.’ ‘쏟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모든 일을 좋게 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느님에 대해 유대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가 죄인이라고 버린 이들과 어울리면서, 하느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신다고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유대교 실세(實勢)들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나 오늘이나 권력을 가진 자는 자기의 권위(權威)에 도전하는 자를 제거하면서 자기의 권위를 과시하려 합니다. 그것이 못난 우리 인간들이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아서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셨습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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