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예로니모 사제학자 기념일 /조재형 신부
산책하면서 동네 슈퍼에 가곤 합니다. 주로 한국 슈퍼엘 가지만 이따금 중국 슈퍼도 가고, 미국 슈퍼도 갑니다. 식품을 파는 슈퍼이지만 대상에 따라서 물건의 종류와 구성이 다릅니다. 한국 슈퍼는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식품이 많습니다. 중국 슈퍼는 생선과 면류가 다양합니다. 미국 슈퍼는 햄, 치즈, 빵이 다양합니다. 기본적인 것은 한국, 중국, 미국 슈퍼가 비슷합니다. 야채, 과일, 음료수는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이슬람 슈퍼는 아직 가보지 않았는데 아마 다른 슈퍼와는 차이가 날 것 같습니다. 이슬람은 음식에 관한 규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할랄은 이슬람법상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매일 읽는 복음서도 저자의 의도에 따라서 주제가 조금씩 다른 걸 알 수 있습니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서는 전체적인 구성이 비슷하기에 공관복음이라고 합니다. 같은 관점에서 보았지만, 세부적인 면에서는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은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소개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가 나옵니다. 동방박사들의 경배가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마르코 복음은 대상이 이방인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 순종하면서 세상의 종이 되셨음을 이야기합니다. 세상 사람은 권력, 명예, 성공을 추구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겸손과 섬김으로 세상을 구원하셨음을 이야기합니다.
루카 복음도 대상은 이방인지만, 아들이신 예수님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탄생과정을 자세히 이야기하며, 목동들이 경배하는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전해주고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 돌아온 아들 이야기는 진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구원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공관 복음서들이 예수님의 생애 동안 일어났던 사건과 말씀을 역사적으로 기록해서 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면, 요한 복음은 그러한 사건과 말씀을 해석해서 그 영적 의미를 알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요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며 오직 그분을 믿음으로서만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으로서의 탄생 부분을 생략하고 ‘말씀이신 하느님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것’부터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이나 니고데모의 이야기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과 만남이나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 등은 요한복음에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고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만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예로니모 성인은 평생 성서를 번역하고 연구하면서 지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읽는 성서는 예로니모 성인께서 라틴어(Vulgata)로 번역한 성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서를 번역하면서 “성경을 파고드십시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하느님의 권능도 그분의 지혜도 모르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성서를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서를 해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로니모 성인에게 성서 번역의 영감을 주었던 오리게네스는 성서해석의 3가지 방법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구적인 해석입니다. 성서를 있는 그대로의 글로 해석하는 단계입니다. 오리게네스는 이런 해석을 가장 초보적인 해석이라고 하였습니다. 성서의 언어는 문화, 시대, 역사, 민족을 포함하기에 문자 그대로의 해석은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서를 읽는 시대, 문화, 역사, 민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비유적인 해석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많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는 우리의 이해를 도와주는 훌륭한 방법입니다. 이런 비유적인 해석은 윤리적인, 도덕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비유를 통해서 어떤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 이해합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세 번째는 영적인 해석입니다. 성서를 통해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성찰하는 것입니다. 성서를 통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은 무엇인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성찰하는 것입니다. 성서는 단순히 윤리적인, 도덕적인 가르침을 넘어서는 영적인 양식입니다. 이런 성서해석은 교회의 신비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9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여러분 가운데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입니다. 여러분을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여러분을 지지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고 싶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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