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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10월 7일 토요일[(백)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10월 7일 토요일[(백)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16세기 중엽 오스만 제국(현재의 튀르키예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제국)이 지중해로 세력을 뻗치자, 1571년 10월 7일 그리스도교 연합군은 그리스의 레판토 항구 앞바다에서 벌인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제국을 무찔렀다. 성 비오 5세 교황은 이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것이 묵주 기도를 통한 성모님의 간구로 하느님께서 함께하신 덕분이라 여기고, 이를 기억하고자 ‘승리의 성모 축일’을 제정하였다. 1960년 성 요한 23세 교황이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이름을 바꾸었다.

입당송

루카 1,28.42 참조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본기도

주님,
천사의 아룀으로 성자께서 사람이 되심을 알았으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를 들으시어
성자의 수난과 십자가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은총을
저희에게 내려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신 주님께서 너희에게 기쁨을 안겨 주시리라.>
▥ 바룩서의 말씀입니다.4,5-12.27-29
5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내 백성아, 용기를 내어라.
6 너희가 이민족들에게 팔린 것은 멸망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너희가 하느님을 진노하시게 하였기에 원수들에게 넘겨진 것이다.
7 사실 너희는, 하느님이 아니라 마귀들에게 제사를 바쳐
너희를 만드신 분을 분노하시게 하였다.
8 너희는 너희를 길러 주신 영원하신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너희를 키워 준 예루살렘을 슬프게 하였다.
9 예루살렘은 너희에게 하느님의 진노가 내리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들어라, 시온의 이웃들아! 하느님께서 나에게 큰 슬픔을 내리셨다.
10 나는 영원하신 분께서 내 아들딸들에게 지우신 포로살이를 보았다.
11 나는 그들을 기쁨으로 키웠건만 슬픔과 눈물로 그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12 과부가 되고 많은 사람에게 버림받은 나를 두고 아무도 기뻐하지 말아 다오.
나는 내 자식들의 죄 때문에 황폐해졌다. 그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멀리하였다.
27 아이들아, 용기를 내어 하느님께 부르짖어라.
이 재앙을 내리신 주님께서 너희를 기억해 주시리라.
28 너희 마음이 하느님을 떠나 방황하였으나
이제는 돌아서서 열 배로 열심히 그분을 찾아야 한다.
29 그러면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신 그분께서 너희를 구원하시고
너희에게 영원한 기쁨을 안겨 주시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69(68),33-35.36-37(◎ 34ㄱ)
◎ 주님은 불쌍한 이의 간청을 들어 주신다.
○ 가난한 이들아, 보고 즐거워하여라. 하느님 찾는 이들아, 너희 마음에 생기를 돋우어라. 주님은 불쌍한 이의 간청을 들어 주시고, 사로잡힌 당신 백성을 멸시하지 않으신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하늘과 땅아, 바다와 그 안에 사는 모든 것들아. ◎
○ 하느님은 시온을 구하시고, 유다의 성읍들을 세우신다. 그들이 거기에 머물며 그곳을 차지하고, 그분 종들의 후손이 그 땅을 물려받아, 그분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이 그곳에 살리라. ◎

복음 환호송

마태 11,25 참조
◎ 알렐루야.
○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7-24
그때에 17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1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20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사도 1,12-14)와 복음(루카 1,26-38)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주님,
정성껏 드리는 이 예물을 받으시어
저희가 합당하게 성자의 신비를 기념하며
그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감사송

<복되신 동정 마리아 감사송 1 : 어머니이신 마리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하고
복되신 평생 동정 마리아 ( ) 축일에
아버지를 찬송하고 찬양하고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성모님께서는 성령으로 외아들을 잉태하시고
동정의 영광을 간직한 채
영원한 빛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낳으셨나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사들이 주님의 위엄을 찬미하고
주품천사들이 흠숭하며 권품천사들이 두려워하고
하늘 위 하늘의 능품천사들과 복된 세라핌이
다 함께 예배하며 환호하오니
저희도 그들과 소리를 모아 삼가 주님을 찬양하나이다.
<또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감사송 2 : 마리아의 노래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교회>
거룩하신 아버지,
모든 성인을 훌륭히 이끌어 주신 주님을 찬미하고
특히 저희가 기념하고 공경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노래로
주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주님께서는 땅끝에 이르기까지 큰일을 하시고
대대로 자비를 너그러이 베푸셨나이다.
비천한 종 마리아를 돌보시어
마리아를 통하여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구원자로 보내셨나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 앞에서 천사들의 군대가 영원히 기뻐하며
주님의 위엄을 흠숭하오니
저희도 환호하며 그들과 소리를 모아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루카 1,31 참조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 하느님,
이 성사로 성자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 저희가
성자의 고난에 참여하여
그 기쁨과 영광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묵주기도의 성모님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1998 9월입니다. 저는 본당 신부님과 월요일 아침 미사를 마치고 온천엘 가기로 했습니다. 신부님을 모시고 온천엘 가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었고, 그만 아침미사에 늦었습니다. 제의실에서 본당 신부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신부님은 제의실 수녀님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조 신부님이 미사에 늦을 사람이 아니니 10분 전에도 안 나오면 꼭 전화를 하세요.” 저는 신부님께 야단을 맞을 줄 알았는데 신부님께서는 저를 믿어 주셨습니다. 저는 미사 30분 전에는 고백소에서 성사를 주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수녀님에게 미안했습니다. 25년이 지난 9월입니다. 저는 마음 편히 아침산보를 하고 있었습니다. 퀸즈성당 본당신부님이 전화를 하였습니다. 신자들이 모두 걱정한다고 하였습니다. 신부님도 제가 어디 아픈 것은 아닌지 전화하였습니다. 나는 평상시처럼 아침 산보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야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날 아침 미사가 제 차례였는데 저는 깜빡 잊었습니다. 수녀님은 본당 신부님에게 전화를 하였고, 본당 신부님이 저를 대신해서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신부님도, 신자들도 모두 저를 걱정하였습니다. 제가 혹시 아픈 것은 아닌지, 산보 중에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아닌지 걱정하였다고 합니다. 4년 동안 한 번도 미사에 늦은 적이 없었기에 그만큼 저를 믿어 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부주의를 탓하지 않고, 먼저 저를 걱정해 주었던 신자분들과 신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평소에도 미사에 늦은 적이 있었다면 본당 신부님도 저의 부주의를 먼저 탓하였을 것입니다. 저의 성실함이 있었기에 본당 신부님은 저의 부주의함 보다는 저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선교를 하고 다녀온 제자들을 맞이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마귀를 쫓아낸 일을 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의 보고를 듣고 대견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교만해 질 것을 염두에 두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무엇이 하느님나라에 기록될까요? 우리의 업적, 능력, 재물은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것이 필요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는 회개와 이웃을 위한 선행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오늘은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16세기 중엽 오스만 제국(현재의 튀르키예 지역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 제국)은 영토를 확장하고자 유럽을 침공하였습니다. 1571 10 7일 그리스도교 연합군은 그리스의 레판토 항구 앞바다에서 벌인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제국을 무찔렀습니다. 비오 5세 교황은, 이 전투의 대승이 묵주 기도를 통한 성모님의 간구로 하느님께서 함께하신 덕분이라 여기고, 이를 기억하고자 승리의 성모 축일을 제정하였습니다. 나중에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저도 묵주기도에 대한 작은 체험이 있습니다. 적성 성당에 있을 때입니다. 운전 중에 묵주기도를 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서울에 가는 길에 묵주기도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차를 세우고 묵주를 꺼내는데 제 앞으로 큰 트럭이 지나갔습니다. 멈추지 않고 계속 운전했다면 큰 트럭과 충돌할 수도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묵주기도를 한 것도 아니고, 묵주기도를 하려고 준비만 했는데도 하느님께서는 저를 지켜주셨습니다. 저는 그 뒤로 매일 묵주기도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2002 빛의 신비를 제정하였습니다. 이로써 묵주기도는 예수님의 탄생을 묵상하는 환희의 신비, 예수님의 공생활을 묵상하는 빛의 신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고통의 신비, 예수님의 부활을 묵상하는 영광의 신비로 완성되었습니다. 묵주기도를 정성껏 바치면 성모님의 전구로 악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강론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묵주기도를 바칠 때마다, 제 영혼의 눈앞에는 예수님 생애의 중요한 사건들이 지나갑니다!

 

묵주기도를 누구보다도 사랑하셨기에, 자주 바치셨고, 그 중요성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신 분이 계신데, 바오로 6세 교황님이십니다.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는 마리아 공경에 대한 교황 권고를 발표하셨는데, 이 문서는 제2차바티칸공의회 교회 헌장 제8장, 다시 말해서 마리아 헌장의 내용을 좀 더 구체화시킨 교황님의 가르침입니다.

 

교황님께서는 권고를 통해 묵주기도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황님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① 묵주기도는 복음서에서 영감을 받은 묵상기도이며, 복음적 성격이 강한 기도입니다. 묵주기도의 신비들과 기본 형태가 복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묵주기도를 아주 간단히 ‘요약된 복음’이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묵주기도는 철저하게도 복음적인 기도입니다.

 

② 묵주기도는 성모송의 조화로운 연속으로 복음의 근본적인 신비를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③ 묵주기도는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 역사 안에 들어오시어 구속사업을 이루신 과정을 순차적으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묵주기도에는 동정녀의 잉태와 예수님 유년기 시절의 신비로부터, 파스카 신비의 절정, 곧 수난과 부활에 이르기까지, 구원사 안의 중요한 사건들이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④ 묵주기도는 교회 공식 전례는 아니지만, 교회 전례에서 비롯되며, 우리를 교회 전례로 이끌어줍니다.

 

묵주기도와 관련된 바오로 6세 교황님의 고백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묵주기도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기도입니다. 묵주기도는 단순하고 깊이가 있고, 훌륭한 묵상 기도입니다. 묵주기도를 바칠 때마다, 제 영혼의 눈앞에는 예수 그리스도 생애의 중요한 사건들이 지나갑니다.

 

환희, 빛, 고통, 영광의 신비로 구성된 그 신비들은 성모님의 마음을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살아있는 친교를 나눌 수 있게 저를 이끕니다.

 

찬미의 기도이며 간구의 기도인 묵주기도가 묵상기도로 넘어가길 희망합니다. 묵상을 동반하지 않는 묵주기도는 영혼이 없는 육신과 같습니다.”

 

네 보십시오! 묵주기도는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구원송 등 염경기도의 조합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묵상기도입니다. 묵주기도는 염경기도와 묵상기도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기가 막힌 기도입니다.

 

묵주기도문 매 신비 안에 반드시 무엇무엇을 묵상합시다! 라는 문구가 들어있지 않습니까? 묵주기도는 당연히 묵상 기도입니다. 묵주기도에서 찬미와 간구의 요소 외에도 더욱 본질적인 요소인 묵상, 더 나아가서 관상의 중요성이 더 많이 강조되어야겠습니다.

 

묵상이나 관상에로 나아가지 못하는 묵주기도는 영혼이 없는 육체에 불과합니다. 또한 묵상 없이 그저 입으로만 줄줄 바친다면 묵주기도가 예수님께서 경고하시는 이방인들의 빈말처럼 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1006. 연중 제26주간 금요일.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루카 12,47)

 
가을이 익어갑니다. 우리 안에 사랑도 익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곧 ‘회개하지 않은 도시들에 대한 불행선언’(13-15절) 부분과 ‘파견 받은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파견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같다’(16절)는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부분에서 코라진, 벳사이다. 가파르나움이 심판을 받은 이유는 그들의 죄악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더 나아가서는 회개하지 않은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사랑을 많이 받고도 회개하지 안했기 때문임을 말해줍니다. 곧 그들은 말씀을 듣지 못했거나 기적을 보지 못했거나 사랑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도시들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받았음에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도 여전히 회개하는 일에는 더딘 저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7-48)
 
오늘 <복음>의 둘째부분에서, 우리는 우리 주님의 애태우시는 음성을 듣습니다. 죄인의 멸망을 바라지 않으시고, 회개하여 살기를 바라시는 사랑의 음성입니다.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이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루카 10,16)
 
이는 말씀을 전하는 이가 얼마나 존귀한 사명을 수행하고 있고, 얼마나 고귀한 신분인지를 깨우쳐줍니다. 동시에 파견 받은 이는 파견 받은 분에게 메여 있어야 함을 말해줍니다. 파견 받은 자는 파견하신 분을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회개’에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말씀은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파견 받고 있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곧 말씀을 듣는 이가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이에게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는 말씀을 듣고도 그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너희는 너희를 보낸 분께 매여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곧 말씀을 듣는 이들의 반응이나 결과에 매달리지 말고, 보내신 분께 매달려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전하는 이에게 중요한 것은 먼저 말씀을 품고 있어야 하고, 말씀의 영을 따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를 파견하실 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20)
 
그렇습니다. 파견 받은 우리는 아버지의 영을 품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루카 10,16)
 
주님!
파견 받은 자의 사명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를 명심하게 하소서.
말씀을 듣고도 받아들이지도, 회개하지도 않는다 하여도
언제나 저를 보내신 당신께 매여 있게 하소서.
언제나 어디서나 당신의 말씀을 품고, 당신의 영께 매여 있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연중 제26주간 금요일.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뿐이다-

  

“성령은 우리를 침묵과 경청으로 인도한다.”

“침묵과 경청, 성령이 말하게 하라.”

새벽 교황님 홈페이지에서 읽은 말마디가 새롭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회개 역시 성령의 은총입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의 삶은 회개의 여정입니다. 회개의 여정에, 무지로부터의 해방에, 참사람이 되는데 결정적 도움이 되는 평생성사가 성체성사요 고백성사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회개입니다. 한두번의 회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그날까지 계속되는 끊임없는 회개에 성체성사와 고백성사의 수행입니다. 

 

무지한 인간, 인간에 대한 부정적 정의입니다. 마음의 병중 으뜸이 무지입니다. 무지의 병, 무지의 악, 무지의 죄등 참 많이 강론에 인용했던 주제가 무지입니다. 정말 극단의 이념에 중독되어 상대방을 극도로 혐오, 증오, 저주하는 댓글들을 보면 무지의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지, 광신이 얼마나 치명적 무지의 병인지 깨닫게 됩니다. 이래서 참으로 강조하는 끊임없는 회개입니다. 이런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은 회개뿐입니다. 

 

“가기싫다!”

거의 십여년 동안 로마에서 공부하다 잠시 귀국하여 수도원에서 3개월 쉬다가 어제 다시 출국한 수도형제가 엊그제 큰 소리로 고백한 말마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길게 느껴지던 3개월도 순간처럼 생각될 것입니다. 아,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죽기싫다!”

길게 느껴지던 인생도 언젠가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직면할 때 대부분 저절로 터져나오는 말마디일 것입니다. “내 형제 죽음이여, 어서 오라.” 고백한 성 프란치스코의 임종어와, “내 벗인 죽음이여, 어서 오게나...기다리고 있었네.” 침상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던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임종어도 생각납니다. 

 

어떻게 이런 준비된 거룩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는지요? 어제 깊은 애정과 신앙으로 군인들을 상담하는 일을 책임감있게 수행하는 어느 자매로부터 긴박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옆 부대의 젊은 20대 하사 군인이 자살하여 연미사를 청하는 전화였습니다. 한참 살아야 할 젊은이들의 이런 자살 소식을 들으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전화를 준 자매는 퇴근하자마자 저녁미사에 참석했고 끝기도때까지 성전에서 기도하다 떠나던 모습이 또 눈에 밟힙니다.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대부분 나에게 있고 답은 내 안의 하느님께 있습니다. 바로 문제의 답은 회개입니다. 참으로 거룩한 죽음을 위한 답은 회개뿐입니다. 역시 회개의 선택과 훈련, 습관화가 필요합니다. 수도생활은 결코 유난한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고 항구한 회개의 삶을 통해 무지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자녀로서 참사람이 됨을 목표로하는 수도생활입니다.

 

바로 이의 빛나는 모범이 수도성인들이요, 오늘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기념미사를 봉헌하는 성 브루노도 이에 속합니다. “위대한 침묵” 영화에서 소개된 카르투시오 수도회의 창립자 성 브루노입니다. 1032년경 독일 퀼른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수도원 창립자로 1101년 선종때까지 참 치열한 회개의 여정을 살았던 수도성인입니다.

 

독일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교육받은후 사제품을 받고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쳤고 교수겸 학장으로 재직중 성직매매로 추문을 일으킨 라임스의 주교 마나세스를 탄핵하는 일에 앞장섭니다. 마침내 마나세스는 사임했고 이어 대주교가 되어 달라는 라임스 교구민들의 바람을 뒤로한 채 적막한 알프스 산 속에 은수처를 마련하고 본격적 은수자로 살아갑니다.

 

여기서 몇몇 동료와 함께 노동과 관상기도의 생활을 하면서 기도소와 개인방을 만들고 성 베네딕도의 규칙을 엄격히 준수하면서 엄격한 고독과 침묵, 가난을 실천함으로 카르투시오회의 시작이 됩니다. 성인은 수도회를 떠나 잠시 성직자들의 개혁을 담당하는 교황의 보좌로서 얼마동안 활동하다 교황 우르바노 2세를 설득하여 다시 수도원에 돌아와 선종때까지 계속 은수생활을 합니다. 

 

카르투시오 수도자들의 삶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특징은 1.하느님을 찾음, 2.복음적 증거, 3.숨겨진 삶으로, 세상 속에서 관상생활을 추구하는 샤를로 후코의 후예들인 예수의 작은 형제회의 영성과 일치하니 이 또한 참된 회개의 열매이겠습니다. 브루노 성인은 공적인 명예를 취득하지 않는다는 카르투시오 규칙에 따라 시성식은 치러지지 않았고, 1674년 교황 클레멘스에 의해 축일만 공포됩니다.

 

회개의 여정을 살아감은 믿는 이들의 공통점입니다. 무지에 대한 답도 회개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에 대한 주님의 예언자적인 깊은 탄식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 세 고을을 향한 “불행하여라!” 불행선언은 저주가 아니라 탄식이며 회개에 대한 마지막 호소처럼 들립니다. 예나 이제나 이런 부정적 현실은 계속 반복되는 듯 하니 무지한 인간의 숙명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럴수록 절박해지는 회개입니다. 이어지는 다음 말씀은 우리의 회개에도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비단 주님의 사람인 성직자의 강론 말씀뿐 아니라 이웃 형제들의 말에도 회개의 열린 마음으로 경청해야 함을 배웁니다. 이런 경청의 영적수행에 충실할 때 비로소 무지로부터의 해방이겠습니다.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참된 말은 예수님은 물론 하느님에게까지 뿌리를 두고 있음을 봅니다. 무지의 어둠을 몰아내는 말씀의 빛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어제 미사중 화답송 시편 19장 일부 구절들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참되어, 어리석음 깨우치네.”

“주님의 계명 밝으니, 눈을 맑게 하네.”

“주님의 법규들 진실하니, 모두 의롭네”

“금보다 순금보다, 더욱 값지며, 꿀보다 참꿀보다, 더욱 달다네.”

 

말씀은 인간의 본질입니다. 이런 주님 말씀에 맛들일 때 비로소 무지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이런 주님 “말씀”과 더불어 “기도”가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임을 깨닫습니다. 끊임없는 말씀과 기도의 수행이 회개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오늘 제1독서 바룩서의 참회의 기도는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한지요!

 

“주 우리 하느님께는 의로움이 있지만, 우리 얼굴에는 오늘 이처럼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죄를 짓고, 그분을 거역하였으며, 우리에게 내리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 걸으라는 주 우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주 우리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일을 저지르며, 저마다 제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대로 살았습니다.”

 

얼마나 진솔한 회개의 고백기도인지요! 하느님을 떠나선 회개와 겸손도, 참미와 감사도, 지혜와 자비도 없습니다. 하느님을 떠나선 참나도 알 수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서의 회개가 무지에 대한 결정적 답입니다.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하느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참된 겸손과 지혜의 참사람이며 회개없이는 무지에서 벗어날 길이 요원합니다. 

 

그러니 평생을 살아도 참자기를 모르고 헛된 삶을, 괴물과 악마, 폐인의 삶을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회개를 통해 참사람이 되는데, 하느님과 관계를 깊이하는 데, 기도와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평생 회개의 여정에, 평생 영성 교육에 매일미사보다 더 좋은 수행은 없을 것입니다. 무지에 대한 최고의 처방약이 “회개-기도-말씀-성체”를 담고 있는 미사입니다. 세상에 미사은총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주 내 하느님은 나의 힘이시며,

 나를 사슴처럼 달리게 하시고,

 산 봉우리로 나를 걷게 하시나이다."(하바3,19). 아멘.


10/7(토) [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 되새김 구절

 

1.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2002 빛의 신비를 제정하였습니다. 이로써 묵주기도는 예수님의 탄생을 묵상하는 환희의 신비, 예수님의 공생활을 묵상하는 빛의 신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고통의 신비, 예수님의 부활을 묵상하는 영광의 신비로 완성되었습니다. 묵주기도를 정성껏 바치면 성모님의 전구로 악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조재형 신부)

 

2. 묵주기도와 관련된 바오로 6세 교황님의 고백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묵주기도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기도입니다. 묵주기도는 단순하고 깊이가 있고, 훌륭한 묵상 기도입니다. 묵주기도를 바칠 때마다, 제 영혼의 눈앞에는 예수 그리스도 생애의 중요한 사건들이 지나갑니다.

 

환희, 빛, 고통, 영광의 신비로 구성된 그 신비들은 성모님의 마음을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살아있는 친교를 나눌 수 있게 저를 이끕니다.

 

찬미의 기도이며 간구의 기도인 묵주기도가 묵상기도로 넘어가길 희망합니다. 묵상을 동반하지 않는 묵주기도는 영혼이 없는 육신과 같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루카 10,16)
 
주님!
파견 받은 자의 사명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를 명심하게 하소서.
말씀을 듣고도 받아들이지도, 회개하지도 않는다 하여도
언제나 저를 보내신 당신께 매여 있게 하소서.
언제나 어디서나 당신의 말씀을 품고, 당신의 영께 매여 있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성령은 우리를 침묵과 경청으로 인도한다.”

“침묵과 경청, 성령이 말하게 하라.”

새벽 교황님 홈페이지에서 읽은 말마디가 새롭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회개 역시 성령의 은총입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의 삶은 회개의 여정입니다. (이수철 신부)

 

10/7(토) [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 제287일 기도   

 

복음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

“침묵과 경청, 성령이 말하게 하라.”

 

나와 동행하시는 임마누엘 하느님,

나의 매사를 예비해두신 야훼이레 하느님

묵주기도 봉헌하며,

침묵, 경청하며 성령이 말하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10월7일(토) 7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