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10월 18일 금요일[(홍)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네.
<대영광송>
본기도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신비를
설교와 기록으로 세상에 알리게 하셨으니
주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부르는 저희가 언제나 한마음 한뜻이 되고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구원을 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4,10-17ㄴ
사랑하는 그대여,
10 데마스는 현세를 사랑한 나머지 나를 버리고 테살로니카로 가고,
크레스켄스는 갈라티아로, 티토는 달마티아로 갔습니다.
11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마르코는 내 직무에 요긴한 사람이니 함께 데리고 오십시오.
12 티키코스는 내가 에페소로 보냈습니다.
13 올 때, 내가 트로아스에 있는 카르포스의 집에 두고 온 외투와 책들,
특히 양피지 책들을 가져오십시오.
14 구리 세공장이 알렉산드로스가 나에게 해를 많이 입혔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행실대로 그에게 갚으실 것입니다.
15 그대도 그를 조심하십시오. 그는 우리의 말에 몹시 반대하였습니다.
16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이 불리하게 셈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17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성인들이 당신 나라의 영광을 알리나이다.
○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
○ 당신의 위업과 그 나라의 존귀한 영광, 사람들에게 알리나이다. 당신의 나라는 영원무궁한 나라, 당신의 통치는 모든 세대에 미치나이다. ◎
○ 주님은 가시는 길마다 의로우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주님은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진실하게 부르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계시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9
그때에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저희가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게 하시며
복된 루카 축일에 바치는 이 제물이
저희에게 영혼의 약이 되고 새로운 생명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도들을 기초로 삼아 그 위에 교회를 세우시어
지상에서 주님의 거룩하고 영원한 표지가 되게 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이제와 영원히 모든 천사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은 제자들을 여러 고을로 보내시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게 하셨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의 거룩한 제대에서 받아 모신 성체로 저희를 거룩하게 하시고
복된 루카가 전한 복음을 충실히 믿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한 일이 아니라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한 일입니다. 콜럼버스는 새로운 대륙을 찾을 목적으로 대양을 건넜지만 결국 대륙을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콜럼버스의 삶에 대해서는 자세히 아는데 베스푸치의 생애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베스푸치에게는 전기 작가가 없었던 반면 콜럼버스에게는 한 사람의 전기 작가가 있었습니다. 콜럼버스의 전기 작가는 바로 그의 아들입니다. 그 아들은 자기 아버지가 대륙을 발견하는 일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므로 마땅히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의 삶에 관한 책을 쓰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플라톤이 없었다면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미슐레가 프랑스인들에게 프로이센의 침입자들을 몰아낼 의지를 고취 시키기 위해서 잔다르크를 재발굴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잔다르크를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도 2027년에 본당 설립 50주년을 맞이합니다.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그중에 하나는 본당의 역사를 기억하는 기념 책자의 발행입니다. 복음사가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를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은 루카 복음사가를 기억하는 축일입니다. 저는 루카 복음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루가복음 1장은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엘리사벳은 ‘은총이 가득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도다.’라고 축복하였습니다. 마리아는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 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 뛰노나이다.’라고 응답하였습니다. 우리는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처럼 상대방을 축복하고, 상대방을 위해서 기도하고, 무엇보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순명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10장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는 사제인 저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 아픈 사람, 지금 가난한 사람, 지금 외로운 사람이 바로 나의 이웃이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사제와 레위 사람은 그냥 지나쳤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그들의 이웃이 되어 주었습니다. 신앙인은 지금 고통받는 이들의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15장의 돌아온 아들의 이야기는 감동입니다. 저는 늘 큰아들처럼 살아왔습니다. 잘못한 이를 용서하기보다는 비난하고 단죄하였습니다. 그것으로 저의 성실함을 드러내고 싶어 했습니다. 아버지는 성실한 큰아들도 사랑하였지만, 돌아온 아들도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입니다. 우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우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우리가 뉘우치면 양털처럼 희게 해 주시고, 눈처럼 희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종교의 진정한 가치는 용서에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루가복음 19장은 회개는 행동으로 드러나야 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높은 나무로 올라갔습니다. 우리들 역시 주님을 만나고 싶다면 믿음의 나무로, 사랑의 나무로 올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자캐오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 제 재산의 절반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나누겠습니다. 제가 빚진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습니다.”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24장의 엠마오 이야기는 아름다운 그림 같습니다. 지친 제자들과 동행하시는 예수님입니다. 제자들의 청을 들어주시고, 함께 머무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성경 말씀을 전해주시고,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전해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저는 성가 엠마우스를 참 좋아합니다. 이 성가를 작곡하신 원선오 신부님도 존경합니다. 그분은 일본에서 사목을 하시다가 한국으로 오셨습니다. 한국이 어느 정도 발전을 하자 케냐로 가셨습니다. 케냐에서는 더욱 어려운 수단으로 가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함께하셨던 예수님처럼 가난하고 힘든 이들과 동행하셨습니다. 신부님은 광주 살레시오 고등학교에 계실 때, 매일 아침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이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했던 학생들은 신부님의 따뜻한 눈빛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교문 앞에서 비를 맞고 있는 아이를 보았고, 우산을 들고 아이에게 가셨습니다. 우산을 함께 쓰고 데려다주신 신부님을 아이는 기억하였고 신부님의 영향으로 사제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십자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십자가를 받아들이면 축복과 은총, 사랑과 기쁨이 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길의 끝은 부활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도들은 죽음의 길도 감사하면서 받아들였습니다. 루카 복음은 제게는 자비로운 하느님을 만나게 해 주는 복음입니다. 저 또한 따뜻한 이웃이 되도록 촉구하는 복음입니다. 사제는 주님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지닌 사람임을 알려 주는 복음입니다. 여러분에게 루카 복음은 어떤 복음인지요?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복음: 루카 10,1-9
사랑과 자비의 루카 복음서!
저도 젊은 수도자 시절 해외 선교 열망으로 활활 불타오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 학부를 졸업하고, 사목 실습을 시작할 때, 장상들에게 제발 좀 선교지에서
실습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장상들 눈에는 제가 선교사로서의 자질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였나 봅니다.
답은 언제나 묵묵부답, 너무 답답해서 부르짖으면 겨우 오는 답장은 먼저 한국에서나 잘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닌가 보다, 하고 포기를 했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늘 그런 열망이 남아있기에,
선교지로 훌훌 떠나는 후배 형제들을 보면 얼마나 부럽고 대견스러운지 모릅니다.
한번은 오지 중의 오지, 도착하려면 비행기를 몇 번이나 갈아타야 하고, 언제나 수하물이 제대로 인수되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나라로 선교를 떠났던 한 형제가 휴가차 귀국했었습니다.
공항 입국장을 걸어 나오는 그의 모습을 보고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불과 일 년 반전의 그 당당하다 못해 풍성했던 풍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바짝 마르고 노쇠한 중늙은이가
한명 꾸부정하게 걸어 나오는 것입니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일 년 반 만에 체중이 30킬로나 빠졌답니다.
그러면서 장난삼아 돈 한푼 안 들이고 자연 다이어트에 성공했으니 꽤 돈 번거라며 자랑합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과도비만으로 고생하시는 분들 선교지로 초대하겠답니다.
너무 갑작스레 왜소해지고 노쇠해져 적응이 잘 안 되는 형제를 바라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그래 해외선교사들이야말로 이 시대 순교자들이로구나!’
그와 함께 여기저기 같이 다니면서 전해 들은 더위와의 싸움은 정말이지 눈물겨운 것이었습니다.
낮이고 밤이고 항상 더우니 잠자는 것이 그렇게 힘들더랍니다.
그나마 쪽잠이라도 자기 위해서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서둘러야 된답니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로 잔뜩 뜨거워진 매트리스에 미리 물을 한 사발 부어놓는답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열기가 사라져 머리를 눕힐만하다네요. 자다가 몇 번이고 일어나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해야만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답니다.
철저하게도 문명 세계와 단절된 곳, 흙바닥에 양철 지붕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곳,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국지전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다시 떠나는 형제의 환한 얼굴이 참으로 고맙고
대견스러웠습니다.
초대 교회 선교사였던 바오로 사도와 루카 복음 사가의 삶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티모테오 2서에 그들이 복음 선포 과정에서 겪은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었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굳게 믿었던 동료들로부터의 배신과 따돌림으로 인한 상처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 와중에 주님, 그리고 루카 복음사가만이 끝까지 등을 돌리지 않고 큰 힘이 되어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데마스는 현세를 사랑한 나머지 나를 버리고 테살로니카로 가고, 크레스켄스는 갈라티아로,
티토는 달마티아로 갔습니다.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구리 세공장이 알렉산드로스가 나에게 해를 많이 입혔습니다.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2 티모 4,10~17 참조)
루카 복음사가는 이방계 그리스도인이었으며 상당한 학식을 갖추고 있었던 인물로 추정됩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예수 그리스도 육화 사건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각적 효과를 활용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그는 여러 상황들을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함을 통해 독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51년경에 있었던 바오로 사도의 제2차 전도여행 때 그를 수행하였으며,
57년까지 필리피 교회 공동체에 머물면서 사목활동을 수행했고,
바오로 사도의 제3차 전도여행 때에도 수행했습니다.
그는 바오로 사도가 투옥 중이던 61~63년까지 로마에 머물면서 큰 의지요 힘이 되어 드렸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세 번째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로 추정됩니다.
그는 사도행전을 통해 초대교회 공동체 생활상과 복음전파 과정을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그가 집필한 루카 복음은 사랑과 자비의 복음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한없는 자비를 따뜻한 시선으로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인간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죄 많은 여인 이야기, 돌아온 탕자의 비유, 우도 직천당 사건 등입니다.
고통받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사람들,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던 사람들을 향한 연민의 마음으로 가득했던
루카 복음사가의 복음서는 2천 년 세월이 지나온 오늘 우리에게도 한없는 하느님의 자비를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지녔던 고통 받는 한 인간을 향한 한없는 측은지심과 따뜻한 동료애가 오늘 이 시대
다시 한번 메아리쳐지길 바랍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하지 말아야 할 것들과 해야 할 것들>
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사가만이 전하는 부분으로, 일흔 두 제자의 파견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를 파견하기에 앞서, 먼저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루카 10,2)
이 말씀은 ‘추수할 때’가 되었음을, 곧 ‘복음 선포의 시급성’을 알려줍니다.
동시에, 먼저 필요한 것이 ‘기도’임을 알려줍니다.
왜냐하면 추수는 하느님께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종말론적인 ‘추수꾼’ 은 천사를 표상하는데, 여기서는 ‘복음 전파자’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고 기도하기를 명하십니다.
그러니 첫 번째로 맨 먼저 필요한 것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흔 두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루카 10,3)
'이리 떼 가운데 양처럼' 보내신 것은 종말에 늑대와 새기 양이 평화롭게 뒹굴고 어린 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닐 것이라는 ‘이사야 예언’(이사 11,6;65,25 참조)을 이루는 것을 보여줍니다.
곧 ‘하늘나라의 때가 왔음’을 선언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파견 받은 제자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과 ‘해야 할 것들’을 당부하십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렇습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도 말고,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말라”
그리고 ‘해야 할 것’은 이렇습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든 먼저 평화를 빌어주며, 받아들여 차려주는 음식을 먹으며, 병자를 고쳐주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라”
여기서도 ‘해야 할 일의 첫 번째’는 ‘기도하는 일’입니다.
곧 ‘평화를 빌어주는 기도’입니다.
사실 루카복음에서는 '평화'는 하늘에서 내려온 기쁜 소식의 ‘첫 번째 선물’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천사들은 목동들에게 말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카 2,14-15)
천사들의 이 노래에는 ‘동사’가 없습니다.
이는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단순한 인사나 ‘평화가 있을 것이다’라는 예언의 노래가 아닌, ‘지금’ 그리고 ‘여기’에 ‘성취된 실재로 선포’되고 있습니다.
곧 예수님의 탄생으로 ‘하늘에는 영광’이, ‘땅에는 평화’가 성취됩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하늘에서만이 아니라 땅에서도 구원을 일구어 내시고 ‘평화’를 가져오심으로써 스스로 당신 이름을 영광되게 하십니다.
그러니 이제 ‘평화’를 빌어 줄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건네준 그 평화를 형제들 안에 심고 가꾸고 일구며 건네주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준미께서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신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마태 5,9)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말하여라.”
(루카 10,5)
주님!
저희의 평화가 아니라 당신의 평화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타인을 억눌러 이루는 평화가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어 이루는 평화가 되게 하소서!
분쟁과 갈등이 없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과 정의와 진리가 이루어진 참 평화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평화로운 사람이 되기보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고,
평화를 위해 일하다가 배척을 받을지라도 제 자신을 내어주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0.17.목요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107) 기념일
에페1,1-10 루카11,47-54
모두가 이쁘다
“너도 이쁘고 나도 이쁘다”
가을빛 완연해지기 시작한 10월 중순입니다.
예전 ‘늦가을(晩秋)’에 쓴 시가 생각났고 미소가 떠오르며 순간 행복했습니다
. ‘모두가 이쁘다’란 시입니다.
“가을엔
이쁘지 않은 게 하나도 없다
모두가 이쁘다
작은 풀잎, 나뭇잎들...
사랑으로 타오르는 단풍되니
모두가 이쁘다
너도 이쁘고 나도 이쁘다”<2000.11.10.>
아마도 하느님 눈에는 다 그러할 것입니다.
색깔, 크기, 향기, 모양등 제각각의 고유의 이쁜 꽃처럼 사람도 그러할 것입니다.
특히 하느님 눈에 성인은 더 그러할 것입니다.
오늘은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성인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나 그곳의 주교가 됩니다.
성 뽈리카르포와 함께 사도 요한의 제자로 사도교부에 속하며, ‘하느님을 공경하는 자’,
‘하느님을 모시고 다니는 자’라는 뜻의 ‘테오포로스’로 불리기도 합니다.
처음으로 보편교회의 의미인 가톨릭교회란 용어를 사용한 교부이기도 합니다.
당시 안티오키아는 로마와 더불어 그리스도교의 중심지였고 이곳에서 주교로 일하다가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순교하기까지의 여정을 보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성인은 쇠사슬에 매인채 병사들의 감시하에 배를 타고 해로로 또 육로로 곳곳을 걸어
기나긴 여정 끝에 로마에 도착하여 맹수형으로 순교합니다.
이런 와중에 일곱 개의 주옥같은 서신들이고 마지막은 성 폴리카르보에게 보낸 서간입니다.
참으로 순교가 너무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이런 서간을 썼다는 자체가 주교의 놀라운 믿음의 깊이를,
내적평화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서간에 나오는 감동적인 성인의 말씀입니다.
“믿음은 시작이요, 사랑은 완성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밀알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에페소인들에게 보낸 서간>
“이제 출산의 고통이 저에게 다가와 있습니다...제가 생명을 얻는 것을 방해하지 마시고,
또 제가 죽음의 상태에 있기를 원하지도 마십시오.”<로마인들에게 보낸 서간>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가톨릭 교회가 있듯이, 주교가 나타나는 곳에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로마인들에게 보낸 서간>
문득 캘커타의 성녀 데레사와 성 아오스팅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의 계시다.”
(Where there is love, there is God)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하라.”
(Love and do what you like)
오늘부터 제1독서는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 서간이 계속됩니다.
오늘 에페소서 의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진 은총에 대한 찬가가 감동적입니다.
그리스말 본문에서는 3절에서 14절까지가 한문장입니다.
그야말로 숨을 멈추지 않고, 단숨에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을 내리 노래합니다.
우리는 매주간 월요일 저녁성무일도때 이 찬미가를 노래합니다.
이 찬미에서는 하느님께서 거의 모든 동사의 주어로 등장하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찬미와 감사입니다.
1.우리는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살도록 불림 받았습니다.
2.우리는 사랑 안에서 그분앞에 설 수 있도록 불림 받았습니다.
3.우리는 그분의 자녀들로서 양자로 불림 받았습니다.
4.우리는 영광스러운 은총의 찬양이 되도록 불림 받았습니다.
5.예수님께 불림 받음으로, 우리는 그분의 피로 구속 받았습니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 불림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미입니다.
이런 그리스도 예수님과 일치의 사랑이 바오로 사도는 물론 이냐시오 주교의 순교를 가능하게 했음을 봅니다.
사랑의 순교입니다.
새삼 순교야 말로 주님 사랑의 극치이자 사랑이신 성체와의 결합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복음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주님의 무지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에 대한 불행선언은 계속됩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로 상징되는 악순환의 부정적 현실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됩니다.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예수님은 예언자들의 무덤을 꾸미고 공경하면서 예언자들을 박해하는 역설적 현실을 고발합니다.
그러니 과거를 똑바로 기억하게 하는 역사교육,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참으로 깨어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되는 악순환의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의인들에 대한 박해의 역사를 끊어버리지 않으면 지금까지 흘린 모든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자세가 참으로 결연합니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지식의 열쇠를 치워버리고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는 못된 심뽀를 지닌
율법 교사들 역시 불행선언의 대상이 됩니다.
이후에도 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립니다.
회개는 커녕 참으로 완강한 무지의 사람들입니다.
무지의 병이, 무지의 악이, 무지의 죄가 얼마나 깊고 큰지 ‘주님의 전사들’인 신자들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여전히 반복되는 무지의 역사입니다.
참으로 남북한은 물론 세상의 모든 광적(狂的) 호전(好戰)세력들은 자숙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린 한반도의 역사인데, 이제 남북이 좀 간신히 살만하게 되었는데
무지한 이들로 인해 참으로 어리석게도 일촉즉발의 전쟁상태라 우려합니다.
전쟁이 아니어도 힘든 세상에 해결해야할 난제들 투성이인데, 정말 더 이상 피흘리는 악순환의 역사는 없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기도합니다.
참으로 세상의 빛이자 소금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역할이 큽니다.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은 그리스도 예수님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되어,
'그리스도의 지혜'가 되어, ‘그리스도의 평화’가 되어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추(晩秋)의 계절, 날마다 저마다 사랑의 이쁜 꽃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주님과 함께, 주님과 하나되어 꽃같은 하루 꽃같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
10/18(금)[(홍)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되새김 구절
1. 루카 복음은 제게는 자비로운 하느님을 만나게 해 주는 복음입니다. 저 또한 따뜻한 이웃이 되도록 촉구하는 복음입니다. 사제는 주님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지닌 사람임을 알려 주는 복음입니다. 여러분에게 루카 복음은 어떤 복음인지요?(조재형 신부)
2. 루카 복음사가는 세 번째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로 추정됩니다.
그는 사도행전을 통해 초대교회 공동체 생활상과 복음전파 과정을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그가 집필한 루카 복음은 사랑과 자비의 복음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한없는 자비를 따뜻한 시선으로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인간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죄 많은 여인 이야기, 돌아온 탕자의 비유, 우도 직천당 사건 등입니다.
고통받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사람들,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던 사람들을 향한 연민의 마음으로 가득했던
루카 복음사가의 복음서는 2천 년 세월이 지나온 오늘 우리에게도 한없는 하느님의 자비를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말하여라.”
(루카 10,5)
주님!
저희의 평화가 아니라 당신의 평화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타인을 억눌러 이루는 평화가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어 이루는 평화가 되게 하소서!
분쟁과 갈등이 없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과 정의와 진리가 이루어진 참 평화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평화로운 사람이 되기보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고,
평화를 위해 일하다가 배척을 받을지라도 제 자신을 내어주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당시 안티오키아는 로마와 더불어 그리스도교의 중심지였고 이곳에서 주교로 일하다가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순교하기까지의 여정을 보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성인은 쇠사슬에 매인채 병사들의 감시하에 배를 타고 해로로 또 육로로 곳곳을 걸어
기나긴 여정 끝에 로마에 도착하여 맹수형으로 순교합니다.
이런 와중에 일곱 개의 주옥같은 서신들이고 마지막은 성 폴리카르보에게 보낸 서간입니다.
참으로 순교가 너무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이런 서간을 썼다는 자체가 주교의 놀라운 믿음의 깊이를,
내적평화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서간에 나오는 감동적인 성인의 말씀입니다.
“믿음은 시작이요, 사랑은 완성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밀알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에페소인들에게 보낸 서간>(이수철 신부)
10/18(금)[(홍)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제119일 기도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오늘의 말·샘 기도>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말하여라.”
(루카 10,5)
주님!
저희의 평화가 아니라 당신의 평화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타인을 억눌러 이루는 평화가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어 이루는 평화가 되게 하소서!
분쟁과 갈등이 없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과 정의와 진리가 이루어진 참 평화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평화로운 사람이 되기보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고,
평화를 위해 일하다가 배척을 받을지라도 제 자신을 내어주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0월18일(금) 4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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