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11월 13일 수요일[(녹) 연중 제32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주님, 제 기도 당신 앞에 이르게 하소서. 제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본기도
저희에게 해로운 것을 모두 물리쳐 주시어
저희가 평안한 몸과 마음으로
자유로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티토서 말씀입니다.3,1-7
사랑하는 그대여, 1 신자들에게 상기시켜,
통치자들과 집권자들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며
모든 선행을 할 준비를 갖추게 하십시오.
2 남을 중상하지 말고 온순하고 관대한 사람이 되어
모든 이를 아주 온유하게 대하게 하십시오.
3 사실 우리도 한때 어리석고 순종할 줄 몰랐고 그릇된 길에 빠졌으며,
갖가지 욕망과 쾌락의 노예가 되었고,
악과 질투 속에 살았으며, 고약하게 굴고 서로 미워하였습니다.
4 그러나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호의와 인간애가 드러난 그때,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6 이 성령을 하느님께서는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의 은총으로 의롭게 되어,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따라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
○ 당신 이름 위하여,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 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
○ 원수들 보는 앞에서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
○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모든 일에 감사하여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너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이다.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이 제사를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성자의 수난을 기념하며
믿음과 사랑으로 그 신비를 따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
<또는>
루카 24,35 참조
빵을 나눌 때, 제자들은 주 예수님을 알아보았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저희가 성체로 힘을 얻고 감사하며 자비를 바라오니
저희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성령의 힘으로 저희 삶을 변화시켜 주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전삼용 요셉 신부님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루카 17,11-19
이것이 빠진 묵상은 기도가 될 수 없다
2014년 5월 15일에 방영된 EBS ‘리얼체험 땀: 링 위에서 세상을 배우다’는 이런 이야기입니다.
방황하던 한 고교생 영대(19)가 있습니다. 영대가 일정 시간 권투를 배우며 땀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영대는 ‘자신은 방황하는 중이고,
그런 자신을 붙잡아줄 강한 스승이 필요하다.’라고 말합니다.
영대의 스승은 박현성 관장(47)입니다. 과거 자기 모습과 꼭 닮은 모습인 영대를 보고
제자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합니다. 둘의 첫 만남은 긴장의 연속입니다.
영대는 박현성 관장 앞에서 의자까지 들며 위협합니다. 그러나 박 관장은 영대의 실력이
형편없음을 링 위에서 보여줍니다. 영대는 갈등합니다.
권투를 계속 배울지. 그리고 배우기로 합니다.
이제 헤어질 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박 관장은 다시 마지막 권투 스파링하자고 합니다.
박 관장은 과거 권투 유망주였지만 올림픽 문턱에서 두 번이나 좌절한 후 폭력조직에 가담하고,
삶을 비관해 분신자살까지 시도하면서 인생에 기권을 선언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온몸에는 화상의 흔적이 있습니다. 박 관장은 자기 다리를 만지게 합니다.
딱딱하게 굳어 굽혀지지도 않는 몸으로 자신을 가르친 것입니다.
마지막 스파링에서는 영대가 자신을 한 번도 때리지 못하자 양손을 등 뒤로 하고
한 대 강하게 맞아줍니다. 방송 PD가 묻습니다.
“사부님은 왜 헤어지기 전에 대결하자고 하셨을까요?”
“점점 나아지는 내 모습을 보라고 그런 거 아닐까요? 저한테…. 느껴보라고.
딱 하나 정확한 게 하나 있어요. 생각하는 게 바뀌었어요.”
“어떻게요?”
“‘난 안 되겠다.’ 이런 생각 말고, 이젠 ‘내가 안 돼도, 한다.’라고 믿어보자.
이런 식으로. ‘할 수 있다고 믿어보자.’ 이런 식으로.”
2010년 7월 대구지방법원 모 부장판사가 평소 판사 생활에 심한 회의를 느끼며 힘들어하며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하여 생을 마감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판사는 막말로 얘기하면 세상 사람들이 토하거나 배설한 물건들을 치우는
쓰레기 청소부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자괴감을 드러낸 적이 있었습니다.
“판사는 의심하는 직업이며, 심지어 아내와 부모님 말씀마저 의심하게 한다”라며
“참으로 한심하고 끔찍한 직업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글을 자신이 다니는 교회 사이트에 올렸습니다.
그도 분명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의 기도에서 무엇이 빠져있었을까요? 지향입니다.
방향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열 명의 나병환자를 고쳐주십니다.
그 열 명 중에 유일한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우리가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병을 치유해 주신 것이 곧 그 사람들의
구원을 의미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돌아와 감사와 영광과 찬미를 드렸을 때야
비로소 그 사람의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묵상기도가 감사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기도가 아닙니다.
영대는 자기를 위해 희생하는 스승을 묵상합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자신이 관장의 얼굴을 때릴 수 있을 수준으로 향상되었음을 알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하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감사하게 되고 새로운 삶으로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태어날 때부터 소뇌를 다쳐 뇌성마비 장애를 얻었습니다.
여러 차례 반복되는 이사와 찢어지게 가난한 자신을 보면서 그녀는 늘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때 하느님은 ‘말하는 대로 써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왼손에 토막연필을 쥐고 받아 적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느님이~”
그녀는 너무 어처구니없는 말씀에 울며 소리쳤습니다.
“아니요! 못 쓰겠어요! 공평해 보이지 않아요! 내겐 아무것도 없어요!”
하느님은 ‘시키는 대로 공평하신 하느님이라 써라!’ 하셨고, 그녀와의 반복되는 공방전 속에
결국 하느님이 승리하셨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공평하신 하느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느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이렇게 ‘나’라는 시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가사로 한국 복음성가 작사 대상을 수상하고
그녀의 책도 기독교 저서 최우수 서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과정이 묵상입니다. 묵상에 십자가가 빠지고, 그 때문에 감사와 찬미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기도가 아닌 시간 낭비를 한 것입니다.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2.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연중 제32주 수요일
복음: 루카 17,11-19: 한센병 환자 열 사람의 치유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다가 10명의 한센병 환자들을 만나신다.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14절)
예수께서는 그들이 영적으로 깨끗해지도록 율법에 따라 그들을 사제들에게 보내신다.
아울러 치유도 해 주셨다.
그들은 사제들에게 가는 동안에 깨끗해졌다.
한센병 환자들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놀라운 사실을 체험하였다.
주님께서 그들이 치유되기를 바라시자 자신들이 불행에서 구원받은 것이다.
여기서 사마리아인인 한센인이 예수님께 돌아와 엎드려 감사드렸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17절)
아홉은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버리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를 고쳐주신 분에 대해서보다 나병이 나았다는 사실에 더 마음이 가 있었다.
결국, 한 사람은 나머지 아홉보다 훨씬 많은 은총을 받았다.
병이 나은 것 말고도 주님께 이런 말씀을 들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19절)
예수님께서는 이것으로 이스라엘이 마음이 굳어 감사할 줄 모르는 백성임을 보여주신다.
외국인인 사마리아 사람은 유다인이 아닌 타민족이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감사할 줄 아는 반면 유다인은 그토록 은총을 입었으면서도 감사할 줄 몰랐다는 것을 알려준다.
여기서 과연 우리는 나에 대해서 이런 반성을 해 보아야 한다.
나는 과연 신앙인으로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며 사는
한 사람의 사마리아인인지를!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면, 모든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모두 하느님 앞에 똑같이 사랑받는 귀중한 존재임을 알고 서로 사랑하며 항상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감사의 눈>
오늘 복음에서 치유받은 열 명의 나병환자 중에 단 한 명만이 돌아와 감사를 드렸고, 그것도 이방인 취급을 받던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루카 17,18)
만약 오늘 우리가 감사하지 않은 채 살고 있다면, 우리는 그 아홉 중에 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나머지 아홉은 돌아와 감사드리지 않았을까?
또 돌아와 감사를 드린 사마리아 사람이 감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열 명의 나병환자와의 인터뷰'라는 존슨 그나나바라남의 꽁트에서 한 기자는 ‘시간의 기차’를 타고 그 당시로 돌아가 그들을 개별적으로 만나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감사하지 않은 이들 중에 한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내가 치유된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이 그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소. 혹시 재발할지 모르지 않소. 그래서 나는 되돌아가지 않았소.”
또 다른 사람은 “예수님은 당신이 행하시는 선행에 대해 사람들에게 감사를 기대하지 않는 분이라고 생각했소. 그래서 나는 감사드리는 일을 그만두었소.”
또 다른 사람은 “다시 볼 수 있다는 기쁨에 감사하는 일을 까맣게 잊었소.”
또 다른 사람은 “나는 감사를 드리고 싶었소. 그런데 대부분이 돌아가지 않았소. 나는 언제나 다수를 따르오. 그래서 나도 돌아가지 않았소.”
그런데 감사를 드린 사마리아 사람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나는 예수님께 감사드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단지 치유되어 건강을 회복한 사실에 대한 기쁨에 머물며, ‘치유를 주신 분의 사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이 돌아와 감사를 드린 것은, 건강을 회복하게 된 것보다 오히려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었고, 그것은 ‘치유를 주신 분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그들의 차이는 ‘돌아옴’과 ‘새로운 출발’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은 베풀어진 자비를 입고, 그에 합당한 ‘응답의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감사는 그를 새로운 구원의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리스도께로 돌아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감사에 합당한 삶으로의 변화된 삶이 바로 믿음의 삶이요 기적이요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와 감사드린 사마리아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루카 17,19)
그렇습니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이 하느님께 대한 찬양과 감사를 불러온 것입니다.
그러니 나병의 ‘치유’가 구원인 것이 아니라, 그 치유가 하느님의 사랑임을 ‘믿는 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은 ‘감사’를 불러오고 감사에 합당한 삶으로의 전환을 가져옵니다.
이처럼 감사하는 일은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이란 아무 것도 없음을 의식하면서, 모든 삶을 지속시켜주고 있는 많은 기적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일입니다.
곧 하느님의 자비의 신비를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모든 것 안에서 기적을 일으키고 계시는 그분을 보는 눈!
우리 안에서 살아계시며 활동하시는 그분을 볼 줄 아는 눈이야말로 바로 감사의 눈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루카 17,16)
주님!
감사하게 하소서!
청하기도 전에 듣고 계시는 당신께 감사하게 하소서.
베풀어지기도 전에 이미 품으신 당신의 사랑에 감사하게 하소서.
치유보다 치유시키는 당신의 사랑에 감사하게 하소서.
모든 것 안에 깃든 당신의 자비와 사랑에 감사하게 하소서!
무감각하지 않게 하시어, 치유를 받고도 감사할 줄을 모르는 배은망덕은 말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11.12.화요일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1580-1623) 기념일
티토2,1-8.11-14 루카17,7-10
참 아름다운 주님의 종의 삶
“겸손, 순종, 섬김”
“주님만 바라고 선을 하라,
네 땅에 살면서 태평을 누리리라.
네 즐거움일랑 주님께 두라,
네 마음이 구하는 바를 당신이 주시리라.”(시편37,3-4)
오늘 종의 처지 비유가 짧지만 참 심오합니다.
참 아름다운 종의 삶을 보여줍니다. 참으로 겸손히 섬기는 종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복음 내용이 소중해 전문을 다시 인용해 나눕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하겠느냐?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하지 않겠느냐?
종이 분부를 받은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대로 다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바로 이 종처럼 사는 이가 참 아름다운 성인의 삶입니다.
묵묵히 자기 책무를 마땅히 다하는 순종과 겸손, 섬김의 자세입니다.
이런 복음의 종과 같은 이들이 의인들이며 오늘 화답송 후렴은 이들을 두고 하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네.”(시편37,39ㄱ)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가 아니라 종과 주인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책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해서 하느님께 보상을 계산하거나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도 이런 심정의 발로입니다.
“실상 내가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내게 자랑거리는 못됩니다.
그것은 내게 부과되는 책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는 불행합니다.”
감히 말하건데 매일 강론을 쓰는 제 심정도 이러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이기에 전혀 자랑할 일이 못됩니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하느님 은혜에 감사할 뿐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빚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께 무한히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갑니다.
아무리 갚는다 해도 극히 미미한 일부분일 것입니다.
사실 겸손히 주님을 섬기는 영적 기쁨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런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오래전 "들꽃같이 사는 게 잘 사는 거다"란 시가 생각납니다.
“살아있음이 찬미와 감사다
기쁨이요 축복이다
물주지 않아도 거름주지 않아도 약치지 않아도
가난한 땅에서들 무리 이루어 잘도 자란다
작고 수수하나 한결같이 맑고 곱다
탈속의 아름다움이다
최소한의 자리, 양분, 소비의 가난이지만
하늘 바람에 유유히 휘날리는 샛노란 별무리 고들빼기꽃들
참 자유롭고 행복하다
가난한 부자다
들꽃같이 사는 게 잘 사는 거다”<2001.5.20.>
그러니 이런 하느님 은혜를 생각한다면 불평이나 불만은, 원망이나 절망, 실망은
꿈에도 상상치 못할 것입니다.
그저 주어지는 책임을, 운명을 온마음, 온사랑으로 묵묵히 끝까지 감당할 것입니다.
저절로 겸손히 순종하고 섬기는 자세로 살 수 뿐이 없을 것이고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런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종다운 자세입니다.
바로 이런 심정을 대변하는 미사중 ‘연중 평일 감사송 4’입니다.
“아버지께는 저희의 찬미가 필요하지 않으나,
저희가 감사를 드림은 아버지의 은사이옵니다.
저희 찬미가 아버지께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으나,
저희에게는 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도움이 되나이다.”
우리가 아쉬워서, 필요해서, 드리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이지 하느님은 전혀 우리에게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요 진인사대천명입니다.
정말 이런 겸손한 섬김과 순종의 삶에 항구할 때 하느님께서도 감동하시어 겸손히 우리를 섬기시고
순종하십니다.
옛 어른의 다음 말씀도 오늘 복음의 지혜와 일치합니다.
“초연함이란 욕망에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욕심에 휘둘리지 않도록 마음의 중심을 세우는 것이다.”<다산>
주인과 종의 자세를 확고히 함이 바로 초연함의 비결이자, 마음의 중심을 세우는 아름다운 삶의 비결임을
깨닫습니다.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
이를 일러 수신(修身)이라 하니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대학>
마음을 바르게 하는 수신이란 바로 주인과 종의 관계로 우리의 신원을 분명히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주인이신 하느님의 종으로서, 그 관계에 투철한 겸손과 순종, 섬김의 삶을 사는 이가
참 아름다운 성인입니다.
오늘 11월12일은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주님의 종으로서 그 책무를 다하다 순교한 성인입니다.
성인은 1580년 우크라이나의 동방교회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가톨릭 교육을 받았고
뛰어난 상인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뜻을 저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갑니다.
성인은 1618년 러시아의 비텝스코 주교로 착좌한 후 희랍정교회와 로마교회와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다가 라틴화되어 가고 있다고 비난하는 아교도들의 손에 목숨을 잃습니다.
말그대로 순교의 죽음이요, 1867년 비오 9세 교황은 요사팟 주교를 시성하니
동방교회에서는 최초로 성인품에 오릅니다.
주님의 종으로서 묵묵히 섬김과 순종의 삶을 살다가 순교한 겸손한 성 요사팟 주교입니다.
하느님의 종답게 겸손히 섬기고 순종하며 성인다운 삶을 살 때 주님의 미사은총이 우리를 돕습니다.
제1독서 티토의 고백 그대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 하시는 일입니다.
“이 은총이 우리를 교육하여,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버리고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줍니다.
우리의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해줍니다.”(티토2,13). 아멘.
11/13(수)[(녹)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되새김 구절
1.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우리가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병을 치유해 주신 것이 곧 그 사람들의
구원을 의미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돌아와 감사와 영광과 찬미를 드렸을 때야
비로소 그 사람의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묵상기도가 감사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기도가 아닙니다.(전삼용 신부)
2. 모든 것에 대해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모두 하느님 앞에 똑같이 사랑받는 귀중한 존재임을 알고 서로 사랑하며 항상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조욱현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루카 17,16)
주님!
감사하게 하소서!
청하기도 전에 듣고 계시는 당신께 감사하게 하소서.
베풀어지기도 전에 이미 품으신 당신의 사랑에 감사하게 하소서.
치유보다 치유시키는 당신의 사랑에 감사하게 하소서.
모든 것 안에 깃든 당신의 자비와 사랑에 감사하게 하소서!
무감각하지 않게 하시어, 치유를 받고도 감사할 줄을 모르는 배은망덕은 말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11월12일은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주님의 종으로서 그 책무를 다하다 순교한 성인입니다.
성인은 1580년 우크라이나의 동방교회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가톨릭 교육을 받았고
뛰어난 상인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뜻을 저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갑니다.
성인은 1618년 러시아의 비텝스코 주교로 착좌한 후 희랍정교회와 로마교회와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다가 라틴화되어 가고 있다고 비난하는 아교도들의 손에 목숨을 잃습니다.
말그대로 순교의 죽음이요, 1867년 비오 9세 교황은 요사팟 주교를 시성하니
동방교회에서는 최초로 성인품에 오릅니다.
주님의 종으로서 묵묵히 섬김과 순종의 삶을 살다가 순교한 겸손한 성 요사팟 주교입니다.
(이수철 신부)
11/13(수)[(녹)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제 145-15 기도
복음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오늘의 말·샘 기도>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루카 17,16)
주님!
감사하게 하소서!
청하기도 전에 듣고 계시는 당신께 감사하게 하소서.
베풀어지기도 전에 이미 품으신 당신의 사랑에 감사하게 하소서.
치유보다 치유시키는 당신의 사랑에 감사하게 하소서.
모든 것 안에 깃든 당신의 자비와 사랑에 감사하게 하소서!
무감각하지 않게 하시어, 치유를 받고도 감사할 줄을 모르는 배은망덕은 말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11월13일(수) 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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