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2년 10월 22일 토요일[(녹) 연중 제29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2년 10월 22일 토요일[(녹) 연중 제29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입당송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본기도
저희가 언제나 성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정성껏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4,7-16
형제 여러분, 7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8 그래서 성경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높은 데로 오르시어
포로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9 “그분께서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분께서 아주 낮은 곳
곧 땅으로 내려와 계셨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10 내려오셨던 그분이 바로 만물을 충만케 하시려고
가장 높은 하늘로 올라가신 분이십니다.
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2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3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14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닐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사람들의 속임수나 간교한 계략에서 나온 가르침의
온갖 풍랑에 흔들리고 이리저리 밀려다닙니다.
15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16 그분 덕분에, 영양을 공급하는 각각의 관절로 온몸이 잘 결합되고 연결됩니다.
또한 각 기관이 알맞게 기능을 하여 온몸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 “주님의 집에 가자!” 할 때, 나는 몹시 기뻤노라.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우리 발이 이미 서 있노라. ◎
○ 예루살렘은 튼튼한 도성, 견고하게 세워졌네. 그리로 지파들이 올라가네. 주님의 지파들이 올라가네. ◎
○ 이스라엘의 법을 따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네. 그곳에 심판의 왕좌, 다윗 집안의 왕좌가 놓여 있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악인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살기를 바란다.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1-9
1 그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3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4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5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6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7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8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저희가 자유로운 마음으로 이 예물을 바치오니
주님의 은총으로 저희를 씻으시어
저희가 주님께 드리는 이 성찬의 제사로 더욱 깨끗해지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주님은 죽음에서 목숨을 건지시고, 굶주릴 때 먹여 살리신다.
<또는>
마르 10,45 참조
사람의 아들은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저희가 천상 잔치에 자주 참여하여
현세에서 도움도 받고 영원한 신비도 배우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2022년 10월 22일 토요일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매일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오늘 복음은 이스라엘에서 벌어진 두 비극적인 사건을 소개합니다.
하나는 유다 총독이던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학살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열여덟 사람이 희생된 사건입니다.
당대의 유다인들은 어떤 재앙이 발생하였을 때,
그 원인을 희생자들의 잘못에서 찾는 ‘인과응보’적 사고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위의 두 사건을 보고서도 자연스럽게 희생자들이 저지른 죄악과의 연관성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에서 오히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경고로 이야기의 초점을 옮기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이어지는 무화과나무 이야기는 회개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해마다 열매를 맺는 무화과나무에 무려 삼 년이나 열매가 없었다는 것은,
무화과나무로 상징되는 하느님 백성이 회개의 열매 맺기를 계속해서 거부하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삼 년, 곧 세 번씩이나 기회를 주었던 주인은
이제 포도 재배인을 불러서 그 무화과나무를 잘라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재배인은 주인을 만류하며
한 해 동안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는 정성과 수고를 조금만 더 해 보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누리는 다양한 성사의 은총은
회개의 열매를 맺도록 예수님께서 거저 주신 좋은 거름들입니다.
우리는 분명 은혜로운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은혜로운 시기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예 기간이 ‘한 해’라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회개의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이 은혜로운 시기에 우리는 정말로 회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아버지 하느님의 인내심을 시험하며
여전히 그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았으면 합니다.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미국은 운전면허증으로 국내선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습니다. 운전면허증이 신분증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여권을 지니고 다니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번거로움이 없습니다. 내년 3월부터는 새로운 운전면허증을 발급 받은 사람만이 비행기 탑승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새로운 운전면허증의 명칭은 ‘리얼 아이디(Real ID)’입니다. 성격이 급한 저는 새로운 운전면허증 발급을 위해서 3번이나 발급 처를 방문하였지만 쉽게 발급받지 못하였습니다. 아직 기존의 면허증의 유효기간이 많이 남았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서류가 미진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예약한 장소로 가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간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4번째 방문 만에 저도 새로운 운전면허증을 발급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알아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입니다. 신앙인의 범주는 다양합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아직 복음의 기쁨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그런 사람을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선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에 속한 사람입니다. 예비자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결혼 성소를 가진 신앙인이 있습니다. 수도 성소를 가진 수도자들이 있습니다. 사제성소를 받는 성직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이 말에만 머무는 사람이 있고, 믿음이 삶으로 드러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성숙한 신앙인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닐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사람들의 속임수나 간교한 계략에서 나온 가르침의 온갖 풍랑에 흔들리고 이리저리 밀려다닙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그 직분에 의해서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그 소유에 의해서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하느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는 사람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는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돌아온 탕자’는 회개한 사람을 받아들이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돌아온 동생을 바라보는 형은 아버지에게 불만을 이야기합니다.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또한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비를 베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는 것이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죄를 지어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못해서 구원받을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회개한 것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금연을 한다고 말을 하면서 담배를 피우면 진정한 금연이 아닙니다. 회개는 인식의 전환이고, 인식의 전환은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이것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준 이야기는 ‘자캐오’입니다.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났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주님 제가 가진 것의 절반을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겠습니다. 제가 빌린 것이 있으면 4배로 갚아 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가족은 구원 받았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본인의 뜻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성모님께서 그렇게 사셨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성인 성녀들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욕심 때문에, 체면 때문에, 시기와 질투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못합니다. 비우는 사람이, 나누는 사람이, 먼 곳을 보는 사람이 하느님의 뜻대로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이라 할지라도 죽기를 바라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악인이라고 해도 돌아서서 살기를 바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물며 당신이 사랑하시는 신자들과 사제들을 위해서는 더욱 기다려 주시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 올 것을 더욱 바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한 기준을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가 ‘죄, 악, 죽음’에서 구원받기 위해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란 잘못된 길에서 올바른 길로 방향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삶의 중심이 ‘돈, 명예, 권력, 욕심’이었다면 내 삶의 중심을 ‘믿음, 사랑, 희망’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듯이,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신앙인은 참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21021.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루카 12,56)
오늘 <복음>은 “이 시대”의 징표를 풀이하고 대처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을 책망하여 말씀하십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루카 12,56)
사실, 군중들은 자연의 징표나 자신 몸의 징표는 잘 읽고 대처하면서 ‘시대의 징표’는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과 같은 거짓 지도자들의 판단에 의존하면서 책임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하고, 그들의 회피와 위선을 질책하십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시대의 징표’를 복음으로 읽어내지 않고 세상의 눈으로 읽으면서 그러한 눈으로 세상을 읽고 있는 언론에 의존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루카 12,58)
바르게 행동하라는 엄한 경고입니다. “징조”를 잘 읽고 행동하라는 말씀입니다. 곧 재판에 붙여지기 전에 화해라하는 말씀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역사의 징조를 읽으셨고, “때가 차자”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오시어 빛을 비추셨습니다. 또한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는 끊임없이 시대의 징조를 읽고 해석하고 응답해 왔습니다. 그것은 특별히 교종들의 <사회회칙>에서 잘 드러납니다.
예를 들면, 산업혁명시대의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에 대응하여 레오 13세 교종께서 1891년에 [새로운 사태]라는 회칙을 발표하셨고, 이에 대한 교회의 응답을 촉구하는 비오 11세께서는 1931년에 회칙 [40주년]을 발표하셨습니다. 또 요한 23세 교종께서는 [지상의 평화](1961)에서 냉전시대의 인권을, 바오로 6세께서는 [민족들의 발전](1967)에서 식민화와 빈부격차와 문화충돌을 대처하셨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노동하는 인간](1981)과 [백주년](1991)에서 [새로운 사태]의 90주년과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사회문제를 재해석하셨고, 베네딕도 16세께서는 [진리안의 사랑](2009)에서 자본주의 확산과 세계화의 문제점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5년,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환경을 주제로 한 첫 번째의 회칙인 [찬미받으소서]에서,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원으로 기술만능주의와 왜곡된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통합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다양한 차원의 대화와 생태 교육을 촉구하셨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끊임없이 “시대의 징조”를 읽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오늘의 사회, 윤리적인 문제에 적용하여 해석하고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복음의 기쁨]에서, “모든 공동체가 시대의 징표를 주의 깊게 살피도록 권고”(51항)하셨습니다. 그리고 돈이 우상화 된 신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물질만능의 물신주의의 병폐와 무관심의 세계화 등을 지적하시면서,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하는 교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난한 교회, 곧 함께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공빈(共貧)의 시대를 여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역시, “이 시대가 징표”를 읽고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라”는 예수님의 촉구에 응답하며, 이 시대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루카 12,56)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 할 줄 알면서,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루카 12,56)
주님!
거짓과 어둠이 판을 치는 이 시대에, 세상의 빛이 되게 하소서!
시대의 징조를 읽어내고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대처하게 하시고,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 밀려나는 이 시대에 가난을 함께 살게 하소서.
말과 혀가 아니라 진리 안에서 행동으로 사랑하게 하시고,
위선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하느님 중심의 삶
-시대의 징표를 헤아리는 식별의 지혜-
“자리 탓하지 말자
어디든
뿌리내려
활짝 꽃피어 내면
거기가
꽃자리
하늘나라이다”-2022.9.18.
수도원 홈페이지 묵상란에 마지막으로 올린 시입니다. 한 달간 이러저런 시련과 어려움으로 긴박하게 지냈던 한 달이기에 시상이 떠오를 여유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할 때, 오늘 여기가 구원의 꽃자리, 하늘나라이며 식별의 지혜도 선물 받습니다. 다른 곳 아닌 오늘 여기서 찾아서 살아야 할 행복입니다.
하루하루 일기 쓰듯 하는 강론입니다. 어제는 참 평화로웠던 하루였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믿음으로 충실히 살아가는 여러 착한 분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어제 집안에서 가장 큰 어른이자 최고령의 1922년생 만 100세 사촌 형님을 찾아 고백성사를 드렸습니다. 100세 연세에도 총명하시고 눈도 맑고 어린 아이처럼 착하고 순수하시기에 저리도 주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혼자 계실 수 없어, 효자로 소문난 두 아들과 평생 43년 동안 충복忠僕처럼 형님을 섬겨온 기사님이 서로 교대하며 24시간 함께 하며 돌본다 합니다. 마침 미국에 있는 딸 부부가 방문하여 약 2주간 아버지를 시중 들고 있었습니다. 집안 식구가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하기에 참 밝고 평화로운 분위기였습니다. 사촌 형님의 고백성사 보속 말씀 처방전도 미리 A4 용지에 붓펜으로 크게 써갔습니다.
“두려워 말라, 성철 사도 요한! 내가 너의 곁에 있다. 걱정하지 말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다. 내가 너의 힘이 되어 준다. 정의의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준다.”(이사41,10)
이 말씀은 저의 여섯째 숙부가 임종 전 일주일동안 꼭 잡고 지냈던 말씀입니다. 이어 조카인 글라라 따님으로 부터 예쁜 책과 더불어 감사의 메시지가 담긴 서신을 받았습니다. 날마다 제 강론을 숙독하는 신심 좋은 조카입니다.
“신부님, 잘 지내시지요. 매일 받아보는 신부님 강론은 정말 마음에 잘 와 닿아요. 이런저런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그날의 성인 이야기, 여러 묵상 제목, 그리고 자연의 풍요로움을 잘 조화시켜서 항상 흥미진진하면서도, 마음을 정화시켜 주지요.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진정성 가득 담긴 내용에 감사했습니다. 큰 건강 바라지 않습니다. 죽는 그날까지 매일 강론 쓰고, 미사 봉헌하고 걸을 수 있는 건강 주시어 일상에 충실할 수 있다면 감사할 뿐이고 이는 제 유일한 소원입니다. 참 좋은 축복은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공동체의 일치도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가능합니다. 획일적 일치가 아니라 다양성의 일치입니다. 함께 살아간다는 자체가 중요하고도 힘든 수행입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의 수도공동체를 이뤄 살 수 있음도 각자 삶의 자리에서 바라보는 방향이 같기에, 하느님 중심을 바라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공동체의 일치를 촉구하는 바오로 사도의 금과옥조의 말씀이 참 적절하고 고마워 전부 인용합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그대로 오늘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하나의 영성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모두 하나에 속한 신자들입니다. 이렇게 주님과 하나 되어 살 때 참 행복이요 영원한 생명의 구원입니다. 분열보다 고약하고 해로운 것은 없습니다. 악마가 끊임없이 즐겨 시도하는바 분열이요, 하느님이 끊임없이 시도하는 바가 개인은 물로 공동체의 내적 일치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일치의 삶을 날로 깊어지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평생 날마다 바치는 우리 수도공동체의 공동전례기도입니다.
“그 무엇도 그리스도보다 앞세우지 마라.”
“그 무엇도 하느님의 일보다 앞세우지 말라.”
베네딕도 규칙에 나오는 성인의 두 명령입니다. 그리스도 중심, 하느님 중심의 일치의 삶에 결정적 중요성을 지니는 하느님의 일인 공동전례기도입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를 통해 주님과의 일치가 깊어질 때 주님을 닮아 단순과 순수, 겸손과 온유, 자비와 지혜의 선물입니다. 무엇보다 시대의 징표를 식별할 수 있는 지혜도 선물 받습니다. 결코 복음의 식별력 없는 무지한 군중들처럼 꾸중 듣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시대의 징조를 풀이할 줄 모르는 이들, 지혜의 눈, 혜안이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래서 눈먼 맹신, 광신인 것입니다. 개신교의 유명한 신학자인 칼 바르트가 성경을 신문 보듯 하고, 신문을 성경 보듯 했다는 일화도 생각납니다. 시대의 징표를 헤아리기 위한 예언자적 자세입니다.
이어지는 복음의 주제는 “늦기 전에 화해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입니다. 무엇보다 회개와 화해는 늦출 수 없습니다. 그날 맺힌 것은 그날 풀어야 합니다. 이 또한 분별력의 지혜이자 은총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한 자에게 주시는 이런 분별력의 지혜입니다. 차고 넘치는 정보와 지식의 시대, 분별력의 지혜가, 혜안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하느님 중심의 일치의 삶을 굳게 하시며, 참 좋은 분별력의 지혜도 지니게 하십니다.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시편24,3-4ㄱㄴ). 아멘.
1. 이 은혜로운 시기에 우리는 정말로 회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정천 신부)
2. 돌아온 동생을 바라보는 형은 아버지에게 불만을 이야기합니다.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또한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비를 베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는 것이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본인의 뜻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내 삶의 중심이 ‘돈, 명예, 권력, 욕심’이었다면 내 삶의 중심을 ‘믿음, 사랑, 희망’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듯이,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조재형 신부)
3. 말과 혀가 아니라 진리 안에서 행동으로 사랑하게 하시고,
위선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아멘. (이영근 신부)
4. 참 좋은 축복은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공동체의 일치도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가능합니다. 획일적 일치가 아니라 다양성의 일치입니다. 함께 살아간다는 자체가 중요하고도 힘든 수행입니다. (이수철 신부)
[9.6~12.14일 100일기도 중 제47일(47/100일) 기도]
주님!
내 삶의 중심이 ‘돈, 명예, 권력, 욕심’이었다면
내 삶의 중심을 ‘믿음, 사랑, 희망’으로 바꾸게 하소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듯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게 하소서. 아멘.
- 2022년 10월22일(토) 5시40분...수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