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2년 12월 10일 토요일[(자) 대림 제2주간 토요일 ]/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2. 12. 10. 05:59

[매묵]2022년 12월 10일 토요일[(자) 대림 제2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백] 로레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입당송

시편 80(79),2.4 참조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주님, 오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하느님의 찬란한 빛으로 저희 마음을 밝히시어
밤의 어둠을 모두 몰아내시고
외아드님께서 오실 때에 저희가 빛의 자녀로 드러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제1독서

<엘리야가 다시 오리라.>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48,1-4.9-11
그 무렵 1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2 엘리야는 그들에게 굶주림을 불러들였고
자신의 열정으로 그들의 수를 감소시켰다.
3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리고
세 번씩이나 불을 내려보냈다.
4 엘리야여, 당신은 놀라운 일들로 얼마나 큰 영광을 받았습니까?
누가 당신처럼 자랑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9 당신은 불 소용돌이 속에서 불 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
10 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1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80(79),2ㄱㄷㄹ과 3ㄴㄷ.15-16.18-19(◎ 4)
◎ 하느님,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
○ 이스라엘의 목자시여, 귀를 기울이소서.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분, 광채와 함께 나타나소서. 당신 권능을 떨치시어, 저희를 도우러 오소서. ◎
○ 만군의 하느님, 어서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살피시고, 이 포도나무를 찾아오소서. 당신 오른손이 심으신 나뭇가지를, 당신 위해 키우신 아들을 찾아오소서. ◎
○ 당신 오른쪽에 있는 사람에게, 당신 위해 키우신 인간의 아들에게 손을 얹으소서. 저희는 당신을 떠나지 않으오리다. 저희를 살려 주소서. 당신 이름을 부르오리다. ◎

복음 환호송

루카 3,4.6
◎ 알렐루야.
○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알렐루야.

복음

<엘리야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10-13
산에서 내려올 때에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11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13 그제야 제자들은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예물을 정성껏 봉헌하며 비오니
주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신비의 거행으로
저희 구원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대림 감사송 1 : 그리스도의 두 차례 오심>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인간으로 처음 오실 때에는
구약에 마련된 임무를 완수하시고
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나이다.
그리고 빛나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는
저희에게 반드시 상급을 주실 것이니
저희는 지금 깨어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묵시 22,12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곧 간다. 상도 가져가, 사람마다 제 행실대로 갚아 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주님께서는 인자하시니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어
다가오는 성탄 축제를 준비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엘리야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지난 그리스도 왕 대축일 때입니다. 제의실에서 성전으로 가려는데 복사 중에 나이가 가장 많은 다니엘이 오늘은 성당 안으로 입당하자고 제안 하였습니다.’ 그날은 날씨가 춥고 바람이 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복사 중에 가장 나이가 적은 라파엘이 성당 밖으로 입당하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복사들과 독서자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나이가 많은 복사와 어른들은 성당 안으로 입당하자고 하였고, 나이가 어린 복사들은 성당 밖에서 입당하자고 하였습니다. 다수의 의견을 들어서 성당 안으로 입당하려고 했는데 전례분과장님이 오늘은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니 성당 밖에서 입당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조금 춥더라도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생각하며 성당 밖으로 입당하였습니다. 문득 생각하였습니다. 신앙은 다수결의 원칙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앙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신앙은 의미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사람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비록 그 길이 험난할 지라도, 비록 그 길 때문에 박해를 받더라도 신앙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는 참된 신앙의 길을 걸었던 엘리야를 칭송합니다. 엘리야는 바알의 거짓 예언자들과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놓고 대결하였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그 수가 많았지만 패하였습니다. 그들은 거짓된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가뭄이 들었을 때 하느님께 청하여 비가 올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가난한 과부의 정성어린 봉헌을 칭찬하며 하느님께 청하여 가뭄이 끝날 때까지 기름과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가 보는 중에 하늘로 승천하였습니다. 엘리야의 삶은, 엘리야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삶이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신앙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런 엘리야가 다시 돌아왔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돌아온 엘리야는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회개하라고 하였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겸손하였습니다. 자신은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 하고, 자신은 점점 작아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알렐루야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우리는 주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대림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예수님의 탄생을 알아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왕이었던 헤로데는 많은 정보와 권력을 가졌지만 예수님의 탄생을 몰랐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알았지만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지 않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빼앗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율법학자들도 예수님의 탄생을 몰랐습니다. 율법과 하느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는데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위선과 교만으로 눈이 멀어 예수님의 탄생을 볼 수 없었습니다. 멀리 동방에서 왔던 박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께 예물을 드리고 경배하였습니다. 가난한 목동들도 예수님의 탄생을 알아보았습니다. 들판을 달려 예수님께 경배 드렸습니다. 평생 성전에서 기도하던 시메온과 한나도 구세주의 탄생을 알아보았습니다.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시기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였고,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오시는 날을 꿈꾸었습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오시면 하였을 일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주님의 오심을 준비해야 하는지 돌아봅니다. 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인간으로 처음 오실 때에는 구약에 마련된 임무를 완수하시고 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나이다. 그리고 빛나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는 저희에게 반드시 상급을 주실 것이니 저희는 지금 깨어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나이다.” 


2. 이영근 신부님 복음 묵상

 

221209. 대림 제2주일 금요일.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마태 11,17)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우리가 피리를 불어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마태 11,16-17)
 
이 비유의 뜻은 명료합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 아이들의 놀이는, 요한의 “회개의 세례의 선포”(마르 1,4;루카 3,3)에도 회개의 가슴을 치지 않고, 예수님의 “하늘나라의 복음의 선포”(마태 4,23;9,35)에도 기뻐 춤추지 않는 세대를 말해줍니다. 혹 우리도 뉘우침의 눈물도, 복음의 기쁨도 없지 않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사실, 이러한 타자에 대한 폐쇄와 계시에 대한 배척의 뿌리에는 무관심과 영적무지와 완고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완고함’이란 마치 엎어져 있는 항아리를 보고 입이 없다고 투덜거리거나 바닥이 없다고 불평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바로 세워놓고 보면 입도 있고 바닥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 뿌리에는 바로 보고자 하지 않는 ‘비뚤어지진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완고함’이란 사실을 바로 보고자 하지 않는 비뚤어진 마음 때문에 ‘목이 뻣뻣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의 외침을 듣고도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귀신들렸다’고 비난하고, 예수님의 선포를 듣고도 진리를 받아들이기는커녕 ‘먹보요, 술꾼이요, 죄인들의 친구’라고 조롱합니다. 사실, 이쯤 되면, 예수님의 사랑은 안타까움과 비탄을 넘어 아픔입니다. 결국, 당신의 사랑은 춤추지도 곡하지도 않는 냉대와 완고함이라는 가시에 찔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됩니다. 사랑이 거부당한 아픔입니다. 내가 당신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고 냉대할 때, 바로 그러할 것입니다. 내가 당신의 사랑을 거부하고 완고할 때, 그렇게 당신의 눈에는 눈물이 흐를 것입니다. 내가 내 형제를 거부하고 배척할 때, 당신은 그렇게 가시에 찔릴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어 하신 일은 십자가에 달리시어 자신을 ‘깨뜨려’ 찢고 나누어 건네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진정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면, 예수님의 그 피와 살을 먹고 자신도 ‘부서져’ 쪼개고 나누어져 다른 이에게 건네주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들려주실 때 벌리시는 일은 우리를 ‘깨뜨리는’ 일이요, 진정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우리가 ‘부서지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힘이 있고 살아 있으며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 4,12)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의 영께서 오시어 벌리시는 일은 우리와의 교제와 친교로 진리를 깨닫게 하고 새롭게 하여, 변화와 성화로 주님과 일치를 이루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성령께 응답한다면, 다윗이 주님의 계약 궤 앞에서 춤추었던 것처럼 우리도 춤추게 될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 말씀과 영을 제 마음에 들게 맞추기보다 제가 꺾이고 부서져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마태 11,17)
 
주님!
제 마음이 무디어 져 있습니다.
아니, 빛보다 어둠에 치우쳐 있습니다.
불의를 보고도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지 않고,
진리를 보고도 기쁨의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제가 당신의 말씀을 냉대할 때, 당신의 가슴은 가시에 찔리셨을 것입니다.
형제들을 거부하고 배척할 때, 당신의 눈은 눈물을 흘리셨을 것입니다.
이제 피리를 불면 춤을 추고, 곡을 하면 가슴을 치게 하소서!
당신과 함께 울고, 함께 웃게 하소서!
완고함의 벽을 헐고 사랑의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아멘. 

 


3.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참 스승이자 인도자, 구원자이신 주님

-신뢰와 경청-

 

 

어제는 근래 보기 드문 참 평화롭고 포근한 즐겁고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참 오랜만에 원장수사 부친의 문상차 대구를 방문했던 날이었습니다. 함께 간 도반도 시종일관 시중을 들며 함께 해줬습니다. 방문했던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밝고 평화롭기가 흡사 축제의 분위기였습니다. 어둡고 무거운 슬픈 분위기는 전혀 감지할 수 없었습니다.

 

“아, 참 잘 사셨구나! 선종의 복된 죽음을 맞이하셨구나!”

 

저절로 나온 고백이었습니다. 영정 사진도 흡사 오늘 날씨처럼 평화롭고 고요해 보였습니다. 떠나면서 함께 연도를 바쳤고 원장수사에게도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파스카의 기쁨과 평화가 가득한 축제 분위기 같았습니다. 영정 사진에서 본 생전 야고보 아버지의 분위기였습니다. 새삼 선종의 복된 죽음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축복이 늘 함께 하길 빕니다!”

 

30년 동안 함께 했던 수도도반과도 나눈 메시지입니다. 백요셉 수사는 1992년 입회했으니 올해로 함께하기 만30년입니다.

 

“극진한 배려와 친절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잘 지내다 오세요!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프란치스코 수사님! 감사드립니다. 조심해서 잘 올라가시고 남은 하루도 주님 안에서 기쁘고 생동감이 넘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마침 잠시 대구에 거주하는 예수성심자매회 회장 자매의 메시지도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15년 이상 한결같이 예수성심자매회를 섬겨온 참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슬기로운 자매입니다.

 

“신부님, 제가 장례식장에 가니 신부님께서 막왔다가셨다 하던데 어제 말씀해 주시면 점심이라도 같이 하실 걸 그랬어요. 대구까지 오셨는데 뵙지도 못했네요. 고생하셨어요. 조심해서 올라 가셔요!”

 

상경도중 열차안에서 책을 보려다 포기했습니다. 참 오랜만에 차창 풍경이 ‘살아 있는 책’처럼 눈에 와닿았기에 차창밖 풍경의 자연성경책을 내내 관상했습니다. 날씨처럼 평화롭고 고요한 창밖 풍경이었습니다. 서울역에서도 참 좋은 분의 환대로 잠시 저녁식사를 나눴습니다. 참 오랜만의 깨끗하고 정갈한 담백한 식사였습니다. 하여 두루두루 행복했던 하루였습니다.

 

스승이자 인도자이신 주님께서 시종일관 어제 하루 함께 해 주셨음을 한밤중 강론을 쓰면서 늦게야 깨닫습니다.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인 어제 만난 형제자매들이었습니다. 어제 하루 삶의 중심에 참 좋은 스승이자 인도자이신 살아 계신 주님이 늘 함께 해 주셨던 것입니다. 지금서야 저절로 나오는 시편 고백입니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하리라!”

 

참으로 늘 신뢰와 경청을 다해야 할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자 인도자이신 주님이심을 오늘 말씀 묵상을 통해 새삼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과 독서 두 말씀에서 주님의 깊은 아쉬움과 좌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수준이 너무나 미달되기 때문입니다. 두 경우 다 우리의 참된 회개를 촉구합니다.

 

스승이자 인도자이신, 구원자이신 주님께 대한 신뢰와 경청이 턱없이 부족하고 순수와 사랑도 없습니다. 제1독서 이사야서 말씀은 그대로 오늘 우리를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의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새삼 주의를 기울여 주님의 말씀을 경청함이 영성생활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참으로 하느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 경청할 때 그 놀라운 결과가 참 아름답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주님의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 우리들에 대한 주님의 깊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자리하고 있음을 봅니다. 오늘 복음도 대동소이합니다. 역시 무감각하고 공감할줄, 반응할 줄 모르는 완고한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탄식입니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시공을 초월하여 예나 이제나 늘 상존하는, 참으로 무딜대로 무뎌진 공감 능력을 상실한 세대임을 깨닫습니다. 이들의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께 대한 곡해가 그 증거입니다. 두 분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 색안경을 쓰고 심히 왜곡해서 봅니다. 이 또한 우리의 부정적 모습입니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모두가 영원한 스승이자 인도자, 구원자이신 주님의 말씀을 주의를 기울여 듣지 못한 때문입니다. 새삼 주님을 신뢰하고 겸손히 귀기울여 듣는 경청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분도규칙도 “들어라!”로 시작되며, 예언자들이 한결같이 외친 말씀도 “들어라!” 였습니다.

 

하늘에서 끊임없이 내리는 비가 딱딱하게 굳은 대지를 부드럽게 하듯 끊임없이 주님의 말씀을 경청할 때 마음은 열리고 부드러워집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경청함은 은총의 하늘비와 같습니다. 초 겨울에 어울리지 않지만 문득 “봄비”란 제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봄비!

하늘 은총

내 딸아이 하나 있다면

이름은

무조건 봄비로 하겠다”-2005.4

 

시쓴지 17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합니다. 정말 봄비같은 딸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씀이 화두처럼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바로 하느님의 지혜인 예수님을 뜻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자 인도자,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왜곡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전생애를 통해 하느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이 환히 드러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주님을 삶의 중심에 스승이자 인도자로, 구원자로 모신 우리 제자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을 마음 깊이 모시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아멘.


[

 

[12/10(토) 대림 제2주간 토요일, 되새김 구절]

 

1.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시기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였고,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오시는 날을 꿈꾸었습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오시면 하였을 일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주님의 오심을 준비해야 하는지 돌아봅니다.(조재형 신부)

 

2.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마태 11,17)(이영근 신부)

 

3.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이수철 신부)

 

[9.6~12.14일 100일기도 중 제96일(96/100)]

 

주님!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시기입니다. 

오소서 주님!

저와 늘상 함께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멘.

 

- 2022년 12월10일(토) 5시40분...수산나 -

 

“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카 2,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