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1월 6일 금요일[(백)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신부님 강론 5개

마르티나 2023. 1. 6. 08:12

[매묵]2023년 1월 6일 금요일[(백)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신부님 강론 5개

입당송

시편 112(111),4 참조
올곧은 이들에게는 어둠 속에서 빛이 솟으리라.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로우며 의로우시다.

본기도

주님,
주님을 믿는 저희를 인자로이 비추시고
주님 영광의 찬란한 빛으로 저희 마음을 밝히시어
저희가 구세주를 올바로 알아보고 충실히 섬기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제1독서

<성령과 물과 피>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5,5-13
사랑하는 여러분,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9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10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13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47(146─147),12-13.14-15.19-20ㄱㄴ(◎ 12ㄱ)
◎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시온아, 네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은 네 성문의 빗장을 튼튼하게 하시고, 네 안에 사는 아들들에게 복을 내리신다. ◎
○ 주님은 네 강토에 평화를 주시고, 기름진 밀로 너를 배불리신다. 당신 말씀 세상에 보내시니, 그 말씀 빠르게도 달려가네. ◎
○ 주님은 당신 말씀 야곱에게, 규칙과 계명 이스라엘에게 알리신다. 어느 민족에게 이같이 하셨던가? 그들은 계명을 알지 못하네. ◎

복음 환호송

마르 9,7 참조
◎ 알렐루야.
○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 알렐루야.

복음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11
그때에 요한은 7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9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10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1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아담의 아들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족보>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23-38
23 예수님께서는 서른 살쯤에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사람들은 그분을 요셉의 아들로 여겼다.
요셉은 엘리의 아들, 24 엘리는 마탓의 아들, 마탓은 레위의 아들,
레위는 멜키의 아들, 멜키는 얀나이의 아들, 얀나이는 요셉의 아들,
25 요셉은 마티트야의 아들, 마티트야는 아모츠의 아들,
아모츠는 나훔의 아들, 나훔은 헤슬리의 아들, 헤슬리는 나깨의 아들,
26 나깨는 마핫의 아들, 마핫은 마티트야의 아들, 마티트야는 시므이의 아들,
시므이는 요섹의 아들, 요섹은 요다의 아들,
27 요다는 요하난의 아들, 요하난은 레사의 아들,
레사는 즈루빠벨의 아들, 즈루빠벨은 스알티엘의 아들, 스알티엘은 네리의 아들,
28 네리는 멜키의 아들, 멜키는 아띠의 아들, 아띠는 코삼의 아들,
코삼은 엘마담의 아들, 엘마담은 에르의 아들,
29 에르는 여호수아의 아들, 여호수아는 엘리에제르의 아들,
엘리에제르는 요림의 아들, 요림은 마탓의 아들, 마탓은 레위의 아들,
30 레위는 시메온의 아들, 시메온은 유다의 아들, 유다는 요셉의 아들,
요셉은 요남의 아들, 요남은 엘리야킴의 아들,
31 엘리야킴은 멜레아의 아들, 멜레아는 멘나의 아들,
멘나는 마타타의 아들, 마타타는 나탄의 아들, 나탄은 다윗의 아들,
32 다윗은 이사이의 아들, 이사이는 오벳의 아들, 오벳은 보아즈의 아들,
보아즈는 살라의 아들, 살라는 나흐손의 아들,
33 나흐손은 암미나답의 아들, 암미나답은 아드민의 아들,
아드민은 아르니의 아들, 아르니는 헤츠론의 아들,
헤츠론은 페레츠의 아들, 페레츠는 유다의 아들,
34 유다는 야곱의 아들, 야곱은 이사악의 아들, 이사악은 아브라함의 아들,
아브라함은 테라의 아들, 테라는 나호르의 아들,
35 나호르는 스룩의 아들, 스룩은 르우의 아들,
르우는 펠렉의 아들, 펠렉은 에베르의 아들, 에베르는 셀라의 아들,
36 셀라는 케난의 아들, 케난은 아르팍삿의 아들, 아르팍삿은 셈의 아들,
셈은 노아의 아들, 노아는 라멕의 아들,
37 라멕은 므투셀라의 아들, 므투셀라는 에녹의 아들, 에녹은 예렛의 아들,
예렛은 마할랄엘의 아들, 마할랄엘은 케난의 아들,
38 케난은 에노스의 아들, 에노스는 셋의 아들, 셋은 아담의 아들,
아담은 하느님의 아들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백성이 드리는 예물을 인자로이 받으시고
저희가 경건한 마음으로 고백하는 것을 천상 성사로 깨닫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성탄 감사송 2 : 강생으로 온 세상이 새로워짐>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성탄을 경축하는 오늘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보이는 인간으로 나타나시고
영원하신 분께서 이제는 이 세상에 들어오셨나이다.
그분께서는 타락한 만물을 당신 안에 일으키시어 온전히 회복시키시고
버림받은 인류를 하늘 나라로 다시 불러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모든 천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1요한 4,9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났네. 하느님이 당신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성체성사로 저희에게 오셨으니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마음을 움직이시어
저희가 모신 성체에 더욱 맞갖은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오늘의 묵상

1. 2023년 01월 06일 금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마르 1,1).”

마르코 복음서를 시작하는 이 표현은 복음서 전체의 요약이자 목적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것을 전하며,

사람들에게 그렇게 고백하도록 하는 것이 마르코 복음의 목적입니다.

이에 맞게 복음서는 두 번에 걸쳐 신앙 고백을 전합니다.

하나는 베드로의 고백입니다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8,29).

다른 하나는 십자가 곁에 있던 백인대장의 고백입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15,39).

두 인물의 신앙 고백은 마르코 복음의 핵심이며,

배치상 복음서의 중간과 마지막에 자리하여 복음서의 시작과 함께 큰 축을 이룹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세례로 공생활을 시작하셨다고 알려 줍니다.

세례자 요한의 세례는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표지이지만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다른 이유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다른 이들이 받아야 하는 세례를 받으시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세례는 다른 이들을 위하여 몸소 보여 주신 본보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례 뒤의 모습은 웅장합니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내려오시고하늘에서 들려오는 말씀으로 절정에 이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느님의 아들은 구약 성경의 전통을 따르면서 복음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예수님의 호칭이자 예수님의 신원입니다.


2.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예닮의 여정

-진리이신 예수님을 잘 증언하는 삶-

 

-“바위를 굴리려면 있는 힘 힘껏 함께, ‘내 알 바 아니다’는 말은 사회를 어둡고 차갑고 험난하게 한다. 누군가를 안타깝게 여기고 작은 손이나마 내미는 것으로도 세상은 변할 수 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

 

-“50대 넘으면 마음 같은 것 좀 꺾여도 된다. 나이 들어도 꺾이지 않는 마음을 세상은 아집이나 꼰대짓이라고 한다. 괜한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가슴에 새기지 말고 마음은 꺾고, 허리는 세우는 새해 되시길 바란다.”-

 

어제 컬럼을 읽던 중 마음에 와 닿은 글입니다. 이 또한 넓게 보면 주님을 증언하는 삶이겠습니다. 요즘 가톨릭 교회는 어제 장례미사를 치른 교황 베네딕도 16세 일화로 가득합니다. 한마디로 한평생 주님을 증언했던 삶에 대한 찬사들입니다.

 

-“위대한 인간에 위대한 신학자”

“탁월한 겸손의 증거”

“끝까지 주님을 사랑했던, 예수님 얼굴을 찾았던 분”

“우리 시대의 예언자”

“참으로 놀라운 사람”

“복음 안에 푹 젖어 살았던 신학자”

“교리에 있어 위대한 거장”

“베네딕도, 이제 당신의 기쁨이 완성되었습니다!”-

 

어제 미구에 출간될 신선했던 책 제목 “God is Always New(하느님은 언제나 새롭다)”를 순간 ‘New’를 ‘Now’로 착각하여, “God is Always Now(하느님은 언제나 지금이시다)’ 오역했던 것이 오히려 새로운 깨달음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왜냐? 하느님은 언제나 ‘새로움’의 ‘지금’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을 드러내는 삶 역시, 참으로 좋으신 주님을 증언하는 삶이겠습니다.

 

오랫동안 지근 거리에서 베네딕도 16세 교황을 도와드렸던 겐스바인 비서 대주교와의 인터뷰중 다음 대목도 잊지 못합니다. 

 

-베네딕도 교황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진리의 협력자’가 그분의 모토다. 진리는 생각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의 인격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아드님이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자렛의 예수 안에서 육화되셨다. 이것이 그분의 메시지다. 그러니 진리는 이론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것이 그분의 메시지다. 이 메시지는 짐이 아니라, 오히려 매일의 모든 짐을 날라다 주는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기쁨을 준다.” 

 

참으로 진리의 협력자로 진리이신 주님을 증언하는데 전생애를 바친, 평생 예수님의 얼굴을 찾은 베네딕도 교황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증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겸손히 주님을 증언하고 예수님도 이에 화답하듯 겸손히 하느님을 증언하며, 하느님도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요한 세례자의 주님을 증언하는, 참으로 자기를 아는 겸손한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이어 친히 자신을 낮추시고 겸손히 요한에게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하느님 아버지를 증언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이에 감격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친히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증언하고, 예수님은 하느님을 증언하고 하느님은 당신의 아드님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믿는 이들은 어떻게 주님을 증언해야 할까요? 예닮의 여정을 살면서 진리이신 주님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가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분을 믿는 사람입니다. 물과 피로써 오신 주님이십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입니다. 그래서 증언하는 것은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바로 이렇게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증언하십니다. 바로 물과 성령의 ‘세례성사’로, 피의 ‘성체성사’로 당신 아드님을 증언하십니다. 바로 하느님은 증언은 이렇게 요약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드님을 모신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바로 세례성사와 매일 성체성사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지니게 된 우리들이요 바로 이것이 주님을 증언하는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참으로 살아있다 하여 다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예닮의 여정’중에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과 날로 깊어지는 사랑의 관계일 때, 발광체發光體 주님을 날로 환하게 잘 반사하는 반사체反射體로서 주님을 증언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매일의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겸손히, 항구히, 사랑이자 진리이신 주님을 잘 증언하는 삶을 살도록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주님, 당신을 믿는 저희를 인자로이 비추시고, 주님 영광의 찬란한 빛으로 저희를 밝히시어, 저희가 구세주를 올바로 알아보고 충실히 섬기게 하소서.” 아멘. 


3.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이웃을 통해 주님을 만나는 법: 요한의 세례를 청하라!

 

오늘은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시는 분이십니다. 사실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례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새로 나야 할 필요성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이때 하늘에서 성령께서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을 기다리는 현재 우리의 과제는 어떻게 공적으로 드러내시는 주님을 만나느냐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성령을 만나시는 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복음을 전하는 대상보다 낮아지는 방법입니다. 

 

    우선 복음을 전하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에게 은혜를 준다는 말은 공범이 된다는 뜻과 같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되 그 대상보다 낮아지게 만드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따라서 주님을 만나려면 복음을 전하되 가장 보잘것없는 이보다 자신이 죄인이라 인정해야 합니다. 

 

    '안나의 집' 김하종 신부는 가난하고 병든 한 장애가 있는 형제를 돌보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처음에 화장실도 없는 성남 지하 단칸방에 들어갈 때는 요강과 청소 안 된 방에서 풍기는 냄새에 구토가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요강을 비워주고 설거지를 해주고 방 청소를 해주니 마지막으로 그 아저씨를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자신이 더 높은 위치에 있었음이 미안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엔 악취로 끌어안기 거북했지만 이내 안고 나니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는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것으로 그분의 삶은 완전히 변화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는 이, 그 가장 보잘것없는 이와 내가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느낄 때 주님은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차인표 씨의 예도 들어봅니다. 모태 신앙으로 주님을 만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썼습니다.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예수님에 관한 뮤지컬도 일부러 4년씩이나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내 대신 가난한 아이들을 만날 때 예수님을 만납니다. 사람들과 섞이기 싫어 일등석을 타고 가는 중에 인도하는 목사님에게 너희들은 귀중한 존재이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 주십사 부탁 받습니다. 그는 한 꾀죄죄한 아이가 먼저 손을 내밀 때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너는 소중한 존재이고 너를 사랑한다.”

 

    복음을 전하지 않을 때는 사람들을 통해서는 주님께서 만나주시지 않습니다. 특별한 존재라고 여길 때도 그 사람에게서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가장 보잘것없는 이가 나보다 나아 보일 때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주님께서 만나주십니다. 이런 만남은 삶을 완전히 바꿔 놓습니다. 

 

    차인표 씨의 아내 신애라 씨는 처음엔 차인표 씨를 무척이나 판단하고 정죄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 공부를 하며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 음성은 이랬다고 합니다. “너나 잘해!”

    성령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십니다. 특별히 복음을 전해야 할 때 그 사람을 도와주십니다. 타이베이 대교구 주보에 실렸던 고 산궈스 바오로 추기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병 중에 이뇨제를 처방 받고 미사를 하다가 소변과 대변을 흘리는가 하면, 수술대 위에서 소변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을 통해 골고타의 예수님을 만납니다. 

    

    이웃을 통해 나 자신이 별거 아닌 존재임을 깨닫고 자유롭고 싶다면 주님께서 분명 만나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의 세례를 받으려 하는 자세입니다. 이때 하느님의 자녀로 인정해주십니다. 

    정리하자면, 이웃을 통해 주님을 만나려면 먼저 복음을 전하려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은총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다음에는 내가 복음을 전하기에 가장 합당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보다 더 큰 죄인임을 마음으로 고백하십시오. 그리하면 주님께서 성령으로 고백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4.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행성을 읽었습니다. 전작 문명의 후속작품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인류와 고양이가 새로운 대표를 뽑으면서 소설은 끝이 납니다. 새로운 대표로 7명의 후보가 등록하고 자신들의 꿈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정치인의 대표는 지난 어려움을 자신이 대표로 있는 동안에 해결했으니 자신이 대표를 맡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군인의 대표는 자신이 군대를 동원해서 지난 어려움을 해결했으니 자신이 대표를 맡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생명공학자는 바벨 바이러스를 퍼트려 상대방의 소통을 차단했고 어려움을 해결했으니 자신이 대표를 맡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호모사피엔스의 시대는 지나갔기에 생명공학을 이용해서 새로운 인류를 만들자고 했습니다.

 

원주민 대표는 모든 불행의 원인은 인류의 탐욕과 발전 때문이라고 하면서 다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이방인들이 오기 전에 아메리카는 생명이 가득한 풍요로운 땅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대표를 맡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종교인 대표는 이런 모든 불행은 인간이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타락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다시금 하느님께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대표를 맡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천문학자의 대표는 지구는 포기하고 이제 다른 행성을 찾아가자고 했습니다. 먼저 달에 기지를 만들고 더 나아가서 태양계를 넘어 새로운 행성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다른 행성으로 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대표를 맡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고양이 바스테트는 후보로 등록하면서 자신만의 새로운 을 이야기합니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이 함께 소통하고 연대하자고 합니다. 인간이 자신만의 욕심과 교만으로 세상을 정복하려고 하면 감염병, 테러, 전쟁의 악순환은 계속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석유를 무작정 뽑아내면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환경을 오염시키면 기후변화로 가뭄, 태풍,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제3의 눈을 통해서 다른 종들에게 나누자고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제3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대표를 맡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치 이사야 예언자가 꿈꾸었던 세상을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사막에 꽃이 피어 향기 가득한 세상입니다.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뛰노는 세상입니다. 어린아이와 늑대가 손을 잡고 다니는 세상입니다. 정의와 공의가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세상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그 때로 돌아가자는 이야기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어쩌면 소설을 통해서 탐욕의 눈이 아닌, 욕망의 눈이 아닌 겸손의 눈으로,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구를 떠나는 것이 문제의 해결이 아닙니다. 기존의 방법과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하느님의 의로움으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버팀목이 있습니다. 성공, 명예, 권력, 재물입니다. 그 버팀목을 얻기 위해서 때로 누군가를 속여야 하고, 양심을 팔아야 하고, 폭력을 사용해야하고, 소중한 것들까지 버리게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지켜주는, 영원한 생명에로 안내해주는 버팀목이 될 수 없습니다. 가까이하면 할수록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내면에 있는 영원한 생명의 불꽃을 꺼지게 합니다. 아버님은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지만 아직도 제게는 든든한 버팀목이십니다. 성인이 되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도 사제들에게는 언제나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십니다. 돌아보니 수많은 분들이 제게 버팀목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분들의 기도와 사랑이 오늘 저를 있게 한 것입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은 이야기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분이 오십니다. 온 우주의 버팀목이 되 주시는 분이 오십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마음에 드시는,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2000년 전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희생하고, 자신을 봉헌하며 온전히 사랑할 때 참다운 세상이 도래하고, 모든 이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된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용서와 화해가 진정한 승리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주님과 함께하면, 주님을 믿으면 참된 평화와 아름다운 세상을 만날 수 있고, 주님과 함께하면 우리 안에 내재된 하느님의 힘과 하느님의 뜻을 찾을 수 있으며, 주님께 의지하면 우리 모두는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2023년에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인도해주는 성체성사와 가까이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5. 이영근 신부

 

230105. 주님 공현 대축일 전 목요일.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요한1,49)
 
 
오늘 <복음>은 ‘만남의 신비’ 안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어제는 세례자 요한의 증언과 안드레아의 증언을 들었는데, 오늘은 필립보의 증언과 나타나엘의 증언을 듣습니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증언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을까?
 
오늘 <복음>은 그들이 증언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한 그 ‘만남의 신비’ 안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나타나엘은 필립보로부터 예수님에 대한 증언을 들었을 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하며 핀잔을 주며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와서 보시오”(요한 1,46)라는 필립보의 확신에 찬 초대에 따라 따라나섭니다. 그리고 나타나엘과 예수님의 두렵고 떨리는 ‘만남의 순간’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

예수님의 신적인 전지함, 곧 ‘거짓이 없음을 보는 거짓이 없는 눈’, ‘진실을 보는 눈’에 압도당한 나타나엘은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요한 1,48)하고, 당혹할 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요한 1,48)

이는 예수님께서 그를 “보았다. 알았다”는 예지적인 면만이 아니라, ‘내가 주목하고 있었다.’는 사랑의 측면을 말해줍니다. ‘바라보고 계셨다’는 것, ‘진실을 바라보고 계셨다’는 것, 그것은 사랑의 다른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늘 <독서>에서 사도요한이 말하는 “진리 안에서 사랑”(1요한 3,18)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나타나엘은 예수님께 대한 모든 의혹과 편견이 말끔히 사라지고, 마침내 믿음과 감격이 샘솟았습니다. 사실, 바로 이 순간, 나타나엘은 비로소 메시아 예수님을 보았던 것입니다. 자신을 바라보고 계신 그분의 눈동자 안에서, 바로 자기 자신을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그분을 뵙는다면, 그분의 눈동자 안에서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참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나타나엘은 바로 이 분이 나를 온전히 아시는 나의 구원자요, 주님임을 보았습니다.
 
이를 오늘 <독서>에서 요한사도는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3,19-20)
 
비로소 나타나엘은 눈이 맑아지고 환해져 깨달아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입술을 타고 신앙고백으로 흘러나옵니다.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요한1,49)
 
이렇게 해서, 대전환이 발생한 것입니다. ‘진실을 바라보는 눈’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고 빈정거리던 그에게 이제 대역전이 생긴 것입니다. ‘진리’가 그를 전복시켰던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그가 ‘주님을 만난’ 까닭입니다. 동시에 주님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심연으로부터 만난 까닭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만남의 신비’가 믿음을 불러오게 되었고 그를 전환시켰습니다. 그리고 증언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고, 고백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 사이의 만남 안에서도 ‘진실을 보는 눈’을 지니고, 예수님과의 거룩한 ‘만남의 신비’를 담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요한 1,48)
 
주님!
저를 주목하여 바라보고 계신 당신 눈동자 안에서
진정한 제 자신을 보게 하소서.
제 눈이 맑아져 거짓 없는 진실을 보게 하소서.
하늘이 열리고 진리를 보게 하소서!
제 마음에 거짓이 없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이 퍼부은 사랑을 퍼 올리게 하시고
당신 만남의 거룩한 신비를 담아내게 하소서! 아멘. 


 

[1/6(금)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되새김 구절]

 

1.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허규 신부)

 

2. “‘진리의 협력자’가 베네딕트 교황의 모토다.(이수철 신부)

 

3. 복음을 전하는 가장 보잘것없는 이가 나보다 나아 보일 때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주님께서 만나주십니다. 이런 만남은 삶을 완전히 바꿔 놓습니다. (전삼용 신부)

 

4. 주님과 함께하면 우리 안에 내재된 하느님의 힘과 하느님의 뜻을 찾을 수 있으며, 주님께 의지하면 우리 모두는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조재형 신부)

 

5. 제 삶이 당신이 퍼부은 사랑을 퍼 올리게 하시고
당신 만남의 거룩한 신비를 담아내게 하소서! 아멘. (이영근 신부)

 

[1/6(금)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제13일 기도]

 

하느님!

늘상 저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저를 인도하소서. 아멘.

 

- 2023년 1월6일(금) 7시2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