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1월 16일 월요일[(녹) 연중 제2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1월 16일 월요일[(녹) 연중 제2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하느님, 온 세상이 당신 앞에 엎드려 당신을 노래하게 하소서. 지극히 높으신 분, 당신 이름을 노래하게 하소서.
본기도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니
저희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어
이 시대에 하느님의 평화를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5,1-10
1 모든 대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지정된 사람입니다.
곧 죄 때문에 예물과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2 그는 자기도 약점을 짊어지고 있으므로,
무지하여 길을 벗어난 이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습니다.
3 그리고 연약한 탓에 백성의 죄뿐만 아니라
자기의 죄 때문에도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4 이 영예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느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아 얻는 것입니다.
5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대사제가 되는 영광을 스스로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께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분께서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6 또 다른 곳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10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멜키체덱과 같이 너는 영원한 사제로다.
○ 주님께서 내 주께 이르셨나이다.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너의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
○ 주님이 당신 권능의 왕홀을 시온에서 뻗치시리이다. “너의 원수들을 다스려라.” ◎
○ 네 권능의 날에 주권이 너와 함께하리라. 거룩한 빛, 새벽 품에서 나는 너를 낳았노라. ◎
○ 주님은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않으시리이다. “멜키체덱과 같이 너는 영원한 사제로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하느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낸다.
◎ 알렐루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여 이 제사를 드릴 때마다
저희에게 구원이 이루어지오니
이 거룩한 신비를 정성껏 거행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이 제게 상을 차려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또는>
1요한 4,16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고 또 믿게 되었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저희가 천상 양식을 함께 나누고 비오니
사랑의 성령을 부어 주시어
그 사랑으로 한마음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2023년 01월 16일 월요일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주님, 저희가 천상 양식을 함께 나누고 비오니, 사랑의 성령을 부어 주시어, 그 사랑으로 한마음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과 바리사이들의 논쟁은 모든 복음서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런 논쟁 안에서도 전해집니다.
오늘 복음은 서로 대조되는 것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바리사이들과 제자들, 헌 옷과 새 천 조각, 헌 부대와 새 포도주입니다.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단식은 유다교에서도 일상적으로 행하던 일들이었고 신앙을 지닌 이들이 실천해야 할 덕이었습니다.
또한 단식은 회개와 속죄를 위한 표지로 구약 성경에서도 자주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올바른 단식이 무엇인지 가르치기도 하셨습니다(마태 6,16-18 참조).
초기 교회에서도 단식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열두 사도의 가르침: 디다케』에서는 신자들이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하도록 권고합니다(8,1 참조).
지금은 금요일에만 단식하지만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을 해 왔습니다.
바리사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대답은 많은 경우에 두 가지 차원의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는 일상적인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신학적인 의미입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느냐?”
혼인 잔치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축제로 기쁨과 풍성함이 그 특징입니다.
신랑, 곧 예수님과 함께 있는 시기는 기쁨의 시기이면서 구원의 시기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입니다.
신랑을 빼앗긴다는 비유는 예수님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복음은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이 시간은 옛것과는 구분되는 구원을 위한 때입니다.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추운 겨울 아침 산보 길에는 필요한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따뜻한 물을 담은 보온병, 손을 따뜻하게 하는 워머(충전식이라서 편합니다.), 모자, 장갑, 소소한 물건을 담아 어깨에 메는 가방 그리고 손수건이 있습니다. 겨울철에는 산보하면서 콧물이 나기 때문에 손수건은 도움이 됩니다. 손수건에 대한 기억이 생각납니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하면 앞가슴에 하얀 가제 손수건을 달았습니다. 그때 겨울은 유난히 더 추웠던 것 같습니다. 중, 고등학교 때는 색이 들어간 손수건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예쁜 그림이 있는 여학생들의 손수건도 있습니다. 손수건은 수건돌리기라는 게임의 도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전쟁터에서 하얀 손수건은 항복의 표시가 되기도 했고, 위생병들에게는 평화의 표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얀 손수건은 헤어지자는 이별의 표시가 되기도 했습니다.(하얀 손수건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손수건은 사랑하는 이를 환영하는 표시가 되기도 했습니다. 오랜 동안 방황하던 남편이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만일 나를 받아준다면 고향 마을에 노란 손수건을 매달아 달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위해 나무 가지에 노란 손수건을 가득 매달았습니다.
신앙인에게 특별히 생각나는 손수건이 있습니다. 바로 베로니카의 손수건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베로니카는 오랫동안 하혈하던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면서 하혈이 멈추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 뒤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십자가의 길에 함께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수건으로 닦아 드렸습니다. 또 다른 여인은 세리 자캐오의 아내였다고 합니다. 자캐오의 아내는 세상의 것에만 빠져있는 남편을 걱정하였습니다. 그런 어느 날 남편은 예수님을 모시고 집으로 왔습니다. 남편은 예수님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그리고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빚진 것이 있다면 네 곱절로 갚겠다고 하였습니다. 세상 밖에 모르던 남편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집과 가족이 구원받았다.’라고 하셨습니다. 자캐오의 아내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고, 십자가의 길에 함께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 드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십자가의 길 6처에서 베로니카 성녀가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드렸음을 묵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새 포도주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나라입니다. 새 포도주는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입니다. 새 포도주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다면 새 부대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어린 아이의 콧물을 닦아 주는 손수건과 같아야 합니다. 세상의 것과는 결별한다는 이별의 손수건과 같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노란손수건과 같아야 합니다. 주님께 순명한다는 하얀 손수건과 같아야 합니다. 전쟁터에서 부상병을 돌보는 위생병이 보여주는 손수건과 같아야 합니다. 예수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 드리는 베로니카의 손수건과 같아야 합니다.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가장 헐벗은 이들에게, 가장 굶주린 이들에게,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 이방인들에게 내미는 사랑의 손수건과 같아야 합니다. 우리들도 손수건과 같은 삶을 살아서 주님을 모시는 새 부대가 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습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115. 연중 제 2주일.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오늘은 연중 제2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의 전례>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증언해줍니다.
<제1독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통해 당신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민족들의 빛으로 세울 것’이라는 예언자 이사야의 예고입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와 소스테네스 형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증언하며, 성도들에게 하느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를 빌어 줍니다.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두 가지로 증언합니다.
먼저, ‘첫 번째 증언’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라는 증언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그런데 예수님이 “하느님의 어린양”이란 말은 대체 무슨 말일까요?
사실, 우리는 오늘도 미사 중에는 ‘하느님의 어린양’란 이름을 다섯 번 부릅니다. <대영광송>에 한 번(“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영성체 예식>에서 네 번(“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두 번).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평화를 주소서.”.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부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어린양”의 네 가지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야훼이레”, 곧 하느님께서 준비한 제물로서의 “어린양”(야훼이레; 야훼께서 준비하신다)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산으로 갔을 때, 이사악이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하고 묻자, 아브라함은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창세 22,8)에서 보듯이, “어린양”은 하느님께서 제사에 쓰기 위해 준비한 ‘제물’입니다.
<둘째>는 ‘파스카의 어린양’(탈출 12,1-27;레위 23,5-6;신명 16,1-7)입니다. 곧 하느님께서서 모세를 통해 이집트의 맏자식을 치는 죽음의 재앙을 내렸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맏아들을 살리기 위해 문설주에 발라진 ‘희생양’입니다.
<셋째>는 “아자젤”, 곧 대신 죽는 ‘속죄양’으로서 “어린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여 년 동안 사막을 헤매면서 사나운 맹수들이 위협할 때마다 염소나 양을 한두 마리 맹수들에게 보내주었고, 가나안에 정착 후에는 일 년 동안 지은 모든 죄악을 용서받기 위해 제의로 바쳐지면서(매년 7월 10일), 인간의 죄를 대신하는 속죄양 두 마리를 준비하여 한 마리는 하느님께 번제로 불살라 드리고, 다른 한 마리는 대제사장이 자기와 온 민족의 죄를 자복한 후에 광야로 내보냈던 “아자젤”, 곧 ‘속죄양’입니다.
<넷째>는 승리하신 ‘천상의 어린양’(묵시 5장)으로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어좌에 앉아 계신 분과 함께 찬미와 영예와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하신 분”(묵시 5,13)임을 드러내줍니다.
이처럼,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어린양”이란 표상을 통해서 예수님의 신원을 밝혀줍니다. 그런데 특별히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라는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세상’이란 물질적 공간적 그릇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곧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방 사람들도, 옛날 사람들만이 아니라 오늘날 사는 사람들도 그리고 장차 이 세상에 태어날 사람까지도 포함하는 모든 사람들, 곧 ‘전 인류’를 표현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죄’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들, 동서고금의 전 세계 모든 인류의 죄들을 포괄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전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속죄의 어린양’이심을 말해줍니다.
이처럼, 우리는 주님께서 ‘세상의 죄인들을 없애시는 분’이라고 하지 않고 “죄를 없애시는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듯이, 우리 또한 세상의 죄를 없애고, 평화를 주는 ‘어린양’으로서 살아가야 할 일입니다. 곧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을 따르는 우리 역시 “세상의 죄를 없애기” 위해 바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소명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자신보다 뒤에 오신 분이지만 당신보다 앞서신 분이요, 이미 전에 증언한 분이요, 자신이 세례를 준 것이 바로 이 분을 세상에 알려지시게 하기 위함’이라고 덧붙인 다음, ‘두 번째 증언’으로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증언입니다.
그는 먼저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요한 1,32-33)라고 환시를 통해 보고 들은 바를 말하고,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요한 1,34)라고 증언합니다.
여기서, “성령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예수님 위에 머무르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신원이 존귀하신 분, 곧 아버지의 권능이신 성령으로 도유되시는 분이심을 드러내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은 노아의 홍수 때 비둘기가 생명의 푸른 잎사귀를 물어온 것처럼, ‘새로운 생명’을 물어오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심을 드러내줍니다. 곧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려줍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 안에서는 하느님 아드님의 신적 생명이 자라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토록, 우리는 그분을 옷 입듯이 입었고(갈라 3,27), 그분은 우리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영광된 일인지요!! 그러니 이제 그분이 우리 안에서 우리의 삶을 통하여 당신의 생명을 활짝 드러내실 수 있도록 해 드려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주님!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과 세상을 위해서도 십자가를 질 줄을 알게 하소서.
자신을 내어 주고 피 흘려 죄를 없애는 어린양이 되게 하소서.
허물을 뒤집어쓰고서 위하여 바쳐지는 사랑의 산 제물이 되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신부 강론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다운 수행자, 성소자, 증언자의 삶-
“내 주여, 내 기쁨은 당신 뜻을 따름이오니,
내 맘속에 당신 법이 새겨져 있나이다.”(시편40,9)
참으로 오랜만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마 많은 국민이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 주인공의 영화, ‘영웅’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사형을 앞둔 아들 안중근 도마에게 보낸 그의 어머니 조마리아의 편지입니다. 동영상을 대할 때 마다 코끝을 찡하게 하며 눈물짓게 하는 장면입니다. 너무 감동스러워 두 번째 강론에 인용합니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 거리가 될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 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天父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제가 주목하는 것은 조마리아 어머니의 신앙입니다. 흡사 마리아 성모님과 예수님 모자사이처럼 느껴지는 조마리아와 안중근 도마 모자의 관계입니다. 주님께 대한 깊은 믿음없이는, 사랑없이는 이런 마지막 편지를 쓸 수 없을 것입니다. 안중근 도마 역시 얼마나 신앙으로 무장된 인물인지 도처에서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대로 안중근 도마 의사의 죽음은 말그대로 순국殉敎의 죽음, 순교殉國의 거룩한 죽음입니다.
또 한 분의 삶과 죽음이 우리에게 영원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바로 작년 2022년 12월31일 향년 95세로 선종한 전임 교황 베네딕도 16세입니다. 아마 참 좋은 선종의 죽음보다 이웃에 줄 수 있는 더 좋은 선물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선종의 죽음은 그대로 은총의 선물이자 평생 삶의 요약입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교황님께서 마지막 남긴 임종어로 그의 평생 삶을 요약합니다. 소화 데레사의 임종어도 이와 똑같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주님의 증언자로 일관된 삶을 사신 성인같은 교황님입니다. 프란치스코 현임 교황님과의 형제적 우정의 사랑도 깊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베네딕도 교황의 ‘나의 영적 유언서’ 내용도 감동적입니다. 겸손과 진실, 사랑이 가득 담겨 있는 유언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주님의 증언자로 한점 부끄럼없는 최선을 다한 삶이셨습니다.
-“1.감사입니다.
우선 언급되는 것이 하느님께, 부모님께, 이웃에게 감사드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2.용서입니다.
알게 모르게 잘못한 모든 이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내용입니다.
3.믿음입니다.
교회의 모든 이에게 믿음에 대한 당부입니다. “믿음을 굳게 지키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교회는 모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그의 몸입니다.”
4.기도입니다.
마지막으로 겸손되이 요청합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나의 모든 죄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영원한 거처로 맞이해 주실 것입니다. 내게 맡겨진 모든 이에게 날마다 나의 진심어린 기도가 향할 것입니다.”-
참 겸손하고 아름다운 평생 삶이 요약된 유언입니다. 우리에게 참 좋은 삶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참으로 발광체 주님을 잘 반사한 반사체 증언자의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긴 유언이 평생 삶을 요약합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마침 예전에 어떤 자매가 들려준 임종시 남편의 고백, 세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1.고맙다, 2.미안하다, 3.사랑한다” 얼마나 멋진 고백인지, 모든 앙금은 눈녹듯이 사라지고 사후에 더욱 남편을 사랑하게 됐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 세가지 고백은 마지막 임종시 하느님께 드려도 참 좋겠다 생각되어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님의 자녀답게, 참으로 내적으로 아름답고 행복하게, 자유롭고 부요하게 살 수 있을까요? 저는 세가지 답을 찾아 냈습니다.
첫째, 주님 사랑의 수행자修行者로 사는 것입니다.
바오로, 세례자 요한은 물론 모든 성인들의 예외없는 공통점입니다. 베네딕도 성인 역시 당신 수도승들에게 세상에 그 무엇도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보다 앞세우지 말라 하셨습니다. 바로 이의 모범이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신앙과 신학에 있어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살려고 노력한 분이고, 언제나 그리스도의 현존을 ‘지금 여기에’ 현재화하려고 노력한 가톨릭교회를 너무나 사랑하셨던 분입니다. 교황님은 진리의 협조자라는 주교 문장처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사랑하며 그분의 협조자로 사는 것이 삶의 전부였습니다.
아마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사랑했던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은 물론 모든 성인들이 다음 제 기도문의 고백에 공감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둘째, 하느님께 불림 받은 주님의 성소자聖召者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존재이유이자 존재근거입니다. 우리는 우연한 존재가 아니라 불림받은 존재로 하느님 뿌리에 닿아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존엄한 품위의 근거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화답송 후렴이 불림 받은 우리의 성소를 새삼 확인하게 합니다.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수행자의 삶에 항구할 때 우리가 결코 우연적 존재가 아닌 불림 받은 성소자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오로가 그 성소의 그 좋은 모범이며 다음 사도의 말씀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 모두를 대상으로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어디에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들과 함께,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이사야서에 나오는 주님께 불림받은 주님의 종은 예수님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우연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 또한 불림받은 성소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성소를 깨닫는 주님의 종의 고백은 바로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어제 연중1주간 토요일 아침성무일도시 베드로 2서 독서 말씀도 은혜로웠습니다. 새삼 우리의 성소가 얼마나 큰 은총의 선물인지 깨달았습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주시고, 뽑아 주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더욱 확실히 깨닫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절대로 빗나가는 일이 없을 것이고, 또한 여러분에게는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는 문이 활짝 열릴 것입니다.”(2베드1,10-11)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자證言者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증언자로 사는 것입니다. 성령은 사랑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성령의 은총으로 주님을 알게 되어 저절로 주님의 증언자로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성소자에 이어 주님의 증언자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요한 세례자가 그 좋은 증언자의 모범입니다.
우리는 태양처럼 결코 스스로 빛을 발하는 발광체가 아니라 태양 빛을 반사하는 달처럼 발광체의 빛을 반사하는 반사체일뿐입니다. 주님을 증언하는 삶은 바로 발광체 주님을 반사하는 반사체의 삶입니다. 사랑의 수행자의 삶에, 주님의 성소자의 삶에 충실할 때 저절로 따라오는 증언자의 삶, 반사체의 삶입니다. 바로 이사야서의 주님의 종이 그 좋은 모범입니다. 주님을 증언하는 모든 성인들은 물로 우리 역시 이스라엘입니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과연 주님의 영광을 잘 반사하는 반사체로서의 증언자의 삶인지 반성하게 합니다. 오늘 복음의 요한 세례자는 참으로주님을 잘 반사하는 증언자입니다. 얼마나 주님을 사랑한 요한 세례자인지 사랑의 눈이 활짝 열려 주님을 알아보고 고백하며 이웃들을 주님께로 인도합니다. 감격에 벅찬, 주님의 빛을 찬연히 반사하는 요한 세례자의 증언입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분이 나에게 일러 주셨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증언하는 것이다.”
증언자의 모범이 주님의 종인 복음의 요한 세례자, 그리고 바오로 사도입니다. 주님의 증언자되기에 앞서 참으로 주님을 사랑했던 사랑의 수행자였고, 자신의 성소를 깊이 깨달아 알았던 주님의 성소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 길이 확연해 졌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사랑의 수행자, 주님의 성소자, 주님의 증언자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이 거룩한 미사중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엄중하고도 영광스러운 사명입니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이사49,6ㄷ). 아멘.
[1/16(월) 연중 제2주간 월요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복음은 서로 대조되는 것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바리사이들과 제자들, 헌 옷과 새 천 조각, 헌 부대와 새 포도주입니다.(허규 신부)
2.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새 포도주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나라입니다. (조재형 신부)
3. <성경>에서는 “어린양”의 네 가지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야훼이레”, 곧 하느님께서 준비한 제물로서의 “어린양”
<둘째>는 ‘파스카의 어린양’(탈출 12,1-27;레위 23,5-6;신명 16,1-7)
<셋째>는 “아자젤”, 곧 대신 죽는 ‘속죄양’으로서 “어린양”
<넷째>는 승리하신 ‘천상의 어린양’(묵시 5장)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허물을 뒤집어쓰고서 위하여 바쳐지는 사랑의 산 제물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사랑의 수행자, 주님의 성소자, 주님의 증언자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이수철 신부)
[1/16(월)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제 23일 기도]
하느님!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지상에 보내주시니 감사합니다.
허물을 뒤집어쓰고서 위하여 바쳐지는 사랑의 산 제물, 어린양 예수님께 감사합니다.
하느님 사랑의 수행자, 하느님의 성소자, 하느님의 증언자로...
하느님 자녀답게 살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1월16일(월) 3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