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1월 24일 화요일[(백)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3. 1. 24. 07:05

[매묵]2023년 1월 24일 화요일[(백)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1567년 이탈리아의 사보이아 지역에서 한 귀족 가문의 맏이로 태어났다. 1593년 사제가 되어 선교사로 활동한 그는 특히 칼뱅파의 많은 개신교 신자를 가톨릭으로 회심시켰다. 1599년 제네바의 부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어 1602년 교구장이 된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많은 저서를 남기고 1622년에 선종하였다.

입당송

에제 34,11.23-2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내 양 떼를 찾아서, 그들을 먹일 목자를 세우리라. 나 주님이 그들의 하느님이 되리라.

본기도

하느님, 복된 프란치스코 주교가 목자의 사랑을 실천하여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게 하셨으니
저희도 그를 본받아 형제들을 섬기며
언제나 하느님의 따뜻한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보십시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0,1-10
형제 여러분, 1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2 만일 완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예배하는 이들이 한 번 깨끗해진 다음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
제물을 바치는 일도 중단되지 않았겠습니까?
3 그러한 제물로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될 뿐입니다.
4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5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6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8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40(39),2ㄱㄴ과 4ㄱㄴ.7-8ㄱㄴ.10.11(◎ 8ㄴ과 9ㄱ 참
◎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 주님께 바라고 또 바랐더니, 나를 굽어보셨네. 새로운 노래,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을, 내 입에 담아 주셨네. ◎
○ 당신은 희생과 제물을 즐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저의 귀를 열어 주셨나이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바라지 않으셨나이다. 제가 아뢰었나이다. “보소서, 제가 왔나이다.” ◎
○ 저는 큰 모임에서 정의를 선포하나이다. 보소서, 제 입술 다물지 않음을. 주님, 당신은 아시나이다. ◎
○ 당신 정의를 제 마음속에 감추어 두지 않고, 당신 진리와 구원을 이야기하며, 자애와 진실을 큰 모임에서 숨기지 않나이다. ◎

복음 환호송

마태 11,25 참조
◎ 알렐루야.
○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31-35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에페 3,8-12)와 복음(요한 15,9-17)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주님, 이 구원의 제사를 바치며 비오니
복된 프란치스코의 온유한 마음을 성령의 불로 타오르게 하셨듯이
저희 마음에도 성령의 그 거룩한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요한 15,16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이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저희가 세상에서 복된 프란치스코의 사랑과 온유함을 본받아
하늘에서 그와 함께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오늘의 묵상

 

1. 2023년 01월 24일 화요일

[연중 제3주간 화요일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여기에는 요셉 성인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요셉 성인은 복음서에서 주로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 등장합니다.

성경은 그의 일생에 대하여 전하는 바가 거의 없는데전승에 따르면 그는 일찍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어쩌면 오늘 복음의 시작 부분이 그것을 간접적으로 말해 주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그것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지만복음이 어머니와 형제들만을 언급하는 것을 신학적으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은 마치 당시의 신앙인들이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유일하신 아버지시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마르 14,36 참조).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포괄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나타냅니다.

고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혈연관계입니다가족이 중시되고 같은 혈통을 가진 민족이 강조됩니다.

지난날의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같은 혈통을 가진 이들은 한 마을에 모여 살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맺어진 새로운 관계를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은 믿음의 표현이자 신앙인들이 살아가는 새 기준입니다.

이렇게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고 불립니다.

아버지와 아드님의하느님과 예수님의 친밀한 관계 안에 속하게 됩니다이 관계는 혈통이나 민족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믿음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살아가는 이는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고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을 찾아 실천하는 이들입니다.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신학생 때입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가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친구와 함께 나환자 마을로 봉사를 갔을 때입니다. 친구는 그곳 아이들에게 자기가 만든 노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때가 1983년 겨울이니 어느덧 40년이 지났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 노랫말과 멜로디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오늘은 그 노랫말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들이 만나던 즐거운 일요일에/ 우리 사랑 영원하라 주님께 기도하며/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마저도/ 우리들의 사랑을 축복하는 곳으로/ 이 세상에 너보다 어여쁜 이 있다면/ 이 세상에 너보다 사랑한 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다 거짓말이야/ 어여쁜 너 어여쁜 너 나의 천사여 노래의 제목은 나의 천사여입니다. 유안진 선생님은 지란지교를 꿈꾸며에서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상대방의 허물도 모두 예뻐 보인다고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허물이 크고, 늘 죄를 짓고 살지만 우리를 위해서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셨기에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셨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2023년을 시작하면서 저도 천사를 몇 번 만났습니다. 은경축을 맞이하는 신부님께서 이스라엘 성지순례에 함께 가자고 제안하였습니다. 덕분에 새해가 시작하는 1 1일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가게 되었습니다. 성지순례로 시작한 2023년은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할 것 같습니다. 새벽 5시에 무덤성당으로 조배를 갔습니다. 미사를 예약하지 못해서 미사를 봉헌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천사 같은 수녀님이 부활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미사를 봉헌하는데 순례 온 한 교우분이 미사에 함께 하였습니다. 그 형제님의 몸가짐은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덤으로 미사를 봉헌한 네 명의 사제들의 사진도 찍어 주었습니다. 주님공현 대축일을 앞둔 화요일에 베들레헴 주님 탄생 성당으로 순례를 갔습니다. 그곳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현지에 사는 한 형제님이 친절하게도 주님의 탄생 성당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고, 경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4 5일의 짧은 성지순례였지만 주님께서 보내주신 천사들 덕분에 감사하고 은총이 충만한 순례가 되었습니다. 저의 세례명은 가브리엘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천사입니다. 저 역시도 이웃을 위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천사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에는 27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왕조를 시작한 태조, 한글을 창제한 세종, 개혁을 이루고자 했던 정조, 나라의 문을 닫아야 했던 고종 등이 있습니다. 아마도 가장 존경받는 왕은 세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국방, 과학, 문학, 외교, 예술 분야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왕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한글의 창제는 세종의 가장 빛나는 업적입니다. 한글은 그 만든 목적이 유일한 문자이며, 창제의 원리가 전해지는 유일한 문자입니다. 한글은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습니다. 과학적인 창제원리는 우리가 인터넷 강국이 되는 힘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세종은 백성들을 사랑했고, 백성들의 고충을 이해했고, 백성들에게 문자를 선물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고, 누가 내 형제입니까?’ 저는 생각합니다. 나의 욕망과 나의 이기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은 모두 내 형제요, 내 어머니가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내 출세와 성공을 위한 디딤돌일 뿐입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주고, 도움을 주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바로 내 형제요 어머니입니다.

 

세포는 끊임없이 주위에 있는 다른 세포에게 영양분을 나누어 준다고 합니다. 그래야만 건강한 세포라고 합니다. 자신의 영양분을 나누지 못하는 세포는 세포가 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혈연, 지연, 학연이라는 틀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하십니다. 새해에는 라는 틀에 갇혀있기 보다는, 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의 것들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123. 연중 제3주간 월요일.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마르 3,29)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용서받지 못하는 죄’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당신께서 성령의 힘으로 마귀 쫓아내는 일을 하신다는 것을 밝히십니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마르 3,29)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 죄”가 있다니 말입니다. 당신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속죄양이 되셨는데, 어찌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있을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에 한계가 있다는 말일까요? 혹 하느님의 자비에 한계가 있다는 말일까요? 왜 용서받지 못한 죄가 있을 수가 있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용서받지 못한 죄”로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용서하지 않는 죄”가 아니라 “용서받지 못하는 죄”라는 점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용서하시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께서는 ‘용서하셔도 그가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곧 용서받지 못함은 용서하시는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에서도 악마에 대해서 말할 때, 그들의 죄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은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의 결함이 아니라, 그들의 선택이 지닌 돌이킬 수 없는 특성 때문”(393항)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시는 게 아니라 용서하시지만, 인간이 그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용서받지 못한 죄”라는 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모독하는 죄”란 도대체 어떤 죄를 말할까?
 
그것은 용서하시는 성령의 활동을 의지적으로 배척하고 비난하거나, 혹은 사탄의 일로 단죄하거나 방해하거나 핍박하는 죄를 말한다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용서를 하시는 성령의 활동을 고의적으로 방해하여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바람에 새 생명으로 태어나지 못한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빛을 주시고 성화시키시는 성령의 활동을 스스로 제외시킴으로써 결국 구원의 가능성이 상실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곧 자신의 완고함과 고집으로 성령의 활동을 거부한 바람에 용서가 차단되어 버린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한다면, 주님이 아닌 피조물, 곧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생각’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따르는 우상숭배에 빠진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자기 자신을 앞세우다 자칫 용서하시는 성령의 활동을 거스르는 일이 없어야 할 일입니다. 혹 아직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지금 당장, 용서하시는 성령을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저희가 용서하시고자 하시는 성령의 숨결을 거부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용서하시는 당신의 자비와 사랑, 당신의 은총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마르 3,29)
 
주님!
용서하시는 성령의 숨결을 거부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제 생각과 제 자신이라는 우상에 빠져
구원의 빛을 스스로 차단하지 않게 하소서.
이제는 제 완고함을 꺾으소서. 당신의 사랑을 거부하지 않게 하소서

끊임없이 베풀어지는 당신의 용서를 받아들이게 하소서. 하여, 받은 그 용서로 용서하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하느님 사랑의 전사

-성령의 사람-

 

“주님께 나아가면 빛을 받으리라.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시편34,6)

 

하느님 사랑의 전사는 성령의 사람입니다.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물론 예수님을 따라 사는 모든 이들의 신원입니다. 하느님의 전사를 더 분명히 하면 믿음의 전사, 희망의 전사, 사랑의 전사, 진리의 전사, 기도의 전사, 평화의 전사등 끝이 없습니다. 이런 하느님의 전사가 바로 예수님을 닮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먼저 세상 한 복판에서 성인처럼 살아가는 주님의 전사, 성령의 사람 넷에 관한 감동적 일화를 소개합니다.

 

1."존경하는 이수철 신부님,

안녕하세요. 가톨릭신문 박지순 시몬 기자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찾았던 ‘둥근마음, 둥근 삶’을 얼마 전에 한권을 구했습니다. 분도출판사에서 모르고 있었던 재고가 분도출판사에 있어서 바로 주문해서 소장하게 되어 기뻤습니다. 어제 새벽미사에서 하신 불광불급(不狂不及)을 듣고 저는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도 제대로 미쳐서 성인이 되겠습니다.”

 

즉시 ‘여섯 자녀를 정성과 사랑을 다해 키우고 있는 형제님은 지금도 성인이다’ 화답하며 격려했습니다. 어느 수녀님이 소개한 치과의사에 대한 소개입니다. 말그대로 숨겨진 미담인데 수녀님의 자전적 일기를 보며 발견한 것입니다. 이 치과의사 하치양 프란치스코 형제님은 제가 25년 동안 제 치아를 전담하고 있는 분인데 섬세하고 친절하고 한결같기가 성인같은 분입니다.

 

2."제 담당이 아니었던 봉사오셨던 치과 선생님이 저의 사진을 보고는 저에게 다가와 귀속말로 ‘수녀님, 제가 하는 개인병원에 오세요. 제가 임플란트 해드릴께요. 이곳 요셉의원에서는 임플란트까지는 못해 주거든요.’ 예수님! 저는 선생님의 이 말을 듣고 정말 감동했어요. 한 5년전부터 선생님 개인치과병원에 다니는데 어금니 2개씩이나 임플란트 해주었어요.

 

세상에 이런 치과가 어디 있겠어요. 선생님은 조용하고 꼭 수도승같아요. 아무튼 저에게 치료비 한푼 안받아요. 또 들은 이야기지만 여기 말고 수원 어디에 있는 에이즈 환자들에게도 봉사하러 나가신다고 했어요. 하느님 아빠로부터 많은 축복을 받아야 할 분인 것 같아요.”

 

무려 치과의사 선생님에 대한, 대학노트 4쪽에 걸쳐 감동깊은 미담의 내용이 전개되어 있기에 즉시 복사하여 카톡으로 그 치과의사에게 전송했습니다. 그 수녀님이 교정사목에 함께 할 때 만났던 사형수들에 관한 내용도 감동적이었습니다. 

 

3."아! 이들이 과연 사람을 살해한 일이 정말인가? 저 환하게 웃으면서 저 아름다운 미소가 어디에서 솟아나는 것일까? 갈 때마다 이 질문이 저에게 던져졌어요. 사막의 은수자도 그렇게 아름답게 미소를 짓지 못할거예요. 프란치스코, 토마스 형제예요. 이들의 환경은 너무나 열악해요. 

 

제가 질문을 가끔해요. 방의 크기는 어느 정도예요? 방 가운데 서서 두팔을 벌리면 양쪽 벽이 손가락에 딱 닿아요. 변기도 그 안에 있고요. 어째서 변기가 고장나면 그 악취가 대단해요. 벽꼭대기에 작은 창문이 하나있고 작은 선풍기 1개, 작은 CCTV 한 대 있고, 24시간중 낮에 1시간만 운동하러 나오고 그외 시간은 독방에 있어요. 

 

이들이 하루 1시간 그 짧은 운동시간에 운동장 땅을 파서 채소 씨를 심어요. 그리고 짬방등 거름을 주고 길러서 이웃 재소자들에게 주고 자기들도 먹고, 우리가 미사갈 때 그 농사지은 것을 우리에게도 줄려고 갖고 나와요.”

 

이 신문기자나 치과의사 선생님이나 수녀님이나 성인같은 사형수들, 제가 볼 때 참 치열하게 제 삶의 자리에서 하루하루 분투의 노력을 다해 사는, 참으로 하느님만이 아시는 주님의 전사들이요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전사로 살아가는 어느 50대 초반 자매님이 보내준 메시지도 감동입니다.

 

“신부님, 오늘 강론 주제가 넘 멋집니다.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삽시다!’ 오늘 내일 숯가마에 알바를 하러 갑니다. 일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다만 하느님께 대한 첫마음 잃지 않도록 감사 겸손 깨어살기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가열加熱차게 알바하고 오겠습니다.”

 

불암산 기슭 수도원에서 평생 정주의 삶을 저희 수도승들을 참으로 부끄럽게 하고 부단한 도전이 되는, 또 깨어 분발의 노력을 다하게 하는 세상 곳곳에서 주님의 전사로 분투의 노력을 다해 살아가는 성인聖人같은 형제자매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수도자들뿐 아니라 예외없이 우리 믿는 이들은 하느님의 전사들입니다. 백절불굴의 믿음의 전사들입니다. 바로 그 하느님의 전사의 원조가 오늘 복음의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바리사이들과의 영적전투가 참 치열합니다. ‘베엘제불이 들렸다’, 또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비유를 들면서 보기 좋게 이들을 제압합니다. 사탄이 사탄을 쫓아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입니다. 영리한 사탄은 절대 일치하지 자기들끼리 분열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선의 연대 못지 않은 악의 연대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분열하기 잘하는 사람은 사탄만도 못합니다. 사탄의 유혹에 빠져 분열입니다. 하느님이 원하는바 일치이고 사탄이 원하는바 분열입니다.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힘좋다 하는 마귀들을 제압할 수 있는, 참으로 성령의 힘으로 무장된 힘센 분은 하느님의 전사, 예수님뿐이라는 고백입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깊은 묵상감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떨어지게 된다.”

 

너무나 누구에게나 명명백백한 성령의 활동을 인정하지 않는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자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령의 활동을 악령의 활동이라 왜곡하는 이들을 지칭합니다. 하느님의 심판이 아니라 성령의 활동을 부인함으로 스스로 자초한 심판입니다. 

 

고집스런 무지의 편견으로 이렇게 안에서 닫아 걸고 있으면 하느님도 어쩌지 못합니다. 이래서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성령께 마음을 활짝 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바로 여기서 결정적 도움을 주시는 분이 새계약의 중개자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히브리서의 고백이 은혜롭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새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죽음을 통한 속죄의 효과는 영속적입니다. 늘 새계약의 중개자 파스카의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대사제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회개한 우리를 용서하시고 성령충만한 당신 사랑의 전사로 백절불굴(百折不屈),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2티모1,10). 아멘.


[1/24(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맺어진 새로운 관계를 말씀하십니다.(허규 신부)

 

2. 세포는 끊임없이 주위에 있는 다른 세포에게 영양분을 나누어 준다고 합니다. 그래야만 건강한 세포라고 합니다. 자신의 영양분을 나누지 못하는 세포는 세포가 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혈연, 지연, 학연이라는 틀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하십니다. 새해에는 라는 틀에 갇혀있기 보다는, 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의 것들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조재형 신부)

 

3. 용서하시지만, 인간이 그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용서받지 못한 죄”라는 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자신의 완고함과 고집으로 성령의 활동을 거부한 바람에 용서가 차단되어 버린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한다면, 주님이 아닌 피조물, 곧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생각’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따르는 우상숭배에 빠진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이영근 신부)

 

4. 고집스런 무지의 편견으로 이렇게 안에서 닫아 걸고 있으면 하느님도 어쩌지 못합니다. 이래서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성령께 마음을 활짝 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바로 여기서 결정적 도움을 주시는 분이 새계약의 중개자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히브리서의 고백이 은혜롭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새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이수철 신부)

 

[1/24(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제31일 기도]

 

하느님!

제안에 계신 성령의 활동을 거부하지 않게 하소서.

늘상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이끄심에 감사하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1월24일(화) 6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