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2월 19일 주일[(녹) 연중 제7주일]/신부님 강론

마르티나 2023. 2. 19. 09:06

[매묵]2023년 2월 19일 주일[(녹) 연중 제7주일]/신부님 강론

 

오늘 전례

예로부터 그리스도인은 거룩함과 완전함을 추구하였습니다. 거룩하고 완전한 길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목적입니다. 거룩함과 완전함은 외적인 경건함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 나아가 원수마저도 사랑하고 자비를 베푸는 데에서 드러납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이웃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는 데 과연 얼마나 충실하였는지 성찰하며 이 미사를 봉헌합시다.

입당송

시편 13(12),6 참조
주님, 저는 당신 자애에 의지하며, 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새기고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 레위기의 말씀입니다.19,1-2.17-18
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17 너희는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동족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그 사람 때문에 죄를 짊어지지 않는다.
18 너희는 동포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3(102),1-2.3-4.8과 10.12-13(◎ 8ㄱ)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
○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없애시는 분.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의 관을 씌우시는 분. ◎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는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시네. 우리를 죄대로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갚지 않으시네. ◎
○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가 먼 것처럼, 우리의 허물들을 멀리 치우시네. 아버지가 자식을 가여워하듯, 주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 가여워하시네. ◎

제2독서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3,16-23
형제 여러분,
16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17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18 아무도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자기가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
19 이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을 그들의 꾀로 붙잡으신다.”
20 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생각을 아신다. 그것이 허황됨을 아신다.”
21 그러므로 아무도 인간을 두고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22 바오로도 아폴로도 케파도, 세상도 생명도 죽음도,
현재도 미래도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23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1요한 2,5 참조
◎ 알렐루야.
○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되리라.
◎ 알렐루야.

복음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38-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지상의 나그네인 교회를 살펴 주시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며 복음을 실천하고,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2.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주님, 분단의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저희 민족을 굽어살피시어, 남과 북이 화해하고 교류하며 믿음 안에서 한 형제 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3.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위로의 주님, 저희 모두를 살펴 주시어,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시고, 저희가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도록 자비로운 마음으로 이끌어 주소서.

4. 본당 사도직 단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진리이신 주님, 저희 본당 사도직 단체의 모든 구성원을 굽어살피시어, 그들이 주님의 은총을 깊이 깨닫고 저마다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도록 도와주소서.

예물기도

주님,
이 신비로운 제사를 정성껏 거행하며 간절히 청하오니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헌하는 이 제물이
저희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2 : 구원의 신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 많은 인류를 가엾이 여기시어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고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시어
저희를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하셨으며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9,2-3
주님의 기적들을 낱낱이 전하오리다. 지극히 높으신 분, 저는 당신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당신 이름 찬미하나이다.

<또는>

요한 11,27 참조
주님, 저는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이웃을 사랑하고, 악인들마저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기는 더더욱 힘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길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자비를 실천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세상에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이 거룩한 제사에서 구원의 보증을 받았으니
저희가 실제로 그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넷플렉스에서 몸짱 100’이라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몸매와 건강을 자랑하는 100명을 초대해서 게임을 하는 프로입니다. 체조선수, 권투선수, 레슬링선수, 특수부대 군인, 보디빌더, 치어리더, 소방관, 야구선수와 같이 각 분야에서 최고의 몸과 건강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초대되었습니다. 처음 시작한 게임은 매달리기였습니다. 강한 사람들끼리 모여서인지 다들 매달리기에 자신 있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강한 사람들 사이에도 더 강한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가장 강한 사람은 20분가량 매달려 있었습니다. 저는 1분을 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희 때는 대학시험의 한 과목으로 체력장이 있었습니다. 턱거리, 윗몸일으키기, 오래달리기와 같은 종목이 있었습니다. 저도 열심히 연습했던 기억이 납니다. 배당 점수가 20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몸짱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크게 아프지 않고 맡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적당한 운동과 규칙적인 식사 그리고 긍정적인 생각이 건강한 몸을 위해서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표징을 보여 주셨습니다. 눈이 먼 사람은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듣지 못하는 사람은 듣게 해 주셨습니다. 중풍병자는 자리에서 일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나병환자는 깨끗하게 해 주셨습니다. 아픈 사람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물 위를 걸으셨고, 풍랑을 잠재우셨습니다.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짱은 아니셨던 것 같습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3번이나 넘어지셨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다른 2명은 아직 살아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이미 숨을 거두셨습니다. 성인과 성녀들 중에도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아픈 몸까지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봉헌하였습니다. 평생 수녀원 밖으로 나간 적이 없지만 선교사들의 수호성인이 되었습니다. 오상의 비오 성인은 예수님의 다섯 상처를 지니고 살았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주제는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니 여러분도 거룩해 져야 한다.”입니다. “하느님께서 완벽하시니 여러분도 완벽해져야 한다.”입니다. 거룩함과 완벽함의 기준은 몸짱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몸짱은 아니셨고, 성인과 성녀들도 몸짱으로 성인이 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룩함과 완벽함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은 4가지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고 기꺼이 도와주는 측은지심의 마음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뉘우치는 수오지심의 마음입니다. 자신의 공로를 앞세우기 보다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양지심의 마음입니다. 옳고 그름을 식별하는 시비지심의 마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완벽함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원하는 것을 채울 수 있는 권력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을 구할 수 있는 재물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존경하는 명예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얻기 위해서 지금도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저는 박노해 시인의 이스탄불의 어린 사제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어린이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룩한 마음, 완벽한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슬픔 속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을 보았습니다.

폭설이 쏟아져 내리는 이스탄불 밤거리에서/ 커다란 구두 통을 멘 아이를 만났다./ 야곱은 집도 나라도 말글도 빼앗긴 채/ 하카리에서 강제이주당한 쿠르드 소년이었다./ 오늘은 눈 때문에 일도 공치고 밥도 굶었다며/ 진눈깨비 쏟아지는 하늘을 쳐다보며/ 작은 어깨를 으쓱한다./ 나는 선 채로 젖은 구두를 닦은 뒤/ 뭐가 젤 먹고 싶냐고 물었다./ 야곱은 전구 알같이 커진 눈으로/ 한참을 쳐다보더니 빅맥, 빅맥이요!/ 눈부신 맥도날드 유리창을 가리킨다./ 학교도 못 가고 날마다 이 거리를 헤매면서/ 유리창 밖에서 얼마나 빅맥이 먹고 싶었을까!/ 나는 처음으로 맥도날드 자동문 안으로 들어섰다./ 야곱은 커다란 햄버거를 굶주린 사자새끼처럼/ 덥석 물어 삼키다 말고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담배를 물었다./ 세입쯤 먹었을까/ 야곱은 남은 햄버거를 슬쩍 감추더니/ 다 먹었다며 그만 나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창 밖에는 흰 눈을 머리에 쓴/ 대여섯 살 소녀와 아이들이 유리에 바짝 붙어/ 뚫어져라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야곱은 앞으로 만날 때마다/ 아홉 번 공짜로 구두를 닦아주겠다며/ 까만 새끼손가락을 걸며 환하게 웃더니/ 아이들을 데리고 길 건너 골목길로 뛰어 들어갔다./ , 나는 그만 보고 말았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몰래 남긴 햄버거를/ 손으로 떼어 어린 동생들에게/ 한입 한입 넣어주는 야곱의 모습을/ 이스탄불의 풍요와 여행자들의 낭만이 흐르는/ 눈 내리는 까페 거리의 어둑한 뒷골목에서/ 나라 뺏긴 쿠르드의 눈물과 가난과 의지와 희망을 영성체처럼/ 한입 한입 떼어 지성스레 넣어주는/ 쿠르드의 어린 사제 야곱의 모습을

 


2. 2023년 02월 19일 일요일

[연중 제7주일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주님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 이것은 영성체 전에 우리가 반복하는 기도문입니다.

이는 우리의 몸과 우리의 인생을 형제들이 먹고 마실 양식으로 내주지 못함을 고백하면서,

주님의 영과 정신으로 이것을 실행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하는 기도입니다.

많은 경우 세상에서 관계는 이른바 상호(相好)에 의존합니다.

흔히 말하는 교환 정의를 바탕으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상대방이 웃으면 나도 웃고 상대방이 화를 내면 나도 화를 냅니다.

우리의 정의가 교환과 저울에 근거한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하느님께서는 정의로우신 분이시라고 판단합니다.

선인에게 상을 주시고 악인에게 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가 가진 정의에 대한 생각으로 하느님의 정의를 판단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는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정의는 세상의 통념과 다른 새로운 정의입니다.

이 새로운 정의는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정의입니다.

그것은 상대의 반응에 매이지 않고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과 헌신에 근거한 정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에 속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사랑을 닮은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꽃이 향기를 내는 것은 그것이 꽃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꽃은 밟아도 향기를 뿜어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을 합니다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합니다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의 정의를 따라 사는 사람과 다릅니다.

우리의 부모를 생각해 봅시다내가 그분들을 괴롭혔을 때 그분들은 어떻게 하셨나요?

우리는 왜 부모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릴까요?

교환 정의 때문입니까아니면 부모가 우리에게 주신 조건(條件없는 사랑 때문입니까?

우리는 오늘도 주님을 따라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33)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희망을 걸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해 주시기를,

그래서 우리가 그분의 사랑으로 세상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3. 이영근 신부 강론

 

230218. 연중 제6주간 토요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7)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그분의 옷은~ 새하얗게 빛났다.”(마르 9,3)
 
예수님께서는 당신 안에 숨기고 계시는 하느님의 속성을 드러내셨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신성이 드러났습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온전히 충만한 신성이 육신의 형태로 그리스도 안에서 머무르고 있습니다.”(골로 2,9)
 
이처럼, 장차 우리도 예수님처럼 아름답게 변모하게 될 것입니다. 곧 언젠가 우리 안에 숨겨진 신성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의 비천한 몸은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필립 3,21)

이 얼마나 우리는 놀라운 존귀한 존재인가?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을 모실 ‘초막’을 지어야 할 일입니다. 베드로가 산 위에다 짓고자 했던 그 ‘초막’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의 현장 안에서 지어야 할 일입니다.
 
그렇다면, 초막은 무엇으로 지어지는가? 그것은 바로 ‘말씀’입니다. 곧 말씀으로 초막은 지어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그분의 말씀을 듣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분께서는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오늘도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7)
 
이는 예수님의 신원을 알려주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알려줍니다. 그것은 바로, 그분의 말씀을 ‘듣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사랑에 따라 산다는 것은 바로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요, 말씀의 순종으로 우리의 몸이 예수님의 몸으로 변모되는 일입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러분도 그분 안에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콜로 2,10)

그리하여 우리는 거룩한 그리스도의 신성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곧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의 신성이 우리에게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이 되는 영광의 관을 쓰게 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요!!
 
오늘도 우리는 자신의 모습이 더 건강하고 더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지금 나의 모습은 1년 혹은 2년 전의 나의 모습과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아름답고 거룩하게 변모되어 있는가요? 아니면 추하고 속되게 변모되어 있는가요?
 
오늘 하늘에서 한 말씀이 들려옵니다. ‘거룩해지려거든 그의 말을 들어라!!’
 
그렇습니다. 오늘 진정 거룩하게 변모되기를 바란다면,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할 일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믿고 순명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7)

주님!
말씀의 권능으로 저를 덮으소서.
구름 속에서 울려오는 당신 음성으로 저를 덮으소서.
제 자신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요 장소가 되게 하소서.
저의 비천한 몸을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시키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믿음의 여정, 믿음의 전사

-부단한 신비체험 은총과 훈련의 노력-

 

“믿음으로 믿음으로 하나가 되리라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하나가 되리라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사랑을 바치리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즐거이 바치리 믿음으로”

 

자주 흥얼거리며 불러 보는 성가 480장 믿음으로 3-4절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믿음 없으면 남는 것은 허무와 헛된 욕망뿐입니다. 노욕과 노추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품위있고 아름다운 노년과 죽음은 기대하기 힘듭니다. 세월 흘러 나이들어갈수록 믿음의 중요성을 절감합니다.

 

지금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60대 중반에 떠난 선배 수도사제의 선종의 죽음입니다. 제가 늦깎이로 수도원 입회했기에 나이는 저보다 적지만 수도생활은 저보다 10년 정도 앞선 분입니다. 문병후 3일후에 선종하셨는데 문병때도 죽음의 공포가 전혀 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환대해줬던 분으로 위로하러 갔던 제가 오히려 위로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신부님은 손에 열알 짜리 묵주를 잡고 끊임없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좌우명 기도시도 낭독해 드렸고 신부님은 정말 좋다고 화답까지 해줬습니다. 믿음의 정체가 환히 드러나는 죽음입니다. 평상시 믿음의 전사로서 믿음의 여정에 충실해 왔던 결과 이런 아름답고 품위있는 선종의 죽음입니다.

 

공동휴게 시간이 되도 활발히 어울리기는 힘들어 때로 안락의자에 기대어 수도원 역사 사진첩을 보곤 합니다. 30년전 제 나이 40대 중반, 머리카락도 까맣던 풋풋했던 젊었을 때의 사진들이 참 매력적이었고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저절로 세월흘러 나이들었음을 확인케 하는 옛 사진들이었습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금까지보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는 절실하고 절박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장수시대라 하지만 많아야 대부분 90세 전후에 세상을 떠나고, 나이 관계없이 갑작스런 죽음의 비보도 들려오곤 합니다. 그러니 살아온 날보다는 살 날이 짧다는 고작 15년 정도 남았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참 소중한 선물이란 자각에 믿음을 새로이 하게 됩니다. 죽으면 영원한 안식에 휴가일진데 휴가도 아깝다는 생각에 휴가를 접은지 수십년입니다.

 

믿음의 여정중에 믿음의 전사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제가 늘 자주 인용해왔던 믿음의 순례 여정중 지금의 우리 위치입니다. 일일일생 하루로 우리 인생을 압축하면 어느 시점에, 일년사계로 우리 인생을 압축하면 어느 시점에 위치해 있겠는가 하는 점검입니다. 제 경우 늘 확인하다 시피 아마 오후 6시 해가 지는 죽음이라면 지금은 오후 4시, 봄-여름-가을-겨울 인생중 지금은 초겨울쯤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런 묵상이 환상이나 거품을 거둬내고 하루하루의 선물 인생, 날마다 오늘 지금 여기서 본질적 깊이의 믿음의 삶을 살게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노년은 물론 참으로 아름답고 품위있는 삶을 위한 우선순위의 세 요소가 생각납니다. “1.하느님 믿음, 2.건강, 3.돈”입니다. 참으로 믿음이 좋아야 이에 따르는 영육의 건강이요, 탐욕의 절제입니다. 믿음 없이는 건강과 돈이 절대의 우상이 되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믿음의 여정입니다. 나무처럼 믿음의 내적 여정중 평생 날로 성장해가는 믿음입니다. 역시 믿음의 성장에도 도약이나 비약은 첩경의 지름길은 없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이런저런 크고 작은 신비체험 은총과 부단한 훈련의 노력을 전제로 합니다. 믿음에 제대는 없습니다. 죽어야 제대로 영원한 현역의 믿음의 전사라는 것입니다. 죽는 그날까지, 살아있는 그날까지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하는 주님의 전사입니다.

 

그래서 끝기도로 하루의 영적전쟁을 끝내고 잠자리에 들 때는 참 편안해 이런 선종의 죽음이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때가 많습니다. 오후 8시30분에 잠자리에 들어 오전 12시 30분에 일어나면 4시간 정도의 수면이지만 참 깊고 단 잠이니 주님의 은총입니다. “주님은 사랑하시는 자에게, 그 잘 때에 은혜를 베푸심이로다”(시편127,2ㄴ) 말씀도 그대로 체험하는 잠시간입니다.

 

어제까지 제1독서는 창세기였는데 오늘부터는 히브리서가 소개됩니다. 오늘은 히브리서 11장 믿음에 관한 내용의 시작입니다. 먼저 믿음에 대한 정의에 이어 믿음의 모범적 인물들에 대한 소개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保證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確證입니다.”

 

바로 믿음의 정의입니다. 바로 옛사람들은 이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인정받으니 믿음보다 더 큰 자산은 없습니다. 불신불립不信不立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서지 못합니다. 믿음을, 신뢰를 잃으면 모두를 잃는 것이요 회복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다 잃어도 믿음만, 신뢰를 잃지 않으면 곧 다시 일어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믿음입니다. 생명보다 중요한 믿음입니다. 믿음 때문에 생명까지 바친 순교의 죽음입니다.

 

믿음의 훈련과 더불어 믿음의 뿌리, 믿음의 탄력입니다. 믿음도 한결같은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믿음의 은총과 훈련이 우리를 정화하고 성화하여 더욱 주님을 닮게 합니다. 교황님 말씀대로 영적 평범함(spiritual mediocrity)을, 세상의 안락함(worldly confort)과 천박함(superficiality)을 극복하게 하고,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의 친밀함(closeness)과 연민(compassion), 부드러움(tenderness)을 닮게 합니다. 오늘 히브리서는 믿음의 공부에 믿음의 훈련에 참 큰 도움이 됩니다. 내용이 적절해 인용하여 나눕니다.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믿음으로써, 아벨은 카인보다 나은 제물을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믿음으로써, 에녹은 하늘로 들어 올려져 죽음을 겪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관하여 지시를 받고, 경건한 마음으로 방주를 마련하여 자기 집안을 구원하였습니다.

 

참 한결같이 훌륭한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죽은 시종여일始終如一한 믿음의 전사들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감동하시는 바도 우리의 믿음입니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이 믿음의 훈련입니다. 도대체 영성생활의 수행에 훈련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기도도, 믿음도, 희망도 사랑도 훈련입니다. 영원한 현역의 믿음의 전사에게 죽는 그날까지 한결같은 믿음의 훈련은 필수입니다. 제가 매일 쓰는 강론 역시 일종의 믿음의 훈련이요 수도자들이  매일 평생 바치는 공동전례기도 역시 참 좋은 믿음의 훈련입니다.

 

이런 훈련에 자극과 더불어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주는 신비체험의 은총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보다 시피 믿음의 훈련에 다소 피곤해진 최측근의 애제자들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당신의 신비스런 변모 사건을, 당신 부활의 영광을 미리 앞당겨 체험토록 특별 피정 시간을 갖습니다. 주님의 각별한 배려 은총의 신비 체험입니다. 신비체험에 매혹된 베드로는 엉겁결에 그 영적 욕심의 집착을 드러냅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즉시 제동을 걸고 나오는 하느님은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이 제정신을 찾아 제자리에서 제대로 믿음의 일상에 충실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바로 광야 인생, 믿음의 여정중에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아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이제 신비체험의 은총을 선물로 받았으니 일상에 복귀하여 주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경청하고 한결같이 기도하며 믿음의 전사로서 믿음의 훈련, 믿음의 여정에 충실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를 당신 모습으로 점차 변모시켜 주시고, 믿음의 여정 중인 우리 모두가 영원한 도반이신 당신과의 우정을 날로 깊게 하시며, 시종일관始終一貫 훌륭한 믿음의 전사로 살게 하십니다. 아멘.


[2/19(일) 연중 제7주일, 되새김 구절]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룩함과 완벽함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은 4가지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고 기꺼이 도와주는 측은지심의 마음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뉘우치는 수오지심의 마음입니다. 자신의 공로를 앞세우기 보다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양지심의 마음입니다. 옳고 그름을 식별하는 시비지심의 마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조재형 신부)

 

2.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33)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희망을 걸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해 주시기를,

그래서 우리가 그분의 사랑으로 세상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시기를 청합시다.(정용진 신부)

 

3. 제 자신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요 장소가 되게 하소서.
저의 비천한 몸을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시키소서. 아멘. (이영근 신부)

 

4. 주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경청하고 한결같이 기도하며 믿음의 전사로서 믿음의 훈련, 믿음의 여정에 충실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수철 신부)

 

[2/19(일) 연중 제7주일, 제 57일 기도]

 

하느님!

제 자신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요 장소가 되게 하소서.
저의 비천한 몸을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시키소서. 아멘.

 

- 2023년 2월 19일(일) 8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