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3월 9일 목요일[(자) 사순 제2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3. 3. 9. 07:54

[매묵]2023년 3월 9일 목요일[(자) 사순 제2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139(138),23-24 참조
하느님, 저를 꿰뚫어 보시고 제가 걸어온 길 살펴보소서. 저의 길 굽었는지 보시고 영원한 길로 저를 이끄소서.

본기도

하느님,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사랑하시니
저희 마음에 성령의 불을 놓으시어
굳은 믿음으로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는 저주를 받지만, 주님을 신뢰하는 이는 복되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17,5-10
5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6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7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8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9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10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2.3.4와 6(◎ 40〔39〕,5ㄱㄴ)
◎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
○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

복음 환호송

루카 8,15 참조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19-31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이 제사로 사순 시기를 거룩히 지내게 하시고
겉으로 지키는 재계로 마음속 깊이 회개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셨으며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119(118),1
행복하여라, 온전한 길을 걷는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이 거룩한 제사의 힘으로 저희가 끊임없이 선행을 실천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
주님,
주님의 도우심을 간청하는 종들을 굽어보시어
주님의 힘으로 보호하시고 이끌어 주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2023년 03월 09일 목요일

[사순 제2주간 목요일[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복음서에서 이름이 언급된다는 것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한 사람 전부를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많은 경우에 복음서가 언급하는 이름은 그 이름만으로도 의미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비유는 흔히 가난한 라자로의 비유로 불립니다.

라자로는 엘아자르의 축약형으로 하느님께서 도우신다.’는 뜻을 지닙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두 인물은 라자로와 어떤 부자입니다.

비유에서 아브라함과 어떤 부자가 직접 대화하지만 그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라자로만이 언급됩니다.

이미 라자로라는 이름에서부터 비유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드러납니다.

비유 안에서 화려한 차림의 부자와 온몸이 종기투성이인 라자로에 대한 묘사는 현세에서 드러나는 부와 가난을 대조적으로 보여 줍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상황은 다릅니다.

라자로는 복된 모습이지만 부자는 고통을 겪는 듯합니다.

비유가 죽음 이후에는 모든 것이 현세의 상황과 반대로 된다는 것을 직접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라자로는 오직 이 한 가지 희망을 가졌지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부자의 잘못은 라자로로 대표되는 이웃에 대한 무관심처럼 보입니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이 아니라 말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바른길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계명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2020 8월에 부탁을 받고 부르클린 한인 성당 미사를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3달만 도와주려고 했는데 어느덧 3년이 되었습니다. 한국으로 치료차 간 신부님은 몸이 아파서 돌아 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신문 홍보를 다닐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인연이 되었고, 저는 ‘Part time priest’로 임명을 받아서 미사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교우들도 다른 대안이 없으니 저를 본당 신부로 대해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셨으니 지난 3년을 무탈하게 지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은 시작이 있으면 마침이 있기 마련이니 언젠가 저도 신문사 임기가 마쳐지면 부르클린 미사도 다른 신부님이 오시리라 생각합니다. 돌아보면 부르클린 한인 성당은 하느님께서 제게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제가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LA에 신문 홍보를 하면서 저와 비슷한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미국에 공부하러 왔는데 본당 신부님이 몸이 아파서 3개월간 미사를 도와주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본당 신부님이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고, 신부님은 교구로부터 임명을 받지는 않았지만 계속 미사를 도와주고 있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신부님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신부님의 따뜻한 마음이 공동체에 위로와 기쁨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교황님께서 사순시기 담화문에서 부자와 라자로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부자에게 라자로는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내준 선물을 소중하게 간직하듯이, 우리는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을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선물로 알고 잘 도와 드리고, 그분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본당 신부님의 부재로 미사를 못 드리는 성당이 있습니다. 사제에게 그런 본당은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선물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도와주면 됩니다. 연금을 낼 형편이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료보험료를 지급할 형편이 안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그런 분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이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몇 년째 아파서 누워계시는 가족도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선물입니다. 직장을 얻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자녀도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선물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 3수를 하는 아들도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선물입니다. 원망하고, 무시하고, 짐으로 여기면 선물을 주신 하느님께서 무척 서운해 하실 것입니다. 감싸주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면 선물을 주신 하느님께서 그런 우리를 보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오늘 화답송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오늘의 복음 환호송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부자와 라자로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라자로는 현실의 삶에서는 병들고 가난하게 살았지만 죽어서는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대로 부자는 현실의 삶에서는 부유하게, 편안하게 살았지만 죽어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부자가 라자로를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선물로 알고 기쁜 마음으로 도와주었다면 부자도 아브라함의 품에서 안식을 얻었을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재물의 십일조, 노력의 십일조, 봉사의 십일조, 재능의 십일조, 시간의 십일조를 생각합니다. 이것은 결코 내가 가진 것을 낭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결코 썩거나 상하지 않는 하늘나라의 곳간에 우리의 마음을 쌓아 놓는 것입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그 선물을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308. 사순 제2주간 수요일.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7)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세 번째 예고 장면과 섬김과 출세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섬김과 출세에 대한 말씀을 보고자 합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과 그들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주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있기를 청합니다. 곧 높은 자리를 청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들의 열망을 나무라시지는 않으십니다. 오히려 이를 보고 불쾌하게 여기는 다른 제자들을 불러 당부하십니다.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6-27)
 
이는 높은 사람, 으뜸인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어떤 사람이 ‘진정한 높은 사람’인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동시에, 높은 사람이 되는 진정한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높은 사람’이란 남을 섬기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하면 먼저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왕이 되고 싶으며 ‘먼저’ 아내를 왕비로 대해야 하고, 왕비처럼 살고 싶으면 ‘먼저’ 남편을 왕으로 받들어야 하고, 성인이 되고 싶으면 ‘먼저’ 다른 사람을 성인으로 떠받들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남을 불신하고 신뢰하지 못하면 그렇게 신뢰받지 못하고 불신 받는 사람이 될 것이요, 남에게 자비로우면 남들에게도 자비를 입게 될 것입니다. 결국, 섬기는 사람이 섬김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아버지를 섬기셨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었으며, 당신을 배신하고 도망쳐 버릴 그 제자들을 섬기셨기에 섬김 받으십니다.
 
그러나 단지 작고 낮은 자라고 해서 섬기는 자인 것은 아닙니다. 혹은 희생과 헌신으로 봉사한다고 해서 섬기는 자인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섬긴다는 것은 자신을 낮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높이고 떠받들며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낮춘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는 ‘존경’이 없다면, ‘진정한 섬김’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섬김’은 내가 낮은 자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를 높은 자 되게 하는 데 그 본질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를 높이기 위해서, 곧 우리를 하느님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섬기셨듯이 말입니다. 묘하게도, 섬기는 사람은 섬기는 그 사람을 닮아갑니다. 스승이신 예수님을 섬기면 예수님이 되어가고, 진리를 섬기면 진리가 되어 갈 것입니다. 돈을 섬기면 탐욕스런 사람이 되어가고, 세상을 섬기면 세속적인 사람이 되어 갈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주님을 섬기는 학원”(<베네딕도 규칙서> 머리말 45)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형제 섬기기를 통하여 주님 섬기기를 배워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마태 20,23)
 
주님!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제 몸에 당신 생명이 담겨 있음을 잊지 말게 하소서.
오늘도 제 몸이 으깨지고 부서져, 당신의 생명을 드러내게 하소서.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청하게 하시고,
언제나 당신의 죽음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당신과 함께 죽음으로써 당신의 생명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하느님 중심의 삶

-메멘토 모리, 아모르 파티, 카르페 디엠-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년, 근력이 좋아서야 팔십년,

 그나마 거의가 고생과 슬픔이오니 덧없이 지나가고,

 우리는 나는 듯 가버리나이다.”(시편90,10)

 

건강도 젊음도 찰나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문병차 병원에 갔다가 코로나로 환자는 보지 못하고 전화 통화로 위로와 강복을 전했습니다. 참 많은 환자들로 병원이 북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병원이나 그럴 것입니다. 

 

어제 우리 노수도형제도 눈수술을 위해 입원했습니다. 지난 토요일 이발때는 미리 강복을 받았고 오늘 미사전에 가게 된다며 특별미사를 청하여 새벽4시 집무실에서 수사님위해 함께 미사봉헌했습니다. 아무래도 많이 불안했던 듯 합니다.

 

참으로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는 것도 참 짧은 날들이요, 대부분은 병고로 근심, 걱정으로 지내는 날들 같습니다. 요즘 들어 병고중인 분들도 많고 세상을 떠난 이들도 많습니다. 새삼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 살아있는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전 카톡 메시지를 받고 공감했습니다. 천국의 시민들이 가장 많이 쓰는 천국의 언어 7가지라 합니다.

 

1.미안해요(I am sorry)

2.괜찮아요(That’ okay)

3.좋아요(Good)

4.잘했어요(Well done)

5.훌륭해요(Great)

6.고마워요(Thank you)

7.사랑해요(I love you)

 

좌우간 하루하루 많이 사용하여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늘나라를 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이 오늘 지금 여기서 행복한 삶을 살게 합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 꼭 기억해야 할 세마디를 나눕니다.

 

첫째,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성 베네딕도는 그의 규칙에서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라”(성규4,47) 말씀하셨습니다. 성인뿐 아니라 사막교부들의 이구동성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눈앞에 죽음을 환히 두고 살 때 언제 어디서나 환상이나 거품이 사라진 본질적 깊이의 참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당신 수난과 부활을 세번째로 예고하실 때 심정도 참 비장하셨을 것입니다.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주님은 늘 죽음을 기억하며, 염두에 두고, 또 부활의 희망을 내다보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셨을 것입니다. 죽음을 염두에 둘수록 강화되는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예레미야 예언자 역시 예수님처럼 사면초가의 위기상황입니다. 예수님처럼 죽음의 위기중에 간절히 기도하는 예레미야요,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았을 예언자입니다.

 

“선을 악으로 갚아도 됩니까? 그런데 그들은 제 목숨을 노리며 구덩이를 파 놓았습니다. 제가 당신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고, 당신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리려 했던 일을 기억하소서.”

 

둘째, 아모로 파티(amor fati)

운명애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사상가운데 하나지만 우리 믿는 이들에게도 참 적절한 삶의 자세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사랑하여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짐을 기꺼이, 용감하게 선물로 받아들일뿐 아니라 하루하루 주님을 선택함으로 아름답고 보람차고 충만한 삶을 사는 것도 포함됩니다.

 

바로 이런 자세는 오늘 제자공동체를 대하는 예수님 모습에서도 잘 들어납니다. 참으로 동상이몽의 철부지 공동체같습니다. 스승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예고에도 불구하고 제베데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다가와 청을 드리니 말그대로 무지와 오해의 반영입니다.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스승님의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완전히 강요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일체의 동요없이 참으로 차분하게 대응하십니다. 이것은 주님의 소관밖이며 아버지께서 하실 일임을 밝히십니다. 대신 두 제자들이 책임을 다할 것임도 예고하십니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은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자기와 함께하는 공동체를 참으로 사랑하신 주님이심이 분명합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 말씀도 생각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기에 앞선 묘사에서 얼마나 공동체 제자들을 사랑하신 주님이신지 아모로 파티의 빛나는 모범인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끝까지 내 삶을, 이웃 형제들을, 심지어 내 죽음까지, 자기의 운명을 통털어 사랑으로 감싸안는 자가 아모로 파티의 사람이요 예수님이야말로 그 빛나는 모범입니다. 원망은 추호도 없고 찬미와 감사,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한 영적승리의 삶을 상징합니다.

 

셋째,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을 살아라. 참으로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사는 메멘토 모리의 사람은, 참으로 자기 십자가의 책임을, 운명을 사랑하여 힘껏 등에 지고 품에 안고 살아가는 아모로 파티의 사람은 오늘 지금 여기에 충실하여 주님과 일치하여 본질적 깊이의 카르페 디엠의 삶을 삽니다. 

 

바로 복음의 예수님이 그 빛나는 모범입니다. 마치 주님의 유언처럼 들립니다. 군림하거나 지배하는 세상의 통치자들이나 고관들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섬김과 종의 영성에 충실한 삶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섬기는 사람이 되라는 어제와 똑같은 말씀입니다. 참 영성의 잣대는 섬김의 삶입니다.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삶, 이웃을 주님처럼 섬기는 겸손한 사랑의 삶입니다. 마지막 죽는 그날까지 하루하루 섬김의 삶에 충실하는 카르페 디엠의 사람이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 중심의 삶에, ‘메멘토 모리의 사람’으로, ‘아모르 파티의 사람’으로, ‘카르페 디엠의 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 참으로 자주 인용해도 늘 새로운, 이 모두를 요약한 제 좌우명 고백 기도시 마지막 연을 나눔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3/8(목)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복음이 전하는 비유는 흔히 가난한 라자로의 비유로 불립니다.

라자로는 엘아자르의 축약형으로 하느님께서 도우신다.’는 뜻을 지닙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두 인물은 라자로와 어떤 부자입니다.

부자의 잘못은 라자로로 대표되는 이웃에 대한 무관심처럼 보입니다.(허규 신부)

 

2. 부자에게 라자로는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내준 선물을 소중하게 간직하듯이, 우리는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을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선물로 알고 잘 도와 드리고, 그분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조재형 신부)

 

3. 섬기는 사람은 섬기는 그 사람을 닮아갑니다. 스승이신 예수님을 섬기면 예수님이 되어가고, 진리를 섬기면 진리가 되어 갈 것입니다. 돈을 섬기면 탐욕스런 사람이 되어가고, 세상을 섬기면 세속적인 사람이 되어 갈 것입니다. (이영근 신부)

 

4. 우리 모두 하느님 중심의 삶에, ‘메멘토 모리의 사람’으로, ‘아모르 파티의 사람’으로, ‘카르페 디엠의 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이수철 신부)

 

[3/8(목)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제 75일 기도]

 

하느님!

스승이신 예수님을 섬기며 예수님이 되어가게 하소서.

임마누엘 하느님의 이끄심에 순명하게 하소서.

매사 늘상 감사하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3월9일(목) 7시2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