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3월 14일 화요일[(자) 사순 제3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3. 3. 14. 08:18

[매묵]2023년 3월 14일 화요일[(자) 사순 제3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17(16),6.8 참조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본기도

주님,
저희에게 풍성한 은총을 내리시어
저희가 이 거룩한 제사를 정성껏 거행하고
언제나 주님의 도움을 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저희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받아 주소서.>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3,25.34-43
그 무렵 25 아자르야는 불 한가운데에 우뚝 서서
입을 열어 이렇게 기도하였다.
34 “당신의 이름을 생각하시어 저희를 끝까지 저버리지 마시고
당신의 계약을 폐기하지 마소서.
35 당신의 벗 아브라함, 당신의 종 이사악, 당신의 거룩한 사람 이스라엘을 보시어
저희에게서 당신의 자비를 거두지 마소서.
36 당신께서는 그들의 자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37 주님, 저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저희의 죄 때문에
저희는 오늘 온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38 지금 저희에게는 제후도 예언자도 지도자도 없고
번제물도 희생 제물도 예물도 분향도 없으며
당신께 제물을 바쳐 자비를 얻을 곳도 없습니다.
39 그렇지만 저희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보시어
저희를 숫양과 황소의 번제물로,
수만 마리의 살진 양으로 받아 주소서.
40 이것이 오늘 저희가 당신께 바치는 희생 제물이 되어
당신을 온전히 따를 수 있게 하소서.
정녕 당신을 신뢰하는 이들은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41 이제 저희는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따르렵니다.
당신을 경외하고 당신의 얼굴을 찾으렵니다.
저희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42 당신의 호의에 따라,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희를 대해 주소서.
43 당신의 놀라운 업적에 따라 저희를 구하시어
주님, 당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5(24),4-5ㄱㄴ.6과 7ㄴㄷ.8-9(◎ 6ㄴ 참조)
◎ 주님, 당신의 자비 기억하소서.
○ 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 저를 가르치시어 당신 진리로 이끄소서. 당신은 제 구원의 하느님이시옵니다. ◎
○ 주님, 예로부터 베풀어 오신, 당신의 자비와 자애 기억하소서. 주님, 당신의 자애에 따라, 당신의 어지심으로 저를 기억하소서. ◎
○ 주님은 어질고 바르시니, 죄인들에게도 길을 가르치신다. 가련한 이 올바른 길 걷게 하시고, 가난한 이 당신 길 알게 하신다. ◎

복음 환호송

요엘 2,12-13 참조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그럽고 자비로우니 이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복음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8,21-35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구원의 제사로 무한한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 죄를 말끔히 씻어 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셨으며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15(14),1-2
주님, 당신의 천막에 누가 머물리이까?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누가 지내리이까? 흠 없이 걸어가고 의로운 일을 하는 이옵니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거룩한 신비에 참여하는 저희에게 생기를 주시고
저희를 죄에서 구하시며 언제나 보호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
하느님,
저희를 하느님 백성으로 세우시고 이끄시니
저희를 괴롭히는 죄를 물리치시어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 마음에 들게 하시고
안전하게 지켜 주소서.
우리 주 …….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오늘의 묵상

1. 2023년 03월 14일 화요일

[사순 제3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주님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이 질문의 바탕에는 당시 유다인들의 생각이 깔려 있는 듯합니다.

유다교에도 잘못한 형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라삐들은 같은 죄를 세 번 용서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유다인들의 관습을 생각한다면 베드로 사도의 질문은 훨씬 더 관대합니다.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보다 더 큰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오늘 복음은 신앙인의 윤리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일흔일곱 곱절입니다(창세 4,24 참조).

어떤 학자들은 일곱 번을 일흔 번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 수가 얼마나 큰지를 떠나서

자신에게 잘못한 형제를 용서하는 데 제한을 두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두 종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가장 큰 계명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9).

이 비유에서 강조되는 것은 용서받는’ 것과 용서하는’ 것입니다.

만 탈렌트라는당시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엄청난 빚을 탕감 받은 종이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형제를 용서하지 못합니다.

의미로 본다면 본인은 엄청난 죄를 용서받았으면서도,

형제의 죄는 좀처럼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서 중요한 점은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입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보다 용서받은 체험이 먼저입니다.

우리는 용서받은 모습 그대로 이웃의 잘못을 용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가엾이 여기십니다.

이 마음을 본받아 우리도 다른 이들에게 자비를 실천해야 합니다.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예전에 무협지를 읽을 때가 있었습니다. 무협지의 주된 사상은 권선징악(勸善懲惡)’입니다. 부모님은 무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어린 아들이 깊은 산중에서 스승의 가르침으로 무예를 익힙니다. 성장한 아들은 이제 부모를 죽인 무도한 사람들을 상대로 원수를 갚는 것입니다. 무술의 경지는 약방의 감초처럼 즐거움을 주지만 결국 무협지의 결론은 선은 승리하고 악은 응징한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도 공동체를 이루면서 권선징악이 사회의 질서를 이루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의 내용도 권선징악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야 권위가 생기고, 질서가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 다닐 때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 lex talionis)’도 배웠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잘못을 응징하는 것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표현으로 이야기합니다. 구약의 율법과 계명도 권선징악과 동태복수법의 근간에서 제정되었습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난다.’라는 말처럼 선한 일에는 보상을 주고, 악한 일에는 벌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권선징악과 동태복수법 을 과감하게 허물었습니다. 이는 기존의 질서 속에서 권위를 누리던 이들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허물었던 은 안식일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사람들은 안식일의 규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식일의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지킬 수 없는 사람은 죄인으로 규정했습니다. 죄인들은 속죄의 행위로 제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허물었던  권선징악의 질서였습니다. 물론 선한 사람에게 상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에게도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악한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도 방법이지만 악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면 하느님께서는 그 자비를 보시고 나의 잘못도 용서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면 하느님께서는 나의 잘못도 용서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허물었던 은 동태복수법의 질서였습니다. 누가 뺨을 때리면 다른 뺨마저 내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천 걸음을 가자고 하면 이천 걸음까지 가주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까지 주라고 하셨습니다. 달라고 하면 기꺼이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는 가르침이 있지만 이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악인들도 자신의 가족들은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이제 자신의 가족을 넘어서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이웃의 잘못을 몇 번이나 용서하면 좋은지 물었습니다. 일곱 번이면 충분한지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용서에는 제한이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간구하였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나라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자비와 용서였습니다.

 

1930년대에 미국은 대공황이 있었습니다. 대공황의 원인은 산업혁명으로 많은 제품이 생산되었지만 그것을 소비할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 공정한 임금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자본가는 공장을 늘리고, 수익을 올리지만 노동자는 더욱 가난해 지고, 생산된 물품을 소비할 수 없기에 공황이 시작되었습니다. 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루즈벨트 대통령은 정부 주도로 새로운 사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적법한 임금을 지급하였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새로운 경제 정책 수립에 도움을 준 사람은 가톨릭교회의 성직자 라이온 몬시뇰입니다. 라이온 몬시뇰의 이론적인 근거는 교황 레오 13세가 반포한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였습니다. 이 교서는 간단히 말하면, 하느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기본권과 의무를 올바르게 제시하여 사회 정의를 실현하게 한 것입니다. 이 교서의 사회 정의관에 근거하여 자본가와 노동자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노동법으로 미국의 노동자들은 제대로 임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노동자의 구매력이 왕성해졌으니 자본가의 생산 활동도 활기를 띠게 되었습니다. ‘부익부 빈익빈 을 버리고 모두가 행복한 공생의 을 만들었습니다.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우리들 또한 자비와 용서의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313. 사순 제3주간 월요일.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습니다.”(루카 4,30)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루카 4,24)

예수님께서는 스스로를 ‘예언자’로 자처하시면서, 예언자가 자기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배척하고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그들은 들고 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습니다.”(루카 4,29)
 
이는 예수님의 전 생애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받으실 배척을 예고해줍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또 다시 성문 밖으로 내몰리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이 사실은 이스라엘 밖, 이방인지역들에게로 당신 구원이 퍼져나가게 될 것을 예시해줍니다. 곧 완고한 이스라엘 대신 장차 당신을 맞아들이게 될 다른 민족들의 교회를 미리 가리켜줍니다.
 
그러나 그분을 죽이려는 그들의 음모는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습니다.”(루카 4,30)

이는 당신이 수난을 거절하신 것이 아니라, 다만 당신이 고난을 받으실 때가 아직 오지 않은 까닭입니다. 때가 되면, 당신께서는 수난을 스스로 받으시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강제로 끌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몸소 당신을 내어주실 것입니다. 실로 당신은 원하시면 붙잡히시고, 나무에 달리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언덕 위 벼랑에까지 그분을 떨어뜨리려 내몰아갔지만, 그들 한가운데를 유유히 가로질러 가시는 그분을 그 누구도 어찌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직 수난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완고하여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거역하였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고집부리는 사울을 꾸짖을 때, 사무엘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1사무 15,23) 
 
그러기에, 우리는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고집할 때,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자신의 피조물인 자신의 생각을 섬기고 따르는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우상을 벗어나야,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게 됩니다. 믿음은 자기에게서 빠져나와 하느님께로 가는 것이지, 하느님을 자기의 좁은 지식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완고함이야말로 불신의 씨요, 믿음이야말로 하느님을 끌어당기는 자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완고함과 고집으로 형제를 불신하고,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루카 4,24)

주님!
스승을 곁에 두고도 존경하지 않은 저는
수술을 받아야 살 수 있는 데도 의사를 믿지 않아 수술을 받지 않는
어리석은 환자입니다.
제 앎을 뛰어넘는 당신을 믿지 못함은
안다는 제 생각을 섬기고 따르는 우상숭배자입니다.
이제는 제 자신을 내려놓고 겸손함으로 존경하고, 

응답으로 믿음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참되고 멋진 믿음

-선입견, 편견이 없는, 겸손하고 순수한 믿음-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 하나이다.”(시편42,2-3ㄱ)

 

끊임없는 기도가, 끊임없는 회개가 인간 무지와 허무에 대한, 참된 믿음에 대한 궁극의 답입니다. 이와 더불어 참되고 멋진 믿음, 선입견과 편견이 없는, 겸손하고 순수한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은 절대 혼자의 믿음이 아닙니다. 더불어의 믿음, 더불어의 여정입니다. 

 

섬같은 고립된 믿음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에 자리잡은 활짝 열린 믿음이요 하느님 향한 순례 도상(途上)중의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의 도반들을 만나면 힘이 나고 기분이 좋습니다. 일기를 쓰듯 하루를 여는 강론입니다. 여러 일화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1.“아무 걱정 마시고 지극한 인내의 믿음과 희망을 지니고 치료에 전념하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명의(名醫)이신 주님께서 늘 함께 하십니다. 저의 평생 절친(切親)이신 주님께 특별히 제가 당부해놨습니다.”

“신부님께서 특별히 주님께 당부해놨다는 말씀에 빵 터지는 웃음꽃이었습니다. 신나게 웃었습니다. 당부해주셨다는 말씀에 힘이 납니다.”

 

이또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주님이 흡사 수십년동안 제 절친이란 생각에 아픈 자매님께 힘이 되고자 드린 덕담입니다. 

 

2.강론집이 지체되었다는 소식에 어느 순수한 믿음의 자매님이 답을 주었습니다.

“신부님, 혹시 제가 그 자매님 나으실때까지 제본해 드릴까요?”

“너무 감사합니다. 자매님답습니다. 당분간 보류하고 쉴까합니다. 하게 되면 그 자매님이 하게 될 때까지 자매님께 부탁하겠습니다. 청하는 마음이 너무 곱고 아름다워 감사합니다. 봄꽃 감사 선물로 드립니다.”

“와 꽃이 폈군요!!! 신비롭습니다.”

“매화꽃 수수하고 맑기가 자매님 영혼같아요, 순수하고 겸손한 믿음의 영혼!”

 

3.“매화꽃이 아름답고 우아하네요. 우아한 자태가 울 신부님의 거룩함을 닮았습니다!”

“자매님도 파스카의 봄꽃을 닮았지요! 겸손한 사랑!”

 

4.“예고치 못했던 병마와 싸우려니 지칩니다. 체력이 고갈상태라 고통스럽습니다. 너무 힘들고 괴로워 다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들었다 바로 참회하고 회개했습니다. 신부님 아프지 마세요. 신부님 편찮으시면 저희 모두 무너집니다. 제사랑드립니다.”

 

정말 감동적인 믿음입니다. ‘신부님 아프면 저희 모두 무너진다’라는 말이 마음깊이 새겨졌습니다. 참으로 혼자의 고립된 섬같은 믿음이 아니라 주님과 이웃에 활짝 열려있는 믿음임을 깨닫습니다. 더불어의 믿음, 더불어의 여정, 더불어의 도반들입니다. 

 

5.어제 베네딕도 규칙을 공부하면서 “다함께(All together)”란 대목의 해설에 적극 공감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에로 각자 개별적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 1등으로 목적지에 도착하려 노력하는 경주자가 아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말처럼 어느 사람이 다른 이의 월계관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달린다. 수도자는 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없이 더 이상 혼자 목표에 도달하려고 노력해선 안된다.”

 

6.조선시대 중기 대학자 화담 서경덕에 대한 소개도 잊지 못합니다. 정말 믿음의 삶에 “신독(愼獨)”이 얼마나 중요한지 공감했습니다.

‘서경덕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 가장 강조한 것이 여색(女色)을 멀리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의리의 출발은 혼자 있을 때 행동에 어긋남이 없어야 하는데, 이를 신독(愼獨)이라했다. 여색을 탐하는 것은 바로 신독을 못한다는 것이고, 신독을 못하는 사람은 다른 일도 옳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복음 말씀과 제1독서 열왕기 하권에서 참 멋진 믿음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다음 복음의 서두 예수님 말씀은 고향 사람들에 대한 주님의 실망을 반영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편견과 선입견에서 벗어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 고향 사람들은 질투와 편견, 선입견에 눈이 멀어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믿지도 못했습니다. 

 

참으로 순수한 믿음의 사람들은 선입견과 편견에서 많이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는 이런 편견과 선입견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은 삼년 육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을 때 엘리야를 시돈 지방 믿음 좋은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합니다.

 

또 하느님은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환자가 많이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습니다. 하느님께는 모든 경계와 벽이 철폐됩니다. 하느님이 보시는 것은, 감동하시는 것은 인종도, 국적도, 성별도 아닌 순수하고 겸손한 믿음뿐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엘리사와 나아만의 만남이 멋집니다. 아람 임금의 군대 장수인 나아만은 그의 주군이 아끼는 큰인물이었습니다. 나아만은 힘센 용사였으나 나병환자였습니다. 전화위복입니다. 나병덕분에 겸손하고 순수한 믿음을 지닐 수 있었고 마침내 엘리사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 치유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 혜성처럼 등장한 이스라엘의 포로 소녀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어떻게 일하실지 모릅니다. 깨어있는 믿음의 사람에게 계시되는 하느님의 작은 손길입니다. 소녀의 말에 귀를 기울여 응답한 여주인은 나아만에게 엘리사를 찾도록 합니다. 나아만의 등장에 믿음이 없는 이스라엘 임금은 두려워 옷을 찢엊지만 믿음의 예언자, 엘리사의 대응이 참으로 신속하고 기민합니다.

 

엘리사에게는 편견도 선입견도 두려움도 없습니다. 참 순수하고 참된 믿음의 예언자 엘리사입니다. 엘리사의 처신이 얼마나 의연하고 당당한지요. 심부름꾼을 시켜 나아만에게 요르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면 깨끗해질 거라 말씀하십니다. 나아만의 믿음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요르단강물의 효험이 아니라 믿음의 효험, 하느님 힘의 효험이기 때문입니다.

 

열화같이 성을 내던 나아만은 부하들의 충고에 즉시 회개하여 교만을 내려놓고 겸손히 엘리사의 명령에 순종하여 요르단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나오니 그는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습니다. 나아만의 겸손한 믿음에 하느님은 치유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엘리사도 믿음도 멋지고 회개한 나아만의 믿음도 멋집니다. 참으로 하느님 안에서 멋진 사람들의 만남입니다. 나아만의 하느님 믿음의 고백을 통해 그는 나병뿐만 아니라 영혼의 치유까지, 전인적 치유의 축복을 받았음을 봅니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정말 탓할 것은 하느님도 아닌 내 믿음 부족뿐이요 유일하게 청할 것은 믿음 하나뿐임을 깨닫습니다. 순수하고 겸손한 믿음, 편견과 선입견이 없는 참된 믿음입니다. 나아만과 복음의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의 믿음이 너무나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엘리사를 만나 회개와 더불어 치유받은 겸손한 믿음의 나아만과는 달리 예수님에 대한 고향사람들의 반응이 완고하기가 무지의 절정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회개는커녕 화가 잔뜩난 이들은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은후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밀어뜨려 죽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유히, 홀연히, 미련없이, 홀가분하게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시니 믿음의 승리, 믿음의 자유입니다. 새삼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를 통한 순수하고 겸손한 믿음이, 편견과 선입견, 두려움이 사라진 눈밝은 믿음이 얼마나 귀한지 깨닫습니다.

 

주님은 복된 사순시기,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회개와 더불어 겸손하고 순수한 믿음을 선사하십니다. 

 

“주님, 당신의 빛과 진리를 보내시어, 저를 인도하게 하소서,

 당신의 거룩한 산, 당신의 거처로 데려가게 하소서.”(시편43,3.). 아멘.


 

[3/24(화) 사순 제3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예수님 말씀에서 중요한 점은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입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보다 용서받은 체험이 먼저입니다.(허규 신부)

 

2. 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루즈벨트 대통령은 정부 주도로 새로운 사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적법한 임금을 지급하였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새로운 경제 정책 수립에 도움을 준 사람은 가톨릭교회의 성직자 라이온 몬시뇰입니다. 라이온 몬시뇰의 이론적인 근거는 교황 레오 13세가 반포한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였습니다. 이 교서는 간단히 말하면, 하느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기본권과 의무를 올바르게 제시하여 사회 정의를 실현하게 한 것입니다. 

(조재형 신부)

 

3. 우리가 자기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고집할 때,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자신의 피조물인 자신의 생각을 섬기고 따르는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우상을 벗어나야,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게 됩니다. 믿음은 자기에게서 빠져나와 하느님께로 가는 것이지, 하느님을 자기의 좁은 지식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영근 신부)

 

4. 엘리사를 만나 회개와 더불어 치유받은 겸손한 믿음의 나아만과는 달리 예수님에 대한 고향사람들의 반응이 완고하기가 무지의 절정입니다.(이수철 신부)

 

[3/24(화) 사순 제3주간 화요일, 제 80일 기도]

 

하느님!

의견이나 주장을 고집하지 않게 하소서.

용서하여 용서받는 체험을 가지게 하소서.

동행하여 이끄시는 하느님! 감사합니다.

언제나 늘상 매사 감사하게 하소서.

 

- 2023년 3월14일(화) 8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