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3월 18일 토요일[(자) 사순 제3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3월 18일 토요일[(자) 사순 제3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주님은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신다.
본기도
해마다 사순 시기의 재계로 파스카 성사를 준비하게 하시니
저희가 그 신비의 기쁨을 미리 맛보고
구원의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6,1-6
1 자, 주님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잡아 찢으셨지만 아픈 데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시리라.
2 이틀 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
3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
4 에프라임아,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
5 그래서 나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들을 찍어 넘어뜨리고
내 입에서 나가는 말로 그들을 죽여 나의 심판이 빛처럼 솟아오르게 하였다.
6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 하느님, 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지워 주소서. ◎
○ 당신은 제사를 즐기지 않으시기에, 제가 번제를 드려도 반기지 않으시리이다.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 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 ◎
○ 당신의 자애로 시온을 돌보시어, 예루살렘의 성을 쌓아 주소서. 그때에 당신이 의로운 희생 제사, 제물과 번제를 즐기시리이다. ◎
복음 환호송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8,9-14
그때에 9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저희에게 은총을 내리시어
저희가 깨끗한 마음으로 성사에 참여하며
정성을 다하여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셨으며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가슴을 치며 말하였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저희가 성체를 받아 모셨으니
언제나 저희를 천상 은총으로 채워 주시어
굳건한 믿음으로 성실히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을 위한 기도
주님,
주님의 오른팔을 펼치시어
믿는 이들에게 하늘의 도움을 내려 주시고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아
합당하게 청한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2023년 03월 18일 토요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오늘 복음이 전하는 비유에서 비교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입니다.
그 예로 바리사이가 등장합니다.
바리사이는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의로움을 추구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기도는 이런 생각을 잘 드러냅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본디 유다교에서는 속죄의 날에 단식하도록 권고하였습니다.
그런데 점차 율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더 열심히 종교 생활을 실천하려는 이들이 단식하는 횟수를 차츰 늘려 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 시대에 경건하다고 스스로 여기는 이들이 일주일에 두 번,
곧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하였습니다.
바리사이는 십일조에 대한 규정을 지키는 것도 철저하였습니다.
그들은 정원에서 얻는 것들에 대해서도 십일조를 바칠 정도였습니다(루카 11,42 참조).
기도 내용을 보면 바리사이는 하느님의 법을 열성적으로 따르는 모습입니다.
반면에 세리는 당시에 죄인으로 취급받던 계층이었으며,
그는 하느님 앞에서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따름입니다.
바리사이와 세리의 차이는 ‘기준’입니다.
바리사이의 기준은 자신의 행실입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규정을 지키며 자랑스러워하는 바리사이의 기도 안에 하느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남들과 비교하며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러나 세리는 그 기준이 하느님입니다.
자신의 잘잘못을 떠나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그분의 구원을 청합니다.
자신의 행실만으로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면, 하느님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한국에 있을 때는 건강검진을 2년에 한번 받았습니다. 교구에서 사제들의 건강을 위해서 배려해 주었습니다. 혈액검사, 위 내시경, 안압검사, 치과검사, 청력검사, 체지방검사, 심전도검사, 소변검사, 장내시경검사가 있었습니다. 검사 결과는 1달 정도 있으면 나옵니다. 검사 결과를 아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병원에 내방하여서 의사 선생님과 상담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편으로 결과를 받는 것입니다. 귀찮다는 핑계로 우편으로 결과를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상담하는 것도 좋지만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처럼 제 몸에도 그다지 좋지 않은 곳들이 있기 때문에 상담하러 가지 않곤 합니다. ‘지방간, 콜레스트롤, 요산, 혈압’은 약방의 감초처럼 위험의 경계에 있습니다. 뉴욕에 와서도 몇 번 혈액검사를 하였습니다. 다행히 크게 더 나빠지지는 않았습니다. ‘털어서 먼지 나오지 않는 사람이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100점짜리 건강검진 성적표를 받는 것은 ‘희망사항’인 것 같습니다.
건강한 몸을 위해서 건강검진을 받는 것도 필요하지만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 건강검진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겉으로는 건강한 정신을 가졌다고 자부했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정신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겉은 화려한 옷으로 단장했지만, 머리에 기름을 발라서 윤기가 나지만 그들의 마음은 교만으로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남을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고 떠들었지만 자신들은 손끝하나 움직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율법학자들의 가르침은 따라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마라.” 그들은 단식을 하면서 단식의 의미를 잘 몰랐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단식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안식일의 계명을 지키면서 안식일의 의미를 잘 몰랐습니다. 제물을 봉헌하면서 제물 봉헌의 의미를 잘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정신을 가졌던 사람들을 칭찬하셨습니다. 백인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백인대장은 예수님께서 굳이 찾아오지 않으셔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시면 종이 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혈하는 여인의 갈망도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나을 것이라는 그 갈망을 칭찬하셨습니다. 과부의 헌금도 칭찬하셨습니다. 헌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헌금을 하는 정성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자캐오의 나눔도 칭찬하셨습니다. 자캐오는 가진 재물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눈다고 하였습니다. 빚진 것이 있다면 4배로 되갚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와 그 가족은 구원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 자비를 청했던 죄인도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세리의 기도를 칭찬하였습니다. 세리는 겸손 되게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1년에 2번 판공성사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탄생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서 대림판공성사를 마련합니다. 동방박사들이 ‘황금, 유향, 몰약’을 가지고 예수님을 방문했던 것처럼 나눔, 희생, 자선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드리기를 권면합니다. 성모님이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말했던 것처럼 하느님의 거룩함이 나의 삶을 통해서 드러날 수 있도록 권면합니다. 주님의 수난과 고통에 동참하기 위해서 사순판공성사를 마련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음을 감사드립니다.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갈 수 있도록 결심합니다. 베로니카처럼 예수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 드리도록 결심합니다. 1년에 두 번 대림과 사순의 판공성사를 잘 준비하는 사람은 건강한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 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317. 사순 제3주간 금요일.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시다.”(마르 12,29)
오늘 <말씀전례>는 우리 신앙의 원천을 밝혀줍니다. 곧 우리 신앙의 근거가 되는 그 바탕이 무엇인가를 말해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호세 14,10)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화답송>에서는 “내가 주님, 너희 하느님이다.”(시 81,11)라고 노래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시다.”(마르 12,29)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행동의 원리로서의 계명을 말씀하기 전에, 먼저 ‘존재의 원리’를 말씀하십니다. 곧 행동규범으로 사랑을 말씀하시기에 앞서, 왜 사랑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밝히십니다. 곧 하느님께서 ‘한 분이신 우리 주님’이라는 그분의 존재차원을 밝히십니다. 동시에, 이는 우리의 존재의 차원도 밝혀주십니다. 곧 우리가 ‘그분의 것, 그의 소유’라는 것을 밝혀줍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슬기롭게 대답하는 율법학자에게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마르 12,34)고 할뿐 ‘하느님 나라에 들어와 있다’고는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아마도 율법학자에게 있어서 아직 사랑의 실천이 남아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아직 더 확장되어야 할 사랑의 계명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곧 <구약>의 ‘사랑의 계명’은 <신약>의 ‘사랑의 새 계명’으로 완성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구약>에서는 ‘이웃 사랑’을 동포 사랑(레위 19,18)과 함께 사는 이방인들(레위 19,34)에 한정시키고 있다면, <신약>에서는 무제약적, 무차별적인 이웃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있으며(루가 10,30-37), 나아가서 원수까지도(마태 5,44) 포함하는 ‘완전한 사랑’을 말합니다(마태 5,48). 또 <구약>에서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레위 19,18)하여 ‘이웃 사랑’의 시금석으로 ‘자신에 대한 사랑’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에, <신약>에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3,34;15,12)하여 ‘우리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웃사랑의 시금석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근본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신명기>(6,4-5)의 ‘하느님 사랑’과 <레위기>(19,18)의 ‘이웃 사랑’을 한데 묶으시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요구하십니다. 곧 새로운 변혁, 새로운 틀의 패러다임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이웃’을 남으로 보지 않는 관점입니다. 아니, 애시 당초 ‘남’이란 없다는 관점입니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이 있을 뿐! 한 아버지 안에 있는 한 형제자매가 있을 뿐이라는 관점입니다.
우리가 ‘한 몸’이라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야, 이웃도 내 몸처럼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은 흔히 생각하는 남에게 베푸는 시혜나 자선이 아니라, 바로 ‘한 몸’으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같아집니다. 물론, 이 때 ‘한 몸’이란 ‘너의 몸이 나의 몸이고 나의 몸이 너의 몸’이라는 암수동체와 같은 혼합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 바오로 2세 교종께서 [새 천년기](24항)에서 표현한 대로, “나의 일부”인 형제들이란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곧 ‘한 몸의 지체’로서, 나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나의 일부이기에, 나의 일부인 형제의 아픔이 바로 나 자신의 아픔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형제가 나의 일부이듯 하느님의 일부가 되고, 형제 사랑이 곧 하느님 사랑이 되고, 하느님 사랑이 곧 형제 사랑이 됩니다.
이처럼 ‘사랑의 이중계명’은 새로운 관점, 새로운 틀을 요구합니다. 곧 ‘남’인 이웃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인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의 전환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소명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
주님! 당신 사랑으로 새로 나게 하소서!
내 자신을 통째로 바꾸어 새로워지게 하소서!
이웃을 타인이 아니라, 내 자신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그의 기쁨을 내 기쁨으로 삼게 하소서.
이웃 안에서, 주님이신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주님! 이웃을 남으로 보지 않게 하소서!
아버지 안에 있는 한 형제가 되게 하소서.
사랑이 남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한 몸인 내 자신에 대한 사랑이 되게 하소서.
자신의 몸인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회개의 은총, 회개의 축복, 회개의 여정
-경천애인(敬天愛人)-
파스카의 계절, 회개의 계절, 사순시기 봄입니다. 인동초(忍冬草)처럼 겨울 추위를 이겨낸 파스카의 봄꽃들이라 저리도 청초한가 봅니다. 일찍 피는 파스카의 봄꽃들은 유난히도 희망을 상징하는 노란색이 많습니다. 민들레, 꽃다지, 개나리, 수선화, 의사리, 산수유 등 모두가 노란색입니다.
엊그제 맨처음 발견한, 때되어 늘 거기 그 자리에서 피어난 꼭 1년만에 피어난 샛노란 민들레꽃이 참 반가웠습니다. 민들레꽃하면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나는 두편의 시입니다. 당시 써놓고 크게 위로를 받았던 민들레꽃에 관한 시입니다.
“민들레꽃
외롭지 않다
아무리
작고 낮아도
샛노란 마음
활짝 열어
온통
하늘을 담고 있다.”-2000.4.24.
흡사 회개의 표징처럼 보이는 하늘을 가득 담고 있는듯한 청초한 샛노란 민들레꽃입니다. 아마 하늘을 가득 담고 있는 회개한 영혼보다 아름다운, 행복한 영혼은 없을 것입니다. 역시 오래전 신축하기전 옛 숙소 뒤뜰 마당 가득 피어난 민들레꽃들을 보며 감동에 젖어 썼던 시의 추억도 생생합니다.
“어!
땅도 하늘이네
구원은 바로 앞에 있네
뒤뜰 마당
가득 떠오른 샛노란 별무리
민들레꽃들!
땅에서도
하늘의 별처럼
살 수 있겠네”-2001.4.16.
저절로 회개의 축복으로 이끄는 회개의 표징같은 파스카의 봄꽃 민들레꽃입니다. 제 주변에는 땅에서도 하늘의 별처럼 살아가는 꽃같이 아름다운 회개한 영혼들이 참 많습니다. 엊그제 받은 감미로운, 강렬한 회개의 표징처럼 느껴지는 카톡 편지에 감동했습니다. 내용이 봄꽃처럼 향기롭고 아름다워 거의 전문을 인용합니다.
“주옥같은 신부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엽니다. 감사합니다. 실시간으로 신부님의 말씀을 받아 읽으니 말씀이 살아계신 듯 하루종일 제 마음속에 살아 움직임을 느낍니다. 맨처음 신부님과 면담 때가 생각나네요. 온몸이 귀가 되신 듯, 저의 말을 경청해주시는 신부님의 모습 그자체로 놀랐고, 저의 힘든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얼마전 피정갔을 때도 생각이 나네요. 짙은 안개가 낀날 아침, 신문을 가지고 걸어오시며, 노래를 부르시는 신부님 얼굴과 모습에서 풍겨나오는 기쁨이, 마주쳤던 저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어요. 한폭의 그림처럼 기억이 되요. 신부님 감사합니다.”
정말 파스카의 봄꽃처럼 아름답고 감동적인 진솔한 편지입니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감동케하고 회개에로 이끌어 아름다움 자체이신 하느님을 만나게 합니다. 오늘 제1독서 호세아 예언서에 나오는 회개한 영혼과 회개의 축복은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인지요! 호세아서의 마무리가 해피엔드로 끝납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죄악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너희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돌아와 아뢰어라. ‘죄악은 모두 없애주시고, 좋은 것만 받아 주십시오. 이제 저희는 황소가 아니라, 저희 입술을 바치렵니다. 아시리아는 저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
회개에 응답해 하느님께 돌아온 영혼들에게 쏟아지는 다음 하느님의 축복이 참 놀랍고 감미롭습니다. 호세아 예언자는 하느님 사랑에 정통한 사랑의 신비가이자 사랑의 시인입니다. 회개한 영혼들이 바로 그러합니다. 말그대로 회개의 축복입니다.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풀렸으니,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
바로 회개한 영혼들의 아름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언자의 글이 참 감동적입니다. 그대로 회개한 영혼들에게 쏟아지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참으로 회개한 영혼들에게 선사되는 회개의 축복이 분별의 지혜임을 다음 결론같은 말씀이 알려 줍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
지혜로운 사람, 분별있는 사람이 바로 의인입니다. 의인들은 주님의 길, 올곧은 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바로 사랑의 길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사랑의 이중계명입니다. 참으로 회개한 영혼들에게 뚜렷이 부각되는 사랑의 이중계명, 경천애인의 진리입니다. 주님 친히 말씀하십니다. 첫째가는 계명을 물었는데 하나가 아닌 둘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습니다. 정말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본질적으로 추구할 일은 회개와 더불어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실천일 뿐입니다. 회개와 경천애인하기에도 턱없이 짧은 세월인데 우리는 얼마나 많이 헛된 것들에 시간을 탕진하며 삶의 길을 잃고, 삶의 중심을 잃고, 삶의 의미를 잃고, 삶의 목표를 잃고, 삶의 방향을 잃고, 자기를 잃고, 바로 하느님을 잃고 무지와 허무속에 뿌리없이 방황하고 표류하며 살아가는 지요!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정말 불행이자 비극은 하느님과 자기를 잃고 지내는 무지와 허무의 헛된 삶입니다. 무지와 허무에 대한 궁극의 답은회개를 통해 사랑의 하느님을 만나는 길뿐입니다. 하루하루 '참으로 사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바로 부단한 회개를 통해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아는 겸손과 지혜의 삶이겠습니다. 회개와 더불어 온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는 것이겠습니다.
파스카의 봄철, 은총의 사순시기요,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발견되는 회개하여 당신께 돌아오라는 회개의 표징들입니다. 회개의 은총, 회개의 축복, 회개의 여정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경천애인의 실천으로 입증되는 회개의 진정성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한결같이 회개의 여정, 사랑의 여정에 충실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3/18(토) 사순 제3주간 토요일, 되새김 구절]
1. 세리는 그 기준이 하느님입니다.
자신의 잘잘못을 떠나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그분의 구원을 청합니다.
자신의 행실만으로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면, 하느님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허규 신부)
2.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 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조재형 신부)
3.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
주님! 당신 사랑으로 새로 나게 하소서!
내 자신을 통째로 바꾸어 새로워지게 하소서!
이웃을 타인이 아니라, 내 자신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그의 기쁨을 내 기쁨으로 삼게 하소서.(이영근 신부)
4. 오늘 복음은 사랑의 이중계명입니다. 참으로 회개한 영혼들에게 뚜렷이 부각되는 사랑의 이중계명, 경천애인의 진리입니다.(이수철 신부)
[3/18(토) 사순 제3주간 토요일, 제 84일 기도]
하느님!
하느님 사랑으로 새로 나게 하소서!
내 자신을 통째로 바꾸어 새로워지게 하소서!
이웃을 타인이 아니라, 내 자신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그의 기쁨을 내 기쁨으로 삼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3월18일(토) 9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