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3월 23일 목요일[(자) 사순 제4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3월 23일 목요일[(자) 사순 제4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본기도
주님의 종인 저희가 참회로 용서를 받고 착한 생활로 거룩하게 되어
주님의 계명을 언제나 성실히 따르며
깨끗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32,7-14
그 무렵 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8 저들은 내가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
9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10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1 그러자 모세가 주 그의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12 어찌하여 이집트인들이,
‘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치려고 이끌어 내서는,
산에서 죽여 땅에 하나도 남지 않게 해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시렵니까?
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13 당신 자신을 걸고, ‘너희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땅을 모두 너희 후손들에게 주어,
상속 재산으로 길이 차지하게 하겠다.’ 하며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14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당신 백성 돌보시는 호의로 저를 기억하소서.
○ 백성들은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금붙이로 만든 우상에 경배하였네. 풀을 뜯는 소의 형상과 그들의 영광을 맞바꾸었네. ◎
○ 이집트에서 위대한 일을 하신 분, 자기들을 구원하신 하느님을 잊었네. 함족 땅에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갈대 바다에서 이루신 두려운 일들을 잊었네. ◎
○ 당신이 뽑은 사람 모세가 아니라면, 그들을 없애 버리겠다 생각하셨네. 모세는 분노하시는 그분 앞을 막아서서, 파멸의 진노를 돌리려 하였네. ◎
복음 환호송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네.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31-47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31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32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34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5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37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38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41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42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45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47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이 제사로 봉헌하는 예물을 굽어보시어
나약한 저희를 모든 악에서 구하시고 안전하게 지켜 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셨으며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이 성사의 힘으로 주님의 종들을 깨끗이 씻어 주시고
저희를 모든 죄의 사슬에서 풀어 주시어
구원의 영약을 가득히 받고 진리의 빛을 따라 살게 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을 위한 기도
하느님,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보살피고 이끄시며 구원하시니
이 백성에게 강복하시어
원수에게서 풀려나 죄에서 해방되고
언제나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물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2023년 03월 23일 목요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과 논쟁을 벌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율법에서 어떤 증언이 유효하려면 두 명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합니다.
“증인 한 사람만으로는 그 증언이 성립되지 못하고, 증인 둘이나 셋의 증언이 있어야 유죄가 성립된다”(신명19,15).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적용한 죄는 자신을 하느님으로 자처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적합하게 논쟁을 이어가십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예수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증인의 수입니다.
먼저, 요한은 복음서의 시작에서 예수님을 ‘세상에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증언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위한 첫째 증인입니다.
두 번째는 조금 어렵게 들릴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 그 자체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예수님의 표징은 당신이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이 모든 일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증거입니다.
마지막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볼 수 없는 분이시므로,
따라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을 알게 됩니다.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위한 마지막 증인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견주어도 당신께서 하신 일들이 정당하다고 강조하십니다.
그런데도 복음은 여전히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부 유다인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마치 제1독서에 나오는 “목이 뻣뻣한 백성”과 비슷합니다.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요한복음 8장에는 ‘부정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정한 여인은 사람들에게 끌려왔습니다. 사람들은 손에 돌을 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부정한 여인에 대한 판결을 묻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부정한 여인은 ‘돌’로 쳐서 죽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대로 하라고 대답하면 부정한 여인은 이제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땅에 무엇인가 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보였던 핏발은 사라졌습니다. 돌을 들고 있던 손의 힘도 빠졌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시오.”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땅에 무엇인가 쓰셨습니다. 사람들은 나이든 사람부터 자리를 떠났습니다. 걸리지 않아서 그렇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모두가 떠난 뒤에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말합니다. “나도 너의 죄를 묻지 않겠다. 그러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예수님께 용서를 받았던 ‘부정한 여인’은 예수님 말씀처럼 다시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발라드렸습니다. 그 여인은 주님의 빈 무덤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 여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보았습니다.
루카복음 15장은 ‘되찾은 양, 되찾은 동전, 돌아온 아들’의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잘못한 이를 벌하기 보다는 회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고, 기다리신다는 이야기입니다. 돌아온 아들에서 우리는 ‘큰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큰 아들은 돌아온 동생이 반갑지 않았습니다. 돌아온 아들을 위해서 새 옷을 주고, 반지를 주고,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를 못 마땅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불평합니다. “나는 아버지의 집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일했는데 잔치를 벌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방탕한 동생이 돌아오니 잔치를 벌이시다니요?” 큰 아들의 모습에서 돌을 들고 부정한 여인을 심판하려는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아버지는 큰 아들에게 돌아온 아들을 변호합니다. “얘야! 나의 것은 이미 모두 너의 것이 아니냐? 네 동생은 죽었다가 돌아왔으니 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오늘 독서는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섬겼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벌하고 새로운 백성을 선택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하느님께 호소합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데려오셨는데 광야에서 모두 벌하였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의 이야기를 듣고 재앙을 거두셨습니다.
2번째 본당에서 보좌신부를 할 때의 기억입니다. 지구 교사들과의 모임을 마친 후 10시가 넘게 사제관으로 돌아왔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안에서 문을 잠갔습니다. 문을 두드리니 신부님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현관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지금 몇 시냐?”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근 것도 서운했는데, 현관에서 나무라는 것이 서운했습니다. 나중에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이해 해 주었습니다. 4번째 본당에서 보좌신부를 할 때의 기억입니다. 월요일 새벽미사를 마치고, 본당 신부님과 함께 산정호수로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제가 운전을 하기로 했고, 이것저것 준비를 하다가 그만 미사시간에 조금 늦었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제의실에서 신부님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는 수녀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조 신부는 미사시간에 절대로 늦는 법이 없습니다. 늘 미리 와서 묵상하고 미사 준비를 했는데, 오늘처럼 늦으면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니, 미리 전화를 하세요.” 수녀님은 본의 아니게 본당 신부님에게 말씀을 들었지만 저를 믿어주시고, 이해해 주신 본당신부님이 고마웠고, 감사했습니다. 본당 신부님께서 해외로 성지 순례를 가셔도 기쁜 마음으로 본당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겸손하지 않는다면, 표양을 보이지 않는다면, 거짓과 변명, 비방과 질투의 말을 일삼는다면, 희생과 봉사를 하지 않고 대접을 받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 마음에 이미 황금 송아지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의 잘못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사순시기는 우리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완벽하신 변호인이십니다. 우리들 또한 타인의 허물에 대해서 심판자가 되기보다는 이해하고 감싸주는 변호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322. 사순 제4주간 수요일.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벳자다에서 병자를 고쳐주셨는데, 그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이를 보고 문제 삼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일하는 것의 정당함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두 번이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고 하시며, 세 가지 중요한 말씀을 주십니다.
<첫째>는 그 하시는 일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아버지께서 행하신 것을 아들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곧 이 지상에서 하시는 당신의 일에 아버지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는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5,19)
아버지께서는 사랑으로 아들이 기뻐하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고, 아들에게 재판권을 위임하시고,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일하십니다. 곧 사랑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아들의 일에 있어서의 아버지와의 연합은 사랑의 연합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일하실 때,\ 아버지와의 사랑의 연합에서 하셨듯이, 우리도 일할 때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연합으로 일해야 할 일입니다.
<둘째>는 하느님께서 먼저 신적 생명을 주신다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생명이 당신을 통하여 풍성해짐을, 특히 부활의 신적 생명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신적 생명이 사람의 행동에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행동에서 온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의 결과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곧 생명은 믿는 것의 보상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얻게 된다.’는 미래형이 아닌 ‘얻는다.’는 현재형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는 생명이 먼저 오고, 그 다음에 사람의 믿음이 온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께서 먼저 사람 속에 생명을 넣으시기 때문에, 사람이 믿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곧 믿는 자는 이미 자기 속에 생명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믿게 되며, 그 믿음으로써 생명의 체험을 깊게 하게 되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되고, 부활의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믿는 이가 누리는 생명은 바로 하느님 자신의 생명이 됩니다. 사도 베드로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됩니다.”(2베드 1,4). 그러니 오늘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으로써,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되었음에 감사드려야 할 일입니다. 이 거룩하고 고귀한 신적 생명을 찬미해야 할 일입니다.
<셋째>는 죽음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무덤 너머에는 두 존재의 양식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과의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러니 바로 지금이 예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바로 그때입니다. 바로 지금, 오늘이 바로 그때인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는 바로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이 예고되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지금이 바로 그때다”(요한 5,25)라고 선포됩니다. 무엇보다도 이 거룩한 성찬을 통해서, 그리고 오늘의 나의 삶을 통해서 말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나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요한 5,30)
주님!
제가 하는 일이 아버지의 뜻에 맞게 하소서.
무슨 일을 하든지 당신과 함께 일하게 하소서.
사랑의 연합으로 당신께서 행하신 바를 행하고 당신의 생명이 드러나게 하소서.
당신과 함께 하는 일이 아니라면 아무 것도 하지 않게 하시고
모든 일이 당신 뜻 안에 가두어지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주님과 만남의 여정
-하루하루가 "새 하늘과 새 땅, 새 날"이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라.
주님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시편103,2)
저에게 강론 제목은 하루 삶의 지표이자 다짐이요 확인이 됩니다. 맨먼저 골똘히 생각하는 것이 그날의 강론 제목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주님과 만남의 여정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주님과 만날 때 하루하루가 새 하늘과 새 땅, 새 날입니다.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며 주님의 초대에 응답해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려 미사전례에 참석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야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모든 것을 다 지녔어도 우리 마음에 기쁨이 없다면, 평화가 없다면, 희망이 없다면, 자유가 없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참기쁨, 참평화, 참희망, 참위로, 참자유는 주님의 선물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전례를 통해 주님을 만날 때 선사되는 참 좋은 선물이 기쁨과 평화, 위로와 치유, 희망과 자유입니다. 자주 나눴던 행복기도중 그 일부를 다시 나눕니다.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중에
주님, 당신을 만나니
당신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기쁨과 평화, 희망과 자유를 선사하시나이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주님을 만날 때 솟아나는 감동의 고백이지만, 또 이렇게 고백할 때 주님을 만납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위한 참 좋은 고백 기도가 시편입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 145장이 주는 위로는 얼마나 큰지요! 그 일부만 인용합니다.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며, 그 자비 모든 조물 위에 내리시네.
넘어지는 누구라도 주님은 붙드시고, 꺾인 이는 누구라도 일으켜 주시네.
주님은 당신을 부르는 모든이에게, 진실하게 부르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계시네.”
오늘 제1독서 이사야 예언서도 희망과 위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주전 8세기, 그러니까 2800년전 바빌론 귀양살이 동안에 이름없는 예언자가 신탁을 받고 해방될 그날을 내다보며 희망과 위로를 전합니다. 이 예언자의 하느님 체험을 그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때에 내가 응답하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그들은 배고프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으며, 열풍도 태양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리니, 그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분께서 그들을 이끄시며, 샘터로 그들을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하늘아 환성을 올려라. 땅아, 기뻐 뛰어라. 산들아, 기뻐 소리쳐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당신의 가련한 이들을 가엾이 여기셨다.”
오늘도 미사 샘터로 우리를 인도해주신 주님이십니다. 이어지는 예언자의 하느님 고백은 다음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그런데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하고 말하였지.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 “설령 여인들은 잊느다 하더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는다.”라는 대목이 감동적입니다. 여인인 어머니가 잊는다 해도 하느님은 결코 나를 잊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우리 하나하나에 대한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이사야서 말씀 43장 4절 말씀입니다.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 그러니 어찌 해안지방을 주고라도 너늘 찾지 않으며, 부족들을 내주고라도 너의 목숨을 건져내지 않으랴!”
정말 우리 하나하나에 대한 하느님 사랑은 이렇다는 것입니다. 앞부분은 고백성사 말씀 처방전으로 가끔 써드리는 구절입니다. 우리가 이런 주님을 만나 체험해야 할 자리는 오늘 지금 여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배워 깨닫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체험을 반영하는 복음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로 이어지는 세 단락을 나눕니다.
1.“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2.“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3.“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결론하여 주님은 우리 하나하나를 결코 잊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코 우리 하나하나는 우연적 존재가 아니라 우주와도 바꿀수 없는 하느님께 불림 받은 귀한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오늘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 주님을 만나 살아 날 때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 영원한 삶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전례를 통해 만나는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기쁨과 평화, 위로와 치유, 희망과 자유를 선사하십니다.
"주님을 찬양하라 내 영혼아, 한평생 주님을 찬양하라.
이 생명 다하도록 내 하느님 기리리라."(시편146,1-2). 아멘

[3/23(목) 사순 제4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요한은 복음서의 시작에서 예수님을 ‘세상에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증언합니다.(허규 신부)
2. 사순시기는 우리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완벽하신 변호인이십니다. 우리들 또한 타인의 허물에 대해서 심판자가 되기보다는 이해하고 감싸주는 변호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조재형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나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요한 5,30)
주님!
제가 하는 일이 아버지의 뜻에 맞게 하소서.
무슨 일을 하든지 당신과 함께 일하게 하소서.
사랑의 연합으로 당신께서 행하신 바를 행하고 당신의 생명이 드러나게 하소서.
당신과 함께 하는 일이 아니라면 아무 것도 하지 않게 하시고
모든 일이 당신 뜻 안에 가두어지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이수철 신부)
[3/23(목)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제 89일 기도]
하느님!
제가 하는 일이 하느님의 뜻에 맞게 하소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느님과 함께 일하게 하소서.
하느님께서 행하신 바를 행하고 하느님의 생명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3월23일(목) 10시10분...수산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