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04 글/시]시간 밖에 계시는 분/하느님 창조목적에 맞게 나를 사용하기
[2023년 4월4일(화) 성주간 화요일, 오늘의 글/시]
시간 밖에 계시는 분
묵상은 시간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는 묵상을 말과
상상과 생각이 없는 기도라고 했다.
우리의 생각은 시간 속에서 진행된다.
말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묵상은 모든 것이 하나라는 경험,
즉 내가 하느님과 하나이고
나 자신과 하나가 되는 경험이다.
하나가 되는 그 순간에 모든
대립적인 것들이 결합하게 된다.
이것이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추기경
(15세기)이 말하는 '대립의 일치
coincidentia oppositorum이고
하느님의 본질이다.
묵상을 하는 순간에는 과거와
미래가 하나가 된다.
묵상은 현재의 순간일 뿐이다.
나는 지나간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미래를 계획하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걱정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묵상을 하는 순간에는
모든 걱정이 사라진다.
그때 나는 고유하고 본질적인 것
그리고 하느님을 깊이 체험한다.
그러나 하느님을 상상하지는 않는다.
묵상은 한마디로 '하나 되는' 경험이다.
나는 정해진 그 무엇을 보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그리고 내 안의 심연에서는
모든 것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생에서 많은 것이 어긋나 버렸고
지금도 내 안에서 혼돈을
느끼고 있지만 저 깊은 곳에서는
모든 것이 좋고 만족스럽다.
하느님은 시간 밖에 실재하신다.
하느님과 하나가 되면 나는 무시간無時間,
즉 영원에 속하게 된다.
수도승들은
성경 말씀이나 예수기도
(동방교회 수도승들의 기도법)를
호흡과 결합시키면서 묵상을 연습한다.
묵상이나 마음기도를 끊임없이 연습하면
공동으로 하는 성무일도에서도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성무일도는 마음기도의 또 다른
표현이고 수도승이 사랑으로
갈망하는 하느님을 향한
그리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마음기도는 묵상이나 기도 시간에만
하는 것은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수도승은
매 순간 깨어 있어야 하고 지금
하는 일에 완전히 몰두해야 한다.
그가 완전히 순간에 살면,
즉 방금 일어난 그 일에 완전히
몰입하게 되면 그의 시간으로
끊임없이 '영원'이 들어온다.
Buch der Lebenskunst
「삶의 기술」
안셀름 그륀 지음/ 안톤 리히테나우어 엮음
-이온화 옮김/ 분도출판사 펴냄-
하느님 창조목적에 맞게 나를 사용하기
- 천하보다 소중한 한 글자
‘나’
- 그 어떤 것도 이길 수 있는 두 글자
‘우리’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글자
‘사랑해’
- 평화를 가져오는 네 글자
‘내 탓이오’
- 돈 안 드는 최고 동력 다섯 글자
‘정말 잘했어’
-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드는 여섯 글자
‘우리 함께해요’
- 뜻을 이룬 사람들의 일곱 글자
‘처음 그 마음으로’
- 인간을 돋보이게 하는 여덟 글자
‘그런데도 불구하고’
- 다시 한번 일어서게 하는 아홉 글자
‘지금도 늦지 않았단다’
-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열 글자
‘내가 항상 네 곁에 있을게’
모두가 좋은 의미의 글자입니다.
내가 쓰고 있는 글과 말이 이렇게
좋은 의미를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이 하느님 창조목적에 맞게
나를 세상에서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빠다킹신부님 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