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4월 27일 목요일[(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3. 4. 27. 05:46

[매묵]2023년 4월 27일 목요일[(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탈출 15,1-2 참조
주님을 찬양하세, 그지없이 높으신 분.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를 구원하셨네. 알렐루야.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이 부활 시기에
저희가 하느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더 깊이 깨달았으니
온갖 오류에서 벗어나 진리의 말씀을 더욱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8,26-40
그 무렵 26 주님의 천사가 필리포스에게 말하였다.
“일어나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거라.
그것은 외딴길이다.”
27 필리포스는 일어나 길을 가다가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왕 칸다케의 내시로서,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면서,
자기 수레에 앉아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
29 그때에 성령께서 필리포스에게,
“가서 저 수레에 바싹 다가서라.” 하고 이르셨다.
30 필리포스가 달려가 그 사람이 이사야 예언서를 읽는 것을 듣고서,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러자 그는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서,
필리포스에게 올라와 자기 곁에 앉으라고 청하였다.
32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러하였다. “그는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갔다.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린양처럼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33 그는 굴욕 속에 권리를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제거되어 버렸으니 누가 그의 후손을 이야기하랴?”
34 내시가 필리포스에게 물었다. “청컨대 대답해 주십시오.
이것은 예언자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입니까?”
35 필리포스는 입을 열어 이 성경 말씀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그에게 전하였다.
36 이렇게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내시가 말하였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37)·38 그러고 나서 수레를 세우라고 명령하였다.
필리포스와 내시, 두 사람은 물로 내려갔다.
그리고 필리포스가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다.
39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자 주님의 성령께서 필리포스를 잡아채듯 데려가셨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였지만 기뻐하며 제 갈 길을 갔다.
40 필리포스는 아스돗에 나타나,
카이사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66(65),8-9.16-17.20(◎ 1)
◎ 온 세상아,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또는
◎ 알렐루야.
○ 백성들아, 우리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찬양 노래 울려 퍼지게 하여라. 그분이 우리 영혼에 생명을 주시고, 우리 발이 흔들리지 않게 하셨네. ◎
○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모두 와서 들어라. 그분이 나에게 하신 일을 들려주리라. 내 입으로 그분께 부르짖었으나, 내 혀 밑에는 찬미 노래 있었네. ◎
○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시고, 당신 자애를 거두지 않으셨으니, 하느님은 찬미받으소서. ◎

복음 환호송

요한 6,51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 알렐루야.

복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44-5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45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46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50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하느님,
이 거룩한 교환의 제사로
한 분이시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과 저희를 하나 되게 하셨으니
저희가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삶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2코린 5,15 참조
그리스도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네. 살아 있는 우리가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셨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거룩한 신비의 은총으로 저희를 가득 채워 주셨으니
자비로이 도와주시어
저희가 옛 삶을 버리고 새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명나라 시인 진계유는 뒤에야 알았네.”라는 시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평상시의 마음이 경박했음을 알았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았네./ 일을 돌아본 뒤에야/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음을 알았네./ 문을 닫아건 뒤에야/ 앞서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이전의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네./ 마음을 쏟은 뒤에야/ 평소에 마음 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네.” 시인은 후회의 감회를 담담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후회는 선택에 대한 감정이 많습니다. 돈을 빌려달라는 친구의 청을 거절하고 그 선택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책을 읽고 기도하기보다는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에 시간을 빼앗긴 것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 사랑을 받았던 제자 유다는 예수님께서 잡혀간 뒤에야 자신의 잘못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몸값으로 받았던 은전 서른 닢을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후회는 감정은 있지만 행동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후회는 유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처럼 행동이 있어도 그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회개는 후회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와 후회가 다른 점이 있습니다. 후회는 감정이지만 회개는 감정을 넘어서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그 행동이 하느님께로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사악을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크게 성공한 야곱은 형에게 돌아와 용서를 청하였습니다. 형은 동생 야곱을 따뜻하게 맞이하였습니다. 요나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다시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니네베 백성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서 방탕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유산을 모두 탕진한 둘째 아들은 거지가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버지는 잔치를 벌여 주었고, 아들에게 반지를 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은 비록 그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눈처럼 희게 해 주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배반하였습니다. 베드로는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겨 주셨습니다.

 

어제에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로 가는 사람일까요? 후회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갈 수 없습니다. 세상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도 예수님께 갈 수 없습니다. 군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던 것처럼 여전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할 것입니다. 여전히 예수님을 조롱하고, 가시관을 씌울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은폐하려고 할 것입니다. 자신들의 권위와 힘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크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이 예수님께 갈 수 있습니다. 느닷없이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갔던 키레네 사람 시몬은 예수님께로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드린 베로니카는 예수님께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깨끗한 무덤에 모신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은 예수님께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께 대한 성경 말씀을 듣고 기꺼이 세례를 청했던 에티오피아 사람도 예수님께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10일 동안 요르단과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하였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삶의 터전으로 돌아갑니다. 성지순례를 통해서 얻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생각하며 후회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회개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강론

 

오늘 우리는 얼마나 큰 열정과 적극성으로 성경을 읽습니까?

 

오늘 첫 번째 독서인 사도행전은 아주 특별한 인물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 뵙고 경배하기 위해 멀고 먼 아프리카 대륙 에티오피아에서부터 예루살렘에까지 순례를 온 칸다케 여왕의 내시입니다.

 

그 내시는 우리나라 사극에 나오는 내시와는 격을 달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에티오피아 여왕의 재정을 총 책임지던 고위관리였습니다. 비록 내시였지만 권력자였습니다.

 

시종들이 끄는 마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온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여왕으로부터 신임을 받던 잘 나가던 사람이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인생의 참 진리를 찾기 위해 오늘날은 물론 당시로서는 엄두조차 내기 힘든 왕복 3,500Km 이상 되는 먼 거리를 여행한 신앙의 순례자요, 진리의 탐구자였습니다. 그는 철학, 문화, 에디오피아의 역사 등등 많은 것을 알았지만, 결국 예수님 안에서 진리를 찾았습니다.

 

그의 열렬함이 오늘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그는 뜨뜨미지근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생각이 서면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돋보이는 것 또 한 가지, 초집중력이었습니다.

 

말씀 안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성경 말씀에 집중 또 집중했습니다.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도 성경책을 펴들고 열심히 읽었습니다.

 

이사야서를 읽고 있던 그를 향해 성령의 손길에 이끌린 필립포스가 다가가 묻습니다.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사도행전 8장 30절)

 

내시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내시는 필리포스를 향해 마차 위로 올라와 자기 곁에 앉아 말씀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초대합니다.

 

신앙의 진리, 말씀에 대한 내시의 열정과 적극성이 돋보입니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큰 열정과 적극성으로 성경을 읽습니까? 오늘 우리의 진리를 향한 탐구열은 어느 정도입니까?

 

신앙의 진리를 찾기 위해 그 먼 거리를 목숨 걸고 찾아온 내시에게는 못미치겠지만,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에 대한 열정이 필요합니다. 진리에 대한 사랑이 요구됩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426. 부활 제3주간 수요일.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오늘 <복음>은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를 듣고 호수 건너편까지 찾아온 군중들이 예수님께서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요한 6,34)하고 간청하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이는 “나는 생명의 빵이다.”라는 곧 “나는 ~이다”(εγω ειμι)라는 당신 자신에 대한 계시선언문입니다. 곧 당신 신비에 관한 말씀입니다. 당신 생명의 신비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러니 당신 몸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당신 신성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에 대해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말합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이것은 당신 몸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빵은 내 몸이다.”라는 말씀은 한참 뒤에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생명의 빵”은 그분의 신성을 가리킵니다. ‘성찬의 빵’이 거기에 강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빵이 되듯, 이 신성은 말씀이신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빵”입니다.”
 
그러니 “말씀이신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빵”에 대한 신비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말씀의 빵’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셨을 때, 신명기(8,3)의 말씀을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 또 예언자 아모스는 말합니다.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것이 아니고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는 것이다.”(아모 8,11). 곧 당신 말씀이 ‘참 생명이요 참 양식’임을 드러내십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빵을 먹는 일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서 벌어집니다. 곧 ‘예수님께 와서 말씀을 듣고 믿는 이’ 안에서 실현되는 생명의 빵입니다. 이 “빵”(말씀)은 믿는 이의 생명을 참된 생명에로 변화시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요한 6,39-40)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고, 아들은 그 뜻을 실현하는데 전념하십니다. 곧 ‘당신께 와서 보고 믿는 이들’을 살리십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빵을 먹는 일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서 벌어지듯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 역시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에게서 벌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이 모든 일은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 진정 우리의 내적인 눈이 열려야 할입니다. 곧 ‘믿음’으로 열리는 눈 말입니다. 그 눈은 바로 믿음으로 보는 눈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내가 생명의 빵이다.”(요한 6,35)

주님!
부서져 먹히게 하소서!
부서져 먹히는 빵이 되고서야 양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먹혀 형제들 안에서 사라져버리게 하소서!

먹혀 사라지고서야 생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생명의 빵

-“예수님은 영원한 도반이시다”-

 

“온 땅은 춤추며 하느님을 기리라.

 그 이름의 영광을 노래하여라.

 빛나는 찬미를 주님께 드려라.”(시편66,1-2)

 

논어 맨처음에 나오는 군자삼락(君子三樂)은 언제 읽어도 공감이 갑니다.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영원한 도반으로 둔 우리 구도자들이자 수행자들에게도 그대로 들어맞는 말씀입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친구가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사람들이 나를 몰라주더라도 화를 내지 않으면 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찾는 끊임없는 지칠줄 모르는 갈망이 진리를 공부하게 하고 도반을 찾게 하고 마음의 평화에 이르게 함을 깨닫습니다. 어제 수도원을 찾은 여러 도반들과의 진실하고 소박한 만남도 참 반갑고 기뻤습니다. 늘 흘러야 맑은 물이든 늘 흘러야 맑은 삶입니다. 늘 한결같이 주님을 목말라, 배고파 찾을 때 맑은 삶, 깨어 있는 삶입니다.

 

“밖으로는 산

 천년만년 주님을 기다리는 산

 안으로는 강

 천년만년 주님 향해 흐르는 강”

 

참으로 주님을 찾는 이들은 이런 ‘산(山)과 강(江)’의 영성을 삽니다. 생명의 빵이신 주님만이 우리의 근원적 목마름과 배고픔을 해결해 주기 때문에 끊임없이 기다리는 주님이요 끊임없이 주님 향해 흐르는 우리의 삶입니다.

 

“목말라 눈떴고, 눈뜨면 목말랐다

 아픔에 눈떴고, 눈뜨면 아팠다”

 

지금도 여전히 새벽마다 일어나 강론을 쓰게 하는 주님께 대한 목마름이요 아픔입니다. 생명의 빵이자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만이 영혼의 갈망을, 영혼의 아픔을 해결해 주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생각나는 지금도 여전히 애송하는 7-8월에 배밭 곳곳에 피어나는 야생초 “메꽃”에 대한 무려26년전 자작시입니다. 

 

“이 가지 저 가지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하늘 가는 여정의 다리로 삼아

 분홍색

 소박하게

 하늘 사랑 꽃피어내며

 끊임없이 

 한결같이

 하늘로 하늘로

 오르는

 메꽃들!”-1997.8.21

 

사실 사람 마음 깊이에는 누구나 이런 하늘이신 주님을 찾는 끝없는 갈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주님의 집인 수도원을 찾습니다. 바로 이런 영혼의 갈망을 충족시켜주는 요한복음의 생명의 빵이자 영원한 생명이요 영원한 도반이신 예수님의 초대는 늘 들어도 반갑고 기쁘고 고맙습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과의 만남만이 우리 영혼의 근원적 배고픔과 목마름을 일거에 해결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생명의 빵 예수님을 모시는 우리들입니다. 한 두 번의 만남이 아니라 매일 평생 끊임없이 찾아 만나야 하는 생명의 빵, 영원한 도반이신 예수님입니다. 이어지는 복음 말씀도 참 은혜롭습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 왔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의 정체와 예수님의 정체가 환히 드러납니다. 결코 우연한 우리 존재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보내 주신 아버지의 선물들인 우리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보내 주신 아버지의 선물들인 우리를 예수님은 결코 물리치지 않을 것이며 다음 대목에서 그분의 결의는 더욱 빛납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날에 그들을 살릴 것이다.”

 

도대체 이런 예수님이 아닌 누구가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의 근원적 배고픔과 목마름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을런지요. 그리하여 살아있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한결같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의 빵이자 영원한 도반이신 예수님과의 우정을 날로 깊이하는 우리들이요 바로 이것이 우리 영적 삶의 모두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스테파노의 순교에 이어지는 박해로 들불처럼 번지는 말씀의 불길이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임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장차 바오로 사도로 변할 섭리의 인물 사울이 언뜻 눈에 띕니다. 마치 주님 향한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바싹 마른 영혼들이 살아 있는 말씀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자 활활 타오르는 분위기입니다. 말그대로 사랑의 불길, 생명의 불길입니다. 박해로 흩어진 사람들은 곳곳에 말씀을 전하였고 군계일학(群鷄一鶴) 필리포스의 활약이 눈부십니다.

 

필리포스가 그리스도를 선포하자 아버지께서 보내신 사람들은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생명의 말씀을 듣습니다. 참으로 생명의 빵이신 주님과의 만남으로 본래의 모습으로 치유 회복된 모습이 흡사 기쁨으로 활짝 피어난 파스카의 꽃들 같은 다음 장면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에게 붙어 있던 더러운 영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불구자가 나았다. 그리하여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다.’

 

얼마나 신바람 나는 장면인지요! 더러운 영들 가득한 혼란한 사회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소비주의, 중독, 물질주의, 금전만능주의, 극심한 빈부 격차, 온갖 질병들, 생존경쟁, 탐욕, 두려움, 질투, 이념갈등, 곳곳에서의 분쟁과 전쟁등 더러운 영들이 발호하는 시대 같습니다. 이 모두가 인간 무지의 죄악에서 기인함을 봅니다.

 

제대로 미치면 성인들인데 잘못 중독되어 미쳐 폐인들, 괴물들 가득한 시대 같습니다. 이 모두가 인간 무지의 죄악에서, 주님을 잊는 업보에서 기인함을 봅니다. 이 모두에 대한 답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과의 만남뿐입니다. 우리 영혼의 근원적 배고픔과 목마름을 충족시켜 주실 분은 죽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뿐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온 세상이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을 노래하게 하소서.

 주님 이름을 노래하게 하소서.”(시편66,4). 아멘.


[4/27(목) 부활제3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회개는 후회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와 후회가 다른 점이 있습니다. 후회는 감정이지만 회개는 감정을 넘어서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그 행동이 하느님께로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조재형 신부)

 

2. 신앙의 진리, 말씀에 대한 내시의 열정과 적극성이 돋보입니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큰 열정과 적극성으로 성경을 읽습니까? 오늘 우리의 진리를 향한 탐구열은 어느 정도입니까?

 

신앙의 진리를 찾기 위해 그 먼 거리를 목숨 걸고 찾아온 내시에게는 못미치겠지만,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에 대한 열정이 필요합니다. 진리에 대한 사랑이 요구됩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내가 생명의 빵이다.”(요한 6,35)

주님!
부서져 먹히게 하소서!
부서져 먹히는 빵이 되고서야 양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먹혀 형제들 안에서 사라져버리게 하소서!

먹혀 사라지고서야 생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이영근 신부)

 

4. 제대로 미치면 성인들인데 잘못 중독되어 미쳐 폐인들, 괴물들 가득한 시대 같습니다. 이 모두가 인간 무지의 죄악에서, 주님을 잊는 업보에서 기인함을 봅니다. 이 모두에 대한 답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과의 만남뿐입니다. 우리 영혼의 근원적 배고픔과 목마름을 충족시켜 주실 분은 죽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뿐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이수철 신부)

 

[4/27(목) 부활제3주간 목요일, 제124일 기도]

 

하느님! 임마누엘 하느님!

저를 인도하시어...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4월29일(토) 6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