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4월 29일 토요일[(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신부님강론 4개
[매묵]2023년 4월 29일 토요일[(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신부님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본기도
복된 가타리나가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며
거룩한 사랑으로 불타올라 교회에 봉사하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여
세상에 드러난 그분의 영광을 보고 언제나 기뻐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9,31-42
그 무렵 31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32 베드로는 모든 지방을 두루 다니다가
리따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가게 되었다.
33 거기에서 베드로는 애네아스라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중풍에 걸려 팔 년 전부터 침상에 누워 있었다.
34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였다.
“애네아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 주십니다.
일어나 침상을 정돈하십시오.” 그러자 곧 애네아스가 일어났다.
35 리따와 사론의 모든 주민이 그를 보고 주님께 돌아섰다.
36 야포에 타비타라는 여제자가 있었다.
이 이름은 그리스 말로 번역하면 도르카스라고 한다.
그는 선행과 자선을 많이 한 사람이었는데,
37 그 무렵에 병이 들어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씻어 옥상 방에 눕혀 놓았다.
38 리따는 야포에서 가까운 곳이므로,
제자들은 베드로가 리따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사람 둘을 보내어,
“지체하지 말고 저희에게 건너와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9 그래서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갔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그를 옥상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러자 과부들이 모두 베드로에게 다가가 울면서,
도르카스가 자기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어 준 속옷과 겉옷을 보여 주었다.
40 베드로는 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 다음
시신 쪽으로 돌아서서, “타비타, 일어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여자가 눈을 떴다. 그리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다.
41 베드로는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운 다음,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다시 살아난 도르카스를 보여 주었다.
42 이 일이 온 야포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또는
◎ 알렐루야.
○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구원의 잔 받들고, 주님의 이름 부르리라. ◎
○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 나의 서원 채우리라. 주님께 성실한 이들의 죽음이, 주님 눈에는 참으로 소중하네. ◎
○ 아, 주님, 저는 당신의 종. 저는 당신의 종, 당신 여종의 아들. 당신이 제 사슬을 풀어 주셨나이다. 당신께 감사 제물 바치며, 주님 이름 부르나이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당신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60ㄴ-69
그때에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60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요한 1,5―2,2)와 복음(마태 11,25-30)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복된 가타리나를 기리며 봉헌하는 이 제사를 받으시고
저희가 그의 삶을 보고 배워
참하느님이신 주님께 더욱 진실한 마음으로 감사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 밤(날, 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신 참된 어린양이시니
당신의 죽음으로 저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저희 생명을 되찾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하느님이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주리라.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복된 가타리나가 천상 양식으로 힘을 얻어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셨으니
저희도 이 양식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우리 문화와 유적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저도 즐겨 읽었습니다. 최근에 내 고향 서울 이야기라는 주제로 11번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출간되었습니다. 제가 세검정 성당에 있었기에 유홍준 선생님의 고향 이야기가 더 살갑게 다가왔습니다. 옥인동, 통의동, 자하문, 궁정동, 효자동은 저도 자주 다니던 길이었습니다. 저는 전라북도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 서울로 왔습니다. 저는 봉천동에서 살았습니다. 봉천동 주변에는 낙성대와 관악산이 있습니다. 관악산에는 서울대학교가 들어오면서 큰 길이 생겼습니다. 상도동을 넘어 동작동으로 가면 국립묘지가 있습니다. 어릴 때 그곳으로 소풍을 가기도 했습니다. 저는 7살에 봉천동에 와서 사제서품을 받았던 29살까지 살았으니 22년을 살았습니다. 제 삶의 중심에는 ‘성당’이 있었습니다. 저는 봉천동 성당에서 첫영성체를 하였고, 견진성사도 받았습니다. 주일학교에 다니면서 성당친구들과 어울렸고,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1995년 처음으로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갔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8일에 시작해서 어제까지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유홍준 선생님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썼다면 저는 ‘나의 성지순례 답사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나자렛은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를 만나서 예수님을 잉태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나자렛 예수라고 말합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잉태한 것을 기념하는 성당에는 각 나라에서 보내온 아름다운 성모상이 있습니다. 마리아는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하기 위해서 아인카렘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와 예수님의 어머니가 만났습니다. 성 요셉과 성모님은 베들레헴으로 갔고 그곳에서 예수님은 태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을 순례해서 경배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 성전의 문에는 성지순례의 자세를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만일 당신이 여행객으로 이곳에 왔다면 순례자가 되어서 가면 좋겠습니다. 만일 당신이 순례자로 이곳에 왔다면 거룩한 사람이 되어서 가면 좋겠습니다.” 성지순례의 목적은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세례터에서 세례갱신 예식을 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영, 혼, 육으로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받으셨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순례 중에 ‘광야’를 체험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우리도 도시라는 광야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기쁜소식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물을 버리고,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표징을 보여 주셨습니다. 물위를 걸으셨고, 풍랑을 잠재우셨습니다. 5천명을 배불리 먹이셨고, 참된 행복을 선포하셨습니다. 마귀 들린 사람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셨습니다. 중풍병자, 나병환자, 소경, 귀머거리, 앉은뱅이를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에서 혼인잔치의 표징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타볼 산에서 거룩한 변모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표징을 통해서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들 또한 우리가 사는 곳이 갈릴래아입니다. 각자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 좋겠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주님의 승천 경당, 주님의 기도 경당, 주님의 눈물 성당, 겟세마니 성당, 베드로의 눈물 성당, 성모님의 영면 성당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곳입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 주십시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성서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조롱과 야유가 있었습니다. 모욕과 가시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번이나 무참하게 넘어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나이다.”라고 기도하시면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래아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넘어 다시 부활하신 것처럼 제자들도 절망에서 희망으로,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걱정에서 기쁨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처럼 많은 표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강론
거룩함에 대한 갈증, 영혼의 구원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
가장 가난한 이들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해 계심을 굳게 믿고, 그들을 왕처럼 섬기는 사랑의 선교 수녀회 경당에 가면, 십자가 아래, 다음의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목마르다.”(요한 복음 19장 28절)
십자가상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 하신 말씀입니다. 그분 말씀의 진의(眞意)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병사들은 ‘이 사람이 탈수 현상으로 인해 목이 엄청 마른가 보다.’ 하며 신 포도주를 해면에 적셔 예수님 입에 대어드렸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진의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느낀 갈증은 가련한 우리 인간의 영혼에 대한 갈증이었습니다. 단 한 명의 영혼이라도 더 얻고 구원하려는 간절한 염원이 담긴 갈증이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크고 감미로운 사랑을 전혀 체험하지 못한 채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우리 인간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우셨던 나머지 예수님께서 내뱉으신 말씀이 “목마르다.”였던 것입니다.
요즘 계속되는 요한 복음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육적인 삶이 아니라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 특히 예수님의 거룩한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것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영원한 생명의 말씀, 그리고 당신의 몸과 피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 앞에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 졌습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영혼이나 구원에 대한 관심을 단1도 없이 그저 육적으로만, 동물적으로만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앞에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분 말씀을 듣기가 정말 거북하다며 투덜거리는 사람들, 그저 하루하루 육체에만, 지극히 세속적인 것들에만 함몰되어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최후는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진의를 정확히 파악하고 꿰뚫은 사람들입니다. 거룩함에 대한 갈증, 영혼의 구원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 것 그 너머의 영원한 것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파악한 사람들, 그들은 이 세상에서나 또 다른 세상에서나 주님으로 인해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대표적인 시몬 베드로의 참으로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신앙 고백이 오늘 우리의 것이 되면 좋겠습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 복음 6장 68~69절)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428.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물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문다.”(요한 6,56)
오늘 <복음>은 “생명의 빵”에 대해 하신 설교의 마지막 결론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말다툼이 벌어진 유다인들에게 이르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리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이다.”(요한 6,54-55)
어제 우리는 “먹다”(τρωγω)라는 동사는 ‘씹다, 씹어서 부수다’라는 뜻으로 말씀을 온 몸으로 음미하며 살아가라는 의미, 곧 ‘실행’을 암시함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내 살을 먹고 피를 마시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보고자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몸’(살)은 ‘인간관계’ 곧 ‘사랑의 사귐과 친교’를 의미하고, ‘피’는 ‘생명’ 곧 ‘일치와 유대’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심’은 예수님과의 사랑의 사귐과 친교로 예수님과의 유대와 일치된 생명을 이루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심으로써, 당신께서 가지셨던 사랑으로 맺는 인간관계를 가지게 되고, 당신의 생명과 일치와 유대를 이루게 됩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일은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일’, 곧 ‘순명’이라는 ‘행위의 실행’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실행하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물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문다.”(요한 6,56)
‘머문다.’는 것은 단순한 거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시는 것’을 말합니다. 곧 당신의 신적 생명이 우리에게 증여되고, 선사되고, 우리 안에서 생명이 되어 흐른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살은 우리의 살이 되고, 당신의 피는 우리의 피가 되고, 그분의 생명 안에서 새롭게 창조됩니다.
그렇습니다. 당신께서는 이토록 큰 사랑의 신비로, 우리 안에서 당신 생명의 꽃을 피우십니다. 당신의 살과 피를 건네시는 이 크신 사랑은 오늘도 우리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요한 6,57)
“말미암아”라는 말은 ‘그분의 힘으로’라고 번역하기도 하듯이,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바로 당신의 ‘살과 피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요한 6,55 참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우스는 말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는 불사불멸의 명약이요 죽음에 대한 해독제다.”
오늘도 우리는 이 미사 중에, 우리를 위해 내어놓으신 당신의 살과 피, 그 크신 사랑과 신비, 그토록 아름답고 거룩한 사랑을 먹고 마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의 힘으로 말미암아 살게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
주님!
당신은 제 안에 머무르되 저를 장악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제게 먹혀 사라짐으로 제 안에 살아계십니다.
당신 안에 저를 허용하시되 저를 가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숨결에 태워 드높게 날게 하십니다.
오늘, 제가 모든 것을 내어주고 그믐달처럼 자신을 감추신 그 오묘함과 놀라움으로,
바람 부는 대로 흘러 다니는 그 가볍고 그윽한 당신 사랑의 숨결이 되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회심의 은총, 회심의 여정, 일치의 여정
-회심과 성체성사-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민족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모든 겨레들아.”(시편117,1)
사울의 극적인 회심장면은 늘 읽어도 새롭고 감동적입니다. 사울의 회심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기다려온 주님의 인내가 놀랍습니다. 사울이 회심에 이른 결정적 장면중 주님과 사울과의 대화입니다. 때가 되자 주님은 결정적 순간 번쩍이는 빛과 더불어 다마스쿠스 도상의 사울에 나타납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박해받는 제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주님이십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나 당신 제자들과 함께 하심을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주님이 예비하신 하나니아스가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주님의 생각은 이처럼 깊고 그 시야도 한없이 넓고 깊음을 깨닫습니다. 마침내 사울이 하나니아스를 만나 안수를 받고 자초지종 사연을 듣자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고, 즉시 일어나 세례를 받습니다. 이어 복음 선포의 일꾼으로 돌변하여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합니다.
회심의 은총, 회심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무지에 대한 답도 끊임없는 회심뿐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회심의 습관화”를 이뤄주는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회심의 시스템”과도 같은 일과표에 따라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시편 성무일도와 미사 공동 전례 은총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새삼 회심 역시 의식적 선택의 은총이자 훈련이요 습관임을 깨닫습니다.
회심과 함께 가는 개안의 여정이요 날로 눈이 열려 밝아지는 영적 시야입니다. 사울과 같은 극적인 회심만 아니라 평범한 일상적인 회심도 있고 이런 회심이 대부분입니다. 회심의 여정과 더불어 날로 깊어지는 주님과의 일치입니다.
회심의 여정에 성체성사의 영향은 결정적입니다. 회심과 더불어 주님과의 일치가 깊어지면서 우리는 더욱 주님의 성체성사를 갈망하고 찾게 됩니다. 성체성사의 은총이 더욱 끊임없는 회심의 여정을 살게 합니다. 무지한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회심의 은총입니다.
눈이 열려야, 깨달음의 은총이 있을 때, 비로소 성체성사의 깊이를 깨닫습니다. 무지한 유다인들에 대한 주님의 성체성사에 대한 가르침이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의 우리에게도 참 좋은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전문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살아있다고 다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성체성사를 통해 주님과의 전인적인 일치가 날로 깊어가면서 주님을 닮아갈 때 비로소 충만한 삶, 영원한 삶이요 참으로 살아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참 삶의 여정에 회심과 성체성사의 은총의 역할은 얼마나 결정적인지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성체성사를 통한 주님과의 이런 상호내주(相互內住) 일치의 은총이 전인적 변화와 더불어 주님을 닮은 참나의 영원한 삶을 살게 합니다.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나 빛의 자녀로서 자유롭고 행복한, 아름다운 삶을, 복음 선포의 삶을 살게 합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결론 같은 말씀입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믿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끊임없는 회심과 더불어 날로 믿음을 북돋아 주는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내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체성사의 힘으로, 주님의 힘으로, 믿음의 힘으로 살아가는 우리 믿는 이들입니다.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인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이 우리 모두 무지와 허무의 어둠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행복한, 아름답고 영원한 복음 선포의 참 삶을 살게 합니다.
“우리 위한 주님 사랑 굳건하여라.
우리 위한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여라.”(시편117,2ㄱㄴ). 아멘.
[4/29(금)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조재형 신부)
2. 하느님 아버지의 크고 감미로운 사랑을 전혀 체험하지 못한 채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우리 인간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우셨던 나머지 예수님께서 내뱉으신 말씀이 “목마르다.”였던 것입니다.
요즘 계속되는 요한 복음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육적인 삶이 아니라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 특히 예수님의 거룩한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것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
주님!
당신은 제 안에 머무르되 저를 장악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제게 먹혀 사라짐으로 제 안에 살아계십니다.
당신 안에 저를 허용하시되 저를 가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숨결에 태워 드높게 날게 하십니다.
오늘, 제가 모든 것을 내어주고 그믐달처럼 자신을 감추신 그 오묘함과 놀라움으로,
바람 부는 대로 흘러 다니는 그 가볍고 그윽한 당신 사랑의 숨결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이수철 신부 강론
“우리 위한 주님 사랑 굳건하여라.
우리 위한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여라.”(시편117,2ㄱㄴ). 아멘.
[4/29(금)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제126일 기도]
하느님! 임마누엘 하느님!
바람 부는 대로 흘러 다니는......그 가볍고 그윽한...
하느님 사랑의 숨결이 되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4월29일(토) 9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