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6월 5일 월요일[(홍)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신부님강론 2개
[매묵]2023년 6월 5일 월요일[(홍)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신부님강론 2개
오늘 전례
입당송
<또는>
지혜 10,12 참조
주님은 격렬한 싸움에서 그에게 승리를 주시어 지혜가 그 무엇보다 강함을 깨닫게 하셨네.
본기도
거룩한 순교자 보니파시오의 전구를 들으시어
그가 입으로 가르치고 피로 지킨 신앙을 저희도 굳게 보존하며
행동으로 충실히 증언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토빗기의 시작입니다.1,3; 2,1ㄴ-8
3 나 토빗은 평생토록 진리와 선행의 길을 걸어왔다.
나는 나와 함께 아시리아인들의 땅 니네베로 유배 온 친척들과 내 민족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었다.
2,1 우리의 축제인 오순절 곧 주간절에 나를 위하여 잔치가 벌어져,
나는 음식을 먹으려고 자리에 앉았다.
2 내 앞에 상이 놓이고 요리가 풍성하게 차려졌다.
그때에 내가 아들 토비야에게 말하였다.
“얘야, 가서 니네베로 끌려온 우리 동포들 가운데에서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잊지 않는 가난한 이들을 보는 대로 데려오너라.
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려고 그런다.
얘야, 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마.”
3 그래서 토비야가 우리 동포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을 찾으러 나갔다.
그가 돌아와서 “아버지!” 하고 불렀다.
내가 “얘야, 나 여기 있다.” 하고 대답하자 그가 계속 말하였다.
“아버지, 누가 우리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을 살해하여 장터에 던져 버렸습니다.
목 졸려 죽은 채 지금도 그대로 있습니다.”
4 나는 잔치 음식을 맛보지도 않고 그대로 둔 채 벌떡 일어나
그 주검을 광장에서 날라다가,
해가 진 다음에 묻으려고 어떤 방에 놓아두었다.
5 그런 다음 집에 돌아와서 몸을 씻고 슬픔에 싸인 채 음식을 먹었다.
6 그때에 아모스 예언자가 베텔을 두고 한 말씀이 생각났다.
“너희의 축제들은 슬픔으로, 너희의 모든 노래는 애가로 바뀌리라.”
7 나는 울었다. 그리고 해가 진 다음에 나가서 땅을 파고 그를 묻어 주었다.
8 이웃들은 나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이제는 두렵지가 않은 모양이지?
전에도 저런 일 때문에 사형감으로 수배되어 달아난 적이 있는데,
또 저렇게 죽은 이들을 묻는구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계명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 그의 후손은 땅에서 융성하고, 올곧은 세대는 복을 받으리라. ◎
○ 부귀영화 그의 집에 넘치고, 그의 의로움 길이 이어지리라. 올곧은 이들에게는 어둠 속에서 빛이 솟으리라. 그 빛은 너그럽고 자비로우며 의롭다네. ◎
○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고, 자기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이! 그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으리니, 영원히 의인으로 기억되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 죄를 씻어 주셨네.
◎ 알렐루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1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2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소작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3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4 주인이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였다.
5 그리고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 종을 죽여 버렸다.
그 뒤에 또 많은 종을 보냈지만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렸다.
6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7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8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9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10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11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12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사도 26,19-23)와 복음(요한 10,11-16)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복된 보니파시오가 주님 사랑으로 갖은 육신의 박해를 이겨 내게 하셨으니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에 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시어
저희 마음도 그 사랑의 불꽃으로 타오르게 하소서.
우리 주 …….
<또는>
주님, 복된 순교자 보니파시오를 기리며 이 예물을 바치오니
일찍이 주님을 위하여 흘린 그 고귀한 피와 같이
이 예물도 기꺼이 받아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또는>
마태 10,39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영원히 살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저희에게 굳센 정신을 심어 주시어
저희가 복된 보니파시오처럼 언제나 주님을 충실히 섬기며
온갖 고난을 꿋꿋이 이겨 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영적승리의 삶
-예수성심의 성인들-
오늘 복음은 ‘포도원 소작인의 이야기’는 비유라가 보다는 우화입니다. 이에 대한 200주년 성서주석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오늘 복음의 이해에 좋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비유는 큰 뜻 하나를 전달하는데 반해 우화는 세세한 뜻 여럿을 알린다. 우화에는 비교점이 많다. 포도원=이스라엘 백성, 소작인들과 집짓는 이들=이스라엘 백성 또는 그 지도자들, 포도원 주인=하느님, 종들=예언자들, 사랑하는 이들=예수님, 다른 이들=이방인들, 그리스도 교회, 버린돌=십자가의 예수, 머릿돌=부활하신 그리스도이다.”
그러니 이 우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구약 예언자로부터 신약 이방인 전도시기까지의 구원사로 십자가(버린돌), 부활(머릿돌), 그리고 이방인 전도(다른 사람들)를 열거합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인 포도원 소작인의 우화는 예수님 친히 발설하신 우화가 아니라 예수님의 입을 빌린 이방인 전도를 추진한 해외 유다계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언뜻보면 십자가의 사건은 실패인 듯 하나 하느님의 놀라운 승리, 즉 영적승리를 상징합니다. 결코 그 누구도 하느님의 구원섭리의 역사를 좌절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하느님은 예수님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삶의 마무리를 승리로 이끄셨다는 초기 해외 유다계 그리스도교회의 신자들의 해석입니다.
이들의 렉시오 디비나의 묵상 깊이가 참 놀랍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서 시편 118장(22-23)을 통해 하느님의 놀라운 개입을 읽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화의 끝무렵 예수님의 입을 빌려 전개되는 내용들입니다.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구약은 끝나고 하느님의 결정적 개입에 의한 예수님께서 당신 십자가와 부활로 신약의 그리스도 교회가 영적승리의 주인공이 된다는 고백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위해 최선을 다한 순교적 삶을 살았을 때 결국 하느님은 영적승리의 삶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한결같이 경외하는 우리들에게 절망은 없다는 것이며 결국은 영적승리의 삶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화답송 시편 112장도 이런 우리를 격려합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 그의 의로움이 길이 이어지리라.
올곧은 이들에게는 어둠 속에서 빛이 솟으리라.
그 빛은 너그럽고 자비로우며 의롭다네.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고, 자기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이!
그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으리니, 영원히 의인으로 기억되리라.”
바로 시공을 초월하여 각자 삶의 자리에서 순교적 삶에 항구한 의인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축복입니다. 오늘 복음의 환호송 묵시록 말씀도 은혜롭습니다.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를 씻으셨네.”
바로 이런 예수성심의 사랑에 감격한 성인들이, 또 다른 예수님들이 세세대대 영적승리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으니 이 도도한 하느님 승리의 물결을 멈출자 누구이겠습니까? 2000년 유구한 가톨릭교회 역사가 그대로 하느님의 승리를, 우리의 궁극적 영적승리를 상징하니 우리의 영적전의를 새롭게 합니다.
오늘부터 제1독서는 토빗기의 시작입니다. 다른 교파에서는 외경에 포함시키나 우리 가톨릭 교회는 흥미와 드라마로 가득한 가장 유쾌하고 재미있는 성경중 하나로 여깁니다. 토빗기의 서두의 고백에서 토빗의 매력적인 인품이 예수님의 제자라 해도 손색이 없고 우리 삶의 귀감이 됩니다.
“나 토빗은 평생토록 진리와 선행의 길을 걸어왔다. 나는 나와 함께 아시리아인들의 땅 니네베로 유배 온 친척들과 내 민족에게 많은 자선을 베플었다.”
평생토록 진리와 선행, 자선의 삶으로 일관했으니 얼마나 멋진 아름다운 삶이었는지요! 오늘은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이 순교성인 또한 예수님을 그대로 뒤따른 또 한분의 예수님이요 영적승리의 빛나는 모범입니다. 675년에 태어나 754년 순교하기 까지 79년 한생애 자체가 감동입니다. 독일의 사도요 수호성인인 앵글로 색슨족인 베네딕도회 출신의 성 보니파시오는 선교열정에 불탔던 스스로 순교의 삶을 자초했던 분입니다.
베네딕도회에 입회하여 후에 수도원 학교의 교장이 되어 교수와 설교가로 명성을 떨치지만 이를 모두 내려놓고 프리슬란트 지방의 선교사로 나갔고 이어 너슬링 수도원의 원장으로 선출되었지만 이를 사양하고 몇차례 교황을 알현한후 이교들에게 선교하라는 명령을 받고 또 선교사로 파견됩니다.
독일의 선교활동도 참 눈부십니다. 교구마다 수도원을 세우고, 그가 세운 풀다 수도원은 독일에서 종교적, 지성적 활동의 중심지가 되고 지속적인 선교활동과 영성적 쇄신을 위한 근거지가 됩니다. 그러나 성인은 결코 안주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백절불굴의 지칠줄 모르는 선교수도사제였습니다.
성인은 보장된 마인츠의 대주교직을 사임하고 이교도의 관습에 떨어진 프리슬란트 선교에 여생을 바치던중 754년 6월5일 성령강림대축일에 개종자들에게 견진성사를 주려고 준비하던중 이교도들의 급습을 받아 동료 52명과 함께 살해되어 순교의 월계관을 씁니다. 그러고 보니 교회에 알려지지 않은 하느님만이 아시는 순교성인들은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며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또 한분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싶은 중국에 파견되어 눈부신 활약을 펼친 선교사로 가경자 마태오 리치(1552-1610)입니다. 하비에르 프란치스코가 못다 이룬 중국 선교를 성공적으로 이끈 신화적 인물이 마태오 리치입니다. 교황님은 5월31일 수요 일반 접견 교리교육에서 전주의 우리 김대건 안드레아에 이어 마태오 리치에 대한 찬사로 가득한 강론을 했습니다.
참 불가사의한 백절불굴의 선교사 마태오 리치는 중국 파견에 앞서 무려 18년간을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공부했다는 것입니다. 수학, 천문학 지식은 물론 그의 학식은 참으로 광범위했고, 대화에도 능해 현인이자 학자로 중국 황제는 물론 고관들에게도 전폭적인 존경과 신뢰를 받으며 복음의 봉사자로 온 열정을 쏟았습니다. 1610년 북경에서 57세로 선종하기 까지 전생애를 선교에 바친 선교사로 황제의 허락에 의해 중국땅에 묻힌 최초의 외국인이었습니다.
같은 예수회 회원으로서 교황님의 마태오 리치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물씬 풍기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말 저절로 감사, 감탄, 감동하게 되는 예수성심의 성인들이요 영적승리의 빛나는 모범들인 성 보니파시오와 가경자 마태오 리치입니다. 새삼 두 분 선교사들을 통해 선교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자 존재이유임을 깨닫게 됩니다. 계속 예수님의 뒤를 잇는 순교성인들의 영적승리의 삶에 저절로 복음의 시편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각자 삶의 자리에서 순교적 삶에 항구함으로 예수님과 함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 마지막 말씀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33). 아멘
2.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 서울대교구장
삼위일체 - 하느님의 신비, 그 신비 담은 인간의 신비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성부에게서 파견되고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성자의 수난과 부활을 기억하고 기념하였고,
오순절에 성부와 성자에게서 파견되신 성령의 강림 사건으로 전례력상 부활 시기를 마쳤습니다.
신학적으로는 이로써 하느님의 세 위격이다 계시되었기에,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주일에 교회는 삼위일체 대축일을 경축합니다.
‘위격이 다른 세 분이 같은 하느님 한 분’이시라는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로서는 이해 불가능한 ‘신비’입니다.
이 신비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철학적, 신학적 개념들이 동원됩니다.
‘위격’(persona)과 ‘본질’(natura, essentia, substantia)이라는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용어를 동원하여 학문적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비유적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 어떠한 설명도 충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절대 신비’이고 ‘지고의 신비’입니다.
이해 불가능한 신비인 ‘삼위일체의 신비’는 그저 신학자들의 관념적, 학문적 대상이 아니라 실은 우리 모두에게 깊
이 연관되어 있는 신비입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바로 이 삼위일체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육화하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지상의 존재이긴 하지만, 순전히 지상적인 존재인 것만은 아닙니다.
“교회는 성삼위로부터 오고 성삼위의 모상에 따라 구성되고 역사의 삼위일체적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위로부터 형성되어 위에서 오고(oriens ex alto), 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가르침 역시 삼위일체 신비가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피부로 닿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으로 이 삼위일체 신비가 우리 인간존재의 신비와 연결되어 있음을 묵상하고 싶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 삼위일체의 깊은 신비를 지니신 분이시기에, 하느님을 우리가 온통 다 이해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런 하느님의 깊은 신비를 닮아 창조된 인간이기에, 실은 우리 한사람 한 사람 역시 ‘존재의 신비’를 품고 있고,
하느님의 깊은 신비를 담고 있는 ‘신비의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국적이나 피부색, 재력, 능력, 건강이나 사회적 지위 등등과 무관하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있는 그대로 소중하고 존엄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존재’이고 그 안에 ‘하느님을 담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신비 중의 신비인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으며, 지엄하신 하느님의 신비 속에 잠기는 거룩한 시간을 보내면
서, 그 깊은 하느님의 신비를 품고 있는 우리 인간 존재의 존엄함을 묵상해 보는 시간도 가져 봅시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 그래서 때로는 서로 ‘지지고 볶고 싸우며’ 살아가기도 하지만,
- 가족과 이웃 한 분 한 분이 실은 하느님의 이 깊은 신비를 담고 있는 소중하고 존엄한 존재임을 깊이 묵상해 보는 한 주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6/5(월)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33).(이수철 신부)
2. 하느님의 깊은 신비를 닮아 창조된 인간이기에, 실은 우리 한사람 한 사람 역시 ‘존재의 신비’를 품고 있고,
하느님의 깊은 신비를 담고 있는 ‘신비의 존재’입니다.(정순택 주교)
[6/5(월)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제163일 기도]
하느님! 임마누엘 하느님!
하느님의 신비를 담고있는 인간을 존중하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6월5일 6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