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6월 8일 목요일[(녹) 연중 제9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6월 8일 목요일[(녹) 연중 제9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주님, 저를 돌아보시어 자비를 베푸소서. 외롭고 가련한 몸이옵니다. 하느님, 비참한 저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저의 죄악 낱낱이 없애 주소서.
본기도
구원 계획에 따라 세상 모든 일을 섭리하시니
저희에게 해로운 것은 모두 물리치시고
이로운 것은 아낌없이 베풀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토빗기의 말씀입니다.6,10-11; 7,1.9-17; 8,4-9ㄱ
10 토비야가 메디아에 들어서서 이미 엑바타나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11 라파엘이 “토비야 형제!” 하고 청년을 부르자
그가 “왜 그러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라파엘이 말하였다. “우리는 오늘 밤을 라구엘의 집에서 묵어야 하는데,
그 사람은 그대의 친족이오. 그리고 그에게는 사라라는 딸이 있소.”
7,1 엑바타나에 들어서자 토비야가 라파엘에게, “아자르야 형제,
나를 곧장 우리 친족 라구엘에게 데려다 주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는 토비야를 라구엘의 집으로 데려갔다.
그들은 마당 문 곁에 앉아 있는 라구엘을 보고 먼저 인사하였다.
라구엘은 “형제들, 기쁨이 충만하기를 비오! 건강히들 잘 오셨소.” 하고
답례한 다음, 그들을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9 라구엘은 양 떼 가운데에서 숫양 한 마리를 잡고,
그들을 따뜻이 맞아들였다.
그들이 몸과 손을 씻고 저녁을 먹으러 식탁에 앉았을 때에
토비야가 라파엘에게, “아자르야 형제,
내 친족 누이 사라를 나에게 주라고 라구엘에게 말씀드리시오.” 하고 말하였다.
10 라구엘이 우연히 이 말을 듣고 청년에게 말하였다.
“오늘 밤은 먹고 마시며 즐겁게 지내라.
형제야, 내 딸 사라를 아내로 맞아들일 자격이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
나도 사라를 너 말고 다른 남자에게 줄 권리가 없다.
네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친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얘야, 너에게 사실을 알려 주어야겠다.
11 나는 벌써 사라를 우리 동포 일곱 남자에게 차례로 주었지만,
사라가 있는 방에 들어가는 그 밤으로 다 죽어 버렸다.
그러니 얘야, 지금은 그냥 먹고 마셔라.
주님께서 너희를 돌보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토비야는 말하였다.
“제 일을 결정지어 주시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습니다.”
그러자 라구엘이 말하였다.
“그렇게 하마. 모세의 책에 있는 규정에 따라 사라는 네 사람이다.
하늘에서도 사라는 네 사람이라고 이미 판결이 내려졌다.
너의 이 친족 누이를 아내로 맞이하여라.
이제부터 너는 사라의 오라비고 사라는 너의 누이다.
오늘부터 사라는 영원히 네 사람이다.
그리고 얘야, 오늘 밤에 하늘의 주님께서 너희를 잘 보살피시고,
너희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풀어 주시기를 빈다.”
12 그러고 나서 라구엘은 자기 딸 사라를 불렀다.
사라가 오자 라구엘은 그 손을 잡고 토비야에게 넘겨주며 말하였다.
“율법에 따라 사라를 아내로 맞이하여라.
모세의 책에 쓰인 규정에 따라 사라는 네 아내다.
그러니 네가 맡아서 네 아버지께 잘 데려가거라.
하늘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번영과 평화를 베풀어 주시기를 빈다.”
13 라구엘은 다시 사라의 어머니를 불러서 쓸 것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세 율법의 규정에 따라
사라를 토비야에게 아내로 준다는 혼인 계약서를 썼다.
14 그러고 나서 그들은 먹고 마시기 시작하였다.
15 라구엘은 자기 아내 아드나를 불러,
“여보, 다른 방을 준비해서 사라를 그리로 데려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16 아드나는 가서 라구엘이 말한 대로 그 방에 잠자리를 차려 놓은 다음,
사라를 그리로 데려갔다.
그리고 사라 때문에 울다가 눈물을 닦고 그에게 말하였다.
17 “얘야, 용기를 내어라.
하늘의 주님께서 너의 그 슬픔 대신에 이제는 기쁨을 주실 것이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그러고 나서 아드나는 방을 나갔다.
8,4 부모가 방에서 나가 문을 닫자
토비야는 침상에서 일어나 사라에게 말하였다.
“여보, 일어나구려. 우리 주님께 기도하며
우리에게 자비와 구원을 베풀어 주십사고 간청합시다.”
5 사라가 일어나자 그들은 기도하며
자기들에게 구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청하였다.
토비야는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당신의 이름은 대대로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하늘과 당신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영원히 찬미하게 하소서.
6 당신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그의 협력자며 협조자로 아내 하와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둘에게서 인류가 나왔습니다.
당신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와 닮은 협력자를 우리가 만들어 주자.’ 하셨습니다.
7 이제 저는 욕정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저의 이 친족 누이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저와 이 여자가 자비를 얻어 함께 해로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8 그들은 “아멘, 아멘.” 하고 함께 말하였다.
9 그러고 나서 그날 밤 잠을 잤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네 손으로 벌어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 너는 복을 받으리라. ◎
○ 너의 집 안방에 있는 아내는,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너의 밥상에 둘러앉은 아들들은, 올리브 나무 햇순 같구나. ◎
○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 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
◎ 알렐루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28ㄱㄷ-34
그때에 28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의 사랑을 믿으며 거룩한 제대에 제물을 바치오니
주님의 은총으로 저희를 씻으시어
저희가 주님께 드리는 이 성찬의 제사로 더욱 깨끗해지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또는>
마르 11,23.2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저희를 성자의 살과 피로 기르시고 주님의 성령으로 다스리시어
저희가 말보다 진실한 행동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마침내 하늘 나라에 들어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톨스토이는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 이 시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묘비명에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 인생의 의미를 알고 무덤에 묻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을 풍자하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나도 사랑해!”가 아닐까요? 1년이 넘는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말은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습니다.”가 아닐까요? 오랜 가뭄으로 바싹 타들어가는 농작물을 바라보는 농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시원하게 내리는 비”가 아닐까요? 어렵게 국경을 넘어 이민자의 삶을 살아가는 분들에게 가장 얻고 싶은 것은 신분을 보장하는 “영주권”이 아닐까요? 여러분이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요? 제가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신문사가 재정적으로 걱정 없을 정도로 구독자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성서에도 사람들의 간절한 갈망이 있습니다. 눈이 멀었던 소경은 다윗의 자손인 예수님께 자비를 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이 먼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하혈하는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여인은 하혈이 멈추었습니다. 시로페니키아 여인은 예수님께 병중에 있는 딸을 치유해 주기를 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인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인의 딸은 치유되었습니다. 사람들만 갈망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갈망이 있으셨습니다. 이집트에서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마음이 모질고, 하느님을 시험하려 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으로 용서하셨습니다.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외아들까지 보내 주셨습니다.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계명인지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사랑하는 시간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철학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찾고, 종교는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찾지만 사랑은 그 두 가지에 대한 해답이다. 가장 미련한 것은 사랑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고 가장 슬픈 것은 사랑을 해보지 못하는 것이며 가장 불행한 것은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랑에 있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자존심이다. 깃대에 깃발이 없으면 무의미하다. 깃발에 바람이 없으면 더 무의미하다. 방황은 사랑의 깃발에 부는 바람이다.
혼배 주례를 하면서 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갈릴래아 호수가 생명이 넘치는 이유는 끊임없이 아래로 물을 내려 보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것을 나누면 더 많은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이야기 해 줍니다. 사해가 생명이 살 수 없는 바다가 되는 이유는 끊임없이 받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해 줍니다. 부부는 받기만 하려고 해서는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없습니다. 부부는 서로에게 내어 줄 때,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이야기 해줍니다. 또 하나 물 이야기를 해 줍니다. 두물머리입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은 서로 다른 곳에서 시작을 합니다. 그러나 두 강은 두물머리에서 만나고 하나의 강을 이룹니다. 그리고 넓은 바다로 나가게 됩니다. 혼인은 배우자가 서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자는 이제 함께 더 넓은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서로만 바라보면 기대하게 되고,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실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면 서로 도울 수 있고, 힘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십시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는데, 그 때 보이는 것은 예전에 보던 것과는 다릅니다.
2.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찬미받으소서
-사랑의 찬미, 찬미의 기쁨, 찬미의 행복-
예전 신자분과 주고 받은 문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수사님은 무슨 맛, 무슨 기쁨, 무슨 재미로 여기서 사느냐?”는 물음입니다. 신학교때 동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저를 “수사”로 부르는 것을 좋아해 여전히 수사라 부르고, 또 많은 분들도 수사라 부르는 것이 좋다며 수사로 부릅니다. 이 질문을 받으면 대답전에 묻습니다.
“형제님은 무슨 맛, 무슨 기쁨, 무슨 재미로 삽니까?”
거의 대부분 웃으며 대답을 못합니다. 하나 덧붙여 묻는 질문입니다.
“형제님의 삶은 선물입니까? 혹은 짐입니까? 형제님의 아내는 선물입니까? 혹은 짐입니까? 형제님의 자녀들은 선물입니까? 혹은 짐입니까?”
역시 웃기만 할뿐 선뜻 대답하지 못합니다. 결론으로 저는 주저없이 답합니다.
“저는 하느님의 찬미의 맛으로, 기쁨으로, 재미로 삽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저뿐 아니라 정주의 삶을 살아가는 여기 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의 수도자들의 공통적 답변일 것입니다. 저에게 삶은 두말할 것이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찬미의 맛으로, 찬미의 기쁨으로 살아갈 때 삶은 하느님의 선물로 변합니다. 사랑의 찬미, 찬미의 기쁨입니다. 끊임없는 하느님 찬미의 삶에서 샘솟는 감사입니다.”
그래서 평생 하느님 찬미의 기도를 주업으로하여 살아가는 “찬미의 사람”이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주일마다 아침 1시간 동안 노래로 바치는 “주님을 찬미하라”로 시작하여 “주님을 찬미하라”로 끝나는 긴 다니엘의 찬미가는 사랑의 찬미, 기쁨의 찬미가 우리 삶의 모두임을 깨닫게 합니다. 아주 오래전 써놨던 “들꽃같은 삶”이란 시도 생각이 납니다.
“살아있음이 찬미와 감사다
살아있음이 기쁨이요 행복이다
사랑의 찬미, 찬미의 기쁨, 찬미의 행복이다
들꽃같이 사는 게 잘 사는 거다
쓰레기 내지 않고
물주지 않아도, 거름주지 않아도, 약치지 않아도
가난한 땅에서도 무리를 이루어 잘도 자란다
작고 수수하나 한결같이 맑고 곱다
탈속의 초연한 아름다움이다
최소한의 자리, 양분, 소비의 자발적 가난이지만
하늘 바람에 유유히 휘날리는 샛노란 별무리 고들빼기 꽃들
참 자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사랑의 찬미, 찬미의 기쁨, 찬미의 행복이다
가난한 부자다
들꽃같이 사는 게 잘 사는 거다”-2001.5.20.
무려 22년전 시를 오늘 인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오늘 강론 제목은 “찬미받으소서-사랑의 찬미, 찬미의 기쁨, 찬미의 행복”입니다. 하느님 찬미에서는 천주교, 동방 정교회, 성공회, 개신교, 이슬람, 유대교가 일치할 것입니다. 개신교 목사님들이나 신자들이 수도원에 와서 압도되어 감동에 젖게 하는 것이 바로 저녁 성무일도시 하느님 찬미의 노래입니다.
“찬미받으소서”, 바로 모두가 공감하고 감동하는 이젠 고전의 반열에 속하는 2015년6월16일 반포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첫 번째 회칙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진리의 빛을 발하는 고전입니다. “찬미받으소서” 책자 뒷표지의 소개글입니다.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 아름다운 찬가에서 우리의 공동의 집인 지구가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는 누이며 두 팔 벌려 우리를 품어주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같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찬미받으소서” 회칙은 아주 구체적으로 현실적인 처방을 제시하는 영성서적입니다. 결론부분은 생태교육과 영성에 대한 금과옥조의 실제적 처방입니다. 새로운 생활양식을 향하여, 인류와 환경 사이의 계약에 대해 교육하기, 생태적 회개등, 참으로 백척간두의 위험에 처해 있는 공동의 집인 지구에서 인류와 세상 피조물이 살아남기 위한 생태적 회개가, 생태적 혁명이 얼마나 절실한지 깨닫는 작금의 현실입니다.
오늘 복음 환호송이 참 고무적이요 좋습니다.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주셨네.”(2티모1,10). 바로 오늘 가장 큰 계명에 대한 오늘 복음이 특히 그러합니다.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이냐?” 는 율법학자의 물음에 둘째까지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이에 화답하여 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보다 낫습니다.”슬기롭게 대답하는 율법학자에게 예수님은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며 그의 영성을 인정하십니다. 아, 이제 이웃에는 사람만이 아니라 자연 모든 피조물까지 포함해야할 절체절명의 기후위기의 시대입니다. 여기에 결정적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 수도원의 5마리 반려견들일 것입니다. 저렇게 사람을 따르는 개처럼 우리도 주님의 따라야 함을 배웁니다.
하느님 사랑은 저절로 찬미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사랑의 찬미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하느님 찬미는 한결같고 열렬할 수 뿐이 없고 영육의 건강, 특히 정신건강에 하느님 찬미보다 더 좋은 명약은, 영약은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은 날로 확고해지면서 공동체의 일치는 물론 이웃 형제들과의 사랑도 저절로 함께 깊어질 것입니다.
물론 자연 피조물도 이웃 사랑에 포함됩니다. 참으로 사람 형제를 비롯하여 피조물 형제들까지 망라한 사랑이 하느님 사랑의 진정성을 입증합니다. 제가 “찬미받으소서” 강론 제목을 택한 것은 바로 제1독서에서 토빗의 아들 토비야와 라구엘의 딸 사라가 혼인하여 합방하기전 바친 기도문에서입니다.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당신의 이름은 대대로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하늘과 당신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영원히 찬미하게 하소서. 이제 저는 욕정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저의 이 친족 누이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저와 이 여자가 자비를 얻어, 함께 해로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아멘. 아멘.”
기도문이 참 멋지고 아름답고 적절합니다. 하느님을 믿는 신혼부부가 첫날밤 바칠 기도문에도 손색이 없겠습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찬미의 삶이 이웃사랑의 기초가 됨을 깨닫고 배웁니다. 어제 병원에 다녀오다 악취에 주변을 살펴보니 개천에서 나는 냄새였습니다. 한동안 비가 오지 않으니 맑게 흐르며 찬미가를 부르던 시냇물이 말라 버린 것이며 웅덩이에 고인 썩은물에서 나는 냄새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 매일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바치는 이 거룩한 미사와 시편공동전례기도 은총이, 우리 모두 끊임없이 맑게 흐르는 “찬미의 강”으로 살도록 해줍니다. 이를 요약한 제 좌우명 기도 “하루하루 살았습니다”중 다음 기도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찬미의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緩慢)하게 또 격류(激流)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하느님 찬미의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3. 2023년 06월 08일 목요일
[연중 제9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마르코 복음서에 등장하는 율법 학자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적대자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는 이례적으로 예수님께 호감을 보이는 율법 학자가 등장합니다.
그가 예수님께 다가가는 모습도 그러하고
(“예수님께서 대답을 잘하시는 것을 보고 그분께 다가와”[오늘 복음에서 생략된 구절]),
예수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모습도 그러합니다.
이에 따라 예수님께서 이례적으로 율법 학자에게 보내는 찬사의 말씀도 듣게 됩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많은 율법 학자가 예수님을 불편하게 여기고 적개심을 보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분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촌뜨기 나자렛 사람이 감히 전문가들인 자기들 앞에서
율법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하는 모습이 그들은 영 못마땅하였을 것입니다.
율법에 정통한 교육을 결코 받았을 리 없는 자가
그토록 중요한 안식일 법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모습을 도무지 용납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율법 학자는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예수님을 마주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비범함을 알아본 그는 율법 학자로서 평소 품고 있던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사실 율법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 질문은
당대의 학자들 사이에서도 자주 논의되던 주제였습니다.
따라서 그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예수님을 그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한 셈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율법의 밑바탕에 놓인 핵심을 짚어 주시는 예수님의 대답에
그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수긍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결국 귀한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편견은 우리에게도 많습니다.
그 자체로 좋고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일지라도
잘못된 선입견을 거치게 되면 나쁘고 추하고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다가가려면 먼저 그것을 가로막는 장막을 걷어 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찬사를 얻어 낸 율법 학자처럼,
그 장막을 과감히 걷어 낸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에 속한 좋고 귀한 것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4.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607. 연중 제9주간 수요일.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마르 12,24)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두가이들의 부활에 관한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은 ‘불신의 페러다임’과 ‘믿음의 페러다임’의 차이를 잘 보여줍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왜곡된 신앙’(잘못된 신앙)이 가져온 불신에 대한 말씀입니다. 곧 ‘잘못된 생각’에 구속되어 버린 ‘영적무지’와 믿음이 가져온 ‘신적지혜’의 자유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마르 12,24)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사두가이들의 영적무지(왜곡된 믿음)를 두 가지로 지적하십니다. 곧 ‘성경에 대한’ 무지와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입니다.
‘성경에 대한 무지’에 있어서, 그들은 모세오경만을 받아들였고 인간의 합리적 사고의 범주로써 성경을 이해하려 했기에, 내세와 부활과 영적존재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활한 상태를 마치 지상에서의 삶과 동일하게 여기고, <신명기> 25장 5-10절에 나오는 ‘수혼법’으로 부활에 대해 따지고 듭니다. 그들은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부활한 상태, 곧 초월적인 실재인 부활체를 마치 지상에서의 삶과 동일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부활한 상태를 영적 존재로, 마치 천사와 같이 장가가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는 존재로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믿고 있는 모세오경인 <탈출기> 3장 6절을 인용하시면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은 이미 죽었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살아있으며 부활하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또한, 그들의 ‘하느님 능력에 대한 무지’는 자신들의 합리적 사고와 이성적 판단 아래, 하느님의 권능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었습니다. 곧 하느님의 초월적인 권능을 무시했고, 고작 하느님의 부활의 능력이 마치 죽은 사람을 죽기 전의 생활로 되돌려놓는 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지 되살아난다는 것만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 안에서 다시는 죽지 않을 새로운 존재로 변화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새롭게 변화된 부활체에 대해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 내가 여러분에게 신비 하나를 말해 주겠습니다. 우리 모두 다 죽지 않고 변화할 것입니다. ~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이 썩는 몸은 썩지 않을 몸을 입고, 이 죽는 몸은 죽지 않는 몸을 입어야 합니다.”(1코린 15,51-53)
그렇습니다. 이러한 ‘영적 존재에 대한 무지’와 ‘하느님 권능에 대한 불신’이 그들로 하여금 부활에 대한 불신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결국, 자신들의 ‘생각’(왜곡된 신앙)에 갇혀 속박된 영적무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진정 믿으면, 신적지혜가 열릴 것입니다. 불신은 우리를 끝없이 속박할 뿐이며, 믿음은 우리를 진리에로 이끌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성경을 몰랐기에, 영적 무지에 빠지고 불신에 떨어졌던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예수님의 말씀을 새겨들어 봅니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속박되어 있는 것)이 아니냐?”(마르 12,24)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마르 12,24)
주님!
제 안에 당신이 얼마나 생생히 살아 계신지를 알게 하소서!
제 생각에 빠져 허상에 끌려 다니지 않게 하소서!
영적 무지와 불신을 몰아내시고, 제 생각이 빗나가지 않게 하시고,
믿음으로 기뻐하며,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안에서 변화되고 성화되게 하소서. 아멘.
[6/8(목) 연중 제9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사랑하는 시간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는데, 그 때 보이는 것은 예전에 보던 것과는 다릅니다.(조재형 신부)
2. “저는 하느님의 찬미의 맛으로, 기쁨으로, 재미로 삽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저뿐 아니라 정주의 삶을 살아가는 여기 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의 수도자들의 공통적 답변일 것입니다. 저에게 삶은 두말할 것이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찬미의 맛으로, 찬미의 기쁨으로 살아갈 때 삶은 하느님의 선물로 변합니다. 사랑의 찬미, 찬미의 기쁨입니다. 끊임없는 하느님 찬미의 삶에서 샘솟는 감사입니다.”
(이수철 신부)
3.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율법의 밑바탕에 놓인 핵심을 짚어 주시는 예수님의 대답에
그(율법학자)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수긍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결국 귀한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정천 신부)
4.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마르 12,24)
주님!
제 안에 당신이 얼마나 생생히 살아 계신지를 알게 하소서!
제 생각에 빠져 허상에 끌려 다니지 않게 하소서!
영적 무지와 불신을 몰아내시고, 제 생각이 빗나가지 않게 하시고,
믿음으로 기뻐하며,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안에서 변화되고 성화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6/8(목) 연중 제9주간 목요일, 제 166일 기도]
하느님! 임마누엘 하느님!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게 하소서.
편견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6월8일(목) 7시...수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