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6월 11일 주일[(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6월 11일 주일[(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신부님 강론4개
오늘 전례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을 깨닫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살아 있는 생명의 빵이 되셨습니다. 주님의 몸을 모시는 이 미사에 기쁘게 참여하며 우리도 주님 안에 깊이 머무르는 성체성사의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합시다.
입당송
내 백성에게 나는 기름진 참밀을 먹이고, 바위틈의 석청으로 배부르게 하였노라.<대영광송>
본기도
이 놀라운 성찬의 성사로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게 하셨으니
저희가 언제나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성체 성혈의 거룩한 신비를 공경하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제1독서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8,2-3.14ㄴ-16ㄱ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
3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4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너희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15 그분은 불 뱀과 전갈이 있는 크고 무서운 광야,
물 없이 메마른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시고,
너희를 위하여 차돌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신 분이시다.
16 또 그 광야에서 너희 조상들이 몰랐던 만나를 너희가 먹게 해 주신 분이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시온아, 네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은 네 성문의 빗장을 튼튼하게 하시고, 네 안에 사는 아들들에게 복을 내리신다. ◎
○ 주님은 네 강토에 평화를 주시고, 기름진 밀로 너를 배불리신다. 당신 말씀 세상에 보내시니, 그 말씀 빠르게도 달려가네. ◎
○ 주님은 당신 말씀 야곱에게, 규칙과 계명 이스라엘에게 알리신다. 어느 민족에게 이같이 하셨던가? 그들은 계명을 알지 못하네. ◎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0,16-17
형제 여러분, 16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17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부속가
1.
찬양하라
시온이여
목자시며
인도자신
구세주를
찬양하라.
2.
정성다해
찬양하라
찬양하고
찬양해도
우리능력
부족하다.
3.
생명주는
천상양식
모두함께
기념하며
오늘특히
찬송하라.
4.
거룩하온
만찬때에
열두제자
받아모신
그빵임이
틀림없다.
5.
우렁차고
유쾌하게
기쁜노래
함께불러
용약하며
찬양하라.
6.
성대하다
이날축일
성체성사
제정하심
기념하는
날이로다.
7.
새임금님
베푼잔치
새파스카
새법으로
낡은예식
끝내도다.
8.
새것와서
옛것쫓고
예표가고
진리오니
어둠대신
빛이온다.
9.
그리스도
명하시니
만찬때에
하신대로
기념하며
거행한다.
10.
거룩하신
말씀따라
빵과술을
축성하여
구원위해
봉헌한다.
11.
모든교우
믿는교리
빵이변해
성체되고
술이변해
성혈된다.
12.
물질세계
넘어서니
감각으로
알수없고
믿음으로
확신한다.
13.
빵과술의
형상안에
표징들로
드러나는
놀랄신비
감춰있네.
14.
살은음식
피는음료
두가지의
형상안에
그리스도
온전하다.
15.
나뉨없고
갈림없어
온전하신
주예수님
모든이가
모시도다.
16.
한사람도
천사람도
같은주님
모시어도
무궁무진
끝이없네.
17.
선인악인
모시지만
운명만은
서로달라
삶과죽음
갈라진다.
18.
악인죽고
선인사니
함께먹은
사람운명
다르고도
다르도다.
19.
나뉜성체
조각마다
온전하게
주예수님
계시옴을
의심마라.
20.
겉모습은
쪼개져도
가리키는
실체만은
손상없이
그대로다.
21.
천사의빵
길손음식
자녀들의
참된음식
개에게는
주지마라.
22.
이사악과
파스카양
선조들이
먹은만나
이성사의
예표로다.
23.
참된음식
착한목자
주예수님
저희에게
크신자비
베푸소서.
저희먹여
기르시고
생명의땅
이끄시어
영생행복
보이소서.
24.
전지전능
주예수님
이세상에
죽을인생
저세상에
들이시어,
하늘시민
되게하고
주님밥상
함께앉는
상속자로
만드소서.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51-58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52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58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보편 지향 기도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생명이신 주님, 참된 양식이시고 음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리는 교회를 굽어보시어,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와 성혈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며 자신을 내어 주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소서.
2. 공직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보호자이신 주님,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일하는 공직자들을 굽어살피시어, 주님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며, 희생과 봉사로 자기 직분에 최선을 다하게 하소서.
3. 이산가족과 실향민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이산가족과 실향민들을 굽어살피시어, 가족과 고향을 마음에 품고 살아온 그들을 위로하시고, 이산가족 상봉이 하루빨리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든 이가 노력하게 하소서.
4. 본당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저희 본당 공동체를 돌보아 주시어, 사목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모두 성체성사에 참여하며 그 신비를 체험하고, 성체 안에서 하나 되며 나눔을 실천하게 하소서.
예물기도
이 제물로 신비로이 드러나는 일치와 평화를
주님의 교회에 자비로이 내려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드시며
십자가의 구원을 길이 기념하도록 흠 없는 어린양이신 자신을
아버지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완전한 찬미의 제물로 봉헌하셨나이다.
주님께서는 이 큰 신비로 신자들을 기르시고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류를 하나의 신앙으로 비추시고
하나의 사랑으로 뭉쳐 주시나이다.
이제 저희는 이 놀라운 성사의 식탁으로 나아가
주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고
부활하신 성자의 모습을 닮은 새로운 인간이 되고자 하나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이 모두
주님을 흠숭하며 새로운 노래를 부르오니
저희도 모든 천사들의 군대와 함께 큰 소리로 끝없이 외치나이다.
<또는>
<성찬 감사송 1 : 그리스도의 제사와 성사>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참되고 영원한 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길이 지속되는 제사를 제정하시어
먼저 자신을 아버지께 구원의 제물로 봉헌하시고
저희도 당신을 기억하여 봉헌하도록 명하셨나이다.
저희를 위하여 희생되신 주님의 살을 받아 먹어
저희는 튼튼해지고
저희를 위하여 흘리신 주님의 피를 받아 마시어
저희는 깨끗해지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이 세상에서 저희가 주님의 보배로우신 몸과 피를 받아 모셨으니
주님과 하나 되어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오늘의 묵상
1. [생명의말씀] 2023년 6월 11일(가해) 성체성혈 대축일 (서울주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방종우야고보 가톨릭대학교_성신교정
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은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특별히 박사 과정 동안 제가 받았던 느낌은 지식이 쌓여간다기보다 하루하루 제 자신이 소진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온종일 쓴 논문의 양이 성에 차지 않거나 어떻게 논리를 전개해야 할지 막혀버리면 정말이지 눈앞이 캄캄하고 숨이 막혔답니다.
무엇보다 저를 힘들게 한 것은 이 과정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다는 막막함이었어요.
한마디로 그 시기의 저는 하루하루 불행하고 불안했지요.
그 과정을 거쳐 공부를 마치게 됐을 때 저는 알 수 있었어요.
저 혼자만의 힘으로 해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제 자신이 보잘것없어 보일 때, 주저앉고 싶을 때 저를 지탱해 준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어머니의 기도와 신자분들의 응원, 함께 공부한 동료들의 마음까지 수많은 도움이 있었답니다.
만약 이러한 사랑이 없었다면 저는 결코 공부를 마칠 수 없었을 거예요.
여기서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어요. 사람은 과연 무엇으로 살까요?
당연히 우리는 밥을 먹고 살죠. 하지만 그 밥은 단순히 쌀로 지은 음식물이 아니에요.
거기에는 농부들의 땀과 정성이 깃들어 있고, 벼가 자라도록 햇빛을 비추시고 때맞추어 비를 내려 주신 하느님의 사랑이 스며들어 있답니다.
더구나 그 쌀을 매만지며 깨끗이 씻고 불에 앉힌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스며들어 있지요.
우리는 한 그릇의 밥으로 나날이 생명을 이어 가고 있지만 그것은 한 그릇의 밥이 아니라, 한 그릇의 사랑과 정성이예요.
결정적으로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특별히 죽음 이후에도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랍니다.
하느님은 죄로 죽어 가는 우리를 구원하시려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어요.
그렇게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희생과 사랑으로 우리의 밥이 되고자 하셨어요.
그래서 미사 안에서 주님의 몸을 모시는 사람은 다시 살게 되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세요.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성체성사의 신비는 바로 이것이랍니다.
한 조각의 밀떡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지, 한 잔의 포도주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피가 되는지 우리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고, 그 사랑을 먹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간직하면서 산다는 것이에요.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하느님의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방종우 야고보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2. 2023년 06월 11일 일요일
[성체 성혈 대축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오늘 우리는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지냅니다.
미사 때마다 봉헌되는 빵과 포도주의 예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놀라운 신비를 기억하고,
그것을 먹고 마시며 주님을 실제로 우리 안에 모실 수 있는 은총의 선물을 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이집트를 떠나 광야에서 생활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손수 ‘하늘에서 내려 주신 빵’, 곧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만일 그들에게 다른 먹을거리가 풍족하였다면,
하늘에서 어떠한 음식이 내려올지라도 그 가치가 그리 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오로지 당신께만 의지하기를 바라셨기에,
메마른 광야에 머물게 하시어 먹을 것 없이 허덕이는 그들에게 생명과 같은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오로지 당신께 의지하는 길이 살길임을 알게 하시려는 뜻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광야에서 그들이 먹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은 참된 양식이자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예형이었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이 빵이 단순히 당신의 말씀이나 가르침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십니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우리가 미사 안에서 모시는 성체와 성혈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새로운 만나가 되시어
그것을 먹는 이에게 당신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바라는 신앙인들은 다른 곳에서 그것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을 지니신 분께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몸소 우리에게 다가오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시는 성체로 우리는 이미 구원과 생명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3. 230610. 연중 제9주간 토요일.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다 넣었기 때문이다.”(마르 12,44)
오늘 <복음>의 “앞부분”에서는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엄하게 질타하십니다. 남에게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높은 자리에 찾으며, 약한 자들의 재산을 등쳐먹으면서도 기도는 오래 바치는 위선의 삶을 질책하십니다.
“뒷부분”에서는 예수님께서 렙톤 두 개를 봉헌한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높이 칭송하십니다. 부자들은 나름대로 여분의 것에서 일부를 바쳤지만, 이 과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기에 가장 큰 봉헌을 한 것이라고 칭송하십니다. 과부의 헌금은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는 “내면적 헌신의 외적인 표시”였습니다.
이는 헌금의 의미가 액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달려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봉헌과 나눔도 바로 이러한 것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마지막 음식마저 내어주었던 사렙다의 과부처럼, 자신이 가진 동전 전부를 내어놓았던 이 가난한 과부처럼, 아니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예수님처럼, 우리 역시 그렇게 다른 이들과 하느님을 위해 믿음과 사랑으로 마음으로 헌신하여야 할 일입니다.
이는 교회를 위하여 헌금을 많이 해야 한다는 돈 모금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봉헌’의 참뜻을 일깨워 주시고자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곳곳에서 약한 자와 억울한 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과 관심을 강조하십니다. “참된 봉헌”은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마침내는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참된 봉헌’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사실, 이 과부는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인데도, 그의 전부를 바쳤습니다. 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의 전부를 바치게 하였을까?
우리는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고 싶은 이를 만났는가? 전부를 건네주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그분을 만났는가? 전부를 내어주고도 가지지 못한 것마저 만들어서라도 주고 싶은, 그런 이를 만났는가? 그렇게 소중하고, 그렇게 귀한 이를 만났는가? 진정, 우리가 그분을 만났다면, 어떻게 하면 그분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런데 ‘예수님의 마음’은 너무도 비싸서 그 어떤 많은 돈으로도 결코 얻을 수가 없지만, 또한 너무도 싸서 ‘단 돈 두 닢’으로도 얻을 수가 있는 마음입니다. 그러니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순수한 마음의 지향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는 ‘지향’이라는 보화가 있습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는 그 ‘지향’을 보십니다. 마음 속 ‘지향’이 순수하면 예수님 마음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아무리 거대하고 큰 일리라도 마음 없이 한다면 결코 예수님 마음을 얻을 수 없지만, 비록 작고 보잘 것 없는 일이지라도 사랑으로 한다면 예수님 마음을 얻게 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 혹은 크고 거창한 일을 하느냐 작고 미천한 일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라, 오히려 ‘마음의 지향’에 얼마나 순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곧 무엇을 하든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는 요한 카시아누스가 수도승의 목표로 제시한 “마음의 순결”(puritas cordis)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순수한 마음의 지향으로 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다 넣었기 때문이다.”(마르 12,44)
주님!
제 마음의 지향을 깨끗하게 하소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사랑의 마음으로 하게 하소서.
전부를 내어놓은 가난한 과부처럼, 목숨을 내어놓은 당신처럼,
산 제물이 되게 하소서.
오직 당신이 저의 전부이오니, 전부를 내어주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떠남의 여정
-찬미, 봉헌, 자선, 사랑이 답이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도우심을 빌며
당신의 말씀에 희망을 거나이다."(시편119,147)
어제 피정중인 자매가 저녁 성무일도 시간을 앞둔 오후 5시쯤 갑작스럽게 집무실을 녹크했고 궁금 사항을 질문했습니다. 왜 모세가 모압 평야를 건너 약속한 땅에 가지 못하고 죽고 여호수아가 건너갔느냐는 것입니다. 모세의 처지가 너무 안됐고 하느님이 너무 야속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변의 요지입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고 각자 역할이 있는 법입니다.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여기까지가 모세의 역할인 것입니다. 모세는 겸손과 순종의 믿음으로 지혜롭게 훌륭히 자기 역할의 책임을 다했고 후계자 여호수아가 그 뒤를 잇습니다. 마치 릴레이 경주시 바톤 텃치와 같습니다. 혼자 계속 달릴 수는 없습니다. 이와 유사한 경우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안타까운 일들은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요? 하루하루 오늘 지금 여기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사는 일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습니다.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의 삶 역시 부단한 떠남의 여정입니다. 제가 여기 요셉수도원에 부임한 해가 1988년 나이 40이었는데 35년이 지난 올해 2023년에는 나이 75입니다. 35년 동안 얼마나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는지 모릅니다. 연미사를 드리다 보면 저보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들을 너무 많이 접하게 됩니다. ‘아, 이분들이 얼마나 살고 싶어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이래서 사부 성 베네딕도의 말씀을 좌우명 삼아 살아가는 요즈음입니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라.”(성규4,47)
주변의 자연환경도 좋은 가르침과 깨우침의 교사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웠던 꽃들도 지나가면 다른 꽃들이 뒤를 잇습니다. 우리 역시 언젠가 사라질 것입니다. 요즘 수도원 주차장에는 샛노란 금계국꽃이 한창입니다. 이제 곳곳에 피어나는 야생화 금계국 꽃들입니다. 꽃말은 “상쾌한 기분”의 금계국꽃입니다. 저절로 읊어지는 시였습니다.
“자리탓하지 않는다
그 어디든
뿌리내려
활짝 꽃피어 내어
하늘 담으면
거기가 바로 꽃자리 하느님의 나라다”
그러니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기고, 하루하루 날마다 오늘 지금 여기 꽃자리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일은 내일대로 잘 될 것입니다.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아무것도 너를’ 이란 성가를 기억할 것입니다. 놀랍게도 <가톨릭 교회 교리서> 227항에도 소개되고 있는 성녀의 격려 말씀입니다. 어떤 처지에서도 하느님을 신뢰할 것이며 신앙은 역경중에도 하느님을 신뢰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이를 다음과 같이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무엇에도 너 흔들리지 말며
그 무엇에도 너 두려워하지 마라.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
하느님께서만 변치 않으신다.
인내는 모든 것을 얻는다.
하느님을 가진 자는 부족함이 없으니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
오늘이 내일입니다. 잘 살아야 잘 죽습니다. 때를 아는 것이 지혜요 겸손입니다. 떠나야 할 때 잘 떠나는 삶이 아름답고 중요합니다. 하루하루 떠남의 여정에 충실할 때 마지막 떠남의 죽음도 아름다운 선종의 죽음입니다. 바로 시종여일 한결같은 “하느님 중심의 삶”이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물론이요 복음의 가난한 과부, 그리고 토빗기의 토빗과 라파엘 천사가 바로 그 모범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할 때 멋지고 아름다운 떠남의 연속이요 마지막 죽음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은 ‘자기 증여(self-giving)’의 삶입니다.
바로 이의 반대가 자기 중심의 ‘자기 섬김(self-serving)“의 삶이요, 오늘 복음의 율법학자들이요, 부자들이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높은 자리와 윗자리를 즐기며,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하는 율법학자들입니다.
후안무치(厚顔無恥)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지의 사람들이요, 외적본능의 욕구대로 살아가는 허영의 사람들입니다. 외화내빈, 내적공허의 헛된 삶을 살아가는, 알맹이가 아닌 껍데기의 삶을 살아가는 본말전도의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아름다운 떠남의 여정에,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할 수 있겠는지요? 저는 셋으로 요약했습니다. 찬미와 봉헌, 자선의 삶입니다.
첫째, “찬미의 삶”입니다.
사랑의 찬미입니다. 하느님 찬미가 모두입니다. 찬미의 믿음, 사랑의 찬미, 찬미의 축복, 찬미의 아름다움입니다. 하느님 찬미의 맛으로 살아가는 것이요 토빗처럼 찬미로 살다가 찬미로 끝나는 해피엔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로서 끝나는 제1독서 토빗기를 통해 배우는 찬미의 삶입니다. 놀랍게도 라파엘이 수호천사처럼 토빗과 늘 함께 했음을 봅니다. 삶은 우연이 없고 모두가 하느님의 구원섭리 안에 있음을 봅니다. 우리 하나하나와 함께 하는 수호천사도 분명있을 것입니다.
토비야가 귀가했을 때 라파엘은 은밀히 불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잘 해 주셨으니, 살아 있는 모든 이 앞에서 그분을 찬미하고 찬양하라”고 격려합니다. 또 임무를 다 마치고 파견하신 분께 떠날 때도 토빗에게 당부합니다. “이제 이 세상에서 주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자, 나는 나를 파견하신 분께 올라간다.”
둘째, “봉헌의 삶”입니다.
사랑의 봉헌입니다. 찬미란 말도 좋지만 봉헌이란 말도 좋습니다. 찬미의 봉헌입니다. 봉헌의 기쁨, 봉헌의 축복, 봉헌의 아름다움입니다. 하루하루가 봉헌의 삶이요 마지막 거룩한 봉헌이 죽음입니다. 바로 봉헌의 모범이 오늘 복음의 가난한 과부입니다. 예수님이 극찬하는 가난한 과부는 예수님의 봉헌의 삶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제자들에게 봉헌 삶의 모범으로 제시하는 가난한 과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 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정말 세상 우상들로부터 자유로운 “참사람” 하나 만나는 느낌입니다. 역설적으로 가난한 부자요, 참 자유인입니다. 참으로 최고의 살아 있는 보물인 하느님을 소유한 참부자, 참자유인 가난한 과부에게서 자기를 본 예수님입니다. 참으로 우리 봉헌의 삶을 부끄럽게, 분발하게 하는 가난한 과부입니다.
셋째, “자선의 삶”입니다.
사랑의 자선입니다. 이웃 불우한 이들에게 하는 자선은 일종의 봉헌입니다. 자선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입니다. 인색함보다 추하고 인간 품위를 손상시키는 것도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유다인들이 권하는 수행 셋이 기도, 단식, 자선입니다. 라파엘이 자기 임무를 다하고 떠날 때 토빗과 토비야 부자에게 신신당부하는 자선의 실천입니다.
“선을 행하여라. 그러면 악이 너에게 닥치지 않을 것이다. 진실한 기도와 의로운 자선은 부정한 재물보다 낫다. 금을 쌓아 두는 것보다 자선을 베푸는 것이 낫다. 자선은 사람을 죽음에서 구해 주고 모든 죄를 깨끗이 없애 준다. 자선을 베푸는 이들은 충만한 삶을 누린다. 그러나 죄와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은 바로 저희 자신에게 원수가 된다.”
정말 오늘날 사람들에게 경종이 되는 금과옥조의 말씀들입니다. 부자 나라들이 사람 죽이는 무기 만드는데 쓰는 돈을 가난한 나라들에게 자선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같은 생각도 해봅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의 찬미가, 사랑의 봉헌이, 사랑의 자선이 우리를 참으로 자유로운, 참으로 부요한 참사람이 되어 살게 합니다.
아름다운 떠남의 여정에, 하느님 중심의 찬미와 봉헌, 자선의 삶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아름다운 참부자, 참자유인으로 살게 하는 찬미와 봉헌, 자선의 삶이요,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런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님 사랑 우리 위에 꿋꿋하셔라.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셔라."(시편117,2). 아멘.
[6/11(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되새김 구절]
1.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하느님의 사랑으로 살아갑니다.(방종우 신부)
2.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새로운 만나가 되시어
그것을 먹는 이에게 당신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정천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다 넣었기 때문이다.”(마르 12,44)
주님!
제 마음의 지향을 깨끗하게 하소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사랑의 마음으로 하게 하소서.
전부를 내어놓은 가난한 과부처럼, 목숨을 내어놓은 당신처럼,
산 제물이 되게 하소서.
오직 당신이 저의 전부이오니, 전부를 내어주게 하소서. 아멘. (이영근 신부)
4. 아름다운 떠남의 여정에, 하느님 중심의 찬미와 봉헌, 자선의 삶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아름다운 참부자, 참자유인으로 살게 하는 찬미와 봉헌, 자선의 삶 입니다.(이수철 신부)
[6/11(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제 169일 기도]
하느님! 임마누엘 하느님!
찬미와 봉헌, 자선의 삶을 살게 하소서.
모두와 하나가 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6월11일(일) 11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