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6월 12일 월요일[(녹) 연중 제10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3개

마르티나 2023. 6. 12. 06:00

[매묵]2023년 6월 12일 월요일[(녹) 연중 제10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3개

 

입당송

시편 27(26),1-2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나의 적 나의 원수, 그들은 비틀거리리라.

본기도

하느님,
하느님은 모든 선의 근원이시니
성령께서 이끄시어 저희가 바르게 생각하고
옳은 일을 실천하도록 도와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해 주시어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시작입니다.1,1-7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와 티모테오 형제가
코린토에 있는 하느님의 교회와
온 아카이아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인사합니다.
2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4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5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듯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는 위로도 우리에게 넘칩니다.
6 우리가 환난을 겪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고,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위로는 우리가 겪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여러분도 견디어 나아갈 때에 그 힘을 드러냅니다.
7 우리가 여러분에게 거는 희망은 든든합니다.
여러분이 우리와 고난을 함께 받듯이
위로도 함께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4(33),2-3.4-5.6-7.8-9(◎ 9ㄱ)
◎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
○ 나와 함께 주님을 칭송하여라. 우리 모두 그 이름 높이 기리자. 주님을 찾았더니 응답하시고,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
○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
○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 ◎

복음 환호송

마태 5,12
◎ 알렐루야.
○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알렐루야.

복음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12ㄴ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제사를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바치는 예물을 기꺼이 받으시고
저희가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8(17),3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 저의 하느님, 이 몸 숨는 저의 바위시옵니다.
<또는>
1요한 4,16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신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 병을 고쳐 주시는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저희를 온갖 죄악에서 자비로이 지켜 주시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을 신중하게 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남을 비난하거나, 험담하는 말은 삼가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감사의 말, 칭찬의 말, 위로의 말, 희망의 말은 주저하지 말고 하라는 의미입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글은 가지 못하는 곳이 없습니다. 역사라는 시간에서 글은 수천 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글 중에 경전은 인류의 지혜와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 사서삼경, 불경, 꾸란이 있습니다. 제가 선택한 서품성구는 눈물로 씨 뿌리는 사람이 기뻐하며 곡식을 얻으리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수고한 사람의 노고를 잊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정했습니다. 뿌리지 않고 거두려는 것은 욕심이라는 생각에서 정했습니다. “인생삼락과 사단칠정은 유교의 가르침입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말은 불교의 깨우침입니다. “가장 완성된 인간이란 이웃을 두루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 이웃이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는 이슬람의 지혜입니다. 소위 악플이라는 글로 선한 마음에 상처를 주기보다는 선플이라는 글로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LA 레지오 피정을 다녀왔습니다. ‘생면부지(生面不知)’인 형제님이 제게 인사하였습니다. 매일 저의 묵상을 읽는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LA에 피정 강의를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형제님은 아내와 함께 왔고 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글은 쓰는 사람의 인격을 드러냅니다. 글은 쓰는 사람의 철학을 드러냅니다. 인류가 문명과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도 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설법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것도 예수님의 말과 부처님의 말을 기록한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뉴욕의 지하철에는 없지만 서울의 지하철에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옮겨 놓은 글입니다. 지하철이 떠났어도 다음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글을 읽는 것은 기쁨입니다. 예전에 읽었던 글인데 지금도 생각나는 글을 나누고 싶습니다. “늦었다고 원망하지 말라. 그래야 하늘을 보고, 뺨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춤추는 꽃을 볼 수 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는다.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쓰레기통을 비우듯이 욕심과 욕망을 버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행복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런 행복을 말하고 싶습니다. “행복하여라! 코로나 바이러스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 발전과 성장이 모든 것이 아님을 알았을 겁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음을 알았을 겁니다. 행복하여라! 암인 줄 알았는데 오진이었음을 알게 된 사람들, 하루하루가 참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을 겁니다. 행복하여라! 오늘 새벽에 눈을 뜬 사람들,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이 그토록 원하던 하루였습니다. 행복하여라! 신앙을 가진 사람들, 이 세상에서 이미 하느님나라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월요일 아침입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여러분이 행복선언을 하신다면 무슨 이야기를 하시겠는지요? 예수님의 행복선언과 여러분의 행복선언을 한번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점이 비슷한지, 어떤 점이 다른지도 알아보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행복의 기준은 비움, 나눔, 희생, 봉사, 평화, 가난입니다. 이렇게 살면 세상에 채울 것은 적어지지만 하늘나라에 많은 것들을 채울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초의 불을 다른 이웃의 초에 옮겨 주어도 내 초는 잃은 것이 없지만 세상은 더 밝아지듯이 우리의 희생, 나눔, 헌신, 비움은 우리를 영적으로 더욱 풍요롭게 해 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그만큼 더 환해지고 밝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사라지고 말 것을 채우기 위해서 애쓰는 것도 필요하지만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들을 채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한 주간되시기 바랍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신다.”


2. 이영근 신부님 복음 묵상

 

230611.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요한 6,51)

 
오늘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입니다. 우리를 위해 내어놓으신 당신의 몸과 피, 그 크신 사랑과 신비를 되새기는 날입니다. 이제 우리는 곧 당신 몸과 피를 우리의 양식으로 내어준 그 크신 사랑을 먹을 것입니다. 그토록 아름답고 거룩한 사랑을 마실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광야에서 하느님께서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는 이야기를 두 번에 걸쳐 반복해 들려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신명 8,3)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주님께서는 여전히 당신의 몸과 말씀으로 우리를 양육하고 계심을 알려줍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코린 10,17)라고 선포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도 형제들과도 한 몸입니다. 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일인지요! 찬미하고 찬양해야 할 일인지요!
 
오늘 <복음>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요한 6,51) 
 
참으로, 어마어마한 말마디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라고 하십니다. 단지 “내려온 빵”인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줄 빵”이이라고 하시면서, 그 빵은 바로 “당신의 살”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세상이 이 빵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세상에 생명을 줄 빵은 그 빵이 되기에 앞서, 밀이 바수어져 물과 함께 반죽이 되듯, 그렇게 부서지고 쪼개지고 피 흘리려야만 했습니다. 그래야만 “빵”이 될 수 있는 까닭이었습니다. 그래야만 “참된 양식, 참된 음료”가 될 수 있는 까닭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양식은 결코 우리가 획득하여 얻은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주셔서 받은 것입니다. 은총입니다. 당신을 내어주시는 사랑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빵”과 “살”과 “생명”입니다. 이는 같은 지평에 자리 잡은 인간 존재 자체를 의미합니다. 한편, 오늘 <복음>에서 주목할 수 있는 단어는 51절고 58절에 나오는 “하늘에서 내려 온”이라는 표현입니다. 이는 인간 존재와 그 존재양식이 가 닿을 수 없는 신적인 차원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늘에서 내려온 빵”인 예수님의 자기 계시는 인간 존재와 존재양식 모두를 신적차원으로 받아들이는 말씀입니다. 곧 하늘의 몸과 땅의 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께서는 쪼개진 빵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리고 쪼개진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요한 6,54)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신적 생명을 “먹고 마셔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뜻을 세 가지로 알아들어 봅니다.
 
<첫째>는 당신께서 ‘생명의 밥이요, 양식’임을 말해줍니다. 이를 <제1독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지 못하고 하느님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씀을 따라야 산다.”(신명 8,3)
 
<둘째>는 ‘예수님과의 사귐’을 말해줍니다. 이를 <제2독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기리는 찬양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와의 사귐이요,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과의 사귐이 아니겠습니까?”(1고린 10,16)
 
<셋째>는 그분의 ‘현존 안에 머물음’을 말해줍니다. 이를 <복음>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이는 내 안에 머물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문다.”(요한 6,56)

그리고 이 모두는 ‘빵과 피를 받아먹고 마시는 이’ 안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양식이 되고,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시며, 우리 안에 머물며, 한 몸이 되어 주십니다. 당신의 ‘신적 생명’을 우리에게 선사하십니다. 곧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증여하십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살은 우리의 살이 되고, 당신의 피는 우리의 피가 됩니다. 갈라지고 패인 우리 가슴 골골에 당신의 피가 흐르게 된 것입니다. 용서와 화해의 피, 구원과 생명의 피가 흐르게 된 것입니다. 이 크신 사랑에, 우리의 가슴은 벅차오릅니다.
 
잠시 후면, 우리는 “아멘”이라는 응답과 함께 예수님의 몸과 피를 영할 것입니다. 이는 곧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살겠다.’는 응답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몸’은 ‘인간관계’, 곧 ‘사랑의 사귐과 친교’를 말합니다. 그리고 ‘피’는 ‘생명’, 곧 ‘일치와 유대’를 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몸’에서 친교와 사귐으로 관계 맺음을 배워야하고, ‘예수님의 피’에서 내어줌으로 유대와 일치를 배워야할 일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요한 6,57)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건네주신 당신의 성체성혈을 먹고 마시는 우리는 예수님이 지니셨던 그 사랑과 생명을 살게 됩니다. 이웃과 형제들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어 살게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

주님!
당신은 제 안에 머무르되 저를 장악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제게 먹혀 사라짐으로 제 안에 살아계십니다.
당신 안에 저를 허용하시되 저를 가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숨결에 태워 드높게 날게 하십니다.
오늘, 제가 모든 것을 내어주고 그믐달처럼 자신을 감추신 그 오묘함과 놀라움으로, 

바람 부는 대로 흘러 다니는 그 가볍고 그윽한 당신 사랑의 숨결이 되게 하소서! 아멘.


3.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예닮의 여정

-사랑의 성체성사의 은총-

 

어제 내린 많은 비로 우렁차게 흐르는 불암산 계곡 찬미의 물소리가 흡사 오늘 대축일을 경축하는듯 합니다.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절정인 오늘 대축일입니다. 24절까지 이르는 긴 성체송가가 생명의 빵으로 오시는 하느님 사랑의 결정적 표현인 주님의 성체에 얼마나 감격해 있는지 절절히 마음에 와닿습니다. 아름다운 마지막 23-24절을 인용합니다.

 

“23.참된음식 착한목자 주예수님 저희에게 크신자비 베푸소서.

 저희먹여 기르시고 생명의땅 이끄시어 영생행복 보이소서.

 

 24.전지전능 주예수님 이세상에 죽을인생 저세상에 들이시어,

 하늘시민 되게하고 주님밥상 함께앉는 상속자로 만드소서.”

 

얼마나 고마운 사랑의 참된음식 성체성사인지 구구절절 감동입니다. 그대로 성체성사 미사의 은총입니다. 아침성무일도때 흥겹게 부른 후렴도 긴 여운으로 남아있습니다.

 

“당신백성을 천사들의 음식으로 배불리셨고, 하늘의 빵을 그들에게 주셨도다. 알렐루야.”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로다. 이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리라.”

 

하늘의 빵, 살아있는 빵, 천사들의 양식인 성체를 모시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빵대신 밥으로 표현하면 우리에게 더 가까이 와닿는 기분입니다. “밥으로 오시는 하느님” 제가 사제서품 받던 해, 그러니까 34년전 41세 부제때  오늘 지금 여기서 1989년 5월28일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시 강론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앞부분만 다시 그대로 인용합니다.

 

-속담에서 말합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사흘 굶어 담 아니 넘을 놈 없다”, 밥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실감나게 하는 말들입니다. 코헬렛의 저자는 말합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수고한 보람으로 먹고 마시며 즐겁게 지낼 일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선물이다.”

 

아주 현실적인 적나라한 고백이지만 마음 한구석 허전해 짐은 어쩔수 없습니다. 과연 먹고 마시며 즐김으로 나의 영적 갈망을 채울 수 있을까요? 불교의 스님들은 식사전 오관게(五觀偈) 음식공양 기도문입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道業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먹고 마시는 행위는 공양이란 명칭으로 그 품격이 한결 높아지지만 그래도 미진한 느낌입니다. 삶의 감격과 기쁨이 미미하게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지하 시인의 고백을 들어봅시다.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입으로 들어 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아아 밥은

모두 서로 나눠 먹는 것.”

 

이 보다 성체성사의 핵심을 꿰뚫코 있는 글은 없다며 한국의 세계적 민중신학자 고故 안병무 박사가 극찬極讚했던 시입니다. 밥이 하늘이라는 폭탄과 같은 선언으로 기존 종교관념을 송두리째 뒤집어 버립니다. 먹고 마시는 행위는 숙명적인 인간한계를 드러내는 동물적 행위도, 육신을 지탱하는 약도 아닌 바로 하늘을, 하늘이신 주님을 모시는 거룩한 행위, 성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함께 나눠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이 34년전 성체성혈 대축일 강론 서두 내용입니다. 그래서 농사農事와 더불어 식사食事요 성사聖事입니다. 성사중의 성사가 바로 성체성사입니다. 저는 성체성사를 네 측면에 걸쳐 묵상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에 사랑의 성체성사의 은총이 얼마나 절대적인지 깨닫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성체성사 미사를 사랑합니다.

 

첫째, 광야 여정중의 성사입니다.

신명기 모세의 말씀은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것을 기억하여라.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너희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특히 강조되는 것이 기억하는 것이요 잊지 않는 것입니다. 여전히 광야 여정중인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하느님 말씀으로 격퇴하셨습니다. 똑같은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 성체와 말씀의 만나로 우리를 살리시고 천상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을 계속하게 하십니다. 광야 여정중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하는, 날로 예수님을 닮게 하는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성체성사에 참여할 때 마다 구원의 기억을 새롭게 하는 우리들이요 광야여정의 인도자이신 주님을 새롭게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야 옛 탈출기의 백성들처럼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기 때문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내용을 다시 나눕니다. 광야 인생 여정의 치열한 영적전쟁중 우리는 세 부류의 인생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인이냐, 괴물이냐, 폐인이냐 셋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정말 심신이, 영육이 온전한 사람 드문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너무 아프고 병든 사람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우선적인 것이 정신 건강, 영혼 건강, 마음 건강입니다. 참으로 성체성사의 은총으로 주님을 닮아갈 때는 누구나 건강한 정신의 성인이지만 주님을 떠나 세상 우상들에 종되어 살 때, 또 세상 맛에 중독되어 살 때는 여지없이 괴물이요 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영혼 건강의 성인이, 참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답은 단 하나 평생의 광야 여정중 성체성사를 선택하여 훈련하듯 자주 성체와 말씀의 만나를 모시는 것을 습관화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구원에 이르는 거룩한 선택, 거룩한 훈련, 거룩한 습관이 거룩한 미사참례입니다. 비록 미사를 못하더라도 날마다 기도와 말씀의 생명의 빵, 참 만나인 주님을 모시기 바랍니다. 이래야 영혼 건강의 성인이 되고 영적전쟁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일치의 성사입니다.

하느님이 원하는바 일치요 사탄이 원하는바 분열입니다. 죄중의 죄가 분열입니다. 참으로 분열의 치유도, 영적 건강도 주님과의 일치에서 가능합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아갈 때 공동체의 일치요 내 자신의 내적일치입니다. 서로 좋아서, 마음이 맞아서 사는 우리들이 아니라 바라보는 방향, 바라보는 중심, 주님이 같아야 일치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획일적인 일치가 아니라 다양성의 일치입니다. 참으로 자유롭게, 행복하게, 자유롭게, 풍요롭게 하는 주님과 일치의 삶입니다. 바로 이런 일치의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성체성사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옛 만나를 먹은 백성들은 모두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 온 이 성체의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삽니다. 성체의 힘, 예수님의 힘, 하느님의 힘으로 살게 하는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참으로 공동체의 일치, 참나의 내적일치의 비결도 단 하나 성체성사를 통한 주님과의 일치뿐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삶의 살아 있는 중심인 주님을 떠난 일치의 삶은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끊임없이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정화하시고 성화하시며, 날로 주님과 일치를 깊게하는, 주님을 닮아가게 하는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셋째, 나눔의 성사입니다.

바로 성체성사를 생활화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정신 번쩍나게 합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빵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나누기 때문입니다.”

 

아, 모두가 한몸의 지체들인 형제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하나가 또 하나의 예수님이요 살아있는 성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상에서 서로 나누며 섬길 때 깊어지는 주님과의 일치, 공동체의 일치, 참나와의 일치라는 것입니다. 일상에서의 사랑의 나눔과 섬김의 삶을 통해 완성되는 성체성사임을 깨닫습니다.

 

넷째, 천상 영광을 앞당겨 사는 성사입니다.

교회는 옛 기도문에서 성찬의 신비에 대해 이렇게 환호합니다. “오 거룩한 잔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영하며, 그분의 수난을 기념하고, 은총으로 가득 차며, 다가올 영광의 보증을 받는도다.” 그러니 성찬례 미사시간은 “주님 파스카의 기념이고, 우리가 제대에서 받아 모시는 성체를 통하여 하늘의 온갖 은총과 축복을 가득히 받으므로 천상의 영광을, 천상의 맛을 미리 맛보는 시간”입니다(가톨릭교리서1402).

 

참으로 정의가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이 큰 희망에 대하여 성찬례보다 더 확실한 보증과 분명한 징표는 없습니다. 안티오키아 이냐시오는 “실로 이 파스카 신비인 미사가 거행될 때마다, 우리의 구원 활동이 이루어지고, 영생을 위한 약이요 죽지 않게 하는 해독제이며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하는 빵을 나누어 먹는다.”말합니다(가톨릭 교리서1405).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성가 177장도 이런 천상의 기쁨을 앞당겨 노래합니다. 만나를 먹은 백성들은 다 죽었을지라도 이 생명의 빵을 먹는 이들을 영원히 살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참 기쁨이 넘치는 그곳 내 주님 계신 곳

 내 모든 근심 슬픔을 다 위로하여 주시네.

 약속한 땅이여 오 아름다운 대지여

 영원히 머무를 곳 젖과 꿀이 흐르는 그곳

 이빵을 먹는 자는 그 복지 얻으리.

 아 영원한 생명의 빵은 내 주의 몸이라.”(177장 2절)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참 좋은 선물이 성체성사, 바로 이 거룩한 미사입니다. 말그대로 사랑의 성체성사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성체성사의 신비입니다. 바로 날마다의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이 우리 모두 날로 주님을 닮아가게 하고 참나의 성인이 되어 영원한 삶을 살게 합니다. 저절로 나오는 시편의 고백입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나이까

 그 종락 무엇이기에 따뜻이 돌보시나이까

 천사들 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주셨나이다."(시편8,5-6). 아멘.


[6/12(월)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되새김 구절]

 

1.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신다.”(조재형 신부)

 

2.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

주님!
당신은 제 안에 머무르되 저를 장악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제게 먹혀 사라짐으로 제 안에 살아계십니다.
당신 안에 저를 허용하시되 저를 가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숨결에 태워 드높게 날게 하십니다.
오늘, 제가 모든 것을 내어주고 그믐달처럼 자신을 감추신 그 오묘함과 놀라움으로, 

바람 부는 대로 흘러 다니는 그 가볍고 그윽한 당신 사랑의 숨결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3. 김지하 시인의 고백을 들어봅시다.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입으로 들어 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아아 밥은

모두 서로 나눠 먹는 것.”(이수철 신부)

 

[6/12(월)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제170일 기도]

 

하느님! 임마누엘 하느님!

밥이 하늘입니다.

밥을 나눠 먹게 하소서.

아멘.

 

-2023년 6월12일(월) 6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