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6월 29일 목요일[(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신부님 강론

마르티나 2023. 6. 29. 07:30

[매묵]2023년 6월 29일 목요일[(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신부님 강론

 

오늘 전례

베드로 사도는, 이스라엘 갈릴래아 호수에 인접한 벳사이다 출신으로 본이름은 시몬이다.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어부 생활을 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베드로(반석)로 바꾸시고, 그를 사도단의 으뜸으로 삼으셨다. 복음서에 소개되는 베드로 사도의 모습은 소박하고 단순하다.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여 칭찬받기도 하고, 예수님의 수난을 반대하다가 심한 꾸중을 듣기도 하였다. 로마 교회의 첫 주교로서 첫 번째 교황이기도 한 베드로 사도는, 67년 무렵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다.
바오로 사도는 열두 제자와는 달리 비교적 늦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본디 그리스도교를 열성적으로 박해하던 사람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려고 다마스쿠스로 가던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뒤 유다교에서 개종하여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다.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들이 사는 여러 지역에 교회를 세웠다. 그 공동체들에 보낸 많은 서간이 오늘날 『성경』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67년 무렵 로마에서 참수되었다.

오늘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신앙 고백의 모범이 된 베드로와 신앙의 내용을 밝히 깨우쳐 준 바오로는, 교회의 기초를 놓아 준 사도들입니다. 우리도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를 본받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증언합시다.

입당송

이 사도들은 세상에 사는 동안 자신의 피로 교회를 세웠으며, 주님의 잔을 마시고 하느님의 벗이 되었네.<대영광송>

본기도

하느님,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축제로
오늘 교회가 거룩한 기쁨을 누리게 하셨으니
교회의 기초를 놓아 준 그들의 가르침을
저희가 모든 일에서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헤로데의 손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2,1-11
그 무렵 1 헤로데 임금이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치려고 손을 뻗쳤다.
2 그는 먼저 요한의 형 야고보를 칼로 쳐 죽이게 하고서,
3 유다인들이 그 일로 좋아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아들이게 하였다.
때는 무교절 기간이었다.
4 그는 베드로를 붙잡아 감옥에 가두고
네 명씩 짠 네 개의 경비조에 맡겨 지키게 하였다.
파스카 축제가 끝나면 그를 백성 앞으로 끌어낼 작정이었던 것이다.
5 그리하여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6 헤로데가 베드로를 끌어내려고 하던 그 전날 밤,
베드로는 두 개의 쇠사슬에 묶인 채 두 군사 사이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문 앞에서는 파수병들이 감옥을 지키고 있었다.
7 그런데 갑자기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더니 감방에 빛이 비치는 것이었다.
천사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두드려 깨우면서,
“빨리 일어나라.”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쇠사슬이 떨어져 나갔다.
8 천사가 베드로에게 “허리띠를 매고 신을 신어라.” 하고 이르니
베드로가 그렇게 하였다.
천사가 또 베드로에게 “겉옷을 입고 나를 따라라.” 하고 말하였다.
9 베드로는 따라 나가면서도,
천사가 일으키는 그 일이 실제인 줄 모르고 환시를 보는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10 그들이 첫째 초소와 둘째 초소를 지나 성안으로 통하는 쇠문 앞에 다다르자,
문이 앞에서 저절로 열렸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어떤 거리를 따라 내려갔는데,
천사가 갑자기 그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11 그제야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헤로데의 손에서,
유다 백성이 바라던 그 모든 것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4(33),2-3.4-5.6-7.8-9(◎ 5ㄴ 참조)
◎ 주님은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
○ 나와 함께 주님을 칭송하여라. 우리 모두 그 이름 높이 기리자. 주님을 찾았더니 응답하시고,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
○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
○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 ◎

제2독서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4,6-8.17-18
사랑하는 그대여,
6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7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17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18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마태 16,18 참조
◎ 알렐루야.
○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저승의 세력도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
◎ 알렐루야.

복음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13-19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예물기도

주님,
사도들의 기도에 힘입어 주님께 드리는 이 예물을 받아 주시고
저희가 온전한 믿음으로 이 제사를 봉헌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베드로와 바오로의 사명>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주님께서는 저희가
복된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대축일을 지내며 기뻐하게 하셨으니
베드로는 신앙 고백의 모범이 되고
바오로는 신앙의 내용을 밝히 깨우쳐 주었으며
베드로는 이스라엘의 남은 후손들로 첫 교회를 세우고
바오로는 이민족들의 스승이 되었나이다.
두 사도는 이렇듯 서로 다른 방법으로
모든 민족들을 그리스도의 한 가족으로 모아
함께 그리스도인들의 존경을 받으며
같은 승리의 월계관으로 결합되었나이다.
그러므로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마태 16,16.18 참조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이르셨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의 물음에 여러분은 시몬 베드로처럼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까? 세상을 떠날 때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성찬의 성사로 교회에 활력을 주시어
저희가 언제나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빵을 나누며
주님 사랑 안에 굳게 머물러 한마음 한뜻으로 살게 하소서.
우리 주 …….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어릴 때입니다. 가요계에서는 남진과 나훈아는 팬들의 사랑을 받는 경쟁자였습니다. 남진은 멋진 외모와 시원한 입담으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당시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었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가창력과 춤을 따라하였습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남진의 노래는 님과 함께가 있습니다. 단순하지만 경쾌한 멜로디가 지금도 어깨를 들썩이게 합니다. ‘가슴 아프게, 미워도 다시 한 번 가슴을 찡하게 했던 노래입니다. 80에 가까운 나이이지만 아직도 건강한 모습입니다. 나훈아는 독특한 창법과 구수한 입담으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한국인의 정서와 을 노래하였습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나훈아의 노래는 고향역이 있습니다. 노래의 도입부에 기차소리가 나면서 흘러나오는 그의 노래는 고향을 떠난 이들에게 고향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70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아직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잡초, 무시로, 사랑과 같은 노래는 지금도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남진과 나훈아는 시대를 풍미했던 경쟁자였으며 우리나라 가요계를 풍요롭게 했습니다.

 

어릴 때 정치계에는 김대중과 김영삼이 고난 받는 민중을 대표하는 야당의 정치인이었습니다. 김대중은 3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합니다. 40대 기수론으로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대통령과 선거에서 근소한 표차로 떨어졌습니다. 카랑카랑했던 그의 목소리는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인동초라는 별명처럼 오랜 시간 투옥과 연금의 시기를 거쳤지만 1997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IMF’라는 금융위기를 국민들과 함께 이겨냈습니다. ‘금모으기 운동으로 대한민국은 어려운 시기를 이겨냈습니다. ‘햇볕정책은 그의 대표적인 대북정책이며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은 그 열매였습니다.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그의 말대로 그는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닭의 모가지는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유명한 어록을 남겼습니다. 수려한 외모와 특유의 친화력으로 탄압받던 야당을 이끌었습니다. ‘삼당합당으로 비난을 받았지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간다.’라는 말처럼 1992년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군의 사조직인 하나회를 무력화 하였으며, ‘금융실명제를 실시하였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두 명의 전직대통령을 법정에 세웠습니다. 대한민국 정치계에는 김대중과 김영상이라는 큰 별들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 종교계에는 법정스님과 김수환 추기경님이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는 종교인이었습니다. 법정스님은 무소유라는 책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성장과 발전이라는 바벨탑을 오르려는 사람들에게 참된 깨달음의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깊은 산사에서 한 시대의 죽비가 되었던 법정스님의 글은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소유하려는 삶에서 존재의 삶으로 나가게 하였습니다. 법정스님은 길상사을 개원하면서 김수환 추기경님을 초대하였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도 기꺼이 축하해 주었습니다. 종교는 진리의 목적지가 아니었습니다. 종교는 진리를 향해가는 경유지였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고통 받는 이들과 가난한 이들과 늘 함께 하였습니다. 법정 스님을 명동성당의 대림특강 강사로 초대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이들이 모두 하나 되게 하십시오.”라고 기도하셨던 것처럼 김수환 추기경님은 종교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진리 안에 하나가 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특유의 저음과 깊은 성찰이 묻어나는 말씀은 지금도 기억납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었습니다. 가슴에서 다리로 가는 여행이었습니다.” 한 시대를 따뜻하게 하였던 어른들과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오늘 교회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는 완벽했던 분들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께 야단도 맞았습니다. 주님께서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 사도는 안 됩니다.’라고 했다가 사탄아 물러가라라는 야단을 맞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혀갔을 때, 예수님을 아느냐고 물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배반을 하기도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부족하고, 겁이 많았지만,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있었고, 마침내 교회를 빛내는 천국의 별이 되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사탄아 물러가라!’라는 야단을 맞았었고, 닭이 울기 전에 3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반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베드로 사도보다 더 나쁜 일을 했습니다. 자신의 신념과 종교적인 확신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박해하였고, 잡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박해하는 바오로 사도를 부르셨고, 바오로 사도는 이제 예수님을 박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전하는 사도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3차례에 걸쳐 선교 여행을 떠났고, 많은 사람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대하고 박해하는 사람까지도 초대하셨고, 구원 사업의 협력자가 되도록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사도의 허물과 잘못을 묻지 않으셨습니다. 두 사도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에게는 천국의 열쇠를 맡기셨습니다. 교회의 반석이 되게 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에게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의 지식과 지혜는 초대교회의 신학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부족함이 있음에도 예수님께서는 두 사도를 교회의 기둥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느님 앞에는 너무 빠른 것도, 너무 느린 것도 없습니다. 천년도 하느님 앞에는 지나간 어제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 앞에는 완벽한 것도, 똑똑한 것도, 재능이 있는 것도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길가의 돌 하나로도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많은 허물과 결함이 있습니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도 부족함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가능성과 우리의 미래를 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베드로 사도가 흘렸던 참회의 눈물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오로 사도가 보여주었던 새로운 삶으로의 회개입니다.


  • 2. 전삼용 요셉신부 강론
오늘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다 순교하였습니다. 성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아볼 수 있었기에 하늘 나라의 열쇠를 가지게 되었고 성 바오로는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오늘은 복음 선포와 두려움의 관계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장래가 유망한 어떤 여자 피아니스트가 세계 최고의 스승이 개인 제자를 뽑는다는 말에 콩쿠르에 참여하였습니다. 그의 차례가 되어 안으로 들어가 떨리는 마음으로 연주했는데 거장의 평가는 박했습니다. 그녀는 실망하여 그날 부로 피아노를 접었습니다. 결혼하여 가정주부로 살아가던 중 그때의 그 거장이 자신의 도시에서 연주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거장은 그녀를 대번에 그날 연주를 가장 잘했던 학생으로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더욱 화가 나, 그러면 그때 왜 그렇게 박한 평가를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거장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말을 합니다. 그 말을 견뎌내지 못하면 언젠가 다른 어려움이 와도 견뎌내지 못합니다. 당신이 피아노를 포기한 건 내 탓이 아닙니다. 그러한 시련을 이겨낼 준비가 없었던 당신의 탓입니다.”
    천재는 수많은 시련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시련을 끊임없이 이겨낼 에너지를 지니는 일입니다. 이 이야기의 여자 피아니스트는 그 에너지를 위대한 스승에게서 얻으려 하였습니다. 공갈 젖꼭지에서 어떤 에너지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공갈 젖꼭지’를 잃을까 두려워합니다. 엄마의 젖이 부족할 때 그러한 집착과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말로 가르침을 시작하십니다. 내가 사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에너지를 사람들로부터 얻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 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28)고 하십니다.
    우리는 마치 ‘마차’와 같습니다. 다만 이 마차가 저절로 생겨났는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만약 저절로 생겨났다고 믿으면 그 마차에 누구를 태울 것인지는 내가 결정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 손님을 잃을까 두려워하게 됩니다. 내가 태운 사람이 차비를 낼지, 안 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반면 내가 만들어졌다고 믿으면 나를 만든 이나 그가 원하는 사람을 태우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어느 날 프로이센의 왕 프레데릭은 신하들과 같이 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비웃는 농담을 하였습니다. 그때 본질랜드 장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왕 폐하! 대왕께서는 제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전쟁에서 대왕을 위하여 서른여덟 번 싸워서 이긴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제 저는 나이가 들어 머지않아 대왕이 비웃으시는 저의 구세주 그리스도를 만나 뵈러 가게 됩니다. 저는 대왕보다 예수 그리스도께 의지해야 함을 압니다. 폐하, 소신은 이제 물러가려 합니다.” 
다들 장군을 즉시 처형하라는 왕의 명령이 떨어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왕이 일어나 떨리는 목소리로 본질랜드에게 사과하였습니다. 
 
    나를 만드신 분이 주님이시기에 주님을 내 마차에 태운다면 다른 이들은 두렵지 않습니다. 그들이 나의 생명을 좌지우지하지 못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그들에게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두려움 없음은 주님께서 계심을 드러내는 가장 큰 증언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마태 10,32)라고 하십니다. 
    바오로와 실라스가 선교할 당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지진이 일어나 쇠사슬이 풀리고 감옥 문이 열린 일이 있었습니다(사도 16,16-40 참조). 그런데 그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도망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간수가 문이 열려 있는 감옥을 보고 사람들이 도망쳤을 것으로 생각하여 자결하려고 합니다. 그때 바오로는 자신들이 안에 있으니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간수는 도망갈 기회가 있었는데도 여전히 감옥에 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크게 감동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자기 가족들이 신앙을 받아들여 세례를 받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 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2티모 4,17)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음이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참 복음이었습니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나의 마차에 나를 만드신 주님을 모시고 있기만 하면 됩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628.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너희는 그들이 맺는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마태 7,15)
 
 
오늘 <복음>의 앞 장면인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과 넓은 문’ ‘비좁은 길과 널찍한 길’을 대조시키면서,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태 7,13)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마태 7,15)
 
사실, 예언자들은 하느님 백성들이 세상의 유혹에 빠져 하느님을 배반했을 때, 그들의 잘못을 질책하고 하느님을 의식하게 함으로써 백성들이 회개하여 하느님 앞에 바로 서도록 자극했습니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예보나 윤리 생활에 대한 교훈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렸고, 진리에 대한 설명이나 지식이 아니라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양’과 ‘이리’의 표상으로 대비시키면서 참 예언자인지 거짓 예언자를 그별하십니다. 그리고 ‘거짓 예언자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오지만 속은 게걸든 이리들’이니 겉의 옷차림을 보지 말고 속마음을 보라 하시면서, 거짓 예언자를 알아보는 기준을 ‘행실로 맺는 열매’를 통해 설명하십니다.
 
“너희는 그들이 맺는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마태 7,15)
 
사실,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가리는 ‘양과 이리’, ‘나쁜 열매와 좋은 열매’의 표상은 바로 예수님 자신을 드러내줍니다. 당신이 ‘참된 목자’로서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셨고, 또한 ‘구원의 열매’라는 좋은 열매를 맺으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마태오복음>에서 예수님을 새로운 모세로서 “참 예언자”로 제시하고 있는 맥락에서 보면,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마태 7,15)라는 말씀은 곧 “참 예언자”이신 예수님 당신을 따르라는 반어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곧 저희의 삶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나는 참 예언자인지, 나는 좋은 열매를 맺고 있는지, 혹 우리의 삶이 열매를 맺기보다 풍성한 잎이나 아름다운 꽃으로 치장되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헛열매를 맺고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사실, 저는 거짓 예언자이고 싶지는 않지만, 거짓 예언자처럼 겉모양을 꾸미고 있을 때도 많습니다. 저는 참된 예언자는 아니지만, 참된 예언자 행세는 곧잘 합니다. 제 자신의 한심한 모습을 들여다보며, 그래도 여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하여 오늘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자신의 화려함을 버릴 때 열매는 맺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마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맺는 열매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열매를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자신이 따 먹으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실은 바로 그래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데도 말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제 삶이 당신 진리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때깔만 그럴싸한 열매가 아니라, 행동하는 사랑으로 속이 꽉 찬, 좋은 열매가 되게 하소서!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그들이 맺는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 볼 수 있다.”(마태 7,17)
 
주님!
잘려 불태워지기 전에, 가지를 자를 줄을 알게 하소서!
위선의 껍데기 옷을 벗고, 기만의 숨겨둔 살을 도려내게 하소서!
치장하여 꽃을 피우기보다, 행실로 열매 맺게 하소서!
그럴싸하게 때깔을 꾸미기보다, 속이 꽉 찬 좋은 열매를 맺게 하소서!
늘 당신께 붙어 양분을 얻고, 당신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성화聖化되십시오!”

-성덕聖德의 여정- 

 

모든 것이 지나갑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자연속에서 살다보니 자연이 가르쳐주는 진리입니다. 집무실옆 꽃길이라 칭했던 애기똥풀꽃도 완전히 사라졌고, 수도원 성전 입구 천국문이라 칭했던 아치형을 싸고 있던 넝쿨 장미꽃도 시들어 사라졌고, 꿈처럼 사랑으로 피어났던 수녀원 담장의 장미꽃들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젊음도 인생도 그러합니다. 정주의 삶을 살다보니 모든 변화가 눈에 보입니다. 이렇게 살다보면 남은 삶도 금방일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짧은 인생 최대 화두일 것이며 우리 믿는 이들에게 단연코 주님을 닮아 참내가 되어가는 성덕의 여정뿐임을 깨닫습니다. 하여 요즘 제가 자주 바치는 인사말은 수도형제에게 배운 “성화되십시오!”입니다. 우리의 살 날이 연장되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바, 부단한 회개를 통해 성화되어가는 것 하나일 것입니다.

 

오늘은 2세기 활약하다 순교한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성 폴리카르포의 뒤를 잇는 사도교부입니다. 이름 뜻도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주님에게서 오는 평화” 참 멋집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작년 2022년 그리스도인 일치주간 중인 1월21일 리옹의 이레네오 성인을 ‘일치의 학자(Doctor unitatis)’로 공식 선언했으며 이로써 이레네오 성인은 교회의 37번째 ‘학자’가 됩니다.

 

무려 사후 1822년 후입니다. 교황은 이레네오 성인을 교회학자로 선언하는 교령에서 “위대한 스승의 교리를 통해 더욱더 많은 주님의 제자들이 완전한 일치를 향해 걷는 여정을 만들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리옹의 성 이레네오는 동방에서 태어났고 서방에서 주교 직무를 수행했다”면서 “성인은 동방과 서방의 그리스도인들을 영적, 신학적으로 이어주는 다리가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레네오 성인은 2세기 주교로 가톨릭 신자들과 정교회 신자들 모두로부터 존경을 받아왔으며, 당시 그는 영지주의 이단사상에 맞서 주님의 전사로서 치열한 싸움중에 초기교회의 정통신앙을 확립한 대표적 교부로, “가톨릭교회의 수호자였습니다.”

 

이런 성인들이야 말로 가톨릭교회의 살아 있는 보물로 우리 삶의 좌표가 되어 성덕의 여정에 무한한 영감과 힘의 원천이 됩니다. 주님은 성인들을 기억, 기념할뿐 아니라 우리 모두 성인이 되라고 우리를 격려합니다. 사실 성인이 되는 목표는 옛 동방과 서방이 일치합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조선시대 대학자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이 궁극으로 목표했던 공부도 성인이 되는 공부였습니다.

 

참 사람되기 힘든 세상입니다. 병든 영혼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요즘 강조하는바 정신건강, 영혼건강, 마음건강의 참사람, 성인입니다. 사람은 많은데 사람은 없다고 참으로 건강한 영혼의 사람은 없다고 많은 이들이 개탄합니다. 

 

교회학자는 교의로써 교회에 큰 기여를 한 교회내의 학자들에게 부여되는 칭호로, ‘생활의 성성聖性’, ‘탁월한 학식’, 그리고 ‘교회에 의한 선포’ 등 세가지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그러니 교회학자는 성덕의 사람, 학식의 사람, 교회의 사람으로 우리에게는 귀한 가르침이 됩니다. 위 세 요소에 많이 접근하여 성인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고, 공부해야 하고, 교회를 사랑해야 참 성인이 될 수 있음을 봅니다.

 

어제 31년만에 만난, 신학교 시절 호감을 지녔던 후배 프라도 사제 정석수 유스티노 도반과의 만남이 어제의 각별한 선물이었습니다. 사제품을 앞두고 1992년 여기서 피정을 하고 그해 서품을 받았으니 만31년만에 만난 것이니 이 또한 기적입니다. 돌“석石”에 물“수水”자라 쓰니 한 수도형제는 “암반수”라는 기막힌 별명도 주었습니다. 저는 “오늘이 신부님의 수도원 방문 축일”이라며 덕담도 드렸습니다. 면담성사중 프라도 영성도 배웠습니다.

 

구유에 계신 주님을 섬김, 십자가의 주님 사랑, 감실안의 주님 사랑의 나눔으로, 즉 구유의 섬김, 십자가의 사랑, 감실의 나눔으로 요약되는 삶과 영성으로 이대로 살면 정말 가난하고 겸손하게 사셨던 주님과의 일치로 순수와 열정의 참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나눈 성덕의 삶과는 너무 다른 오늘 복음의 거짓 예언자들의 삶입니다.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든 이리들이다.”

 

오늘날로 보면 흡사 양심이 없이 뻔뻔한 사이코패스, 소시어패스에 속했던 부류들 같습니다. 디다케 11장에 나오는 거짓 예언자의 식별기준이 재미있습니다. 교도소에서 가장 사람 취급 못받고 무시되는 부류의 사람들이 전형적 소시어패스 사기꾼들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들도 정말 주님을 열렬히, 항구히 사랑한다면 사이코패스도, 소시오패스도 치유되리라 믿습니다.

 

“사도는 하루 동안만 머물러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이틀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사흘이나 머물면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사도가 떠날 때는 다음 머물 곳을 찾을 때까지 필요한 빵만 가져야 합니다. 만일 돈을 요구한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영으로 말한다고 다 예언자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생활태도을 지녀야만 예언자입니다. 진리를 가르치는 자라도 진리를 행하지 않는다면 거짓 예언자입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압니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요 나쁜 나무에서 나쁜 열매입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둘 수 없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질 거라 합니다. 그러니 사람이, 마음이 순수하고 좋아야 생각도 글도 말도 행동도 순수하고 좋습니다. 

 

우선적이 것이 부단한 기도와 회개를 통한 마음의 정화로 겸손과 온유, 자비와 지혜, 순수와 열정의 참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비록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의 타고난 기질이 있더라도 이를 깨달아 하느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치열하고 가열찬 선행의 노력을 다할 때 주님은 이런 기질도 은총으로 바꿔주실 것입니다. 착한 마음에서 선행이지만 부단한 가열찬 선행을 통한 나쁜 마음의 변화도 은총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하느님을 떠나, 예수님을 떠나 참 사람이 되는 것은 요원합니다. 필시 변질 중독 부패되어 괴물도 되고 폐인도 될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알아가면서 참나의 성인이 되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새삼 날로 삶의 목표이자 방향이요, 삶의 중심이자 의미이신 주님과 깊어지는 우정의 관계가 절대적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제1독서 하느님의 벗이라는 아브람과 하느님의 관계가 그 모범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아브람을 신뢰하고 사랑했는지 다음 대목이 이를 입증합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하늘을 쳐다 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에게 부족한 믿음을 도와 주시어 주님과의 우정을 북돋아 주시어 성덕의 여정에 큰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


[6/29(목)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되새김 구절]

1.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많은 허물과 결함이 있습니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도 부족함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가능성과 우리의 미래를 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베드로 사도가 흘렸던 참회의 눈물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오로 사도가 보여주었던 새로운 삶으로의 회개입니다.(조명연 신부)

 

2.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 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2티모 4,17)라고 말합니다. (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그들이 맺는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 볼 수 있다.”(마태 7,17)
 
주님!
잘려 불태워지기 전에, 가지를 자를 줄을 알게 하소서!
위선의 껍데기 옷을 벗고, 기만의 숨겨둔 살을 도려내게 하소서!
치장하여 꽃을 피우기보다, 행실로 열매 맺게 하소서!
그럴싸하게 때깔을 꾸미기보다, 속이 꽉 찬 좋은 열매를 맺게 하소서!
늘 당신께 붙어 양분을 얻고, 당신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구유의 섬김, 십자가의 사랑, 감실의 나눔으로 요약되는 삶과 영성으로 이대로 살면 정말 가난하고 겸손하게 사셨던 주님과의 일치로 순수와 열정의 참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이수철 신부)

 

[6/29(목)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제 187일 기도]

 

하느님! 임마누엘 하느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에...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를 이끄신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심에 감사합니다.

무한하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감사합니다.

 

- 2023년 6월29일(목) 6시4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