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7월 14일 금요일[(녹)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마르티나 2023. 7. 14. 08:01

[매묵]2023년 7월 14일 금요일[(녹)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오늘 전례

[백] 성 가밀로 데 렐리스 사제

입당송

시편 48(47),10-11
하느님, 저희가 당신의 성전에서 당신의 자애를 생각하나이다. 하느님, 당신을 찬양하는 소리, 당신 이름처럼 땅끝까지 울려 퍼지나이다. 당신 오른손에는 의로움이 넘치나이다.

본기도

하느님,
타락한 세상을 성자의 수난으로 다시 일으키셨으니
저희에게 파스카의 기쁨을 주시어
죄의 억압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내가 너의 얼굴을 보았으니, 기꺼이 죽을 수 있겠구나.>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46,1-7.28-30
그 무렵 1 이스라엘은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을 거느리고 길을 떠났다.
그는 브에르 세바에 이르러 자기 아버지 이사악의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다.
2 하느님께서 밤의 환시 중에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야곱아, 야곱아!” 하고 부르시자,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그가 대답하였다.
3 그러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네 아버지의 하느님이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곳에서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4 나도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가겠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서 너를 다시 데리고 올라오겠다.
요셉의 손이 네 눈을 감겨 줄 것이다.”
5 그리하여 야곱은 브에르 세바를 떠났다.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아버지를 태워 오라고
파라오가 보낸 수레들에 아버지 야곱과 아이들과 아내들을 태웠다.
6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얻은 가축과 재산을 가지고 이집트로 들어갔다.
야곱과 그의 모든 자손이 함께 들어갔다.
7 야곱은 아들과 손자, 딸과 손녀,
곧 그의 모든 자손을 거느리고 이집트로 들어갔다.
28 이스라엘은 자기보다 앞서 유다를 요셉에게 보내어, 고센으로 오게 하였다.
그런 다음 그들은 고센 지방에 이르렀다.
29 요셉은 자기 병거를 준비시켜, 아버지 이스라엘을 만나러 고센으로 올라갔다.
요셉은 그를 보자 목을 껴안았다.
목을 껴안은 채 한참 울었다.
30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렇게 너의 얼굴을 보고 네가 살아 있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는 기꺼이 죽을 수 있겠구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7(36),3-4.18-19.27-28.39-40(◎ 39ㄱ)
◎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네.
○ 주님을 믿으며 좋은 일 하고, 이 땅에 살며 신의를 지켜라.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여라. 네 마음이 청하는 대로 주시리라. ◎
○ 주님이 흠 없는 이들의 삶을 아시니, 그들의 소유는 길이길이 남으리라. 환난의 때에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기근이 닥쳐와도 굶주리지 않으리라. ◎
○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여라. 그러면 너는 길이 살리라. 주님은 올바른 것을 사랑하시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 버리지 않으신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받지만, 악인의 자손은 멸망하리라. ◎
○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고, 그분은 어려울 때 피신처가 되신다. 의인들이 주님께 몸을 숨겼으니, 그분은 그들을 도와 구하시고, 악인에게서 빼내 구원하시리라. ◎

복음 환호송

요한 16,13; 14,26
◎ 알렐루야.
○ 진리의 영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끄시어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시리라.
◎ 알렐루야.

복음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6-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23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께 바치는 이 제사로 저희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영원한 생명에 날마다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4(33),9 참조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주님께 바라는 사람!

<또는>

마태 11,28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성사의 큰 은혜를 가득히 받고 비오니
구원의 은총을 풍부히 내리시어
저희가 끝없이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우리 주 …….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르클린 한인 공동체와 야외미사를 다녀왔습니다. 야외미사가 잘 진행되기 위해서 중요한 것들이 있는데 그 중에 날씨도 큰 몫을 합니다. 일주일 전부터 일기예보를 보았는데  소식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일기예보의 예측대신에 화창한 날씨를 주셨습니다. 야외미사에 온 교우들도 모두 환한 모습으로 미사가 있는 공원으로 모였습니다. 작년에도 화창한 날씨를 주셨는데 올해에도 하느님께서는 좋은 날씨를 주셨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50%는 이미 성공한 셈입니다. 미사를 마친 후 각 구역별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우리는 LA갈비와 삼겹살로 모두가 풍족히 먹고도 남았습니다. 각 구역마다 전을 부치고, 맛있는 밑반찬을 준비해 왔습니다. 저는 구역마다 돌아다니면서 준비한 음식을 함께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의 청을 받아들여서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혼인잔치는 더욱 풍요로워졌습니다. 저는 소주에 맥주를 섞어서 소맥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각 구역별로 신나는 노래잔치를 하였고, 야외미사의 꽃인 보물찾기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밭에 보물이 숨겨져 있는 것과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교우들은 공원에 숨겨진 보물을 찾으면서 무척이나 기뻐하였습니다. 성당에서 마련한 기념품인 수건과 우산을 나눠드리고 야외미사는 내년을 기약하며 마무리되었습니다.

 

작년과 달리 이번 야외미사에는 10명이 넘는 청년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마침 그날이 생일인 친구가 있었고, 지난번 종신부제서품 축하식에 함께 했던 청년들이 이번에는 생일축하를 한다며 모였습니다. 이제 막 결혼한 청년도 왔고, 결혼을 앞둔 청년도 왔습니다. 고백성사를 청한 청년들에게 고백성사를 주었습니다. 먼 바다로 갔던 연어들이 다시 태어난 강으로 오듯이 대학과 직장생활로 바빠서 성당에 오지 못했던 청년들이 이제 다시 복사를 하고, 한국학교에 다녔던 성당으로 돌아오면 좋겠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로 청년들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하였던 종신부제님이 있으니 청년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면 성당은 더욱 활기를 찾을 것 같습니다. 넓은 공원에 분명 보물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보물이 없다고 불평이 있었지만 열심히 찾는 사람들에게 보물은 있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야곱은 가족과 가축을 데리고 요셉이 있는 이집트로 출발하였습니다. 야곱과 그 가족들은 마치 이집트로 야외미사를 가는 것 같습니다. 사목위원들이 선발대로 가서 야외미사를 할 수 있도록 제대를 마련하고, 의자를 준비했던 것처럼 요셉은 선발대가 되어서 이집트에서 가족들이 머물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야곱을 축복하였고,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복약 안내서를 써주는 한의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의사는 색다른 복약 안내서를 작성했다고 합니다. 처방된 약이 어떻게 몸을 바꾸어 나갈 것인지, 앞으로 치료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몸이 달라지는 과정에서 어떤 증상이 나타날 것이며, 스스로 몸을 어떻게 관찰하면 좋을지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복약 안내서를 읽고 기뻐하는 환자들이 있어서, 변화된 몸을 스스로 느끼는 환자들이 있어서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좋은 치료는 그저 약을 주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이라는 한의사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들이 채워진다고 해서 진정으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욕망을 다 채우기도 힘들지만, 그렇게 채워진 것들은 그것이 사라지게 되면 더욱 공허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화려한 언변과 지식으로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입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 상대방에게 해 주려는 태도입니다.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신앙은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신앙은 고통 중에서도, 절망 중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아 갈 수 있는 이정표입니다. 그렇게 끝까지 견디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2. 2023년 07월 14일 금요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오늘의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사람들을 조심하여라.라는 경고로 시작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닥칠 박해를 예고합니다.

유다인들은 제자들을 박해하지만이것은 역설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러한 박해에도 그리스도교는 많은 이에게 전해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박해는 점점 거세어지고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라는 미카서 7장 6절을 떠올립니다.

가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근간입니다.

가정에서 벌어지는 불행은 다른 어떤 고통보다 더 크고 무겁습니다.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이러한 결과는 그만큼 박해가 심해질 것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런 표상은 종말론적인 재앙을 나타낼 때에도 사용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가깝게는 제자들이 겪게 될 박해에서 시작하여 점차 그 범위가 넓어집니다.

고대 사회에서 이름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릅니다.

이름은 그 사람 전체를 나타냅니다.

내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을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미움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박해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 책들이 많습니다.

박해가 심해질수록 종말을 강조합니다그리고 머지않아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가리라고 예고합니다.

이럴 때 신앙인들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꼭 박해가 아니더라도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이러한 말씀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713. 연중 제14주일 목요일.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마태 10,7)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의 마지막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분부하십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마태 10,7)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제자들은 유례없는 위대한 직무를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모세와 예언자들이 받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전혀 새롭고 놀라운 직무와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감히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직무였습니다. 그것은 “하늘나라”를 선포하라는 직무입니다. 그런데, 단지 하늘나라를 선포하라고만 하지도 않습니다. 그 징표를 행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권능도 주셨는데, 그것을 ‘거저 받은 것이니 거저 주어라.’ 하십니다.
 
“앓는 이를 고쳐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주어라, 나병환자들을 깨끗하게 해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여기에서는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가진 것”, 그것은 그들이 만들거나 획득해서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 받아서 가지게 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곧 그것은 하느님의 자애로, 거저 주어진 선사되고 베풀어진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그 선물을 받아들여야 그런 일들이 가능해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무 거나 주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거저 받은 것, 바로 그것을 거저 주라.’고 하신다. ‘받은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주어서도 안 될 일입니다. 결코 우리가 만든 다른 그 어떤 것을 주어서는 안 될 일이다. 더구나 ‘자신의 것인 양’ 주어서도 안 될 일입니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기에 앞서, 먼저 ‘받은 것’을 제대로 아는 일입니다. 또한 ‘주신 분’을 제대로 아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선포해야 할 나라는 자기 자신의 나라가 아니라, 자신이 받은 “하늘나라”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파견 받은 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과 자세를 이렇게 제시하십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 10,9)

그렇습니다. 당신께서는 당신의 일꾼을 챙겨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입을 것, 먹을 것, 그 어떤 안전장치도,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도 말고, 오로지 주님께만 의탁하여 신뢰로 사명을 수행하라 하십니다. 그러기에, 이제 자기의 신발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발을 신고, 자기의 옷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자신의 능력을 담은 보따리가 아니라 하늘나라의 보물을 담은 보따리를 지고, 자기의 힘이 아니라 말씀의 지팡이에 의탁하라 하십니다.
 
또한, “집에 들어가면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마태 10,12)고 하십니다. 언제나 주님의 평화를 몸에 달고 다니며, 먼저 입으로 축복의 인사를 하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을 받아주든지 않든지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에게도 집착하지 않으며, 자유롭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에게 평화의 인사를 하고, 축복을 빌어주어야 할 일입니다. 마음으로 계산하지 말고, 군말 없이 주님께서 하라는 대로, 형제에게 평화의 인사를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주님의 평화를 건네주는 평화의 사도가 되길 바랍니다.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요한 형님, 축하드립니다!”

-귀향歸鄕의 여정- 

 

오늘 장례미사를 봉헌하는 이성철 사도 요한은 제 사촌 형님이 됩니다. 저는 불암산 기슭 성 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에 살고 있는 이수철 프란치스코 수도사제입니다. 저는 2년전 2021년 10월 25일 여기 청담동 성당에서 윤여임 엘리사벳 사촌 형수님의 미사를 봉헌하며 강론했고, 2년후 오늘은 부군夫君인 요한 사촌 형님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며 강론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 형님은 지난 7월11일 저희 사부 성 베네딕도 아빠스 대축일날 선종하셨고 그날 오후 조카 글라라로부터 선종 소식을 들었습니다. 듣는 순간 “아, 형님은 우리 사부 성 베네딕도처럼 사셨구나!”하는 찬탄이 저절로 흘러나왔습니다. 형님은 정말 베네딕도 성인처럼 한결같이, 끊임없이, 노력하며 믿음으로 사셨습니다. 저는 떠나시는 형님의 모습이 다시 보고 싶어 어제 오전 장례식장을 찾아 문상할 때. 형님의 영정사진을 보며 저절로 나온 인사 말마디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요한 형님, 선종을 축하드립니다!”

 

상주인 조카들에게도 ‘축하드린다’고 ‘그동안 수고많으셨다’고 축하와 더불어 위로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정말 장례식장에서 문상하면서도 “아, 정말 잘 살면 죽음도 기쁨의 축제가 될 수 있겠구나!” 크게 배웠고 깨달았습니다. 상주들도 찾는 조문객들도 다들 밝고 평화로운 미소 가득한 분위기였습니다. 저에겐 참으로 은혜로운 체험이었고 하느님께 많이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문상하며 축하드린다 인사하기도 처음입니다.

 

참으로 후손들이나 후배들에게 참 좋은 최고의 선물이자 유산은 선종의 죽음일 것입니다. 요한 형님은 자녀들에게 우리 후배들에게 참 좋은 선종의 선물을 남겨 주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선종의 복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물음은 “어떻게 살 것인가?” 물음에 직결됩니다.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는 은총입니다.

 

저는 삶을 “귀향歸鄕의 여정”이라 부르곤 합니다. 죽음은 바로 아버지의 집인 본향本鄕으로의 귀향이라는 것입니다. 긴듯해도 강물처럼 흐르는 짧은 인생입니다. 그래서 성 베네딕도는 규칙에서 제자들에게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두고 살라” 말씀하였습니다. 참으로 하루하루 깨어 충실히 살 수 있는 비결을 나누고 싶습니다. 

 

바로 일일일생一日一生, 오전 6시 일출과 더불어 오후 6시 일몰때까지 내 삶을 하루로 압축하여 내 현재 시점을 확인해 보는 겁니다. 저는 75세이니 오후 4시쯤 되는 것 같습니다. 또 일년사계一年四季, 봄-여름-가을-겨울로 압축해 보는 것입니다. 제 경우의 시점은 초겨울쯤 되는 듯 합니다. 바로 이렇게 삶을 압축해보면 내 삶의 시점이 확연히 드러나고, 하루하루가 참으로 하느님의 소중한 선물임을 깨닫게 되며, 삶의 환상이나 거품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이에 근거한 제 좌우명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위 제 좌우명은 다음 라틴어 세 격언으로 요약됩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삶의 환상이나 거품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게 하는 말씀입니다.

 

1.Memento mori(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2.Amor fati(아모로 파티:운명을 사랑하라)

3.Carpe diem(카르페 디엠:현재를 살라) 

 

삶은, 행복은 은총이자 선택이요, 훈련이자 습관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주님을, 행복을, 희망을, 기쁨을, 평화를 선택하여 훈련하며 습관화하는 것입니다. 이래야 영혼 건강, 정신 건강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습니다. 참으로 우리 삶의 중심이신 주님께 하루히루 날마다 신뢰와 희망과 사랑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살 때, 주님은 우리 모두 하루하루 충실히 살 수 있는 은총을 주십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초대하시어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격려하십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활짝 열린 구원의 문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11,28).

 

"주님, 이성철 요한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아멘.


[7/14(금)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되새김 구절]

 

1.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화려한 언변과 지식으로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입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 상대방에게 해 주려는 태도입니다.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신앙은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신앙은 고통 중에서도, 절망 중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아 갈 수 있는 이정표입니다. 그렇게 끝까지 견디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조재형 신부)

 

2. 사람들을 조심하여라.라는 경고로 시작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닥칠 박해를 예고합니다.

유다인들은 제자들을 박해하지만이것은 역설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러한 박해에도 그리스도교는 많은 이에게 전해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습니다.(허규 신부)

 

3.  “집에 들어가면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마태 10,12)고 하십니다. 언제나 주님의 평화를 몸에 달고 다니며, 먼저 입으로 축복의 인사를 하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을 받아주든지 않든지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에게도 집착하지 않으며, 자유롭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에게 평화의 인사를 하고, 축복을 빌어주어야 할 일입니다. 마음으로 계산하지 말고, 군말 없이 주님께서 하라는 대로, 형제에게 평화의 인사를 해야 할 일입니다.(이영근 신부)

 

4. 제 좌우명은 다음 라틴어 세 격언으로 요약됩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삶의 환상이나 거품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게 하는 말씀입니다.

 

1.Memento mori(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2.Amor fati(아모로 파티:운명을 사랑하라)

3.Carpe diem(카르페 디엠:현재를 살라) (이수철 신부)

 

[7/14(금)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제202일 기도]

 

임마누엘 하느님! 야훼이레 하느님!

오늘...

만나는 모든 이에게 평화의 인사를 하고,

축복을 빌어주게 하소서.

마음으로 계산하지 말고, 

이웃에게 평화의 인사를 하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7월14일(금) 6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