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8월 10일 목요일[(홍)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8월 10일 목요일[(홍)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대영광송>
본기도
복된 라우렌시오는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며
신자들을 충실히 섬기고 순교의 영광을 받았으니
저희도 그를 본받아 사랑을 실천하고
그의 가르침을 따라 형제들을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9,6ㄴ-10
형제 여러분, 6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7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8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9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10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는 이!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계명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 그의 후손은 땅에서 융성하고, 올곧은 세대는 복을 받으리라. ◎
○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고, 자기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이! 그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으리니, 영원히 의인으로 기억되리라. ◎
○ 나쁜 소식에도 그는 겁내지 않고, 그 마음 굳게 주님을 신뢰하네. 그 마음 굳세어 두려워하지 않으니, 마침내 적들을 내려다보리라. ◎
○ 가난한 이에게 넉넉히 나누어 주니, 그의 의로움은 길이 이어지고, 그의 뿔은 영광 속에 높이 들리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24-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복된 라우렌시오를 기리며 기쁘게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저희를 자비로이 도우시어 구원하여 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복된 순교자 {아무}는 주님을 현양하려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피를 흘려 주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었나이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연약한 인간에게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을 증언할 강한 힘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능품천사들과 함께
저희도 땅에서 주님의 위엄을 찬미하며 끝없이 외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거룩한 양식을 가득히 받고 간절히 비오니
복된 라우렌시오 축일에 저희가 주님을 섬기며 드리는 이 제사로
구원의 풍성한 열매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저는 매주 평화신문을 읽습니다. 1면부터 20면까지 꼼꼼히 읽습니다. 이유는 제가 신문사를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읽지 않으면서 남들에게 읽어달라고 권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무감으로 신문을 읽을 때는 귀찮기도 했고, 시간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유가 있으면 건너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나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농부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을 발견하면 가진 것을 팔아 밭을 산다고 하셨습니다. 평화신문은 밭에 묻혀있는 보물과 같았습니다. 그 지면들에는 영적으로 도움이 되는 글들이 많았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을 전하는 글도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의 땀과 눈물도 있었습니다. 가톨릭 예술가들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이런 모든 글들이 교회의 보물이라 생각하니 신문을 읽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며칠 여행을 갈 때면 꼭 신문을 챙겨서 갔습니다. 보물을 찾는 마음으로 신문을 읽으니 시간도 금세 지나갔습니다.
공부도 그랬습니다. 성격상 미리 준비를 해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는 늘 먼저 했습니다. 신학교에서도 과제가 있으면 동창 중에서 가장 먼저 하곤 했습니다. 해야 하니까, 의무감으로 하는 과제는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제게 동기부여가 한번 있었습니다. 10등 안에 들면 자전거를 사준다는 달콤한 선물이 있었습니다. 저는 열심히 했었고, 원하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제게 공부는 의무가 아니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선생님들이 인정해 준다는 것을 알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수업시간이 졸리지 않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20문제 중에 아는 문제들이 많다는 것은 기쁨이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나뭇잎의 운명이듯이 늘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른 유혹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열심히 했던 추억과 기억은 제게는 문신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논문을 쓸 때도 그랬습니다. 저는 논문주제를 ‘설교’로 정하였습니다. 나중에 사제가 되면 꼭 필요한 논문이라 생각하니 준비하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는 말처럼 즐겁게 하니 논문도 동창 중에 가장 먼저 제출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저는 주변에서 신앙의 기쁨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그분들은 대부, 대모를 서는 것이 귀찮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자, 대녀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기쁨이었습니다. 대자, 대녀의 축일을 챙겨주는 것이 기쁨이었습니다. 그런 대부, 대모를 보고 신앙 생활하는 대자와 대녀들은 신앙의 기쁨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됩니다. 지난번 ‘신앙 강좌 기획팀’의 모임도 그랬습니다. 그분들은 비행기가 연착되었어도, 길이 막혀 12시간 넘게 운전을 하였어도 전혀 짜증내지 않았습니다. 복음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오히려 기쁨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미사가 없는 날은 미사가 있는 미국 성당으로 가서 미사참례를 하였습니다. 그분들에게 미사는 의무가 아니라, 주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축제였습니다. 그러니 멀어도, 언어가 달라도 기쁘게 미사에 참례하는 것입니다. 나쁜 것들만 중독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도, 나눔도, 봉사도, 희생도 기쁘게 하면 중독이 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신앙이 기쁨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 2. 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로마의 일곱 부제 중의 한 분이신 성 라우렌시오(+258)는 교황 식스또 2세의 부제였다. 성인이 모시던 교황께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성인은 매우 슬퍼하였다. 이 모습을 본 교황은 라우렌시오 역시 삼일 안으로 당신의 뒤를 따를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라우렌시오는 사형을 당할 때 석쇠 위에서 불에 태워져 순교하셨다. 이 성인의 순교를 통하여 로마가 회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성인의 문장은 석쇠이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24절) 밀알이 땅에 떨어져 싹이 트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자신이 없어져야 한다. 여기는 죽는 것으로 표현했지만, 사실은 자신이 모두 없어지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죽는다는 표현은 지금까지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습을 모두 버린다는 의미이다.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는 거기에서 풍성한 결실을 기대할 수 있다. 자신을 없이 하는 것은 새로운 모습의 내가 아닌가!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25절) 라고 하신다.
복음에서 죽는다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그것은 우리의 육체적인 생명을 죽이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신앙인이기 때문에 세상의 소금과 누룩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그리고 나의 이웃을 진정으로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기 위하여 많은 경우에 나 자신을, 나의 의지를, 나의 고집을 죽이는 것이다. 이러한 사도 바오로의 표현대로 묵은 나를, 하느님의 뜻에 역행하여 세상의 뜻을 따라가는 나를 죽이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조류를 역행하는, 거슬러 사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어렵고 되지 않는 것은 내가 세상을 거슬러 살고 또 거기에 죽는 것을 견뎌낼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항상 우리는 첫발을 내딛기를 망설이고, 과감히 내딛지를 못하기 때문에 항상 제자리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신앙인은 자신이 여기에 멈추어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죄를 짓지 않을 수는 있겠으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뒤처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공동체의 일치 대열에서 자신을 이탈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26절) 라고 하신다. 나를 죽이는 삶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고 영광을 하느님 안에 있음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809.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아,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마태 15,28)
오늘 <복음>은 ‘가나안 부인의 마귀 들린 딸의 치유’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예수님의 침묵에 대해서 주목해 보고자 합니다.
마귀 들린 딸의 어머니인 가나안 여인은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외쳐댔습니다.”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에 들렸습니다.”(마태 15,2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마태 15,23). 그 제자들마저도 그녀를 돌려보낼 것을 재촉했습니다. 참으로 난감한 순간입니다.
우리 역시 때로는 침묵하고 계시는 예수님 앞에서, 아니 거부당하고 있다고 여겨질 때 참으로 찹찹해지기도 합니다. 더구나, 꼬인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꼬여갈 때는 하느님의 침묵이 참으로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이, 당신께서 우리를 한 발짝 더 가까이 부르시는 순간임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바로 이때에, 당신께서는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더 깊이 끌어들이고자 하실 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가나안 여인은 바로 이 순간에, 더 간절한 마음으로 한 걸음 더 “예수님께 다가와서 꿇어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마태 15,25)
그야말로 예수님의 침묵과 냉대와 무시에도 불구하고, 또 그를 둘러싼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욱 더 가까이 예수님께 다가 와 무릎을 꿇고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마태 15,26) 하시며, 또 다시 냉혹하게 거절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욕과 냉혹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여인의 겸손과 끈기와 믿음은 참으로 속이 저미도록 눈물겹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태 15,27)
여인은 진정, 자신의 자격 없음을 고백합니다. 자신을 “강아지”로 고백하고 낮춥니다. 마땅한 권리로서의 아니라, 오로지 주님의 자비에 의탁하고 믿을 뿐입니다. 비록 이방인이라도 주인의 상아래서 자녀들과 함께 빵부스러기를 먹게 되는 구원의 섭리를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인의 겸손과 믿음, 구원의 섭리에 대한 확신은 드디어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아,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낳았다.”(마태 15,28)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결코 단순히 거절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 ‘침묵’은 가나안 여인의 갈망을 깊게 하였고(아우구스티누스), 여인의 믿음을 굳세게 하였습니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 그야말로, 그분의 침묵과 냉대 속에는 당신의 놀라운 경륜과 섭리가 들어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말없이 ‘침묵’으로 풍랑 속에서 뱃고물을 베개 삼아 주무셨지만 끝내 바람과 바다를 잠재우셨습니다. 그리고 말없이 ‘침묵’으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골고다로 끌려가시지만 끝내 십자가 위에서 사랑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말합니다.
“침묵 안에 완성되어 있는 하느님 사랑의 외침을 들으십시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예수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마태 15,23)
주님!
당신이 침묵할 때 바로 그 순간이, 한 발짝 더 가까이 부르는 순간임을 깨닫게 하소서!
바로 그 순간에, 한 걸음 더 다가가 꿇어 엎드려 절하게 하소서!
바로 그 때에, 주님께서 믿음과 사랑을 더 깊이 끌어들이고 계심을 깨닫게 하소서!
오늘, 당신의 침묵 안에서 제 겸손과 끈기와 믿음을 길러내소서!
침묵 속에서 오로지 당신 자비에 의탁하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
“영적승리의 삶”
-끊임없는, 한결같은 기도와 회개, 믿음의 훈련-
어제 입추가 지난 오늘 새벽 밤은 서늘했고 맑고 푸른 하늘엔 빛나는 별들 가득했으며 풀벌레 합창 소리도 참 영롱했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듯 별들 총총한 하늘을 바라봅니다. 이 행복으로 시작하는 하루입니다. 기후 재난으로 이 보석같은 아름다운 지구에서 인류의 종말은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이자 비극입니다. 지구 보호에 정신 바짝 차리고 모두가 곧장 행동에 돌입해야 하겠습니다.
제가 아침 산책중 사람 없을 때 자주 열창하는, 수차례 인용했던 “늙은 군인의 노래”는 늘 불러도 새롭고 힘이납니다. 부르면서 영적전의를 새로이합니다. 일부 가사를 변경하여 “이강산”은 “수도원”으로, “군인이”는 “수도자”로, “푸른옷”은 “검은옷”으로 “30년”은 “41년”으로 바꿔 부릅니다.
“나태어나 수도원에 수도자되어,
꽃피고 눈내리길 어언 41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죽어 수도원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올 흘러간 내청춘
검은옷에 흘러간 꽃다운 이 내청춘”
비감한 느낌보다는 정신이 새로워지는 영적전의를 느낍니다. 예로부터 수도자를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 평화의 전사라 부릅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단어중 하나가 주님의 전사입니다. 아니 수도자뿐 아니라 믿는 이들 모두가 제대가 없는 죽어야 제대인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입니다. 얼마나 영예롭고 자랑스런 칭호,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인지요!
말그대로 수도자는 물론 믿은 이들 모두가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에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들입니다. 혼자의 영적전투가 아니라 더불어의 영적전투요 함께 하는 영적전우들 사이에는 영적 전우애가 형성되기 마련입니다. 어제는 수도원을 사랑하는 코이노니아 자매회 월모임이 있었습니다. 2005년 제가 재판받을 때 함께 했던 자매들이 모태가 되어 시작됐으니 무려 18년 역사입니다.
여전히 활동중인 분이 베로니카 형수와 수산나 자매입니다. 이 두분 역시 한결같이 빛나는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입니다. 특히 제 형수는 제가 제대후 1973년 교대 다니고 교편생활 때부터 지금 수도생활때 까지 한결같이 도움을 주고 있으니 무려 50년 반세기(半世紀)! 새벽 강론쓰면서 새삼스런 감동에 놀라움이었습니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님 역시 2013년부터 지금까지 10년동안 88세 고령의 연세에도 한결같기가 참으로 훌륭한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입니다. 제37차 세계 젊은이 날 행사후 귀국후 기내에서 회견중 교회법에 위반된 이들에 대한 사목적 지혜에 감동했습니다.
“교회는 모두에게 열려있으나 교회내에는 규율하는 교회법이 있다. 교회법에 따라 어떤 이들을 성사에 참여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것은 교회가 닫혀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각자는 교회내에서 그들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하느님을 만난다.”
부득이 교회법에 저촉되어 성사에 참여하지 못해도 하느님과의 친교는 계속되니 결코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라는 교황님의 목자다운 사목적 배려의 사랑과 지혜입니다. 또 교황님의 감동적인 사례는 해외 사목방문 전후로 꼭 성모경당을 찾아 마리아 성모님께 문안 인사를 드린다는 것이니 이 또한 주님의 목자, 주님의 전사로써 효성스런 면모입니다. 이번도 성공적 포르투칼 순례여정후 성모님께 감사인사를 드리니 성모님을 만나기 무려 교황님 재위후 110회입니다.
보고 배움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이렇게 교회 수장의 믿음을 보고 배우는 우리 가톨릭교회신자들은 행복합니다. 믿음의 전사중의 전사가 믿음의 총사령관이 바로 복음의 예수님이요, 민수기의 모세요 오늘 가톨릭교회의 교황입니다.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의 모범이 오늘 복음의 가나안 부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과 가나안 부인간의 싸움이, 영적전투가 참 치열합니다. 참으로 주님을 깊이 믿었고, 딸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기에 영적승리를 이끌어낸 가나안 부인입니다. 영적전투의 진행과정이 흥미진진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예수님의 반응이 싸늘합니다.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다가 제자들의 재촉에 마지못해 반응합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가나안 부인은 좌절함이 없이 가열차게 영전전투를 이어갑니다. 겸손히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계속되는 자비송의 기도입니다.
“주님, 저를 도와 주십시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수모스럽기까지 한 주님의 반응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 가나안 부인은 주님을 깊이 신뢰했고 겸손했고 지혜로웠습니다. 가나안 부인의 좌절함이 없는 영적탄력이 놀랍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겸손의 절정입니다. 이어 가나안 부인의 겸손한 믿음에 감동하신 주님의 항복선언입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늘 읽을 때마다 감동하는 가나안 여자의 믿음입니다. 그러니 가나안 부인은 자기와의 싸움에 승리했고, 주님과의 싸움에 승리한 것이며 궁극에는 악마와의 싸움에 승리한 것이니 3중의 승리입니다. 아마도 보이지 않는 악마는 가나안 부인이 포기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 가나안 부인의 백절불굴의 탄력 좋은 믿음이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어제 복음의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꾸중듣던 수제자 베드로와는 너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이 군계일학처럼 주님의 전사로서 그 믿음이 참 탁월합니다. 믿음의 총사령관 모세의 믿음을 보고 배웠음이 분명합니다. 위기에 처한 모세를 구한 분은 위 두분입니다. 10대2의 열세이지만 모두가 좌절하는 상황에서 두분의 대응이 감동입니다. 우선 칼렙이 용감하게 모세 앞에 나서서 술렁대는 군중을 진정시킵니다.
“어서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합시다. 우리는 반드시 해낼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는 생략됐지만 반대파들의 격렬한 저항에 모세와 아론은 온 이스라엘 백성의 회중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는 절체절명의 순간,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칼렙이 옷을 찢으며 외칩니다. 이 두분의 믿음의 웅변이 감동적이라 그대로 전합니다.
“우리가 가로지르며 정찰한 저 땅은 정말 무척이나 좋은 땅입니다. 우리가 주님 마음에 들기만 하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저 땅으로 데려 가셔서 그곳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다만 여러분은 주님을 거역하지만 마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저 땅의 백성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이제 우리의 밥입니다. 그들을 덮어 주던 그늘은 이미 걷혀 버렸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온 공동체가 돌을 던져 그들을 죽이려는 순간 하느님은 개입하셔서 이들을 절멸하려 하자 백성을 살려 달라는 모세의 간절한 기도로 반역의 공동체는 살아나지만 하느님은 분명히 선언하십니다.
“여푼네의 아들 칼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만 빼고, 내가 너희에게 주어 살게 하겠다고 손을 들어 맹세한 그 땅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나 주님이 말한다. 나를 거슬려 모여든 이 악한 공동체 전체가 바로 이 광야에서 그들은 최후를 맞을 것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죽을 것이다.”
공동체에 책임이 있는 모세도 예외가 아닙니다. 모세의 한계일뿐 모세는 여전히 위대한 주님의 종, 주님의 전사입니다.결국 주님의 전사 칼렙과 여호수아의 승리는 믿음의 승리요 하느님의 승리임을 보여줍니다. 참으로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의 모범이 복음의 가나안 부인과 제1독서 민수기의 칼렙과 여호수아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부단한 기도와 회개, 믿음의 훈련으로 참 좋은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가 되어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8/10(목)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되새김 구절]
1.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는 말처럼 즐겁게 하니 논문도 동창 중에 가장 먼저 제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에게 미사는 의무가 아니라, 주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축제였습니다. 그러니 멀어도, 언어가 달라도 기쁘게 미사에 참례하는 것입니다. 나쁜 것들만 중독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도, 나눔도, 봉사도, 희생도 기쁘게 하면 중독이 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신앙이 기쁨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겁니다.(조명연 신부)
2. 라우렌시오는 사형을 당할 때 석쇠 위에서 불에 태워져 순교하셨다. 이 성인의 순교를 통하여 로마가 회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성인의 문장은 석쇠이다.(조욱현 신부)
3.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말합니다.
“침묵 안에 완성되어 있는 하느님 사랑의 외침을 들으십시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예수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마태 15,23)
주님!
당신이 침묵할 때 바로 그 순간이, 한 발짝 더 가까이 부르는 순간임을 깨닫게 하소서!
바로 그 순간에, 한 걸음 더 다가가 꿇어 엎드려 절하게 하소서!
바로 그 때에, 주님께서 믿음과 사랑을 더 깊이 끌어들이고 계심을 깨닫게 하소서!
오늘, 당신의 침묵 안에서 제 겸손과 끈기와 믿음을 길러내소서!
침묵 속에서 오로지 당신 자비에 의탁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주님, 저를 도와 주십시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수모스럽기까지 한 주님의 반응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전사, 믿음의 전사, 가나안 부인은 주님을 깊이 신뢰했고 겸손했고 지혜로웠습니다. 가나안 부인의 좌절함이 없는 영적탄력이 놀랍습니다.(이수철 신부)
[8/10(목)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제 229일 기도]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복음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교회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석쇠에 구어져 순교한 라우렌시오 성인의 영성을 묵상합니다.
성인의 순교를 통하여 로마가 회개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죽어서 많은 영성의 열매로 확장되었음을 증거합니다.
견디기 어려운 수모와 모욕을 받을지라도...
신앙인의 영적 탄력성으로 곧바로 돌아오게 하소서.
좌절과 포기없는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 속으로 회귀하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8월10일(목) 6시4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