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8월 14일 월요일[(홍)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3. 8. 14. 06:36

[매묵]2023년 8월 14일 월요일[(홍)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성인은 1894년 폴란드의 즈둔스카볼라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입회한 그는 1917년 성모 신심 단체인 ‘성모의 기사회’를 설립하였다. 이듬해 로마에서 사제품을 받은 콜베 신부는 평생을 선교사로 살아가다가 독일의 폴란드 침공 때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혔다.
여기서 한 수감자가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수용소에서는 한 명이 탈출하면 열 명을 지목하여 처형하는 벌이 있었다. 이에 따라 지목된 열 명 가운데 한 사람이 자기에게는 가족이 있다며 울부짖자, 콜베 신부는 그를 대신하겠다며 나섰다. 결국 콜베 신부는 다른 아홉 명과 함께, 굶겨 죽이는 아사 형벌을 받고 처절한 옥중 생활을 하다가 1941년 지하 감방에서 죽음을 맞았다. 이러한 그를 1982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자비의 순교자’라 부르며 시성하였다.

입당송

마태 25,34.40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오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가장 작은 내 형제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본기도

하느님,
거룩한 순교자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사제가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를 열렬히 사랑하여
영혼들을 돌보며 이웃을 사랑하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언제나 이웃에게 봉사하며
죽기까지 성자를 닮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제1독서

<너희 마음에 할례를 행하여라. 너희는 이방인을 사랑해야 한다. 너희도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10,12-22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2 “이제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모든 길을 따라 걸으며 그분을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섬기는 것,
13 그리고 너희가 잘되도록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님의 계명과 규정들을 지키는 것이다.
14 보라, 하늘과 하늘 위의 하늘,
그리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주 너희 하느님의 것이다.
15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너희 조상들에게만 마음을 주시어 그들을 사랑하셨으며,
오늘 이처럼 모든 백성 가운데에서도
그들의 자손들인 너희만을 선택하셨다.
16 그러므로 너희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더 이상 목을 뻣뻣하게 하지 마라.
17 주 너희 하느님은 신들의 신이시고 주님들의 주님이시며,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으시고 뇌물도 받지 않으시는,
위대하고 힘세며 경외로우신 하느님이시다.
18 또한 그분은 고아와 과부의 권리를 되찾아 주시고,
이방인을 사랑하시어 그에게 음식과 옷을 주시는 분이시다.
19 너희는 이방인을 사랑해야 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20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께만 매달리고 그분의 이름으로만 맹세해야 한다.
21 그분은 너희가 찬양을 드려야 할 분이시고,
너희가 두 눈으로 본 대로, 너희를 위하여
이렇게 크고 두려운 일을 하신 너희 하느님이시다.
22 너희 조상들이 이집트로 내려갈 때에는 일흔 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47(146─147),12-13.14-15.19-20ㄱㄴ(◎ 12ㄱ)
◎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시온아, 네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은 네 성문의 빗장을 튼튼하게 하시고, 네 안에 사는 아들들에게 복을 내리신다. ◎
○ 주님은 네 강토에 평화를 주시고, 기름진 밀로 너를 배불리신다. 당신 말씀 세상에 보내시니, 그 말씀 빠르게도 달려가네. ◎
○ 주님은 당신 말씀 야곱에게, 규칙과 계명 이스라엘에게 알리신다. 어느 민족에게 이같이 하셨던가? 그들은 계명을 알지 못하네. ◎

복음 환호송

2테살 2,14 참조
◎ 알렐루야.
○ 하느님이 복음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차지하게 하셨네.
◎ 알렐루야.

복음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22-27
제자들이 22 갈릴래아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24 그들이 카파르나움으로 갔을 때,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25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는 집에 들어갔더니
예수님께서 먼저,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하고 물으셨다.
26 베드로가 “남들에게서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지혜 3,1-9 또는 1요한 3,13-18)와 복음(요한 15,9-17)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주님, 이 예물을 바치며 간절히 비오니
저희가 거룩한 막시밀리아노 마리아를 본받아
저희 삶을 주님께 봉헌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요한 15,13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자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거룩한 막시밀리아노 마리아가 이 성찬례에서 받은 사랑이
저희 안에서 불타올라
저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게 하소서.
우리 주 …….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부르클린 사제관에서 지내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열쇠입니다. 퀸즈의 사제관과 신문사의 숙소는 번호 키이기 때문에 열쇠가 필요 없지만 부르클린 사제관은 열쇠가 있어야 합니다. 부르클린에서 교우들을 만나고 사제관에서 하루 지낼 마음으로 열쇠를 챙겼는데 그만 다른 열쇠를 가져왔습니다. 당연히 열쇠는 맞지 않았고, 다시 신문사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급한 성격 때문에 때로 이렇게 곤란한 경우가 생깁니다. 그래도 열쇠를 다른 것으로 가져온 것은 다행입니다. 예전에 성지순례를 갈 때였습니다. 한 자매님이 새 여권을 가져와야 하는데 구 여권을 가져왔습니다. 구 여권에는 미국비자가 있지만 유효기간이 지나서, 새 여권을 발급받았는데 그만 새 여권을 집에 두고 왔습니다. 아들이 급하게 집에서 구 여권을 가져와서 함께 성지순례를 떠날 수 있었지만 자매님은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저도 마음이 심란했는데 그럴 수도 있지요.’라는 말을 들으면서 위로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독서는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크게 3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하느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에 하느님의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계명과 규정을 성실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고, 하느님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부모를 섬기고, 거짓 증언하지 않는 것입니다. 도둑질 하지 않고, 남의 재물을 탐하지 않는 것입니다. 간음하지 않고, 남의 아내를 탐하지 않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방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한 때는 이방인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열쇠를 잘못 가져가서 사제관에 들어 갈 수 없었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았지만 실천하지 않았기에 하느님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욕망과 욕심을 따랐습니다.

 

오늘 교회는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를 기억합니다. 신부님은 포로수용소의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였습니다. 죽음의 공포를 넘어 희망을 전하였습니다. 신부님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셨고, 천국에서 빛나는 신앙이 별이 되셨습니다. 신부님은 이웃을 위해서 대신 죽음을 선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콜베 신부님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제가 열쇠를 잘못 가져와서 사제관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것처럼 저마다 욕망이라는 열쇠를 굳게 쥐고 있습니다. 교만이라는 열쇠를 굳게 쥐고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라는 열쇠를 굳게 쥐고 있습니다. 그런 열쇠로 세상의 문은 열 수 있겠지만 천국의 문을 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욕망은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많은 생명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병들어 가는 지구에서는 인간 역시 병들기 마련입니다.

 

한 주간이 시작되는 월요일입니다. 하느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서 계획한 것들, 생각한 것들을 실천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강론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복음마태 17,22-27: 성전 세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24유대인들은 모두가 똑같이

이 성전 세를 반 세켈을 바쳤다(탈출 30,13 참조). 

여기서 반 세켈을 내는 것은 자신을 바치는 것을 상징하며 세켈은 구원받은 사람을 상징한다

 

주님께서도 성전 세를 내라는 요구를 받으신다

성전 세를 바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서약한 우리가 하느님의 참 성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자신을 바치는 것이다

 

복음에서 한 세금 징수원이 베드로에게 와서 예수께서 성전 세를 냈는지를 물었을 때

베드로는 내겠다고 대답하고 예수께 그 상황을 보고하였다

베드로의 말을 들으신 예수께서는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므로

다른 사람은 세금을 내어도 우리는 세금을 면제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의 집을 위한 세금을 낼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하셨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세금을 내야 한다고 하신다

그것은 자신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인 것으로서 신앙인은 타인에게 표양을 보여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세금 낼 돈은 어디서 구할 것인가

복음에서 보면 낚시를 해서 첫 번째 잡히는 물고기의 입을 벌리면 은전이 들어있을 테니

그것으로 예수님과 베드로의 세금을 내라고 하셨다물고기는 교회의 모습이다

 

이 물고기는 한때불신앙과 미신의 물속 깊은 곳에 사로잡혀 세속적 쾌락이라는 폭풍과 불행에 싸여 있었다

이제 물고기는 말씀의 가르침이라는 사도들의 낚싯바늘과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1베드 2,9) 주시는 말씀의 낚시 그물에 의해 하느님께로 높이 올려진다.

물고기 입에서 동전을 취하여 세금으로 내도록 하셨다.

 

예수께서는 땅에서도 동전을 취하실 수도 있었지만호수에서 기적을 이루신다

우리는 모두 삶의 씁쓸한 혼돈으로부터 건져진 물고기이다

 

우리는 사도들의 낚시 그물에 잡혀 온 물고기와 같다이 물고기들의 입에는 그리스도의

고귀한 동전이 물려있다

 

이 동전은 우리 영혼의 빛과 육신의 빚을 갚는 데 사용되었다

유대인들과 다른 민족들의 빚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의 빚을 갚았다고 할 수 있다

똑같이 세금을 내라고 했기 때문이다(탈출 30,13).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813. 연중 제19주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

 
오늘은 연중 19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참으로 하느님을 신뢰했던 세 사람, 곧 엘리야와 바오로와 베드로가 믿음의 위기에 닥쳤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전례는 우리의 믿음이 위험에 처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제1독서>는 엘리야가 가르멜 산에서 바알의 사제들을 쳐 죽인 후 자신을 죽이려는 이제벨 여왕을 피하여 호렙산의 동굴에 피해 있을 때, 주님께서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1열왕 19,11) 하시고,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당신을 찾아오시어 위로하심을 전해줍니다. 곧 믿음의 위기에서 엘리야를 건져주셨음을 보여줍니다.

<제2독서>는 바오로의 일생을 통하여 그를 괴롭힌 것이 있었으니, 자신의 동족인 유다인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거부와 불신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에 대한 답을 주시지 않았지만,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것과 그들이 그리스도를 배척했을 지라도 그분을 받아들일 날이 오리라는 것을 확신하며, 신뢰와 찬미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영원히 찬미 받으실 분이십니다.”(로마 9,5)
 
<복음>은 베드로가 물에 빠진 후, 신앙의 위기에서 오히려 주님께 대한 믿음을 되찾은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오늘 <복음>의 베드로의 이야기는 의심하는 습관을 지닌 한 회의주의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압도되어 혼란에 휩싸여서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곧 예수님 때문에 자신의 삶에 기꺼이 도전하고, 미지의 물속으로 뛰어드는 신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더 깊은 신앙의 길로 나아가려는 바로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어둠과 위험과 만연한 이 세상에서 교회라는 배를 타고 하늘나라라는 건너편으로 건너갑니다. 그러나 배를 타고 앉아 있다고 해서, 절로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것은 아닙니다. 침몰하지 않으려면, 키를 제대로 잡고서 모든 위험요소를 헤쳐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삶의 물살이 고요한 강물처럼 잔잔하게 흐를 때는 믿음과 신뢰에 대한 도전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삶의 물살이 암담하고 격렬하게 풍랑으로 밀어닥치면, 우리의 신앙은 베드로처럼 시험에 들게 되고 도전을 받게 됩니다.
 
베드로는 신앙의 도약을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합니다. 그는 안전한 자기 배에서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예수님께 와 달라고 소리쳐 부르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습니다.”(마태 14,19)

그렇습니다. 우리는 물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마치,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호수 위를 걸어가듯, 교회 바깥의 거리로 나가는 모험을 감행하기를 촉구하셨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길을 떠나지 않고서는 신앙의 도약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신앙은 가만히 앉아 있거나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불투명한 미지에 던질 때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비록 물속에 빠져 허우적댄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사실, 물은 우리를 침몰시키기도 하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걸으면 우리를 떠받쳐주고 목적지로 인도하는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참으로, 신앙의 길은 예수님께만 믿음을 두는 순종을 통해서 가능해지나 봅니다. 진정, 순종할 때라야 비로소 신앙이 되나 봅니다.
 
본 훼퍼 목사님은 말합니다.
 
“신앙이란 순종이 있을 때에만 참이다. 순종할 때에만 비로소 신앙은 신앙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위기의 순간에 당신의 정체를 드러내십니다. 캄캄한 밤에 길을 잃고 헤맬 때, 풍랑 속에서 혼란과 혼동에 빠졌을 때, 어둠과 절망에 빠져 두려움에 휩싸였을 때, 바로 우리 곁에 다가와 계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이 약해져 있을 때, 오히려 당신의 손을 내미십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
 
사실, ‘믿음’은 기본적으로 어떤 사실이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을 넘어서, 그 사실에 대한 신뢰와 헌신(충실), 곧 순종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문제를 성장과 단련, 그리고 배움과 도약의 기회로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하여, 믿음은 우리를 물위를 건너게 하여, 마침내 예수님 품에 안기게 합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믿음’이란 “초월성이 진짜임을 인정하는(assentire) 능력”, 곧 ‘삶의 이면에 실재하는 우리가 경험하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실재하는 더 성스러운 차원을 인정하는 능력’이며, 동시에 이러한 ‘인정’은 지성의 굴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 속에서 어렴풋이 느끼는 비경험적인 실재들을 인정하고 기뻐하는(assentio;박수갈채) 능력’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믿음에는 ‘기쁨’이 동반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그분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면, 기쁨 속에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주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마태 14,33) 주님을 찬양하였듯이 말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주님,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마태 14,28)

주님!
배안에 머물러 있기만을 고집하지 말게 하소서.
풍랑이 위협할지라도 믿음의 구명대를 입고 물위를 걷게 하소서.
삼킬 것 같은 풍랑이 오히려 저를 떠받들게 하시고,
넘어뜨릴 것 같은 거센 바람이 오히려 저를 이끌게 하소서.
물 위를 걸어오라고 하신 당신이 바로 ‘저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연중 제19주일.

 

“우리 모두 ‘믿음의 뿌리’를 

튼튼히 합시다.”

-기도하라, 사랑하라, 함께하라-

 

 

“주님, 저희에게 자비와 구원을 베풀어 주소서.”(시편85,8)

 

오늘 화답송 후렴의 기도가 참 간절합니다. 주님의 자비와 구원 은총이 우리 믿음의 뿌리를 튼튼하게 합니다. 순수한 ‘뿌리’란 우리말이 참 좋습니다. 뿌리가 튼튼해야 합니다. 뿌리가 죽으면 나무는 저절로 죽습니다. 뿌리없이는 잎도 꽃도 열매도 없습니다. 뿌리가 병들면 나무도 병들고 머지 않아 죽습니다. 

 

푸르름 짙어가는 나무들과는 대조적으로 죽은 나무들은 보기도 흉합니다. 흉물같습니다. 뿌리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병든 사회, 병든 개인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바로 뿌리가 병들었음을 뜻합니다. 나무 뿌리가 상징하는 바 믿음입니다. 믿음의 뿌리입니다. 내 믿음의 뿌리는, 내 공동체 믿음의 뿌리는 튼튼합니까? 병들거나 죽지 않고 살아서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습니까? 믿음의 뿌리가 가리키는 바 내적성장입니다. 

 

카눈 태풍의 위력이 여기 수도원에는 미미했지만 커다란 소나무가 뿌리 뽑혀져 넘어져 있었습니다. 거대한 소나무를 받쳐 주기엔 뿌리들은 참 허약했고 이미 많이 썩어있었습니다. 새삼 내 삶의 뿌리를, 믿음의 뿌리를, 내 공동체의 뿌리가 연상되었습니다. 예전에 써놨던 ‘뿌리살이’란 글이 생각납니다.

 

“뿌리없이는 꽃도 없다

 뿌리로 살아야지

 세월 땅속에 묻혀 뿌리로 사는 거야

 꽃사랑으로 

 피어날 때까지

 기다리며 뿌리로 사는 거야

 뿌리살이 고달플 때

 꽃사랑 추억으로 갈증 축이며

 하늘사랑 꽃으로 피어날 그날 그리며

 뿌리로 사는 거야

 뿌리없이는 꽃도 없다”-1999.7.2.

 

수도원 여기 이 자리에서의 24년전 시가 새롭게 떠오릅니다. 지금까지 공동체의 정주의 뿌리가 되어 큰 나무로 살아온 기분입니다. 지금까지 날마다의 강론은 집요한 뿌리내림의 표현이었습니다. 정주의 믿음, 정주의 뿌리입니다. 어떻게 하면 날로 깊어지는 튼튼한 정주의 뿌리로 살 수 있을까요? 

 

첫째, 기도입니다.

기도해야 됩니다. 끊임없이, 한결같이, 간절히, 항구히, 공동기도는 물론이고 개인기도도 필수입니다. 고독과 침묵을 사랑했던 옛 수도자들이었습니다. 바로 고독과 침묵중에 하느님을 찾아 날로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렸던 사막의 수도자들이었습니다. 참으로 내적 깊이의 뿌리 내림에 개인기도는 결정적입니다. 고독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라 설파한 토마스 머튼입니다. 

 

고독이 궁극으로 지향하는바는 연대입니다. 새삼 오늘 말씀의 순서대로 하느님의 종들인 엘리야, 바오로, 예수님의 믿음의 뿌리는 얼마나 깊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세분 공히 하느님의 사람들,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엘리야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했을 때 우선 찾은 것이 하느님의 산 호렙이었고 여기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호렙에 있는 동굴에서 밤을 지낼 때 주님의 말씀이 내립니다. 밤은 주님을 만나라 있는 은총의 기도시간임을 깨닫습니다.

 

“나와서 주님 앞에 서라.”

 

크고 강한 바람이 지났지만 거기에 주님은 계시지 않았고, 지진이 일어났지만 거기에도 주님은 계시지 않았고, 불이 일어났지만 불 속에도 주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으니 바로 주님의 임재입니다. 그 소리를 듣자 엘리야는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린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섭니다.

 

고독과 침묵의 산에서, 외딴곳에서, 또는 내 삶의 자리에서 특히 밤시간, 조용하고 부드러운 주님의 소리를, 말씀을 들은 적이 있으신지요? 우리 예수님도 밤시간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며 깊은 관상 상태에 있었음을 봅니다. 5천명 군중을 배불리 먹여 돌려 보내시고 제자들을 먼져 떠나 보내신후 불야불야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시어 밤샘기도에 돌입합니다. 어쩌다가 아니라 매일 외딴곳에서 밤샘 기도로 충전시킨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 수도자들은 끝기도후 잠자리에 들기전 다음 찬미가를 바칩니다.

 

“우리는 잠을 자도 주님과 함께, 

 꿈에도 당신만을 뵙게하소서.

 언제나 한결같이 당신영광을, 

 새는날 밝아올제 찬미하리다.”

 

우리 수도자들은 잠자는 중에도 영혼은 깨어 주님 안에서 관상의 휴식을 누리며 내적 친교를 깊이합니다. 믿는 이들의 삶은 자나깨나 끊임없는, 한결같은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또 공동체에 깊이 뿌리내리는 삶이어야 합니다.

 

둘째, 사랑입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기도와 사랑은 함께 갑니다. 기도는 기술의 테크닉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기도와 더불어 하느님께 이웃에 더욱 깊이 사랑의 뿌리를 내리기 마련입니다. 보십시오, 바오로의 사랑은 얼마나 깊은지 그 사랑의 뿌리는 하느님께 닿아 있습니다.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

 

하느님 찬미의 사랑에 깊이 뿌리내린 이웃사랑임을 봅니다. 불교의 지장보살을 연상케하는 가톨릭의 지장보살 바오로 같습니다. 바로 지옥의 고통에서 허덕이는 중생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해 주기 위해 스스로 부처가 되기를 포기하고 지금도 지옥 문전에 있는 지장 보살입니다. 어제 읽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전설적 기도도 생각납니다.

 

“주여, 지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제가 어찌 천국을 즐기겠습니까. 주여 저주받은 자들을 불쌍히 여겨 천국으로 들여보내든지, 아니면 저를 지옥으로 보내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게 하소서. 저는 지옥에 남아 그들과 고통을 나누겠습니다.”(영혼의 자서전, 하권 424쪽)

 

하느님 사랑에 까지 그 사랑의 뿌리가 도달한 성 바오로, 성 프란치스코를 닮은 불가의 지장보살입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사랑은 여전히 초보자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봅니다. 더욱 사랑의 훈련, 습관화로 하느님과 이웃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시기 바랍니다.

 

셋째, 함께입니다.

함께 해야 합니다. 함께 섬겨야 합니다. 회개-친교-섬김의 순서입니다. 마음의 순결이, 자유가 최종 목표가 아니라 더불어 섬김입니다. 섬김을 위한 자유요, 섬김을 통한 자유의 완성입니다. 홀로인 듯 하나 함께 안의 홀로입니다. 더불어와 단절된 고립단절은 환상이요 바로 이것이 지옥입니다. “함께 안의 홀로” 성서의 위인들, 교회의 성인들이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곁 관상기도중에도 영안은, 사랑의 눈은 제자들을 향해 활짝 열려 있음을 봅니다. 초월과 내재의 파스카 예수님입니다. 졸지도 잠들지도 않으시고 언제나 깨어 우리를 살펴보시며 위기시 우리를 구원할 채비가 되어 계십니다. 이를 안다면 전혀 걱정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세요. 그대로 인생 항해 여정중의 제자공동체를 상징합니다. 

 

얼마나 위험한 인생 항해 여정중인 크고 작은 무수한 공동체들인지요! 좌초하거나 조난당한 공동체들도 많습니다. 각자도생의 비정한 사회, 온전한 공동체 보기 힘든 세상입니다. 그래서 무수한 이들이 자살입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은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의 구원의 개입을 기도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풍랑에 시달리던 제자들의 공동체가 그러했습니다.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물위를 걸어 한걸음에 달려 오시는 주님은 흡사 축지법을 쓰는 듯 그대로 하느님 모습입니다. 제자들의 곤경을 한눈에 보신 주님의 개입이 고맙습니다. “유령이다!”외치는 제자들에 이어 주님의 감로수 같은 구원의 말씀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바로 위기에 처했을 때 이 말씀 상기하시고 흩어진 정신을 수습하시기 바랍니다. 물위를 걸어오다 두려움에 주님 향한 눈길을 놓치고 물속에 빠져드는 베드로의 “주님, 저를 구해주십시오.” 외침에 즉각 응답하여 손을 내밀어 구원하시며 베드로의 믿음 약함을 꾸짖습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 자 몇이나 될런지요? 함께의 인생항해 여정중 참 많이 깨닫고 배웠을 제자들의 믿음입니다. 혼자라면 이런 주님의 체험도 없었을 것입니다. 공동체의 배에 오르시어 중심에 자리 잡자 바람은 그쳤고 도래한 내적평화와 안정입니다. 공동체 제자들은 그분께 엎드려 고백합니다.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그러나 아직도 멀었습니다. “스승님”이라니 “주님”이라 부름이 맞습니다. 저 같으면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시편 23장을 노래했을 것입니다. 주님이자 스승인 주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 살아난 제자들입니다. 평생 믿음의 여정중에 늘 이 구원의 추억을 상기하여 분투의 노력을 다했을 제자 공동체 형제들입니다. 

 

참으로 병들지 말아야 할 믿음의 뿌리들입니다. 늘 살펴봐야 할 내 믿음의 뿌리, 공동체 믿음의 뿌리입니다. 그러니 믿음의 뿌리내리기 영성훈련의 기도가, 사랑이, 함께하는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하 주님의 간곡한 당부 말씀이요,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1.기도하십시오! 

2.사랑하십시오!

3.함께(together) 하십시오! 끊임없이 한결같이 간절히 항구히!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시편85,11-12). 아멘.

8월 14일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Maximilian Maria Kolbe사랑은 희생을 통해 살아 있고,베푸는 것으로 키워진다는 것을 기억합시다.1894년 폴란드의 즈둔스카볼라에서 태어난 콜베 성인은제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였을 무렵에 동료 수사 6명과 함께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회'라는 모임을 창설했습니다.또 다른 전쟁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일이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독일 나치 정권에 의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고, 아사 감방에 들어가는 10명 중 한 사람을 대신하여 순교하였습니다.  글씨 : 김영복 리카르도 신부(수원교구) 그림 : 홍승례 아스테리아 수녀


[8/14(월)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콜베 신부님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조재형 신부)

 

2. 예수께서는 땅에서도 동전을 취하실 수도 있었지만호수에서 기적을 이루신다

우리는 모두 삶의 씁쓸한 혼돈으로부터 건져진 물고기이다

우리는 사도들의 낚시 그물에 잡혀 온 물고기와 같다이 물고기들의 입에는 그리스도의

고귀한 동전이 물려있다

 

이 동전은 우리 영혼의 빛과 육신의 빚을 갚는 데 사용되었다

유대인들과 다른 민족들의 빚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의 빚을 갚았다고 할 수 있다

똑같이 세금을 내라고 했기 때문이다(탈출 30,13).(조욱현 신부)

 

3.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습니다.”(마태 14,19)

그렇습니다. 우리는 물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마치,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호수 위를 걸어가듯, 교회 바깥의 거리로 나가는 모험을 감행하기를 촉구하셨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길을 떠나지 않고서는 신앙의 도약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신앙은 가만히 앉아 있거나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불투명한 미지에 던질 때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비록 물속에 빠져 허우적댄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사실, 물은 우리를 침몰시키기도 하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걸으면 우리를 떠받쳐주고 목적지로 인도하는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참으로, 신앙의 길은 예수님께만 믿음을 두는 순종을 통해서 가능해지나 봅니다. 진정, 순종할 때라야 비로소 신앙이 되나 봅니다.(이영근 신부)

 

4. 함께 해야 합니다. 함께 섬겨야 합니다. 회개-친교-섬김의 순서입니다. 마음의 순결이, 자유가 최종 목표가 아니라 더불어 섬김입니다. 섬김을 위한 자유요, 섬김을 통한 자유의 완성입니다. 홀로인 듯 하나 함께 안의 홀로입니다. 더불어와 단절된 고립단절은 환상이요 바로 이것이 지옥입니다. “함께 안의 홀로” 성서의 위인들, 교회의 성인들이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이수철 신부)

 

8/14(월)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제233일 기도]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긴 자비의 순교자 콜베 신부님을 묵상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호수 위를 걸어가듯,

교회 바깥의 거리로 나가는 모험을 감행하기를 촉구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혼돈과 풍랑의 세상에서  사랑의 용기를 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함께 하고...함께 섬기는...공동체의 삶에서 

더불어 함께 섬기는 사랑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 2023년 8월14일(월) 6시2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