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8월 25일 금요일[(녹) 연중 제20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8월 25일 금요일[(녹) 연중 제20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백] 성 요셉 데 갈라산즈 사제
입당송
보소서, 저희 방패이신 하느님. 그리스도의 얼굴을 굽어보소서.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본기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보화를 마련하셨으니
저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시어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을 오롯이 사랑하여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참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룻기의 시작입니다.1,1.3-6.14ㄴ-16.22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나라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래서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모압 지방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려고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3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어서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게 되었다.
4 이들은 모압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파이고 다른 여자의 이름은 룻이었다.
그들은 거기에서 십 년쯤 살았다.
5 그러다가 두 사람도 죽었다.
그래서 나오미는 두 자식과 남편을 여읜 채 혼자 남게 되었다.
6 나오미는 며느리들과 함께 모압 지방을 떠나 돌아가기로 하였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돌보시어
그들에게 양식을 베푸셨다는 소식을 모압 지방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14 오르파는 시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며 입 맞추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15 나오미가 말하였다.
“보아라, 네 동서는 제 겨레와 신들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
16 그러자 룻이 말하였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22 이렇게 하여 나오미는 모압 출신 며느리 룻과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왔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은 보리 수확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 행복하여라, 야곱의 하느님을 구원자로 모시고, 주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이! 주님은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바다와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셨네. ◎
○ 주님은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네. 억눌린 이에게 권리를 찾아 주시며,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네. 주님은 잡힌 이를 풀어 주시네. ◎
○ 주님은 눈먼 이를 보게 하시며,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시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주님은 이방인을 보살피시네. ◎
○ 주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나, 악인의 길은 꺾어 버리시네.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신다. 시온아, 네 하느님이 대대로 다스리신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시고 당신의 진리로 저를 이끄소서.
◎ 알렐루야.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2,34-40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놀라운 교환의 신비를 이루시어
주님께 받은 것을 바치는 저희가 주님을 합당히 모시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또는>
요한 6,51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성체성사로 저희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시니
저희가 세상에서 그분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하늘에서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오늘의 묵상
1.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 삶에서 우리는 언제 길을 잃게 되는가?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미국 텍사스의 암 병원에서 25년간 환자를 돌보던 김의신 박사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암과 관련해서 세계적인 석학인 박사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암은 아직 정확하게 발생 원인을 모르는 병입니다. 그래서 암에 대한 완벽한 치료 방법도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의료 현실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미국의 암 병원은 가능하면 수술을 하지 않습니다. 암은 특정부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암은 전신에 걸쳐 있기 때문입니다. 암이 머무는 집을 수술로 제거한다고 해서 암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암과 관련된 의사들이 우리 병원으로 연수를 옵니다. 그리고 우리 병원의 암 환자 치료방법을 보고 가지만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한국은 아직도 암의 발생 부위를 제거하는 것을 최선의 치료방법으로 고수하고 있습니다. 암은 항암제를 투약하고, 증상이 호전되면 덩어리를 제거하거나 방사선 치료를 병행합니다.”
암 병원에는 매년 만 명 이상이 찾아오는데 외국에서 삼분의 일, 타주에서 삼분의 일, 텍사스 주에서 삼분의 일이 온다고 합니다. 박사님은 암이 치료되는 사람과 암이 더디게 치료되거나 쉽게 재발하는 사람을 구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소위 전문가들은, 돈이 많은 사람들은 치료하기 쉽지 않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검색하고, 부작용을 찾기 때문에 의사의 말을 제대로 신뢰하지 못 한다고 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그 돈 때문에 신경을 쓴다고 합니다. 회사, 돈, 가족들을 신경 쓰면서 잠을 못 이룬다고 합니다. 건강한 사람도 암을 치료하기 어려운데 이렇게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사람은 암을 치료하기 전에 먼저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합니다. 반면에 시골에서 온 사람, 잘 모르는 사람은 치료가 쉽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우선 미국에 온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고 합니다. 평소에 먹지 못했던 음식도 잘 먹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병원에서 치료하는 방법을 기쁘게 따른다고 합니다. 그러니 치료하기도 쉽고, 치료도 잘 된다고 합니다.
저는 박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영혼의 치유자이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소위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하느님나라의 기쁜소식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나자렛의 고향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겉모습만 알면서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참된 행복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바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전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율법과 계명에 대해서도 자신들이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의 선입견을 가지고 예수님을 판단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학벌을 보았고, 예수님의 출신 가문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단죄하였습니다. 박사님은 의사들을 치료하는 것이 어렵다고 합니다. 오히려 의사들이 자신의 몸을 잘 돌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매일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들도 어쩌면 눈 뜬 장님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의사여 먼저 너의 병을 고쳐라.”
박사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치료는 의사들이 최선을 다해서 합니다. 그런데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마음을 편하게 갖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는 암을 치료하는데 가장 어려운 장애물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치료될 확률이 30% 정도가 된다고 하면 무척 기뻐한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치료될 확률이 30$ 정도 된다고 하면 무척 실망한답니다. 미국 사람들은 치료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을 이야기 하면 담담하게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부작용 때문에 죽을지 모른다고 먼저 걱정한답니다. 마음을 편하게 먹는데서 암의 치료는 시작된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잘 먹는 것이라고 합니다. 잘 먹고 몸의 면역력이 좋아야 암을 치료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잘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기도 잘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음을 편하게 하고, 음식을 열심히 먹으면서 암의 치료는 시작된다고 합니다.”
병원에는 1,500명의 자원봉사자가 있다고 합니다. 이분들 대부분은 암을 치료중이거나, 암이 치료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온 사람들 중에는 이런 자원봉사자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박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행복은 보람 있는 일을 하는 것이고, 보람 있는 일은 타인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롯은 바로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롯은 보아즈의 아내가 되었고 유다의 임금 다윗은 이 가문에서 탄생하였습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다윗 가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824.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요한 1,48)
오늘 <복음>은 ‘만남의 신비’ 안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나타나엘은 필립보로부터 예수님께 대한 증언을 듣고서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라고 하며, 필립보의 증언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핀잔을 주었지만, 그는 “와서 보시오.”(요한 1,46) 라고 확신에 찬 초대를 합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나타나엘을 만나기 전부터 그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신적인 전지함에 압도당한 나타나엘은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요한 1,48) 하고 당혹하여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요한 1,48)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나타나엘에게는 예수님께 대한 모든 의혹과 편견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홀연히 믿음과 감격이 솟구쳤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보았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필립보가 부르기도 전에 나를 보고 ‘알았다’는 예지적인 측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주목하고 있었다는 의지적인 측면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곧 ‘주시하여 바라보고 계셨다’는 것은 ‘사랑’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바라봄입니다. 사랑하면 자꾸 바라보게 되는 거죠. 눈을 뗄 수가 없게 되는 거죠. 바로 지금 우리의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바라보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이 사랑스런 바라봄을 받아들인다면, 지금 우리에게도 모든 의혹과 편견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과 감격이 샘솟을 것입니다.
사실, 바로 이 순간, 나타나엘은 예수님 안에서 자신의 진면목을 보았던 것입니다. 자신을 바라보고 계신 그분의 눈동자 안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님이 자신을 온전히 아시는 구원자요, 주님임을 보았습니다. 마침내, 나타나엘은 자신의 메시아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분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마침내 신앙고백으로 흘러나오게 됩니다.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요한 1,49)
이렇게 해서, ‘대전환’이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만남의 신비가 가져온 결과였습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고 빈정거리던 그에게 이제 ‘대역전’이 발생한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이 그를 전복시킨 것입니다. 이처럼,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바로 ‘만남의 신비’입니다.
심리학자 융은 말합니다.
“두 개성의 만남은 두 화합물질의 만남과 같다. 반응이 이루어지면 둘은 변한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만남’은 변화를 가져온다는 신비입니다. 곧 자신의 존재를 심연으로부터 만난 것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만남의 신비’가 믿음을 불러오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당신과의 거룩한 만남의 신비를 통하여, 당신 사랑을 퍼부으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하여, 하늘과 땅을 이어주십니다. 그 사랑으로 하여, 우리를 증언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고, 고백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십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들 사이의 만남 안에서도, 예수님과의 거룩한 만남의 신비를 담아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주님,
땅에서 열리는 하늘을 보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이, 하늘이 열리는 자리가 되고
우리 일상의 삶이, 하늘이 열리는 장소가 되게 하소서.
주님, 우리 안에 계신 당신을 보게 하소서.
오늘도 우리가 만나는 이들과 하는 일 안에서
하늘을 열고 주님의 사랑을 만나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주님과 만남의 여정
-이야기(story)와 내용(contents)-
어제 두 일간지 1면 톱기사와 첫째번 사설은 일본 오염수 방류에 대한 규탄이었습니다. <역사에 죄짓는 일본의 오염수 30년간 하루 500톤 방류, 길터준 한국정부>, <국제사회 우려 끝내 외면한 일본 오염수 방류 강행 규탄한다> 사설 제목입니다. 교황청 홈페이지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최악의 핵재앙”이라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이어 교황님의 어제 일반 알현 시간에 우크라나에 대한 호소도 절절했습니다.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의 전구에 사랑하는 우크라이나를 맡깁시다. 형제자매들이여!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합시다. 그들은 너무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전쟁은 너무 잔인합니다! 그 많은 아이들이 사라졌고, 그렇게 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오늘은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입니다. 더욱 교회 성인들의 전구를 청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성인들은 물론 우리 역시 하느님의 사람이자 그리스도의 사람이고 교회의 사람입니다. 성인들은 하느님을, 그리스도를 사랑하듯 교회를 그렇게 사랑했습니다. 성인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교회 사랑이었습니다.
소화데레사의 고백입니다.
“나의 성소는 사랑입니다!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나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호소입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입니다. 교회 사랑은 우리 사랑입니다. 그러니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수호하며, 교회와 함께 걸어 갑시다.”
어제는 저에게 획기적인 날이었습니다. 어제 오후 참 많은 비가 내렸고 집무실에서는 오후 2시-4시 사이에 의정부 교구의 선교사목국 신앙 교육 담당자 사제와 함께 두분이 방문하여 “기도와 영성”에 대한 내용을 녹화했습니다. 서두에 밝힌 제 언급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삶안에는 기도와 영성이 녹아있습니다. 이런 삶에서 기도와 영성을 빼버리면 무엇이 남을까요. 참으로 허무하고 무의미한 삶, 욕망만 남은 괴물같은 삶, 짐승같은 삶일 것입니다. 사람의 삶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녹화방송후 함께 한 사제의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스토리가 있어 재미있었고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퍼뜩 마음에 와닿은 스토리, 이야기란 말마디와 더불어 컨텐츠 내용이었습니다. 영화나 책을 봤을 때 도무지 스토리가 없고 컨텐츠가 빈약할 때 느꼈던 허전했던 마음을 잊지못할 것입니다.
우리 삶에 스토리, 이야기가 없고, 컨텐츠, 내용이 빈약하여 텅 빈 껍데기같은 삶이라면 그 삶은 참 재미없고 깊이없고 무의미하고 허무하다 생각될 것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성 바르톨로메오를 비롯한 모든 성인들의 특징은 주님을 따르는 스토리가 분명하고 사랑의 컨텐츠가 풍부했다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성인들은 물론 우리 삶의 스토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라 사는 이야기요, 우리 삶의 내용인 컨텐츠는 주님과의 만남과 더불어 나눈 풍부한 사랑의 일화들입니다. 그러니 스토리와 컨텐츠를 이루는 것은 주님과의 만남과 사랑뿐이요 믿는 이들의 삶에서 그리스도 주님이 빠진 삶이라면 참 허무하고 덧없는 삶일 것입니다.
우리 수도자들 삶 안에서 스토리와 컨텐츠를 이루는 그리스도 예수님이 빠지면 정말 무의미하고 허무한 삶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지 않는 이들의 삶의 스토리와 컨텐츠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참으로 열심히 살았는데 되는대로 생각없이 살아 스토리가, 컨텐츠가 없다면 그 허무감 무의미함 감당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 대해 다음처럼 사랑을 고백합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주님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주님을 사랑할 때 스토리도 컨텐츠도 분명하고 풍부해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으로 하루하루 주님을 따르는 스토리를, 사랑의 컨텐츠를 축적해가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며 인생 허무와 무지에 대한 최고의 유일한 처방입니다. 이래야 충만한 삶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사랑하듯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모두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교회의 비전이 아름답게 계시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새 예루살렘 교회는 우리의 영원한 희망이자 꿈이요 우리를 현세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며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새 예루살렘 교회는 우리의 본향이요, 우리의 지상 순례 여정중 마지막 도착지점입니다.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같았습니다...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영원한 희망이자 꿈인 새 예루살렘 비전이 더욱 그리스도 예수님과의 만남과 우정을 추구하게 합니다. 우리가 물음이라면 주님은 답입니다. 주님을 모르면 우리는 영원히 미궁인채로 머물게 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주님과 나타나엘의 만남이 신선한 충격입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느냐?”
회의하는 나타나엘, 바로 바로톨로메오는
“와서 보라”
는 필립보의 초대에 응답해 바로 주님을 만나는 순간 참 나를 발견합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 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주님을 만남으로 참나를 발견한 나타나엘 역시 즉각적으로 화답하여 주님을 고백합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정말 참사람과 참사람의 만남이요, 순수와 순수의 만남이요, 나타나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자, 주님과 만남의 여정을 계속하게 한 원천이 되었을 것입니다. 나타나엘은 이런 주님과의 우정의 성숙과 더불어 마침내 주님을 위한 순교로 삶을 마감합니다. 순교의 사랑이야 말로 성체와의 결합이요 사랑의 절정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고백한 나타나엘에 감격하여 큰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나타나엘뿐 아니라 주님과 만남의 여정에 충실한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약속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참으로 주님과 만남의 여정과 더불어 우정도 날로 깊어져갈 때 우리 역시 주님과 천사들의 친교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삶은 주님과 만남의 여정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매일 미사은총이 주님과의 우정을 날로 깊이해주시어 우리 모두 주님 중심의 스토리와 사랑의 컨텐츠 분명하고 풍부한 살아 있는 성경책 인생을 살게 합니다. 아멘.

[8/25(금)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되새김 구절]
1. 왜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을 그리도 쉽게 잊을까요? ‘두려움’ 때문입니다. 나를 지켜주는 하느님이 계신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사탄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게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삶을 헤쳐 나가게 합니다. 그 두려움이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을 잊게 만드는 것입니다. (전삼용 신부)
2. “행복은 보람 있는 일을 하는 것이고, 보람 있는 일은 타인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롯은 바로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롯은 보아즈의 아내가 되었고 유다의 임금 다윗은 이 가문에서 탄생하였습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다윗 가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조재형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주님,
땅에서 열리는 하늘을 보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이, 하늘이 열리는 자리가 되고
우리 일상의 삶이, 하늘이 열리는 장소가 되게 하소서.
주님, 우리 안에 계신 당신을 보게 하소서.
오늘도 우리가 만나는 이들과 하는 일 안에서
하늘을 열고 주님의 사랑을 만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우리 삶에 스토리, 이야기가 없고, 컨텐츠, 내용이 빈약하여 텅 빈 껍데기같은 삶이라면 그 삶은 참 재미없고 깊이없고 무의미하고 허무하다 생각될 것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성 바르톨로메오를 비롯한 모든 성인들의 특징은 주님을 따르는 스토리가 분명하고 사랑의 컨텐츠가 풍부했다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성인들은 물론 우리 삶의 스토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라 사는 이야기요, 우리 삶의 내용인 컨텐츠는 주님과의 만남과 더불어 나눈 풍부한 사랑의 일화들입니다.(이수철 신부)
[8/25(금)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제 244 기도일]
복음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사랑의 이중계명
쉐마 사랑과 이웃사랑 계명이다.
마음, 목숨,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 사랑을 하고...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이다.
사랑의 이중계명을 스토리로 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지상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지복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 2023년 8월25일(금) 3시5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