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8월 27일 주일[(녹) 연중 제21주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8월 27일 주일[(녹) 연중 제21주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주님, 귀를 기울이소서. 제게 응답하소서. 당신 종을 구해 주소서. 당신은 저의 하느님,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당신께 온종일 부르짖사오니,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대영광송>
본기도
저희가 하느님의 가르침을 사랑하고 그 약속을 갈망하며
모든 것이 변하는 이 세상에서도
참기쁨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22,19-23
주님께서 궁궐의 시종장 세브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19 “나는 너를 네 자리에서 내쫓고, 너를 네 관직에서 끌어내리리라.
20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나는 힐키야의 아들인 나의 종 엘야킴을 불러
21 그에게 너의 관복을 입히고
그에게 너의 띠를 매어 주며 그의 손에 너의 권력을 넘겨주리라.
그러면 그는 예루살렘 주민들과 유다 집안의 아버지가 되리라.
22 나는 다윗 집안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메어 주리니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그가 닫으면 열 사람이 없으리라.
23 나는 그를 말뚝처럼 단단한 곳에 박으리니
그는 자기 집안에 영광의 왕좌가 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당신 자애 영원하시니 손수 빚으신 것들 저버리지 마소서.
○ 주님,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제 입의 말씀을 들어 주시기에, 천사들 앞에서 찬미 노래 부르나이다. 거룩한 성전 앞에 엎드리나이다. ◎
○ 당신은 자애롭고 진실하시니, 당신 이름 찬송하나이다. 제가 부르짖던 날, 당신이 응답하시고, 저를 당당하게 세우시니, 제 영혼에 힘이 솟았나이다. ◎
○ 주님은 높이 계셔도 낮은 이를 굽어보시고,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알아보시나이다. 주님, 당신 자애는 영원하시옵니다. 당신 손수 빚으신 것들 저버리지 마소서. ◎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11,33-36
33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34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35 아니면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의 보답을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36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저승의 세력도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
◎ 알렐루야.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13-20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보편 지향 기도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전능하신 주님, 하늘 나라의 열쇠를 받은 주님의 교회를 살펴 주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기꺼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걸으며, 세상에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2. 공직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진리이신 주님, 이 땅의 공직자들을 주님의 빛으로 이끌어 주시어, 그들이 공적 신분과 직무를 올바로 깨닫고, 나라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하여 힘쓰게 하소서.
3. 소외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보호자이신 주님, 함께 살아가면서도 어울리지 못하는 이들을 굽어보시어, 그들에게 굳건한 마음을 주시고, 저희도 주변을 살피며 다양한 이들과 함께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4. 본당 사도직 단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일치의 주님, 주님의 뜻을 실천하며 열심히 살고자 애쓰는 저희 본당의 모든 단체에 강복하시어, 사랑과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배려하고 화합하며 하나 되게 하소서.
예물기도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단 한 번의 제사로 저희를 자녀로 삼으셨으니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주님의 교회에 일치와 평화의 선물을 내려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흩어진 인류를
성자의 피와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한 가족이 되게 하시고
삼위의 일치를 본받아 모인 백성이
주님의 지혜와 사랑을 찬미하는 교회요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령의 궁전이 되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천사들의 무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 땅은 당신이 내신 열매로 가득하옵니다. 당신은 땅에서 양식을 거두게 하시고, 인간의 마음 흥겹게 하는 술을 주시나이다.
<또는>
요한 6,5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리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저희가 주님의 자비로 치유를 받고 힘을 얻어
모든 일에서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오늘의 묵상
1.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제21주일
- 하느님을 믿으려 하는데 잘 믿어지지 않아요? 그 이유는….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1 주일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미국에서 ‘새만금 잼버리’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1991년 이미 고성에서 잼버리를 개최하였던 경험이 있었기에,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 또한 이미 오래 전에 개최하였던 경험이 있었기에, 평창 동계 올림픽도 차질 없이 진행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잼버리 정도의 국제 행사는 넉넉하게 치러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문화와 전통은 ‘손님’을 환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들리는 소식은 안타까웠습니다. ‘폭염, 해충, 습지’라는 삼종세트가 청소년들의 축제인 잼버리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늘이 없는 가운데 50,000명가량의 청소년들이 체감온도 40도가 넘는 곳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배수시설이 잘 안 되는 습지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습지에는 각종 해충들이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태풍 ‘카눈’까지 한반도에 상륙하면서 새만금에서 조기 철수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폭염을 피해서 몇몇 국가는 새만금 현장에서 철수하였습니다. 한국을 찾은 세계 청소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준비의 부족으로 대한민국의 ‘국격’이 떨어진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미 1년 전부터 ‘새만금 잼버리’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고 합니다. 바다를 매립해서 만든 간척지이기에 배수시설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비가 오면 습지로 변하는 곳이니 반드시 배수시설을 확보하라는 조언도 있었습니다. 폭염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전기를 끌어들여서 선풍기나 에어컨을 확보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습니다. 얼음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해충이 많으니 충분한 방역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에 따른 예산도 확보해야 한다는 조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준비하는 쪽에서는 이런 지적과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행사의 주체 도시인 전라북도는 중앙 정부에서 예산 지원을 적게 했다고 하였습니다. 중앙 정부는 전라북도가 준비를 소홀히 했다고 하였습니다. 말로는 폭염대책, 배수대책, 방역대책이 잘 되고 있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2023년 ‘새만금 잼버리’는 기쁘고 즐거운 한바탕 축제가 아니라, 폭염과 해충과 습지에서 살아야 했던 생존게임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하셨습니다. 그 교회는 저승의 세력도 능히 물리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천국의 열쇠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열쇠로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세운 교회는 지친 이들에게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절망 중에 있는 이들에게는 희망이 되었습니다. 근심과 걱정에 빠져있는 이들에게는 용기와 담대함을 주었습니다. 노아의 방주가 홍수에서 사람을 살렸듯이 교회는 공동체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구원의 방주가 되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받았던 천국의 열쇠는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성사’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죄를 사함 받습니다. 견진성사를 통하여 성령의 은사를 받습니다. 고백성사를 통하여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성체성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모실 수 있습니다. 병자성사를 통하여 치유의 은사를 받습니다. 혼인성사를 통하여 성가정을 이룹니다. 성품성사를 통하여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일꾼을 선발합니다. 이렇듯이 ‘성사’는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끄는 천국의 열쇠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교회를 맡기고, 천국의 열쇠를 주셨듯이 제가 속한 서울대교구의 주교님은 제게 미주가톨릭평화신문을 맡겼습니다. 저는 미주가톨릭평화신문을 운영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제게 매주 발행되는 가톨릭평화신문은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주셨던 천국의 열쇠와 같습니다. 밭에 묻혀있는 ‘보물’과 같습니다. 저의 사명은 천국의 열쇠이며 밭에 묻혀있는 가톨릭평화신문을 전하는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의 지면에는 보물이 많습니다. 교황님의 근황과 교회의 가르침을 볼 수 있습니다. 미주한인가톨릭 공동체의 소식을 알 수 있습니다. 선교사들의 땀과 눈물을 알 수 있습니다. 소외되고 외로운 이들에게 위로를 주고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저는 매주 발행되는 가톨릭평화신문을 2시간에 걸쳐서 읽습니다. 제가 신문사 사장이라서 읽는 것도 있지만 가톨릭평화신문에 묻혀 있는 보물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LA 성 아그네스 성당의 교우 분들에게 가톨릭평화신문이라는 보물을 나눠드리고 싶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은 여러분들을 천국으로 안내하는 천국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을 구독하셔서 부디 많은 보물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가톨릭평화신문을 구독하셔서 천국의 열쇠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하느님, 신자들을 한마음 한뜻이 되게 하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가르침을 사랑하고 그 약속을 갈망하며 모든 것이 변하는 이 세상에서도 참 기쁨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게 하소서.”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826.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 23,11)
오늘날 우리는 참된 스승이 없다고 한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물어야 합니다. 진정, 나는 스승을 찾고 있는가?
이제민 신부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이 없어서 우리 시대가 이 모양으로 혼탁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사방천지에서 만나는 우리 삶의 동반자들을 스승으로 알아 모시지 못하고, 그들의 제자가 되어 그들에게 머리를 굽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P. 이제민)
그러니 스승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스승이 없어서가 아니라, 스승을 곁에 두고도 눈이 먼 까닭이요, 제자가 되어 머리를 숙이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은 자신의 무지를 깨우쳐주는 위대한 스승을 찾으면서도 무지를 깨우쳐주기를 바라기보다 유식을 인정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식이 드러나면 감사하기보다 오히려 상처받으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참된 스승을 지척에 두고도 머리 굽혀 공경하기보다 오히려 고개를 쳐들어 먼 데서 스승을 찾고 있다면, 진정 우리가 눈멀어 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누가 참된 스승인가” 하고 묻기에 앞서, 진정, 나는 참된 제자이고자 하는가?를 물어야 할 일입니다. 아니, 고개 숙여 배우기보다 목을 뻣뻣이 세우고 가르치기를 일삼는 ‘나는 참 제자인가?’ 하고 스스로 물어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에 ‘스승’으로 대우받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죄상을 세 가지를 고발하십니다.
<첫째> “그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곧 언행의 불일치와 남에게 짐 지움을 질타하십니다. <둘째> “그들이 하는 일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곧 표리부동과 위선을 질타하십니다. <셋째> “그들은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주기를 바란다.” 곧 자만과 허영을 질타하십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이가 참된 스승인가?
<첫째>는 가르치되, 언행이 일치하는 자, 말씀을 성취하는 자일 것입니다. 곧 가르침으로 타인에게 짐을 지우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신이 실행함으로 타인의 짐을 짊어지는 자일 것입니다.
<둘째>는 일하되, 표리부동과 위선이 없는 자일 것입니다. 곧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자신을 보낸 분을 드러내는 이요, 남에게 보이기보다 보이지 않는 하늘의 아버지께 일을 바치는 자일 것입니다.
<셋째>는 사람들 가운데 있으되, 자만과 허영이 없는 자일 것입니다. 곧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자요, 섬김을 받으려하기보다 섬기는 자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섬김이야말로 참된 스승이 되는 길이요, 동시에 참된 스승이신 당신의 참 제자가 되는 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승, 선생, 아버지라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마태 23,10-11)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 23,11)
주님!
머리를 숙이고 겸손할 줄을 알게 하소서.
당신을 지척에 두고도 머리 굽혀 공경하기보다
고개를 뻣뻣이 세우고 먼 데서 당신을 찾지 않게 하소서.
나의 유식을 인정해주기보다 나의 무지를 깨우쳐주기를 바라게 하소서.
무지가 드러나면 상처받기보다 감사하게 하소서.
당신을 스승으로 모시고 제 머리 위에 두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우리 사람에게 다가 오시는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
“주님, 아침에는 당신의 사랑,
밤이면 당신의 진실을 알림이 좋으니이다.
주님 하시는 일로 날 기쁘게 하시니,
손수하신 일들이 내 즐거움이니이다.”(시편92;3,5)
‘하느님을 찾는 사람’임과 동시에 ‘사람을 찾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삶에 지쳤을 때 사람을 찾는 하느님을 생각하면 큰 위로와 더불어 힘을 받습니다. 바로 이런 깨달음을 노래한 저의 '하늘'이란 오래전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나무에게
하늘은 가도가도 멀기만 하다
아예
고요한 호수가 되어 하늘을 담자”-1997.2
무려 26년전 시지만 지금도 여전히 아끼며 많이 나누는 시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나무같은 삶에 지쳤을 때 즉시 호수가 되어 가까이 찾아 오신 하늘이신 주님을 담자는 것입니다. 사람을 찾는 하느님, 바로 어제 금요강론 주제처럼 “우리에게 다가 오시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태복음 마지막 예수님 말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ㄴ)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제 금요강론 교재중 여러 주옥같은 말씀을 나눕니다. 베네딕도 16세 교황님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찾고 있는 또한 당연히 누릴 권리가 있는 그 행복은 하나의 이름과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나자렛 출신 예수님이십니다.”
역시 아어지는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의 반가운 말씀입니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모습을 취하시어, 우리의 친구이자 형제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우정의 대상이자 형제애의 대상이 되신 예수님이란 고백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바로 하느님과의 만남을 뜻합니다. 블레즈 파스칼 철학자의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우리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또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새삼 인간이 물음이라면 예수님은 답입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이 없다면 우리는 인간이 누구인지 아무리 물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답인 이런 예수님을 만나지 못해 평생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고 무지와 허무속에 방황하다 죽는 이들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그러니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 참나를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저절로 나오는 구원의 고백입니다.
“주님, 당신을 만나니
당신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희망과 기쁨, 평화와 자유를 선사하시나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하느님의 세 스타일을 언급했는데 친밀함(closeness), 연민(compassion), 부드러움(tenderness)이요 그대로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를 찾아 오신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참삶이 되기 위한 방법을 배웁니다. 오늘 시공을 초월하여 존엄한 인간 품위의 삶을 위해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가르침이자 깨우침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구체적 모습입니다.
첫째, 진실한 삶입니다.
진실한 삶자체가 구원입니다. 위선, 거짓, 허영의 반대가 진실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또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높은 자리를 찾는 허영의 헛된 위선적 삶을 단호히 청산하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그들의 행실을 따라하지 말라 하십니다. 오늘의 교회 지도자들은 물론 신자들을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정말 깨어 살지 않으면 이런 허영의 본능적 삶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둘째, 겸손한 삶입니다.
겸손의 반대가 교만의 무지입니다. 자기를 아는 것이 바로 겸손이자 지혜입니다. 가장 쉬운 것이 남판단하는 교만이요, 가장 힘든 것이 자기를 아는 겸손입니다. 주님의 다음 말씀은 일체의 우상을 배격하고 참으로 겸손하라는 말씀으로 요약됩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스승이라 불리지 않도록 노력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또 이 세상의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는 모두 형제다!”, 흡사 인간 평등의 대헌장 선언처럼 들립니다. 참으로 이런 자각에 투철할 때 겸손한 삶이겠습니다.
셋째, 섬기는 삶입니다.
복음의 절정이 섬기는 삶입니다. 섬김의 중심에 주님이 계십니다. 섬기는 삶의 모범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섬기는 삶이 바로 겸손한 삶입니다. 우리에게 영성이 있다면 단 하나 섬김과 종의 영성뿐입니다. 이를 요약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교만으로 올라가는 이는 낮아지고 섬김과 겸손으로 낮아지는 이는 높아질 것이라는 역설적 진리를 보여줍니다. 우리에게 권위와 직무가 있다면 단 하나 섬김의 권위, 섬김의 직무뿐일 것입니다. 이런 복음적 가치관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관으로 세속의 지도자들로 확산되는 분위기입니다. 우리의 사부 성 베네딕도 역시 섬김의 삶을 강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학원을 설립해야 하겠다. 우리는 이것을 설립하는데 거칠고 힘든 것은 아무것도 제정하기를 결코 원치 않는다.”
섬김과 더불어 성인의 중용의 영성이 빛납니다. 섬김의 학원에서 평생 섬김의 여정중인 평생 섬김의 학인들인 우리임을 깨닫습니다. 섬김의 배움터에서 영원한 초보자임을 또 깨닫게 됩니다. 어제에 이어지는 오늘의 룻기도 재미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진실하고 겸손하신, 섬기시는 하느님의 구원 섭리가 은혜롭게 계시됩니다. 하느님은 자신을 닮은 진실하고 겸손한 섬김의 참 좋은 사람 룻을 참 좋은 보아즈와 짝을 맺어 주시고 오벳이란 아들을 낳게 하시니 오벳은 바로 다윗의 할아버지가 되고 이 족보에서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이 탄생하십니다.
참으로 우리가 평생 배워야 할 주님을 닮은 존엄하고 품위있는 삶을 위해 진실한 삶, 겸손한 삶, 섬기는 삶이 참으로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이 또한 자발적 선택과 훈련, 습관화에 해당됩니다. 부단히 진실과 겸손, 섬김의 삶을 선택하고 훈련하여 습관화하자는 것입니다.
어제 강론에서 강조한 참 좋은 삶의 스토리와 콘텐츠를 위해서도 하느님 중심의 진실하고 겸손하고 섬기는 삶이 바로 결정적 답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 중심의 진실과 겸손, 섬김의 삶에 충실하므로 참 좋고 아름다운 삶의 스토리와 콘텐츠를 만들어 주십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시편128,1). 아멘.

[8/27(일) 연중 제21주일, 되새김 구절]
1.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라고 말씀하십니다. (전삼용 신부)
2. “하느님, 신자들을 한마음 한뜻이 되게 하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가르침을 사랑하고 그 약속을 갈망하며 모든 것이 변하는 이 세상에서도 참 기쁨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게 하소서.”(조재형 신부)
3. “너희는 스승, 선생, 아버지라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마태 23,10-11)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 23,11)
주님!
머리를 숙이고 겸손할 줄을 알게 하소서.
당신을 지척에 두고도 머리 굽혀 공경하기보다
고개를 뻣뻣이 세우고 먼 데서 당신을 찾지 않게 하소서.
나의 유식을 인정해주기보다 나의 무지를 깨우쳐주기를 바라게 하소서.
무지가 드러나면 상처받기보다 감사하게 하소서.
당신을 스승으로 모시고 제 머리 위에 두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주님을 닮은 존엄하고 품위있는 삶을 위해 진실한 삶, 겸손한 삶, 섬기는 삶이 참으로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이 또한 자발적 선택과 훈련, 습관화에 해당됩니다. 부단히 진실과 겸손, 섬김의 삶을 선택하고 훈련하여 습관화하자는 것입니다.
(이수철 신부)
[8/27(일) 연중 제21주일, 제246일 기도]
복음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사랑으로 일체를 이루시는 하느님께 감사하며...
일체를 향한 하느님의 도구로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 2023년 8월27일(일) 3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