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9월 1일 금요일[(녹) 연중 제21주간 금요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3. 9. 1. 14:35

[매묵]2023년 9월 1일 금요일[(녹) 연중 제21주간 금요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공동의 집인 지구를 돌보는 것에 관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반포하면서 해마다 9월 1일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내기로 정하였다. 이날 교회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의 의미를 묵상하고, 창조 질서를 파괴한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며, 생태계를 보호할 것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진다.

입당송

시편 86(85),1-3 참조
주님, 귀를 기울이소서. 제게 응답하소서. 당신 종을 구해 주소서. 당신은 저의 하느님,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당신께 온종일 부르짖사오니,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본기도

하느님, 신자들을 한마음 한뜻이 되게 하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가르침을 사랑하고 그 약속을 갈망하며
모든 것이 변하는 이 세상에서도
참기쁨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하느님의 뜻은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4,1-8
1 형제 여러분, 우리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있는지 우리에게 배웠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욱더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2 우리가 주 예수님의 권위로 여러분에게 지시해 준 것들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3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곧 여러분이 불륜을 멀리하고, 4 저마다 자기 아내를 거룩하게
또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할 줄 아는 것입니다.
5 하느님을 모르는 이교인들처럼 색욕으로 아내를 대해서는 안 됩니다.
6 그리고 이러한 일로 형제에게 잘못을 저지르거나
그를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전에 말하고 또 엄숙히 경고한 바와 같이,
주님은 이 모든 일에 보복하시는 분이십니다.
7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더러움 속에서 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살라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8 그러므로 이 사실을 무시하는 자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는 하느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7(96),1과 2ㄴ.5-6.10.11-12(◎ 12ㄱ)
◎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 주님은 임금이시다. 땅은 즐거워하고, 수많은 섬들도 기뻐하여라. 정의와 공정은 그분 어좌의 바탕이라네. ◎
○ 주님 앞에서 산들이 밀초처럼 녹아내리네. 주님 앞에서 온 땅이 녹아내리네. 하늘은 그분 의로움을 널리 알리고, 만백성 그분 영광을 우러러보네. ◎
○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아, 악을 미워하여라. 그분은 당신께 충실한 이들의 목숨을 지키시고, 악인들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해 주신다. ◎
○ 의인에게는 빛이 내리고, 마음 바른 이에게는 기쁨이 쏟아진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찬송하여라. ◎

복음 환호송

루카 21,36 참조
◎ 알렐루야.
○ 너희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5,1-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5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7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8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단 한 번의 제사로 저희를 자녀로 삼으셨으니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주님의 교회에 일치와 평화의 선물을 내려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04(103),13-15 참조
주님, 땅은 당신이 내신 열매로 가득하옵니다. 당신은 땅에서 양식을 거두게 하시고, 인간의 마음 흥겹게 하는 술을 주시나이다.
<또는>
요한 6,5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리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성찬례로 충만한 구원을 이루시니
저희가 주님의 자비로 치유를 받고 힘을 얻어
모든 일에서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열처녀의 비유 말씀을 묵상합시다.

오늘의 묵상

1.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마태오 25장 1-13절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하고 청하였다.”

 

사랑의 가장 큰 표현, 잘 준비하는 것

 

신학생 시절 설교학 교수님 말씀께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부디, 미리 미리 강론 준비 잘 하십시오. 혹시라도 강론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차라리 강론대에 서지 마십시오.”

 

곰곰이 생각해보니 교수님 말씀 참으로 지당한 말씀입니다.

강론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을 때, 이것 저것 잡다하고 엉뚱한 말을 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말실수도 하게 되고,

괜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 싸잡아 야단치게 되고, 그러다보면 강론이 강론이 아니요

언어폭력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제로서 강론을 잘 준비한다는 것은 강론을 듣는 신자들에 대한 예의이자 교회와 하느님을 향한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도리입니다.

비단 강론뿐이 아니라 미리 미리 잘 준비한다는 것은 서로 서로에 대한 예의이자 배려입니다.

 

한 가정의 어머니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데, 미리 생각하고, 미리 챙겨놓고, 미리 계획해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정성껏 밥상을 준비하는 것은 가족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이자 배려입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친구들과 떠들다가 식사시간 10분전에 도착해서, 찬밥에, 어제 먹다 남은 찌개에,

대충대충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가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요.

 

마찬가지로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학생들이 시험을 잘 준비하는 것은

선생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도리요 예의, 배려, 존경심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총무부 직원이 회사 창립기념 행사를 정성껏 준비하는 것은

그 회사와 경영자를 위한 가장 큰 애정의 표현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이처럼 미리 미리 잘 준비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향한 가장 큰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잘 준비하기 위해 갖춰야 할 한 가지 자세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깨어있음’입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잠이 덜 깬 흐리멍텅한 얼굴이 아니라, 세상 다 산 것 같은 무기력한 표정이 아니라,

갓 낚아 올린 싱싱한 은갈치 눈동자처럼 살아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롱초롱하고 맑은 정신으로 잘 준비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자세, 언제든 뛰어들 수 있는

적극성을 의미합니다.

 

진정으로 깨어있다는 것, 이 세상에만 시선을 두지 않고 이 세상 너머의 또 다른 세상,

영적인 세상, 하느님 나라를 꿈꾸며, 지속적으로 하느님의 얼굴을 찾음을 의미합니다.

 

진정으로 깨어있다는 것은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셨으며, 나를 끔찍이도 사랑하시는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 자신에 대한 사랑,

하느님의 모상인 이웃들에 대한 사랑...

 

우리 영혼은 성찰이 부족하면 쇠락되기 마련입니다.

오늘의 나에 결코 만족하지 말고 부단히 나를 돌아보고, 나를 갈고 닦으며, 이웃을 살펴보고,

세상을 직시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나가는 노력이야말로

깨어있음의 중요한 표현입니다.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1주간 금요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살면서 때로 황당한 일을 경험하곤 합니다. 나의 뜻과 다르게 상황이 전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미국으로 유학 온 신부님들이 며칠 간 머무르겠다고 했습니다.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트렁크에 짐을 옮기면서 황당한 일이 생겼습니다. 차는 약간 경사진 곳에 있었고, 짐을 옮기는 과정에 그만 카트가 경사면을 타고 내려갔습니다. 워낙 운동 신경이 둔한 저는 미처 몰랐고, 카트는 내려가면서 하필이면 주차된 차에 부딪치면서 멈추었습니다. 차의 주인은 저보다 더 황당했을 것입니다. 급히 내려가서 차 주인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였습니다. 서로 원만하게 해결하면 될 수 있었는데 차 주인은 경찰을 불렀습니다. 경찰은 자초지종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차량에 의한 사고가 아니기에 저의 운전 면허증이나, 보험은 상관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차량 주인에게 보험으로 차를 수리하고, 나중에 법원에 가서 해결하라고 했습니다. 경찰은 갔고, 저는 차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약간의 수리비용을 주면서 문제는 해결 되었습니다. 고정 장치가 있는 카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저보다 더 황당한 일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들과 같다고 하십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잔에 기름을 채워서 기다렸습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잔에 기름을 채우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등잔에 기름을 채웠던 슬기로운 처녀들을 기쁘게 신랑을 맞이했고, 혼인잔치에 참여했습니다. 등잔에 기름이 없었던 어리석은 처녀들은 신랑을 맞이할 수 없었고,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나라는 그냥 기다린다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나라는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등잔은 우리의 몸과 마음입니다. 여기서 기름은 우리의 행동입니다. 가난한 이, 불쌍한 이, 외로운 이를 따듯하게 돌보는 행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해 준 선행이 곧 에게 해 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강도당한 사람을 도와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을 칭찬하셨습니다. 하느님나라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주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기름은 잘못된 행동을 뉘우치고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는 회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람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사람 한 사람을 하느님나라에서는 더 좋아한다고 하셨습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위해서 잔치를 벌이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크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뉘우치지 않기 때문에 구원에서 멀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기름은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 하느님의 아들이 구유에서 태어나신 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여기서 기름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식별할 줄 아는 지혜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해야 할 것을 알았지만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알았지만 하였습니다. 그들은 교만하였고,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차도 기름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가기 위해서도 기름이 필요합니다. ‘선행, 회개, 겸손, 지혜의 기름을 채울 수만 있다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받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더러움 속에서 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살라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831.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마태 14,45) 

예수님께서는 앞의 23장에서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 대해 불행선언을 하신 다음,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시고 올리브 산으로 가셨으며, 가장 큰 재난과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에 대해 말씀하시고 무화과나무의 교훈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지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관한 “도적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곧 “깨어 있으면서 준비하고 있어라.”(마태 24,43-44)고 하십니다. 재림의 때가 예측 불허할 뿐만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올 것이니, 아무런 준비 없이 있다가 그 때를 돌발적으로 맞이하는 어리석음을 피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의 비유”를 통해서, 어떻게 깨어 있어야 하는지 그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곧 비유 속에서, “종”은 주인을 대신하여 재산과 종들을 관리하는 직무를 맡은 자이며, 주인은 “종”에게 두 가지를 요구합니다. 곧 ‘충실함’과 ‘슬기로움’입니다.
 
“주인이 자기 종에게 자기 집안의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마태 14,45)
 
‘충실함’이란, 자신에게 맡겨진 ‘주인 집안 식솔들’(마태 24,45)과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어주는 일’(마태 24,45)에 대한 충실함으로 묘사됩니다. 곧 ‘맡겨진 사람’과 ‘맡겨진 일’에 충실함이 주인에 대한 충실함이 됩니다. 이는 제자들에게 ‘주님 집안의 식솔들, 곧 양들이 맡겨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일이 주인을 섬기는 일이요, 주님께 대한 충실함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슬기로움’이란, 먼저 ‘주인의 뜻을 아는 것’이요, 그리고 ‘그 뜻을 실행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아무 양식이나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양식’을 내어주는 일, 곧 당신의 말씀인 생명의 양식을 내어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분의 것이지,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 일 자체도 그분이 맡기신 일이요, 그분의 일임을 알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깨어 있음”은 ‘의식의 각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실행’을 말합니다. 곧 “깨어 있다”는 것은 ‘주인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는 일을 맡기신 ‘주인의 신뢰에 대한 깨달음’에서 옵니다. 그리고 그분께 대한 “깨어 있음”에서 ‘충실함’과 ‘슬기로움’이 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예수님의 제자로서 주님으로부터 맡겨진 사명을 받은 ‘종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신뢰하시는 주님의 뜻이 실현되도록 구체적인 행동으로 응답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주님께서 맡겨준 형제들에게 자신을 양식으로 내어주는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에게 맡겨진 형제들을 존중해야 할 일이요, 결코 무시하거나 소홀히 대하지는 말아야 할 일입니다. 그것이 곧 주님께 대한 ‘충실함’과 ‘슬기로움’이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마태 24,45) 
 
주님!
당신께 속해 있는 종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제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에 따르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 되게 하소서!
제 자신을 형제들에게 양식으로 내어주게 하시고
그것이 당신께 대한 저의 충실함과 슬기로움이 되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깨어 있어라

"깨어 있음도 훈련이요 습관이다"

-함께 희망하기(Hoping Together)-

 

“주님, 아침에 당신 자애로 채워 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시편90,14)

 

오늘 화답송 시편 성구가 위로와 힘이 됩니다. 오늘 새벽 산책시 놀랍고 신비스런 사실을 발견했고 확인했습니다. 곡식은 사람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큰 다 하는데 배밭사이 오솔길 배열매들이 그러합니다. 그 어느 배나무들보다 주렁주렁 달려 무럭무럭 자라나는 평화의 집 배밭사이 오솔길의 배나무 열매들이 그러합니다. 하찮은 미물도 사람이,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사랑의 발자국 소리가 그립고 반가운가 봅니다. 1년 365일 날마다 새벽 기도 산책 때 마다 제 강복을 받는 배나무들이니 그럴만도 합니다. 

 

오늘 밤도 집무실에 들어오자 마자 어제부터 시작한 것처럼 십자고상 태극기 앞에서 만세 오창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나라가 있고 교회가 있습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대한민국 만세!”

“가톨릭 교회 만세!”

“요셉 수도원 만세!”

 

정신이 번쩍 들면서 깨어 있게 됩니다. 참으로 깨어 살아야 할 시절입니다. 어떤 때보다 간절하고 절박한 말마디가 “깨어 있어라”입니다. 사람이라 다 사람이 아닙니다. 참으로 깨어 있는 사람이 참으로 살아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옛 사막 수도자들의 한 가지 목표는 참으로 사는 것이었고, 깨어 있을 때 비로소 참으로 살아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어제 오랜만에 방문한 도반 사제의 고백성사가 있었고 보속으로는 말씀처방전과 함께 애국가 4절까지 콧팅한 자료를 드리며 1절까지 깨어 부르라 했습니다. 그대로 깨어 기도하는 고요하고 숙연한 분위기였고 감동했습니다.

 

“아, 고등학교 때 불러보고 처음입니다. 10년도 훨씬 넘은 것 같습니다.”

 

애국가를 부른 후의 고백이었고, 함께 십자가의 예수님과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니 흡사 둘다 독립운동가처럼 참 멋졌습니다. 이 또한 깨어 있음의 훈련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도, 회개도 결국은 깨어 살기 위함입니다. 영성생활의 직접적 목적은 깨어 있음의 순수요 궁극의 목적은 하늘 나라의 삶입니다.

 

“Hoping Together(함께 희망하기)!”

 

오늘 8.31일부터 9.4일까지 제43차 해외 사목 방문국인 몽골을 향한 영원한 현역이자 주님의 평화와 희망의 전사, 교황님의 모토가 참 멋집니다. 이에 한 형제는 주옥같은 말마디라 감탄했고 한 자매는 공동체의 모토로 삼았다 했습니다. 함께 희망할 때 저절로 모두가 깨어 있게 됩니다. 엊그제 8.29일은 경술국치(1910.8.29.) 113주간이 되는 날이었고 곳곳에서 추념식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날 일본은 오염수를 방류하기 시작했고, 국군의 요람 육사에서는 독립영웅 5인의 철거가 거론되기 시작했으니 참 반복되는 역사같아 이 또한 우리를 깨어 있게 합니다. 

 

저는 이런 묵상도 했습니다. 2차 대전 끝 무렵, 일제 패망시 3.1 독립운동시 민족대표 33인중 변절하지 않은 자는 한용운 시인 하나뿐이었다 합니다. 아마 일제 패망과 대한독립을 반기지 않았을 국민들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것입니다. 나라야, 민족이야 있든 없든 내 편하고 만족하면 된다는 민족의식 부재, 국가의식부재의 사람들이요 지금도 이런 무지몽매한 이들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이래서 해방후 온민족의 통절한 반성과 회개, 자숙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입니다.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 평전을 낸 이동순 시인의 “내가 돌아오지 말걸-홍범도 장군의 독백-”이란 장시長詩를 통분의 마음으로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소련 입국신고서에 직업은 '의병', 목적과 희망 항목에는 '고려독립'이라 쓰여 있었습니다. 아, 왜 이런 뉴스가 일간지에 안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역사를 잊어버린 육사에게 미래는 없다.”

 

말마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찌 육사뿐이겠습니다. 역사대신 민족, 나라, 공동체, 개인 모두를 넣어도 다 통합니다. 이래서 좋은 역사의 기억을 말하는 것이요 이래야 악순환의 역사를 멈출 수 있습니다. “기억이 없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A nation with no memory has no future)” 역시 어제 읽은 말마디도 같은 맥락입니다. 역사의식이 부재한 지도자들이 참으로 통탄스럽습니다.

 

이래서 어려서부터 올바른 역사 교육은 필수입니다. 역사교육 부재의 오늘의 교육현실은 그야말로 얼빠진, 넋빠진 교육입니다. 깨어 있음은 참으로 폭이 넓고 깊습니다. 과거를, 역사를 기억하는 것 역시 깨어 있는 행위입니다. “민중의 벗”이었던 고 김승훈 사제의 마지막 강론 주제는 무관심의 병이었습니다. 23년전 순교복자수녀원 피정지도시 머물고 계시던 신부님이 겸손히 고백성사를 청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그 이후 3년만(2003.9.2.)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21세기 인류의 가장 큰 병은 무관심의 병입니다. 이 무관심의 병이 지금 인류전체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고치기 힘든 무서운 병이 무관심의 병입니다.”

 

20년전 말씀이 지금도 여전히 호소력을 지닙니다. 바로 무관심 병의 치유를 위한 처방이 깨어 있음입니다. 참으로 잊어야 할 것을 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억하는 것이 깨어 있음입니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는 망각이 죄요 병인 것입니다. 참으로 깨어 있음은 하느님의 시야와 관심에 까지 확장됨을 요구합니다. 텅빈 자족적 폐쇠적인 깨어 있음이 아니라 온통 주변 세상에 환히 열려 있는 깨어 있음입니다.

 

지난 18개월 동안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의 무죄한 어린이들 540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교황님은 9월의 기도지향은 변두리의 열악한 곳에서 살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입니다. 만연된 가난과 시련, 목이 뻣뻣하고 무디어진 마음에서 벗어나 환영의 문화를, 살심장을 지닐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인구의 10% 7억이 굶주리고 있으며 16억이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지낸다는 교황님의 개탄이요 결론같은 말씀이었습니다.

 

“환영은 도움 이상이다.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형제자매를 회복시킴으로 타인을 우리 수준에 위치시킴을 뜻한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한몸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우리가 교회입니다. 참으로 깨어 있어야 할 교회인 우리들입니다. 깨어 살아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참으로 사는 것입니다.

 

“깨어 있음은 기억입니다. 깨어 있음은 은총입니다. 깨어 있음은 침묵입니다. 깨어 있음은 기도입니다. 깨어 있음은 기다림입니다. 깨어 있음은 인내입니다. 깨어 있음은 겸손입니다. 깨어 있음은 빛입니다. 깨어 있음은 사랑입니다. 깨어 있음은 관심입니다. 깨어 있음은 희망입니다. 깨어 있음은 회개입니다. 깨어 있음은 찬미입니다. 깨어 있음은 감사입니다. 깨어 있음은 평화입니다. 깨어 있음은 기쁨입니다. 깨어 있음은 개방입니다.”

 

깨어 있을 때 유혹도 마귀도 죄악도 범접하지 못합니다. 깨어 있음은 빛 자체이신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깨어 있음의 덕이 끝이 없습니다. 그러니 깨어 있음은 모두라 할 수 있습니다. 깨어 있음의 훈련과 습관이 영성생활에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요즘 유행되는 향심기도, 비움기도, 명상기도등 모든 기도수행이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 깨어 있음의 훈련이요 습관화입니다. 참으로 의식적 지속적 한결같은, 끊임없는 분투의 노력을 요하는 깨어 있음의 영성훈련입니다.

 

참으로 희망하는 자가, 기다리는 자가 끝까지 깨어 살 수 있습니다. 바로 주님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의 대상, 기다림의 대상,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외로움, 그리움, 기다림 모두의 갈망에 대한 근본적 해답은 주님뿐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자만이 끝까지 깨어 있을 수 있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제가 날마다 밤 1시에 일어나 깨어 강론을 쓸 수 있음도 이런 주님께 희망을 두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 뵈올 희망에 설레는 마음으로 일어나 깨어 쓰는 매일 강론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고맙게도 “깨어 있어라”가 주제입니다. 주님으로 상징되는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이 말씀 명심하고 마음의 눈 크게 뜨고 마음의 귀 활짝 열고 깨어 있으라,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깨어 준비하고 기다림이 유비무환의 지혜입니다. 모두가 깨어 있되 공동체의 지도자는 더욱 그래야 합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진실로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참으로 오늘 지금 여기 제자리 꽃자리에서 깨어 제정신으로 제역할의 몫을 다하는, 제책임을 다하는 제대로의 삶이 바로 구원이요 하늘 나라의 실현임을 깨닫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 역시 우리에게 깨어 살라 주시는 기도 말씀처럼 들립니다.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처럼 여러분의 사랑도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며,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

 

그러니 주님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일일일생,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깨어 사는 훈련이요 습관입니다. 내일 9월부터는 영적으로 여름방학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깨어 살아야 하는 기도의 계절에 돌입합니다. 9월 순교자 성월, 10월 묵주기도 성월, 11월 위령성월, 그리고 대망의 기다림의 시기 대림시기입니다. 참으로 늘 깨어 참으로 사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이 거룩한 미사중 주님의 자비를 청합시다. 

 

“하느님, 우리 주의 어지심이.

 우리 위에 내리옵소서. 우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우리 손이 하늘 일에 힘을 주소서.”(시편90,17). 아멘.


[9/1(금) 연중 제21주간 금요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되새김 구절]

 

1. 진정으로 깨어있다는 것, 이 세상에만 시선을 두지 않고 이 세상 너머의 또 다른 세상,

영적인 세상, 하느님 나라를 꿈꾸며, 지속적으로 하느님의 얼굴을 찾음을 의미합니다.

 

우리 영혼은 성찰이 부족하면 쇠락되기 마련입니다.

오늘의 나에 결코 만족하지 말고 부단히 나를 돌아보고, 나를 갈고 닦으며, 이웃을 살펴보고,

세상을 직시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나가는 노력이야말로

깨어있음의 중요한 표현입니다.(양승국 신부)

 

2. 아무리 좋은 차도 기름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가기 위해서도 기름이 필요합니다. ‘선행, 회개, 겸손, 지혜의 기름을 채울 수만 있다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받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더러움 속에서 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살라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조재형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마태 24,45) 
 
주님!
당신께 속해 있는 종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제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에 따르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 되게 하소서!
제 자신을 형제들에게 양식으로 내어주게 하시고
그것이 당신께 대한 저의 충실함과 슬기로움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진실로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이수철 신부)

 

[9/1(금) 연중 제21주간 금요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제 251일 기도]

 

복음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하느님의 나라에 가기 위해서 기름이 필요합니다.

선행, 회개, 겸손, 지혜의 기름을 채울 수 있다면...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받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살라고 부르셨습니다. 

기름을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습니다. 

늘상 깨어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 2023년 9월1일(금) 14시2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