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9월 8일 금요일[(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3. 9. 8. 06:15

[매묵]2023년 9월 8일 금요일[(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성경에 동정 마리아의 탄생에 관한 내용은 없다. 그러나 성모 신심이 초대 교회 때부터 계속 이어지면서 동방 교회에서 먼저 이 축일을 지내기 시작하였다. 로마 교회는 예루살렘에 세워진 ‘마리아 성당’의 봉헌일(9월 8일)을 동정 마리아의 탄생 축일로 정하고, 7세기부터 기념하고 있다.

입당송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생을 기뻐하며 경축하세. 정의의 태양, 그리스도 우리 하느님을 그분이 낳으셨네.
<대영광송>

본기도

주님,
복되신 동정녀께서 성자를 낳으시어 저희 구원이 시작되었으니
동정녀 탄생 축일을 지내는 주님의 종인 저희에게
천상 은총의 선물을 내려 주시어
길이 참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 미카 예언서의 말씀입니다.5,1-4ㄱ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 그러므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주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리라.
그 뒤에 그의 형제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리라.
3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4 그리고 그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하느님께서는 뽑으신 이들을 미리 정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28-30
형제 여러분,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3(12),6ㄱㄴ.6ㄷ(◎ 이사 61,10ㄱ)
◎ 저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이다.
○ 저는 당신 자애에 의지하며, 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
○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님, 복되시나이다. 정의의 태양, 그리스도 우리 하느님을 낳으셨으니 온갖 찬미를 마땅히 받으시리이다.
◎ 알렐루야.

복음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1,1-16.18-23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8-23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신 성자께서
어머니의 순결을 손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거룩하게 하셨으니
저희가 성자의 인성으로 도움을 받고 죄에서 벗어나
주님 마음에 드는 제물을 바치게 하소서.
우리 주 …….
<또는>
주님,
저희가 기쁨에 넘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생을 기념하고
이 예물을 바치며 간절히 비오니
동정녀 몸에서 사람으로 태어나신 성자께 구원을 받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감사송

<복되신 동정 마리아 감사송 1 : 어머니이신 마리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하고
복되신 평생 동정 마리아 ( ) 축일에
아버지를 찬송하고 찬양하고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성모님께서는 성령으로 외아들을 잉태하시고
동정의 영광을 간직한 채
영원한 빛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낳으셨나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사들이 주님의 위엄을 찬미하고
주품천사들이 흠숭하며 권품천사들이 두려워하고
하늘 위 하늘의 능품천사들과 복된 세라핌이
다 함께 예배하며 환호하오니
저희도 그들과 소리를 모아 삼가 주님을 찬양하나이다.
<또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감사송 2 : 마리아의 노래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교회>
거룩하신 아버지,
모든 성인을 훌륭히 이끌어 주신 주님을 찬미하고
특히 저희가 기념하고 공경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노래로
주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주님께서는 땅끝에 이르기까지 큰일을 하시고
대대로 자비를 너그러이 베푸셨나이다.
비천한 종 마리아를 돌보시어
마리아를 통하여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구원자로 보내셨나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 앞에서 천사들의 군대가 영원히 기뻐하며
주님의 위엄을 흠숭하오니
저희도 환호하며 그들과 소리를 모아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이사 7,14; 마태 1,21 참조
보라, 동정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아드님이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거룩한 신비로 교회의 힘을 길러 주셨으니
저희가 온 세상의 희망이시며 구원의 서광이신
동정 마리아의 탄생일을 맞이하여 더욱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 주 …….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성 안나.

오늘의 묵상

1.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 나는 왜 성모 마리아께서 아담과 하와를 앞서시는 ‘첫 번째 피조물’이라 주장하는가?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입니다. 성경엔 성모님의 탄생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성모님의 탄생이 중요한 이유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성모님을 통해 당신 아드님이 탄생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당신 아드님의 어머니로서 성모님만큼 합당한 존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모님은 잉태된 순간부터 그리고 오늘 탄생한 순간부터 이미 그리스도를 위해 준비된 순결한 제물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독서의 로마서에서 보면 성모님께서 선택 받으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중략)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나지르인이 되게 하는 순서는 이렇습니다. ‘부르심 – 의롭게 하심 – 영광스럽게 하심’입니다. 먼저 부르시고 그들을 의롭게 하시며 결국엔 당신 영광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이것만 보면 ‘예정설’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앞에 이 말이 먼저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
    하느님은 아무나 부르시지 않으십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부르십니다. 그렇지만 세상에 살아보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당신을 사랑하는지 어떻게 아실 수 있으실까요?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모든 예언이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누가 당신을 사랑하게 될지 아셔서 그들을 당신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사랑이 없음이 죄입니다. 성모님은 사랑이 충만하셨기 때문에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모님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어서는 안 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어 그 후손들은 원죄를 지니기 때문에 사랑을 할 수 없는 상태로 태어납니다. 하느님께서 성모님을 선택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이유는 원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랑할 줄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영원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기로 예정되었던 분”(「구세주의 어머니」, 3항)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성모님은 원죄가 없기 위해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신학계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잘 받아들여 주지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성모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앞서는 첫 번째 피조물임을 주장해야 하는 이유는 사랑의 법칙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상태에서 자녀를 낳았을 때 순결한 자녀가 탄생할 수 있을까요? 카인이 태어납니다. 만약 죄를 짓기 이전에 카인을 낳았다면 카인은 살인자일 수 없을 것입니다. 다윗과 밧세바가 불륜을 저질러 자녀를 낳았다면 그 자녀가 온전할 수 있을까요? 태어나자마자 죽었습니다. 부모의 살과 피가 담기지 않은 자녀의 미래는 죽음 뿐입니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마스크 걸’(2023)이란 드라마가 있습니다. 김모미는 못생긴 얼굴로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게 사랑 받지 못하며 자랐습니다. 엄마도 이모도 모두 외모 때문에 사회에서 상처 받았지만, 그 상처를 감싸주지 못하고 그 닮은 점 때문에 더 싫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자신의 외모 콤플렉스를 감사로 승화 하지 못하면 그것이 자녀에게 전달될 것은 뻔한 일입니다. 모미는 또한 자살한 아빠를 닮았을 수도 있습니다. 
    모미는 이제 우리가 예상한 삶을 살아갑니다. 비극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인기 있는 연예인을 꿈꿉니다. 하지만 자라면서 외모가 발목을 잡습니다. 그래서 마스크를 씁니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마스크 걸의 인터넷 방송을 보고 흥분합니다. 모미는 그것을 즐깁니다. 모미는 자신이 그렇게 인기 있는 사람인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회사에서 인기 있는 상사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회사의 현실은 인터넷과 다릅니다. 그렇게 지나친 욕망 때문에 모미는 상사를 죽음에까지 몰아갑니다. 그리고 모미를 좋아하는 또 다른 외모 콤플렉스를 앓는 주오남이 그 뒤처리를 해 줍니다. 주오남은 자신이 모미의 살인을 덮어준다는 명목으로 모미를 범합니다. 그 와중에 주오남도 죽습니다. 
    모미는 주오남과 자신을 통해 태어난 아기를 자신에게도 쌀쌀하게 대했던 엄마에게 맡기고 성형수술을 하여 술집에서 일하게 됩니다. 원작에서 모미는 자기 엄마처럼 딸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이 딸이 있는데도 집안에 여러 남자를 들입니다. 모미는 엄마가 자기를 버릴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자기에게 관심이 없는 엄마를 증오합니다. 모미는 딸을 엄마에게 버려두고 일본으로 밀입국하려다 잡혀 감옥에 갇힙니다. 감옥에 있다가 보니 성형 부작용이 생겨 그것을 해결하려고 탈옥까지 합니다. 
    모미의 딸 미모는 잘 자랄 수 있을까요? 마치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에게서 나온 카인처럼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하고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이 죄의 굴레를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피입니다. 
드라마에서는 모미가 자기를 위해 대신 희생한 친구 김춘애 때문에 드디어 사랑을 알게 된다는 설정입니다. 모미가 주오남을 죽였음을 안 엄마 김경자는 모미도 똑같은 고통을 겪어보라며 미모를 괴롭히고 죽이려 합니다. 모미는 자수하여 감옥에 있었는데 이 사실을 알고는 딸을 살리기 위해 탈옥을 감행합니다. 그리고 딸을 위해 대신 죽습니다. 여기서 이 비극의 역사가 끝이 날 것입니다. 미모는 엄마의 피를 받아 자신이 귀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어 자존감 있게 잘 살아갈 것입니다. 
    사랑의 법칙은 단순합니다. 사랑을 받아야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할 수 없다면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구걸하다 결국 망해버립니다. 이 굴레를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를 사랑해주는 누군가의 피를 받는 것 뿐입니다. 만약 모미가 드라마에서 친구의 사랑을 받지 못했음에도 딸을 살리려고 탈옥을 하려는 설정을 했다면 개연성이 떨어질 것입니다. 하물며 성모님께서 성인 요아킴과 안나의 사랑을 받기는 하겠지만, 여전히 원죄에 물든 사랑을 받았다면 어떻게 예수님께 드릴 완전한 인성을 가질 수 있으실까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아담과 하와의 후예가 아닌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첫 번째 피조물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그래야 우리 자녀도 스스로 죄 없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피 흘림을 통해 죄가 사해지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됨을 인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라면 모든 사랑의 법칙이 무너집니다. 사랑은 받은 만큼 할 수 있고 그만큼 죄가 없는 순결한 인성을 지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성부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딸이 되시며 또한 성령의 궁전이 되시는 이 최고의 임무와 품위를 지니고 계신다. 이 뛰어난 은총의 선물로 마리아께서는 하늘과 땅의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 훨씬 앞서 계신다. 그러나 동시에 구원받아야 할 모든 사람과 함께 아담의 혈통 안에 결합되어 계신다.”(「교회헌장」, 53항)
    “지혜(마리아)는 창조를 위한 또 구원을 위한 중재자로 나타난다. 하느님의 첫 번째 피조물로서 자신 안에서 창조주의 원의를 발견하고 또 그 원의에 대한 합당한 응답도 함께 발견한다. 이 참된 응답의 모습이 신구약을 아우르는 참된 지혜의 모델이 되는 것이다. 지혜는 응답하고 그 응답은 하느님과 함께 마치 소꿉친구처럼, 애인처럼 하느님 가까이 머문다.” (요셉 라칭거, 시온의 딸, Jaca book, Milano 2006, 25)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9 10일은 어머니의 기일입니다. 2020년에 하느님의 품으로 갔으니 어느덧 3년이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코로나 팬데믹 중이어서 한국으로 가지 못하고, 뉴욕에서 교우들과 함께 연도를 바쳤습니다. 모든 어머니가 그렇겠지만 저의 어머니도 저를 무척 아끼고 사랑하였습니다. 사제서품을 받고 첫 본당에서 저는 유행성 출혈열에 걸렸습니다. 40도가 넘는 고열로 중환실로 갔습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병원에서 제가 퇴원할 때까지 함께 하였습니다. 의사선생님과 간호사 분들의 도움이 컸지만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과 간호로 저는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교구 인사이동으로 제가 가야할 본당이 정해지면 어머니는 저보다 먼저 본당으로 가서 제가 잘 지낼 수 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주임신부가 되어서 간 본당은 재정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교우들이 100명가량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함께 지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3년 동안 저를 위해서 식사를 준비해주었고, 청소와 세탁도 기꺼이 해 주었습니다. 본당에서 레지오 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이웃들을 방문하였습니다. 덕분에 아버님은 3년 동안 혼자서 지내야 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있었기에 동생 수녀님과 저는 건강하게 수도자와 성직자로 지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하느님의 나라에서도 저와 동생 수녀님을 위해서 기도하실 것입니다. 올해는 기일이 주일입니다. 교우들과 함께 연도를 바치려고 합니다.

 

오늘은 성모님의 생일입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었던 성모님은 9 8일에 태어나셨습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예수님을 낳으신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어머니가 그렇겠지만 성모님도 예수님을 무척 아끼고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성모님이 예수님의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성모님은 신앙인의 모범이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였습니다. 성모님은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말하였습니다. 성모님의 순명으로 하느님의 아들은 이 세상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성모님은 배려와 헤아림이 있었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성모님은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께 그 사실을 알려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지만 성모님의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성모님께 전구를 구하면 성모님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그랬듯이 우리들의 청을 예수님께 말할 것입니다. 성모님은 고통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성모님은 고통이라는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살았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길에 모자(母子)가 만났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 십자가의 길에 함께 하였습니다. 성모님은 숨지신 예수님을 품에 앉았습니다. 극심한 고통 중에도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였습니다.

 

성모님의 탄생을 생각하며 아름다운 기도인 성모찬송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모후이시며 사랑이 넘친 어머니, 우리의 생명, 기쁨, 희망이시여, 당신 우러러 하와의 그 자손들이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나이다. 슬픔의 골짜기에서 우리들의 보호자 성모님 불쌍한 저희를 인자로운 눈으로 굽어보소서. 귀양살이 끝날 때에 당신의 아들 우리 주 예수님을 뵙게 하소서, 너그러우시고, 자애로우시며 오! 아름다우신 동정 마리아님.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기도합시다. 하느님, 외아드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로써 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을 마련해 주셨나이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이 신비를 묵상하며 묵주기도를 바치오니 저희가 그 가르침을 따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성모님의 전구하심으로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이영근 신부 강론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예수님께서는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시몬의 배에 타시어 군중을 가르치시고 난 다음, 시몬에게 이르셨습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루카 5,4)

그러자 시몬이 말하였습니다.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루카 5,5)

일이 다 끝났는데도 굳이 다시 그물을 치는 일은 귀찮기도 한 일이었지만, 더 깊은 의미로, 그물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어부로서의 자신의 앎을 내려놓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고기가 없다는 것을 이미 밤새도록 확인한 그곳에 다시 그물을 친다는 것은 이미 경험을 통하여 확인한 앎을 내려놓는 일이었습니다. 고기 잡는 일에 있어서 프로였던 베드로는 그렇게 자신의 ‘앎’을 내려놓고 ‘말씀대로’을 따랐습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
(1코린 3,18)

그렇습니다. 

자신이 아는 것,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맞지 않다고 여기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에서 주님을 만나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끌어올린 그물에서 많은 고기와 함께 자신의 앎에 대한 한계도 깨달았고, 무엇보다도 많은 죄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합니다. 
“주님, ~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루카 5,8) 

참으로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이 죄 많은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그는 그물을 치기 전에는 예수님을 어떤 한 분 ‘스승’(5,5)을 만났을 뿐이었지만, 그물을 치고 난 다음에는 오직 한 분 ‘주님’(5,8)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에게 진정한 인격적인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의 ‘변화’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앎’을 버릴 때 찾아들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변화는 자신이 변화의 주체가 아니라 변화되는 대상이 될 때에 오게 됩니다.

곧 변화하는 존재가 아니라 변화되는 존재가 될 때 찾아들게 됩니다.

변화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응답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러기에 변화는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요, 회개 역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에 대한 수락에 의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앎’을 버리고 말씀을 수용할 때 생겨나는 은총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 변화를 원한다면, 우리의 ‘앎’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말씀을 수락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나의 배’가 필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이미 ‘주님의 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항해하는 주님의 배일 뿐인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루카 5,5)

 

주님!

제가 민낯으로 당신을 뵙고, 진정 죄인임을 깨닫게 하소서!

제 생각을 내려놓고 제 경험을 내려놓고, 당신의 말씀을 따르게 하소서.

제 앎을 내려놓고, 제 옳음을 내려놓고, 당신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게 하소서!

제가 변화의 주체가 아니라 변화의 대상임을 알게 하시고,

스스로 변화하는 존재가 아니라 당신으로 하여 변화되는 존재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내적 여정의 순례자들

 “함께와 홀로”

-예수님은 우리의 평생 유일한 가이드-  

 

어디서부터 강론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을 열어보니 국내외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갑니다. 어제처럼 만세오창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국민이 모두 주권을 행사하면 무정부상태가 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이 국무위원의 입에서 나오니 말 그대로 단세포적 전체주의적 사고입니다. “이념의 늪에서 민생을 구하겠습니다.”인터넷 뉴스를 보다 마음에 와닿은 말마디입니다. 정말 시급한 것이 민생이요 정치도 민생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념전쟁이 아닌 민생을 위한 전쟁이 절박합니다. 엊그제 받은 녹색평론 183호가 반갑고 기뻤습니다. 맨처음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근대문명은 쓰레기를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망가져버린 지구 물질대사 사이클의 한쪽에서는 물, 표토, 광물, 생물 등 기초적 자원들이 급격히 사라져가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처리되지 않는 쓰레기들이 더 빠르게 쌓여가고 있다.”

 

쓰레기들은 제가 요즘 부쩍 실감하는 현실입니다. 쓰레기를 치우는 원장수사에 물으니 수도원도 1주에 3회, 쓰레기를 치운다 했습니다. 쓰레기를 볼 때마다 깊은 좌절감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하루하루 먹고 살아간다는 것이 지구에 죄를 짓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말 안팎으로 쓰레기를 최대한 적게 내고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쓰레기들이 양산되는 시절 급기야 사람들도 쓰레기 취급을 받기도 하는 비일비재한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사람 자신도 쓰레기처럼 처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깨어 있어라!”

 

정말 작금의 타락한 현실에서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할 말마디입니다. 어제 수요일 베드로 광장에서 일반 알현시간 교황님의 몽골 방문 소감도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나는 얼마동안 아시아의 중심에 있었고 그것은 나에게 참 좋았다. 내가 몽골 사람들을 만났을 때 좋았던 것은 그들이 자신의 뿌리와 전통을 애호하고, 자신의 어른들을 존경하며 주위 환경과 잘 조화되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창조의 숨결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오염되기전 옛 모습도 이랬습니다. 정말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너무 많은 우리 현실이 마음 아프게 와닿습니다. 사상누각, 흡사 모래위의 집처럼 위태해 보이는 우리의 불안한 현실입니다. 어제 우리 수도원은 아랫집 수녀님들과 함께 가을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우리 수도원의 14명 형제들과 아랫집 수녀님들 10명이 자동차 셋에 분승하여 전번 삼척의 덕항산德項山에 소재한 환선굴에 이어 대금굴을 순례여정하듯 가을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5억 3천만년전에 생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덕항산속의 굴이었습니다. 

 

대금굴안에 흐르는 물소리는 얼마나 우렁찬지 흡사 세찬 강물 소리와도 같았고 폭포소리도 모습도 장관이었습니다. 12시부터 1시까지 무려 1시간 동안 걸었던 참 긴 강같은 굴이었습니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정말 내적 순례 여정을 상징하는 듯 한 1시간 동안 걸었습니다. 대자연의 신비앞에 저절로 대침묵이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수도원에 잔류한 세 수도형제들은 이런 체험을 아무리 설명해도 실감있게 와닿지 않을 것입니다. 

 

직접적 영적체험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됩니다. 저절로 대자연의 신비앞에 침묵중 공동체가 정화되고 일치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며칠전 미사 강론중 애국가를 부를 때 역시 공동체의 정화와 일치를, 또 얼마전 수녀원을 방문하여 고백성사를 드릴 때도 수녀원 대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느껴지는 수녀님들의 정화와 일치의 분위기도 연상되었습니다. 공동체의 지도자들도 갈라치기 싸움이나 분열이 아닌 공동체의 통합과 일치를 위해 힘씀이 마땅합니다. 무심코 한 말에 원장 수사의 솔직한 반응도 잊지 못합니다.

 

“산같은 정주의 수도원이라면, 수도승이라면 이런 정도의 대금굴같은 강을 지녀야 하지 않겠어요?”

 

제 말에 “저는 싫습니다. 너무 복잡하고 시끄러워 감당하기 벅찹니다.” 원장 수사의 즉각적인 답변이었습니다. 그런데 밖에서는 백두대간 태백산맥에 위치한 1070m 덕항산은 산속에 무려 큰 강같은 환선굴과 대금굴을 지니고 맑은물을 끊임없이 쏟아내니 놀랍기 짝이 없습니다. 저 역시 덕항산을 닮아 날마다 맑은 강물같은 강론을 쏟아내야 하겠다는 결심을 새로이 했습니다. 문득 예전에 써놓은 시가 생각납니다.

 

“푸른 산,

 맑은 물

 

 푸른 삶,

 맑은 영성

 

 산에

 가까울수록 

 흐르는 물은 맑고

 

 하느님께

 가까울수록

 흐르는 영성 또한 맑다.”-1997.4

 

말그대로 덕항산 속의 대금굴은  “산속의 강”같습니다. 마침 전에 인용했던 제 애송시에도 딱 맞는 모습입니다.

 

“밖으로는 정주의 산, 천년만년 

 끊임없이 한결같이 임 기다리는 산,

 

 안으로는 강, 천년만년

 끊임없이 한결같이 임향해 맑게 흐르는 강,

 산속의 강”

 

밖으로는 산, 안으로는 강, 산속의 강 같은 내적 여정의 삶, 제가 늘 소망하는 삶이요, 정말 이런 한결같은 내적 여정의 삶이라면 참 멋질 것입니다. 밖으로는 정주의 산, 성 베네딕도를 살고, 안으로는 강같은 성 프란치스코를 살라는 성 베네딕도회 이수철 프란치스코 수도사제로서 제 신원에 만족합니다. 바로 여기서 착안한 오늘 강론 제목, “내적 여정의 순례자들- 함께와 홀로-”입니다. 어제의 대금굴 가을 소풍은 혼자라면 의미도 없고 엄두도 못냈을 것입니다. 

 

24명이 함께, 내적 여정을 상징하는 가을 소풍에 주님을 찾는 내적 여정의 순례자들이 되어 떠났던 것입니다. 함께 하되 홀로의 순례 여정이었습니다. 또 내적 여정을 상징하는 대금굴 탐사 여정에는 가이드가 앞장 섰습니다. 새삼 내적 여정의 순례자들에게 필수적 전제 조건이 영적 가이드, 안내자임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함께와 홀로의 내적 여정의 순례자들인 우리의 평생 유일한 영적 가이드, 안내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시편23장이 고백하는 바로 우리의 영원한 착한 목자 예수님, 얼마나 큰 위로와 평화, 격려가 되는지요!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파아란 풀밭에 이몸 누여주시고,

 고이쉬라 물터로 나를 끌어주시니

 내 영혼 싱싱하게 생기 돋아라

 주께서 당신 이름 그 영광을 위하여,

 곧은 살 지름길로 날 인도하셨어라.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간다해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그 지팡이에, 시름은 가시어서 든든하외다.”

 

바로 착한 목자이자 최고의 영적 가이드 예수님을 은총의 선물처럼 만난 오늘 복음의 베드로 일행 어부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배에 오르신 다음 군중을 가르치신후 시몬에게 명령하시니, 주님의 개입이 참 은혜롭습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어디가 깊은 데입니까? 바로 주님이 함께 하시는 오늘 지금 여기 내 삶의 자리, 꽃자리가 깊은데입니다. 시몬의 대답이 참 솔직하여 마음에 와 닿습니다. 언뜻 영적 가이드 예수님을 알아챈 듯 스승님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영적 가이드 예수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밤새 노력을 다했지만 인생 바다에서 물고기가 아닌 허무만 가득 길어 올렸던 것입니다. 즉시 생각나는 시편127장 전반부 내용, 시몬 베드로는 아프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주께서 집을 아니 지어 주시면, 

 그 짓는 자들 수고가 헛되리로다.

 주께서 도성을 아니 지켜 주시면, 

 그 지키는 자들 파수가 헛되리로다.

 이른 새벽 일어나 늦게 자리에 드는 것도,

 수고의 빵을 먹는 것도 너희에게 헛되리로다.”

 

베드로는 신속히 주님의 명령에 순종했고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으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입니다. 바로 그 순간, 전광석화 베드로는 주님을 만났고 즉각적인 회개가 뒤따릅니다. 스승이자 주님이신 영원한 영적가이드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의 즉각적 응답에 주님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입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많은 사람입니다.”

주님의 거울에 비친 죄많은 자기 얼굴을 발견한 베드로의 즉각적 응답입니다. 주님을 만남으로 회개를 통해 참 자기 얼굴을 발견한 베드로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미련없이, 지체없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선 시몬을 위시한 어부들입니다. 이제부터 당신을 따르는 이들의 순례 여정에 영원한 영적 가이드가 된 주님입니다. 그대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의 영원한 순례 여정의 모델이 되는 예수님과 그 어부들입니다. 사람마다 주님을 따르는 양상은 다 다릅니다. 각자 공동체 삶의 자리에서 동료 순례자들과 함께 날마다 온맘과 온힘으로 새롭게 예수님을 따라 나서면 됩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의 콜로새 교회를 위한 기도는 그대로 이런 우리를 위한 기도가 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다음 이 기도대로 이뤄주시어 성공적 내적 순례 여정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든 영적 지혜와 깨달음 덕분에 하느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져,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면에서 그분 마음에 들고 온갖 선행으로 열매를 맺으며 하느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기를 빕니다. 또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에서 오는 모든 힘을 받아 강해져서,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 내기를 빕니다.”

 

바오로의 우리를 위한 간절한 기도에 이어 다음 말씀이 우리를 더욱 용기백배, 사기충천하여 내적 순례 여정 길을 걷게 하며,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콜로1,13). 아멘,


[9/8(금)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되새김 구절]

 

1. ‘부르심 – 의롭게 하심 – 영광스럽게 하심’입니다. 먼저 부르시고 그들을 의롭게 하시며 결국엔 당신 영광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이것만 보면 ‘예정설’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앞에 이 말이 먼저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전삼용 신부)
 
2. 오늘은 성모님의 생일입니다원죄 없이 잉태되었던 성모님은 9월 8일에 태어나셨습니다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예수님을 낳으신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의 탄생을 생각하며 아름다운 기도인 성모찬송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모후이시며 사랑이 넘친 어머니, 우리의 생명, 기쁨, 희망이시여, 당신 우러러 하와의 그 자손들이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나이다. 슬픔의 골짜기에서 우리들의 보호자 성모님 불쌍한 저희를 인자로운 눈으로 굽어보소서. 귀양살이 끝날 때에 당신의 아들 우리 주 예수님을 뵙게 하소서, 너그러우시고, 자애로우시며 오! 아름다우신 동정 마리아님.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기도합시다. 하느님, 외아드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로써 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을 마련해 주셨나이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이 신비를 묵상하며 묵주기도를 바치오니 저희가 그 가르침을 따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조재형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루카 5,5)

 

주님!

제가 민낯으로 당신을 뵙고, 진정 죄인임을 깨닫게 하소서!

제 생각을 내려놓고 제 경험을 내려놓고, 당신의 말씀을 따르게 하소서.

제 앎을 내려놓고, 제 옳음을 내려놓고, 당신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게 하소서!

제가 변화의 주체가 아니라 변화의 대상임을 알게 하시고,

스스로 변화하는 존재가 아니라 당신으로 하여 변화되는 존재가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예수님께서 시몬의 배에 오르신 다음 군중을 가르치신후 시몬에게 명령하시니, 주님의 개입이 참 은혜롭습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이수철 신부)

 

[9/8(금)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제258일 기도]

 

복음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부르심 – 의롭게 하심 – 영광스럽게 하심’입니다.

먼저 부르시고 그들을 의롭게 하시며 결국엔 하느님 영광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하느님의 명령에 순명하게 하소서.

하느님의 명령 외 다른 것들을 끊을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나와 동행하시는 임마누엘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 영광을 위해 살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9월8일(금) 5시5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