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10월 2일 월요일[(백) 수호천사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10월 2일 월요일[(백) 수호천사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주님의 모든 천사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찬송하고 찬양하여라.
본기도
놀라우신 섭리로 천사들을 보내시어 저희를 지켜 주시니
저희가 사는 동안 천사들의 보호를 받다가
마침내 천사들과 함께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23,20-2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0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21 너희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그의 말을 들어라.
그가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리니, 그를 거역하지 마라.
그는 내 이름을 지니고 있다.
22 너희가 그의 말을 잘 들어 내가 일러 준 것을 모두 실행하면,
나는 너희 원수들을 나의 원수로 삼고,
너희의 적들을 나의 적으로 삼겠다.
23 나의 천사가 앞장서서
너희를 아모리족, 히타이트족, 프리즈족,
가나안족, 히위족, 여부스족이 사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나는 그들을 멸종시키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가 가는 모든 길을 지켜 주시리라.
○ 지극히 높으신 분의 보호 아래 사는 이, 전능하신 분의 그늘 안에 머무는 이, 주님께 아뢰어라. “나의 피신처, 나의 산성, 나의 하느님, 나 그분께 의지하네.” ◎
○ 그분은 사냥꾼의 덫에서, 끔찍한 역병에서, 너를 구하여 주시리라. 당신 깃으로 너를 덮어 주시리니, 너는 그분 날개 밑으로 피신하리라. ◎
○ 그분 진실은 방패와 갑옷이라네. 너는 무서워하지 않으리라, 한밤의 공포도, 대낮에 날아드는 화살도, 어둠 속을 떠도는 역병도, 한낮에 창궐하는 괴질도. ◎
○ 너에게는 불행이 다가오지 않고, 네 천막에는 재앙이 얼씬도 못하리라. 그분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가 가는 모든 길을 지켜 주시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의 모든 군대들아, 그분 뜻을 따르는 모든 신하들아.
◎ 알렐루야.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8,1-5.10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의 천사들을 공경하며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언제나 천사들의 보호로 현세의 모든 위험을 이겨 내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저희는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천사들과 대천사들에게
더없는 사랑과 존경을 드리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영광과 위엄을 끊임없이 찬미하며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께서 만물 위에 가장 드높으신 분임을 드러내고 있나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 앞에서
천사들의 군대가 영원히 기뻐하며 주님의 위엄을 흠숭하오니
저희도 환호하며 그들과 소리를 모아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저의 하느님, 천사들 앞에서 당신께 찬미 노래 부르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이 성사로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주시니
천사들의 도움으로
저희가 평화와 구원의 길을 걷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수호천사 기념일
‘유레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풀었을 때를 뜻합니다.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을 때도 ‘유레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손님 신부님들이 신문사에 머물 때였습니다. 아침에 지하철역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고, 9시에는 운동을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지하에 하수관이 막혀서 물이 넘쳤습니다. 그때 저에게 ‘유레카’가 있었습니다. 24시간 막힌 하수관이나 싱크대를 뚫어 주는 회사가 있었는데 전화번호를 알았습니다. 전화를 했더니 8시까지 온다고 합니다. 기사 분이 큰 기계를 가져와서 막힌 하수관을 시원하게 뚫어 주었고, 저는 다른 일정을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신문기사에서 뜻밖에 좋은 글을 찾았을 때도 ‘유레카’라고 하겠습니다. 평화신문 9월 10일자 지면에서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갈등이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그 어원은 몰랐습니다. 갈은 칡나무를 뜻합니다. 등은 등나무를 뜻합니다. 칡나무는 왼쪽으로 꼬는 습성이 있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꼬는 습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칡나무와 등나무가 만나면 좀처럼 풀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내용을 읽으면서 갈등이 풀기 어렵구나라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이 역시 ‘유레카’입니다.
인간관계에도 참 많은 갈등이 있습니다. 교회는 인간관계를 꼬이게 하는 대표적인 것을 칠죄종이라고 합니다. 일곱 죄의 뿌리가 얽히고설키면 인간관계는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물론 하느님과의 관계도 멀어집니다. 대표적인 죄의 뿌리는 교만입니다.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교만 때문에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분노도 있습니다. 분노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인색이 있습니다. 부자라서 하느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유함에도 인색하기 때문에 하느님나라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시기가 있습니다. 시기 때문에 카인은 동생을 죽였고, 시기 때문에 사울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나태도 있습니다. 기름을 준비한 처녀는 신랑의 혼인잔치에 참석하지만 게으른 처녀들은 신랑의 혼인잔치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탐욕이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으며 함께 살아야 할 생명을 죽음으로 몰고 있습니다. 탐욕은 전쟁과 폭력의 원인이 됩니다. 식탐이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인병 중 대부분은 과식에서 시작됩니다. 음욕이 있습니다. 다윗은 음욕 때문에 충실한 부하 우리야를 죽음으로 내 몰았습니다. 이 갈등은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도 있었습니다. 이 갈등은 어쩌면 숙명처럼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이런 갈등을 해소하는 ‘유레카’는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겸손’을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누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회개와 겸손은 갈등을 풀어내는 열쇠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루카복음 15장은 ‘회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되찾은 동전, 되찾은 양 그리고 돌아온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유다와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배반의 결과는 달랐습니다.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베드로는 회개하였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한 베드로에게 교회를 맡겨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늘 ‘겸손’을 강조하셨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이는 꼴찌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은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천사는 날개가 달린 생명체가 아닙니다. 천사는 이웃에게 ‘유레카’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얽히고설킨 갈등을 풀어주는 사람이 수호천사입니다. 주변을 보면 이웃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수호천사입니다.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수호천사입니다. 오늘 하루 이웃을 위해서 ‘유레카’가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이웃을 위해서 ‘수호천사’가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2. 2023년 10월 02일 월요일
[수호천사 기념일] (사제 정진만 안젤로)
마태오 복음 18장의 전반부(1-14절)는 ‘작은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10절에서 언급된 ‘작은 이들’은 제자 공동체의 구성원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힘없고 약한 존재인데, 2-5절에서 등장하는 ‘어린이’와 비교됨으로써 제자들의 취약성이 확인됩니다.
작은 이들은 비록 나약하지만 하느님께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들을 염려하고 걱정하며,
그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천사들이(토빗 5,6-7.22; 사도 12,15 참조) 하느님의 얼굴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은 천상 세계에서 하느님의 시중을 드는(히브 1,14 참조) 높은 위치에 있는 이들로서
작은 이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고, 누군가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면 그들을 고발할 것입니다.
천사의 신원과 역할은 제1독서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천사를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천사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고 그들을 약속된 땅으로 인도하도록 하느님에게서 파견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천사의 말에 순종하도록 요구하셨습니다.
천사는 하느님의 전령으로서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 그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천사의 말에 따라 실행할 때 그들의 생명은 보호받을 것입니다.
수호천사 기념일에 온갖 유혹과 악에서 보호받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우리 각자의 수호천사에게 전구를 청합시다.
수호천사는 하느님 백성의 순례 여정의 동반자이며 보호자입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1001. 연중 제26주일.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마태 21,31)
가을이 익어갑니다. 우리의 믿음도 익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전례> ‘회개의 행동’와 ‘믿음의 행동’에로의 초대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마음의 뉘우침만 있는 회개가 아니라 ‘행실로 돌아오는 회개’와 말로만 고백하는 믿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행하는 믿음’에 대한 촉구입니다.
<제1독서>는 그릇된 견해로부터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 유배를 당하게 되자, 조상들의 죄 때문에 자신들을 벌하시는 하느님은 공정하지 않고 복수심이 많아 자신들을 멸하신다고 여기고 불신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에제케엘 예언자를 보내시어 그들을 그러한 그릇된 견해로부터 회개를 촉구합니다.
“이스라엘 집안아, 들어 보아라. 내 길이 공정하지 않다는 말이냐?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나는 누구의 죽음도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니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에제 18,27.32)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공동체의 불화에 대한 위험에 대해 경고하면서, 예수님의 낮춤과 순명의 삶을 모범으로 제시합니다. 곧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대한 순종으로 누리시는 영광을 필리피 신자들이 깨닫기를 촉구하며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5)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아들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왜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시게 된 것이지 그 상황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는 수석사제들과 원로 백성들의 재정수입과 권위에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무슨 권한으로 그런 일을 하는지 추궁하였고, 이에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권위에 대해 반문하시고 이를 대답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이 ‘두 아들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이는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고 말하는 아버지에게 “싫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지만 일하러 간 아들과, “가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서도 일하러 가지 않은 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석사제들과 원로 백성들에게 묻습니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마태 21,31)
예수님께서는 ‘누가 “예”라고 응답한 사람이냐?’고 묻지 않으시고,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는 “산상설교”의 마지막 말씀을 떠올려줍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한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아버지의 뜻”은 “예”라는 응답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응답에 따르는 ‘순명의 삶’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 당신의 양식’(요한 4,34)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야고보는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런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야고 2,17.26)라고 말합니다. 또한 우리의 사부 성 베네딕도는 “하느님의 계명을 매일 행동으로 채워라.”(4,63) 하시고, 창설자 베르나르도 똘로메이 성인은 ‘실행하지 않는 것은 말하지 않았으며, 말한 바는 모두 실행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실행’에 대한 주제를 대할 때면 언제나 떠오르는 사람이 있으니, 히틀러 암살에 연루되어 처형된 예언자적 신학자인 본회퍼입니다. 그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믿음은 행위 속에서만 믿음일 수 있다.”
비유를 마치시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마태 21,31)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너무도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당시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존경받는 이들이었고, 직업적, 형식적으로 이미 부르심에 응답한 의인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신의 잘못보다 남들의 허물을 바라보며 사는 이들이었습니다. 어쩌면 바로 우리가 그런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세리와 창녀들은 그 당시 천시를 받던 이들이었고, 드러난 자신의 죄를 항상 부끄럽게 여기며 사는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남들의 허물보다 자신들의 잘못을 바라보며 사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니, 파스칼이 말한 것처럼,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 곧 스스로 죄인이라고 여기는 의인들과 스스로 의인이라고 여기는 죄인들이 있습니다.”
그레고리오 교종은 이런 풍자를 들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천국에 가면, 놀랄 일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기 같은 죄인이 천국에 오다니 하고 놀라고, 둘째는 교황, 주교, 신부들, 독실하기로 유명했던 신도회장들이 천국에서는 보이지 않는데 놀라고, 셋째는 평소에는 소위 죄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천국에 많이 와 있는데 놀란다.”
이러한 말씀은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새게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도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마태 21,32) 끝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지 않겠느냐?”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마태 21,31)
주님!
당신의 뜻을 제 양식으로 삼고, 당신의 일을 완수하게 하소서.
응답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실행으로 믿음을 드러내게 하소서.
당신 말씀에 따라 생각을 바꾸고, 당신 의로움을 실행하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연중 제26주일.
-사랑하라, 배우라, 실천하라-
“극한기후에 과수 몸살... 품종, 재배, 보험 종합처방 시급”
금주 농민신문 일면 톱기사입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농사는 천하의 큰 근본이며, 나라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힘입니다. 추석을 앞두고 수확의 기쁨을 맛봐야 할 과수농가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합니다. 봄철 저온피해에 여름철 폭염, 집중호우가 9월까지 반복되면서 사과, 복숭아, 포도, 대추 등 과수에 병충해가 확산되어 수확할 게 없다고 아우성입니다.
톱기사 제목을 삶에 빗대어, “극한상황에 사람들 몸살...삶의 종합대책 시급”이라 말마디를 바꿔보니 그대로 통하는 듯 싶습니다. 과수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삶 역시 극심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여파로 너무 피폐해져있기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싶습니다. 참으로 깨어 전반적으로 삶을 추슬러야할 때입니다. 몇가지 예화를 나눕니다.
예전 피정지도중 미사를 드리기에 앞서 제의방에서 인사하고 나오려는 순간, 인사할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어, 잠시 당황했던 체험을 잊지 못합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인사할 “삶의 중심”인 십자가의 예수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제의 난감했던 순간도 잊지 못합니다. 신자 자매가 믿지 않는 분과 갑자기 내방했고 신자분은 말씀처방전을 써드렸는데 믿지 않는 자매는 성서를 아무리 찾아도 써드릴 말씀이 없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으니 성경 말씀 전체가 무의미하겠기 때문입니다. 결국 써드리기는 했지만 별 느낌이 없는 듯 했습니다. 예수님이 “삶의 중심”이라 고백하는 신자들에게 이런 불신자들과의 교류도 때로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10월1일은 주일이기에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1873-1897) 기념미사”는 봉헌하지 않습니다만 성녀의 임종어가 문득 생각납니다. 혼란하고 피폐한 삶을 추스르는데 임종어를 묵상함도 좋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임종어에 성녀의 삶전체가 요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897년 9월 30일 저녁, 만24세 꽃다운 나이에 병환으로 선종을 맞이한 성녀의 임종어입니다.
“나의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소명, 마침내 저는 그것을 찾았습니다. 제 소명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의 품 안에서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안에서 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주님 사랑으로 일관한 평생 아름답고 거룩한 삶이었음을 요약하는 임종어입니다. 작년에 선종하신 교황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의 “주님, 사랑합니다.”라는 임종어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임종어는 무엇이겠는지요? 얼마전 9월8일 선종한 개신교 종교학자 길희성 석학(碩學)의 임종순간의 일화도 소개합니다.
-‘이진권 목사님이 병상에 누워있는 선생님의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했을 때 선생님은 갑자기 두팔을 들어 허공을 몇 번 가리키시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셨다. 하지만 그중에 한마디는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사랑하셨던 에크하르트는 “우리 평생의 기도가 ‘감사합니다.’ 오직 하나라면 그것으로 족하다.”라고 했는데, 선생님은 그 말을 마지막 기도처럼 남기고 지난 8일 신비의 세계로 돌아가셨다.’-
아쉬운 것은 “주님, 감사합니다!”이면 좋았겠는데 “주님”이 없었다는 것이며, 우리로 하면 “신비의 세계”가 아닌 “주님곁”에로 돌아가셨다라고 하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 주어는 참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겠는지요?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선종시 이런 겸손하고 진실한 임종어로 주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표현하며 삶을 마감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러니 평소 한결같이 예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배우며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비로소 참삶에 참죽음이 선종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복된 선종을 맞이하기 위한 삶에 대한 구체적 처방입니다.
첫째, 사랑하라!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이웃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주님사랑과 이웃사랑은 함께 갑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저절로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니 늘 자나깨나 일편단심 온맘과 온맘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절로 나오는 늘 바쳐도 늘 감미로운 사랑의 고백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당신과 함께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오늘 복음의 두 아들의 비유에서 아버지의 명령에 “싫다” 했다가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나간 맏아들이 실제 아버지를 사랑했음을 봅니다. 맏아들이 상징하는바 세리와 창녀들이요 이들이 실상 예수님을 참으로 사랑하고 믿었던 이들임을 봅니다. 어제 저녁 성무일도시 시편 16장에 표현된 주님 사랑에 감동했습니다. 세리와 창녀들의 내면의 예수님 사랑과 신뢰가, 또 성녀 소화데레사와 많은 거룩한 신비가들이 이랬을 것입니다.
“깨달음을 내게 주신 주님을 기리오니,
밤에도 이 마음이 나를 일깨우나이다.
주님을 언제나 내 앞에 모시오니,
내 오른편에 계시옵기 흔들리지 않으오리다.
그러기에 내 마음 즐겁고 영혼은 봄놀고
육신마저 편안히 쉬오리니, 내 영혼을 명부에다 버리지 않으시리이다.”
둘째, 배우라!
우리의 영원히 배워야 할 참 스승은 파스카의 예수님뿐입니다. 평생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배움의 여정중에 있는, 평생 주님 사랑의 학교에서 재학중인 평생학인인 우리들입니다. 아무리 사랑을 배워도 영원히 초보자라는 자각이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더욱 분투의 노력을 하게 합니다. 바로 오늘 제2독서 필리피서 그리스도 비움 찬가에 우리가 배워야 할 그리스도 예수님의 진면목이 잘 드러납니다. 바오로 사도를 통한 주님의 감동적 가르침입니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이어지는 필리피서 2장6-11절 까지는 우리 수도자들이 매주 저녁기도 제1저녁기도(토요일)시 바치는 그리스도 찬미가입니다. 우리가 평생 배워야할 주님의 겸손과 순종의 사랑은 끝없는 감동을 선사합니다. 이보다 주님 사랑을 잘 드러내는 찬가도 없을 것입니다. 참 사랑은 끝없이 비워가는 겸손한 사랑임을 배웁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어 사람들과 같아지셨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극치, 하느님 비움의 극치, 하느님 겸손의 극치인 그리스도 예수님이야말로 우리가 영원히 평생 모시고 배워야 할 스승입니다. 아마도 하느님의 자기비움의 사랑의 극치를 체험한 분은 십자가의 예수님에 이어 피에타의 성모님일 것입니다.
셋째, 실천하라!
우리가 오매불망(寤寐不忘) 늘 그리워하고 사랑하여 우선적으로 선택할 분은 그리스도 예수님뿐이요 이런 예수님 말씀의 실천을 훈련하여 습관화하는 것입니다. 정말 말로만의 공허한 믿음이나 사랑이 아니라 실천으로 입증되는 믿음이요 사랑입니다. 속과 겉이 같은 언행일치의 믿음이요 사랑이니 이의 결정적 표현이 순교의 믿음, 순교의 사랑입니다. 어제 저녁 성무일도시 오늘 복음을 요약한 마리아의 노래 후렴이 생각납니다.
“나더러 주님, 주님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가게 되리라.”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이 복음의 맏아들이요 맏아들이 상징하는 바, 세리와 창녀입니다. 예수님의 다음 폭탄선언이 참 좋은 충격요법입니다. 당대의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뿐 아니라 오늘의 기득권을 지닌 교회 지도자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요한이 너희에게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아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오늘 지금부터입니다. 늘 새롭게 시작하는 회개의 삶입니다. 오늘은 군인주일입니다. 우리는 제대가 없는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군인, 주님의 전사입니다.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에 주님의 영적 전사인 우리들에게 늘 깨어 새롭게 시작하는 회개의 삶은 필수입니다. 과거 아무리 잘 살았어도, 영적전투를 잘 했어도 지금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과거 의인이었느냐 악인이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행태가 중요합니다.
제1독서 에제키엘서 말씀대로 의인이 정의를 버리고 변절하여 불의를 저지르면 죽을 것이요, 악인이라도 참으로 회개하여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입니다.그러니 늘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삶의 중심인 예수님 안에서 회개하여 초발심의 자세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배우고, 주님의 말씀을 새롭게 실천하는 것입니다.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님 파 주님의 믿음과 사랑의 전사로 늘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
[10/2(월) [수호천사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오늘은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천사는 날개가 달린 생명체가 아닙니다. 천사는 이웃에게 ‘유레카’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얽히고설킨 갈등을 풀어주는 사람이 수호천사입니다. 주변을 보면 이웃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수호천사입니다.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수호천사입니다. 오늘 하루 이웃을 위해서 ‘유레카’가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이웃을 위해서 ‘수호천사’가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조재형 신부)
2.수호천사 기념일에 온갖 유혹과 악에서 보호받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우리 각자의 수호천사에게 전구를 청합시다.
수호천사는 하느님 백성의 순례 여정의 동반자이며 보호자입니다.(정진만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마태 21,31)
주님!
당신의 뜻을 제 양식으로 삼고, 당신의 일을 완수하게 하소서.
응답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실행으로 믿음을 드러내게 하소서.
당신 말씀에 따라 생각을 바꾸고, 당신 의로움을 실행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제1독서 에제키엘서 말씀대로 의인이 정의를 버리고 변절하여 불의를 저지르면 죽을 것이요, 악인이라도 참으로 회개하여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입니다.그러니 늘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삶의 중심인 예수님 안에서 회개하여 초발심의 자세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배우고, 주님의 말씀을 새롭게 실천하는 것입니다.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님 파 주님의 믿음과 사랑의 전사로 늘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수철 신부)
[10/2(월) [수호천사 기념일] , 제282일 기도]
복음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수호천사는 나의 동반자이며 보호자입니다.
온갖 유혹과 악을 수호천사가 먼저 차단함에 감사합니다.
나의 구원을 위해 애쓰는 수호천사에게 감사합니다.
- 2023년 10월2일(월) 8시2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