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30 글/시]인간은 이 세상에 다섯번 태어난다(안병욱)/인생은 다 바람같은 거야(법정)
2023년 10월30일(월) 오늘의 글/시]
인간은 이 세상에 다섯번 태어난다.
첫째번의 탄생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의 생명生命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생물학적 탄생이다. 이것은 하나의 운명이요,
타의他意요, 섭리攝理요, 불가사의不可思議다.
나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어떤 운명이, 어떤 존재가,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이 세상에 내어 던진 것이다.
실존 철학자의 말과 같이 우리는 이 세상에 내 던져진 존재다.
인간은 타의에서 시작하여 타의로 끝난다.
나의 탄생도 타의요, 나의 죽음도 타의다.
인생에는 他意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
생물학적 탄생에서 나의 존재가 시작한다.
우리는 이 탄생을 감사 속에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번의 탄생은 사랑(愛)할 때다.
한 남성이 한 여성을, 한 여자가 한 남자를 깊이 사랑할 때
우리는 새로운 생을 발견하고 체험한다.
사랑은 도취요, 황홀이요, 환희요, 신비神秘다.
이 세상에서 이성異姓에 대한 사랑처럼 강한 감정이 없고
뜨거운 정열이 없고, 아름다운 희열이 없다.
사랑할 때 우리는 즐겁고 새로운 인생을 경험한다.
사랑 앞에는 양심도 침묵하고, 이성도 무력하고,
도덕도 빛을 잃고, 체면도 무너진다.
그만큼 사랑은 강强하다.
사랑은 어떤 때는 죽음보다도 강하다.
신神이 인간에게 준 축복 중에서 가장 큰 축복이다.
그러나 사랑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
불나비가 불 속에 뛰어들어 스스로의 생명을 끊듯이
사랑 때문에 파멸하는 경우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사랑을 슬기롭게 관리해야 한다.
세번째의 탄생은 종교적宗敎的 탄생이다.
하느님을 알고, 신을 체험하고 절대자를 만나고
초월자超越者 앞에 설 때다.
그것은 종교적 탄생이다. 그것은 생의 심화요,
삶의 혁명이요, 존재의 중생이다.
그것은 낡은 자아自我가 죽고 새로운 자아가 다시 태어나는 신생新生이요,
소아小我가 대아大我로 비약하는 존재의 큰 변화다.
누구나 이러한 탄생을 쉽게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적인 탄생을 체험하지 않고 생을 마치는 사람이 허다하다.
그것은 감사感謝의 생이요, 참회懺悔의 생이다.
네번째의 탄생은 죽음 앞에 설 때다.
죽음은 生의 종말終末이요, 존재의 부정否定이요,
인생의 종지부終止符요, 일체가 끝이 나는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無로 돌아가는 것이요,
사랑하는 모든 것과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다.
죽음에는 허무감이 따르고 공포감이 따르고 절망감이 따른다.
죽음은 예외 없이 우리를 찾아오고 예고 없이 우리를 엄습한다.
죽음은 인간의 가장 으뜸 가는 한계 상황이다.
죽음 앞에 선다는 것은 나의 종말 앞에 서는 것이요,
허무虛無 앞에 서는 것이요, 한게限界 앞에 서는 것이다.
죽음을 심각하게 느낄 때
우리의 생은 엄숙해지고, 진지해지고, 깊어진다.
투철한 사생관死生觀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깊은 生을 살 수 있다.
마지막의 탄생은 철학적哲學的 탄생이다.
자기의 使命을 발견하고 자각할 때다. 그것은 철학적 탄생이다.
나는 이것을 위해서 살고 이것을 위해서 죽겠다고 하는
투철한 사명감을 가질 때
우리의 생은 심원深遠해지고 성실해지고 확고確固해진다.
인간생애人間生涯의 최고의 날은 자기의 사명使命을 깨닫는 날이다.
인간은 사명적 존재이다.
나의 생명生命이 나의 使命을 만날 때
나는 비로소 나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성숙한 자아自我로 성장한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이냐, 어떻게 살 것이냐,
이것은 인생의 근본적인 물음이다.
이 물음에 대하여 명확한 대답을 주는 것이 사명감使命感이다.
인간의 자각自覺 중의 가장 중요한 자각은 자기 사명의 자각이다.
자기 사명을 자각할 때 나는 비로소 진정한 자기自己가 된다.
생리적生理的 탄생에서 나의 존재가 시작한다.
사랑과 신, 죽음과 사명은 나의 인생에
새로운 탄생과 새로운 빛을 가져온다.
安秉煜 1920년 ~2013년
대학교수/철학자/수필가
인생은 다 바람같은 거야
다 바람같은 거야.
뭘 그렇게 고민하는 거니?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 순간이야.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 바람이고
오해가 아무리 커도 비바람 이야.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일 뿐이야.
폭풍이 아무리 세도 지난뒤엔 고요하듯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돌지.
다 바람이야. 이 세상에 온 것도
바람처럼 온다고 이 육신을 버리는 것도
바람처럼 사라지는 거야.
가을 바람 불어 곱게 물든
잎들을 떨어 뜨리 듯덧없는 바람 불어
모든 사연을 공허하게 하지.
어차피 바람일 뿐 인걸
굳이 무얼 아파하며 번민하리
결국 잡히지 않는게 삶인 걸
애써 무얼 집착하리
다 바람인거야.
그러나 바람 그 자체는 늘 신선하지
상큼하고 새큼한 새벽바람 맞으며
바람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바람처럼 살다 가는게 좋아
<법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