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11월 18일 토요일[(녹) 연중 제32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11월 18일 토요일[(녹) 연중 제32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입당송
주님, 제 기도 당신 앞에 이르게 하소서. 제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본기도
저희에게 해로운 것을 모두 물리쳐 주시어
저희가 평안한 몸과 마음으로
자유로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18,14-16; 19,6-9
14 부드러운 정적이 만물을 뒤덮고 시간은 흘러 한밤중이 되었을 때
15 당신의 전능한 말씀이 하늘의 왕좌에서
사나운 전사처럼 멸망의 땅 한가운데로 뛰어내렸습니다.
16 그는 당신의 단호한 명령을 날카로운 칼처럼 차고 우뚝 서서
만물을 죽음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가 땅 위에 서니 하늘까지 닿았습니다.
19,6 당신의 명령에 따라 온 피조물의 본성이 저마다 새롭게 형성되어
당신의 자녀들이 해를 입지 않고 보호를 받았던 것입니다.
7 진영 위는 구름이 덮어 주고
물이 있던 곳에서는 마른땅이 나타나는 것이 보였으며
홍해는 장애물이 없는 길로,
거친 파도는 풀 많은 벌판으로 바뀌었습니다.
8 당신 손길의 보호를 받는 이들은 그 놀라운 기적을 보고
온 민족이 그곳을 건너갔습니다.
9 그들은 풀을 뜯는 말들 같았습니다.
또 어린양들처럼 이리저리 뛰면서
주님, 자기들을 구해 내신 당신을 찬양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이 이루신 기적을 기억하여라.
○ 그분께 노래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그 모든 기적 이야기하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자랑하여라.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
○ 그분은 그 땅의 모든 맏아들을, 모든 정력의 첫 소생을 치셨네. 이스라엘이 은과 금을 들고 나오게 하셨네. 그 지파들에는 낙오자가 없었네. ◎
○ 당신 종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거룩한 말씀 기억하셨네. 당신 백성을 기쁨 속에, 뽑힌 이들을 환호 속에 이끌어 내셨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하느님이 복음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차지하게 하셨네.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8,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2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3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4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5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6 주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7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이 제사를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성자의 수난을 기념하며
믿음과 사랑으로 그 신비를 따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
<또는>
루카 24,35 참조
빵을 나눌 때, 제자들은 주 예수님을 알아보았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저희가 성체로 힘을 얻고 감사하며 자비를 바라오니
저희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성령의 힘으로 저희 삶을 변화시켜 주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2023년 11월 18일 토요일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김상우 바오로) 강론
오늘 복음의 요점은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입니다.
그런데 무턱대고 기도만 많이 하는 것이 언제나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복음에서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달라고 청하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성경 전통에 따르면, 과부는 사회적 약자를 대표합니다.
한편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재판관은 과부의 청을 마지못하여 들어줍니다.
그는 과부가 자신을 계속 귀찮게 할 것 같아 이기심에서 청을 들어줍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이러한데, 하물며 정의로우시고 선하신 하느님께서는 자녀들의 청을 얼마나 잘 들어주시겠는가 하는 것이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자주 내가 바라는 것을,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내가 바라는 때에 이루어지게 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차려진 밥상 위에 숟가락 하나 얹듯이, 하느님께서는 내가 미리 정하여 놓은 답을 들어주시면 된다는 식입니다.
물론 하느님께 끊임없이 청하는 모습도 신앙생활에서 중요하지만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 청원이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맞는지, 내 기도가 이기심을 충족시키려는 수단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올바른 방향성 없이 열심히만 기도하는 것이 최고라고 판단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잘못된 방향과 건강하지 못한 지향으로 무조건 많이 기도할 경우, 정상적인 길에서 더 빨리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도할 때 두 가지를 명심하여야 합니다.
첫 번째로 올바른 지향으로 기도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기도는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강론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가해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루카 18,1-8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라!
오늘 예수님께서는 집요하게 졸라대는 과부의 비유를 통해 우리의 기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자들과 우리에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가르침의 요지는 간단합니다.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라!
낙심(落心)이라는 단어가 참 재미있습니다.
떨어질 락에 마음 심자입니다. 마음이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뭔가 추구하던 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맥이 풀리고 마음이 상함을 의미합니다.
그런 경우 많이 체험하실 것입니다.
한 가지 특정한 목표를 정해놓고, 9일 기도를 넘어 54일 기도를 바친다든지, 한 달 내내 새벽 미사를 다닌다든지,
정말 열심히 기도했지만, 목적했던 바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을 때,
우리는 그야말로 낙심(落心)합니다.
지향이 적당한 것이면 청이 수락되지 않아도 그려러니 할텐데, 심각한 문제라면, 누군가의 일생이 달려있고,
생사가 좌지우지되는 문제라면, 낙심 정도가 아니라 마음이 산산조각 부서지고 깨어지는 느낌일 것입니다.
요즘 주변을 둘러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낙심하며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낙심을 넘어 좌절하고 절망하고, 포기하고 울부짖습니다.
더이상 한 발자국도 나아갈 힘도 없어, 엎어져 있습니다.
이런 우리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조금 더 힘을 내어보라 초대하십니다.
지금 하루 두 시간 기도하고 있는 우리에게, 그것으로 부족하다, 밤낮으로 부르짖어보라고 요구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루카 18,7)
따지고 보니 지금 우리가 바치는 기도에 조금 더 추구될 사항이 있습니다.
보다 간절함입니다.
보다 절박함입니다.
그냥 간절한 기도가 아니라 목숨을 건 간절한 기도입니다.
육체는 물론 지니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총동원한 기도, 정신과 영혼, 일생 전체를 건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런 기도를 바치는 과정에서 주님께서 내 가까이 현존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내 기도의 지향이 정말 올바르고 순수한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청원의 수락 여부보다는 나와 하느님 사이에 주고받는 친밀한 대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이루어지는 진솔한 대화, 그것이 얼마나 좋은 기도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어제 복음에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사람의 아들의 날'에 대한 때와 장소와 방식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이어서 오늘은 재림을 맞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의 때에 벌어질 일을 물과 불에 의해 멸망하게 된 구약의 두 사건, 곧 노아(창세 6-7장)와 롯(창세 19장) 때와 같을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재림’의 준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노아와 롯의 시대에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노아 때에 대해서,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갔음을 말하고 있을 뿐, 특별한 죄나 부패를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은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사랑에 소극적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죄가 아니라, 그들이 장차 일어날 일에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오직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는 일에만 몰두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들처럼 비록 죄를 짓지 않는다하더라도 자신들의 인간적인 세속의 삶에 빠져 주님을 알려하지도, 하느님을 경외하지도, 하느님의 의로움을 구하지도 않고, 타자를 향해 자신을 내놓은 사랑을 실현하지 않으면, 멸망을 당하리라는 말씀입니다.
마태오복음 25장의 ‘심판의 비유’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들이 사랑하지 않았음이 문제였음을 말해줍니다(마태 25,31-47).
한편 롯의 때에는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불과 유황으로 멸망당하였습니다.
롯도 노아와 마찬가지로 장차 닥쳐올 재앙을 미리 알고서 소돔을 떠나는 조처를 취하고 구원받을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집안에 있는 세간 곧 소유물에 대한 애착으로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루카 17,33)
결국 이 두 이야기는 ‘사람의 아들의 날’을 미리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곧 먹고 마심과 자신의 소유와 목숨의 보존에 매이지 말고, 그 때를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의 삶이 어디를 향하고, 누구를 향하여 있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곧 죽음을 향하여 있는지, 생명을 향하여 있는지를 보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루카 17,37)
<오늘의 말·샘 기도>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루카 17,33)
주님!
제 자신이 아니라 당신을 향하여 살게 하소서.
제 삶이 썩어 부패한 시체의 삶이 되지 않게 하소서.
당신 말씀이 살아 팔딱거리는 생명의 삶이 되게 하소서.
자신의 보존을 향한 죽음의 삶이 아니라, 타인을 향하여 자신을 내어주는 생명의 삶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무지에 대한 답은 주님이시다-
"네 근심 걱정을 주께 맏겨드려라
그분이 너를 붙들어 주시리라.
의인이 흔들리게 버려둘리 없으리라."(시편55,23)
오늘은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입니다. 어제의 젤투르다 성녀와 13세기 동시대 분입니다. 24년 동안 성녀의 짧은 생애를 일별해 보니 헝가리 국왕의 공주로 태어났지만 이보다 복잡하고 기구하고, 불쌍하고 불행하고 불우한 성인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생 지옥같은 절망의 시궁창에 뿌리 내린 연꽃같은 청순한 사랑과 지혜의 성녀였습니다. 말그대로 지옥같은 환경 속에서 천국을 산, 영적승리의 삶을 산 성녀였습니다.
고작 24세로 선종했지만 참으로 가난과 겸손, 깊은 사랑의 감동적인 삶을 사셨고, 빵제조업자와 빵집, 그리고 자선사업기관과 작은 형제회 재속 제3회의 수호성인으로 독일인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성녀입니다. 성녀의 영성지도 신부였던 콘라드의 증언입니다.
“이 여인만큼 관상에 깊이 젖어 들어간 이를 일찍이 본적이 없다. 수사들과 수녀들이 여러번 목격했듯이 그녀가 기도의 은밀함에서 나올 때 그 얼굴은 광채로 빛났고 그 눈에서 태양 광선과 같은 빛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하느님의 빛이 마음속 어둠을 몰아냅니다. 지혜의 빛, 말씀의 빛이 무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어제는 지혜를 사랑하자는, 지혜 예찬에 대한 강론이었습니다. ‘정주의 지혜’라 명명했듯이 정주의 사랑, 정주의 지혜입니다. 조선시대의 집중 최고는 지리산에 자리잡은 남명 조식의 산천재山天齋라 하며 이에 대한 내용을 일부 인용합니다. 남명 조식은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뤘던 대학자였습니다.
-이상하게 지리산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리산에 가면 그냥 코가 찡해진다. 그 덩치가, 그 느림이 감격스러우며, 그 골격이 감격스럽다. 무엇보다도 싫은 내색, 좋은 내색 전혀 없이 사람을 턱 하고 안아주는 품이 감격스럽다. 그래서 지리산 근처에만 가도 마음이 푸근해지며, 사람으로 태어나 이왕이면 지리산의 품 정도는 되어야 하지 하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그 지리산 천왕봉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바로 남명의 집, “산속에 하늘이 담긴 집”이란 산천재가 있다. 조선시대의 집중 최고가 산천재다. 남명 조식은 하늘을 담은 산이었고, 산에 담기는 하늘이었다.’(집의 미래;임형주, 노은주 23쪽)-
저는 말을 바꾸어 한국 수도원중 최고는 불암산 정상이 가장 잘 보이는 요셉 수도원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산천재란 뜻대로 “산속에 하늘이 담긴 수도원”이요 여기서 평생 정주의 삶을 살아가는 수도자들은 ‘산속에 하늘을 담은 사람들’입니다. 하늘이신 하느님을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로 하느님의 지혜와 사랑을 담은, 닮은 사람들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제 자작 애송시 ‘하늘과 호수’입니다. 하늘을 담은 산도 있지만 하늘을 담은 호수도 있습니다.
“나무에게 하늘은 가도가도 멀기만 하다
아예 고요한 호수가 되어 하늘을 담자”-1997.2
요즘 몇 년동안 제가 즐겨 읽는 책들은 위인들의 평전이나 자서전입니다. 이분들의 사랑과 지혜를 배우기 위함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존경하는 분이 누구냐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망설임 없이 아버지라 말 할 것’이란 분의 부모에 대한 감동적인 일화도 나누고 싶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직장 때문에 주말 부부로 떨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내와 아이들만 있는 집에 도둑이 들어 아끼던 패물들을 모두 도둑맞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 당황하며 남편에게 찾아가 소중한 패물 모두를 도둑이 가져 갔다고 이야기합니다. 지긋이 아내를 바라보던 남편은 아내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합니다. 얼마후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보석 가게였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말합니다.
“당신의 맘에 드는 반지와 목걸이를 모두 사줄 테니, 도둑맞은 물건에 대하여 속상해하지 마시오. 어떠한 보석도 당신보다 소중한 것은 없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저의 어머니와 아버지입니다. 40년 전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지금도 제 가슴에 새겨 있는 부모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경계에서;김성진 187쪽)
그대로 사랑이 지혜임을 깨우쳐 주는 감동적 일화입니다. 오늘 역시 미사 독서와 복음은 무지에 대한 답은 지혜임을 알려 줍니다. 좀더 분명히 하면 무지에 대한 답은 지혜의 원천이신 하느님이며, 하느님의 지혜이신 예수님입니다. 오늘 제1독서 지혜서는 자연숭배의 어리석음에 대해 말합니다. 자연의 신격화, 자연의 우상숭배야 말로 무지의 소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작자는 무지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립니다.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찬 사람들은 본디 모두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을 알아보지 못하였다...눈에 보이는 것들이 하도 아름다워 그 겉모양에 정신을 빼앗기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용서받을 수는 없다. 세상을 연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더 일찍 찾아내지 못하였는가?”
무지의 악, 무지의 죄, 무지의 병에 대한 책임은 궁극으로 그 자신에 있다는 엄중한 말씀입니다. 이래서 지혜 사랑, 지혜 공부, 지혜 훈련입니다. 바로 이런 자연숭배자에 대한 답이 오늘 화답송 시편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한 지혜와 사랑의 시편작가입니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말하고, 창공은 그분의 솜씨를 알리네.
낮은 낮에게 말을 전하고, 밤은 밤에게 앎을 전하네.”
이와는 대조적으로 복음은 일상의 삶에서 무지의 육적 욕망의 탐욕에 빠진 이들의 멸망에 대해 말합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깨어 있는 자들과는 반대로 이들은 현세의 것들에 깊이 중독된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잊고 세상 것들에 빠져 중독되어 살다보면 괴물도 되고 급기야 폐인도 되는 경우 얼마나 많은지요!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반복되는 역사같아 마음이 섬뜩해 집니다. 물과 불의 심판 다음엔 무엇일까요. 인간의 무지와 무절제의 탐욕으로 인한 대량소비와 무한한 쓰레기들로 공동의 집인 지구의 병이 날로 깊어지니 말입니다.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세상 것들에 집착하여 뒤돌아 보다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깨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똑같은 자리에서의 삶인데 내적 상태는 이렇게 달랐다는 것입니다. 내적으로 깨어 있는 영혼은 구원이지만 생각없이, 영혼없이 살아 온 이들에겐 자업자득, 버림받는 심판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마지막 제자들과 예수님이 주고 받는 말씀도 오늘 우리에게 주는 화두입니다.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그 누구도 하느님의 심판을 빠져나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뜻합니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疎而不失), 천지 자연의 법칙은 광대하여 엉성한 듯 보이지만, 악인에게 벌을 주는 일은 빠뜨리지 않는다는 말씀도 생각납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직답을 피합니다.
한마디로 죽은 시체처럼 살지 말고, 오늘 지금 여기 삶의 꽃자리에서 주님과 함께, 깨어 본질적 깊이의 맑고 향기로운, 지혜롭고 투명한 삶을 살라는 말씀이겠습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지혜뿐입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지혜의 원천이신 하느님이자 하느님의 지혜이신 예수님뿐이며 이 거룩한 미사 또한 답이 됩니다. 평생 영성교육에 매일미사보다 더 좋은 공부도 없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사랑과 지혜 가득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하느님, 내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내 안에 굳센 정신을 새로 하소서."(시편51,12). 아멘.
- 11/19(토)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되새김 구절
1. 기도할 때 두 가지를 명심하여야 합니다.
첫 번째로 올바른 지향으로 기도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기도는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김상우 신부)
2.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루카 18,7)
육체는 물론 지니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총동원한 기도, 정신과 영혼, 일생 전체를 건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런 기도를 바치는 과정에서 주님께서 내 가까이 현존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내 기도의 지향이 정말 올바르고 순수한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청원의 수락 여부보다는 나와 하느님 사이에 주고받는 친밀한 대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이루어지는 진솔한 대화, 그것이 얼마나 좋은 기도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양승국 신부)
3.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루카 17,33)
주님!
제 자신이 아니라 당신을 향하여 살게 하소서.
제 삶이 썩어 부패한 시체의 삶이 되지 않게 하소서.
당신 말씀이 살아 팔딱거리는 생명의 삶이 되게 하소서.
자신의 보존을 향한 죽음의 삶이 아니라, 타인을 향하여 자신을 내어주는 생명의 삶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세상 것들에 집착하여 뒤돌아 보다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깨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똑같은 자리에서의 삶인데 내적 상태는 이렇게 달랐다는 것입니다. 내적으로 깨어 있는 영혼은 구원이지만 생각없이, 영혼없이 살아 온 이들에겐 자업자득, 버림받는 심판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수철 신부)
11/19(토)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제329일 기도
복음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으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정신과 영혼, 일생 전체를 건 간절한 기도를 끈질기게 하게 하소서.
주님께서 내 가까이 현존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하소서.
내 기도의 지향이 정말 올바르고 순수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소서.
청원의 수락 여부보다는 나와 하느님 사이에 주고받는 친밀한 대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이루어지는 진솔한 대화, 그것이 얼마나 좋은 기도인지를 깨닫게 하소서.
- 2023년 11월18일(토) 6시5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