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11월 23일 목요일[(녹) 연중 제33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3. 11. 23. 07:38

[매묵]2023년 11월 23일 목요일[(녹) 연중 제33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홍] 성 클레멘스 1세 교황 순교자 또는
[백] 성 골룸바노 아빠스

입당송

예레 29,11.12.1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재앙이 아니라 평화를 주노라. 나를 부르면 너희 기도를 들어 주고, 사로잡힌 너희를 모든 곳에서 데려오리라.

본기도

주 하느님,
저희를 도와주시어
언제나 모든 선의 근원이신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섬기며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계약을 따를 것이오.>
▥ 마카베오기 상권의 말씀입니다.2,15-29
그 무렵 15 배교를 강요하는 임금의 관리들이
모데인에서도 제물을 바치게 하려고 그 성읍으로 갔다.
16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이 그 관리들 편에 가담하였지만
마타티아스와 그 아들들은 한데 뭉쳤다.
17 그러자 임금의 관리들이 마타티아스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이 성읍의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존경을 받는 큰사람이며
아들들과 형제들에게도 지지를 받고 있소.
18 모든 민족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처럼,
당신도 앞장서서 왕명을 따르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 아들들은 임금님의 벗이 될 뿐만 아니라,
은과 금과 많은 선물로 부귀를 누릴 것이오.”
19 그러나 마타티아스는 큰 소리로 대답하였다.
“임금의 왕국에 사는 모든 민족들이 그에게 복종하여,
저마다 자기 조상들의 종교를 버리고
그의 명령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20 나와 내 아들들과 형제들은 우리 조상들의 계약을 따를 것이오.
21 우리가 율법과 규정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소.
22 우리는 임금의 말을 따르지도 않고
우리의 종교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겠소.”
23 그가 이 말을 마쳤을 때, 어떤 유다 남자가 나오더니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왕명에 따라 모데인 제단 위에서 희생 제물을 바치려고 하였다.
24 그것을 본 마타티아스는 열정이 타오르고 심장이 떨리고 의분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달려가 제단 위에서 그자를 쳐 죽였다.
25 그때에 그는 제물을 바치라고 강요하는 임금의 신하도 죽이고
제단도 헐어 버렸다.
26 이렇게 그는 전에 피느하스가 살루의 아들 지므리에게 한 것처럼,
율법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27 그러고 나서 마타티아스는 그 성읍에서 “율법에 대한 열정이 뜨겁고
계약을 지지하는 이는 모두 나를 따라나서시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28 그리고 그와 그의 아들들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성읍에 남겨 둔 채
산으로 달아났다.
29 그때에 정의와 공정을 추구하는 많은 이들이
광야로 내려가서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50(49),1-2.5-6.14-15(◎ 23ㄴ)
◎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하느님, 주 하느님이 말씀하시네.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 온 땅을 부르시네. 더없이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느님은 찬란히 빛나시네. ◎
○ “내 앞에 모여라, 나에게 충실한 자들아, 제사로 나와 계약을 맺은 자들아!” 하늘이 그분의 의로움을 알리네. 하느님, 그분이 심판자이시네. ◎
○ 하느님에게 찬양 제물을 바치고, 지극히 높은 분에게 너의 서원을 채워라. 불행한 날에 나를 불러라. 나는 너를 구해 주고 너는 나를 공경하리라. ◎

복음 환호송

시편 95(94),7.8
◎ 알렐루야.
○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 알렐루야.

복음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9,41-44
그때에 4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42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43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44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지극히 높으신 주님께 바치는 이 예물을 굽어보시어
저희가 오롯이 주님을 사랑하며 살다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73(72),28
저는 하느님 곁에 있어 행복하옵니다. 주 하느님을 피신처로 삼으리이다.
<또는>
마르 11,23.2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거룩하신 성체를 받아 모시고 간절히 비오니
성자께서 당신 자신을 기억하여 거행하라 명하신 이 성사로
저희가 언제나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주최한 세계 주교 시노드의 1차 회기가 끝났습니다. 교황님의 요청에 따라서 시노드는 2024년까지 계속 된다고 합니다. 시노드는 교회가 처한 여러 현안에 대해서 지역별, 대륙별, 보편교회의 차원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하였습니다. 시노드는 교회에 대한 건강검진과 비슷합니다. 건강한 교회에게는 건강검진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다. 아픈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하다. 나는 이스라엘의 아픈 사람을 위해서 왔다.’라고 하셨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로운 계명인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같은 마음과 정성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자신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는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에는 사랑과 믿음 그리고 희망이 넘쳐날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교회를 찾고, 거기에서 위로를 얻을 것입니다. 그런 교회에서 가정은 작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신앙은 가정에서 키워지고, 그런 가정에서는 자연스럽게 성직자와 수도자가 탄생할 것입니다. 그런 교회는 문화와 역사를 선도하고, 시대의 징표를 드러낼 것입니다.

 

병든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됫박으로 빛을 가리는 교회입니다. 권위와 독선이라는 됫박으로 빛을 가리는 교회입니다. 교만과 욕망이라는 됫박으로 빛을 가리는 교회입니다. 맛을 잃어버려 거리에 버려지는 교회입니다. 기도의 맛을 잃어버린 교회는 그저 건물일 뿐입니다. 나눔의 맛을 잃어버린 교회는 권력의 수단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새로운 계명을 지키지 않는 교회입니다. 가장 가난하고, 가장 굶주리고, 가장 헐벗고, 감옥에 갇힌 이를 외면하는 교회는 사랑이 없는 교회입니다. 강도를 당해서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따뜻한 사랑의 손을 내밀지 않는 교회는 사랑이 없는 교회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외면하는 교회입니다. 십자가는 교회의 첨탑에 상징으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나의 삶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병든 교회는 마치 철지난 바닷가처럼 쓸쓸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병든 교회에서는 믿음, 희망, 사랑의 꽃이 피지 못할 것입니다. 병든 교회에서는 가족이 함께 미사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봉사하고, 함께 성서를 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가정에서는 성직자와 수도자가 탄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교회는 문화와 역사를 선도하지 못할 것입니다. 시대의 징표를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시노드의 진단 결과 성직주의가 있었습니다. 성직주의에 대한 좋은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사제직의 목적과 지향은 복음 선포 사명에 있다. 사제가 복음 선포라는 사명을 망각하고 사제의 존재적 지위에 초점을 맞추고 위계적 서열에 집착하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사제는 미사를 집전한다. 집전자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변화와 쇄신의 지름길이다. 반복되는 직무에 마음과 정성을 기울이는 일은 쉽지 않다. 자칫 영혼 없이 습관적으로 미사를 거행할 위험이 많다. 하루의 일과에 지친 몸과 마음의 상태에서도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을 위해 강론을 정성껏 준비하고, 그들을 위해 대신 기도하고 축복하는 마음과 태도로 미사를 정성 들여 거행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사제는 거룩해질 것이다. 사제의 변화와 쇄신은 미사를 거행하는 사제의 마음과 태도에 달려있다.

 

사제는 무엇보다 매개자(Mediator). 신학적 의미의 중재자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알리는 존재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존재여야 한다는 의미다. 사실, 현실의 사제는 인정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가기 쉽다. 늘 본당 공동체의 중심으로 살아와서, 모든 시선과 관심이 자신에게 쏟아지기를 원하는 태도가 몸에 배었다. 솔직히 고백하면, 사제들 간의 갈등 역시 인정 투쟁에서 빚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제는 중심이 되기보다 변방에서 연결하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교회 구조와 성직자 문화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같아 조금 슬프다. 목적과 지향을 기억하고, 미사에 정성을 기울이고, 중심이 아니라 연결하는 삶을 살아갈 때 사제는 자신을 변화시키고 교회의 변화와 쇄신을 가져오는 촉매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변화와 쇄신을 위해서 사제의 변화와 쇄신은 다른 어떤 일보다 더 중요하고 절실하다. 사제의 변화와 쇄신을 향한 길은 여전히 멀다. 세상과 환경이 강요하기 전에 우리 사제들이 변화와 쇄신의 길을 먼저 시작할 수는 없을까.”

 

좋은 성직자, 건강한 성직자가 있습니다. 나쁜 성직자, 병든 성직자도 있습니다. 성직주의는 교회의 전통과 관습으로 2000년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직주의에 문제가 있다면 개선하고 새로운 방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지혜를 모아 내년에 폐막이 되는 세계 주교 시노드에서 건강한 교회를 위한 다양한 처방전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가해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루카 19,41-44

 

나는 과연 누군가 때문에 눈물 흘린 적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피정에 오시는 분들 중에 다양한 사연을 안고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면담을 하시다가 말문이 막히십니다.

손수건을 꺼내 드십니다.

그로 인해 뚝뚝 눈물을 떨구십니다.

 

누군가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는 것, 가슴 아프기도 하지만, 그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존경스럽기도 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저는 과연 누군가 때문에 눈물 흘린 적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사랑과 열정이 식은 제 오늘의 냉랭한 삶에 가슴을 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지, 우리 때문에 자주 우셨습니다.

오늘 사랑하는 예루살렘 도성을 바라보시며 눈물 흘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고색창연한 아름다운 도시 예루살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랑 예루살렘,

온갖 지혜와 은총의 보고인 예루살렘, 그 사랑스런 도시를 바라보며 감탄하고 환호성을 터트려야 마땅할 텐데,

예수님께서는 왜 우셨을까요?

 

원인은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겉은 호화찬란하고 그럴 듯 해보였지만 속으로는 부패와 타락으로 곪아 터져가는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돌아서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끝끝내 우상숭배와 배신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한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자식들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세상 모든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많이 빗나간 자녀, 맛이 간 자녀, 생명의 길이 아니라 죽음의 길로 접어드는 자녀가 있다면

부모 입장에서 어떻게 처신하겠습니까?

 

정말 그 길이 아닌데, 정말 가지 말아야 할 길인데도 불구하고 계속 가고 있다면

부모 입장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처음에는 불러 앉혀놓고 차근차근 설득도 시도해 볼 것입니다.

그게 안 먹혀들면 너무도 안타까운 나머지 언성도 높일 것입니다.

완력도 사용할 것입니다.

갖은 수단을 총동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수단들이 전혀 먹혀들지 않을 때, 어떤 부모는 그 자녀 앞에 눈물로 호소할 것입니다.

제발 돌아오라고, 제발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오늘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부모의 마음으로 당신의 아리따운 딸 예루살렘을 향해 눈물 흘리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성들과 온 세상이 지금 자신들의 목전에 들이닥친 이 시간의 중차대한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가슴 아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육화강생하시고 그들 사이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지금 바로 이 시간이 구원의 때이며

은총의 시기라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함을 슬퍼하십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메시아께서 카이사르처럼 자신들에게 세속적인 힘과 권세를 부여해줄 것을 바랐었지

실제적인 메시아 본질적인 메시아의 도래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세상의 왕처럼 화려한 모습으로 인간 역사의 전면에 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지만

정작 참 메시아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겸손하고 가난한 얼굴로 이 세상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아무리 부르짖어도 돌아서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 아무리 눈물로 호소해도 회개하지 않는

예루살렘 사람들, 머지않아 영원할 것 같던 성채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며 더 이상 도성 안에서는

찬미가가 울려 퍼지지 않을 것이며, 그 대신 비탄과 통곡 소리, 칼부림이 난무할 것임을 예견하신

예수님이셨기에 그리도 슬피 우셨던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울고 계십니다.우리의 배신과 타락으로 인해, 우리의 절벽같이 완고한 마음으로 인해

슬피 우십니다.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끝까지 애타는 하느님의 마음을 저버리는 예루살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행하기는커녕 언제나 반대하고 거부하는 예루살렘의 최후를 내다보시던

예수님이셨기에 그리도 슬피 우셨던 것입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1122.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루카 19,13)
 
 
겨울의 길목입니다. 바퀴를 달고 달아나는 가을의 뒷모습이 을씨년스럽고, 길가에 군데군데 몰아다 놓은 가을의 노고, 가을의 땀방울이 쓸쓸합니다. 그런데 잎이 떨어지고 꽃도 떨어지고 나면, 그 나무가 속이 꽉 찬 나무인지 속 텅 빈 나무인지가 훤히 드러나 보입니다. 이 초겨울 우리의 몸을 치장하고 있던 가식과 허영의 옷들을 벗어버리고, 우리의 속내를 들여다보아야 할 때입니다.

오늘 복음인 “미나의 비유”는 본디 ‘하느님 나라’에 관한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당신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 이루어진 ‘히느님 나라’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곧 ‘하느님 나라’는 선물이요 은총임과 동시에 그에 따른 과업과 소명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선물인 ‘미나’는 주인이이 ‘벌이를 하라고 맡긴 것’(루카 19,13 참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돌아오면 그 소명을 실현하였는지의 여부에 따라 심판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주인의 명령에 불순종해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에서 ‘왕권을 받으러 먼 고장으로 떠난 어떤 귀족’은 예수님의 승천을, ‘다시 돌아옴’은 재림과 종말을 암시해줍니다.
 
이 비유는 겉보기에는 마치 결과에 따라 평가받는 것처럼 보여 지지만, 사실 결과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결실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심을 많이 맺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결실을 내는 나무’가 되는 데 있습니다. 곧 결실을 통해서 나무의 본질을 보는 데 있습니다. 결국, 어떤 나무가 결실을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열매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나무’에 대한 비유입니다. 곧 ‘착한 종’은 선물과 선물을 주신 분에 대한 믿음으로 성실하여 열매를 맺게 되었지만, ‘악한 종’은 주인에 대해서 “냉혹한 분이어서 가져다놓지 않는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는 것을 거두어 가시는 분”(루카 19,23)으로 여겼기에 결국, 그에 따른 결과를 낳았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이 비유의 핵심은 ‘주인과 맺는 관계성’에 있습니다. 곧 주인에 대한 믿음과 순명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믿는 이’는 믿음의 열매를 맺을 것이고, ‘불신한 이’는 불신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우리의 마음을 ‘믿음’으로 가꾸어야 하고, 우리의 행실을 ‘순명’으로 채워나가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주인의 ‘선물’을 선으로 활용하고 충실하되, 악용하거나 안정과 보존에만 머물지만도 말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선물’(미나)을 주신 분에 대한 감사와 믿음을 간직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할 일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에 충실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활동하신 분의 힘을 믿고, 그 힘을 주시는 분을 믿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명령에 실행으로 순명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루카 19,13)

주님!
당신이 주신 믿음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당신이 주신 사랑이 열매를 맺게 하소서.
제 안에서 활동하시는 그 크신 힘에
오늘도 감사할 줄 알게 하소서.
오늘도 제 희망이 아니라 

당신의 희망이 제 안에서 이루어지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성인(聖人)이 되는 것은 우리의 거룩한 소명(召命)이다-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지켜주시고,

 당신 날개 그늘 아래 이몸을 숨겨주소서.”(시편17,8)

 

"주님은 내 등불을 밝혀 주시고,

당신은 내 어둠을 비추시나이다."(시편18,29)

 

지난 금요일 카메룬 출신 파토는 7년간 리비아 사막에서의 비극적 여정후 기적적으로 지중해를 건너 로마 교황청에서 개인적으로 교황님을 만나 대화를 나눴습니다.

 

“내가 언젠가 교황님을 만나리라곤 상상할 수 없었다. 7년간 여정은 쉽지 않았으니 우리에게는 어떤 도움도 없었다.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를 도왔다.”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를 도왔다(Only God helped us)’, 말마디가 새삼 마음에 와닿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임을 깊이 깨달아 아는 자가 겸손한 성인입니다. 성인이 되는 것은 우리의 소명이요 믿는 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성화의 여정중에 있습니다. 파토를 도왔던 모든 이들과의 대화중 교황님의 두 단어 역시 마음에 남았습니다.

 

“특권은 빚이다(privilege is a debt).”

“부유한 너희들이 하는 것은 더 많은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의무다(it is a duty).”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이요 우리가 하는 사랑의 행위는 마땅히 해야하는 사랑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이런 “빚(debt)”과 “의무(duty)”에 대한 기본적 또렷한 인식을 지닌 이들이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성인입니다. 어제 수도원에서는 예수성심자매회 월례모임이 있었습니다. 사진촬영후 사진과 함께 메시지도 나눴습니다. 빛과 그늘, 그리고 인물들이 잘 조화된 신비롭고 아름다운 사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매님들, 모두가 멋지고 기품있는, 내면의 빛을 발하는 주님의 사랑스런 성녀(聖女)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늘 이렇게 사세요.”

 

어제는 병 진단을 받고 날마다 약을 복용하게 된 수도형제에게 준 덕담의 격려도 생각납니다.

 

“이 또한 순종의 삶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최선의 삶을 살 때 늘 함께 도와주십니다. 아무 걱정 마십시오. 하느님은 최고의 의사이십니다. 아플수록 겸손하면 됩니다. 겸손이 최고의 명약입니다. 참으로 겸손해서 성인입니다. 추호도 위축되거나 의기소침하지 마시고, 힘내시고 용기내시기 바랍니다.”

 

회개로 이미 용서받은 과거는 주님께 맡기고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다시 성화의 여정에 오르면 됩니다. 늘 새롭게 시작하는 엑소더스, 탈출의 여정, 성화의 여정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녀 체칠리아 기념일입니다. 시종일관 주님 사랑에 몸바쳐 살다가 아주 젊은 나이에 순교한 성녀입니다. “천상의 백합”을 뜻하는 이름대로 천상의 백합꽃같은 청초한 아름다움을 지녔던 성녀는 교회 음악과 음악인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성녀의 순교록에 나오는 일화중 일부 감동적인 내용을 소개합니다.

 

-성녀는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이교도인 성 발레리아누스와라는 귀족청년과 결혼하였으며 결혼후 자신은 동정서약을 하였고 천사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성 발레리아누스는 그 천사를 보게 해주면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약속하였으며, 성녀는 그를 교황 성 우르바누스 1세에에게 보내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도록 안내합니다. 그는 세례를 받고 돌아오는 도중 백합으로 장식된 관을 쓴 두 천사가 성녀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고 동정서약에 동의합니다.

 

성 발레리아누스는 그때부터 동생인 성 티부르누스와 사치스러운 생활을 멀리하고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을 돕는 자선활동과 신앙생활에 전념합니다. 이들은 곧 총독인 알마키우스의 미움을 샀으며 총독에게 로마의 신들을 모신 신전에 희생제사 바치라는 요구를 거절하다 심한 매질후 그 형제들은 이들의 신앙에 감화받은 총독의 시종인 성 막시무스와 순교합니다. 이 세 순교자들의 장례를 지낸후 체칠리아 성녀 역시 심한 박해와 고문후 순교합니다. 당시 성인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순교한 성인들이었습니다.-

 

오늘 성녀 기념일 아침 성무일도시 즈카르야의 후렴도, 저녁 성무일도시 마리아의 노래 후렴도 성녀의 거룩한 삶을 요약합니다.

 

"태양이 솟아 오를 무렵 체칠리아는 '그리스도의 전사들아,

 어두움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하고 부르짖었도다."

 

"복된 체칠리아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언제나 가슴에 품고,

 밤낮으로 기도하며 하느님과 끊임없이 대화하였도다."

 

오늘 제1독서 마카베오 하권 역시 감동적인 일곱 형제들의 순교에 이어 그 어머니의 순교 행적을 보여줍니다. 참으로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을 두었기에 가능한 순교였음을 봅니다. 특별히 이들의 어머니는 오래 기억될 놀라운 사람이었으니, 일곱 아들이 단 하루에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주님께 희망을 두고 있었기에 용감하게 견디어내며 아들 하나하나를 격려합니다. 

 

고결한 정신으로 가득한 그는 여자다운 생각을 남자다운 용기로 북돋우며 아들들을 격려합니다. 마침내 막내 아들 역시 안티오코스 임금의 회유를 떨쳐버리고 어머니의 충고대로 용감히 순교하니, 모전자전 그 어머니에 그 아들들입니다. 우리가 배울 바 하느님께 대한 궁극의 희망과 사랑, 믿음입니다.

 

죽어서만 순교 성인이 아니라 살아서도 순교적 삶에 충실한 이가 성인입니다. 11월 위령성월이자 성인성월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비범한 성인이 아니라 제본분의 책임을, 의무를 다하는 성인들입니다. 삶은 선물이자 과제입니다. 사랑에 빚진 선물 인생을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평생과제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두 종이 그 훌륭한 모범을 보여줍니다. 한 미나의 선물인생, 나름대로 그 의무와 책임을 다함으로 칭찬받는 첫째 종과 둘째 종이 그 모범입니다.

 

“잘 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인 첫째 종에 이어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벌어들인 이도 주인의 칭찬을 받습니다. 선물 인생에 최선을 다해 과제를 수행한 참 성인다운 삶을 산 이들입니다. 그러나 평생과제에 소홀하여 한 미나를 그대로 바친이는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주인의 질책과 더불어 불행하게 인생 마감합니다.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합니까? 각자 주어진 한 미나의 선물인생 잘 활용하여 많은 수확을 남기고 있는 성인다운 삶인 지요? 살아 있는 동안은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내 삶의 손익(損益)을 계산하는, 선물 인생 한 미나의 활용도를 점검하는 시간입니다. 

 

성화의 여정중인 우리의 삶을 일일일생, 일년사계로 압축하면 과연 어느 시점에 위치해 있습니까? 죽음과 더불어 내 인생 결산(決算)할 시간이, 주님께 헴바쳐야 할 시간이 점차 가까워집니다. 주님의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성화의 여정중 진인사대천명, 과제 수행에 온갖 힘을 다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주님,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을 뵈오리다

 깨어나 당신을 뵈옴으로 흡족하오리다.”(시편17,15). 아멘.


11/23(목)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성직주의는 교회의 전통과 관습으로 2000년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직주의에 문제가 있다면 개선하고 새로운 방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지혜를 모아 내년에 폐막이 되는 세계 주교 시노드에서 건강한 교회를 위한 다양한 처방전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조재형 신부)

 

2.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울고 계십니다.우리의 배신과 타락으로 인해, 우리의 절벽같이 완고한 마음으로 인해

슬피 우십니다.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끝까지 애타는 하느님의 마음을 저버리는 예루살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행하기는커녕 언제나 반대하고 거부하는 예루살렘의 최후를 내다보시던

예수님이셨기에 그리도 슬피 우셨던 것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루카 19,13)

주님!
당신이 주신 믿음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당신이 주신 사랑이 열매를 맺게 하소서.
제 안에서 활동하시는 그 크신 힘에
오늘도 감사할 줄 알게 하소서.
오늘도 제 희망이 아니라 

당신의 희망이 제 안에서 이루어지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잘 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인 첫째 종에 이어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벌어들인 이도 주인의 칭찬을 받습니다. 선물 인생에 최선을 다해 과제를 수행한 참 성인다운 삶을 산 이들입니다. (이수철 신부)

 

 

11/23(목)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제334일 기도    

 

복음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울고 계십니다.

우리의 배신과 타락으로 인해, 우리의 절벽같이 완고한 마음으로 인해

슬피 우십니다.

 

세상의 뜻과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소서.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게 하소서.

 

- 2023년 11월23일(목) 7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