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12월 5일 화요일[(자) 대림 제1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3. 12. 5. 07:13

[매묵]2023년 12월 5일 화요일[(자) 대림 제1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즈카 14,5.7 참조
보라, 주님이 거룩한 이들을 모두 데리고 오시리니, 그날에는 큰 빛이 비치리라.

본기도

주 하느님,
저희의 간청을 자비로이 들으시어
시련을 겪는 저희를 인자로이 도와주시고
이 세상에 오시는 성자께 힘을 얻어
다시는 옛 악습에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11,1-10
그날 1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2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3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4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뢰배를 내리치고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악인을 죽이리라.
5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6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7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8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9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10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이사이의 뿌리가 민족들의 깃발로 세워져
겨레들이 그에게 찾아들고 그의 거처는 영광스럽게 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72(71),1-2.7-8.12-13.17(◎ 7ㄴㄷ 참조)
◎ 주님, 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 하느님, 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 당신의 정의를 임금의 아들에게 베푸소서. 그가 당신 백성을 정의로,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
○ 저 달이 다할 그때까지, 정의와 큰 평화가 그의 시대에 꽃피게 하소서. 그가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끝까지 다스리게 하소서. ◎
○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하나이다. 약한 이, 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나이다. ◎
○ 그의 이름 영원히 이어지며, 그의 이름 해처럼 솟아오르게 하소서. 세상 모든 민족들이 그를 통해 복을 받고, 그를 칭송하게 하소서.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보라, 우리 주님이 권능을 떨치며 오시어 당신 종들의 눈을 밝혀 주시리라.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신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21-24
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비천한 저희가 드리는 기도와 제물을 굽어보시어
아무런 공덕이 없는 저희를 너그러이 보호하시며 도와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대림 감사송 1 : 그리스도의 두 차례 오심>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인간으로 처음 오실 때에는구약에 마련된 임무를 완수하시고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나이다.그리고 빛나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는저희에게 반드시 상급을 주실 것이니저희는 지금 깨어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나이다.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2티모 4,8 참조
의로운 심판관은 당신이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린 사람에게 의로움의 화관을 주시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신비로운 제사에 참여한 저희를 생명의 양식으로 기르시니
저희가 지상 것을 슬기롭게 헤아리며
끊임없이 천상 것을 찾도록 가르쳐 주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신다.

오늘의 묵상

1.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나해 대림 제1주간 화요일

루카 10,21-24

 

매일 행복해지는 간단한 비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십니다. 우리도 성령 안에서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이처럼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철부지 어린이들이 찾는 것은 무엇일까요? 행복의 비밀입니다.

그들에게 행복은 부모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자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인간이란 존재가 마음의 평화를 얻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 성장한 어른들도 하느님의 사랑을 찾습니다. 그러나 철부지들처럼 온 존재를 다 해 찾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우리가 무언가를 볼 수 있고 무언가를 들을 수 있으며 무언가를 깨닫고

또 무언가를 전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 즐겁게 사는 비밀입니다. 

 

57세에 시골에 30만 평의 땅을 사서 정원을 꾸며 『타샤의 정원』이란 책도 출판한 타샤 튜더는

날마다 행복하다고 합니다. 어떤 특별한 일을 하기 때문일까요?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일상이 행복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살 뿐입니다.

아름다움을 보고 아름다움을 듣고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정원 가꾸기는 물론이요, 그림그리기도 좋아합니다. 지금까지 100여 권이 넘는

그림 동화도 집필하였습니다. 자신이 가꾼 땅에서 자라는 꽃들을 보며 거기서 듣는 내용을

동화로 쓰고 사람들과 나눕니다. 

 

결국 나의 행복은 일상에서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에 달려있습니다.

그 무엇이 하느님이면 됩니다. 하느님은 진리이시고, 선이시며, 아름다움이십니다.

 

타샤는 아름다움을 선택하였습니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는 삶입니다.

타샤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나무나 꽃을 심으며 돌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꽃을 가장 좋아하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모든 꽃이 다 좋아요. 정원 가꾸기의 좋은 점은 우울할 틈이 없다는 거예요.

정원은 나의 자랑이요 행복의 원천이죠.”

 

보면 듣게 되고 들으면 알게 됩니다. 이것이 순서입니다. 예수님의 첫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어디에 묵으시는지 보려 하고 보며 듣고는 믿었습니다. 믿고는 성령으로 기뻐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창조자의 사랑’을 보고 싶어 해야 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 불안할 때마다 부모님의 사랑을 보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은총입니다.

그 은총 속에는 가르침도 있습니다. 이것을 들었습니다. 결국 알게 되는 것은 부모의 정체입니다.

나의 부모가 나의 참 부모라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기쁨 속에서 살게 됩니다. 

 

하느님을 알게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신학교에 입학하여 성체를 보고

그 안에서 주님 음성을 들었으며 그래서 하느님께서 참 나의 아버지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성령으로 기뻤습니다. 

 

이런 기쁨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도 보고 듣고 알고 싶어서 기도합니다.

기도하려면 일단 보아야 합니다. 주로 읽습니다. 듣기 위해 묵상을 합니다.

그러면 깨달음을 주시고 그 기쁨 속에서 살게 됩니다. 이것이 묵상하는 이의 기쁨입니다. 

 

저의 정원은 성체가 모셔진 곳입니다. 그곳은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하느님의 정원입니다.

그곳에서는 아름다운 것만 봅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 깨달은 것을 글로 써서 나눕니다. 

 

매일의 보고 듣고 깨닫고 표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삶이 행복할지, 우울할지가 결정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 무엇이 자라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들어가는 게 나옵니다. 결국 무엇이 나오느냐가 우리를 즐겁게 하거나 우울하게 만듭니다.

타샤 투더는 말합니다. 

 

“꽃이 행복한지 아닌지는 바라보며 알 수 있듯, 우리 역시 좋아하지 않는 곳에 살고 있다면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

 

수원교구 전삼용 신부님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대림 제1주간 화요일

루카 10,21-24

 

걷다 보면 발이 더러워지기 마련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일관되게 보여주고 계시는 한 가지 사목 노선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장 작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입니다.

 

교황님에게 있어 그들은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존재,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들입니다.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진 난민들, 이주민들, 재소자들, 환자들, 노인들, 가난한 사람들...

 

교황님께서 그토록 작음, 작은 이들을 총애하시는 이유는?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그토록 작은 이들, 보잘것없는 이들을 총애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루카 10,21)

 

예수님께서는 작은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작은 이들인 철부지 어린이들을 총애하시는데,

이는 그들이 지니고 있는 단순함과 천진난만함, 앞뒤 재지 않는 순수한 사랑과 신앙을 각별히 보신 것입니다.

 

교황님께서 2015년 미국을 방문하셨을 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미국 의회 연설에서 강대국의 횡포를 신랄하게 지적하셨습니다.

야만적인 자본주의,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횡포로 인한 부의 불균형에 대한 개선을 강하게 촉구하셨습니다.

 

미국 상하원들은 마음속으로 큰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연설이 끝나고 교황님과 함께 하는 만찬이 준비되지 않을까?

식사 후에는 교황님과 찍은 인생샷 사진 한 장 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교황님은 연설이 끝난 후 점심 약속이 있다면서 서둘러 자리를 떴습니다.

대체 어떤 사람과 점심 약속이 되었을까?

대통령?

아니면 미국 주교단?

모두 아니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성 패트릭 성당으로 자리를 옮겨 300여명의 노숙자들과 함께 간소한 점심식사를 나누었습니다.

자신이 작은 이들의 사목자요 동반자임을 만천하에 드러내셨습니다.

 

함께 식사를 나눈 노숙자들을 만나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여러분, 힘내십시오. 저도 이민자 가족입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낙담하지 마십시오.”

 

그리고는 또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기셨는데, 그곳은 교도소였습니다.

거기서 재소자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시면서 이렇게 격려하셨습니다.

 

“걷다 보면 발이 더러워지기 마련입니다.

이곳에 머무시는 동안 더러워진 발을 깨끗하게 잘 씻기 바랍니다.”

 

작고 가난한 이웃들을 향한 예수님과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총애와 각별한 사랑,

이번 대림 시기 우리의 묵상 주제요, 실천 과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님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대림 제1주간 월요일

 

<“내가 가서 그를 고쳐주마.”>


우리는 대림의 첫 월요일을 맞이했습니다. 

대림시기는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합니다.

곧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을 묵상하며, 동시에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과 ‘다시 오심’은 둘 다 거룩하고 신비로운 변형이 일어나는 ‘구원의 만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구원의 만남’을 우리는 오늘 복음의 백인대장에게서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중풍으로 누워있는 종은 백인대장의 ‘집’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집’은 예수님을 모시기에는 자격이 없는 이방인의 지붕 아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하신 적이 없는 당혹스런 일을 벌이십니다.

지금까지는 당신을 찾아오거나 당신께 데려온 병자들을 고치셨지만, 이번에는 당신이 먼저 발벗고 나서십니다.

그의 ‘집’, 곧 주님을 모실만한 자격이 없는 죄인 ‘이방인의 집’으로 가시겠다고 나서십니다. 

“내가 가서 그를 고쳐주마.”

(마태 8,7)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찾아 나서기도 전에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분명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오심’으로 이미 ‘인류의 집’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마치 자캐오에게 “오늘은 내가 너희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 하시며, 모든 이들이 ‘매국노의 집’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침 뱉고 피해가던 그 ‘집’으로 들어오셨듯이 말입니다.

오시어 우리를 고쳐주시고 새롭게 탄생시키시고 변형시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모실 자격이 없는 저희 ‘마음의 집’에 들어오시겠다고 하십니다.

마치 묵시록의 말씀에서처럼 말입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묵시 3,20)

그러니 오늘 제 마음이 기뻐 설렙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시어 제 마음에 ‘당신의 집’을 지으신 까닭입니다. 

지금 이 시간, 바로 여기에, 당신 몸과 피로 하늘나라의 잔칫상을 차려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마태 8,11)

또한 당혹스럽고 놀라운 것은 백인대장의 말입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마태 8,8)

그렇습니다. 

그는 진정한 참된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그는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하지 못한 이방인의 처지였지만, 바로 그 속에서 이미 자비와 사랑의 위력을 알기에 믿음의 굳셈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이 ‘구원을 이루는 힘’임을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자신의 힘이 아니라 말씀의 권능으로부터 진정한 참된 힘이 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고, 말씀의 힘에 승복하고 의탁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마태 8,8)

 

주님!

당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게 하소서!

당신이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게 하소서!

오로지 당신만을 제 머리 위에 두고 살게 하소서.

당신은 머리 위에 계시되 속박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유를 주시니,

당신께 온전히 속한 자로,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3.12.4.대림 제1주간 월요일                                                             이사2,1-5 마태8,5-11                          

 

 

                                                                행복하여라

                                             -겸손과 평화의 참 좋은 믿음의 사람들!-

 

행복한 체험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일년중 가장 별들이 잘 보이는 계절이 초겨울의 요즘일 것입니다.

거의 날마다 일어나 자비의 집 숙소문을 열었을 때, 한 눈 가득 들어오는, 가슴 가득 안겨 오는 푸른 하늘,

빛나는 별들의 체험은 늘 새롭고 마음을 황홀한 기쁨으로 가득 채웁니다.

이승의 세계가 이처럼 아름답다면 저승의 천국문이 열렸을 때의 그 아름답고 황홀함은

상상을 초월하리란 생각이듭니다. 

 

이어 집무실을 열고 들어오자 마자 바치는 만세육창 기도가 또 하루의 출발을 행복하게 합니다.

십자가의 예수님과 태극기 앞에서 성호경, 주모경을 바친후의 만세육창과 신원 확인을 하면

마음이 참 상쾌해집니다.

아무리 인용해도 늘  새롭고 좋습니다.

기도와 함께 가는 회개와 겸손, 그리하여 참 좋은 평화의 삶입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대한민국-한반도 만세!”

“가톨릭 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요셉 수도원 만세!”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님파, 주님의 전사, ‘평화의 전사’ 수도승(修道僧)이다.”

 

어제 인용했던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발표된 교황님 말씀을 다시 나눕니다.

얼마나 간절하고 절박한 주옥같은 내용들인지 다시 정독할 계획입니다.

종파를, 국적을 떠나 세계 최고 영적 지도자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우리 가톨릭 교회의 수장,

프란치스코 교황님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충심으로 호소합니다. 생명을 선택합시다! 미래를 선택합시다!

지구의 부르짖음에 주의를 기울입시다! 가난한 이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입시다!

젊은이들의 희망에, 어린이들의 꿈에 민감합시다!

우리는 그들이 미래를 부정하지 않도록 하는 중대한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참으로 생태적 회개가 절박한 시점입니다.

이런 호소에 응답하는 이들이 참으로 겸손과 평화의 참 좋은 사람들입니다.

언젠가 원장 수사와 대화중 일치된 내용이 있습니다.

 

“피정 지도 신부님을 구할 때 우선적 조건이 학식 많은 분이 아니라 좋은 분을 선택합시다.

사람이 좋으면 말도 글도 행동도 생각도 다 좋기 때문입니다.”

 

우선적 선정 조건이 참 좋은 겸손과 평화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나이들어갈수록 점점 평등해지는 사람들이요 남는 것은 좋고 편안한 사람인가,

사람 하나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백인대장의 병든 종을 고쳐주신 예수님은 말할 것도 없고, 백인대장은 이교인인데도

참 좋은 겸손과 평화의 사람입니다. 참된 믿음은 겸손과 평화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말그대로 하느님의 세 스타일을 지닌 분들입니다.

친밀하고, 연민의 사랑 가득하며. 부드러운 분들입니다.

마침 어제 새벽 겨울 나무 가지들마다 가득 달린 별들을 보며 산책 기도중 써놓은 “나,

겨울에는” 시가 생각납니다.

이런 겨울 나무, 겨울 땅 같은 이가 예수님이요 백인대장입니다.

 

-“푸른 하늘

배경한

빛나는 별 열매들

가득 달린

텅빈 충만의 

겨울 나무들인데

누가 감히 가난하다 하는가

 

밤마다

푸른 하늘 빛나는 별들

꼭꼭 품에 안아 두었다가 

봄, 여름, 가을에

무수한 사랑의 꽃들 피어낼

텅빈 충만의 

겨울 땅인데

누가 감히 가난하다 하는가

 

나 

겨울에는 동안거(冬安居)의 

추위에도

따뜻한

텅빈 충만의 

겨울 나무가, 겨울 땅이 된다

이 행복에 산다

나 겨울에는!”-2023.12.3.

 

저는 어제 엊그제 12월2일 뉴욕타임스 “한국 소멸하나? 흑사병 창궐 수준 인구 감소”라는 칼럼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백인대장의 병을 고쳐주신 예수님께서 병든 사람, 병든 사회, 병든 대한민국을 고쳐 주시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또한 우리의 각골분투(刻骨奮鬪)의 노력과 지혜가 필요함을 절감했습니다.

 

다음이 바로 매우 불길한 내용들입니다.

 

‘지난 29일 통계청에 의하면 한국의 올해 3분기(7-9월) 합계 출산율은 0.7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합계 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이다...그는 “2067년 한국 인구가

3500만명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통계청 인구추계를 인용하여 이 정도만으로도 한국 사회를

위기에 넣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 저출생 원인으로 극심한 입시경쟁, 남녀대립, 인터넷 게임에 빠진 한국 남성들이 이성보다

가상의 존재에 빠져들게 한 점이 거론된다고 적었다.

 

그는 “노인 세대는 불가피하게 방치되고 엄청난 유령도시와 황폐해진 고층빌딩이 생기고,

고령층 부양 부담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젊은 세대의 이민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한국이 유능한 야전군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합계출산율 1.8명인 북한이 어느 시점에선가

남침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합계출산율 남과 북이 “0.7대 1.8” 너무 충격적입니다. 단적으로 총체적 위기의, 병든 한국사회의 반영임을

깨닫게 됩니다. 아기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반려견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하나 깨어 참 건전하고 건강한 영육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때입니다.

정말 개인이든 사회든 영적 혁명과 같은 기도와 회개, 겸손과 평화의 삶이 절대적임을 깨닫게 됩니다.

복음의 백인대장같은 겸손하고 평화로운 참된 믿음의 삶이 절실할 때입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아래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한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 근거한 미사중 성체를 모시기 전,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하지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고백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백인대장의 믿음에 대한 감동의 고백에 하늘나라 잔칫상에 자리잡을 사람들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대로 제1독서 이사야서 예언의 실현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적이 없다.”

여기까지가 백인대장 믿음에 대한 감동의 고백이고 다음 내용이 실로 중요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대로 믿는 우리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교인 백인대장이 초대 손님의 모범으로 제시되는데 바로 그의 믿음 때문입니다.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종은 나았다 합니다. 바로 하늘 나라 잔칫상에 초대 받을 자격은 백인대장 같은

겸손한 믿음을 지닌 평화의 사람들임을 봅니다.

참으로 겸손한 믿음을 지닌 평화의 사람들이 참 좋은 사람들입니다.

이사야가 환시로 받은 내용도 이와 일치합니다.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으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하늘의 모든 별들이 모두 하늘 안에 있듯이 모든 인류가 하느님 안에 있습니다.

새삼 전 인류에게 예외없이 활짝 열린 구원의 하늘문이요, 모든 인류가 구원의 대상임을 봅니다.

주님의 은총과 우리의 노력으로 이런 이사야와 하느님의 마음, 인식수준까지 우리의 마음을,

인식지평을 넓힘이 평생숙제입니다.

 

참으로 주님께 배워야 할 것은 주님의 길, 평화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참 좋은 사람은 겸손과 평화의 사람입니다.

바로 다음이 하느님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영원한 평화의 꿈입니다.

바로 이런 꿈을 실현하러 오시는 대림의 주님이요, 그 모범적 인물로 제시되는 참 겸손한 믿음의 사람,

평화의 사람, 백인대장입니다.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우지도 않으리라.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바로 이런 평화가 하느님의 간절한 소망이자 꿈이요 우리에게, 특히 정치지도자들에게 부여된

평생과제입니다.

무기로 낭비되는 돈을 인간복지에 사용한다면 모두가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나 삶은 전쟁입니다.

영적전쟁으로 전환하여 참으로 주님의 전사, 평화의 전사로 살아야 할 것이며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의 평화의 전사들이 되어 주님의 빛 속에 걸어 가게 하십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5,9). 아멘.

 

베네딕도 수도회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12/5(화) 대림제1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하느님께서 참 나의 아버지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성령으로 기뻤습니다. 

이런 기쁨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도 보고 듣고 알고 싶어서 기도합니다.

기도하려면 일단 보아야 합니다. 주로 읽습니다. 듣기 위해 묵상을 합니다.

그러면 깨달음을 주시고 그 기쁨 속에서 살게 됩니다. 이것이 묵상하는 이의 기쁨입니다. (전삼용 신부)

 

2. 교황님께서 그토록 작음, 작은 이들을 총애하시는 이유는?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그토록 작은 이들, 보잘것없는 이들을 총애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루카 10,21)

 

예수님께서는 작은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작은 이들인 철부지 어린이들을 총애하시는데,

이는 그들이 지니고 있는 단순함과 천진난만함, 앞뒤 재지 않는 순수한 사랑과 신앙을 각별히 보신 것입니다.

(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마태 8,8)

 

주님!

당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게 하소서!

당신이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게 하소서!

오로지 당신만을 제 머리 위에 두고 살게 하소서.

당신은 머리 위에 계시되 속박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유를 주시니,

당신께 온전히 속한 자로,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아멘.

(이영근 신부)

 

4. “피정 지도 신부님을 구할 때 우선적 조건이 학식 많은 분이 아니라 좋은 분을 선택합시다.

사람이 좋으면 말도 글도 행동도 생각도 다 좋기 때문입니다.”

 

우선적 선정 조건이 참 좋은 겸손과 평화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나이들어갈수록 점점 평등해지는 사람들이요. 남는 것은 좋고 편안한 사람인가,

하나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백인대장의 병든 종을 고쳐주신 예수님은 말할 것도 없고, 백인대장은 이교인인데도

참 좋은 겸손과 평화의 사람입니다. 참된 믿음은 겸손과 평화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이수철 신부)

 

12/5(화) 대림제1주간 화요일, 제346일 기도

 

복음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신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루카 10,21)

 

철부지 어린이들을 총애하시는 하느님!

철부지의 단순함과 천진난만함을 내가 지니게 하소서.

철부지의 순수한 사랑과 믿음을 내가 지니게 하소서.

 

- 2023년 12월5일(화) 7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