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12월 6일 수요일[(자) 대림 제1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3. 12. 6. 06:25

[매묵]2023년 12월 6일 수요일[(자) 대림 제1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백] 성 니콜라오 주교

입당송

하바 2,3; 1코린 4,5 참조
주님은 지체하지 않고 오시어, 어둠 속에 숨은 것을 밝히시고, 모든 민족들 앞에 당신을 드러내시리라.

본기도

주 하느님,
주님의 권능으로 저희가 마음을 가다듬어
성자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자격을 갖추고
성자께서 베푸시는 천상 잔치에 들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제1독서

<주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잔치를 베푸시고 그들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내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25,6-10ㄱ
그날 6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
7 그분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8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정녕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9 그날에 이렇게들 말하리라.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10 주님의 손이 이 산 위에 머무르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3(22),1-3ㄱ.3ㄴㄷ-4.5.6(◎ 6ㄷㄹ)
◎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
○ 당신 이름 위하여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 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
○ 원수들 보는 앞에서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
○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보라, 당신 백성 구원하러 주님이 오시리니 주님을 맞이하러 달려가는 이는 복되어라.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빵을 많게 하셨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29-37
그때에 29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로 가셨다.
그리고 산에 오르시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30 그러자 많은 군중이
다리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다.
그들을 그분 발치에 데려다 놓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31 그리하여 말못하는 이들이 말을 하고 불구자들이 온전해지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눈먼 이들이 보게 되자,
군중이 이를 보고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32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33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4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시자,
그들이 “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36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3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예물을 정성껏 봉헌하며 비오니
주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신비의 거행으로
저희 구원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대림 감사송 1 : 그리스도의 두 차례 오심>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인간으로 처음 오실 때에는구약에 마련된 임무를 완수하시고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나이다.그리고 빛나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는저희에게 반드시 상급을 주실 것이니저희는 지금 깨어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나이다.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이사 40,10; 35,5 참조
보라, 우리 주님이 권능을 떨치며 오시어, 당신 종들의 눈을 밝혀 주시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주님께서는 인자하시니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어
다가오는 성탄 축제를 준비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빵을 많게 하셨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대림 제1주간 수요일

 

LA 신문 홍보 중에 잠시 시간을 내서 세도나에 다녀왔습니다. 세도나는 ()’ 많은 곳이라고 합니다. 공항에서 우리를 안내하는 부부를 만났습니다. 부부는 2009년부터 세도나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열심한 가톨릭 신자인 부부는 그동안 10,000명이 넘는 여행객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사제로는 제가 105번째라고 합니다. 공항에서 세도나로 가는 중에 형제님은 세도나의 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엄청난 기운 때문에 무릎이 아팠던 분이 잘 걷게 되었고, 허리가 아팠던 분이 허리를 펴게 되었고, 눈이 나빴던 아이가 안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팡이를 가져야만 걸을 수 있었던 분이 지팡이 없이 걸었다고 합니다. 우리 일행들은 정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형제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2,000년 전에 있었던 예수님의 표징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많은 표징을 보여주셨습니다. 눈이 먼 사람은 눈을 떴습니다. 나병환자는 깨끗해졌습니다. 중풍병자는 일어나서 걸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이 먹고도 일곱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그때도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표징을 의심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저는 세도나의 를 느끼기 전에 부부에게서 하느님 사랑의 기운()’을 먼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말에서, 그분들의 눈빛에서 진실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매님은 미사 때, 생활성가를 불러주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가수들이 자매님의 친구였다고 합니다. 자매님도 대학가요제에서 금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미국의 맨하턴에서 살던 부부는 맨하턴에서의 생활도 모두 접고, 세도나에서 여행객들에게 지구의 기운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찬양 사도로 생활성가를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간이 날 때면 요양원, 양로원엘 찾아가서 노래를 불러드렸고, 성당에서 초청이 있으면 음악피정을 해 드린다고 합니다. 저녁을 먹은 후에 우리는 부부가 마련해 준, 작은 공연을 보았습니다. 자매님이 예전에 불렀다는 칵테일 사랑을 들었고, 김민기의 가을 편지를 들었고, 생활성가를 들었습니다. 자매님의 피아노 연주와 형제님의 색소폰 연주는 세도나의 땅에서 느껴지는 기운보다 훨씬 강한 하느님 사랑의 기운으로 느껴졌습니다. 형제님이 재미있는 질문을 하나 했습니다. ‘오늘 먹는 식사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식사라면 무엇을 먹고 싶으신지요?’ 형제님은 어머니가 해 주시던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매님도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게 찌개가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같이 간 형제님은 얼큰한 육개장을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매님은 만두가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성체를 모시고 싶다는 지극히 사제다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드시고 싶으신지요?

 

세도나에는 분명 엄청난 지구의 가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기를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세도나에는  이외에 다른 것들도 많았습니다. 100개가 넘는 전시관들이 있어서 그것만 보아도 시간이 모자란다고 합니다. 폐허가 된 광산에 예술인들이 마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것만 보아도 시간이 모자란다고 합니다. 자연의 기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문화의 기, 예술의 기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우리 신앙인들은 세례를 통해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인호가 우리의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 미사 때, 우리는 주님의 성체를 받아 모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 어떤 기운이 부러울 수 있을까요? 세상 어떤 기운이 우리의 앞길을 막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 사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굶주린 이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자비로운 마음입니다. 그 마음의 기운이 하느님께 전해졌고, 오천 명이 먹고도 일곱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2.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나해 대림 제1주간 수요일

마태오 15,29-37

 

하느님은 왜 자비로우실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전능하신 능력자 하느님으로 등장하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병자를 치유하시고 빵 일곱 개로 수많은 군중을 먹이십니다.

여기에 함께 등장하는 예수님의 특성은 자비입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우리는 여기서 능력과 자비가 무슨 관계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전능하심을 믿는다면 더는 하느님의 자비를 의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비롭지 못한 이유는 능력이 없어서이기 때문입니다. 

 

SBS TV 동물농장, 애니멀봐에서 같은 날 태어난 풍산개 남매가 서로 밥 먹을 때만 싸우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평소에는 매우 친하지만, 밥만 나오면 유독 오빠 개는 자기 먹을 것은 먹지도 않으면서

동생 개가 밥을 먹지 못하고 뭅니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서열정리라고 합니다. 주인이 주는 음식을 통해 오빠는 동생의 서열을 확실히

정해주려는 것이었습니다. 본인이 밥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주인은 오빠 때문에 밥을 못 먹는 동생 개에게 몰래 밥을 줍니다. 자비롭습니다.

그러나 밥을 같이 얻어먹어야 하는 개들 사이에서는 자비로울 수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먼저 오빠 개에게서 뼈들을 빼앗아 없앱니다. 그리고 동생을 괴롭힐 때마다

자극적인 소리로 주의를 줍니다. 서열 1위는 인간임을 알려주고 본인들은 같은 수준임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언제라도 주인이 밥을 줄 테니 빼앗아먹을 필요가 없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더는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KBS 생생정보통(2013.11.14)에서 유튜브에 보면 퀵보드를 타는 곰이 나옵니다.

아기곰은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합니다. 아기곰은 곰보다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네 발로 걷기보다는 두 발로 걷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사육사는 그에게 퀵보드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제작진은 곰돌이 새콤이와 인간 여자 꼬마 아이와

퀵보드 시합을 시켰습니다. 당연히 하루 종일 퀵보드를 타는 새콤이가 이겼습니다.

그러자 꼬마 여자아이는 웁니다. 

‘동물에게 지다니.’ 

 

아이에겐 곰돌이가 경쟁상대입니다. 그래서 곰돌이에게 자비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곰돌이를 이길 수 있는 어른이 탔다면 어땠을까요? 곰돌이에게 지더라도

웃어넘길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곰돌이보다 능력이 더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토바이도 탈 수 있고 자동차도 몰 수 있습니다.

그러니 곰돌이에게 퀵보드 시합에 진다고 해서 기분 나쁘지 않습니다. 

 

영화 ‘300’에 보면 페르시아 장군이 항상 “나는 관대하다!”라고 말합니다.

관대하기 위해서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약한 사람은 관대할 수 없습니다.

상대를 이겨서 나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할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비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능력이 있다면 자비로울 수밖에 없음도 알게 됩니다.

자신은 관대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자신이 능력자라고 말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당신은 자비롭다는 사실을 밝혀주십니다.

그렇다면 동시에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정도로 능력이 있지 않으실까요?

그래서 신이 있다면 가장 자비로운 신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은 십자가에 매달려 있습니다.

우리에게 은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자비로우실 수 있다면 동시에 전능하실 수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능력이 있는 자는 자비롭고, 자비로운 자는 능력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는 자비를 잃었습니다. 서로 상대의 탓을 하였습니다.

이는 스스로 자기 죄를 씻을 능력이 없음을 말해줍니다. 능력이 없는 자는 상대를 이용하여

그 부족한 능력을 채우려 합니다. 그래서 자비로울 수 없습니다.

능력과 자비는 동의어입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1205. 대림 제1주간 화요일.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카 20,21) 
 
“대림시기”을 시작하면서 <복음>는 예수님의 기쁨과 감사를 노래합니다. 이는 우리가 “대림시기”를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고 지내야 할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곧 기쁨과 감사를 지녀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파견한 일흔 두 “제자들이 돌아와 기뻐하며 말하자”,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기도를 드리십니다. 마치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합니다.”(루카 1,47)하고, 기뻐 찬미하는 “성모님의 노래”와 같습니다. 그러니, 이 기도는 예수님의 “마니피캇”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대체 무엇에 감사하고 즐거워하실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카 20,21)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졌음에 드리는 찬미와 감사기도입니다. 여기서 “감사”(Έξομολο-γουμαί)의 원어의 뜻은 ‘억제할 수 없는 기쁨으로 즐거워하는 감격스런 찬양의 고백’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는 “아버지의 선하신 뜻”에 대한 ‘완전한 인식’과 ‘동의’와 ‘전폭적인 지지’를 드러냅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 “대림시기”에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바로 그 뜻을 우리가 모른다 할지라도 그 뜻이 선하신 것만을 믿으며 의탁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찬미와 감사의 노래를 불러야 할 일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루카 10,22)

그렇습니다. 오로지 아드님이신 예수님만이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아시며,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이들이 알게 됩니다. 곧 “하느님의 뜻”은 우리의 지혜나 슬기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통해 드러내주시기에 알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드러내 보여주신다.’해서, 모두가 알게 되거나, 모두를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라야 알아듣고, 또한 받아들이는 만큼만 알아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알게 된 제자들에게 행복을 선언하십니다. 곧 “하느님의 뜻”의 이루어짐이 제자들에 대한 행복선언으로 드러납니다.
 
“너희가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들은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루카 10,23)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아버지의 선하신 뜻”과 계시를 받은 복된 이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많은 이들이 보고자 했지만 보지 못했던 것을 그들에게 보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처럼, 아버지께서 우리 안에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심을 믿음과 흠숭으로 고백해야 할 일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전폭적인 지지’와 ‘동의’로 ‘찬미’와 ‘감사’를 드려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카 10,21)
 
주님!
미처 알아듣지도 못한 채, 당신의 ‘선하신 뜻’을 부둥켜안고 살아갑니다.
선하신 뜻을 드러내신 당신의 사랑에서 당신의 얼굴 뵙고,
감추신 신비에서 당신 심장의 소리를 듣게 하소서.
당신의 선하신 뜻, 그 안에 제가 달려 있으니
당신 뜻, 그 안에서 제가 살게 하소서!
당신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231205. 대림 제1주간 화요일.

 

-행복한 사람들이여, 성령께 마음을 열라!-

 

“오소서, 성령이여, 우리 맘에 오소서

위로자신이여, 주님 찾는 슬기를

우리에게 주소서 맘의 위로자여”

 

오늘 말씀 묵상중 떠오른 “오소서 성령이여”, 성가 142장 1절이었습니다. 이어 7절까지 성령 칠은을 청원하는 내용이 계속됩니다. 위 1절의 1.주님 찾는 슬기에, 2.맑은 지력, 3.바른 의견, 4.굳센 의지, 5.깊은 지식, 6.타는 효성, 7.두려움의 은혜등 성령칠은 얼마나 좋습니까! 시간 되는대로 성가 142장 7절까지 불러 보려합니다. 수도원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을 때, 서원식때 주로 전 공동체가 부르는 성가입니다. 새삼 성령께 마음을 열고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어 살아야함을 배웁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성탄 밤미사때 독서의 기도때 독서자가 부르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성령에 감도된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흘러나오는 참 아름다운 고백이요 예수님은 물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위에 선물처럼 하사되는 성령의 은사입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그 위에 주님 의 영이 머루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용맹의 영”

 

가톨릭 교회는 여기에 일곱 번째로 “자비의 영”을 추가하니 비로소 성령의 일곱가지 은사 목록이 이뤄집니다. 참 좋은 성령의 선물입니다. 선물중의 선물이 성령의 선물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사랑, 우리의 희망입니다. 인간 무지와 허무에 대한 궁극의 답도 성령의 은총선물뿐임을 깨닫습니다. 성령에 따른 성령 충만한 삶이요 참으로 간절히 청할바 성령칠은의 은총의 선물이니, 늘 성령께 마음을 활짝 열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초겨울이 되면 떠오르는 “겨울나무”라는 자작시입니다. 흡사 하늘 향해, 성령께 활짝 마음을 연 가난한 영혼을 상징하는 기도하는 겨울나무같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시기에 참 잘 어울리는 시입니다. 

 

“떠나자

 떠나 보내자

 미련없이 홀가분하게 아름답게

 나 늘 푸른 사철나무보다 

 잎들 다 떠나 보낸 겨울나무가 좋다

 

 가난한 겨울나무앞에 서면, 

 왜 이리 마음 저릴까

 왜 이리 부끄러워질까

 

 하늘 향해 쭉쭉 뻗은 무수한 나뭇가지들

 참 간절한 그리움의, 기다림의 촉수(觸手)들!

 그대로 침묵의 기도하는 겨울나무로구나

 

 하늘 님 향해 쭉쭉뻗은 

 예나 이제나 한결같은

 내 그리움의, 기다림의 무수한 촉수(觸手)들!

 

 나도 그대로 한 그루 

 기도하는 겨울나무로구나

 나도 그대로 그리움 덩어리, 침묵의 기도로구나

 다시 배우는 침묵의 기도, 기도하는 겨울나무가 된다 

 나는!”-2000.11.29.

 

23년이 지난 지금도 초겨울 배밭을 지날 때마다 마음 저리게 와닿은 겨울나무라는 시입니다. 겨울되면 하늘 성령님께 활짝 마음을 연 가난한 겨울나무가 되어 살고 싶은 것은 하느님을 찾는 구도자들 누구나의 간절한 꿈이자 소망일 것입니다. 성령충만하여 바치는 이사야의, 주님의 종의 시가, 노래가, 평화의 꿈이 참 마음 설레게 합니다. 어제 봉사자 피정지도시 배밭봉사 세 자매들에게 드린 덕담도 생각납니다.

 

“하늘 안 배나무들 가지들 마다 봄에 흰봉지에 배열매의 무수한 흰별들을 달았다가, 가을에 익은 흰별들을 딴 자매님들! 감사드리며 축하드립니다. 하느님은 아버지이고 자매님들은 수도원 배나무의 어머니들입니다.”

 

평화의 혁명가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아마도 하늘 나라를 꿈꿨던 우리 예수님께도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이사야서 시 전문(이사11,6-9)을 인용합니다. 이사야같은 예언자는 부단히 하늘나라를 꿈꿨던 꿈의 사람이자 불세출의 시인이요 신비가이자 영성가임을 깨닫습니다. 대림시기 우리가 부단히 꿈꾸고 실현시켜야 할 평화의 하늘나라입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가고

 어린 아이가 그를 몰고 다니니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이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라.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유토피아 이상향인지요! 완전히 실현된 평화의 왕국, 하늘나라를 상징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젖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대목에서 보다시피 창세기에서 시작된 인간과 뱀의 적대관계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대림시기를 맞이하여 성령충만한 삶을 원하는 우리 내면의 평화를 상징하는 참 아름다운 예언적 영감들로 가득한 시입니다.

 

언젠가의 그날이 아닌 바로 오늘 지금 이 은총의 대림시기, 여기서 참으로 하늘나라의 평화의 꿈을 실현하며 살도록 합시다. 바로 그 빛나는 모범이 우리 주 예수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성공적인 복음선포의 보고를 듣고 성령안에서 즐거워하며 감사기도를 바칩니다. 21절은 공관복음에 전해오는 단 하나의 예수님의 감사기도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듯 이루어졌습니다.”

 

제1독서의 주님의 종, 이사야와 쌍벽을 이루는 성령충만한 사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만 아니라 우리의 참 좋은 아버지가 되는 하느님입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성령이 우리 역시 참으로 천상 지혜를 가득 지닌 철부지들, 순수한 영혼들로 살게 합니다. 

 

대우(大愚)가 대지(大智)이니 그대로 역설의 진리를 보여줍니다. 크게 어리석은 듯 하나 크게 지혜로운, 참 거룩한 바보가 성령충만한 철부지들이요 은총의 대림시기 이렇게 살도록 성령의 은총이 우리를 돕습니다. 성령의 은총이 날로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은총의 대림시기를 맞이한 우리 모두에게 이 거룩한 미사중 주님께서 주시는 다음 말씀이 참 고맙습니다. 심기일전, 용기백배하여 다시 하늘 나라의 꿈을 실현하며 살게 하시니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루카10,23ㄴ-24). 아멘.

 


12/6(수) 대림제1주간 수요일, 되새김 구절

 

1. 우리 신앙인들은 세례를 통해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인호가 우리의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 미사 때, 우리는 주님의 성체를 받아 모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 어떤 기운이 부러울 수 있을까요? 세상 어떤 기운이 우리의 앞길을 막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 사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굶주린 이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자비로운 마음입니다. 그 마음의 기운이 하느님께 전해졌고, 오천 명이 먹고도 일곱 바구니가 남았습니다.(조재형 신부)

 

2.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전능하신 능력자 하느님으로 등장하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병자를 치유하시고 빵 일곱 개로 수많은 군중을 먹이십니다.

여기에 함께 등장하는 예수님의 특성은 자비입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카 10,21)
 
주님!
미처 알아듣지도 못한 채, 당신의 ‘선하신 뜻’을 부둥켜안고 살아갑니다.
선하신 뜻을 드러내신 당신의 사랑에서 당신의 얼굴 뵙고,
감추신 신비에서 당신 심장의 소리를 듣게 하소서.
당신의 선하신 뜻, 그 안에 제가 달려 있으니
당신 뜻, 그 안에서 제가 살게 하소서!
당신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이사야같은 예언자는 부단히 하늘나라를 꿈꿨던 꿈의 사람이자 불세출의 시인이요 신비가이자 영성가임을 깨닫습니다. 대림시기 우리가 부단히 꿈꾸고 실현시켜야 할 평화의 하늘나라입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가고

 어린 아이가 그를 몰고 다니니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이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라.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수철 신부)

 

12/6(수) 대림제1주간 수요일, 제347일 기도

 

복음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빵을 많게 하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 사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굶주린 이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자비로운 마음입니다. 

자비로운 마음의 기운이 하느님께 전해졌고, 

오천 명이 먹고도 일곱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자비로운 마음의 기운을 나에게도 주셨음에 감사합니다. 

모든 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나를 이끄소서.

 

- 2023년 12월6일(수) 6시2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