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글·자녀교육·시사

[매묵]2023년 12월 7일 목요일[(백)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3. 12. 7. 07:40

[매묵]2023년 12월 7일 목요일[(백)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암브로시오 성인은 340년 무렵 이탈리아 트레비리(현재 독일의 트리어)의 로마인 가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일찍부터 법학을 공부한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였고, 로마에서 공직 생활도 하였다. 그러다 뜻밖에 이탈리아 밀라노의 주교로 선임되어, 그 뒤 아리우스파를 거슬러 올바른 신앙 교리를 옹호하였다. 그는 특히 전례와 성직의 개혁을 꾸준히 실행하였으며, 한편으로는 황제의 간섭을 물리치고자 노력하였다. 암브로시오 주교의 훌륭한 성품과 탁월한 강론은 마니교의 이단에 깊이 빠져 있던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교회로 이끌기도 하였다. 성인은 397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예로니모 성인과 아우구스티노 성인, 그리고 대 그레고리오 성인과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회 학자’로 칭송받고 있다.

입당송

집회 15,5 참조
주님이 그를 지혜와 지식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시어, 회중 가운데에서 그의 입을 열어 주시고, 영광의 옷을 입혀 주셨네.

본기도

하느님,
복된 암브로시오 주교를 가톨릭 신앙의 스승으로 세우시어
사도의 용기를 보여 주게 하셨으니
교회 안에서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뽑으시어
용감하고 지혜롭게 교회를 이끌어 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간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26,1-6
1 그날 유다 땅에서는 이러한 노래가 불리리라.
“우리에게는 견고한 성읍이 있네.
그분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성벽과 보루를 세우셨네.
2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가게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라.
3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그들에게 당신께서 평화를, 평화를 베푸시니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4 너희는 길이길이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
5 그분께서는 높은 곳의 주민들을 낮추시고 높은 도시를 헐어 버리셨으며
그것을 땅바닥에다 헐어 버리시어 먼지 위로 내던지셨다.
6 발이 그것을 짓밟는다.
빈곤한 이들의 발이, 힘없는 이들의 발길이 그것을 짓밟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8(117),1과 8-9.19-21.25-27ㄱㄴ(◎ 26ㄱ 참조)
◎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 주님은 좋으신 분, 찬송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사람을 믿기보다, 주님께 피신함이 훨씬 낫다네. 제후들을 믿기보다, 주님께 피신함이 훨씬 낫다네. ◎
○ 정의의 문을 열어라. 그리로 들어가 나는 주님을 찬송하리라. 이것은 주님의 문, 의인들이 들어가리라. 당신이 제게 응답하시고 구원이 되어 주셨으니, 제가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
○ 주님, 구원을 베풀어 주소서. 주님, 번영을 이루어 주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오는 이는 복되어라. 우리는 주님의 집에서 너희에게 축복하노라. 주님은 하느님, 우리를 비추시네. ◎

복음 환호송

이사 55,6
◎ 알렐루야.
○ 만나 뵐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불러라.
◎ 알렐루야.

복음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21.24-2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4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25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에페 3,8-12)와 복음(요한 10,11-16)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주님,
복된 암브로시오를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주님의 영광을 널리 전하게 하셨으니
이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저희의 믿음도 성령의 빛으로 밝혀 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대림 감사송 1 : 그리스도의 두 차례 오심>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인간으로 처음 오실 때에는구약에 마련된 임무를 완수하시고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나이다.그리고 빛나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는저희에게 반드시 상급을 주실 것이니저희는 지금 깨어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나이다.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또는>

<성인 감사송 1 : 성인들의 영광>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성인들 가운데서 찬미를 받으시며
그들의 공로를 갚아 주시어 주님의 은총을 빛내시나이다.
또 성인들의 삶을 저희에게 모범으로 주시고
저희가 성인들과 하나 되게 하시며 그 기도의 도움을 받게 하시나이다.
저희는 이 위대한 증인에게서 힘을 얻고
악과 싸워서 승리를 거두고 나아갈 길을 끝까지 달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과 함께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영광의 월계관을 받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성인들의 무리와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1,2-3 참조
주님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은 제때에 열매를 맺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성사의 신비로운 힘으로 저희를 새롭게 하셨으니
저희가 복된 암브로시오의 가르침을 따라 구원의 길을 힘차게 걸어
마침내 영원한 잔치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세도나 여행 중에 형제님께서 기꺼이 사진 봉사를 해 주었습니다. 세도나 여행안내를 600번 하셨다는 형제님은 사진 찍기 딱 좋은 장소를 잘 아셨습니다. 산행이 힘들 때면 잠시 쉬어가면서 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장소는 모두 사진 찍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서 사진을 감상하는 것도 즐거움이었습니다. 스치는 순간 속에 잊고 지나갔던 곳들도 새록새록 생각났습니다. 사진을 보면서 한 자매님은 구름 속에서 천사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구름이 마치 천사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자매님은 자신의 체험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12년을 키우던 ‘Happy’라는 강아지가 죽었다고 합니다. 3년이 지난 뒤에 너무 보고 싶어서 하느님께 한번만 보여 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늘을 보았는데 하늘에 죽은 ‘Happy’ 모습의 구름이 있더랍니다.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고, 저희에게도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구름의 모습에 예쁜 강아지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이성과 과학, 논리와 자본에 익숙한 우리들은 어쩌면 우리들 내면에 있는 감성과 열정, 순수와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오늘은 지난번 김재덕 베드로 신부님의 강의 중에 향유를 부은 여인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향유를 부은 여인의 이야기는 4복음에 공통으로 나옵니다. 그만큼 그 내용이 초대교회의 신앙인들에게 중요했다는 의미입니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는 향유를 붙는 것에 초점이 있다면 요한복음은 향유를 붙고 머리카락으로 닦아낸다고 합니다. 요한복음에만 독특한 것은 향유를 몸에서 닦아주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어느 날 궁중의 보석 세공인을 불러 명했습니다. “날 위해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되 거기에 내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환호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결코 좌절하지 않고 자신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으라.” 이에 세공인은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지만, 정작 거기에 새길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 끝에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왕자님 왕이 큰 기쁨을 절제케 하는 동시에 크게 절망했을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때 솔로몬 왕자는 잠시 상념에 잠기더니 이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발에 묻어 있는 향유를 마리아가 닦는 행위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리라는 것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향유를 붙는 것이 장례를 상징한다면, 닦는 것은 부활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도 이 또한 지나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여기서 간직하다.’는 희랍어 원문은 지켜보다는 뜻도 있습니다. 여기서 지켜본다는 것은 시점이 현재에 있습니다. 간직한다는 것은 시점이 미래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계시지 않는 시간이 올 때, 기름을 간직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간직하는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잘 지켜보는 것을 통해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기름을 부은 행동이 복음과 같습니다. 유다는 그것을 낭비라고 보았습니다. 복음은 계속 낭비하는 것입니다. 계속 나누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렇습니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에게 낭비하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퍼주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날에 간직할 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계셔도 그 말씀을 지켜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생명과 같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하느님의 말씀에서 옵니다. 주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지켜보아야 하는 것은, 가장 힘들 때 나를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 명예, 권력에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을 간직하고 살면 믿음을 간직하고 살면 향유가 퍼지듯이 우리를 통해 하느님의 향기가 전해집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더 큰 힘을 드러냅니다. 향유를 부은 마리아를 통해서 여러 가지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봉헌하는 마리아의 모습. 십자가 죽음의 의미로 받아 주시는 예수님의 마음. 가장 절망 적일 때 붙잡아야 할 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힘들 때 주님의 말씀을 지켜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은총이 향기가 될 것입니다. 나는 어떤 향기를 내고 있을까요? ‘인색, 교만, 시기의 냄새를 내고 있지는 않는지요? 향유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간직할 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말씀의 향기가 온 집안을 채울 것입니다.


2.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대림 제1주간 목요일,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마태오 7,21.24-27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

 

신뢰란 결단이다

 

사막의 교부 알렉산드리아의 성 안토니오는 젊어서 일찍 부모를 여의고

엄청나게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젊은 재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성당에 들어갔었는데 미사가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 복음 말씀이 들려왔는데 예수님께서 부자청년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네가 완전해지려거든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라라.”

이것이 마치 부자청년인 자신에게 하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사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라고 우리 모두를 부르고 계신 것인데,

특히 이 말씀이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렸던 것입니다.

 

그는 처음에 자신의 여동생 몫을 남겨놓고 재산을 다 처분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완전히 따르는 것 같지 않아 여동생의 몫까지도

팔아서 완전하게 가난해졌습니다.

그리고 지인에게 동생을 맡기고 자신은 사막으로 들어가 극기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몇 명씩 사람이 모이게 되었고 그렇게 교회에 특별한 형태의 수도생활이란

삶의 형태가 탄생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의 마음에는 그런 고생을 하며 사는 것이 주님께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도시로 나가 복음을 선포하는 삶을 사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의 생각이 강해질수록 그것이 마귀의 목소리임을 깨닫고는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며 마지막 유혹까지도 이겨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끊임없이 당신의 목소리를 신뢰하라고 합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사실 이미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고 교회의 가르침에 다 나타나 있습니다.

안 들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독서의 주제는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당신께서 직접 지으신 견고한 성읍에

들게 하여 평안을 누리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본래 신뢰하다(batah)는 히브리어 동사의 의미는 ‘피난하기 위해 서둘러 가다’란 뜻입니다.

이렇게 주님께 신뢰하는 이들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마도

소돔 땅에서 주님의 이끄심에 따라 서둘러 소돔 땅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서둘러 가는

롯과 그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합니다.

 

완전한 신뢰는 뒤를 돌아보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이끄심이 진정 옳은 길이라 여길 때는 양다리를 걸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세상의 영화를 완전히 끊지 못한 롯의 아내는

결국 소금기둥이 되어 이 세상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처지가 되어버렸습니다.

 

“너희는 길이길이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

그분께서는 높은 곳의 주민들을 낮추시고, 높은 도시를 헐어 버리셨으며,

그것을 땅바닥에다 헐어 버리시어 먼지 위로 내던지셨다.

발이 그것을 짓밟는다. 빈곤한 이들의 발이, 힘없는 이들의 발길이 그것을 짓밟는다.”

 

결국 주님을 믿지 않고 자신을 믿는 이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도 짓밟히고 맙니다.

자신을 믿는 이들이 높은 도시를 상징합니다.

자신이 높이 있으니 피신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주님의 가르침 때문에 이 세상의 영화를 온전히 포기할 수 없는 이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주님은 부자는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는데도

그 말씀에 신뢰하지 않고 재산을 축적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라는데 미워하고 속옷까지라도 내어주라는데 더 가지려고

다른 이의 것을 빼앗는 이들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이렇게 강한데

어떻게 주님의 말씀에 신뢰하며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달려 자신을 피신시킬 수 있겠습니까?

 

루벤스의 그림 ‘사자굴속의 다니엘’이란 그림에는

다니엘이 며칠 동안 굶주린 사자굴 속에 빠져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무서운 사자들이 다니엘의 주위에 어슬렁거립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사자는 전혀

쳐다보지 않고 빛이 들어오는 구멍을 향해 하느님께 기도만 드릴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여러 목소리가 있습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려면 이 세상의 목소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주님을 신뢰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 주님께서 지으신 성읍에 들어가 살기에 합당한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달려가는 사람들인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1206. 대림 제1주간 수요일.

 

“너희에게는 빵이 몇 개나 있느냐?”(마태 15,34)
 

“대림시기”는 자신의 갈망과 마주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갈망으로 목마른 이들이 예수님을 따라 산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았습니다.
 
“군중이 다리 저는 이들과 눈 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 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마태 15,30)
 
이들은 갈망을 품고, 타인들의 손에 이끌려 산 위에 올라와 있는 이들입니다. 스스로 올라오지도 못해 이끌려와 예수님의 발치에 놓여 있지만,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이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가슴 속에 당신의 음성을 불어넣으십니다. 또 다가와 면전에 나와 있지만,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이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 안에 당신의 빛을 불어 넣으십니다. 그들의 질병을 치료하시고,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고쳐주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 마음 속 깊은 곳도 환히 보시고, 깊이 숨겨진 못 다한 말도 다 들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가까이 부르시어 이르십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마태 15,32)
 
군중이 치유는 받았지만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치유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마치, 강도 맞은 사람을 치료해주고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아줄 뿐만 아니라 여관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드리겠습니다.”(루카 10,35)라고 한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깊고 깊은 사랑의 신비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청하지도 않았는데도 이미 먹이시고, 미처 바라지도 못했는데도 이미 용서하시고, 뒷날까지도 가엷게 여기시는 그 저린 마음의 사랑을 말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오히려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을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하고 걱정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물으십니다.
 
“‘너희에게는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그러자 그들이 ‘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마태 15,34-35)
 
그렇습니다. “빵”은 ‘이미’ ‘우리 가운데’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 사실, 곧 우리 가운데 빵이 있다는 이 사실을 일깨워주시고 확인시켜 주십니다.
 
실제로, 제자들에게는 빵과 물고기가 이미 “일곱 개”나 있었습니다. “일곱”은 완전함의 숫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그것들이 있습니다. 만약, 오늘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을 보지 못하고 또한 찾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광야”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을 뿐입니다. 실제로, 복음사가는 그것으로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고 남은 조각도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마태 15,37)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광야를 순례하면서, 자꾸만 스스로를 ‘아는 사람’인 양 여깁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 아니라, ‘찾는 사람’이 순례자입니다. “참된 빵”인 “하느님만을 찾는 사람”, 그가 진정한 순례자요 대림의 길을 걷는 이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광야”에 있지만, 방황하는 이가 아니라 빛을 따라 길을 걷는 순례자로서, “하느님만을 찾는 사람들”(베네딕도의 수도규칙 58,7)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저 군중이 가엽구나.”(마태 15,32)

주님!
당신은 속 깊은 곳도 환히 보시고 깊이 숨겨진 말마저도 다 들으시니,
제 안에 당신이 새겨준 가엾이 보는 마음을 드러내시어,
제 마음이 당신 마음 되게 하소서.
그 마음으로 약한 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게 하소서.
제가 당신 마음에 들게 하시고, 당신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아멘.


3. 이수철 신부 복음 묵상

 

231206. 대림 제1주간 수요일.

 

영원한 하늘 나라 잔치, 꿈의 실현_-성체성사-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서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시편23,1-3ㄱ)

 

날마다 주님의 미사은총에 감격할 때 저절로 나오는 시편의 고백입니다. 엊그제 인용했던 교황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 젊은이들의 희망에, 어린이들의 꿈에 민감합시다!

(May we be senstive to the hopes of the young and the dreams of children!)

 

비단 젊은이와 어린이뿐 아니라, 사람 누구에나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희망이자 꿈입니다. 사람만이 희망을, 꿈을 찾습니다. 희망이, 꿈이 없으면 죽습니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희망을, 꿈을 잃어 영혼이, 정신이, 마음이 죄악의 유혹에 빠져 피폐해지고 영육의 병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희망을, 길을, 빛을 잃을 때, 사람은, 영혼은 도저히 살 수 없습니다. 

 

희망중의 희망이, 꿈중의 꿈이 바로 하느님이자 하늘 나라의 희망이요 꿈입니다. 하늘 나라의 희망이 꿈이 생생할 때 참 기쁨에 참 행복입니다. 하늘나라 꿈의 실현이 바로 예수님이요 끊임없이,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거행되는 하늘나라 잔치를 상징하는 성체성사 미사입니다. 하느님께서 가톨릭 교회뿐 아니라 온 인류에게 주신 참 좋은 선물이 바로 이 거룩한 미사입니다. 예전에 불암산을 배경으로 동녘 하늘 황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써놓은 “임께서도 아침마다”라는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임께서도 

  아침마다 미사를 드리시네

  불암산 가슴 활짝 열고 온 세상 제대(祭臺)로 삼아

  모든 피조물 품에 안고 

  미사를 드리시네

 

  하늘 높이 들어 올리신 

  찬란한 태양 성체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 받은 이는 복되도다.”

 

  가슴마다

  태양 성체모시고

  태양 성체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이다.’-2007.11.

 

16년전 늦가을 써놨던 위 시와 더불어, 그즈음 가을 김장 무와 배추밭을 지나며 써놨던 다음 시가 재미있게 떠올라 나눕니다. 이 시를 읽으시고 "프란치스코 신부, 야해!" 빙그레 따뜻한 미소를 지으시던 고(故) 이형우 시몬 베드로 아빠스님 모습이 그립게 떠오릅니다.

 

-“웬 아침부터 육체미 대회가?

  잘 가꿔진 가을 채소밭

  나란히 도열한 무 사나이들

  옆으로 늘어진 무잎들 다 벗어버리고

  저마다 육체미를 자랑하는 무 사나이들

  근육질 알통의 팔뚝같기도 하고 쭉벋은 종아리같기도 하다

  옆에서 넋놓고 바라보는 배추 처자들

  얼마동안은 계속될 육체미대회

  아침 산책때마다 봐야겠다.”-2007.11

 

하늘 나라 잔치 꿈의 현실화처럼 생각되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장면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상상할뿐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 현실화하여 살라 있는 하늘나라의 꿈입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 예언자의 꿈이 바로 하늘나라 잔치의 꿈의 원형입니다. 얼마나 황홀하고 행복한지 가슴 설레게 하는 장면을 다시 나눕니다.

 

‘그날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시리라.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모두가 구원의 대상입니다. 주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모두의 눈물을 닦아 주시며, 무지의 너울을, 탐욕의 덮개를, 온갖 수치를 치워 주십니다. 언젠가의 그날이 아니라 바로 오늘 앞당겨 살아야 할 그날입니다. 얼마나 눈물나게 고맙고 아름다운 하늘나라 구원의 잔치인지요! 바로 이 장면이 하늘나라 미사잔치의 원형입니다. 우리 모두의 궁극의 희망이자 꿈인 하늘나라 잔치의 장면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우리 구원자 예수님을 통해 바야흐로 하늘나라의 꿈이 실현됩니다. 그대로 오늘 복음은 미사장면의 압축같습니다. 주님은 모든 이들을 치유해주심으로 온전한 구원을 선사하시고 이어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십니다.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남으로 모두가 본래의 건강을 회복하니 말 그대로 하늘나라 꿈의 실현입니다.

 

‘그들을 그분 발치에 데려다 놓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그리하여 1.말못하는 이들이 말을 하고, 2.불구자들이 온전해지고, 3.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4.눈먼 이들이 보게 되자 군중이 이를 보고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분명히 주님을 만남으로 육신의 치유와 더불어 영혼의 치유도 이뤄졌을 것이니 바로 군중의 찬양과 감사가 그 좋은 증거입니다. 찬양과 감사를 통해 온전한 영육의 치유와 구원의 선물입니다. 영육의 치유와 더불어 배불리 먹이시니 성체성사의 완성을 상징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바야흐로 하늘나라 잔치의 풍요로운 꿈이 구원자 예수님을 통해 실현되는 복음 장면입니다. 주님은 병든 이들을 고치시고 굶주린 이들을 먹이시고 살리시니 영육의 온전한 치유와 구원입니다. 한마디로 고치시고 먹이시고 살리시는 구원자 예수님이십니다. 하늘나라 잔치 꿈의 실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영원한 현재 진행형으로 세상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주님은 영원히 살아 계셔서 은총의 대림시기 날마다 이 거룩한 하늘나라 미사잔치를 통해 우리를 고치시고 먹이시고 살리심으로 당신의 하늘나라 잔치의 꿈을 실현시켜 주십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대림시기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고해(苦海)인생이 아닌 축제(祝祭)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주님, 저는 오래오래, 당신 집에 사오리다.”(시편23,6). 아멘.


 

12/7(목)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 되새김 구절

 

1. 신앙을 간직하고 살면, 믿음을 간직하고 살면 향유가 퍼지듯이 우리를 통해 하느님의 향기가 전해집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더 큰 힘을 드러냅니다. 향유를 부은 마리아를 통해서 여러 가지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봉헌하는 마리아의 모습. 십자가 죽음의 의미로 받아 주시는 예수님의 마음. 가장 절망 적일 때 붙잡아야 할 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힘들 때 주님의 말씀을 지켜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은총이 향기가 될 것입니다. 나는 어떤 향기를 내고 있을까요? ‘인색, 교만, 시기의 냄새를 내고 있지는 않는지요? 향유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간직할 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말씀의 향기가 온 집안을 채울 것입니다.(조재형 신부)

 

2. 루벤스의 그림 ‘사자굴속의 다니엘’이란 그림에는

다니엘이 며칠 동안 굶주린 사자굴 속에 빠져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무서운 사자들이 다니엘의 주위에 어슬렁거립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사자는 전혀

쳐다보지 않고 빛이 들어오는 구멍을 향해 하느님께 기도만 드릴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여러 목소리가 있습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려면 이 세상의 목소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주님을 신뢰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 주님께서 지으신 성읍에 들어가 살기에 합당한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달려가는 사람들인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저 군중이 가엽구나.”(마태 15,32)

주님!
당신은 속 깊은 곳도 환히 보시고 깊이 숨겨진 말마저도 다 들으시니,
제 안에 당신이 새겨준 가엾이 보는 마음을 드러내시어,
제 마음이 당신 마음 되게 하소서.
그 마음으로 약한 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게 하소서.
제가 당신 마음에 들게 하시고, 당신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바야흐로 하늘나라 잔치의 풍요로운 꿈이 구원자 예수님을 통해 실현되는 복음 장면입니다. 주님은 병든 이들을 고치시고 굶주린 이들을 먹이시고 살리시니 영육의 온전한 치유와 구원입니다. 한마디로 고치시고 먹이시고 살리시는 구원자 예수님이십니다. 하늘나라 잔치 꿈의 실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영원한 현재 진행형으로 세상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이수철 신부)

 

 

12/7(목)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 제348일 기도

 

복음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7,21)

 

주님은 병든 이들을 고치시고 굶주린 이들을 먹이시고 살리시니...

영육의 온전한 치유와 구원입니다.

고치시고 먹이시고 살리시는 구원자 예수님이십니다.

하늘나라 잔치 꿈의 실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게 하소서.

 

- 2023년 12월7일(목) 19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