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1월 11일 목요일[(녹) 연중 제1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월 11일 목요일[(녹) 연중 제1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본기도
주님 백성의 간절한 기도를 자애로이 들으시어
저희가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4,1ㄴ-11
그 무렵 필리스티아인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려고 모여들었다.
1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러 나가 에벤 에제르에 진을 치고,
필리스티아인들은 아펙에 진을 쳤다.
2 필리스티아인들은 전열을 갖추고 이스라엘에게 맞섰다.
싸움이 커지면서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에게 패배하였다.
필리스티아인들은 벌판의 전선에서
이스라엘 군사를 사천 명가량이나 죽였다.
3 군사들이 진영으로 돌아오자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말하였다.
“주님께서 어찌하여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우리를 치셨을까?
실로에서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옵시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시어 원수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합시다.”
4 그리하여 백성은 실로에 사람들을 보내어,
거기에서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만군의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왔다.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하느님의 계약 궤와 함께 왔다.
5 주님의 계약 궤가 진영에 도착하자,
온 이스라엘은 땅이 뒤흔들리도록 큰 함성을 올렸다.
6 필리스티아인들이 이 큰 함성을 듣고,
“히브리인들의 진영에서 저런 함성이 들리다니 무슨 까닭일까?” 하고 묻다가,
주님의 궤가 진영에 도착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7 필리스티아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말하였다.
“그 진영에 신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망했다! 이런 일은 일찍이 없었는데.
8 우리는 망했다! 누가 저 강력한 신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겠는가?
저 신은 광야에서 갖가지 재앙으로 이집트인들을 친 신이 아니냐!
9 그러니 필리스티아인들아,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히브리인들이 너희를 섬긴 것처럼 너희가 그들을 섬기지 않으려거든,
사나이답게 싸워라.”
10 필리스티아인들이 이렇게 싸우자,
이스라엘은 패배하여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도망쳤다.
이리하여 대살육이 벌어졌는데,
이스라엘군은 보병이 삼만이나 쓰러졌으며,
11 하느님의 궤도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죽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당신 자애로 저희를 구원하소서.
○ 당신은 저희를 버리시고 치욕스럽게 하셨나이다. 저희 군대와 함께 출정하지 않으셨나이다. 당신이 저희를 적에게 쫓기게 하시어, 저희를 미워하는 자들이 노략질하였나이다. ◎
○ 당신은 저희를 이웃에 우셋거리로, 주위에 비웃음과 놀림감으로 삼으셨나이다. 저희를 민족들의 이야깃거리로, 겨레들의 조솟거리로 삼으셨나이다. ◎
○ 깨어나소서, 주님,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소서, 저희를 영영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당신 얼굴을 감추시나이까? 어찌하여 가련하고 비참한 저희를 잊으시나이까?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예수님은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백성 가운데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셨네.
◎ 알렐루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0-45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의 백성이 드리는 이 제물을 기꺼이 받으시고
저희를 거룩하게 하시어
저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이루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저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나이다.
<또는>
요한 10,10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성체로 새로운 힘을 얻고 간절히 바라오니
저희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며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2024년 01월 11일 목요일
[연중 제1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사제 김재덕 베드로)
레위기에 따르면 나병 환자는 사람들이 다가오거나 누군가 자신의 주변에 있으면, “부정한 사람이오.”(레위 13,45) 하고 외쳐야 하였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손을 대서도 안 되고, 그 또한 누군가와 접촉하여서도 안 되었습니다.
진영이나 도시 밖에 살아야 하는(13,46 참조) 나병 환자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경멸과 모욕하는 마음으로 그를 피하였을 것입니다.
나병에 걸리면 병으로도 고통받았지만,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아마도 사람들에게서 겪는 깊은 단절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병 환자는 오늘 복음에서 결코 하여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합니다.
예수님께 다가가 도움을 청합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자신을 고쳐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 그를 이렇게 움직이게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마음은 ‘가엾은 마음’이었습니다.
“가엾은 마음”으로 옮긴 그리스 말의 어원적 의미를 보면,
‘애가 타는 마음’, ‘심장이 찢어지는 마음’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엾은 마음’은 그분께서 나병 환자의 몸에 몸소 손을 대시게 만듭니다.
사람들과의 단절로 상처받은 그의 마음과 영혼을 예수님께서 고쳐 주십니다.
그리고 나병 환자에게 정말로 필요한 말씀, 그가 생명을 누릴 수 있는 말씀을 하여 주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가장 절망적일 때 우리가 찾고 만나야 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성체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성체 앞에 머물 때마다 나병 환자에게 행하신 기적을 그대로 일으키십니다.
그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는 우리 영혼의 깊은 상처에 손을 대시며, 생명의 말씀과 치유의 말씀을 하여 주십니다.
성체 앞에 머물러 보지 않은 사람은 이 신비를 알 수 없습니다.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1주간 목요일
영화 ‘서울의 봄’이 천만을 넘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인구가 오천만이니 5명 중에 1명은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이 정도면 역대 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는 명량을 비롯해서 열아홉 개가 있었으니 서울의 봄은 20번째 천만 관객 영화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장충동에서 신문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본당 신부님이 주보에 ‘광주’에 대한 글을 게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어딘가에 끌려가서 조사를 받고 나중에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자들은 매일 성당에 모여서 본당 신부님이 무사히 돌아오시도록 기도했습니다. 형은 군 복무 중이었습니다. 나중에 ‘국난 극복 훈장’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삼청 교육대’에 끌려갔다가 온 동네 형들도 있었습니다. 군인 출신이 다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정부에서 과외 금지를 실시하였습니다. 프로야구가 시작되었고, 교복 자율화와 두발 자율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당시 제가 기억하는 서울의 봄입니다.
영화는 ‘서울의 봄’은 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이 서거하였고, 그 권력의 빈자리를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서 채우지 못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권력의 빈자리는 몇몇 정치군인들의 총과 칼에 의해서 탈취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과정에서 권력에 비판적인 언론은 통폐합 되었습니다. 권력에 비판적인 민주인사들은 군사재판에서 사형이 언도되었습니다. 권력에 저항하는 청년들은 고문을 당하였고, 군대에 징집되었습니다. 저항하는 국민과 폭력으로 진압하는 권력이 정면으로 충돌한 현장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입니다. 당시 신문은 폭도들에 의한 혼란이 있었고, 정부는 폭도들을 진압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권력은 막강했고, 민주시민들의 저항은 약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들풀처럼 시민들은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1987년 저항하는 국민과 폭력으로 진압하는 권력이 정면으로 충돌한 현장이 ‘6.10 항쟁’입니다. 그리고 권력은 헌법을 바꾸고,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제도를 부활하였습니다. 그렇게 ‘서울의 봄’은 많은 민주인사들의 피와 땀 그리고 죽음의 제단 위에서 찾아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나병환자의 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병환자는 죄인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나병은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병환자에게는 긴 겨울이 계속되었습니다. 세상에서 버림받는 죄인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육체가 병들어가면서 절망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도 헤어져서 외롭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병환자는 바람결에 주님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화와 기쁨을 주시는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치고 병든 몸을 이끌고 예수님께 다가와서 간절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병환자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는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식에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세주’를 보았습니다. 육체의 병이 치유되는 것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세주를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나병환자에게 드디어 봄이 왔습니다. 나병환자가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보았다면 우리도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40110.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마르 1,31)
예수님의 공생활 활동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곧 기도생활과 활동생활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활동생활은 다시 말씀의 선포활동과 치유구마활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예수님의 3중 직무 곧 예언직과 사제직과 봉사직으로 관련지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 세 가지 내용을 모두 담고 있는데, <첫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치유와 구마로 사람들에게 봉사하시는 장면이요, <둘째 장면>은 새벽에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기도하시며 아버지와 친교를 이루시는 기도하시는 장면이요, <셋째 장면>은 이웃 고을로 가시어 복음을 선포하시는 장면입니다.
<첫째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마르 1,31)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치유를 받아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일으켜지자 치유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마치 산고의 아픔이 다해야 아기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기가 탄생하면 산고의 아픔은 사라져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곧 치유가 믿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치유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마르 1,34)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아는 것’과 ‘믿는 것’은 같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마귀들은 예수님을 알고는 있었지만, 결코 믿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앞 장면에서도 마귀는 “나자렛 사람 예수님, ~저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마르 1,24)라고 고백하면서도 예수님을 믿지는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 역시 아는 것에 앞서 믿고 사랑해야 할 일입니다. 진정 믿을 때라야 진정 알게 되고, 아는 바를 믿고 사랑하며, 믿고 사랑하는 바를 실천할 때 진정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장면>에서는 예수님의 삶의 중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말해줍니다. 곧 아버지 하느님과의 ‘친교와 일치’에 당신 삶의 중심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기도와 활동의 삶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곧 기도는 활동이 되고 활동은 기도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셋째 장면>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곁을 떠나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마르 1,38) 라고 알려줍니다. 이는 당신께서는 “기쁜 소식”, 곧 “하느님 나라가 왔다”는 것을 선포하러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나타나시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기도 합니다(마르 16,15).
오늘 우리는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고쳐주시고, 먼저 외딴 곳에서 기도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은총과 사랑을 입은 이들로서, 예수님의 이 사랑을 우리의 소명으로 받은 이들임을 명심해고, 예수님 삶, 곧 이 3중 직무를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나는 그 일을 하도록 떠나온 것이다.”(마르 1,38)
주님!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를 알게 하소서!
당신 뜻이 주어지고 베풀어진 선물임을 알게 하소서!
당신의 뜻을 알고 실행하는 것이 제 삶이 되게 하소서!
제 뼈 속에 갇힌 당신 뜻이 제 심장에서 불타오르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연중 제1주간 수요일
-기도와 일-
어제부터 연중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성탄시기 이벤트도 끝나고 평범한 일상의 시작입니다. 우선 성무일도 찾기가 쉽고 단순해서 좋습니다. 제의 색깔도 한결같음을 뜻하는 초록색입니다. 새삼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지 깨닫습니다. 새벽 잠깨어 휴게실에 들렸다 게시판을 보니 연합회 수도형제의 부고가 붙어 있었습니다.
두 분다 독일 수도원에 속한 분으로 한분은 1937년생으로 저보다 12세 연상이니 88세로, 한분은 1942년생으로 저보다 7년 연상이니 83세로 선종했습니다. 요즘 대부분이 80-90세 사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90세 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도 앞으로 남은 햇수로 10년-15년 안팎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어제는 신문에서 80년대 초반 서강대에서 함께 공부했던 인천교구 제정원 신부의 부고도 접했습니다. 40년 전 공부하던 때 본 후 한 번도 못 봤는데 72세로 선종했다는 기사였습니다.
이처럼 살아서가 아닌 죽어서 만나는 경우가 앞으로도 비일비재할 것입니다. 새삼 인생무상과 더불어 살날이 얼마 안 남았음에 하루하루가 참 소중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늘 강조하다시피 삶을 일일일생, 일년사계로 압축한 후 현 시점을 확인해 보면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좌우명 시를 읽으며 삶의 중심과 질서를 잡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하늘 향한 나무처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덥든 춥든,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하느님 불러 주신 이 자리에서
하느님만 찾고 바라보며
정주의 나무가 되어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살다보니
작은 나무가 이제는 울창한 아름드리
하느님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전부 7연으로 된 좌우명 고백기도시로 2012년 수도원 설립 25년 기념감사제 행사때 낭독한 시인데 얼마나 많이 나눴는지 모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읽어보며 삶의 중심과 질서를 잡는 시입니다. 연중시기 제1주간 수요일,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하루 일상이 얼마나 치열한 100% 삶인지 잘 드러납니다. 회당에서 가르침이 끝나자마자 시몬의 병든 장모를 고치시고,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전도 여행을 떠나십니다.
날마다 가르치시고, 고치시고, 하늘나라 복음을 선포하시는 평범한 일상에 지극히 충실한 삶입니다. 날마다 이런 스승이자 의사이신 주님을 만나 배우고 치유를 받고 복음 선포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우리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주목할 바 예수님 삶의 중심입니다. 삶의 한복판 중심에 위치한 외딴곳에서의 기도입니다. 분주한 일상을 마친 후, 외딴곳에서의 기도가 삶의 리듬처럼 자리 잡고 있음을 봅니다. 참으로 영육이 살기위해 외딴곳에서의 충전은 필수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피정 차 외딴곳 이곳 수도원을 찾습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저는 밤 12:30분에 잠깨어 기상 후 수도원 외딴곳 집무실에서 강론을 쓰고 있습니다. 지난 밤에도 강론 쓰기를 완성했는데 잠깨니 꿈이었고 참 난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가 끝나자마자 찾는 사람들입니다.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새삼 삶의 중심과 질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분별의 지혜가 탁월합니다. 에수님은 결코 군중의 인기에 영합하거나 유혹됨이 없이 본연의 사명에 충실하시며 삶의 중심과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습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시니 그 모습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한지요! 어느 한 곳에, 사람들에 집착함이 없이 홀가분하게 성령의 바람 따라 책임을 다하신 후 자유롭게 훌훌 떠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예수님의 시야가 참 넓고 깊습니다. 이 모두가 외딴곳에서의 기도의 힘임을 깨닫습니다. 늘 거기 그 자리에 산같이, 나무같이 정주하는 우리 수도자의 삶이라 해도 내적시야는 주변에 깨어 두루 넓고 깊게 활짝 열려있어야 함을 배웁니다. 오늘 제1독서 사무엘에게서도 우리는 삶의 중심과 질서에 충실한 모습을 배웁니다.
소년 사무엘은 스승 엘리 앞에서 주님을 섬기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거룩합니다. 늘 깨어 주님께 귀 기울여 경청하는 사무엘이었기에 주님의 매번 부르시는 음성을 듣습니다. 급기야 네 번째 주님이 부르시자 엘리가 알려 준대로 대답합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정말 사무엘처럼 이렇게 깨어 주님의 말씀에 경청하며 살고 싶음은 누구나의 영적소망일 것입니다.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가 한 말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했다니, 얼마나 사무엘이 지극 정성 하느님을 섬겼는지 깨닫습니다. 또 사무엘이 하느님 중심의 삶에 얼마나 잘 질서 잡힌 균형과 조화의 삶이었는지 짐작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은 사무엘이 주님의 믿음직한 예언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니 사필귀정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삶의 중심과 질서를 잡아주시어 하루하루 날마다 깨어 당신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며, 기도와 일이 균형과 조화를 이룬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시편40;8,9). 아멘.
1/11(목) 연중 제1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가장 절망적일 때 우리가 찾고 만나야 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성체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성체 앞에 머물 때마다 나병 환자에게 행하신 기적을 그대로 일으키십니다.
그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는 우리 영혼의 깊은 상처에 손을 대시며, 생명의 말씀과 치유의 말씀을 하여 주십니다.
(김재덕 신부)
2. 오늘 복음에서 나병환자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는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식에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세주’를 보았습니다. 육체의 병이 치유되는 것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세주를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나병환자에게 드디어 봄이 왔습니다. 나병환자가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보았다면 우리도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이영근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나는 그 일을 하도록 떠나온 것이다.”(마르 1,38)
주님!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를 알게 하소서!
당신 뜻이 주어지고 베풀어진 선물임을 알게 하소서!
당신의 뜻을 알고 실행하는 것이 제 삶이 되게 하소서!
제 뼈 속에 갇힌 당신 뜻이 제 심장에서 불타오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소년 사무엘은 스승 엘리 앞에서 주님을 섬기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거룩합니다. 늘 깨어 주님께 귀 기울여 경청하는 사무엘이었기에 주님의 매번 부르시는 음성을 듣습니다. 급기야 네 번째 주님이 부르시자 엘리가 알려 준대로 대답합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이수철 신부)
1/11(목) 연중 제1주간 목요일,제383(제13)일 기도
복음 <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가장 절망적일 때 내가 찾고 만나야 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에게 행하신 기적을 나에게 그대로 일으키십니다.
내 영혼의 깊은 상처에 손을 대시며,
생명의 말씀과 치유의 말씀을 하여 주십니다.
주님의 은총과 사랑에 감사합니다.
- 2024년 1월11일(목) 6시4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