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2월 4일 주일[(녹) 연중 제5주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2월 4일 주일[(녹) 연중 제5주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어서 와 하느님께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네.
<대영광송>
본기도
주님의 가족을 자애로이 지켜 주시고
천상 은총만을 바라는 저희를 끊임없이 보호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 욥기의 말씀입니다.7,1-4.6-7
욥이 말하였다.
1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 나날은 날품팔이의 나날과 같지 않은가?
2 그늘을 애타게 바라는 종, 삯을 고대하는 품팔이꾼과 같지 않은가?
3 그렇게 나도 허망한 달들을 물려받고 고통의 밤들을 나누어 받았네.
4 누우면 ‘언제나 일어나려나?’ 생각하지만
저녁은 깊어 가고 새벽까지 뒤척거리기만 한다네.
6 나의 나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희망도 없이 사라져 가는구려.
7 기억해 주십시오, 제 목숨이 한낱 입김일 뿐임을.
제 눈은 더 이상 행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고쳐 주신다.
○ 우리 하느님을 찬송하니 좋기도 하여라. 마땅한 찬양을 드리니 즐겁기도 하여라. 주님은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흩어진 이스라엘을 모으시네. ◎
○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 주시네. 별들의 수를 정하시고, 낱낱이 그 이름 지어 주시네. ◎
○ 우리 주님은 위대하시고 권능이 넘치시네. 그 지혜는 헤아릴 길 없네. 주님은 가난한 이를 일으키시고, 악인을 땅바닥까지 낮추시네. ◎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9,16-19.22-23
형제 여러분, 16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17 내가 내 자유의사로 이 일을 한다면
나는 삯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는 수 없이 한다면 나에게 직무가 맡겨진 것입니다.
18 그렇다면 내가 받는 삯은 무엇입니까?
내가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것에 따른 나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복음을 거저 전하는 것입니다.
19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22 약한 이들을 얻으려고 약한 이들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23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그리스도 우리의 병고 떠맡으시고 우리의 질병 짊어지셨네.
◎ 알렐루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9-39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29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보편 지향 기도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구원자이신 주님,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살펴 주시어, 주님의 말씀과 업적을 세상에 밝히 드러내며 언제나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2. 세계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은혜의 주님, 세계의 지도자들에게 통찰과 식별의 은총을 주시어, 갈등과 다툼을 경청과 배려로 풀며 형제적 사랑과 공동선의 실현에 힘쓰게 하소서.
3. 태아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 부부의 사랑으로 임신된 태아들은 모두 주님의 귀한 선물이오니, 저희 가정과 사회가 태아의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게 하소서.
4. 교구(대리구, 수도회)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저희 교구(대리구, 수도회) 공동체의 모든 이를 굽어살피시어, 겸손과 배려로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되는 주님 나라의 일꾼이 되게 하소서.
예물기도
빵과 포도주를 마련하시어
저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주셨으니
이 예물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저희는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
선택된 겨레, 임금의 사제단, 거룩한 민족,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고
저희를 어둠에서 놀라운 빛으로 부르신 주님의 권능을
온 세상에 전하게 되었나이다.
이는 파스카의 신비로 이루어진 주님의 위대한 업적이옵니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을. 그분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
<또는>
마태 5,4.6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으리라.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지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저희 모두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 먹고 마시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기꺼이 인류 구원에 앞장서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오늘의 묵상
1. 전삼용 요셉신부 강론
연중 제5주일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5주일
2019년 8월 21일에 서울에서 뉴욕으로 왔습니다. 교구에서 저를 ‘가톨릭평화신문 미주지사’로 파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5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뉴욕에서 지내면서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소셜넘버(SSN)를 받고, 운전면허증을 땄습니다. 말 그대로 따는 것입니다. 뉴욕은 한국에서의 운전면허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필기, 실기 시험을 보아야 합니다. 은행 계좌를 열면서 뉴욕에서의 첫 출발은 순조롭게 시작되었습니다. 전임 신부님의 열정적인 홍보 덕분에 신문사의 재정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2020년을 준비하면서 야심차게 계획을 세웠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볼리비아에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습니다. LA에 있는 여행사 대표와도 일정을 조율하였습니다. 2달에 걸친 신문홍보 일정을 만들었습니다. 사순특강과 신문홍보를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버지니아, LA, 밴쿠버를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LA에는 한인성당이 많기에 세 성당에서 홍보 및 강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꿈에 부풀게 2020년을 시작하였습니다. 장밋빛 인생이 제게도 시작되는 것 같았습니다. 뮤지컬도 보고, 박물관도 가고, 센트럴파크도 걸었습니다. 뉴욕이 저를 환영하는 것 같았고, 저도 뉴요커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주사위는 사람이 던지지만 결정은 하느님께서 하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욥은 이렇게 자신의 신세를 이야기합니다.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 나날은 날품팔이의 나날과 같지 않은가?” 하느님께 충실했고, 가족을 사랑했고, 이웃에게 기꺼이 나누었던 욥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에게 시련은 스나미처럼 밀려왔습니다. 재산을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리고, 건강까지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니 누가 보아도 하느님께 버림받은 사람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욥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좋은 것을 주셨음에 감사드렸다면, 나쁜 것을 주실지라도 감사드립니다.” 부푼 꿈을 안고 2020년을 시작한 제게도 시련이 스나미처럼 밀려왔습니다. 중국에서 시작한 코로나의 스나미입니다. 2020년 2월 한국은 코로나가 열병처럼 퍼져나갔습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미국에 있는 저를 부러워하였습니다. 그러나 발 없는 코로나는 1달이 못 되서 뉴욕으로 건너왔습니다. 2020년 3월 13일 미국은 사회가 문을 닫았습니다.(Lockdown) 박해의 시기에도 계속되었던 미사가 중단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신문홍보와 사순특강도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그해 9월 10일 어머니가 하느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멀리 뉴욕에서 어머니를 위해 미사를 봉헌하며 기도해야 했습니다.
교황님은 3월 27일 사순 제4주일 금요일 저녁, 코로나19 대유행의 시기에 특별 기도를 주례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홀로,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께 자신을 의탁하도록 인류를 초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교황님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구원자이신 주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낼 수 없도록, 우리가 치유되고 그분의 품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황님의 기도를 보면서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오듯이,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이 코로나의 스나미도 지나가리라 믿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지만 우리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개발, 발전, 성장, 자본’이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인류가 잠시 멈추어 있는 동안 공기는 깨끗해졌고, 더불어 사는 생명은 풍부해졌고, 자연은 회복되었습니다. 일상의 소중함과 일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이 행복이었습니다. 가족과 친구와 차 한 잔 마시면서 대화하는 것이 행복이었습니다. 형제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었습니다. 동료사제들과 함께 하면서 코로나의 스나미를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신문홍보를 할 수 없을 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게 브루클린 한인성당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2020년 8월에 브루클린 한인성당에서 주일미사를 해 줄 수 있는지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생각해보면 브루클린 한인성당 공동체와 함께한 시간들은 하느님께서 제게 주신 커다란 선물이었습니다. 제가 뉴욕에서 5년 동안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브루클린 한인성당 공동체의 기도와 사랑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감사드립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미사를 끝으로 댈러스 한인성당으로 갑니다. 어디에 있더라도 브루클린 한인성당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함께 해서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연중 제5주일
<'예수님께서 ~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제1독서에서 욥은 기도를 통해 인생의 허무함 속에서도 “기억해주십시오.”(욥 7,7)하며, 하느님께 희망을 둡니다.
그리고 그 희망은 오늘 복음에서 이루어집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복음의 전달자로서,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고(1고린 9,19),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음(1고린 9,22)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복음 선포'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로 제시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공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해 줍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활동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우선 ‘기도생활’과 ‘활동생활’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활동생활’은 다시 ‘말씀의 선포 활동’과 ‘치유 구마 활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셋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를 우리는 예수님의 3중 직무 곧 ‘예언직’과 ‘사제직’과 ‘봉사직’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 세 가지 내용을 다 담고 있습니다.
첫째 장면은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치유하시고, 몰려든 많은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고쳐주시는 장면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치유와 구마로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섬기는 장면입니다.
곧 ‘섬김의 봉사직’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한 구절에만 주의를 기울여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마르 1,31)
이는 손을 잡자 열이 내려가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치유를 받아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일으켜지자 치유가 일어났다는 말씀입니다.
이를 우리는 이렇게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악습이나 결함이 고쳐져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잡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잡아주시니 우리가 고쳐진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는 치유 받으면 믿을 것처럼 여기지만, 믿음이 치유를 불러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치유보다 먼저 앞서는 치유를 가져오는 ‘믿음’입니다.
둘째 장면은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기도하시는 장면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삶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곧 아버지 하느님과의 일치에 당신 삶의 중심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토록 당신의 삶은 아버지 성부와의 친교와 유대 안에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곧 ‘예수님의 사제직’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지상 삶의 두 가지 차원, 기도와 활동의 삶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결코 ‘기도 없는 활동’이나, ‘활동 없는 기도’가 있을 수 없음을 말해줍니다.
곧 ‘기도는 활동이 되어야 하고 활동은 기도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활동에 앞서 먼저 기도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기도가 곧 활동으로 나아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외딴 곳에서 기도하시고 나서, '복음 선포'를 위해 다른 이웃 고을들로 찾아가시는 장면입니다.
곧 ‘선포와 증거의 예언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마르 1,38)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느님 곁을 떠나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곧 당신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주신 사명이기도 합니다(마르 16,15).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의 이 사명을 우리의 사명으로 받아 사는 사람들입니다.
곧 그것은 ‘먼저 하느님과의 유대와 친교를 앞세우는 기도의 삶’이요, ‘선포된 복음을 영접하고 그를 선포하고 증거 하는 삶’이요, ‘형제와 이웃에게 봉사하는 섬기는 삶’입니다.
이러한 사명의 삶은 당신의 사랑과 구원의 표시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이 은총, 이 사랑을 입고서 이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나는 그 일을 하도록 떠나온 것이다.”
(마르 1,38)
주님!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를 알게 하소서!
당신 뜻이 주어지고 베풀어진 선물임을 알게 하소서!
당신의 뜻을 알고 실행하는 것이 제 삶이 되게 하소서!
제 뼛속에 갇힌 당신 뜻이 제 심장에서 불타오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연중 제4주간 토요일
-섬김과 배움, 자비와 지혜-
제가 참 좋아하는 우리말 둘이 “섬기다”와 “배우다”이고 명사형으로 하면 “섬김”과 “배움”이 되겠습니다. 비단 지도자는 물론이고 참된 삶을 지향한다면 두 기본적 삶의 요소가 섬김과 배움일 것입니다. 둘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었음을 봅니다. 섬기는 것도 배워야 한다는 것이지요. 섬김뿐 아니라 기도도 사랑도 믿음도... 모두가 평생 배워야 할 것들입니다.
그래서 깨달은 겸손한 이들은 기도든 믿음이든 사랑이든 늘 초보자라고 고백합니다. 농사짓든 이들을 대해도 늘 초보자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니 무엇이든 배우는, 공부하는 겸손한 자세가 기본임을 깨닫습니다. 말 그대로 “배움의 여정”중에 필요한 모든 덕목을 배우는 우리들입니다. 결국 배우다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우리의 사부 성 베네딕도 역시 자신의 공동체를 주님을 섬기는 학원으로 정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학원을 설립해야 하겠다. 우리는 이것을 설립하는데 거칠고 힘든 것은 아무것도 제정하기를 결코 원치 않는다. 그러니 결점을 고치거나 애덕을 보존하기 위하여 공정한 이치에 맞게 다소 엄격한 점이 있더라도 즉시 놀래어 좁게 시작하기 마련인 구원의 길에서 도피하지 마라.”(머리45-48)
참 아름다운 규칙서 내용으로 수도생활의 핵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학원인 배움터라는 것이요 여기서 평생 주님과 이웃을 섬기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섬김과 배움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마음의 눈만 열리면 섬김의 삶을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온통 배움의 대상입니다.
학원보다는 순수한 우리말 배움터가 좋습니다. 마산 트라피스트 수도원 정문에는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로 쓰여 있습니다. 배움터, 쉼터, 샘터, 일터 순수한 우리말이 참 정겹습니다. 주님의 배움터, 쉼터, 샘터같은 미사시간입니다. 참으로 섬기는 지도자는 물론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바 두 필수적 자질이 자비와 지혜일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자질인 자비와 지혜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오늘 복음의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불자들도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를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예수님의 자비와 지혜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한 실재의 양면임을 봅니다. 참으로 자비로운 연민의 사람이라면 저절로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비심에서 샘솟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했을 때 예수님의 분별의 지혜가 빛을 발합니다. 사도들의 피곤한 처지를 한눈에 직시한 배려와 공감의 자비하신 주님은 지혜롭게도 이들에게 관상적 휴식을 명하십니다.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일터에서 외딴곳의 쉼터로 옮기라는 것입니다. 관상과 활동의 균형과 조화는 건강한 영적 삶을 위한 리듬입니다. 참으로 참된 영적 삶을 위해 구체적으로 외딴곳의 장소와 시간 마련은 필수입니다. 이어 전개되는 내용이 또 흥미롭습니다. 외딴곳에 도착하니 이미 영육으로 굶주린 이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착한목자 주님은 유연하게 현실의 필요에 임하시니 새삼 사랑은 분별의 잣대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그림같은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군중들의 절박한 요구에 응답해 휴식을 포기하고 이들의 구원활동에 전념하는 자비로우시고 지혜로우신 주님입니다. 가엾이 여기는, 측은히 여기는,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마음, 자비심은 그대로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흡사 오늘 복음의 구조가 미사전례를 상징하는 듯 합니다. 말씀의 전례후에 이어질 오늘 복음에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은 그대로 성찬전례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새삼 하느님의 자비와 지혜의 결정체같은 최고의 선물이 성체성사 미사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를 주님을 닮은 섬김과 배움의 겸손한 사람들로, 또 자비와 지혜의 사람들로 만들어 줍니다.
오늘 열왕기 상권에서 지금까지 맹활약했던 다윗 임금은 역사무대에서 퇴장하고 그 후계자로 솔로몬이 등장합니다. 하느님께서 다윗에 대해 베풀었던 애정이 그대로 솔로몬에게 계속되니 이것은 순전히 부왕 다윗 덕분입니다. 주님의 솔로몬을 향한 물음은 그대로 우리를 향한 물음처럼 들립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과연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솔로몬의 대답은 통쾌할 정도로 정확했고 지혜로웠습니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경청과 분별의 지혜를 청하는 것이 주님 보시기에 좋았고, 이어 주님은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자신을 위해 장수를, 부를,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도 않고 분별력을 청한 솔로몬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솔로몬에 대한 편애가 지나칠 정도입니다.
“나, 내가 네 말대로 해 주겠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나는 네가 청하지도 않은 것, 부와 명예도 너에게 준다. 네 일생 동안 임금들 가운데 너같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솔로몬이 참으로 지혜로웠다면 부와 명예는 단연코 사양했을 것입니다. 부와 명예의 유혹에서 벗어날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며 이들은 사람들을 타락과 부패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전개되는 솔로몬의 삶에서 보다시피 그의 타락과 부패로 인해 다윗이 이루어 전해준 성취는 서서히 무너지고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세우기”는 평생이지만 “무너지기”는 순간입니다.
만약 제가 솔로몬이었다면 하나가 아닌 넷만 청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한결같은 “섬김과 배움”의 겸손한 자세, 주님의 한결같은 “자비와 지혜”의 자질만 청했을 것입니다. 섬김과 배움, 자비와 지혜, 이 넷이야 말로 지도자들은 물론 참사람이 되기 위한 우리 모두의 기본적, 필수적 덕목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날로 주님을 닮아 섬김과 배움, 자비와 지혜의 사람들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아멘.
2/4(일) 연중 제5주일, 되새김 구절
1.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그러나 실상 삶의 의미나 목적을 찾음은 창조자를 인정하는 행위이고...(전삼용 신부)
2.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조재형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나는 그 일을 하도록 떠나온 것이다.”
(마르 1,38)
주님!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를 알게 하소서!
당신 뜻이 주어지고 베풀어진 선물임을 알게 하소서!
당신의 뜻을 알고 실행하는 것이 제 삶이 되게 하소서!
제 뼛속에 갇힌 당신 뜻이 제 심장에서 불타오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섬김과 배움, 자비와 지혜, 이 넷이야 말로 지도자들은 물론 참사람이 되기 위한 우리 모두의 기본적, 필수적 덕목이기 때문입니다. (이수철 신부)
2/4(일) 연중 제5주일, 407(제37)일 기도
복음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떠나온 것이다.”
(마르 1,38)
주님!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를 알게 하소서!
당신 뜻이 주어지고 베풀어진 선물임을 알게 하소서!
당신의 뜻을 알고 실행하는 것이 제 삶이 되게 하소서!
제 뼛속에 갇힌 당신 뜻이 제 심장에서 불타오르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2월4일(일) 20시5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