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5월 7일 화요일[(백) 부활 제6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5월 7일 화요일[(백) 부활 제6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영광 드리세. 주 우리 하느님, 전능하신 분이 다스리신다. 알렐루야.
본기도
성자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축하는 저희가
참으로 부활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6,22-34
그 무렵 필리피의 22 군중이 합세하여 바오로와 실라스를 공격하자,
행정관들은 그 두 사람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지시하였다.
23 그렇게 매질을 많이 하게 한 뒤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24 이러한 명령을 받은 간수는 그들을 가장 깊은 감방에 가두고
그들의 발에 차꼬를 채웠다.
25 자정 무렵에 바오로와 실라스는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하고,
다른 수인들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26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렸다.
그리고 즉시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다.
27 잠에서 깨어난 간수는 감옥 문들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하였다.
수인들이 달아났으려니 생각하였던 것이다.
28 그때에 바오로가 큰 소리로,
“자신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에 있소.” 하고 말하였다.
29 그러자 간수가 횃불을 달라고 하여 안으로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오로와 실라스 앞에 엎드렸다.
30 그리고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32 그리고 간수와 그 집의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33 간수는 그날 밤 그 시간에 그들을 데리고 가서 상처를 씻어 주고,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34 이어서 그들을 자기 집 안으로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하고,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을 온 집안과 더불어 기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당신 오른손으로 저를 구하소서.
또는
◎ 알렐루야.
○ 주님,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제 입의 말씀을 들어 주시기에, 천사들 앞에서 찬미 노래 부르나이다. 거룩한 성전 앞에 엎드리나이다. ◎
○ 당신은 자애롭고 진실하시니, 당신 이름 찬송하나이다. 제가 부르짖던 날, 당신이 응답하시고, 저를 당당하게 세우시니, 제 영혼에 힘이 솟았나이다. ◎
○ 주님은 오른손으로 저를 구하시나이다.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리라! 주님, 당신 자애는 영원하시옵니다. 당신 손수 빚으신 것들 저버리지 마소서.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의 영을 보내리니 그분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시리라.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5-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5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6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7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10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11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이 거룩한 파스카 신비로 저희 구원을 이루시니
저희가 감사하며 드리는 이 제사가
저희에게 영원한 기쁨의 원천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이제 죄와 죽음은 사라지고,
타락하였던 만물이 새로워지며,
그리스도 안에서 저희 생명이 온전히 회복되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으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당신 영광 속으로 들어가셨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이 거룩한 교환의 신비로 저희를 도우시어
저희가 이 세상에서 충실히 살아
마침내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활 제6주간 화요일
잘 되던 인터넷이 갑자기 연결이 안 되었습니다. 급한 대로 전원을 끄고 다시 켜보았지만 그래도 연결이 안 되었습니다. 그럴 때면 연결하는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스마트폰의 인터넷을 컴퓨터에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 인터넷 연결이 되었습니다. 집으로 들어오는 인터넷은 회사에 연락해서 방법을 찾으면 될 것입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듯이 염불이든 참선이든, 밀교든 현교든, 간화선이든 불교의 궁극적 깨달음을 얻게 해 주면 그 수행은 정법(正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로 걸어서 서울로 갈 때 목적지인 서울이 어떤 곳인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나중에 서울에 도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듯이, 불교의 깨달음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내가 체득한 경지가 올바른 깨달음이라고 나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불교의 깨달음은 무엇일까요? 답은 간단명료합니다. ‘번뇌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과 가르침은 고, 집, 멸, 도의 사성제(四聖諦)로 요약됩니다.
사성제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란 뜻입니다. 모든 현상은 궁극적으로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고성제, 그런 고통의 원인은 내 마음 속의 탐욕, 분노, 우치(愚癡)와 같은 번뇌라는 집성제, 이들 번뇌를 모두 제거하여 고통이 사라지는 열반의 멸성제, 그리고 이렇게 번뇌를 제거하는 팔정도의 수행인 도성제입니다. 즉, 불교수행의 길에서 최종 목표는 번뇌가 소멸한 열반입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하듯이, 그 어떤 수행법을 선택했어도 나에게 열반을 증득하게 해 주면 그 수행법은 정법입니다.
불가에서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부처가 깨달음에 방해가 되면 그 부처마저도 버려야 한다.’ 임제 스님의 유명한 살불살조(殺佛殺祖)입니다.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인다는 뜻입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말은 나를 얽어매는 것은 무엇이든지 부셔버리라는 뜻입니다. 부처라는 관념, 조사나 아라한이라는 이름에 속박되면 절대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이런 종교적 권위로 만들어진 우상을 부셔버리지 않고서 진정한 자유와 해탈을 이룰 수 없다고 합니다.
제가 안 되는 인터넷을 가지고 씨름했으면 인터넷 연결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다행히 스마트폰 연결이라는 방법을 알았기에 인터넷을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로운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그 방법이 제자들에게는 두려움일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이 제자들에게는 어려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차원의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갈릴래아라는 공간과 사람이 되신 예수님이라는 인격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점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났고, 말씀을 들었고, 표징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을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물리적인 법칙을 뛰어넘는 차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차원을 ‘협조자. 성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감옥이 흔들리고, 부서졌을 때, 바오로 사도는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감옥은 더 이상 굴레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육체의 욕망에 사로잡히면 불행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재물이라는 욕망이 인간의 영혼을 물어뜯습니다. 명예라는 욕망이 인간의 영혼을 물어뜯습니다. 권력이라는 욕망이 인간의 영혼을 물어뜯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모상이었습니다. 재물이라는 욕망은 가난이라는 영혼을 만나면 얌전해집니다. 명예라는 욕망은 비움이라는 영혼을 만나면 얌전해집니다. 권력이라는 욕망은 겸손이라는 영혼을 만나면 얌전해집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욕망을 가난과 비움 그리고 겸손으로 따듯하게 받아들이는 사도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세상의 재물, 명예, 권력에 젖어있던 간수는 사도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난, 비움, 겸손의 영혼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아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또한 욕망의 우리에서 벗어나 참된 생명의 길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부활 제6주간 화요일
복음: 요한 16,5-11
보호자 성령의 현존과 동반을 굳게 믿으십시오!
요즘 우리가 봉독하는 사도행전은 성령으로 충만한 사도들, 용맹한 주님의 군사로 거듭난 사도들의
놀라운 행적을 계속 소개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변화입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더 이상 그 어떤 두려움이나 망설임이 없습니다.
그 어떤 박해나 위협에도 조금도 뒤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복음과 관련해서 한 번만 더 입 뻥끗했다가는 더 이상 안 봐주니, 입을 다물라고 해도,
사도들은 더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참다못한 행정관들은 바오로와 실라스의 옷을 찢어 벗깁니다.
맨살 위로 엄청난 매질을 해댔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두 사람은 깊은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도망을 칠까봐, 발에는 차꼬를 채웠습니다.
그 처참한 모습에 간수는 혹시나 죽었을까봐, 가끔씩 이봐요, 살아있어요? 하고 확인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정이 될 무렵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무지막지한 매를 맞아 정신이 혼미할 상태 속에서도 두 사람은 어떻게든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고 기를 쓰면서
안간힘을 다해 주님을 찬미하는 송가를 불렀습니다.
큰 목소리로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그러자 잠시후 주님께서 그들의 모습에 탄복을 하시고 응답을 주셨습니다.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렸습니다.
그리고 즉시 문들이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간수는 감옥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사도들이 탈옥한 것으로 알고 품고 있던 칼을 뽑아
자결하려고 하였으나 바오로가 만류하였습니다.
놀라운 광경 앞에 넋이 나간 간수는 즉시 바오로와 실라스 앞에 엎드려 물었습니다.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은 아주 간결하게 대답했습니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사람의 지성이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놀라운 광경, 그 배경에 대체 무엇이 있었을까요?
성령의 굳건한 현존과 활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요한 복음도 성령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한없이 나약한 우리들, 겁쟁이들인 우리지만, 보호자 성령께서 늘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고,
우리 인생 여정에 동반하심을 굳게 믿는다면 우리 역시 세상의 두려움을 기꺼이 떨칠 수 있을 것입니다.
적대자들이 아무리 우리를 협박한다 할지라도 눈 한번 깜빡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눈과 마음과 지성을 밝혀 주시면 무엇이 죄인지 무엇이 의로움인지를
명확히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강론
부활 제6주간 화요일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오늘 복음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앞부분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승천과 성령의 파견을 예고하시는 장면이고, 뒷부분은 세상에 대한 성령의 역할에 대한 말씀입니다. 뒷부분은 내일 복음과 함께 보도록 하고, 오늘은 앞부분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승천을 암시하십니다.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요한 16,5)
이는 당신이 파견 받아 오셨다는 것과 보내신 분의 사명을 마치실 때가 되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당신이 떠나간다는 말에 제자들의 마음은 근심이 가득 찼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보호자’이신 성령의 파견에 대해서 거듭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요한 16,7)
왜 꼭 당신이 가셔야만 그분을 보내시는 것일까?
아니, 성령은 이미 당신과 함께 계시는 분이 아니신가?
그런데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고 하시니, 이는 무슨 말씀일까?
이 말씀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는 “동정녀의 태에서 잉태된 종의 모습이 우리 육체의 눈앞에서 사라지고나야,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 자체에 순수한 마음의 눈을 두기 시작하게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말합니다.
그레고리우스 역시 “내가 나의 육체를 너희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지 않으면, 보호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너희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끌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설합니다.
그러니 성령께서 함께 같이 계실 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눈’이 그분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의 눈이 ‘영적으로’ 열리게 되면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어제가 가야 오늘이 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시간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함께 있으면서도, 오늘을 통하여 어제도 내일도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마치 아버지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구원하실 수 있으시지만 아들을 통하여 그것을 이루시면서 아들을 드러내시듯이, 예수님께서도 모든 일을 이루실 수 있지만 성령의 존귀함을 드러내시기 위하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의 특성으로, 자신 안에서 자신이 아닌 타자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곧 아버지께서는 아들과 성령을 드러내시고, 아들은 아버지와 성령을 드러내시고, 성령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을 드러내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정 그분을 사랑한다면, 우리 안에서 우리 자신이 아닌 우리 안에 계신 그분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요한 16,7)
주님!
보는 것, 아는 것에 매여 있는 저를 부수소서.
저를 부수고 당신을 드러내소서!
제 눈을 비추시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시고,
제 자신에게 매이지 않는 당신 영을 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5.6.부활 제6주간 월요일 사도16,11-15 요한15,26-16,4ㄱ
환대(hospitality)와 보호자 성령(the Paraclete)
교회선교의 본질적 두 요소
"내 영혼,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애타게 그리건만
그 하느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오리까."(시편42.3)
일기쓰듯 편안하게 쓰는 강론을 지향합니다.
오늘은 한국 103위 순교성인 시성 기념일입니다.
꼭 40년전인 오늘 1984년 5월6일, 오전 10시25분, 순교자들이 피로 신앙을 증거한 절두산과
새남터 성지가 내다보이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보편교회의 수장이자 그리스도의 대리자,
“평화의 사도” 성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는 황금빛 곤룡포를 입고 미사주례중 100만명이
신자들 앞에서 라틴어로 103위 순교복자의 시성을 선언했습니다.
이 교황님 황금빛 곤룡포 제의는 요셉수도원을 참으로 사랑했던 매듭전문가 김희진 자매가 만들었고
후에 자매님은 남은 황금빛 천으로 제의를 만들어 우리 요셉 수도원에 기증하여
자주 대축일에 입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이에 앞서 교황님이 1984년 5월3일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내려 땅에 엎드려
겸손히 친구(親口, 존경을 담은 입맞춤)하던 장면은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요!
1984년 5월6일 이날은 평신도 92명(여성47명, 남성45명), 성직자 11명(한국외방전교회10명 포함)이
성인이 된, 참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전 국민이 TV 생중계를 통해 그 감동을 생생히 느낀 국민의 축제같은 날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장충동 분원에 머물러 연학중이던 청원자 신분으로 이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또 교회 뉴스를 보니 지난주 4월29일에는 90세로 선종한 부산교구의 저명한 진보적 신학자
서공석 신부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서인석 신부와 사촌간이자 마르틴 아빠스와 절친관계에 있던 분이셨습니다.
세월이 지나니 대개는 90세 전후로 세상을 떠납니다. 긴듯하나 짧은 인생입니다.
어제 교황청 베드로 광장에서 레지나 첼리 삼종기도후 교황님의 강론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교황님은 “나는 더 이상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들이라 부르겠다” 대목을 중심으로
주님과의 아름다운 우정의 성장을, 그리고 그 우정을 다른 이들과 나눌 것을 강조했습니다.
주님과의 우정, 얼마나 아름답고 정겨운 말마디인지요!
날로 주님과 깊어지는 우정의 관상적 삶인지 뒤돌아 보게 합니다.
정말 우리의 친구가 되시는 예수님과의 깊어지는 우정과 더불어 웬만한 소원도
다 이루어지리란 생각이 듭니다.
어제부터 내린 하루종일 내린 봄비가 지금도 계속 오고 있습니다.
어제 수도원을 찾아 미사에 참석했던 어느 자매는 빗소리에 감격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빗소리 듣기도 힘든 아파트 주택구조라 그럴 것입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23년전 써놨던 "대화"란 시가 생각났습니다.
“바라봄의 관상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에 때로 둘만의 깊고 긴 대화가 필요하다
하늘님과 땅,
멀리서 보기만 했지 못다한 이야기들 너무 많았다
하루종일 두런두런 소리내며 내리는 비
나눠도 나눠도 끝없이 이어지는 하늘님과 땅의 정다운 대화
사랑의 일치
아! 때로 나누고 싶다
관상적 삶중에 주님과의 끝없는 대화를”-2001.7.5
오랜만에 내린 충분한 봄비로 흐르는 불암산 계곡 물소리도 반갑습니다.
하늘님과 땅의 대화를 상징하는 봄비 소리처럼 주님과의 관상적 대화는 신자들의 내적생활을
참으로 풍요롭게 합니다.
이런 관상적 삶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환대와 파라클레토 보호자 성령입니다.
이 둘은 교회 선교 활동에 본질적 요소에 속합니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활동하는 역할의 겸손한 환대, 겸손한 보호자 성령입니다.
바로 제1독서 사도행전의 필리피에서의 리디아의 환대가 그 빛나는 모범입니다.
초대교회의 선교활동이 원활할 수 있었음은 이런 자발적 겸손한 환대에 있음을 봅니다.
히느님은 리디아의 마음을 열어 주시어 바오로와 그 선교 일행을 환대하게 하십니다.
다음 대목의 묘사가 참 아름답습니다.
‘티아티라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아마도 분명 바오로와 그 선교 일행은 리디아의 환대에 응해서 그의 집에 머물렀을 것이며
자연스럽게 가정교회가 이뤄집니다.
초대교회는 이런 환대에 바탕한 가정교회가 주류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보이지 않는 숨겨져 있는 겸손한 환대 없이 초대교회의 선교활동은 불가능했습니다.
이리하여 필리비는 바오로와 그 선교 일행의 활약에 힘입어 지역선교에서 유럽 대륙 선교의
영광스러운 교두보이저 전초기지가 됩니다.
물론 당시의 바오로와 그 일행은 몰랐겠지만 하느님의 계획에는 유럽 대륙의 선교가 있었던 것입니다.
겸손한 관상적 환대에 이어, 겸손한 파라클레토 진리의 영이 또 절대적 역할을 합니다.
바로 2주 후에는 진리의 영, 성령님이 오시는 성령강림 대축일이 있고 불교와 사이 좋은 관계를 상징하듯
그 앞 5월15일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앞서 오시는 부처님이 성령님의 형님처럼 생각됩니다.
참으로 교회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성령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교회의 중요한 행사때는 전례시 성령님이 임하기를 간청합니다.
이미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진리의 영을 보내주실 것을 예고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주님을 증언하시는 진리의 영, 성령의 역할입니다.
다양한 형태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조언하시며 강화하시고 지지하시는 성령입니다.
그대로 성령은 교회 공동체내의 예수님의 현존이 됩니다.
참으로 역설적으로도 온갖 박해중에도 위로자 성령의 도움으로 사랑과 용서, 평화와 정의의 활동에 항구했던
교회였음을 봅니다.
코린토 2서의 다음 말씀이 이를 입증합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 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듯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는 위로도 넘칩니다.”
이래서 우리는 주님의 현존인 성령을 우리의 희망이자 참 좋은 위로자, 조력자로 고백합니다.
참으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환대와 더불어 성령과의 친교로 바람직한 관상적 선교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끝으로 환대와 주님과의 친교를 고백한 자작 좌우명시를 나눕니다. 교회는
물론 우리 모두가 지녀할 환대의 앞문과 친교의 뒷문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활짝 열린 앞문, 뒷문이 되어 살았습니다.
앞문은 세상에 활짝 열려 있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歡待하여 영혼의 쉼터가 되었고
뒷문은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
하느님과 깊은 친교親交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5/7(화) 부활 제6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욕망을 가난과 비움 그리고 겸손으로 따듯하게 받아들이는 사도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세상의 재물, 명예, 권력에 젖어있던 간수는 사도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난, 비움, 겸손의 영혼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아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또한 욕망의 우리에서 벗어나 참된 생명의 길로 나가야 하겠습니다.(조재형 신부)
2. 오늘 우리가 봉독한 요한 복음도 성령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한없이 나약한 우리들, 겁쟁이들인 우리지만, 보호자 성령께서 늘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고,
우리 인생 여정에 동반하심을 굳게 믿는다면 우리 역시 세상의 두려움을 기꺼이 떨칠 수 있을 것입니다.
적대자들이 아무리 우리를 협박한다 할지라도 눈 한번 깜빡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눈과 마음과 지성을 밝혀 주시면 무엇이 죄인지 무엇이 의로움인지를
명확히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요한 16,7)
주님!
보는 것, 아는 것에 매여 있는 저를 부수소서.
저를 부수고 당신을 드러내소서!
제 눈을 비추시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시고,
제 자신에게 매이지 않는 당신 영을 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주님을 증언하시는 진리의 영, 성령의 역할입니다.
다양한 형태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조언하시며 강화하시고 지지하시는 성령입니다.(이수철 신부)
5/7(화) 부활 제6주간 화요일, 499(129)일 기도
복음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오늘의 말·샘 기도>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요한 16,7)
주님!
보는 것, 아는 것에 매여 있는 저를 부수소서.
저를 부수고 당신을 드러내소서!
제 눈을 비추시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시고,
제 자신에게 매이지 않는 당신 영을 보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5월7일(화) 9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