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5월 10일 금요일[(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4. 5. 10. 06:51

[매묵]2024년 5월 10일 금요일[(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백] 아빌라의 성 요한 사제 학자

입당송

묵시 5,9-10 참조
주님, 주님은 당신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에서 저희를 속량하시어, 하느님을 위하여 한 나라를 이루고 사제가 되게 하셨나이다. 알렐루야.

본기도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어
말씀이신 성자께서 하신 거룩한 약속이
복음 전파로 온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주님의 모든 자녀가 진리를 따라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8,9-18
바오로가 코린토에 있을 때,
9 어느 날 밤 주님께서는 환시 속에서 그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
11 그리하여 바오로는 일 년 육 개월 동안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12 그러나 갈리오가 아카이아 지방 총독으로 있을 때,
유다인들이 합심하여 들고일어나 바오로를 재판정으로 끌고 가서,
13 “이자는 법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하느님을 섬기라고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4 바오로가 입을 열려고 하는데 갈리오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유다인 여러분, 무슨 범죄나 악행이라면 여러분의 고발을 당연히 들어 주겠소.
15 그러나 말이라든지 명칭이라든지 여러분의 율법과 관련된 시비라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시오. 나는 그런 일에 재판관이 되고 싶지 않소.”
16 그러고 나서 그들을 재판정에서 몰아내었다.
17 그러자 모두 회당장 소스테네스를 붙잡아 재판정 앞에서 매질하였다.
그러나 갈리오는 그 일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다.
18 바오로는 한동안 그곳에 더 머물렀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프리스킬라와 아퀼라와 함께 배를 타고 시리아로 갔다.
바오로는 서원한 일이 있었으므로, 떠나기 전에 켕크레애에서 머리를 깎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47(46),2-3.4-5.6-7(◎ 8ㄱ)
◎ 하느님이 온 누리의 임금이시다.
또는
◎ 알렐루야.
○ 모든 민족들아, 손뼉을 쳐라. 기뻐 소리치며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주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 경외로우신 분, 온 세상의 위대하신 임금이시다. ◎
○ 그분은 민족들을 우리 밑에, 겨레들을 우리 발아래 굴복시키셨네. 우리에게 상속의 땅을 골라 주셨네. 사랑하시는 야곱의 영광을 주셨네. ◎
○ 환호 소리 가운데 하느님이 오르신다. 나팔 소리 가운데 주님이 오르신다. 노래하여라,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노래하여라, 우리 임금님께 노래하여라. ◎

복음 환호송

루카 24,46.26 참조
◎ 알렐루야.
○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으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당신 영광 속으로 들어가셨네.
◎ 알렐루야.

복음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20-23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21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22 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23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가족이 드리는 제물을 자비로이 받으시고
주님의 도우심과 보호로
저희가 받은 것을 잃지 않고
영원한 선물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4 <파스카 신비로 새로워진 세상>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이제 죄와 죽음은 사라지고,
타락하였던 만물이 새로워지며,
그리스도 안에서 저희 생명이 온전히 회복되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로마 4,25 참조
우리 주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부활하셨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자의 십자가로 저희를 구원하셨으니
주님 사랑으로 저희를 지켜 주시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사진설명: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활 제 6주간 금요일

 

산보 길에 새소리를 듣는 것은 즐거움입니다. 이렇게 새들은 아침 일찍부터 하루를 노래로 시작합니다. 아침에 분주한 것은 새들만이 아니었습니다. 길가에 애벌레들이 느리지만 어디론가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애벌레들에게는 많은 위험이 있었습니다. 저처럼 산보를 가는 사람이 무심코 밟고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새들에게 아침 식사가 되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When faced with difficult situations, don't just hope for easy resolutions; instead, strive to make yourself stronger." 어떤 나비도 애벌레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나비가 될 수는 없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거친 애벌레들은 마침내 하늘을 나는 아름다운 나비가 될 것입니다. 나비가 된 애벌레는 다시 애벌레의 생활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땅위를 기어 다니는 것과 하늘을 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삶이기 때문입니다. 아침 산보 길에 보는 애벌레들이 무사히 나비가 될 수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형제님은 위암이 생겼고, 암은 여섯 군데의 장기로 전이가 되었습니다. 의사들도 3개월 시간이 남았다고 하면서 죽음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형제님은 암을 극복해서 살고 싶은 의지가 강했습니다. 몸에 많은 의료장비를 달고 있으면서도 산보를 하였습니다. 형제님의 형님은 직업을 포기하고 동생을 위해서 이사 왔습니다. 그리고 동생을 정성껏 돌보았습니다. 신부님은 형제님을 찾아가서 고백성사를 드렸고, 함께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형제님의 건강을 위해서 정성껏 기도드렸습니다. 무덤에 묻혔던 나자로가 무덤을 덮었던 돌을 치우자 무덤에서 나왔던 것처럼 형제님의 갈망, 형님의 돌봄, 신부님의 기도가 함께하니 형제님을 덮었던 암이 치워졌고, 기적처럼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애벌레가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된 것처럼 형제님도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단순히 건강을 회복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화되었습니다. 3년 동안 곁에서 도움을 주었던 형님에게 감사드린다고 합니다. 3년 동안 힘든 일을 참아 주었던 아내에게 감사드린다고 합니다.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은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런 환시를 보았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 바오로 사도가 많은 위험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겪었던 고난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유다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 늘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에게서 오는 위험, 이민족에게서 오는 위험, 고을에서 겪는 위험, 광야에서 겪는 위험, 바다에서 겪는 위험, 거짓 형제들 사이에서 겪는 위험이 뒤따랐습니다. 수고와 고생, 잦은 밤샘, 굶주림과 목마름, 잦은 결식,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습니다. 그 밖의 것들은 제쳐 놓고서라도, 모든 교회에 대한 염려가 날마다 나를 짓누릅니다.” 애벌레가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된 것처럼 바오로 사도는 그런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었지만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되었고, 천상에서 빛나는 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서 낙심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 어려움을 통해서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올리브 동산에서 그리고 나중에 십자가 위에서 조롱받으시고 버림받으시는 그 극심한 수난의 순간들을 묵상하면서, 이런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분의 마음에 드는 제자가 되려면 그분의 충고를 마음 깊이 새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망치로 벽에 못을 박는데 아무런 저항이 없으면, 거기에 무엇을 걸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우리가 희생을 통해서 단련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주님의 도구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2.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2024년 나해 부활 제6주간 금요일 

요한 16,20-23ㄱ

 

죽음을 대하는 두 가지 삶의 방식

 

저는 어렸을 때 잠을 참 두려워하였습니다. 자고 못 일어나고 나의 존재가 영원히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나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내가 그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존재이니

걱정하지 않고 사는 것과 나는 그 두려움을 이길 수 없는 존재이니 ‘준비’하고 사는 삶입니다. 

 

저는 준비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온종일 행복하게 지내다 보니 잠이 두렵지 않은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루를 어떻게 행복하게 지낼까를 궁리했습니다.

이것이 잠을 이길 수 없는 자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모두가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온종일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 안에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적어도 많이 움직이고 땀을 흘리고

커피를 마시지 말고 잠자리까지 끌고 들어올 사건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생각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만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삶이 현명한 삶인지 밝히십니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아이를 낳다가 죽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과 같은 고통은 아기를 낳은 기쁨으로

잊어버립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은 그것을 이길 수 있는 가치로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절대 이길 수 없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존재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정말 죽음 앞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요? 

 

‘성모 꽃마을’ 박창환 가밀로 신부님의 ‘하늘 나라 첫 동네’에서 ‘전과 20범’ 환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세 명을 죽인 죄로 무기징역을 사는 죄수였는데 위암 말기로 가망이 없어서

성모 꽃마을에 맡긴 것입니다.

 

처음 들어올 때는 마귀와 같은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몸집도 큰데다가 합기도와 같은 무술도

도합 5단이나 되는 건장한 사람이었습니다. 위암 말기라고는 하나 그 살기가 대단하였습니다.

도박에 빠져 가정을 망친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어렸을 때부터 어긋나서 술만 마시면

싸움질이었습니다. 워낙 싸움을 잘했습니다. 몇 년씩 여섯 여자와 살았는데, 그중 한 여자가

이제 다른 남자와 살겠다고 그 남자와 함께 찾아왔습니다. 화가 난 그 사람은 남자와 여자를

한 대씩 때렸는데 둘 다 사망하였습니다. 형기를 마치고 출소해서 또 싸움하다가

한 명을 죽였습니다. 

 

가밀로 신부님은 그 사람이 불쌍하여 수소문한 끝에 그의 동생의 연락처를 알아냈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형이 되지든지 말든지 신경 안 쓴다고 하고 형도 몇 년 동안 연락도 없는

어머니와 형제들을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가밀로 신부님의 부탁으로

서로 좋은 말만 하기로 하여 만났습니다.

 

처음엔 형이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는 바람에 거기서 끝날 뻔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부님이 용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가게 된다고 해서 조금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못난 형을 둬서 미안하게 됐다고 사과하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사람이 죽는 거는 두렵지 않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용서는 절대 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간 출혈로 각혈을 하게 되자 조금씩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자기 입에서 피가 나오는 것을 보고는 죽음이 두렵기 시작한 것입니다.

 

형제들도 형과 조금 더 있다가 새벽에 출근하기도 하며 조금씩 화해하였습니다.

형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는 마음이 안정되었고 천사와 같은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잠도 이기지 못하는데 죽음을 어떻게 이긴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그 뒤에 무엇이 있든 상관없다니! 세상에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생명은 공짜로 주어진 것처럼 여깁니다. 아닙니다. 이 세상은 무언가 준비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 끝이 죽음입니다. 그러면 죽을 때도 기쁠 수 있는 무언가를 낳아야 합니다.

위 사람은 가밀로 신부님 말대로 용서라는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죽음을 준비한 것입니다. 

 

교만으로 자신이 죽음 뒤에까지 다 감당할 수 있는 존재라고 여기지 맙시다.

그러면 준비하게 될 것입니다. 준비는 피를 흘리는 고통이 수반됩니다.

대신 그 순간이 오면 기쁨으로 넘칠 것입니다.

이는 야곱이 에사우를 만나러 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를 만나러 갑니다. 주님은 빈손으로 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랑의 열매, 용서의 열매, 선교의 열매를 준비합시다.


3. 이영근 신부 강론

 

부활 제6주간 금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오늘날에는 아파하고 고통 받는 이들이 유난히도 많아 보입니다. 

슬픔과 외로움에 지친 이들, 부당한 처사로 괴로움을 당하는 이들, 근심걱정과 절망에 빠진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누군들 슬픔에서 해방되고 싶지 않는 이가 있을까요? 

누군들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요? 

기쁨을 향해 달려가지 않으려 하는 이가 있을까요?

그런데 대체 참된 기쁨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오늘날 세상의 슬픔과 고통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가장 깊이 공감하며 함께 아파하고 계신 프란치스코 교종의 권고문헌인 <복음의 기쁨> 제1항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줍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참된 기쁨’을 예수님에게서 만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내 안에서’ 탄생되는 기쁨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요한 16,20)

제자들은 주님이 죽음에 처했을 때 슬퍼했지만, 그분께서 부활하신 것을 알자 그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제자들은 지금 신음하며 해산중입니다. 

해산을 마치면 그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고통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기쁨이 너무 커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고 하십니다.

그때에는 '슬픔이 기쁨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이 기뻐하는 것은 한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서가 아니라, ‘자신의 아기’가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기쁨은 아기가 ‘내 안에서’ 태어나야 오는 기쁨입니다.

 

그처럼 그리스도의 부활은 ‘내 안에서’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것은 내가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자신이 ‘새로 탄생하는 것’이 곧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요한 16,22)

그렇습니다. 

부활이 ‘내 안에서’ 탄생하는 이 기쁨은 빼앗겨지지도, 빼앗겨질 수도 없는 기쁨입니다.

 

사실 내가 기쁨을 낳은 것이 아니라 기쁨이 나를 낳은 것입니다.

이것야말로 바로 예수님께서 주신 ‘참된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예수님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임을, 죽음이 아니라 생명임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고통 속에서도 슬픔 속에서도 결코 기쁨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속에서도 주님은 늘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항상 함께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놓치지 않아야 할 일입니다.

스스로가 그 기쁨을 놓아버리지는 말아야 할 일입니다.

주님의 이 ‘사랑의 승리’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고별담화의 마지막을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33) 

 

<오늘의 말·샘 기도>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요한 16,22)

주님!

저에게는 자랑할 것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자랑하고 또 하고 또 해도 다하지 못할 자랑입니다.

방에 들라치면 먼저 들어와 있고,

일어날라치면 내 안에서 먼저 일어나고,

기도할라치면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임의 사랑’입니다.

바로 이것이 저의 기쁨입니다.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5.9.부활 제6주간 목요일                                                               사도18,1-8 요한16,16-20

 

                                                         주님과 만남의 여정

                                                           -늘 새로운 시작-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시편98.1)

 

하루하루가 주님 사랑의 기적입니다.

어제 69년도 교대 입학동기의 부음訃音 소식을 들었고 이에 대한 댓글도 읽었습니다.

55년 전이니 반세기 전에 만나 공부했고 그 이후로는 한번도 못만난 동기입니다.

 

댓글의 내용입니다.

 

“입학해 같은 반 친구가 되어 이승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먼길을 떠났군요.

그 먼길 편안히 가시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이것이 인생이다. 

태어날 때는 어느 곳에서 왔으며 죽으면 어느 곳으로 가는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나 생기는 것이 태어남이고

한조각 구름이 흩어지는 것이 죽음이다

구름은 본래 그 실체가 없듯이 태어나고 죽음도 이와 같구나.”

 

참으로 죽음을 대할 때 마다 삶의 여정을 생각하게 됩니다.

날마다 죽음을 환히 두고 살라는 사부 성 베네딕도의 말씀과 더불어 하루하루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참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허무로 끝나는 여정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 여정 인생이요, 날마다 주님과 만남의 여정에

충실해야 함을 배웁니다.

 

어제서야 1343쪽의 방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을 독료했습니다.

2020년 10월부터 틈틈이 읽었으니 거의 4년이 걸렸습니다.

성인은 “젊어서 착수했는데 늙어서야 끝냈다” 고백하는데 399-425까지 집필했으니

20년 이상 걸려 집필한 대작입니다.

책 마무리의 기도 내용이 마음에 와닿아 일부 내용을 나눕니다.

 

“주 나의 하느님, 내 유일한 희망이시여, 빌건데 내가 기진하여 당신을 탐구하기 싫어하는 일이 없게 하시고,

항상 열렬히 당신 얼굴을 찾게 해 주십시오.

당신을 기억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을 이해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을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나를 온전히 고치시기까지 내 안에 이럴 능력들을 키워주십시오.

오로지 당신 말씀을 설교하고 당신을 찬미해서만 말을 하기가 소원입니다.

내 하느님 수다스러움에서 나를 구해주십시오.

내 영혼 저 속 깊이에서 이 병을 앓고 있으며, 당신 면전에 너무도 가련하여

당신의 자비로 피난하는 영혼입니다.”(삼위일체론, 성염 역주;1333,1335쪽)

 

시공을 초월하여 성인의 기도를 제 기도로 바치고 싶습니다.

만남중의 만남이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날마다 죽는 그날까지 늘 새롭게 주님을 만나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후반부 제자들을 위로하시는 주님 말씀이 새롭게 들립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슬픔도 기쁨도 지납니다.

늘 주님과 함께 한다면 슬픔이나 기쁨에 일희일비함이 없이 묵묵히, 한결같이 하루하루의 여정에

충실할 것입니다.

 

마음속 깊이에서는 샘물이 솟듯 맑은 기쁨이 솟아오를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야 할 자리는 오늘 지금 여기의 꽃자리임을 깨닫습니다.

요즘 담쟁이가 한창입니다.

26년전 담쟁이란 시가 여전히 좋습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작년가을 붉게 타오르다 사라져 갔던 담쟁이

 어느새 다시 시작했다

 

 초록빛 열정으로 힘차게 하늘 향해

 담벼락, 바위, 나무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붉은 사랑으로 타오르다 

 가을 서리 내려 사라지는 날까지 또 계속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제자리 삶에도

 지칠줄 모르는 초록빛 열정

 다만 오늘 하늘 향해 타오를뿐 내일은 모른다

 

 타오름 자체의 과정이 행복이요 충만이요 영원이다

 오늘 하루만 사는 초록빛 영성이다”- 1998.6.3.

 

읽을 때마다 영적전의가 새로워집니다.

참으로 주님을 믿는 이들이야말로 평생 주님의 학인이자 평생 주님의 전사입니다.

죽어야 졸업인 평생 주님을 사랑하여 공부하는, 영원한 현역의 학인이요, 죽어야 제대인 평생 싸워야 하는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입니다. 

 

영적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죽어야 끝이라는 자각이 늘 깨어 하루하루 분투의 노력을 다하게 합니다.

결코 영적전의를 상실하거나 열정이 시드는 일이 있어선 안될 것입니다.

 

바로 제1독서의 선교 여정중인 바오로야 말로 주님의 전사의 모범입니다.

파란만장한 삶중에도 열정이나 영적전의가 시드는 일이 없습니다. 

천막을 만드는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언제 어디서든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라고 증언하면서

말씀 전파에만 전념합니다.

 

바오로의 굽이굽이 곡선인생여정중에도 하느님은 똑바로 당신 글자를 써내려 가십니다.

우리 매일 삶의 체험중에도 이런 하느님의 분명한 손길을 보도록 합시다. 

 

바로 매일이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일희일비함이 없이, 각자 삶의 꽃자리에서

주님과 만남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며, 늘 새로운 시작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많이 기뻐하며 주님 앞에서 노래하며 춤추는 마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멋지게 노래하며 춤추다 세상을 떠난 성인도 있다 합니다.

 

“온 세상아, 주님 앞에서 덩실덩실 춤추어라.

 즐기어라, 기뻐하라, 고에 맞춰 노래하라.”(98,4). 아멘


5/10(금)  부활 제6주간 금요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런 환시를 보았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 바오로 사도가 많은 위험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조재형 신부)

 

2.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요한 16,22)

주님!

저에게는 자랑할 것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자랑하고 또 하고 또 해도 다하지 못할 자랑입니다.

방에 들라치면 먼저 들어와 있고,

일어날라치면 내 안에서 먼저 일어나고,

기도할라치면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임의 사랑’입니다.

바로 이것이 저의 기쁨입니다.

아멘.(이영근 신부)

 

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슬픔도 기쁨도 지납니다.

늘 주님과 함께 한다면 슬픔이나 기쁨에 일희일비함이 없이 묵묵히, 한결같이 하루하루의 여정에

충실할 것입니다.

 

마음속 깊이에서는 샘물이 솟듯 맑은 기쁨이 솟아오를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야 할 자리는 오늘 지금 여기의 꽃자리임을 깨닫습니다.(이수철 신부)


 

5/10(금)  부활 제6주간 금요일, 502(132)일 기도

 

<오늘의 말·샘 기도>

 

복음: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요한 16,22)

주님!

저에게는 자랑할 것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자랑하고 또 하고 또 해도 다하지 못할 자랑입니다.

방에 들라치면 먼저 들어와 있고,

일어날라치면 내 안에서 먼저 일어나고,

기도할라치면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임의 사랑’입니다.

바로 이것이 저의 기쁨입니다.

아멘.

 

- 2024년 5월10일(금) 6시4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