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5월 11일 토요일[(백) 부활 제6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4. 5. 11. 12:17

[매묵]2024년 5월 11일 토요일[(백) 부활 제6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1베드 2,9 참조
너희는 주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시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주님의 위업을 선포하여라. 알렐루야.

본기도

주님,
저희에게 언제나 옳은 일을 가르쳐 주시어
저희가 날마다 더 옳은 일에 힘쓰며
파스카의 신비를 온전히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아폴로는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논증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8,23-28
바오로는 안티오키아에서 23 얼마 동안 지낸 뒤 다시 길을 떠나,
갈라티아 지방과 프리기아를 차례로 거쳐 가면서
모든 제자들의 힘을 북돋아 주었다.
24 한편 아폴로라는 어떤 유다인이 에페소에 도착하였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달변가이며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25 이미 주님의 길을 배워 알고 있던 그는 예수님에 관한 일들을
열정을 가지고 이야기하며 정확히 가르쳤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설교하기 시작하였는데,
프리스킬라와 아퀼라가 그의 말을 듣고 데리고 가서
그에게 하느님의 길을 더 정확히 설명해 주었다.
27 그 뒤에 아폴로가 아카이아로 건너가고 싶어 하자,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그곳의 제자들에게 그를 영접해 달라는 편지를 써 보냈다.
아폴로는 그곳에 이르러,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미 신자가 된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28 그가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논증하면서,
공공연히 그리고 확고히 유다인들을 논박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47(46),2-3.8-9.10(◎ 8ㄱ)
◎ 하느님이 온 누리의 임금이시다.
또는
◎ 알렐루야.
○ 모든 민족들아, 손뼉을 쳐라. 기뻐 소리치며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주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 경외로우신 분, 온 세상의 위대하신 임금이시다. ◎
○ 하느님이 온 누리의 임금이시니, 찬미의 노래 불러 드려라. 하느님이 민족들을 다스리신다. 하느님이 거룩한 어좌에 앉으신다. ◎
○ 뭇 민족의 귀족들이 모여 와, 아브라함의 하느님 그 백성이 된다. 세상 방패들이 하느님의 것이니, 그분은 지극히 존귀하시어라. ◎

복음 환호송

요한 16,28
◎ 알렐루야.
○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 알렐루야.

복음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23ㄴ-2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25 나는 지금까지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비유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너희에게 비유로 이야기하지 않고
아버지에 관하여 드러내 놓고 너희에게 알려 줄 때가 온다.
26 그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27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28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자비로우신 주님,
저희가 드리는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고
영적인 제물로 받아들이시어
저희의 온 삶이
주님께 바치는 영원한 제물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4 <파스카 신비로 새로워진 세상>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이제 죄와 죽음은 사라지고,
타락하였던 만물이 새로워지며,
그리스도 안에서 저희 생명이 온전히 회복되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17,24 참조
아버지, 아버지가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하시어, 아버지가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하소서.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거룩하신 성체를 받아 모시고 간절히 비오니
성자께서 당신 자신을 기억하여 거행하라 명하신 이 성사로
저희가 언제나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아드님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97세의 어머니는 노환이 심해져서 응급실로 옮겨졌습니다. 타주에 있던 아들은 휴가를 내고 어머니와 함께 지냈습니다. 1달 전에 아들은 어머니의 병자성사를 청하였습니다. 어머니를 위해서 병자성사를 다녀왔습니다. 사제로서 당연히 해야 할 직무입니다. 보름 전에 아들은 어머니의 병자성사를 청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상태가 점차 나빠진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를 위해서 병자성사를 다녀왔습니다. 곡기를 끊으신 어머니는 정말 많이 야위었습니다. 아들은 한 번 더 전화를 하였습니다. 이제 어머니의 호흡이 가빠진다고 하였습니다. 미사시간이 아직 2시간이 남았기에 기꺼이 병자성사를 다녀왔습니다. 비록 말은 못하시고, 알아듣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머니의 눈에 이슬이 맺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들의 효성이 지극했고, 어머니는 1달 동안 3번의 병자성사를 받고, 하느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었습니다. 개신교회에 다니는 둘째아들 부부도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였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아폴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초대교회 공동체에 달변가이며, 성경에 정통한 아폴로를 보내주셨습니다. 아폴로는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지만 곧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에게 아폴로는 믿음직한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저도 처음 본당신부를 할 때 비슷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서울에서 살던 부부가 제가 있던 성당으로 전입 왔습니다. 형제님은 건설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정년퇴임을 하였습니다. 형제님의 도움으로 차고를 만들었습니다. 형제님은 성당의 시설분과를 맡아 주었습니다. 자매님은 제대회를 맡아 주었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자 요한처럼 형제님은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였습니다.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 하고 나는 점점 작아져야 한다고 말했던 세례자 요한처럼 늘 겸손하였습니다. 저는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행복했습니다. 이곳 댈러스에도 말없이 묵묵하게 봉사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개신교회에 다니다가 성당으로 온 형제님도 있습니다. 오랜 동안 냉담하다가 다시 성당으로 온 형제님도 있습니다. 매주 점심 준비를 해 주는 구역 봉사자들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기복 신앙과 참된 신앙의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기복 신앙은 청하면 복을 받는다는 신앙입니다. 하느님께서 자비하시니 우리가 청하는 것을 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기복 신앙은 자칫 하느님과 흥정을 하거나, 거래를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은 기복 신앙의 위험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부른다고 모두 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참된 신앙은 청하면서 함께 삶이 뒷받침이 되는 신앙입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사악에게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바로 행복했던 것은 아닙니다. 야곱은 20년간 눈 부칠 겨를도 없이 충실하게 살았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였습니다. 라헬과 레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기 위해서 14년간을 일하였습니다. 야곱은 12명의 아들을 낳았고, 많은 재산을 가지고 고향으로 올 수 있는 복을 받았지만 많은 노력을 함께 하였습니다. 참된 신앙은 하느님께 청하면서 삶의 터전에서 하느님의 뜻과 계명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이름으로 청하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벗이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까지라도 가주는 것입니다. 친구를 위해서 목숨까지도 바치는 것입니다. 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모든 영광은 하느님께도 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할 때 사랑과 정의, 기쁨과 행복이 자라나게 됩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2.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사도행전 18,23-28       요한 16,23ㄴ-28

 

중간을 배제하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임금이 한 신하를 불러 이상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우물물을 길어 저기 밑 빠진 독에 가득히 채우시오.”

 

밑 빠진 독에 물이 채워질 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충성스러운 신하는 오직 임금의 명령만 생각하면서 밤을 낮 삼아 물을 길어 날랐습니다.

결국, 우물 바닥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물 바닥에 무엇인가 번쩍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엄청나게 큰 금덩어리였습니다. 신하는 임금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임금님, 용서하소서. 독에 물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물 바닥에서 이 금덩이를 건졌나이다.”

 

임금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겠다고 우물이 바닥나도록 수고했구려. 그대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신하요. 그 금덩이는 그렇게 순종하는 신하를 위해 준비된 것이라오.”

 

임금이 한 명령을 수행하지 않는 상태에서 임금에게서 오는 기쁨을 얻을 수 있을까요?

자신의 말을 잘 따라주는 이에게 복을 줄 것은 당연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외시키고 아버지께 은총을

받는 것이 가능할까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 돈벌레라고 불리는 그리마가 또 한 마리 집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엔 징그러워서 휴지로 집어 변기통에 내렸는데, 이것이 해충을 잡아먹는 좋은 벌레라고

하기에 그다음부터는 고이 잡아 창문 밖으로 놓아주었습니다.

돈벌레란 이름도 한몫을 한 것 같습니다.

 

그동안엔 책 표지 위에 그놈이 올라오게 만들어서 밖으로 내보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몸집이 큰 놈이라 귀찮아서 손으로 집어 내보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돈벌레는 저에게 잡힌 자신의 다리들을 자르고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손으로는 안 될 것 같아서 다리 몇 개 잃은 벌레를 책표지 위에 얹어서

내보내 주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인간의 관계는 마치 사람과 돈벌레와 같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너무 이해할 수 없어서 책 표지 위에 올라오는 조금의 부자유스러움도

참아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조금이나마 순종하는 것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가 이용한 책 표지와 같습니다.

예수님을 거부하며 아버지께 청을 드려 무엇을 받아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이름으로 무엇이든 아버지께 청하라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당신이 대신 청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우리가 직접 청할 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름’은 ‘본성’을 말합니다. 본성은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면서 아버지께 청하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상태에서 아버지께 청하면 예수님은 소외당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아버지께 보화를 얻게 됩니다. 그 보화가 성령이십니다.

 

본당 신부를 잠깐 하며 보았더니 본당에서 수녀님의 위치가 매우 애매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신자의 생각이 옳다고 하여도 그것을 들어주면 수녀님 처지가 난처해지는

청이라면 들어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분은 신부님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울상이 되어 돌아갑니다.

 

이런 일들은 본당 신자들과 주교님 사이에서도 일어납니다.

본당에 발령받아 온 사제가 마음에 안 든다고 임기도 안 끝났는데 바꿔 달라고

투서를 하면 주교님으로서는 난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조금 나은 신부님이 새로 부임할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주교님과 그 이전 신부님과의 사이를 안 좋게 만든 본당으로 낙인찍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아내와 사이가 안 좋아지면서 자녀의 청을 모두 들어주겠습니까?

 

이는 마치 죄를 용서해주라고 교회를 파견하였는데 교회는 소외시키고

직접 예수님께 죄의 용서를 받겠다고 성당에 나와 고해성사를 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파견한 이를 먼저 소외시키지 않는 한에서 주님께 무엇을 청해야 합니다.

그 청하는 것이 중간에 있는 이의 뜻과 어긋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들어주실 것이고

그러면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3. 이영근 신부 강론

 

부활 제6주간 토요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오늘 복음인 고별담화의 마지막 부분들은 이미 하신 말씀들을 다시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만큼 중요하기에 다시 강조하여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기도’에 대한 말씀과 ‘예수님의 기원과 목적지’에 대한 말씀은 그만큼 중요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기도’에 대한 한 말씀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요한 16,23)

여기에서 “내 이름으로”라는 말씀은 기도의 조건을, “아버지께 청하는 것”이란 말씀은 기도의 본질을,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라는 말씀은 기도의 특권을 드러내줍니다.


먼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곧 ‘자신보다 그리스도를 우선순위로 두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바람이나 필요에 따라 청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원의에 따라 청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기도는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는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도자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그리고 품고 있는 관심사가 무엇이고 무엇을 필요를 하고,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원하는 지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기도 안에는 기도하는 그 사람이 담겨 있다.”

그러기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기도를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는 욕망의 해석자이다.” 

결국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은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곧,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당연히 우리의 청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청하는 것'이란 말씀은 기도의 본질이 궁극적으로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기도는 ‘아버지 하느님과의 친교’임을 말해줍니다. 

이를 <가톨릭교회교리서>에서는 이렇게 규명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성령과 하나 되어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와 이루는 사랑의 친교이다.”

(2615항)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가르쳐줍니다.

특히 ‘예수님과 일치하여’ 기도하도록 이끌어줍니다.

동시에 무엇보다도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기도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는 말씀은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다 장만하시고,

하염없는 사랑으로 우리의 간청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곧 모든 것을 당신에게서 찾기를 원하십니다.

아들의 이름으로 아버지를 찾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요한 16,24)

 

주님!

이제야 겨우 알아듣습니다.

제 힘으로 살아 온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뜨거운 기도가 위태로운 나를 이끌어 왔다는 것을!

그 애틋한 기도가 있어 휘청거리면서도 살아있다는 것을!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5.10.부활 제6주간 금요일                                                          사도18.9-18 요한16,20-23ㄱ

 

                                                       늘 주님과 함께 하는 삶

                                                            기뻐하십시오!

                                        “기쁨은 선물이자 발견이요, 선택이자 훈련이다”

 

가장 아름다운 5월 성모성월입니다.

수도원 곳곳에 무수히 만개한 하얀 이팝나무꽃들이 기쁨의 선물처럼 생각됩니다.

'영원한 사랑'이란 이팝나무 꽃말도 멋집니다.

새삼 기쁨의 선물도 발견이요 선택이요 훈련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늘 기뻐하십시오.

주님께서 늘 함께 하심이 기쁨의 원천입니다.

 

새삼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어제 점심밥을 먹다가 창밖 눈부시게 빛나는 쌀밥같은 이팝나무꽃들을 보는 순간 떠오른

“눈부신 날에는”이란 시입니다.

시역시 저에겐 기쁨의 선물이자 발견입니다.

 

“5월

 '영원한 사랑'이란 

 꽃말의

 새하얀 이팝나무꽃들

 눈부신 날에는

 눈부신 이와 함께

 눈부신 만남

 눈부신 위로

 눈부신 기쁨을 나누고 싶다

 새하얀 이팝나무꽃들 눈부신 날에는”-2024.5.9

 

유난히 “눈부시다”라는 말마디가 마음에서 맴돌았습니다.

하루하루가 기쁨으로 빛나는 선물같은 눈부신 삶입니다.

눈부심의 중심에 바로 눈부신 분, 파스카의 주님이 계십니다. 언젠가 나눴던

“선물”이란 시를 또 나누고 싶습니다.

 

“꽃처럼 환한 웃음보다 더 좋은 선물 있을까

 삶은 순전히 선물이다

 꽃같은 삶이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순식간 사라져 가는 꽃들

 바로 선물 인생 아니던가

 얼마나 그 많고 좋은 선물들 놓쳐버리고 살았는지

 살아 있는 동안은 그대로 꽃인 인생인 거다

 어제의 꽃 폈다지면 또 오늘의 꽃 폈다지고...

 평생을 하루하루 그렇게

 주님 파스카의 꽃으로 사는 거다

 끊임없이 폈다 지면서 떠나는 삶이다

 잘 떠날 때 아름답지 않은가

 길이길이 향기로 남는다”-2001.4.23.

 

살아야 할 꽃자리, 기쁨의 선물을 발견하여 행복하게 살아야 할 꽃자리는 오늘 지금 여기입니다.

기쁨의 선물들 한 중심에 파스카의 주님이 계십니다.

파스카의 주님으로부터 샘솟는 기쁨입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우리가 만나야할 눈부신 분은 바로 파스카의 주님입니다.

다음 부활하신 주님의 약속은 이미 실현되어 기쁨의 선물을 살 수 있게 된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은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바로 오늘이 그날입니다.

부활한 파스카의 주님과 함께 할 때 눈부신 선물인 기쁨의 빛에 온갖 번민과 의심의 어둠이 말끔히 걷힙니다.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는 기쁨, 빼앗아올 수 없는 기쁨, 거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기쁨,

주님의 선물인 기쁨입니다.

이런 기쁨이 영원한 기쁨, 참 기쁨입니다.

계속되는 고통과 시련, 불안과 두려움 중에도 끊임없이 꽃처럼 피어나는 기쁨입니다.

세상에 이런 파스카의 기쁨을 압도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신록의 5월, 파스카의 기쁨을 색깔로 하면 신록의 기쁨입니다.

 

요즘 저의 기쁨은 집무실옆 신록과 애기똥풀꽃이 어울어진 꽃길, 하늘길에서 고백성사후 사진을 찍어

나눠 드리는 일입니다.

주님의 기쁨과 행복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입니다.

어제 주고 받은 메시지입니다.

 

“사진처럼 멋지고 행복하게 사세요!”

“신부님, 예쁘게 찍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모든 것을 다 지녔어도 내면에 기쁨이 없다면 행복하다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기쁨은 순전히 선물이자 발견이요, 선택이자 훈련입니다.

 

날마다 우리가 거행하는 공동전례기도 역시, 기쁨의 선물, 기쁨의 발견, 기쁨의 선택,

기쁨의 훈련임을 깨닫습니다. 

무엇보다 참 좋은 선물인 기쁨의 원천인 파스카의 주님을 발견하고 선택하여 훈련하는 것입니다.

 

기쁨 역시 영적훈련입니다.

우리의 모든 일상이 기쁨의 영적훈련의 장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기쁨의 전사’로 사는 삶이라면 얼마나 멋진 삶이겠는지요!

 

바로 사도행전의 바오로가 그 빛나는 모범입니다.

그 누구보다 기쁨을 강조한 기쁨의 사도, 기쁨의 전사, 바오로입니다.

바로 파스카의 주님이 늘 함께 하심이 바로 기쁨의 비결, 행복의 비결임을 봅니다.

환시중 들려온 주님의 약속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도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바오로 사도의 입을 빌려 우리 모두에게 당부 말씀을 주십니다.

제가 고백성사 보속으로 주는 말씀 처방전에 참 많이 써드리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6-18). 아멘.


5/11(토)  부활 제6주간 토요일, 되새김 구절

 

1. 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모든 영광은 하느님께도 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할 때 사랑과 정의, 기쁨과 행복이 자라나게 됩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조재형 신부)

 

2. 예수님께서는 당신 이름으로 무엇이든 아버지께 청하라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당신이 대신 청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우리가 직접 청할 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전삼용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요한 16,24)

 

주님!

이제야 겨우 알아듣습니다.

제 힘으로 살아 온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뜨거운 기도가 위태로운 나를 이끌어 왔다는 것을!

그 애틋한 기도가 있어 휘청거리면서도 살아있다는 것을!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아멘.(이영근 신부)

 

4.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도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

 

주님은 바오로 사도의 입을 빌려 우리 모두에게 당부 말씀을 주십니다.

제가 고백성사 보속으로 주는 말씀 처방전에 참 많이 써드리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6-18). 

(이수철 신부)


5/11(토)  부활 제6주간 토요일, 503(133)일 기도

 

복음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말·샘 기도>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요한 16,24)

 

주님!

이제야 겨우 알아듣습니다.

제 힘으로 살아 온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뜨거운 기도가 위태로운 나를 이끌어 왔다는 것을!

그 애틋한 기도가 있어 휘청거리면서도 살아있다는 것을!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아멘.

 

- 2024년 5월11일(토) 12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