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6월 3일 월요일[(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6월 3일 월요일[(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주님은 뽑힌 이들을 도가니 속 금처럼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받아들이셨으니, 주님이 찾아오실 때, 하느님께 뽑힌 이들은 은총과 평화를 누리리라.
본기도
순교자들의 피가 그리스도인의 씨앗이 되게 하시니
복된 가롤로와 그 동료 순교자들의 피로
하느님의 교회를 비옥한 땅이 되게 하시고
이 땅에서 언제나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베드로 2서의 말씀입니다.1,2-7
사랑하는 여러분, 2 하느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앎으로써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풍성히 내리기를 빕니다.
3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영광과 능력을 가지고 부르신 분을 알게 해 주심으로써,
당신이 지니신 하느님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신심에 필요한 모든 것을 내려 주셨습니다.
4 그분께서는 그 영광과 능력으로
귀중하고 위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내려 주시어,
여러분이 그 약속 덕분에, 욕망으로 이 세상에 빚어진 멸망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5 그러니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앎을 더하며,
6 앎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신심을,
7 신심에 형제애를, 형제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저의 하느님, 저는 당신께 의지하나이다.
○ 지극히 높으신 분의 보호 아래 사는 이, 전능하신 분의 그늘 안에 머무는 이, 주님께 아뢰어라. “나의 피신처, 나의 산성, 나의 하느님, 나 그분께 의지하네.” ◎
○ 그가 나를 따르기에 나 그를 구하여 주고, 내 이름 알기에 나 그를 들어 높이리라. 그가 나를 부르면 나 그에게 대답하고, 환난 가운데 내가 그와 함께 있으리라. ◎
○ 그를 해방시켜 영예롭게 하리라. 오래오래 살도록 그에게 복을 내리고, 내 구원을 그에게 보여 주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 죄를 씻어 주셨네.
◎ 알렐루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1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2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소작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3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4 주인이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였다.
5 그리고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 종을 죽여 버렸다.
그 뒤에 또 많은 종을 보냈지만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렸다.
6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7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8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9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10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11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12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2마카 7,1-2.9-14)와 복음(마태 5,1-12ㄴ)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이 예물을 바치며 간절히 비오니
복된 순교자들이 주님의 은총으로 죄보다는 죽음을 받아들였듯이
저희도 오로지 주님께 자신을 봉헌하고 주님 제대에 봉사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께 성실한 이들의 죽음이 주님 눈에는 참으로 소중하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거룩한 순교자들의 승리를 기리며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그들이 온갖 고초를 이겨 내게 한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가 시련을 겪을 때에도 굳건한 믿음과 사랑을 지키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본당 청년들과 만났을 때입니다. 청년 레지오에 함께하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남편이 피아노를 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레지오 회합이 있는 목요일 저녁에 미사 반주를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남편은 연습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사순시기에 열심히 연습한 형제는 부활 2주부터 평일미사 반주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레지오 단원들에게 저녁을 함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주임 신부님 포함해서 청년 레지오 단원들이 모였습니다. 단장은 며칠 전부터 허리에 통증이 있어서 못 올 뻔했는데 다행히 운전이 가능해서 나왔다고 합니다. 저는 단원들에게 아팠던 경험을 나누자고 했습니다. 나무에 나이테가 있듯이, 나무에 옹이가 있듯이 다들 아팠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저도 3년 전에 뉴욕에서 교통사고가 났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고, 비에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때로 시련과 아픔이 파도처럼 밀려오곤 합니다. 아름답게 피어 있는 꽃들은 모두 그런 시련과 아픔을 겪었습니다. 지금은 6명의 단원이지만 10명이 되면 파티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15명이 되면 분단하기 전에 성지순례를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연례행사처럼 저도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가 되면 ‘목감기’가 찾아오곤 합니다. 신문사에 있을 때는 조용히 약을 먹고 쉬면 좋아졌습니다. 본당에 있으니 한 가지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미사를 집전할 때 목소리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목감기는 고맙게도 4일 정도 머물다가 떠났습니다. 뉴욕에서 댈러스로 왔고, 적응하면서 몸도 마음도 조금 피곤했던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목감기는 제가 건강을 확인하는 친구 같습니다. 목감기가 없으면 저는 더 무리하게 일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감기가 없으면 무리하게 지내다가 더 큰 건강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감기가 찾아왔다는 것은 저의 면역력이 약해졌다는 뜻입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건강을 믿고 무리하게 행동하면 건강한 몸도 탈이 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목감기가 오지 않으면 제가 건강관리를 잘 했으니 감사할 일입니다. 목감기가 찾아오면 제가 건강관리를 더 잘하라는 뜻으로 알고 면역력을 키울 수 있으니 감사할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명한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인 건강관리를 못하면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를 보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언자의 말을 듣고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영적인 건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언자의 말들 잘 듣는다면 지금 격고 있는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갖게 됩니다. 자동차가 터널을 지나면 곧 밝은 세상으로 나오듯이, 그런 시련과 고난을 거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더욱 강한 신앙을 지니게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자를 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언자만 없으면 아무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감기가 찾아온 것은 나의 건강을 확인하라는 뜻으로 생각하고, 감기가 찾아온 것은 나의 면역력을 키우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감기를 원망하고, 감기를 욕하는 것은 나의 건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만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지 않고, 더 나쁜 길로 가기 때문에 이번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아들을 믿고, 아들의 말을 들었다면 영적으로 건강해지고,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을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영적인 면역력을 키우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앎을 더하며, 앎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신심을, 신심에 형제애를, 형제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그분께서는 그 영광과 능력으로 귀중하고 위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내려 주시어, 여러분이 그 약속 덕분에, 욕망으로 이 세상에 빚어진 멸망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충실히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비록 흔들릴지라도, 비에 젖을지라도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강론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복음: 마르 12,1-12
하느님께서는 한쪽 문을 닫으실 때, 반드시 다른 쪽 문을 하나 열어주십니다!
오늘은 성 가롤로 르왕가와 21명의 동료들의 순교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북아프리카에 비해 동아프리카 지역의 복음화는 꽤 늦었습니다.
1879년에 이르러서야 첫 선교 사제들이 파견되었습니다.
당시 가톨릭에 호의적이었던 무데시 추장은 선교 사업을 적극적으로 후원했습니다.
그러나 무데시 추장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 무왕가가 그 자리를 계승하게 되는데,
성격이 포악하고 폭력적이었습니다.
오만하고 그릇된 최고 통치자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의 몫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독식하고 좌지우지하고 싶었던 무왕가 추장 눈에, 사랑과 배려,
친교와 나눔을 강조하는 가톨릭교회 교리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습니다.
폭군은 가장 충직한 부하였지만, 가톨릭 신자였던 무카사를 본보기로 참수형에 처했습니다.
무카사 자리를 계승한 다른 부하가 우간다의 김대건 신부님 격인 가롤로 르왕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보스 몰래 4명의 예비자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사실이 발각되면 즉시 사형이었음에도 은밀히 신자 수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폭군은 닥치는 대로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체포했습니다.
사형 집행인들은 신자들이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기고, 온몸을 포승줄로 꽁꽁 묶었습니다.
그리고 밤새 빙빙 돌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갖은 협박을 하고 농락했습니다.
그리고 날이 밝아오자 순교자들은 참수형이나 화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순교자들이 대체로 폭군 무왕가와 가까운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는 왕의 개인 비서도 있었고, 왕궁에서 이런 저런 사무를 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당분간 멀리 하겠다는 말 한마디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순교자들은 결코 태도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우간다 순교자들의 피는 결코 헛되지 않았음이 곧 드러났습니다.
순교 이후 박해의 칼날은 더욱 번득였지만, 입교자, 세례자 숫자는 점점 늘어갔습니다.
순교 직후 3천명의 예비자들이 쇄도했고, 500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저희 살레시오회 같은 경우 지금 우간다를 비롯한 아프리카 대륙은 풍요로운 성소의 온상입니다.
유럽이나 북남미, 우리나라까지 포함해서 다들 사제 수도 성소의 급감으로
교회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있지만, 그쪽에서는 활활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한쪽 문을 닫으실 때, 반드시 다른 쪽 문을 하나 열어주신다는 말씀이 참된 말씀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순교자들이 흘린 피와 그들이 보여준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모범이 일궈내고 있는 이 시대
또 다른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 이상 피를 흘리는 박해가 없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순교 영성을 어떻게 실현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중요한 과제입니다.
우리에게 매일 다가오는 호의적이지 않은 현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 시대 순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죽어도 나와 맞지 않는 관계라 할지라도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하느님의 도구로 수용하는 자세, 순교 영성을 사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찾아오는 노화나 병고, 실패나 죽음조차도
주님의 크신 구원 계획안에서 바라보려는 시선을 지니는 것도 아주 좋은 순교의 한 모습이라고 확신합니다.
3. 이영근 신부님 강론
_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라 우리에게는 놀랍게만 보입니다.'>
오늘 복음은 ‘포도밭의 사랑의 노래’를 들려줍니다.
포도밭 주인(하느님)은 당신의 포도밭(이스라엘 백성)을 소작인(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맡깁니다.
그리고 주인은 당신의 종(예언자)들을 여러 차례 보내지만, 소작인들을 그 종들을 학대합니다.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돌로 쳐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결국 주인이 사랑하는 아들(예수 그리스도)까지 보내지만, 그마저도 포도밭 밖으로 끌어내어 죽여 버립니다.
이 이야기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를 실감나게 해 줍니다.
계속되는 인내와 관용과 자비가 배신으로 돌아와도,
그 사랑이 너무도 커서 아들의 목숨까지도 건네주어 버리는 애타는 사랑의 노래입니다.
동시에 이 사랑의 이야기는 그 애절한 사랑이 거절당하고, 배반당하고,
끝내는 외아드님의 목숨까지 살육당하는 처참하기 그지없는 가슴 아픈 사랑의 노래입니다.
또한 이는 그 큰 사랑을 거부해버리고 마는 나약한 우리 인간의 배신과 반역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또한 고귀한 사랑마저도 한갓 우리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짓부숴버리고 마는 배은망덕의 패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이 ‘포도밭 사랑의 노래’를 들려주실까요?
그것은 앞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어 성전정화를 하시자,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이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요.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마르 11,28)라고 따졌기 때문에, 당신의 권한과 신원을 드러내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어리석은 꾀와 작태를 비웃으시며, 하느님의 깊은 섭리와 계획을 밝히십니다.
‘집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리돌이 되었다’는 성경 말씀의 인용을 통해, 비록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겠지만, 오히려 그 죽음을 통해 새로운 구원의 시대가 펼치신다는 역설의 신비를 가르쳐줍니다.
곧 당신께서는 버려진 돌이셨지만 머릿돌이 되시어 새로운 집, 구원의 새로운 백성을 세우실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정적으로 구원의 역사가 보장된다는 유대인들의 선민의 특권이 해체되고,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인 교회공동체에 보편적 구원이 사명으로 맡겨졌음을 드러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특별히 포도원 주인의 믿음과 자비를 보게 됩니다.
도조를 받으러 보낸 종들이 계속해서 무참히 맞고 죽는 배신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아들을 보내주시기까지 베풀어지는 믿음과 자비입니다.
그것은 마침내는 당신의 아들마저도 죽음을 당하지만, 끝까지 포도원을 포기하시지 않으시는 무한한 사랑입니다.
이는 아무리 인간의 죄가 크다 하여도 인간의 죄를 뛰어넘는 하느님 계획의 초월성과 구원의 신비를 보여줍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라 우리에게는 놀랍게만 보입니다.'(마르 12,11)
사실 도조를 바치지 않고 못된 일을 저지른 소작인들,
그들은 일상의 삶 속에서 잘못과 죄를 반복하고 있는 우리들의 자아상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하느님을 밀쳐내고, 그분의 권리를 강탈하지는 말아야 할 일입니다.
탐욕으로 인해 주인의 아들마저도 죽이고마는 악한 마음과 배은망덕은 말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에 따라 좋은 결실을 맺고, 그 풍성한 소출을 도조로 바쳐야 할 일입니다.
감사와 순명의 열매, 자비와 믿음의 열매를 바쳐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마르 12,11)
주님!
당신께서 제게 하신 일, 놀랍기만 합니다.
도망칠수록 더 강한 사랑의 철창으로 꽁꽁 묶으시고,
제 안에 꿈틀거리는 반역을 멈추게 하십니다.
거부되고 버려지고 넘어져도 오히려 그를 통해 구원의 섭리로 이끄시고,
감춰둔 당신 사랑의 신비를 보여주십니다.
하오니, 주님!
언제나 제 머리 위에, 당신 사랑을 두고 살게 하소서!
당신께 속한 이로 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6.2.주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탈출24,3-8 히브9,11-15 마르14,12-16.22-26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성사의 은총과 축복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하루하루 날마다 주님 향한 전적 사랑의 표현이 이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성사의 봉헌입니다.
내 살아 있는 그날까지, 죽는 그날까지 주님께 바라는 단 하나의 소원은 미사를 봉헌하고
강론을 써서 나누는 것 뿐입니다.
오늘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성혈대축일을 맞이하여, 17년전 2005년 10월 어느날,
불암산 가슴을 활짝 열고 주님께서도 미사를 드리신다는 황홀한 느낌에 영감받아 쓴
“온 세상 제대로 삼아”란 시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주님께서도
아침마다 미사를 드리신다.
불암산 가슴 활짝 열고
온 세상 제대로 삼아
모든 피조물 품에 안으시고
미사를 드리신다.
하늘 높이 들어 올리신
주님의 찬란한 태양 성체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가슴마다 주님의 태양 성체 모시고
태양 성체 되어 살아가는 복된 우리들이다.”
그렇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태양 성체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님은 사랑의 성월같은
6월 예수성심성월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람의 본질은 무지도 허무도 아닌 사랑입니다.
사랑에서 나와 사랑안에 살다가 사랑에로 돌아가는 우리 인생입니다.
사랑은 그대로 하느님으로 바꿔 읽어도 무방합니다.
오늘 6월 첫주일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입니다.
예수성심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이듯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성체성사의 은총과 축복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들이요, 이런 하느님 사랑에 목말라하는
가난한 영혼들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 괴로움으로 사경을 헤맬 때 생각나는 신부님!”
“내일 비어있는 날, 신부님 생각만 났습니다. 내일 꼭 뵙겠습니다.”
“다정하신 신부님처럼 아버지도 잠깐 제가 잠들었을 때, ‘우리 따알’하고 미소지으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서서히 숨이 떠났어요.”
지난밤 받은 가톡 메시지들 역시 하느님 사랑을 목말라하는 참 가난하고 사랑스런 영혼들의 고백들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위로와 격려, 치유의 사랑을 찾는 영혼들입니다.
이래서 끊임없이 사랑의 성체성사를 그리워하고 목말라하는 가난한 영혼들입니다.
“높이 오르고 싶다면 일상의 바닥부터 한 걸음씩 쌓아나가라.”<다산>
높이 오르는데 매일미사 은총보다 더 좋은 사랑의 수행은 없습니다.
신앙의 평생교육에 매일미사보다 더 좋은 것은 없기에 매일미사는 못하더라도 매일미사전례문은
꼭 렉시오디비나 하기를 권합니다.
“가르침에는 순서가 있어
지식을 밝힘에서 앎이 지극한 단계로 나아가고,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 데에서 세상을 평안케 하는 단계로 나아간다”<다산>
역시 매일 정성스럽게 거행하는 미사를 통해 깨닫고 실현되는 진리입니다.
“생명의 빵이신 주 그리스도께 어서 와 조배드리세”
이 초대송으로 시작된 오늘 하루입니다. 이어지는 방금 부른 화답송 후렴과 이어지는 시편도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 마음을 잘 드러냅니다.
“구원의 잔 받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리라.
내게 주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사오리.
구원의 잔 받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리라.”
이어 무려 24절까지 계속되는 성체송가가 성체성사의 무한한 은총을 보여줍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는 ‘성체성사적 삶’ 하나만 있을뿐입니다.
주님의 성체를 모시는 우리들은 하나하나 거룩한 살아 있는 ‘주님의 감실’이 됩니다.
그러니 이런 형제자매들을 함부로 대함은 성체모독이 되는 것입니다.
좌우간 성체성사의 신비안에 하느님의 신비, 그리스도의 신비, 교회의 신비, 생명의 신비,
인간의 신비등 모든 신비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신비에 대한 답이 성체성사안에 다 있습니다.
평생을 공부해도 초보자 신분을 벗어날 수 뿐이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사제서품후 35년 동안 매일미사에 강론을 해왔지만 여전히 힘들어 초보자의 마음으로
겸손히 하루하루 삽니다.
교회는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성찬례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이다.
교회의 모든 교역이나 사도적 활동과 마찬가지로 다른 여러 성사들은 성찬례와 연결되어 있고
성찬례를 지향하고 있다.
실제로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교회의 모든 영적 선이 내포되어 있다.
곧 우리의 파스카이신 그리스도께서 그안에 계신다.”(가톨릭교리서;1324항)
“한마디로, 성체성사는 우리 신앙의 요약이고 집약이다.
우리의 사고방식은 성체성사와 일치하며, 성체성사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확인해 준다.”(가톨릭교리서;1327항)
성체성사없이 살수도 없거니와 참사람이 되는 길도 없다고 감히 고백합니다.
바로 이 지극히 거룩한 미사인 새계약의 제사를 실제 집전하는 분은 제2독서 히브리서가 고백하는
새계약의 중개자이자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탈출기 시나이 산에서의 계약을 완전히 능가하고 완벽히 보완하는 교회의 새계약의 성체성사가
오늘 복음에서 잘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니 모두 마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말그대로 찬미와 감사의 희생제사요, 화해의 제사인 성체성사임을 깨닫습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서 한몸의 일치를 확인하는 성체성사 시간입니다.
하느님의 참 좋은 최고의 사랑의 선물인 성체성사 은총이 부단히 공동체를 정화하고 성화하며,
우리를 성장시키고 성숙시킵니다.
또 우리의 찬미와 감사의 삶 모두의 뿌리에 성체성사가 자리잡고 있음을 봅니다.
저절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한 주님의 찬미와 감사의 은총에 감격하여 드리는 다음 고백기도입니다.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중에 당신을 만나니,
당신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기쁨과 평화, 희망과 자유를 선사하시나이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아멘.
6/3(월)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영적인 면역력을 키우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앎을 더하며, 앎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신심을, 신심에 형제애를, 형제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그분께서는 그 영광과 능력으로 귀중하고 위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내려 주시어, 여러분이 그 약속 덕분에, 욕망으로 이 세상에 빚어진 멸망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충실히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비록 흔들릴지라도, 비에 젖을지라도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조재형 신부)
2. 더 이상 피를 흘리는 박해가 없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순교 영성을 어떻게 실현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중요한 과제입니다.
우리에게 매일 다가오는 호의적이지 않은 현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 시대 순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죽어도 나와 맞지 않는 관계라 할지라도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하느님의 도구로 수용하는 자세, 순교 영성을 사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찾아오는 노화나 병고, 실패나 죽음조차도
주님의 크신 구원 계획안에서 바라보려는 시선을 지니는 것도 아주 좋은 순교의 한 모습이라고 확신합니다.
(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마르 12,11)
주님!
당신께서 제게 하신 일, 놀랍기만 합니다.
도망칠수록 더 강한 사랑의 철창으로 꽁꽁 묶으시고,
제 안에 꿈틀거리는 반역을 멈추게 하십니다.
거부되고 버려지고 넘어져도 오히려 그를 통해 구원의 섭리로 이끄시고,
감춰둔 당신 사랑의 신비를 보여주십니다.
하오니, 주님!
언제나 제 머리 위에, 당신 사랑을 두고 살게 하소서!
당신께 속한 이로 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니 모두 마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말그대로 찬미와 감사의 희생제사요, 화해의 제사인 성체성사임을 깨닫습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서 한몸의 일치를 확인하는 성체성사 시간입니다.
하느님의 참 좋은 최고의 사랑의 선물인 성체성사 은총이 부단히 공동체를 정화하고 성화하며,
우리를 성장시키고 성숙시킵니다.(이수철 신부)
6/3(월)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527(157)일 기도
복음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오늘의 말·샘 기도>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마르 12,11)
주님!
당신께서 제게 하신 일, 놀랍기만 합니다.
도망칠수록 더 강한 사랑의 철창으로 꽁꽁 묶으시고,
제 안에 꿈틀거리는 반역을 멈추게 하십니다.
거부되고 버려지고 넘어져도 오히려 그를 통해 구원의 섭리로 이끄시고,
감춰둔 당신 사랑의 신비를 보여주십니다.
하오니, 주님!
언제나 제 머리 위에, 당신 사랑을 두고 살게 하소서!
당신께 속한 이로 살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6월3일(월) 8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