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6월 7일 금요일[(백)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4. 6. 7. 07:05

[매묵]2024년 6월 7일 금요일[(백)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은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본받고자 하는 날이다. 이 대축일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다음 금요일에 지내는데, 예수 성심이 성체성사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예수 성심에 대한 공경은 중세 때 시작하여 점차 보편화되었다. 1856년 비오 9세 교황 때 교회의 전례력에 도입되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권고에 따라, 1995년부터 해마다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에 ‘사제 성화의 날’을 지내고 있다. 이날은 사제들이 대사제이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복음 선포의 직무를 더욱 훌륭히 수행하는 가운데 완전한 성덕으로 나아가고자 다짐하는 날이다. 또한 교회의 모든 사람이 사제직의 존귀함을 깨닫고 사제들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와 희생을 바치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이며 사제 성화의 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의롭게 하십니다. 사제들이,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찾고자 애쓰시는 예수님의 성심을 닮은 착한 목자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입당송

시편 33(32),11.19 참조
주님의 마음속 계획은 대대로 이어지네. 죽음에서 목숨을 건지시고, 굶주릴 때 먹여 살리시네.
<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성심을 통하여
저희에게 베푸신 놀라운 사랑을 기리며 기뻐하오니
이 사랑의 샘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은총을
언제나 가득히 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또는>
하느님,저희 죄 때문에 상처를 입으신 아드님의 성심을 보시고저희에게 무한한 사랑을 인자로이 베푸시니저희가 그 성심을 정성을 다하여 공경하며마땅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게 하소서.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내 마음이 미어진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11,1.3-4.8ㅁ-9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나의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3 내가 에프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내 팔로 안아 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준 줄을 알지 못하였다.
4 나는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
8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9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이사 12,2-3.4ㄴㄷㄹ.5-6(◎ 3)
◎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 “보라, 내 구원의 하느님. 나는 믿기에 두려워하지 않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를 구원해 주셨네.”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
○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 이름 높이 불러라. 그분 업적을 민족들에게 알리고, 높으신 그 이름을 선포하여라. ◎
○ 위업을 이루신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이 하신 일 온 세상에 알려라. 시온 사람들아, 기뻐하며 외쳐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희 가운데 계신 분은 위대하시다. ◎

제2독서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3,8-12.14-19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8 모든 성도들 가운데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나에게 은총을 주시어,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풍요를 다른 민족들에게 전하고,
9 과거의 모든 시대에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던
그 신비의 계획이 어떠한 것인지 모든 사람에게 밝혀 주게 하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이제는 하늘에 있는 권세와 권력들에게도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의 매우 다양한 지혜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1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신 영원한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12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14 이 때문에, 나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15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종족이 아버지에게서 이름을 받습니다.
16 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17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
18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19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마태 11,29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9,31-37
31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33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35 이는 직접 본 사람이 증언하는 것이므로 그의 증언은 참되다.
그리고 그는 여러분이 믿도록 자기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36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37 또 다른 성경 구절은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 하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예물기도

주님,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무한한 사랑의 성심을 굽어보시고
저희가 드리는 이 예물을 속죄의 제사로 받아 주시어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의 축일과 신비 감사송 4 :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사랑(예수 성심 대축일)>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한 사랑으로 십자가에 높이 달리시어
저희를 위하여 몸소 자신을 제물로 바치시고
심장이 찔리시어 피와 물을 쏟으시니
거기서 교회의 성사들이 흘러나오고
모든 이가 구세주의 열린 성심께 달려가
끊임없이 구원의 샘물을 길어 올리나이다.
그러므로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7,37-38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그 속에서 생명의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오리라.
<또는>
요한 19,34 참조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영성체 후 묵상

하느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우리를 위하여 피와 물을 쏟으신 예수 성심의 한없는 사랑을 깨달읍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큰 사랑의 성사로 저희에게 거룩한 사랑의 불을 놓으시어
저희가 언제나 성자를 사랑하며
형제들 가운데서 그분을 알아보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사진설명: 예수성심

오늘의 묵상

1.  2024년 6월 7일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오늘은 예수 성심 대축일이고, 사제 성화의 날입니다. 사제 성화의 날은 1995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제안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느덧 30년이 되어갑니다. 교황님의 제안에 따라서 각 지역 교회는 예수 성심 대축일에 ‘사제 성화의 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사제들이 모여서 강의를 듣고, 고백성사를 보고, 기도하는 날입니다. 사제 성화의 날은 제게도 의미가 있습니다. 2001년이니까, 23년 전의 기억입니다. 당시 경기서부지역에 있던 저에게 한 가지 제안이 있었습니다. 사제 성화의 날에 체험담을 발표하라는 제안입니다.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쑥스럽고 그럴만한 능력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강사료라는 달콤한 유혹이 있었습니다. 

 

저는 '사목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체험담을 준비하였습니다. 먼저 신문에서 읽었던 글을 소개하였습니다. ‘봄누에는 죽기까지 실을 뽑아내고, 초는 재가 되어야만 눈물이 마른다.’라는 글을 소개하였습니다. 사제생활에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로 이야기 했습니다. ‘아직 근심이 오지도 않았는데 기쁨이 날아가 버린다.’라는 글을 소개하였습니다. 모든 근심과 걱정은 주님께 의탁하며 지금 순간을 기쁘게 지내자고 이야기 했습니다. ‘좋은 일을 하는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생긴다.’라는 글을 소개하였습니다.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주님의 사랑을 전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지내는 삶에서 ‘사목’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에도 산보는 저의 취미이지 운동입니다. 비가 개인 어느 날, 산보를 가려고 하는데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성당에 왔습니다. 저는 그 아이와 같이 산보를 갔습니다. 우산을 놓고 왔다고 해서 학교에 갔고, 비가 와서 물이 불어난 개천도 갔고, 장날이라 시장에도 갔습니다. 이렇게 산보를 잘 마치고 돌아왔는데 아이가 제게 물었습니다. 신부님! ‘산보’는 어디에 있어요? 산보는 걸으면서 주변을 보는 것인데, 아이는 산보가 어느 특정한 ‘장소’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산보’가자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이와 이야기를 하면서 하느님 앞에 저도 비슷한 질문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자연을 통해서, 예언자를 통해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어떻게 해야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지 다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제들이 가야할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착한 목자의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다만 저의 마음이 닫혔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사랑을 못 보는 것입니다. 저의 마음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보여 주시는 사랑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사목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 수난 성지주일 때입니다. 아이들이 성당 버스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성당까지 3시간을 넘게 뛰어 왔습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뛰어 왔습니다, 미사를 다 마치고 마당에 있는데 아이 둘이 마라톤 선수처럼 성당으로 달려왔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성당 버스를 놓쳐서 뛰어 왔다고 합니다. 여자 아이들은 뛸 수 없어서 집에 있다고 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점심을 사주고, 제 차로 다시 집까지 갔습니다. 여자 아이들을 데리고 성당으로 왔습니다. 아이들은 2시 군인미사를 보았습니다. 

 

주님 수난 성지주일에 수난 복음을 읽었고, 강론했지만 그리 큰 감동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3시간 넘게 주일 미사를 보겠다고 뛰어온 아이들에 제게 진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키레네 사람 시몬이 보였습니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 드렸던 베로니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때로 저는 주님 수난의 길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헸던 사람처럼 지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모르다고 했던 베드로 사도처럼 지냈습니다.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넘겼던 유다처럼 지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군중처럼 지냈습니다. 예수님께 위로를 드리는 것도,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도 모두 저의 몫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목은 선택입니다.

 

사목의 결실도 나누었습니다. 태권도를 통해서 선교했던 이야기, 농산물 직거래를 했던 이야기, 차량봉사단을 운영했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제성화의 날 체험담 발표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또 다른 제안이 있었습니다. 교구 사목국에서 함께 하자는 제안이 있었고, 직접 저를 찾아 왔습니다. 제갈공명도 아닌데 찾아와주니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렇게 저는 교구청에서 3년을 기쁘게 지냈습니다. 주된 업무는 교육담당이었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사목국에서 동료 사제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23년 전 사제 성화의 날에 했던 발표가 지금 내가 있는 자리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영원한 사제이신 예수님, 주님을 본받으려는 사제들을 지켜 주시어 어느 누구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소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사제직에 올라 날마다 주님의 몸과 피를 축성하는 사제들을 언제나 깨끗하고 거룩하게 지켜 주소서.” 오늘 하루 ‘사제를 위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 대축일

복음: 요한 19,31-37

 

예수 성심의 뜨거운 사랑은 오늘도 성체성사를 통해 거듭 표현되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호세아 예언자의 입을 통해서 당신의 우리를 향한 절절한 사랑, 활활 불타오르는

뜨거운 사랑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잘 표현하고 계십니다.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은혜롭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친히 보잘것없는 내 이름을 불러 주십니다.

나를 당신 품에 꼭 끌어안고 나와 눈을 마주칩니다.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내 볼에 당신 얼굴을 비비며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십니다.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나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시며, 뒤뚱뒤뚱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박수를 쳐주십니다.

 

결국 우리의 주님은 세상 자상한 아버지 같으신 분, 우리를 당신 눈동자보다 더 귀히 여기시는

따뜻한 어머니 같은 분이십니다.

우리 생각만 하면 주님 마음은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배신과 반역의 길을 걷는다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으십니다.

옆길로 자꾸 새는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든 되돌이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인내와 용서의 주님이십니다.

 

요한 복음사가 역시 우리 인간을 향한 정말이지 기가 막힌 사랑, 바보같은 사랑의 마음,

곧 예수님의 마음을 잘 소개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악행과 반역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분을

한갓 인간들이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높이 매달리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악행에 그 어떤 보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마음만 한번 바꿔먹으시면, 성 금요일 골고타 언덕의 그 참혹한 현장을

순식간에 뒤집어 놓을 수 있는 능력의 주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끝까지 침묵하시며 묵묵히 인간의 사악함과 무지막지함을 견뎌내십니다.

 

십자가에 매단 것도 모자라 인간들은 운명하신 그분의 옆구리에 창을 찔렀습니다.

심장까지 관통한 창으로 인해 그분의 옆구리에서는 피와 물이 흘러나왔습니다.

돌아가시면서까지 그분께서는 당신께서 흘리신 피와 물을 통해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 제정을 통해 우리를 단 한 번, 혹은 일정 기간만이 아니라

세세대대로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시겠다는 뚜렷한 징표를 하나 남겨주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향한 주님의 애끓는 사랑, 예수 성심의 뜨거운 사랑은 오늘도 성체성사를 통해

거듭 표현되고 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 강론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오늘은 예수성심 대축일입니다. 

곧 사랑의 대축일입니다.

이는 마치 물줄기를 찾아 올라가, 산꼭대기의 높은 곳에 있는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가장 맑은 샘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곧 우리가 마시고 있는 사랑의 강줄기의 발원지인 그 원천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아주 잘 표현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 화답송입니다. 
화답송에서 이사야는 바로 이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이사 12,3)

그렇다면 그 사랑의 발원지인 ‘구원의 샘’은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님의 심장’ 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 마음’입니다.

오늘 말씀전례의 열쇠는 '심장'(마음), 곧 '사랑'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호세아 예언자는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사랑을 응석받이 아기에 비유하여, 간장을 태우는 어머니의 절실한 사랑을 감동적으로 전해줍니다.

그러나 당신의 백성들은 이 사랑을 알아듣지 못하고 끊임없이 배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밝혀지게 됩니다. 

오늘 제2독서는 이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던 그 신비의 계획이 어떠한 것인지 모든 사람에게 밝혀주게 하셨습니다.”

(에페 3,9)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당신 안에 감추어진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러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놀라운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사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이 사실을 드러내 보이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최상의 증거를 십자가에서, 곧 ‘당신의 심장’에서 흘러나온 ‘물’과 ‘피’로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전해줍니다.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요한 19,34)

‘예수님의 늑방과 심장에서 흐르는 물과 피’! 

이는 ‘가나안의 혼인잔치’(요한 2,1-12 참조)를 반향해 줍니다. 

곧 물이 포도주로 바뀌었던, 정결례에 쓰던 여섯 개의 항아리는 마침내 예수님의 몸인 ‘일곱 번째 항아리’에서 완성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하여 신부가 없던 ‘카나의 혼인잔치’는 이제 ‘갈바리아의 혼인잔치’에서 신부인 교회를 맞이하게 됩니다.

아담에게서 하와가 탄생하듯 새 아담에게서 새 하와인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을 잠들게 하고 하와를 지으시듯, 새 아담 예수님이 잠든 후에 그의 옆구리에서 교회를 지으십니다.

 

하와를 아담에게 데려다주신 하느님께서는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적시시고 성체성사를 건네주십니다.

곧 그리스도의 심장에서 성체성사가 흘러나오게 하고, 노아의 배의 옆구리에서 동물들이 나오게 하듯, 물로 죄를 씻어내는 세례성사가 흘러나오세 합니다. 

‘예수님의 늑방과 심장에서 흐르는 물과 피’는 또한 ‘여인이 깨트린 옥함’(요한 12,1-8 참조)을 반향해 줍니다. 

값진 옥함을 부수고 남김없이 쏟아 부은 향료가 온 집안으로 번지듯, 감춰진 하느님의 사랑을 담은 그리스도의 부서진 몸에서 흘러나온 ‘사랑’이 온 세상을 기름칠하고 번져가게 된 것입니다. 

 

곧 ‘성소의 휘장을 찢고’(루카 23,45 참조), ‘아버지의 사랑의 신비를 담은 성전을 부수고’(요한 2,19 참조), ‘성문 밖 골고타 언덕’에서 온 세상에 ‘아버지의 사랑’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 세상은 축성되고 새롭게 탄생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심장’이 찔리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신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안에 감추어진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의 옆구리는 바로 ‘아버지의 심장’이었습니다. 

지금도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심장에서 부어주신 ‘피’와 ‘물’로 우리를 씻으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그 사랑으로 저희를 감싸십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를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시는 ‘하느님 사랑’의 신비가 있습니다.

결코 그 누구도 떼어놓을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 말입니다.

 

바로 오늘이 ‘하느님의 사랑’인 '예수 마음'이 우리에게 선사되는 은혜로운 날입니다.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고”(에페 3,17 참조).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에페 3,19 참조) 맛보게 하십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요한 19,34)

 

주님!

당신께서는 휘장을 찢으시고 가로막힌 모든 것을 치우셨습니다.

남김없이 쏟아 부은 물과 피로 우리의 영혼을 씻으셨습니다.

온 누리를 새로 지으시고 아버지의 향기를 가득 채우셨습니다.

사랑의 옥함인 당신 몸을 부수어 사랑의 향유로 온 세상을 기름칠하셨습니다.

오늘, 그 누구도 떼어놓을 수 없는 당신 사랑에 제 영혼이 뛰놀며 찬미의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6.6.연중 제9주간 목요일                                                         2티모2,8-15 마르12,28ㄱㄷ-34

                                                                사랑하라

                                         <가장 큰 계명, 사랑의 이중계명이 답이다>

 

“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시편25,4)

 

오늘은 제69회 현충일입니다. 나라 사랑에 몸바친 분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6.25당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몰한 장병과 순국선열 그리고 순직 공무원 등의 넋을 기리고

얼을 위로하기 위해 지정된 대한민국의 기념일이자 법정 공휴일입니다.

 

오늘 10시 정각에 전국민은 경건한 마음으로 애국선열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1분 동안 합니다. 

또 오늘은 제80주년 노르만디 상륙작전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1944년 6월6일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킴으로 나치 독일에 대한 승리의 전환점이 된 날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늘 담화를 통해 “결코 다시 전쟁은 아님을”(Never again war!),

또 평화와 기도를 강조하셨습니다. 

 

모든 전쟁은 영적전쟁으로 전환되고 모두가 영적승리의 삶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방법은 단 하나, 주님의 사랑의 전사가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성심성월” 전인류가 사랑을 회복할 절호의 달로 오늘 복음도 반갑게 일치합니다.

 

사랑은 멀리 밖에서 부터가 아니라 가까이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구체적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다시 반갑게 읽어보는 감동적인 카톡글입니다.

 

“저희 부부는 신들린 사람처럼 하루하루 기쁘게 생활했습니다.

이제 나이가 60대 후반의 부부가 되어보니 서로 안쓰럽고 눈빛만 봐도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 차리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수도원에 도움이 될까?

어떻게 하면 수사님들께서 좀 더 편리하게 사용하실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집을 짓고 있습니다.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입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집짓는 일을 마치고 사랑의 향기를 남기고 바람처럼 떠난 사랑의 부부입니다.

사랑은 추상적 명사가 아니라 구체적 동사입니다.

사랑은 마음이기보다는 실천입니다.

이 순박한 부부의 사랑은 그대로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어김없이 하느님께 대한 열렬하고도 항구한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사랑해서 사람입니다.

사랑하지 않고 사람이 되는 길은 없습니다. 

 

사랑은 사람의 본질입니다.

무지와 허무에 대한 궁극의 답도 사랑뿐이요, 평생공부도 사랑뿐이요 평생 졸업이 없는

“사랑의 학교”에서 평생학인이 되어 공부해야 하는 영원한 초보자인 우리들입니다.

“사랑”하면 떠오르는 두 편의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당신 언제나 

 거기 있음에서 오는 행복, 평화

 세월 지나면서 

 색깔은 바랜다지만

 당신 향한 내 사랑 더 짙어만 갑니다

 안으로 안으로 

 끊임없이 타오르는 사랑입니다

 세월 지나면서 

 계속 새로워지고 좋아지고 깊어지는 

 당신이면 좋겠습니다”<1997.3. >

 

 “당신이 꽃을 좋아하면

  당신의 꽃이

  당신이 별을 좋아하면

  당신의 별이

  당신이 하늘을 좋아하면

  당신의 하늘이

  되고 싶다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1998.12.25.>

 

27-26년전 시들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공감하는 사랑의 시입니다.

오늘 복음의 율법학자도 제가 보기엔 이런 분입니다.

율법학자가 다 꽉막힌 사람은 아닙니다.

 

오늘 어느 진지하고 진실하고 열려있는 구도자 율법학자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도 진지합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 뭐냐는 질문에 하나에 하나를 추가하여 둘을 말하며

이것이 “가장 큰 계명”이라 말합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613가지 율법을 사랑의 이중계명으로 요약합니다.

예수님의 창안같지만 이미 신명기(6,4)와 레위기(19,18)의 말씀의 재확인이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권위가 넘치고 한층 중요성을 띕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화답하는 율법학자 역시 참 멋진 훌륭한 제자의 자질을 지닌 분임을 깨닫습니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보다 낫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온마음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과제로 주어진 인생임을 깨닫습니다.

삶은 선물이자 평생과제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태어났음이 선물이요, 평생과제 사랑의 수행을 통해 주님을 닮아감으로

완성해야할 인생입니다.

 

과연 사랑의 숙제는 잘되어 날로 주님을 닮아가는 삶인지 자주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날마다의 미사시간이 참 좋은 사랑의 점검시간이기도 합니다.

슬기롭게 대답하는 내공 깊은 율법학자에 대한 예수님의 칭찬이 우리에게도 해당됐으면 좋겠습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참으로 멋지게 실천한 분이, 이중사랑의 빛나는 결정체가 바로 예수님이요,

제1독서에서 예수그리스도를 고백하는 바오로입니다.

바오로 역시 예수님을 닮아 사랑의 이중계명 실천의 대가이자 달인입니다.

 

비록 옥중에서 쇠사슬에 매여있지만 자유로운 영혼의 바오로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감옥에 가둘 수 없듯이 예수님과 일치된 자유로운 영혼 역시 감옥에 가둘수는 없습니다.

바오로는 사랑하는 제자 티모테오에 대한 가르침은 그대로 오늘의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기억하시오, 예수그리스도를”(Beloved: Remember Jesus Christ)”에 이어지는

초대교회의 신앙고백문이자 찬가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기원합니다.

영성생활에 예수그리스도를 잊지 않고 끊임없이 기억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과의 일치가 날로 깊어질수록 사랑의 이중계명 실천도 더불어 저절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며,

 그분을 모른다고 하면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실하지 못해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하시니,

 그러한 당신 자신을 부정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2티모2,11-13)

 

예수님과 일치된 이들은 예수님을 닮아 성실한 사람들이요 사랑의 이중계명의 실천이 이를 입증합니다.

중용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성실(誠實)은 하늘의 도이며, 사람의 도입니다.” 하늘은 성실합니다.

자연의 운행은 지치거나 쉼이 없고, 게을러지는 법이 없이 한결같습니다.

수도원 주차장, 때가 되어 활짝핀 금계국꽃들과 마가렛꽃들의 환대가 한결같이 성실합니다.

 

다음 옛 어른의 말씀도 지칠줄 모르는 한결같은 사랑의 노력을 권합니다.

 

“성공이라는 드문 일은 수많은 실패들의 반복으로 이뤄진다.”<다산>

“노끈으로 톱질해도 나무를 자를 수 있고, 작은 물방울이 쌓이면 돌에 구멍을 낸다.”<한서>

 

사랑의 이중계명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닮아 진실(眞實), 성실(誠實), 절실(切實)의 삼실(三實)의 사람들입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날로 주님을 닮은 사랑의 이중계명 실천의 사람들로 변모시켜 줍니다. 

 

“주님, 저를 가르치시어 당신 진리로 이끄소서.

 당신은 제 구원의 하느님이시옵니다.”(시편25,5ㄱㄴ). 아멘.


6/7(금)  [(백)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되새김 구절

 

1.  주님 수난 성지주일에 수난 복음을 읽었고, 강론했지만 그리 큰 감동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3시간 넘게 주일 미사를 보겠다고 뛰어온 아이들에 제게 진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키레네 사람 시몬이 보였습니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 드렸던 베로니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때로 저는 주님 수난의 길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헸던 사람처럼 지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모르다고 했던 베드로 사도처럼 지냈습니다.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넘겼던 유다처럼 지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군중처럼 지냈습니다. 예수님께 위로를 드리는 것도,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도 모두 저의 몫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목은 선택입니다.(조재형 신부)

 

2. 십자가에 매단 것도 모자라 인간들은 운명하신 그분의 옆구리에 창을 찔렀습니다.

심장까지 관통한 창으로 인해 그분의 옆구리에서는 피와 물이 흘러나왔습니다.

돌아가시면서까지 그분께서는 당신께서 흘리신 피와 물을 통해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 제정을 통해 우리를 단 한 번, 혹은 일정 기간만이 아니라

세세대대로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시겠다는 뚜렷한 징표를 하나 남겨주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향한 주님의 애끓는 사랑, 예수 성심의 뜨거운 사랑은 오늘도 성체성사를 통해

거듭 표현되고 있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요한 19,34)

 

주님!

당신께서는 휘장을 찢으시고 가로막힌 모든 것을 치우셨습니다.

남김없이 쏟아 부은 물과 피로 우리의 영혼을 씻으셨습니다.

온 누리를 새로 지으시고 아버지의 향기를 가득 채우셨습니다.

사랑의 옥함인 당신 몸을 부수어 사랑의 향유로 온 세상을 기름칠하셨습니다.

오늘, 그 누구도 떼어놓을 수 없는 당신 사랑에 제 영혼이 뛰놀며 찬미의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하느님께 대한 열렬하고도 항구한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사랑해서 사람입니다. 사랑하지 않고 사람이 되는 길은 없습니다. 

사랑은 사람의 본질입니다.

무지와 허무에 대한 궁극의 답도 사랑뿐이요, 평생공부도 사랑뿐이요 평생 졸업이 없는

“사랑의 학교”에서 평생학인이 되어 공부해야 하는 영원한 초보자인 우리들입니다.

 

사랑의 이중계명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닮아 진실(眞實), 성실(誠實), 절실(切實)의 삼실(三實)의 사람들입니다.

(이수철 신부)

 

6/7(금)  [(백)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531(161)일 기도

 

복음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오늘의 말·샘 기도>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요한 19,34)

 

주님!

당신께서는 휘장을 찢으시고 가로막힌 모든 것을 치우셨습니다.

남김없이 쏟아 부은 물과 피로 우리의 영혼을 씻으셨습니다.

온 누리를 새로 지으시고 아버지의 향기를 가득 채우셨습니다.

사랑의 옥함인 당신 몸을 부수어 사랑의 향유로 온 세상을 기름칠하셨습니다.

오늘, 그 누구도 떼어놓을 수 없는 당신 사랑에 제 영혼이 뛰놀며 찬미의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6월7일(금) 7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