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7월 9일 화요일[(녹) 연중 제14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4. 7. 9. 07:50

[매묵]2024년 7월 9일 화요일[(녹) 연중 제14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홍] 성 아우구스티노 자오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입당송

시편 48(47),10-11
하느님, 저희가 당신의 성전에서 당신의 자애를 생각하나이다. 하느님, 당신을 찬양하는 소리, 당신 이름처럼 땅끝까지 울려 퍼지나이다. 당신 오른손에는 의로움이 넘치나이다.

본기도

하느님,
타락한 세상을 성자의 수난으로 다시 일으키셨으니
저희에게 파스카의 기쁨을 주시어
죄의 억압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그들이 바람을 심었으니 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8,4-7.11-1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4 임금들을 세웠지만 나와는 상관없고
대신들을 뽑았지만 나는 모르는 일이다.
그들은 은과 금으로 신상들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망하려고 한 짓일 뿐이다.
5 사마리아야, 네 송아지를 내던져 버려라.
내 분노가 그들을 향해 타오른다.
그들이 언제면 죄를 벗을 수 있을까?
6 송아지 신상은 이스라엘에서 나온 것
대장장이가 만든 것일 뿐 결코 하느님이 아니다.
정녕 사마리아의 송아지는 산산조각이 나리라.
7 그들이 바람을 심었으니 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
줄기에 이삭이 패지 못하니 알곡이 생길 리 없다.
알곡이 생긴다 하여도 낯선 자들이 그것을 집어삼켜 버리리라.
11 에프라임이 제단들을 많이도 만들었지만
그것은 죄를 짓는 일이요 그 제단들은 죄짓는 제단일 뿐이다.
12 내가 그들에게 나의 가르침을 많이 써 주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낯선 것으로만 여겼다.
13 그들은 희생 제물을 좋아하여 그것을 바치고 그 고기를 먹지만
주님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제 주님은 그들의 잘못을 기억하고 그들의 죄를 벌하리니
그들은 이집트로 돌아가야 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5(113 하),3-4.5-6.7ㄱㄴ과 8.9-10(◎ 9ㄱ)
◎ 이스라엘아, 주님을 신뢰하여라!
○ 우리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며, 뜻하시는 모든 것 다 이루셨네. 저들의 우상은 은과 금, 사람 손이 만든 것이라네. ◎
○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네. ◎
○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네. 만든 자도 믿는 자도, 모두 그것들 같다네. ◎
○ 이스라엘아,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님은 도움이며 방패이시다. 아론의 집안아,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님은 도움이며 방패이시다. ◎

복음 환호송

요한 10,14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 알렐루야.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32-38
그때에 32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군중은 놀라워하며,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께 바치는 이 제사로 저희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영원한 생명에 날마다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4(33),9 참조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주님께 바라는 사람!
<또는>
마태 11,28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성사의 큰 은혜를 가득히 받고 비오니
구원의 은총을 풍부히 내리시어
저희가 끝없이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착한 사마리아인.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3 4의 교구사제모임을 마치고 신부님들은 삶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마지막 날에 신부님들은 교구장님과 대화 하면서 몇 가지 의견을 이야기했습니다. 미주지역에도 미사 도우미 사제를 파견해 달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서울대교구에서는 작년부터 미사 도우미 사제라는 직책을 신설했습니다. 미주지역에 있는 사제들은 비자 갱신 때문에 한국에 가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피정이나 휴가를 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미사를 도와줄 사제를 구하는 겁니다. 보좌 신부님이 있거나, 대도시에 있는 신부님들은 그나마 미사를 도와줄 사제를 구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소도시의 작은 규모의 성당에서 사목하는 신부님들은 미사를 도와줄 사제를 구하기 어렵습니다. 도움을 청한다 하더라도 한 달 가까이 미사를 도와준다면 그에 대한 사례비를 마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미사 도우미 사제가 있다면, 해외 교포 사목의 경험이 있는 사제라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미사 도우미 사제는 신부님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원하면 고백성사를 줄 수 있습니다. 교구장님은 머물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할 수 있다면 미사 도우미 사제의 파견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교구사제모임의 장소에 대한 의견도 있었습니다. 현행의 장소 선정은 4개 본당이 돌아가면서 개최하는 것입니다. 필라델피아 홀리 엔젤스 성당, 워싱턴 DC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 타코마 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입니다. 4곳 모두 성당의 규모가 큰 편이고, 보좌 신부님이 있습니다. 모임을 개최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성당입니다. 신부님들은 규모가 작은 성당에서도, 남미에서 선교하는 성당에서도 교구사제모임을 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공항에서의 이동을 대중교통이나 우버를 이용하고, 피정의 집을 숙소로 정하면 본당의 규모와 상관없이 개최할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하루는 피정의 집에서 성체조배와 피정을 하고, 하루는 교구사제들이 친교를 나누고, 마지막 날에는 사목의 체험을 공유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교포 사목 성당도 고령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교우들의 봉사와 도움을 받기보다는 사제들이 스스로 모임을 꾸려 가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교구장님은 사제들의 의견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2026년의 교구사제모임은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개최하기로 하였습니다. 교구장님은 선교 사제들, 유학 사제들, 본당 재정이 힘든 사제들에게 특별히 격려금을 주셨습니다.

 

교구사제모임의 대표를 교구장님이 임명하고, 공문을 보내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대표가 활동할 수 있도록 재정지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미주지역에 있는 사제들을 하나의 지구로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서울대교구에 있는 지구장 제도를 미주지역에도 도입하자는 의견이었습니다. 미주지역이 워낙 이동거리가 멀기 때문에 본당 사목을 하면서 지구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미사 도우미 사제가 지구장과 대표를 겸임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대교구에서 재정 지원을 받기 보다는 미주지역의 본당에서 재원을 마련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주 지역에서 고백성사와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서는 각 교구에 미리 허락을 받아야 하는 문제가 있고, 지구장 제도의 도입과 재정지원은 다른 지역(유럽, 아시아, 호주)과의 형평성도 있기 때문에 검토해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현임 대표신부님이 내년에는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기에 새로운 대표를 선출해야 했습니다. 관례상 서품 연도가 가장 빠른 사제가 대표가 되었기에 제가 대표로 추대되었습니다. 신부님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와주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자본주의와 능력주의는 경쟁과 성과를 이야기합니다. 성공, 명예, 권력을 추구합니다. 그것이 풍요로운 삶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윤을 위해서는 양심을 속이기고 합니다. 이웃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사랑해야 할 가족들마저 외면하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엉킨 매듭을 풀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저는 성격이 급해서 엉킨 매듭을 천천히 풀지 못하는 편입니다. 종교란,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들의 삶에서 생기는 엉킨 매듭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은 외면한다고 해서, 덮어버린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진지하게 내면을 들여다보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교회는 옷에 흙이 묻을지라도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지금의 시대에도 자아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일구어가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_우리에게는 양들에게 사랑과 기쁨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희망의 목자가 필요합니다!

 

때 이른 폭염과 장마로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특히 농사짓는 분들의 고생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집니다. 불볕더위와 과도한 비바람에 농작물들도 힘겨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예초를 한다고 잠깐 나갔었는데 사우나가 따로 없습니다. 잡초들을 바라볼 때 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참으로 대단하다!’ 어찌 그리도 생명력이 왕성한지요. 뽑아도 뽑아도 또 자라납니다.

한바퀴 예초를 쭉 하고 돌아서면 벌써 저쪽 끝에서는 또 다른 잡초가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뿌리는 얼마나 튼튼하고 깊이 내려가는지 모릅니다. 방심했다간 피정 센터 전체가 순식간에 잡초로 뒤덮이게 됩니다.

잡초제거에 신경을 쓰지 않다가는 정작 원하는 농작물은 조금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왕성한 식욕을 지닌 잡초들이 모든 영양분들을 다 흡수하다보니 농작물들은 시들시들, 삐쩍 말라 휘청거리다가 결국엔 죽어버립니다.

좋은 결실을 기대한다면 방법이 따로 없습니다. 꾸준히, 일상적으로 잡초를 뽑아줘야 합니다. 그것이 농작물을 살리는 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밭에서 열심히 일할 일꾼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 말미에 예수님께서도 일꾼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오늘 우리에게는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품위있고 예의바른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가난하고 고통 받는 백성들이 자신의 유일한 존재 이유인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양들에게 극진한 사랑을 베풀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들로부터 애틋한 사랑을 받는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고, 혹시라도 장거리 출장이라도 가면 세상 다 끝난 것처럼 마음이 허전해지는 그런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정말이지 착한 목자가 꼭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의 성장과 안녕과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에게 쾌적한 성장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돈이나 명예, 인기나 허황된 꿈이 아니라 영혼 구원이 유일한 삶의 목표인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양들이 오늘 겪고 있는 고통과 괴로움, 그들이 안고 있는 상처와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갈 착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 이 시대 양들을 위해 틈만 나면 위로와 격려, 사랑과 기쁨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희망의 목자가 필요합니다.

 

당시 여러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던 사람들, 가장 천대받고 멸시 당하던 사람들만을 우선적 사목 대상으로 선택하셨던 예수님을 바라보며, 만일 지금 다시 한번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면 과연 어떤 사람들을 찾아가실 것인가 생각해봅니다.
 

교회는 교회 본연의 사명인 교세 확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도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새로운 성당을 짓기 위한 신축부지 마련이나 신축도 중요합니다. 성지의 개발도 중요합니다. 신자 재교육도 중요합니다. 각종 단체의 활성화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일이 한가지 있습니다. 이 시대 살아있는 교회이자 성지인 가장 가난한 사람들,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그들의 인간성 회복을 위해,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일입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 오늘의 말씀(7/8일) : 연중 제 14주간 화요일

* 제1독서 : 호세 8, 4-7. 11-13

* 복음 : 마태 9, 32-38

 

* 오늘의 강론 :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있었기 때문이다.”(마태 9,36)

 

마태오복음사가는 5~7장의 산상설교에 이어, 8~9장에서 10개의 기적 이야기를 모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 마지막 이야기로 ‘마귀 들려 말 못하는 이를 치유하신 이야기’와 ‘추수할 일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 못한 이를 치유하신 다음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있었기 때문이다.”(마태 9,36)

 

착한 목자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시달리며 기가 꺾여있음”을 놓치지 않으십니다. 상한 갈대를 그냥 둘 수 없는 당신의 마음입니다. 꺼져가는 불씨를 보고 마음이 상해서 못 견디시는 마음입니다. 가만 두고는 차마 못 베기는 사랑이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온몸으로 몸서리치게 겪고 있으면서도 놓쳐버리지는 말아야할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에 안달이 나신 그분을 만나야 할 일입니다. 그 길은 바로 내 형제, 내 이웃에게서 “시달리며 기가 꺾여있음”을 놓치지 않는 일입니다. 그를 못 본 척 하지 않고, 모른 척 하지 않는 일입니다. 무관심하지 않는 일입니다.

사실, 그들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고 우리 중에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함은 우리가 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달리는 이들”, 힘이 없어 시달리고, 가진 게 없어서 시달리고, 무능해서 시달리고, 고통과 슬픔, 질병과 가난, 근심과 절망에 시달리는 바로 내 형제 내 이웃의 모습입니다. “기가 꺾여있는 이들”, 인정해주지 않아서 고용해주지 않아서 거리에서 집에도 못 들어가는 기 꺾인 이들, 돈이 없어 자녀들에게도 기 꺾여 사는 이들, 고국을 떠나와 이방인이 되어 기가 꺾여 살아가는 바로 내 형제 내 이웃의 모습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 데 일꾼은 적다.”(마태 9,38)

 

어쩌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일꾼이 적어서가 아니라, 일꾼들이 제 할 일을 안 하는 데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느 날, 한 수도자가 벌거벗고 굶주린 채로 길거리에서 벌벌 떨고 있는 소녀를 보았습니다. 그는 화가 치밀어서 하느님을 성토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왜 두고만 보십니까? 왜 아무 것도 안 하시는 겁니까?” 하느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불현듯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아무 것도 안 했다니, 너를 만들었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만드시어 우리 안에 이미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넣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굶주린 소녀, “시달리며 기가 꺾여있는 이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우리가 일꾼임을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수확할 밭의 일꾼으로 저를 보내셨습니다.

병고와 세파에 시달리고, 절망과 슬픔에 기가 꺾인 이들 가운데 바람막이로 보내셨습니다.

시달리며 기가 꺾인 이들을 측은히 여기시는 당신의 마음에 제 마음을 심으소서.

제 마음이 그들을 어루만지게 하소서. 아멘.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태 9,36)

 

주님!

시달리며 기가 꺾인 이들을 측은히 여기시는 당신의 마음을 제 마음에 심으소서.

제 손이 상한 갈대를 꺾지 않게 하시고, 제 말이 꺼져가는 불씨를 끄지 않게 하소서.

우리 가운데 있는 그들을 더 이상은 못 본 척 무시하지 않게 하소서.

모르는 척 업신여기지 않게 하시고,

병고와 세파에 시달리고 기 꺾인 이들의 바람막이가 되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7.8.연중 제14주간 월요일                                               호세2,16.17ㄷ-18.21-22 마태9,18-26

 

                                       만남의 신비, 믿음의 여정, 치유의 여정

                                                      “믿음이 답이다”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주셨네.”(2티모1,10)

 

새벽 휴게실에 들어서는 순간 책상 위 책 제목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축성생활자와 성직자에게 주신 말씀 모음집인 “만남의 신비학을 살아가세요1”라는,

참 멋진 제목이었습니다.

더불어 전 교황청 대사였던 성염 대사의 교황님에 대한 소감도 생각났습니다.

 

“내가 만났을 때 이야기를 하면 그는 나의 눈을 쳐다보며 경청하고 공감하는 공감능력자였다.

교회와 신도들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항상 생각하고 같이 고민해 온 개방적인 분이다.”

 

과연 ‘만남의 신비학’을 살아가는 ‘만남의 대가’, ‘믿음의 거인’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책에 대한 추천사중 유덕현 야고보 아빠스의 짧은 언급에도 공감했습니다.

 

“자신의 뜻만 앞세우는 사례가 넘쳐 장상과 형제, 형제와 형제 서로 간의 충돌로 수도자들의 공동생활이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사는 공동생활은 중요합니다.

현대세계에서는 뛰어난 한 개인의 카리스마보다 사람 사이에서 잘 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또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이 성인입니다.”

 

묵묵히 믿음으로 사람 사이에서 잘 살아가는 지혜로운 이가 성인입니다.

공감합니다만 교황님과 같은 뛰어난 믿음의 카리스마를 지닌 종교 지도자들이 절실한 시절입니다.

나름대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삶의 기초입니다.

무신불립, 믿음이 없으면 서지 못합니다. 믿음의 반석위에 지어지는 견고한 인생집입니다.

옛 어른의 말씀도 믿음의 지혜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눈앞의 것을 좇느라 원대한 계획을 잊어버린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과 꾸준함이다.”<다산>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는 말도 생각납니다.

이래서 공동생활입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제대로 제방향으로 더불어 가는 믿음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서두르지 말고 작은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서두르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좇으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논어>

믿음의 지혜요 믿음의 여정에 도움이 되는 옛 어른의 말씀들입니다. 

 

믿음의 여정에 자리하고 있는 만남의 신비입니다.

만남중의 만남이 주님과의 만남이요, 우리 삶은 주님과 만남의 여정이요 기도가 절대적임을 깨닫습니다.

주님과 만남의 기도요 기도와 함께 가는 믿음입니다.

오늘 복음의 회당장과 열두 해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믿음의 모범입니다.

주님을 만나고자하는 간절한 기도가, 믿음이, 열망이 있어 주님을 만난 회당장입니다.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그대로 회당장의 철석같은 믿음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장의 믿음에 응답하여 일어나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를 따라가십니다.

예수님 역시 제자들과 함께하는 믿음의 여정임을 보여줍니다.

 

이어 열두해 혈루증을 앓는 여자의 믿음도 빛납니다.

믿음의 갈망이 주님을 찾아 만나게 했고,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하고 생각하며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댑니다. 그대로 믿음의 표현입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과 만남으로 온전히 치유받은 믿음의 여자입니다.

회당장의 집에 이른 예수님은 피리를 부는 이들과 소란을 피우는 군중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비웃는 믿음없는 이들을 내 쫓으신 다음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시자 소녀는 곧장 일어납니다.

아버지 회당장의 믿음 덕분에 주님을 만나 살아난 소녀입니다.

주님을 만남으로 전인적 치유의 구원으로 부활의 삶을 살게 된 회당장 딸입니다. 

 

열두해 혈루증을 앓던 여자와 회당장의 딸은 생명의 주님을 만나 온전한 치유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새삼 온전함(wholeness)이 거룩함(holiness)이요 거룩함이 온전함임을 깨닫습니다. 

영어 발음도 같습니다. 

믿음으로 치유받을 때 거룩한 온전함임을 깨닫습니다. 

아마도 이런 치유의 구원 체험은 회당장이나 혈루증을 앓던 여자에게는 믿음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믿음의 여정의 양상은 다 다릅니다.

오늘 성무일도 독서시 사무엘 하권(15,7-14.24-30;16,5-13)의 말씀을 들으며 다윗이 바쎄바의 남편 우리아를

감쪽같이 살해하고 바쎄바를 아내로 차지한 후로 겪게 되는 다윗의 파란만장한 믿음의 여정이

흡사 보속의 여정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믿음의 여정 역시 동시에 보속의 여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제1독서 호세아 예언서 역시 주님과의 만남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주님은 광야에서 당신 백성을 만나 사랑을 고백합니다.

그대로 시공을 초월하여 세상 광야 믿음의 여정중에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하나하나를 향한

주님의 말씀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며 은혜롭겠습니다.

그날이 오늘입니다.

 

“그날에 네가 더 이상 나를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않고, ‘내 남편!’이라 부르리라.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 신의와 자비,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

 

당신 백성을 한결같은 사랑의 대상인 아내처럼 생각한 하느님입니다.

참으로 주님과의 만남이 깊어지면서 주님을 참으로 알게 될 것이고 이런 주님을 닮을 때,

온전한 치유의 구원이요 ‘정의와 공정, 신의와 자비, 진실의 거룩한 삶’이 될 것입니다. 

 

새삼 믿음의 여정은 한결같은 기도를 통한 주님과 만남의 여정이자 치유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믿음의 여정중인 우리를 날로 주님을 닮아, 정의와 공정, 신의와 자비,

진실의 사람들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며,

 그 자비 모든 조물 위에 내리시네.”(시편145,8-9). 아멘.


7/9(화)  [(녹)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교회는 옷에 흙이 묻을지라도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지금의 시대에도 자아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일구어가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조재형 신부)

 

2. 이 시대 살아있는 교회이자 성지인 가장 가난한 사람들,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그들의 인간성 회복을 위해,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일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태 9,36)

 

주님!

시달리며 기가 꺾인 이들을 측은히 여기시는 당신의 마음을 제 마음에 심으소서.

제 손이 상한 갈대를 꺾지 않게 하시고, 제 말이 꺼져가는 불씨를 끄지 않게 하소서.

우리 가운데 있는 그들을 더 이상은 못 본 척 무시하지 않게 하소서.

모르는 척 업신여기지 않게 하시고,

병고와 세파에 시달리고 기 꺾인 이들의 바람막이가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열두해 혈루증을 앓던 여자와 회당장의 딸은 생명의 주님을 만나 온전한 치유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새삼 온전함(wholeness)이 거룩함(holiness)이요 거룩함이 온전함임을 깨닫습니다. 

영어 발음도 같습니다. 

믿음으로 치유받을 때 거룩한 온전함임을 깨닫습니다. (이수철 신부)


 

7/9(화)  [(녹)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제18일차 기도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태 9,36)

 

주님!

시달리며 기가 꺾인 이들을 측은히 여기시는 당신의 마음을 제 마음에 심으소서.

제 손이 상한 갈대를 꺾지 않게 하시고, 제 말이 꺼져가는 불씨를 끄지 않게 하소서.

우리 가운데 있는 그들을 더 이상은 못 본 척 무시하지 않게 하소서.

모르는 척 업신여기지 않게 하시고,

병고와 세파에 시달리고 기 꺾인 이들의 바람막이가 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7월9일(화) 7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