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8월 11일 주일[(녹) 연중 제19주일]/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4. 8. 11. 12:23

[매묵]2024년 8월 11일 주일[(녹) 연중 제19주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19주일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이 세상에서 나그넷길을 걷는 교회를 이끄시어, 사라지지 않는 음식으로 힘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빛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며 힘차게 걸어갑시다.

입당송

시편 74(73),20.19.22.23 참조
주님, 당신의 계약을 돌아보소서! 가련한 이들의 생명을 저버리지 마소서. 일어나소서, 주님, 당신의 소송을 친히 이끄소서. 당신을 찾는 이들이 외치는 소리를 잊지 마소서.
<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르오니
저희 마음에 자녀다운 효성을 심어 주시어
약속하신 유산을 이어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엘리야는 그 음식으로 힘을 얻어 하느님의 산에 이르렀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9,4-8
그 무렵 엘리야는 4 하룻길을 걸어 광야로 나갔다.
그는 싸리나무 아래로 들어가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제 조상들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5 그러고 나서 엘리야는 싸리나무 아래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때에 천사가 나타나 그를 흔들면서, “일어나 먹어라.” 하고 말하였다.
6 엘리야가 깨어 보니, 뜨겁게 달군 돌에다 구운 빵과 물 한 병이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그는 먹고 마신 뒤에 다시 누웠다.
7 주님의 천사가 다시 그를 흔들면서,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하고 말하였다.
8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 음식으로 힘을 얻은 그는 밤낮으로 사십 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4(33),2-3.4-5.6-7.8-9(◎ 9ㄱ)
◎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
○ 나와 함께 주님을 칭송하여라. 우리 모두 그 이름 높이 기리자. 주님을 찾았더니 응답하시고,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
○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
○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 ◎

제2독서

<여러분도 그리스도처럼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4,30─5,2
형제 여러분, 30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속량의 날을 위하여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31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32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5,1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요한 6,51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 알렐루야.

복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41-51
그때에 41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유다인들이 그분을 두고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42 그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리가 알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떻게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45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46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50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좋으신 주님, 지상에서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교회를 굽어보시어, 구원의 기쁨과 영원한 생명을 믿고 바라며 오롯이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2.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주님, 급속하게 문명이 발달하고 있는 이 세상을 살펴 주시어, 진정한 대화와 타협으로 서로 이해하고 믿음을 키우며, 참평화로 나아가게 하소서.

3.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치유의 주님, 무더위 속에 질병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을 보살펴 주시어, 그들의 아픔을 없애 주시고, 그들이 안정을 되찾아 온전히 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4. 본당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생명의 주님, 저희 본당 공동체의 모든 이에게 굳건한 믿음을 주시어,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신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시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자비로 이 예물을 바치오니
주님의 교회가 드리는 이 예물을 받아들이시어
저희에게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5 <창조>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계절이 갈마들게 마련하셨나이다. 그리고 사람을 주님의 모습 따라 지으시고, 창조하신 만물을 모두 맡기시어, 주님 대신에 다스리게 하시고,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의 위대한 업적을 언제나 찬양하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모든 천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147(146─147),12.14 참조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은 기름진 밀로 너를 배불리신다.
<또는>
요한 6,51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영성체 후 묵상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고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성령의 인장을 받은 우리도 사랑 안에서 살아갑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받아 모신 이 성체로 저희를 구원하시고
진리의 빛으로 저희를 굳세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사진설명: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19주일

 

제가 처음 컴퓨터를 접한 것은 1995년입니다. 그전에는 수동타자기와 전동타자기를 사용했습니다. 3년 후인 1998년에 서울대교구는 모든 본당에 광케이블을 설치하였습니다. 이제 컴퓨터는 인터넷과 연결되었고, 컴퓨터는 문서작성의 도구를 넘어서 세상과 접속할 수 있는 창이 되었습니다. 컴퓨터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면서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했습니다. 한글을 비롯한 다른 프로그램들도 계속 업데이트를 해 주어야 했습니다. 업데이트와 백신 프로그램이 없으면 컴퓨터는 성능이 떨어지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고쳐야 할 때도 있습니다. 컴퓨터는 스마트폰에게 자리를 많이 내어주었지만, 아직도 제게는 강론을 준비하는 고마운 친구이고, 세상과 접속하는 창문입니다. 팬데믹 때, 컴퓨터는 신앙생활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교우들은 컴퓨터에 접속해서 온라인으로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저도 컴퓨터를 이용해서 강의했습니다. 팬데믹 이후 여전히 재택근무가 가능한 것도 컴퓨터와 인터넷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삶에도 업데이트된 순간이 있었습니다. 1977년입니다. 공부를 잘 해서 10등 안에 들면 자전거를 사준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10 등 안에 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자전거는 제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고, 17 등을 했습니다. 이제 7명만 넘어서면 자전거를 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7명을 넘어서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 아이들도 공부를 열심히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열심히 공부했고, 9등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도, 선생님도 그런 결과를 믿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그다지 공부를 잘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시 열심히 공부했고,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성적을 얻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제게 업데이트 된 것이 있습니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입니다. ‘태산이 높지만 하늘 아래 있는 산입니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는데 사람이 아니 오르고 산만 높다 한다.’는 시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컴퓨터는 계속 업데이트 해 주어야 하듯이, 우리의 삶도 업데이트가 있어야 합니다. 규칙적인 식사와 꾸준한 운동으로 업데이트 해 주어야 합니다. 독서와 긍정적인 마인드로 업데이트 해 주어야 합니다. 열린 마음으로 나누고, 봉사해야 합니다. 강물을 거꾸로 헤엄치는 연어처럼 시간과 공간에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빵은 우리의 육체를 배부르게 하는 빵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원한 생명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착각하거나 오해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으로 재물과 명예 그리고 권력을 얻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신앙의 열매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으로 무병장수를 원하지만 그것도 신앙의 열매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빵은 우리가 미사 때 받아 모시는 성체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체를 모실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지만 썩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렇습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를 업데이트 시키는 것은 물질과 재물이 아닙니다. 무병장수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충실히 지고 가는 것입니다. 나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영원한 생명에로 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업데이트해야 할 것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19주일

복음: 요한 6,41-51

 

오늘 더 깊은 감사의 정으로 성체를 영해야겠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밤늦도록 매일 매일 하루 세끼 꼬박꼬박 아이들을 위해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면서

이런저런 묵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빵, 식사라는 것,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우리 삶 속에서 먹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맛있는 식사를 정성껏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복음적인 일인지?

그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식사로 인해 우리의 생명이 지속되니, 그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지상에서의 육신적인 빵의 중요성도 이토록 중요시여기고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지상의 빵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수 없는 천상의 빵, 매일의 성체 성사를 통해 영하게 되는

생명의 빵에 대한 가치와 의미 부여는 과연 어느 정도인가 깊이 성찰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세상의 빵이 지니는 한계가 있습니다. 충분히 먹었는데, 돌아서면 또 먹어야 합니다.

또 다시 허기와 갈증은 반복되고 먹어도 먹어도 온전히 충족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빵이 지니는 유효 기간은 길어야 사흘이요 일 주일입니다.

그래서 늘 내일 먹을 빵에 대해 걱정하고 언제나 허기와 갈증에 시달리는 우리를 향해

오늘 주님께서는 너무나 은혜로운 한 말씀을 건네십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과분하게도 예수님의 크신 배려와 희생으로 그 영원한 생명의 빵을 언제 어디서든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찾을 수 있고, 언제든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더 깊은 감사의 정으로 성체를 영해야겠습니다.

그 성체로 인해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었으니 더 없이 기쁜 마음으로 찬미의 송가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19주일

 

<나는 오늘 빵이 되어 자신을 건네주고 있는지요?>

 

우리는 연중 17주일부터 요한복음 6장의 내용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6장을 연중 21주일까지 5주간 동안에 걸쳐 계속해서 들을 것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그 말씀들 중에서도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요한 6, 51), 곧 '성체성사'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1독서는 엘리야가 가르멜 산에서 바알의 거짓 예언자 450명을 죽인 후, 바알의 신봉자인 아합 왕의 부인 이세벨이 그를 죽이려 하자 피신하던 중, 하느님께서 극도로 지쳐 잠든 그를 깨워 빵과 물을 먹고 마시게 하여 마침내 호렙산에 이르게 하신 이야기로, 이때 엘리야가 받아먹고 힘을 회복하였던 이 '빵'은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성체'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줍니다.

제2독서는 “그리스도께서 ~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에페 5,2)라는 사도 바오로의 권고입니다.

‘이 사랑’은 이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으로 내놓은 당신의 살, 곧 ‘성체성사’를 말해줍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내 살이다.”

(요한 6,51)

이는 당신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말해줍니다. 

곧 당신께서는 살아있는 생명의 음식이고, 그 생명은 하늘에서 와서 우리를 하늘 생명으로 살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곧 우리에게 당신의 살을 주시고, 당신의 생명을 건네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느님의 생명이 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바로 그 ‘빵’을 먹음으로써 가능해집니다. 

 

그렇습니다. 

주어지는 빵이기에 받아먹어야 하는 빵입니다.

 

이 ‘빵’은 결코 우리 스스로 만들 수가 없는 빵일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우리의 노력으로 획득할 수 없는, 선사되는, 건네진 빵입니다.

그러니 이 ‘빵’은 먼저 건네주는 분이 없이는 결코 먹을 수가 없는 빵입니다.

그러니 생명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베풀어진 것, 곧 선사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의 생명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선사된 생명을 받아서만이 생명이 됩니다. 

 

그러니 먹지 않고서는 결코 생명이 될 수 없습니다. 

곧 ‘생명의 빵’을 받아먹어야 ‘생명의 빵’이 됩니다. 

‘먹는다’는 것은 음식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받아 입에 넣는 것이며, 입에 넣고서 맛보는 것만이 아니라 삼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삼킬 때라야 생명이 됩니다.

곧 살아있는 빵을 받아 삼키는 자만 영원히 살아있는 생명을 지니게 됩니다. 

그러니 빵은 눈앞에 두고 보고만 있으라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입에 넣고 오물거리라고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맛보기만 하고 뱉어버리거나 골라서 삼키는 것이 아니라, 주신 분을 믿고서 꿀꺽 삼켜야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생명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내 살이다.”

(요한 6,51)

오늘도 우리는 '세상에 생명을 주는 그분의 살'을 먹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본받는 사람, 곧 빵을 받아먹고 ‘빵이 된 사람’을 말합니다.

자신의 배를 채우는 빵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 건네주는 ‘빵이 되는 사람’ 말입니다.

진정으로 그분을 먹은 자라야 그분처럼 먹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오늘 빵이 되어 자신을 건네주고 있는지요? 

먹히는 빵인지요? 

기꺼이 형제의 입 속으로 들어가 씹히고 부서지고 바수어지고 뭉개지고 마침내는 사라져지는지요?

 

그런 이라야 빵이 된 사람이요, 세상에 생명을 주는 주님의 살이요, 성체가 되는 사람일 것입니다.

사실 우리 안에 살아계신 그분이 우리 안에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아를르의 체사리오는 말합니다.
“만일 누가 하느님의 말씀(빵)을 실천함으로써 ‘먹지’ 않는다면, 
(먹지 않고 저장된) 말씀(빵)은 만나에 구더기가 끓었듯이 구더기가 끓게 될 것이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요한 6,51)

 

주님!

당신의 생명이 제 삶으로 피어나게 하소서.

제 생명이 당신의 생명으로 피어나게 하소서.

당신께서 먹혀서 저를 살리듯, 저도 먹혀서 타인을 살리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8.10.토요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258) 축일 

                                                                                                            2코린9,6ㄴ-10 요한12,24-26

                                                     하늘 나라 꿈의 실현

                                                        “예수님을 닮자”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계명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시편112,1)

 

지난 수요일(8.7) 입추부터 아침 저녁으로 찬 바람이 이니 가을이 성큼 다가온 듯 싶습니다.

풀벌레들 청아한 찬미와 더불어 배봉지속 배들도 무럭무럭 커가며 익어갑니다. 

오늘도 옛 어른의 말씀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다산 정약용의 고백이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의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황량한 귀양지에서 이렇게 마음을 다잡는다. ‘위기는 나의 바닥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이십년 세속의 길에 빠져 선왕의 훌륭한 정치가 있는 줄 알지 못했는데, 이제야 여가를 얻게 되었다.”

 

혹독한 고문후 생명을 부지한채 장기간의 유배생활은 말그대로 죽어 사는 삶이요

자기와의 참 외로운 고투의 삶이었음을 봅니다.

그러나 다산의 위대함은 무너져 내리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불가사의한 업적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다산은 스승 예수님의 발자취를 충실히 따라 살았던 분입니다.

참으로 진리이신 주님을 향한 사랑의 열정이 분투의 노력의 삶에 원동력이 됐음을 봅니다.

늘 읽어도 새롭게 와닿은 다음 제 자작시입니다.

 

“당신이

꽃을 좋아하면 

당신의 꽃이

 

당신이

별을 좋아하면

당신의 별이

 

당신이

하늘을 좋아하면

당신의 하늘이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1998.12.25.>

 

아마 진리이신 주님 향한 이런 사랑의 열정이 이뤄낸 다산의 업적일 것입니다.

새삼 진리이신 주님 향한 사랑의 열정이 마르지 않는 삶의 원천源泉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진면목을 잘 보여줍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여 닮은 이들은 이렇게 살아 가며 하늘 나라 꿈을 실현시켜 갑니다.

저는 예수님의 삶을 네 측면에 걸쳐 살펴봤습니다. 

 

1.“죽어라!”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대로 예수님의 전삶을 요약합니다.

이렇게 사는 이들이 참으로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죽어야 비로소 무수한 사랑의 열매들입니다.

평생 한 알 그대로의 이기주의적 삶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죽어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당신의 성사로 교회를 통해 끊임없이 열매를 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 열매들입니다.

순교자들은 물론 순교적 삶을 살았던 예수님의 후예들인 성인들도 바로 그 모범입니다.

죽어 살았던 다산의 헤아릴 수 없었던 업적도 그 하나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도 그 모범입니다.

죽어 살면서 많은 열매를 맺는 영원한 현재 진행형의 성인들입니다.

258년경 30대 초반에 순교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성 라우렌시오는 참으로 가난한 이들을 사랑했던

성인입니다.

 

순교를 예감한 성인은 교회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준후 집정관 앞에 병자와 고아와 과부,

가난한 이들을 모두 데리고 나타나, “이 사람들이 교회의 재산입니다.” 외쳤습니다.

성인은 뜨거운 석쇠 위에 눞여 살이 타들어가는 순간에도 웃으면서,

“이쪽은 다 익었으니 뒤집어라” 말했다 합니다. 

 

순교때나 순교후에도 그의 몸에서는 향기가 났다 합니다.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는 주님의 식탁에서 주님을 받았기에 그 보답으로 자기 자신을

주님께 바쳐드렸다.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사랑했고 죽음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았다.”며 그의 순교를 칭송했습니다.

성 라우렌시오는 로마의 수호성인이자 가난한 이들과 요리사, 소방관, 코미디언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2.“비워라!”입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이런 이들은 예수님을 닮아 참으로 무지의 탐욕을 비워낸, 집착에서 벗어난 이탈의 초연한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고집멸도(苦集滅道)란 불가의 사성제(四聖諦)에서 보다시피 모든 고통의 원인은 집착에 있습니다.

 

애오라지 일편단심 주님 사랑의 자연스런 귀결이 자기 죽음에 이어 자기비움의 초탈의 삶, 영원한 삶입니다.

새삼 삶은 끊임없이 자기를 비워가는 겸손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3.“섬겨라!”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도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섬김의 삶은 우리 믿는 이들 삶의 모두입니다.

섬김의 영성, 섬김의 사랑, 섬김의 기쁨, 섬김의 행복, 섬김의 환대, 섬김의 권위, 섬김의 직무입니다.

외로움에 대한 최고의 처방도 섬김의 생활화임을 깨닫습니다.

섬김은 영성의 잣대요, 섬김과 추종은 함께 갑니다.

섬김의 삶이야말로 영적건강의 지름길임을 깨닫습니다.

 

섬김의 자리 바로 거기에 우리가 평생 섬기고 추종하는 주님이 계시고 아버지께서도

이런 섬김의 사람을 인정하시고 존중하십니다.

일상의 모든 섬김을 통해서 주님을 섬기는 삶이요, 섬김(service)의 종(servant)이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4.“나눠라!”입니다

오늘 제1독서 2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바오로 사도의 둘째 서간이 참 아름답습니다.

나눔의 사랑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습니다.

나누라 있는 소유물입니다.

깊이 들여다 보면 내것이 어디 있습니까?

다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정말 그대로 주님 사랑을 닮은 이들이 나눔의 사람들입니다.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 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없어서 못나눈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있어 나누면 좋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미소, 따뜻하고 진실하고 친절한 언행등 신망애(信望愛)의 삶,

진선미(眞善美)의 삶 존재 자체도 참 좋은 나눔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한 세상입니다.

평생 섬기고 따를 파스카의 예수님이 늘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예닮의 여정’에 항구할 힘을 주시며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늘 나라를 살게 하십니다.

 

“가난한 이에게 넉넉히 나누어 주니, 

 그의 의로움은 길이 이어지고,

 그의 뿔은 영광 속에 높이 들리리라.”(시편112,9). 아멘.


8/11(일) [(녹) 연중 제19주일], 되새김 구절

 

1. 컴퓨터는 계속 업데이트 해 주어야 하듯이, 우리의 삶도 업데이트가 있어야 합니다. 규칙적인 식사와 꾸준한 운동으로 업데이트 해 주어야 합니다. 독서와 긍정적인 마인드로 업데이트 해 주어야 합니다. 열린 마음으로 나누고, 봉사해야 합니다. 강물을 거꾸로 헤엄치는 연어처럼 시간과 공간에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조재형 신부)

 

2.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과분하게도 예수님의 크신 배려와 희생으로 그 영원한 생명의 빵을 언제 어디서든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찾을 수 있고, 언제든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더 깊은 감사의 정으로 성체를 영해야겠습니다.

그 성체로 인해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었으니 더 없이 기쁜 마음으로 찬미의 송가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요한 6,51)

 

주님!

당신의 생명이 제 삶으로 피어나게 하소서.

제 생명이 당신의 생명으로 피어나게 하소서.

당신께서 먹혀서 저를 살리듯, 저도 먹혀서 타인을 살리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죽어라 / 비워라 / 섬겨라 / 나눠라. (이수철 신부)

 

8/11(일) [(녹) 연중 제19주일], 제51일차 기도

 

복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오늘의 말·샘 기도>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요한 6,51)

 

주님!

당신의 생명이 제 삶으로 피어나게 하소서.

제 생명이 당신의 생명으로 피어나게 하소서.

당신께서 먹혀서 저를 살리듯, 저도 먹혀서 타인을 살리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6월11일(일) 12시1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