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8월 16일 금요일[(녹) 연중 제19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마르티나 2024. 8. 16. 05:43

[매묵]2024년 8월 16일 금요일[(녹) 연중 제19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백]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

입당송

시편 74(73),20.19.22.23 참조
주님, 당신의 계약을 돌아보소서! 가련한 이들의 생명을 저버리지 마소서. 일어나소서, 주님, 당신의 소송을 친히 이끄소서. 당신을 찾는 이들이 외치는 소리를 잊지 마소서.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르오니
저희 마음에 자녀다운 효성을 심어 주시어
약속하신 유산을 이어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내가 너에게 베푼 영화로 네 아름다움이 완전하였다. 그런데 너는 불륜을 저질렀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16,1-15.60.63
1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2 “사람의 아들아, 예루살렘에게 자기가 저지른 역겨운 짓들을 알려 주어라.
3 너는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예루살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의 혈통과 태생으로 말하자면, 너는 가나안 땅 출신이다.
너의 아버지는 아모리 남자고 너의 어머니는 히타이트 여자다.
4 네가 태어난 일을 말하자면, 네가 나던 날,
아무도 네 탯줄을 잘라 주지 않고, 물로 네 몸을 깨끗이 씻어 주지 않았으며,
아무도 네 몸을 소금으로 문질러 주지 않고 포대기로 싸 주지 않았다.
5 너를 애처롭게 보아서, 동정심으로 이런 일을 하나라도 해 주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네가 나던 날, 너를 싫어하여 들판에 던져 버렸다.
6 그때에 내가 네 곁을 지나가다가, 피투성이로 버둥거리는 너를 보았다.
그래서 내가 피투성이로 누워 있는 너에게 ′살아남아라!′ 하고 말하였다.
7 그러고 나서 너를 들의 풀처럼 자라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서 꽃다운 나이에 이르렀다.
젖가슴은 또렷이 드러나고 털도 다 자랐다.
그러나 너는 아직도 벌거벗은 알몸뚱이였다.
8 그때에 내가 다시 네 곁을 지나가다가 보니, 너는 사랑의 때에 이르러 있었다.
그래서 내가 옷자락을 펼쳐 네 알몸을 덮어 주었다.
나는 너에게 맹세하고 너와 계약을 맺었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그리하여 너는 나의 사람이 되었다.
9 나는 너를 물로 씻어 주고 네 몸에 묻은 피를 닦고 기름을 발라 주었다.
10 수놓은 옷을 입히고 돌고래 가죽신을 신겨 주었고,
아마포 띠를 매어 주고 비단으로 너를 덮어 주었으며,
11 장신구로 치장해 주었다.
두 팔에는 팔찌를, 목에는 목걸이를 걸어 주고,
12 코에는 코걸이를, 두 귀에는 귀걸이를 달아 주었으며,
머리에는 화려한 면류관을 씌워 주었다.
13 이렇게 너는 금과 은으로 치장하고, 아마포 옷과 비단옷과 수놓은 옷을 입고서,
고운 곡식 가루 음식과 꿀과 기름을 먹었다.
너는 더욱더 아름다워져 왕비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14 네 아름다움 때문에 너의 명성이 민족들에게 퍼져 나갔다.
내가 너에게 베푼 영화로 네 아름다움이 완전하였던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5 그런데 너는 네 아름다움을 믿고, 네 명성에 힘입어 불륜을 저질렀다.
지나가는 아무하고나 마구 불륜을 저질렀다.
60 그러나 나는 네가 어린 시절에 너와 맺은 내 계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계약을 세우겠다.
63 이는 네가 저지른 모든 일을 내가 용서할 때,
네가 지난 일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하며,
수치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나는 너와 맺은 내 계약을 기억하고, 너는 수치스러워할 것이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6,59ㄴ-6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59 “나는 네가 한 대로 너에게 해 주겠다. 너는 맹세를 무시하여 계약을 깨뜨렸다.
60 그러나 나는 네가 어린 시절에 너와 맺은 내 계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계약을 세우겠다.
61 너와 맺은 계약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내가 네 동생들과 함께 네 언니들도 데려다가 너에게 딸로 삼아 주면,
너는 네가 걸어온 길을 기억하고 수치스러워할 것이다.
62 이렇게 내가 너와 계약을 세우면,
그제야 너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63 이는 네가 저지른 모든 일을 내가 용서할 때,
네가 지난 일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하며,
수치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이사 12,2-3.4ㄴㄷㄹ.5-6(◎ 1ㄹ 참조)
◎ 주님은 분노를 거두시고 저를 위로하셨나이다.
○ “보라, 내 구원의 하느님. 나는 믿기에 두려워하지 않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를 구원해 주셨네.”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 이름 높이 불러라. 그분 업적을 민족들에게 알리고, 높으신 그 이름을 선포하여라. ◎
○ 위업을 이루신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이 하신 일 온 세상에 알려라. 시온 사람들아, 기뻐하며 외쳐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희 가운데 계신 분은 위대하시다. ◎

복음 환호송

1테살 2,13 참조
◎ 알렐루야.
○ 하느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말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라.
◎ 알렐루야.

복음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9,3-12
그때에 3 바리사이들이 다가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읽어 보지 않았느냐?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나서,
5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6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7 그들이 다시 예수님께, “그렇다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려라.’ 하고 명령하였습니까?” 하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다.”
10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아내에 대한 남편의 처지가 그러하다면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
12 사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 손에 고자가 된 이들도 있으며,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자비로 이 예물을 바치오니
주님의 교회가 드리는 이 예물을 받아들이시어
저희에게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47(146─147),12.14 참조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은 기름진 밀로 너를 배불리신다.
<또는>
요한 6,51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받아 모신 이 성체로 저희를 구원하시고
진리의 빛으로 저희를 굳세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며칠 전 가슴을 움직이는 글을 읽었습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입니다. 비슷한 말 같은데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사람은 삶을 주도하게 됩니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시행착오를 겪게 됩니다. 꿈을 이루는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생각은 인생의 내비게이션과 같습니다. 문명은 생각의 탄생으로 열렸습니다. 철학은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학문입니다. 인문학은 생각이 드러나는 통로입니다. 예술은 생각의 열매입니다. 윤동주의 십자가는 제 가슴을 뛰게 하였습니다. 조정래의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은 우리 민족의 근대사를 장엄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봉준호의 기생충은 우리 영화의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BTS의 음악은 K Culture의 우수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생각은 진화의 과정일 수 있지만, 생각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상(模像)’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능력으로 인간은 진리와 거짓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의지의 자유를 누리는 인간은 선과 악 중에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영적 본성과 지적 인식능력과 선택과 행위의 자유 덕분에 인간은 처음부터 하느님과의 특별한 관계 속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은 무엇보다도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 속에 나타납니다.

 

생각하는 대로 믿지 않으면, 믿는 대로 생각한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비슷한 말 같은데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랐을 때입니다. 제자들은 빵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그러자 제자들은 이렇게 수군거렸습니다. “우리가 빵을 적게 가져왔다는 말씀인가?”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 내가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 빵 조각을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느냐?” 제자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열둘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누룩은 빵을 많게 하는 효소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누룩은 바리사이의 교만과 헤로데의 욕망이었습니다. 생각이 없는 믿음은 미신이 되고, 광신이 되고, 사이비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없는 믿음은 폭력과 전쟁을 하느님의 뜻으로 포장하기도 합니다. 생각이 없는 믿음은 공동선의 가치를 무시하기도 합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과 자비를 베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돌보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과 맺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다른 신들을 섬기곤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오도록 기다려 주시고 용서를 해 주신다고 하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혼인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혼인은 하느님 앞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책임을 다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혼인의 약속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혼인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독신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신부님은 왜 결혼을 하지 않습니까?” 독신생활의 참된 이유는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 때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독신으로 사셨고 우리를 위해 당신을 온전히 내놓으신 주님을 갈림 없는 마음으로 따르기 위한 것입니다.

 

사제나 수도자들의 독신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그 근거를 두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입니까! 예수님은 나를 따르려면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혈연관계보다 예수님을 더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단순히 독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가르침을 먼저 생각하고 따라야 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지배하고 소유하려고 한다면 독신으로 사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이웃을 비난하고, 원망하는 삶의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버릴 수 있는 무소유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혼인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도 같습니다. 지배하고 소유하려고 한다면 혼인하여 사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네가 저지른 모든 일을 내가 용서할 때, 네가 지난 일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하며, 수치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 19,3-12

 

통치자와 권력자의 모델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

 

성모승천대축일이자 광복절이니 경사 중의 겹경사 날입니다.

우리나라의 해방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고 목숨 바친 분들에게 깊이 감사하며,

그들의 애국심에 가슴 뛰고 설레야 할 광복절인데, 오늘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초라하고 굴욕적입니다.

 

제대로 된 통치자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실감하는 하루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멋진 국왕이 한 분 있습니다.

축일을 맞이하시는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975∼1038)입니다.

 

헝가리에 가면 얼마나 스테파노가 존경받는 인물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헝가리의 수호성인이면서도 정교회 쪽으로부터도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헝가리 국민들 가운데 스테파노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닮은 점이 많았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무척이나 청빈했습니다. 왕으로서 화려한 복장을 피하고 아주 소박하고

단출한 옷을 즐겨 입었습니다.

 

백성의 필요성에 언제나 활짝 열려있었기에 굶주리던 백성들을 위해 왕실의 곳간을 활짝 열어

아낌없이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자신의 왕관을 하느님께 봉헌했으며 자신의 손에 맡겨진 헝가리 왕국 안에 하느님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한 세상과 하느님 나라를 자신의 생애 안에 잘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더불어 신앙과 삶, 기도와 활동 사이에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그는 현대 성인의 선구자요 리더의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테파노의 성모님을 향한 사랑은 각별했습니다.

그는 헝가리 왕국이 성모님의 푸른 망토 안에 머물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더불어 헝가리 모든 백성들이 성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도록 적극 장려했습니다.

 

그래서 성모승천대축일을 국경일로 정하기까지 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성모님을 사랑했던지 그는 가급적 성모님 축일에 임종하기를 간절히 원했는데

마침내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1038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선종했습니다.

 

임종의 고통 속에서도 그는 신생 헝가리 왕국을 성모님께 맡기고 성모님의 보호를 청하는 기도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숨이 멈추는 순간까지 성모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렇게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테파노는 하느님 앞의 한 신앙인으로서 성모신심에도 투철했지만 왕으로서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도

각별한 성모신심을 드러냈습니다.

그도 세상을 통치해야하는 왕이었던지라 불가피하게 군대를 동원할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공포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영주들이 반기를 들었는데

어쩔 수 없이 군대를 파견하게 되었습니다.

출정식 전에 스테파노는 성당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 뜻에 따라 평화로이 이루어지도록 오래도록 기도를 올렸고

성모님의 특별한 중재와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던지 사태는 원만하게 해결되었고, 반군을 진압한 후에도

그는 패장들을 관대하게 끌어안는 여유를 보여주었습니다.

왕권의 상징이었던 왕관과 홀, 그리고 검까지도 하느님과 성모님께 봉헌했던 참 신앙인 스테파노였습니다.

성모님께 자신의 왕관을 봉헌한 스테파노의 오른 손은 아직도 잘 보존되어

매년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 대축일 때마다 부다페스트 거리를 순회하며 헝가리 백성들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그리스도의 신부’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공동체 설교를 마치시고, 갈릴래야를 떠나 유다지역으로 가시자, 그곳에서도 많은 군중이 따랐고 그들을 고쳐주셨는데, 당신을 시험하려는 바리사이의 질문, 곧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태 19,3)라는 질문을 받고, 결혼과 이혼과 독신에 대한 말씀을 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이혼을 허락해준 이유가 이혼이 정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완고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는 창조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내 자신을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엄마와 아버지를 선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분의 고유한 작품일 뿐, 내 자신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그분으로부터 건네진, 당신의 형상이 새겨진 까닭입니다.

서로가 부족하기에, 서로를 위하고 껴안아 주어야 하고, 내어주어야 하고, 서로 한 몸을 이루어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남자와 여자로,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지닌 서로의 동반자 만드셨습니다. 

사실 모세가 이혼을 허락한 것은 이미 이혼당한 여성들을 그대로 놔두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보기 때문이었습니다.

곧 '이혼장'이라는 서류도 없이 버림을 받게 될 경우, 여성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사회에서 다른 남자와 함께 생활하다 붙잡히면 간통죄로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마태 19,5)
교부들은 이 말씀을 단순히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를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나아가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로운 관계로 해석해 왔습니다. 

 

<이사야서>에서는 이 관계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하여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하여 기뻐하시리라.”

(이사 62,5) 

이는 하느님과 인간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 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은 영원에서부터 인간의 신랑이시고 인간은 하느님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세례를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맞이하고, 그분의 아내가 되는 혼인성사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과의 이러한 깊은 관계가 우리를 가장 품위 있는 존재로 부각시켜줍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신부’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먼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와 사랑으로 하나를 이루며 '한 몸'이 되어 사는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마태 19,5)

주님!

받아들여야 살 수 있음은 제가 부족해서 만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한 까닭입니다.

함께 있어야 살 수 있음은 당신이 필요해서만이 아니라 당신이 소중한 까닭입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이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게 하소서.

제 자신을 떠나 당신께 나아가게 하소서.

당신 안에서 모든 것이 되고 모든 것 안에서 당신을 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8.15.목요일 성모승천대축일(광복절)

                                                           묵시11,19ㄱ;12,1-6ㄱㄷ.10ㄱㄴㄷ 1코린15,20-27ㄱ 루카1,39-56

 

                                            우리 교회의 영원한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오피르 황금으로 단장한 왕비,

 당신 오른쪽에 서 있나이다.”(시편45,10ㄷㄹ)

 

오늘 화답송 후렴이 흥겹습니다. 잠시 오늘 옛 어른의 말씀이 좋아 나누고 본격적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공부란 지식을 쌓는 것을 넘어 사람이 되는 일이다.”<다산>

사람중의 사람이 오늘 성모승천대축일의 주인공 복되신 동정 마리아요 이런 성모님을 닮는 공부가

진짜공부입니다.

“행하고도 남은 힘이 있으면 그때 학문을 닦으라.”<논어>

남는 시간이 있으면 사람되는 학문에, 공부에 힘쓰라는 말입니다.

 

작년 성모승천대축일 강론때는 강론중 광복절을 상기하며 애국가를 불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특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대목을 부를때는

성가처럼 일치의 숙연한 분위기였습니다.

 

작년 이날부터 만세칠창을 하기 만1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도하듯 바쳤습니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지만 온전한 독립국가가 될 때 까지, 아마 죽는 그날까지 집무실의

‘십자가의 예수님과 태극기’ 앞에서 기상후, 기상전 바칠 것입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성령님 만세!”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

“가톨릭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성 요셉수도원 만세!”

 

성모승천대축일이자 광복절에 참 잘 어울리는 만세칠창으로 오늘 따라 더욱 마음에 와닿습니다.

올해는 ‘빛을 되찾았다’는 광복(光復) 79주년이 되는 광복절이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가 지상생애를 마친다음,

육신과 영혼이 함께 천상의 영광으로 들어 올림을 받았다’는 오늘 대축일은, 1950년 11월1일 교황 비오 12세의

사도헌장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을 통해 교황무류성으로 선언함으로써 믿을 교리로 지정됩니다. 

 

광복 5년후 6.25사변중 1950년 제정된 성모승천대축일에서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를 깨닫습니다.

대한민국은 물론 한반도의 수호성인이 복되신 동정마리아의 전구로 6.25 사변중에도 적화(赤化)되지 않았고

언젠가는 온전한 광복의 나라가 되리라 믿습니다.

우리 한민족의 영원한 수호자이자 어머니가 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입니다.

 

오랜만에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요 납북자인 정인보 작사에,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43세 가난하게 살다가

죽은 ‘보리밭’과 ‘나뭇잎배’를 작곡한 윤용하 요셉 작곡의 광복절 노래를 불러 봅니다.

한번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1.“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2.“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

   다 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구원의 빛은 대한민국 한반도 예서 나리라 믿습니다.

성모승천 대축일 아침 성무일도 아름다운 찬미가와 시편 후렴들도 새삼스런 감동이었습니다.

 

1.“태양의 빛입으신 동정녀시여 열두별 머리위에 꾸미신이여

   저달을 발판삼아 우뚝서시니 환하게 빛나도다 당신의광휘”

5.“우리의 동정성모 성마리아께 영광의 화관씨워 드높이시고

   여왕과 어머니로 세운삼위께 영원한 찬미찬양 있어지이다”

 

오늘 제1독서 묵시록과 제2독서 코린도 전서 말씀을 근거로 한 찬미가입니다.

“맏물”(1코린15,23)이신 그리스도께서, 미완성의 상태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이르게 될

완성을 보여주었으며, 이어 성모님의 승천이 구원된 우리의 미래를 분명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은 그대로 예수님, 성모님이 승천하신 영적승리와 희망을 상징하는 하늘길,

하늘문이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다음 시편 후렴도 은혜롭습니다.

“기뻐하라, 오늘 동정녀 마리아,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도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다스리시는도다.”

 

가사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동정녀 마리아께서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말그대로 하느님의 은총의 보답입니다.

‘동정마리아께서는 성부의 뜻과 성자의 구속사업과 성령의 모든 활동에 전적으로 헌신함으로써

교회를 위해 신앙과 사랑의 모범이 되심으로, 교회의 가장 뛰어나고, 유일무이한

교회의 전형이 되신 것입니다’(가톨릭교리서967항).

참으로 우리 믿는 이들의 영원히 보고 배울 롤모델이 된 우리의 영원한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입니다.

 

첫째, 겸손과 섬김의 어머니입니다.

섬김을 받으로 오신 주님이 아니라 겸손히 섬기러 오신 주님입니다.

모전자전, 그 어머니에 그 아드님입니다.

보십시오. 오늘 마리아 성모님은 태중의 아기 예수님과 함께 엘리사벳과 태중의 세례자 요한을

찾아 나서지 않습니까?

섬기러 오신 겸손의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마리아 성모님의 겸손한 섬김의 자세에 감동한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외칩니다.

동병상련, 평생도반 두 어머니의 영적우정도 참 깊어졌을 것입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둘째, 감사와 찬미의 어머니입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 마리아의 노래, 마니피캇은 우리 교회가 2000년 동안 저녁성무일도시

성모님과 함께 불러온 감사찬미가입니다.

말그대로 가난한 이들인 아나뵘의 노래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

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감사는 저절로 찬미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영혼의 건강과 치유에 감사와 찬미의 기도와 삶보다 더 좋은 수행은 없습니다.

감사와 찬미의 기도와 삶과 더불어 성모 마리아의 주님 향한 믿음, 희망, 사랑도 더욱 증대되었을 것입니다.

참 아름답고 매력적인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이요 성모 마리아가 그 모범입니다.

 

셋째, 순종과 믿음의 어머니입니다.

순종으로 표현되는 믿음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했던 순종의 어머니, 영원한 예스맨 성모마리아입니다.

앞서 예수님 탄생이 예고 됐을 때, 성모 마리아의 순종의 응답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의 순종의 믿음의 결정체같은 응답에 주님께서도 분명 감동하셨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마리아가 한없이 고맙고 사랑스러웠을 것이며 마리아에 대한 신뢰도 한없이 깊어졌을 것입니다.

역시 엘리사벳이 이런 마리아의 믿음을 격찬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제가 감동하는 것은 성모님은 십자가의 길, 제13처 피에타의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는 기도문입니다. 

“구세주 예수님, 주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품에 안으신 성모님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성모님 품 안에서 효성스러운 자녀로 살다가 마침내 그 품 안에서 죽게 하소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품에 안으셨을 때, 순종의 비움(케노시스)을 통해 드러나는 성모님의 절정의 믿음은

그대로 아드님께 전수되었음을 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의 희망이자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감사송 고백처럼 오늘 하늘에 오르신 분, 하느님을 낳으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완성될 주님 교회의 시작이며

모상으로서, 이 세상 나그넷길에 있는 주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 주셨습니다.

 

거룩한 어머니 마리아를 닮아 겸손과 섬김의 삶, 감사와 찬미의 기도와 삶,

순종과 믿음의 삶에 항구한 노력을 기울입시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를 돕습니다. 

 

“성모 마리아, 

 하늘에 오르시니

 천사들의 무리가 기뻐하네.” 아멘.


8/16(금) [(녹)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되새김 구절

 

1. 생각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상(模像)’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능력으로 인간은 진리와 거짓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의지의 자유를 누리는 인간은 선과 악 중에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영적 본성과 지적 인식능력과 선택과 행위의 자유 덕분에 인간은 처음부터 하느님과의 특별한 관계 속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은 무엇보다도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 속에 나타납니다.(조재형 신부)

 

2.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멋진 국왕이 한 분 있습니다.

축일을 맞이하시는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975∼1038)입니다.

 

헝가리에 가면 얼마나 스테파노가 존경받는 인물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헝가리의 수호성인이면서도 정교회 쪽으로부터도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헝가리 국민들 가운데 스테파노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마태 19,5)

주님!

받아들여야 살 수 있음은 제가 부족해서 만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한 까닭입니다.

함께 있어야 살 수 있음은 당신이 필요해서만이 아니라 당신이 소중한 까닭입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이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게 하소서.

제 자신을 떠나 당신께 나아가게 하소서.

당신 안에서 모든 것이 되고 모든 것 안에서 당신을 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의 희망이자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감사송 고백처럼 오늘 하늘에 오르신 분, 하느님을 낳으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완성될 주님 교회의 시작이며

모상으로서, 이 세상 나그넷길에 있는 주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 주셨습니다.

 

거룩한 어머니 마리아를 닮아 겸손과 섬김의 삶, 감사와 찬미의 기도와 삶,

순종과 믿음의 삶에 항구한 노력을 기울입시다. (이수철 신부)

 

8/16(금) [(녹)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56일차 기도

 

복음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오늘의 말·샘 기도>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마태 19,5)

주님!

받아들여야 살 수 있음은 제가 부족해서 만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한 까닭입니다.

함께 있어야 살 수 있음은 당신이 필요해서만이 아니라 당신이 소중한 까닭입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이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게 하소서.

제 자신을 떠나 당신께 나아가게 하소서.

당신 안에서 모든 것이 되고 모든 것 안에서 당신을 보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8월16일(금) 5시40분...수산나 -